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264) 수리


간조의 결의는 굳었고, 드디어 5월 4일에 구로이와가 그 사표를 수리해서 원만하게 퇴사하게 되었다

《스즈키 노리히사/김진만 옮김-무교회주의자 우찌무라 간조》(소화,1995) 77쪽


 사표를 수리해서

→ 사표를 받아들여서

→ 사표를 받아서

 …



  한국말 ‘수리’가 셋 있습니다. 한자말 ‘수리’는 모두 열둘입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널리 쓰는 한자말 ‘수리’는 몇 가지일까 궁금합니다. “수리 시설”과 “사표 수리”와 “고장난 곳 수리”와 “수리 탐구 시험”, 이렇게 네 가지만 쓰지 싶은데, “수리 탐구 시험”에서는 쓰일 수 있으나, “수리에 밝아서 계산이 틀리는 일이 없다”는 “셈에 밝아서 틀리는 일이 없다”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망가진 곳을 고치는 “수리해서 쓰다”는 “고쳐서 쓰다”나 “손봐서 쓰다”나 “손질해서 쓰다”로 손질할 수 있어요. “수리 시설”은 “물 시설”이라고 적을 때에 알아듣기에 한결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표 수리”에서도, ‘受理’는 ‘받아들임’이나 ‘받음’으로 고쳐서 써야 한다고 나와요.


  다른 여덟 가지 ‘수리’는 얼마나 쓰일 만한지 궁금합니다. 손금이면 ‘손금’일 뿐 ‘手理’라 할 까닭이 없고, 손안이면 ‘손안’일 뿐 ‘手裏’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물줄기는 ‘물줄기’일 뿐이요, 물길은 ‘물길’일 뿐, ‘水理’가 아닙니다. “소매 속”을 왜 ‘袖裏’라 적어야 할까요? 근심이 있으면 “근심 있다”라 하면 되는데, 왜 ‘愁裏’라 적어야 할는지요? 옛날 역사에서 쓰던 한자말은 역사사전으로 옮길 노릇입니다.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사전은 어떤 책인지 새삼스럽게 돌아봅니다. 한국사람이 사랑할 한국말사전에 한국말이 얼마나 제대로 실렸는지 곰곰이 되짚습니다. 4340.4.18.물/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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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조는 굳게 다짐했고, 드디어 5월 4일에 구로이와가 그 사표를 받아들여서 그대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간조의 결의(決意)는 굳었고”는 “간조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고”나 “간조는 굳게 다짐했고”로 다듬습니다. ‘원만(圓滿)하게’는 ‘잘’이나 ‘그대로’로 손질하고, ‘퇴사(退社)하게’는 ‘회사를 나오게’나 ‘회사를 그만두게’로 손질합니다.



 수리 : 밤이나 도토리, 개암 따위의 일부분이 상하여 퍼슬퍼슬하게 된 것

 수리 : 수릿과의 독수리, 참수리, 흰죽지참수리, 검독수리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수리 = 단오(端午)

 수리(手理) = 손금

 수리(手裏) = 수중(手中)

 수리(水利)

  (1) 수상 운송상의 편리

  (2) 식용, 관개용, 공업용 따위로 물을 이용하는 일

   - 농업 생산을 늘리기 위하여 수리 시설을 확충하다

 수리(水理) : 물에 관련된 근본 이론이나 이치

 수리(水理) = 수맥(水脈)

 수리(受理) : 서류를 받아서 처리함. ‘받아들임’, ‘받음’으로 순화

   - 사표가 수리되다

 수리(首吏) : ‘이방 아전’을 달리 이르던 말

 수리(修理) : 고장 나거나 허름한 데를 손보아 고침

   - 사실 그는 일의 종류라면 발동기 수리로부터 도토리 요리까지

 수리(袖裏) : 소매의 속

 수리(愁裏) : 근심이 있음

 수리(數理)

  (1) 수학의 이론이나 이치

   - 그는 수리에 밝아서 계산이 틀리는 일이 없다

  (2) 수학과 자연 과학을 아울러 이르는 말

   - 이번 시험은 언어 영역보다 수리 영역이 어려웠다

 수리(?吏) : 낮은 벼슬아치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086) 순수 1


그 초가집에는 눈송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순이’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엄광용-초롱이가 꿈꾸는 나라》(이가서,2006) 12쪽


