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진이다 - 김홍희의 사진 노트
김홍희 글.사진 / 다빈치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별을 둘이나 셋쯤 줄 수도 있으나, 김홍희 님이 당신 사진길과 사진삶을 좀더 고개숙이며 가다듬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별은 딱 하나만 달아 놓는다. 스스로를 옳게 들여다보아야 사진이든 만화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아름답게 펼친다.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하면, 사진은 사랑이다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26] 김홍희, 《나는 사진이다》


- 책이름 : 나는 사진이다
- 글·사진 : 김홍희
- 펴낸곳 : 다빈치 (2005.1.20.)
- 책값 : 15000원



 (1) ‘만듦사진’은 사진이 아니다


 책방에 들러 사진책이나 그림책을 둘러보면, 으레 나라밖 사진책이나 그림책을 손에 쥡니다. 다 둘러보고 값을 치러 장만하고 싶은 책을 추릴 때, 노상 나라밖 사진책이나 그림책을 잔뜩 쌓아 놓고 있습니다. 나라밖 책을 살피고 장만할 때에는, 사진책으로서 얼마나 아름답고 그림책으로서 얼마나 고운가를 헤아립니다.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나라밖 사진책은 장만하지 않습니다. 썩 곱지 않은 나라밖 그림책은 사들이지 않습니다.

 나라안 사진책이나 그림책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습니다. 눈길부터 잘 안 갑니다. 두 눈을 사로잡거나 내 가슴을 울렁이도록 이끄는 나라안 사진책이나 그림책이 퍽 드뭅니다.

 나라안 글책을 살필 때에는 속이 답답합니다. 틀림없이 한국사람이 한국 이웃한테 읽히려고 한국글로 써서 한글로 적힌 한국 글책이지만, 이 글책을 놓고 참말 한국 글책이라 해야 할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낱말이고 말투이고 우리 낱말이거나 우리 말투인 책이 아주 드뭅니다. 띄어쓰기하고 맞춤법을 제대로 맞추었는가는 일찌감치 접어둡니다. 바른 말 고운 말이라는 테두리로 살펴볼 수조차 없습니다. 흔한 말로 ‘알아들을 수는 있는 글(의사소통은 되는 글)’이지만, 한국사람이 한국사람다이 한국넋으로 한국글로 풀어내 보이는 문학이라고는 느끼기 어려운 책이 넘칩니다.

 오늘 이 나라 학교에서는 우리 말글을 옳고 바르며 알맞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늘 이 나라 학생은 우리 말글을 옳고 바르며 알맞게 배우고자 마음먹지 않습니다. 제도권 학교는 입시만을 바라보고, 제도권 교사는 입시만을 집어넣습니다. 제도권 학생은 입시만을 생각합니다. 교과서만 탓할 수 없고, 제도권만 탓할 수 없으며, 월급쟁이 쇠밥그릇 교사만 나무랄 수 없을 뿐더러, 제도권 울타리에서 허덕이는 학생을 꾸짖을 수 없습니다. 참말 아무도 탓할 수 없고, 누구도 꾸짖을 수 없는 한국 삶터입니다.

 창작책이 아닌 번역책을 본다고 해서 썩 나을 구석이 없습니다. 그나마 번역하는 사람은 창작하는 사람처럼 ‘시적 허용’이라는 터무니없는 말재주를 덜 피웁니다. 우리 나라 책마을에서는 번역쟁이가 우리 말로 옮긴 글을 출판사 편집 일꾼이 거듭거듭 손질하고 매만집니다.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글을 고르고 짜맞춥니다. 더구나, 어린이책 번역은 훨씬 엉터리입니다. 번역쟁이로 이름이 높든 낮든, 어린이문학은 어른문학하고 견주어 급수가 낮다고 여겨 버릇하거든요. 어린이문학을 하찮게 여기면서 어린이문학 번역을 참으로 하찮게 해치우고 맙니다. 어린이 눈높이라든지 어린이 삶이라든지 어린이 넋을 제대로 어루만지는 어린이문학 번역이란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만큼 드뭅니다.

