아이 그림 읽기

2014.7.24. 작은아이―나도 그릴래



  마루에 모두 모여서 그림을 그린다. 여느 때에는 그림놀이를 안 쳐다보던 네 살 산들보라가 저도 그림을 그리겠다고 나선다. 작게 오린 종이를 건넨다. 마루에 함께 엎드려서, 산들보라는 산들보라 나름대로 꽃과 나무를 그린다. 보라야, 그림놀이를 해 보면 이 놀이도 꽤 재미있단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 그림 읽기

2014.7.24. 큰아이―솜 이모


  고흥에 살짝 마실을 온 이웃 솜님을 만난다. 아이들은 함께 놀 동무와 같은 이모가 찾아와서 즐겁지만, 곧 먼길을 돌아가야 하니 서운하다. 그래서 큰아이한테 ‘이모가 고흥에서 느긋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을 그림으로 그려서 선물로 주라고 말한다. 일곱 살 사름벼리는 ‘세층집’을 그린다. 세 층에 걸쳐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넓은 집을 솜 이모한테 그려서 준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림책을 빚는 어른들 마음



  그림책을 빚은 분들은 바로 이녁 아이들한테 삶을 선물하고픈 마음이었다고 느껴요. 그래서 누구나 즐겁게 그림책을 빚고, 빙그레 웃으면서 그림책을 빚으며, 때로는 눈시울이 흠뻑 젖은 채 그림책을 빚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나부터 그림책을 읽을 때에 즐겁고, 웃음이 나면서, 눈물이 핑 돌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그림책을 빚습니다. 전문 작가로 되어야 그림책을 빚지 않습니다. 그림을 가르치는 대학교를 나와야 하지 않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을 여러 해 해 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면서 아이들한테 삶을 선물하고픈 마음이 있으면 누구나 그림책을 빚습니다.


  우리가 빚을 그림책은 수천만 권을 찍어도 즐겁고, 한 권을 엮어도 즐겁습니다. 꼭 백만 권을 팔아치워야 할 그림책을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한 해에 백 권을 팔더라도, 그러니까 한 해에 어린이 백 사람을 만나더라도, 따사로운 빛과 아름다운 손길과 사랑스러운 눈망울을 나눌 수 있으면 즐거운 그림책입니다.


  눈부신 빛깔로 요모조모 꾸미는 그림책도 아름답습니다. 수수하면서 가벼운 그림결로 빙긋 웃는 그림책도 아름답구나 싶어요. 그림책이 아름다운 까닭은 얼마나 멋진 그림을 그렸느냐 하는 대목이 아닌, 얼마나 따스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느냐 하는 대목이로구나 싶어요. 그러니, 그림책을 빚는 어른들은 스스로 마음을 넓게 틔웁니다. 그림책을 읽는 어른들은 스스로 마음을 넉넉히 가꿉니다. 스스로 마음을 넓게 틔우는 어른과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 될까요? 스스로 마음을 넉넉히 가꾸는 어른이랑 같이 살아가는 아이들은 어떤 넋이 될까요? 문학과 책은 언제나 사랑과 꿈으로 이룹니다. 4347.7.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버지 그림놀이] 솜노래 (2014.7.24.)



  솜씨를 사랑하는 이웃한테 주고 싶어 그림을 그린다. 솜씨란 솜씨이고, 솜과 씨이다. 두 손을 모두어 실타래를 엮고, 두 손으로 엮는 실타래 따라 파랗게 별이 빛난다. 별이 빛나는 두 손으로 실타래를 엮으니 알록달록 어여쁜 별빛이 이 땅에 드리운다. 새가 날고 나무가 자라며 나비가 춤춘다. 이곳에서 짓는 삶이란 어떤 꿈이 될 수 있을까.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말넋 36. ‘치마’와 ‘스커트’

― 삶을 바라보는 넋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라기에 한국사람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어도, 내 어버이가 한국사람이면 한국사람입니다. 어버이가 한국사람도 아니요,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나, 내 삶터를 한국으로 삼으면 한국사람입니다. 겉보기로는 ‘똑같이 한국사람’이라 하더라도, 삶으로는 서로 사뭇 다릅니다. 그래서, 겉보기로는 ‘똑같이 한국말’이라 하지만, 삶으로 보면 말이 사뭇 다르기 마련입니다.


  한국사람이 쓰는 말은 여럿입니다. 맨 먼저 한국말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중국 한자말과 일본 한자말과 한국 한자말이 있습니다. 여기에 일본말이 있고 영어가 있으며 몇 가지 서양말과 중국말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한국사람이 가장 널리 쓰는 말이라면 아무래도 ‘한국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일하는 곳이 다르고 마음을 기울이는 데가 다른 터라, 어떤 한국사람은 ‘중국 한자말’이나 ‘일본 한자말’을 가장 자주 씁니다. 어떤 한국사람은 ‘영어’를 매우 자주 씁니다.


  ‘항상(恒常)’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이 낱말은 겉보기로는 한자말이지만, 그냥 한자말이 아닙니다. 첫째, ‘항상’은 ‘한국말이 아닌 말’입니다. 이 다음으로 놓고 보면 ‘중국 한자말’이나 ‘일본 한자말’일 테지요. 그러면, 한국말은 무엇일까요? ‘늘’과 ‘언제나’와 ‘노상’과 ‘한결같이’입니다. 이밖에 때와 곳에 따라 수많은 말이 더 있습니다.