 눈송이처럼 순수한 마음

→ 눈송이처럼 맑은 마음

→ 눈송이처럼 해맑은 마음

→ 눈송이처럼 깨끗한 마음

→ 눈송이처럼 하얀 마음

→ 눈송이처럼 고운 마음

 …



  임금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일을 지난날에 ‘巡狩’라는 한자말로 가리켰을는지 모르나, 오늘날에는 이런 말을 쓸 일이 없기도 하고, 이 같은 한자말을 굳이 한국말사전에 올릴 일이 없다고 느낍니다. 권력자나 양반이 바라볼 적에는 “임금님이 순수한다”일는지 모르나, 여느 사람한테는 “임금이 돌아다닌다”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이 거의 안 섞인 물은 ‘純水’가 아닌 ‘맑은 물’입니다. 차례로 세는 일은 그저 ‘차례로 세기’이지 ‘順數’가 아니에요. 고분고분 받는 일은 ‘고분고분 받기’이지 ‘順受’가 아닙니다.


  ‘順修’나 ‘順守’나 ‘循守’는 누가 언제 왜 쓸까 궁금합니다. ‘循首’ 같은 한자말도 ‘巡狩’처럼 지난날 권력자와 양반이나 쓰던 한자말입니다. 이런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담을 일이 없습니다.


 순수 성분 → 맑은 성분

 순수 농축액 → 맑은 농축액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를 지녔다 → 어린아이처럼 맑다


  티가 섞이지 않을 때에 ‘맑다’고 합니다. 성분도 결정체도 농축액도 다른 것이 깃들지 않으면 ‘맑’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마음에 티나 거짓이 깃들지 않으면 ‘맑’습니다. 4339.5.17.물/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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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풀집에는 눈송이처럼 마음이 맑은 ‘순이’라는 아이가 살았습니다


‘소녀(少女)’라는 한자말을 그대로 둘 수 있으나, ‘아이’라 손볼 수 있습니다. ‘가시내’로 손보아도 됩니다. “-한 마음을 가진”은 “마음이 -한”으로 손보고, “살고 있었습니다”는 “살았습니다”로 손봅니다. ‘초가집(草家-)’은 겹말이니 ‘풀집’이나 ‘초가’로 바로잡습니다.



 순수(巡狩) : 임금이 나라 안을 두루 살피며 돌아다니던 일

 순수(純水) : 부유물이나 불순물이 거의 섞이지 않은 물

 순수(純粹)

  (1) 전혀 다른 것이 섞이지 아니함

   - 순수 성분 / 순수 결정체 / 순수 농축액

  (2)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

   - 그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를 지녔다

 순수(循守) = 준수(遵守)

 순수(循首) : 참형에 처한 죄인의 머리를 끌고 다니며 백성에게 보이던 일

 순수(順守) : 도리를 따라 지킴

 순수(順受) : 순순히 받음

 순수(順修) : 미혹을 버리고 진리에 따라 수행하는 일

 순수(順數) : 차례로 셈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147) 순수 2


2001년 봄부터 2002년 겨울까지 읽은 책들을 망라했을 뿐만 아니라, 순수 서평만으로 590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책을 엮어냈다는 사실이 무척 대견스러웠다

(김기태) 《기획회의》(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183호 87쪽


 순수 서평만으로

→ 오직 책 이야기만으로

→ 오로지 책 이야기만으로

→ 책 소개글 한 가지만으로

→ 다른 글은 없이 책 이야기만으로

→ 다만 책 소개글만으로

  …



  “책을 이야기하는 글 하나로 590쪽짜리 두툼한 책을 엮어냈다”고 합니다. “책 이야기 한 가지로 59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을 엮어냈다”고 합니다. “책을 말하는 글만 모아서 590쪽이 넘는 큰 책을 엮어냈다”고 합니다. 대단하다면 대단하고 대견하다면 대견합니다.


  다른 글은 안 쓰고 책을 이야기하는 글만 썼다고 합니다. ‘오직’ 책 이야기만 썼다고 합니다. ‘오로지’ 한 가지 이야기만을 썼다고, ‘그저’ 한 가지 이야기만을 들려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한자말 ‘순수’를 쓰면 글쓴이 마음을 한결 잘 나타낼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자말 ‘순수’를 쓰기에 맑은 말이 사그라듭니다. 맑은 넋이 되어 맑은 말을 사랑한다면, 언제나 맑은 삶을 누리면서 맑은 이야기를 두루 펼칠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4339.9.10.해/4341.8.26.불/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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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봄부터 2002년 겨울까지 읽은 책들을 두루 모았을 뿐만 아니라, 오직 책 이야기만으로 590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을 엮어냈기에 무척 대견스러웠다