 나라안 글책과 그림책과 사진책을 들여다볼 때마다 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노벨상을 바랄 까닭은 없고, 구태여 한국문학 가운데 세계명작이 나와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우리 문학과 문화와 예술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주기 앞서 우리 어른들이 신나게 즐기고 기쁘게 어깨동무할 문학과 문화와 예술이란 어떻게 일구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왜 우리는 우리 문학과 문화와 예술을 사랑스러우며 따스하게 일구지 못하는가요. 어이하여 우리는 우리 문학과 문화와 예술을 믿음직하며 넉넉하게 돌보지 않는가요.

 ‘판타지’는 문학을 이루는 수많은 갈래 가운데 아주 작은 한 가지입니다. ‘판타지 = 문학’일 수 없습니다. 판타지여야 잘 빚은 문학이 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그림이어야 새로운 예술이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없던 남다른 모습을 만들어 내어 사진이라는 틀로 담아야 문화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또렷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조각은 그림이 아닙니다. 조각은 조각입니다. 판화는 그림이 아닙니다. 판화는 판화입니다. 건축은 그림이 아닙니다. 건축은 건축입니다. 그림과 조각과 판화와 건축은 한자말로 하자면 ‘미술’이라는 테두리로 함께 묶을 수 있을 뿐입니다.

 ‘만듦사진’은 사진이 아닙니다. ‘만듦사진’은 다른 낱말을 새롭게 지어서 다른 문화매체이거나 예술매체임을 당차게 외쳐야 합니다. 사진이 아닌 만듦사진을 섣불러 얼토당토않게 내세우면서 ‘만듦사진 또한 사진이다’ 하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어쩌면 ‘만듦사진’은 ‘미술’이라는 테두리에 넣어야 알맞을 수 있습니다. 사진기라는 장비를 썼든 사진매체를 빌었든, 나타내고자 하는 뜻과 길이 사진이 아닌데 함부로 ‘만듦사진도 사진이다’ 하고 말해서는 올바르지 않아요. 똑같이 붓이나 연필을 써서 종이에 그린다고 해서 모두 그림이 되지 않습니다. 건축설계를 놓고 ‘그림’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그림을 닮’거나 ‘그림보다 더 그림다운’ 건축설계가 태어날 수 있습니다만, 이 모두는 건축이지 그림이 아닙니다. ‘만듦사진’ 가운데에는 ‘사진을 닮’거나 ‘사진보다 더 사진다운’ 만듦사진이 태어날 수 있을 텐데, 이 모두는 새 이름을 붙일 만듦사진이지 사진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만듦사진을 깎아내리려고 만듦사진은 사진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만듦사진은 새로운 문화예술 갈래인데 억지로 사진이라는 갈래에 쑤셔넣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새로운 문화예술 갈래이면 새로운 이름을 붙이며 새롭게 문화예술을 즐겨야 할 노릇입니다. 괜스레 ‘사진’ 갈래에 짜맞추려 하면서 사진밭을 헝클어뜨리거나 쑤석거려서는 안 됩니다. 괜한 쑤석거림질이란 만듦사진을 하는 분들 스스로 당신 문화예술밭을 제대로 갈고닦지 못하는 뻘 짓이 되고야 맙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들 또한 사진 아닌 만듦사진에 ‘사진 아닌 매체인데 사진으로 잘못 알고 다가서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그림을 즐길 수 있듯, 사진을 좋아하면서 ‘만듦사진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판화를 하며 조각을 하는 가운데 건축을 한다고 해서 손가락질할 사람은 없습니다. 사진을 찍고 만듦사진을 한다고 해서 나무랄 사람이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길을 똑똑히 깨달으며 올바로 걸어가야 할 뿐입니다. 벼를 심어야 논농사이지 보리를 심는다고 논농사가 되지 않아요. 보리는 밭농사입니다. 벼일 때에 논농사입니다. 감자와 고구마 또한 논농사가 아닌 밭농사입니다. 수수이든 밀이든 옥수수이든 밭농사입니다. ‘수수밭’과 ‘밀밭’과 ‘옥수수밭’이라 말하지, ‘수수논’이나 ‘밀논’이나 ‘옥수수논’이라 말하지 않아요. 오로지 ‘벼논’이라 말합니다. 사진과 만듦사진이란 벼논과 보리밭 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곡식을 짓는 농사이지만 갈래가 다릅니다. 사진과 만듦사진 모두 사진기나 필름이나 인화지를 써서 펼치는 문화요 예술이라 하지만, 서로 갈래가 다릅니다. 아주 다른 갈래인 두 문화예술을 엉뚱하게 한동아리로 뭉뚱그리며 다루어서는 갈팡질팡 헤매기만 하지, 아름다우며 훌륭하고 좋은 길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2) 김홍희 님은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는 김홍희 님은 《나는 사진이다》라는 이름을 내걸고 사진책을 하나 내놓았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당차고 다부진 이름인 《나는 사진이다》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당찬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대목이 다부진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나는 사진이다》 하고 외친다고 해서 김홍희 님이 사진이 될 수 없습니다. 김홍희 님은 사진이 아니라 김홍희입니다.