  한국사람이라 하더라도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알아듣기는 알아듣습니다. 영어를 섞든 일본 한자말을 넣든 번역 말투를 쓰든, 이럭저럭 서로 알아듣습니다. 그러면,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알아듣기만 하면 어떤 말이든 깊이 살피지 않고 써도 될까요? 이를테면, ‘치마’와 ‘스커트(skirt)’라는 낱말이 있는데, 두 낱말을 한국사람이 한국에서 섞어서 써도 될까요?


  한국말사전은 ‘스커트’를 올림말로 다룹니다. 영어사전이 아닌 한국말사전에 ‘스커트’가 올림말로 나옵니다.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스커트’ 뜻풀이를 보면 “주로 여성이 입는 서양식 치마. 모양에 따라 타이트·개더·플레어·플리츠·랩 따위로 나누고, 길이에 따라 미니·미디·맥시 따위로 나눈다. ‘치마’로 순화”라 나옵니다. 그러면 ‘치마’는 어떻게 풀이할까요? 한국말 ‘치마’를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면 “여자의 아랫도리 겉옷”이라 풀이합니다.


  두 낱말을 잘 살피면 두 낱말은 아주 다른 낱말인 줄 알 수 있습니다. ‘치마’는 한국말을 쓰는 나라에서 쓰는 낱말이고, ‘스커트’는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쓰는 낱말입니다. 그리고, 한국말사전에서 다루는 낱말풀이는 엉터리입니다. 왜냐하면, ‘스커트’를 가리켜 “서양식 치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서양식 치마라 한다면 ‘서양치마’라고 아예 새로운 낱말을 지어서 써야 올바릅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한국으로 나들이를 와서 ‘한복’이라는 옷을 본다면, 이 가운데 ‘한복 치마’를 본다면, 미국사람이나 영국사람은 무어라 말할까요? 아주 마땅히 ‘스커트’라 하겠지요. 요새는 ‘미니스커트’가 아예 한국말 고유명사처럼 못이 박혔지 싶은데, ‘미니스커트’도 영어일 뿐 한국말이 될 수 없습니다. 한국말은 ‘깡동치마’나 ‘짧은치마’입니다. 사진을 서양에서 배우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들은 으레 ‘포토그래퍼’라는 이름을 쓰고, 이런 분들한테서 사진을 배운 젊은이도 이녁 스스로 ‘포토그래퍼’라는 낱말을 쓰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은 한국에서 ‘사진가’입니다. 자전거를 서양에서 먼저 만들었건 말건, 한국에서는 ‘자전거’를 탈 뿐입니다. ‘바이서클(bicycle)’을 타지 않아요.


  한국사람은 한국에서 ‘노래’를 합니다.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은 ‘音樂’을 할 테고, 서양사람은 ‘music’을 할 테지요. 그러나 요새는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음악’조차 아닌 ‘뮤직’을 합니다.


  무엇이 한국말일까요? 무엇이 한국말이 아닌 말일까요? 무엇이 한국말인 말일까요?


  삶을 바라보는 넋에 따라 말이 다릅니다. 삶을 바라보는 넋에 따라 말뿐 아니라 삶부터 다릅니다. 삶을 바라보는 넋에 따라 말과 삶과 빛이 다르고, 꿈과 사랑과 노래가 다릅니다.


  우리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답게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겉보기로 한글이 아닌 알맹이로 한국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을 밝히는 말을 알차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슬기롭게 삶을 가꾸듯이 슬기롭게 말을 가꾸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나 언론이나 학문이나 역사나 문화나 교육을 돌아보면, 어디에서나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억누르는 얼거리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억누를까요? 때로는 짓밟고 때로는 따돌리기까지 하는데, 왜 이런 짓을 일삼을까요? 까닭을 살피면 아주 쉽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을 짓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쉽게 쓰는 말은 가장 쉽게 슬기로 닿습니다. 가장 쉽게 쓰는 말은 언제나 가장 아름답습니다. 가장 쉽게 쓰는 말은 늘 가장 쉽게 생각을 열고 틔워서 가장 사랑스러운 빛으로 거듭납니다.


  참된 말, 참말, 그러니까 한자말로 하자면 ‘진리’란 무엇이겠습니까. ‘참다운 빛이 감도는 말’은 한결같이 가장 쉽습니다. 어린이도 알아차릴 수 있기에 슬기요 진리입니다. 학교를 다닌 적 없는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기에 슬기이면서 진리입니다. 한국사람이면서 우리 스스로 한국말 아닌 ‘엉뚱한 말’을 자꾸 쓰지요? 보기를 들자면 ‘존재(存在)’ 같은 한자말이 있는데, 사회와 교육과 문학과 문화 모두 이런 엉뚱한 말을 자꾸 쓰도록 몰아붙이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 넋과 뜻을 오롯이 펼치지 못합니다. 이런 말을 듣는 사람도 좀처럼 마음과 생각을 열지 못합니다. 이야기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아, 자꾸 말을 더 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보셔요. 아이들은 ‘존재’나 ‘스커트’ 같은 낱말이 없어도 생각이 가로막히지 않습니다. 모든 마음을 술술 풀어놓습니다.


  한국사람은 이웃과 동무인 다른 한국사람하고 어떤 말로 생각과 마음을 나눌 때에 가장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울까요? 말을 새로 찾는 일하고 말을 제대로 보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스스로 쓰고 싶으면 ‘스커트’이든 ‘뮤직’이든 ‘존재’이든 그냥 쓰면 됩니다. 다만, 한국사람 스스로 이런 낱말을 자꾸 쓰면 쓸수록, 생각을 틔우고 마음을 열어 슬기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빛은 차츰 스러지거나 사라질밖에 없습니다. 4347.7.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