‘망라(網羅)했을’은 ‘두루 모았을’로 다듬고, ‘방대(尨大)한’은 ‘어마어마한’으로 다듬으며, “590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量)의 책”은 “590쪽에 이르는 큰 책”이나 “590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으로 다듬어 줍니다. “엮어냈다는 사실(事實)이”는 “엮어냈다는 대목이”나 “엮어냈기에”로 손질합니다. ‘서평(書評)’은 ‘책 이야기’나 ‘책 소개글’로 고쳐 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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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한 통



  읍내에 갈 일이 없다가, 자동차를 얻어타고 읍내에 간다. 집으로 돌아올 적에도 자동차를 얻어탄다. 오가는 길에 자동차를 얻어타다니 참 고맙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읍내 가게에 들러 수박을 한 통 산다. 읍내까지 자전거로 다녀오지 못하기도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수박을 장만해서 들고 들어오기도 힘들어, 올여름에는 집에서 수박을 먹은 일이 아주 드물다. 고흥집에 나들이를 오신 손님이 들고 오셨을 때에만 아이들이 수박맛을 볼 수 있었다.


  졸린 아이들이 졸음을 꾹 참고 수박노래를 부른다. 나는 아이들이 수박을 먹고 잠들기를 바라지 않는다. 물이 가득한 열매를 먹으면 밤에 자다가 자꾸 쉬가 마려울 테니까. 곁님이 수박을 썰어 아이들한테 준다. 아이들이 달게 잘 먹는다. 그러다 아이들은 수박을 다 못 먹고 남긴다. 우리 아이들은 ‘수박을 남길 아이’가 아닌데, 참말 배가 부르고 졸리면서 힘드니, 더 못 먹는다.


  아이들을 재운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이들이 그토록 수박노래를 불렀는데, 오늘 밤은 잘 자고 나서 이튿날 주려 하기보다는, 저녁이라도 한두 조각씩 썰어서 준 뒤, 이튿날 더 먹자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저녁에 이렇게 못 했다. 못 하고 나서 깨닫는다.


  내가 어릴 적에는 어떠했을까.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떠했을까. 나도 어릴 적에 수박노래를 신나게 불렀을 텐데, 어머니는 이녁 아이한테 어떻게 하셨을까. 잘 모르겠으나, 어머니는 한숨을 폭 쉬다가 수박을 주셨지 싶다. 그러니까 그렇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어버이라면, 아이가 밤에 오줌이 마렵다 하면 벌떡 일어나서 쉬를 누이면 되고, 아이가 이불에 쉬를 누면 이불을 빨면 된다. 오늘 저녁 일을 다시금 깊이 돌아본다. 4347.8.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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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개비잎 맛있어



  달개비잎을 먹는다. 달개비잎을 먹을까 말까 하고 여러 해 망설이면서 안 먹었다. 풀물을 짤 적에만 달개잎을 훑어서 짰다. 이러다가 올해에 《야생초 편지》라는 책을 읽다가 황대권 님이 옥살이를 하는 동안 달개비잎을 맛나게 먹었다는 이야기를 읽고는, ‘어, 그렇구나.’ 하고 느꼈다. 나도 마당에서 달개비잎을 뜯어 본다. 입에 넣기 앞서 손가락으로 살살 어루만진다. 무척 매끄러우면서 보드랍다고 느낀다. 입에 넣어 살살 씹는다. 좋아, 괜찮구나.


  나는 황대권 님이 쓴 글을 읽으며 달개비잎을 맛나게 먹자고 생각하는데, 누군가는 내가 쓴 글을 읽으며 달개비잎을 즐겁게 먹자고 생각할는지 모르리라.


  달개비잎을 신나게 뜯는다. 헹군 뒤 접시에 담는다. 밥상에 올려 함께 먹는다. 앞으로 우리는 즐겁게 달개비잔치를 누리자. 4347.8.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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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공놀이 1 - 공은 걸상이 되어



  밥을 먹던 산들보라가 말랑공을 가져온다. 그러더니 엉덩이를 대고는 폴싹 앉는다. 산들보라는 처음부터 말랑공에 앉지 않았다. 어느 날 누나가 말랑공에 앉아서 노는 모습을 보고는 따라했는데, 오랫동안 산들보라는 혼자서 못 앉더니 이날은 퍽 예쁘게 잘 앉는다. 멋지네. 말랑공은 놀잇감이 되기도 하면서 걸상이 되기도 하는구나. 4347.8.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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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370) 체념


내가 체념을 하면 아무도 소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시다 도시미찌/홍순명 옮김-잘 먹겠습니다》(그물코,2007) 9쪽


 내가 체념을 하면

→ 내가 마음을 놓으면

→ 내가 두 손을 들면

→ 내가 힘이 빠지면

→ 내가 풀이 죽으면

 …



  보기글에서는 “내가 희망을 버리면 아무도 소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쯤으로 고쳐써도 어울립니다. 희망을 버리는 일이란 “손을 놓는” 일, 또는 “마음을 놓는” 일이에요. 어떤 일을 하다가 ‘그만두는’ 일이며, “두 손을 드는” 일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힘이 빠지”거나 “풀이 죽”겠지요.


 쌓인 생각 . 맺힌 생각 . 응어리진 생각

 滯念


  한국말사전에는 세 가지 ‘체념’이 나옵니다. 이 가운데 첫째 ‘滯念’은 얼마나 쓰이는 낱말일까요. 아니, 쓰이기나 할 만한 낱말일는지 궁금합니다.


 깊이 생각함

 體念


  한자로 ‘體念’을 밝혀서 적는다 한들 어느 누가 “깊이 생각함”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가만히 보면, ‘體念’이나 ‘滯念’뿐 아니라 ‘諦念’조차도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諦念’이라고 적어 놓는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놓는다”나 “희망을 버린다”는 뜻을 알아듣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4340.12.2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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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 손을 들면 아무도 꿈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소원(所願)’은 ‘꿈’으로 손보고, “없다는 것을”은 “없음을”로 손보며, “알게 되었습니다”는 “알았습니다”로 손볼 수 있습니다.



 체념(滯念) : 풀지 못하고 오랫동안 쌓인 생각

 체념(諦念)

  (1)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함

   - 체념 상태 / 체념에 빠지다 / 하나 둘씩 체념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2) 도리를 깨닫는 마음

 체념(體念) : 깊이 생각함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151) 신기


말 잘 듣는 호박도 신기하고, 호박을 열리게 한 할머니도 참말로 신기해요

《이영득-할머니 집에서》(보림,2006) 42쪽


 말 잘 듣는 호박도 신기하고

→ 말 잘 듣는 호박도 놀랍고

→ 말 잘 듣는 호박도 재미나고

 …



  새롭고 기이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新奇’와 신비롭고 기이하다는 ‘神奇’는 어떻게 다를까 생각해 봅니다. 한국말사전 낱말뜻을 살피면 다른 줄 알겠지만, 두 낱말을 다른 자리에 알맞게 쓰는 분은 얼마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그냥 ‘신기’라고 쓸 뿐이지 ‘新奇’와 ‘神奇’를 가려내어 쓰지는 못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의 연주는 신기에 가까울 정도이다

→ 그이 연주는 하늘이 내려준 듯하다

→ 그 사람이 들려주는 노래는 매우 뛰어나다

 …

 

  다른 한자말 ‘신기’도 생각해 봅니다. “몸의 기력”이나 “남자 정력”이나 “임금 자리” 나 “새벽에 일찍 일어남” 같은 ‘신기’는 누가 언제 어느 자리에서 쓸까요. 다른 수많은 ‘신기’는 또 얼마나 쓸모가 있습니까. 정작 쓸 만한 낱말은 싣지 않으면서, 한자 한두 마디로 장난을 치는 낱말만 잔뜩 싣는 우리네 한국말사전은 아닌가요.


 아이는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 아이는 눈에 비치는 모두가 새로웠다

→ 아이는 눈에 비치는 모두가 놀라웠다

 그 마술은 아무리 보아도 신기하다

→ 그 마술은 아무리 보아도 놀랍다

→ 그 마술은 아무리 보아도 알 수 없다

→ 그 마술은 아무리 보아도 대단하다

 …


  말은 삶을 담고, 삶은 말에 담깁니다. 오늘날 우리 삶이 어떠하기에 온갖 ‘신기’가 한국말사전에 실릴까요. 오늘날 우리들이 쓰는 ‘신기’라는 말은 우리 삶에 어떻게 스며들거나 파고들까요. 우리들은 날마다 쓰는 말과 글을 얼마나 깊이 헤아리거나 살피는지요. 4339.9.27.물/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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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 듣는 호박도 놀랍고, 호박을 열리게 한 할머니도 참말로 놀라워요


‘정말(正-)로’가 아닌 ‘참말로’를 써 주니 반갑습니다.



 신기(身氣) : 몸의 기력

   - 신기가 좋다

 신기(神技) : 매우 뛰어난 기술이나 재주

   - 신기를 다하다 / 그의 연주는 신기에 가까울 정도이다

 신기(神奇) : 신비롭고 기이하다

   - 신기한 일 / 그 마술은 아무리 보아도 신기하다

 신기(神祇) = 천신지기

 신기(神氣)

  (1)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운기(雲氣)

  (2) 만물을 만들어 내는 원기(元氣)

  (3) 정신과 기운을 아울러 이르는 말

   - 신기가 풀리다

 신기(神旗) : 무녀가 기도를 하기 위한 단(壇)을 설치할 때 쓰는 기

 신기(神器)

  (1) 신령에게 제사 지낼 때 쓰는 그릇. 또는 신령스러운 도구

  (2) 임금의 자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신기를 노리다

 신기(神機) : 신묘한 계기(契機)나 기략(機略)

 신기(神騎) = 신기군

 신기(訊期)

  (1) 월경을 하는 주기

  (2) 월경을 하는 기간

 신기(晨起) : 새벽에 일찍 일어남

 신기(腎氣)

  (1) 성교할 때의 남자의 정력

  (2) 사람의 활동하는 근원

 신기(愼機) : 기회를 소중히 여김

 신기(新奇) : 새롭고 기이하다

   - 아이는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60) 제거 


“자, 마무리할까. 이라부는 적당한 길이로 썰고, 내장과 뼈를 제거하고, 이걸 다시 푹 삶으면.”

《우에야마 토치/설은미 옮김-아빠는 요리사 (111)》(학산문화사,2011) 16∼17쪽


 내장과 뼈를 제거하고

→ 내장과 뼈를 바르고

→ 내장과 뼈를 빼내고

 …



  고기를 잡을 적에는 내장이나 뼈를 ‘바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일본사람은 이를 한자를 빌어 ‘除去’로 적을는지 모르지요. 보기글처럼 한자말을 자꾸 빌어서 나타내려 하면, 먼먼 옛날부터 한겨레가 수수하면서 쉽고 알맞게 쓰던 말이 차츰 잊히거나 사라집니다.


 불순물 제거

→ 찌꺼기 없애기

→ 찌꺼기 털기

→ 찌꺼기 빼기

 장애물이 제거되다

→ 걸림돌이 없어지다

→ 걸림돌을 치우다

 썩어 얼크러진 풀뿌리도 많이 제거되고

→ 썩어 얼크러진 풀뿌리도 많이 뽑고

→ 썩어 얼크러진 풀뿌리도 많이 떼내고

 냄새를 제거하는 방향제

→ 냄새를 빼는 방향제

→ 냄새를 없애는 방향제

 장기수를 제거하려는 그의 발상은

→ 장기수를 없애려는 그이 생각은

→ 장기수를 죽이려는 그이 생각은


  한국말사전을 살펴보니 중국 역사에서 쓰던 ‘制擧’와 한국 역사에서 쓰던 ‘提擧’라는 한자말이 나옵니다. 아마 예전에는 이런 한자말을 썼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런 한자말을 쓸 일이 없으며, 한국말사전에는 이런 낱말을 담을 까닭이 없습니다. ‘皇居’를 뜻한다는 ‘帝居’는 황제가 사는 곳을 가리킨다고 하는군요. 이런 낱말을 따로 한자로 지어서 써야 할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이런 낱말을 구태여 짓기보다는 “황제네 집”이라고만 쓰면 넉넉하리라 생각합니다. 4347.8.14.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자, 마무리할까. 이라부는 알맞은 길이로 썰고, 내장과 뼈를 바르고, 이런 다음 푹 삶으면.”


“적당(適當)한 길이로 썰고”는 “알맞은 길이로 썰고”나 “알맞게 썰고”나 “먹기 좋게 썰고”나 “먹기 좋을 만큼 썰고”로 다듬고, “이걸 다시 푹 삶으면”은 “이런 다음 푹 삶으면”이나 “이러고 나서 다시 푹 삶으면”으로 다듬어 줍니다.



 제거(制擧) : [역사] 중국 당나라 때에, 황제의 명에 따라 관리를 등용하던 제도

 제거(帝居)

  (1) = 황거(皇居)

  (2) 상제(上帝)가 거처하는 곳

 제거(除去) : 없애 버림

   - 불순물 제거 / 장애물이 제거되다 / 썩어 얼크러진 풀뿌리도 많이 제거되고

     냄새를 제거하는 방향제 / 장기수를 제거하려는 그의 발상은

 제거(提擧) : [역사] 고려 시대에, 보문각·국자감·연경궁 제거사에 둔 벼슬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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