.. 그럼 자신의 생각과 주장은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첫째, 우선은 셔터를 눌러야 한다. 생각하고 셔터를 누르기보다 셔터를 누르고 나서 생각하는 것이 좋다. 나는 이것을 ‘손가락으로 생각하기’라고 부른다. 그게 익숙해지면 사물을 대하는 순간 핵심을 꿰뚫어보는 직관이 생기고, 자연스레 셔터를 누른 것이 ‘물건’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셔터는 누르지 않고 생각만 한다고 사진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  (35쪽)


 김홍희 님은 《나는 사진이다》에서 “언제까지고 남의 사진론으로 자신의 사진을 찍을 수는 없다. 남의 이론을 업고 사진을 찍는 것을 아류라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작가들이 남의 사진론을 업고 자신을 반증하려 한다(32쪽).”고 밝힙니다. 그러면서 김홍희 님은 당신 ‘김홍희 사진론’을 사람들한테 집어넣으려 합니다. 왜 ‘생각하기 앞서 사진기 단추를 누르라’고 말하지요? 이런 사진찍기란 ‘한낱 김홍희 당신이 즐기는 사진찍기’가 아닐는지요.

 사진은 찍고픈 사람 마음대로 찍어야 합니다. 생각을 하고 난 다음 찍어도 좋고, 생각을 하며 찍어도 좋으며, 생각하는 가운데 찍어도 좋습니다. 생각이 아직 없이 찍은 다음 생각해도 좋고, 생각을 안 한 채 찍고 나서도 생각이 아예 없어도 좋습니다. 어느 쪽이 가장 나은 사진길이라 말할 수 없고 따질 수 없으며 못박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김홍희 님은 어느 한 가지만을 제대로 된 사진찍기인 양 못박으면서 그 길로만 가라고 외칩니다. 바로 ‘김홍희 사진론’을 만들면서.

 곰곰이 따지고 살핀다면, 김홍희 님은 스스로 억지를 부리며 사진론을 펼칩니다만, 김홍희 님 사진론은 밑바탕부터 잘못되었습니다. 생각이 서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사진기를 ‘처음 장만해서 가지고 있을’ 수조차 없습니다. 마음이 안 되었는데, 생각이 아예 없는데, 사진기부터 장만해서야 사진을 찍을 수 있나요. 김홍희 님 스스로 ‘장비병에 걸려 FM2라는 사진기를 창피하게 여겼다’고 말하는데, 장비병에 걸린 김홍희 님은 제아무리 사진기 단추를 바지런히 눌렀어도 사진을 한 장도 못 찍은 셈입니다. 그저 단추만 눌렀을 뿐이에요. 김홍희 님이 사귄 유대인 여자친구가 김홍희 님이 얼마나 엉터리 짓을 하고 있는가를 아주 넌지시 일깨워 주고서야 김홍희 님은 비로소 ‘사진찍기 길 가운데 가장 작은 한 가지’에 눈을 뜹니다.

 그래, 이 책 《나는 사진이다》는 아직 사진을 모를 뿐더러, 사진을 알아 간다기보다 사진을 알아 가지 않으며, 둘레에서 몇 가지 고맙게 일깨워 준 가르침에 힘입어 사진찍기로 돈벌이를 하고 있는 김홍희 님이 ‘2005년 어느 날 테두리에서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진 이야기’를 쏟아부은 책입니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이 책 《나는 사진이다》는 말이 될 수 없습니다. 김홍희 님은 “나는 김홍희다”라는 이름쯤 붙일 수 있을 터이나, 김홍희 님이 섣부르게 “나는 사진이다” 하고 당돌히 말해서는 안 돼요. 김홍희 님은 사진을 모를 뿐더러 사진을 배울 마음이 없잖아요.


.. 얼마 전에 아주 잘 나가는 프로 사진가 모씨가 TV 방송에 나온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기자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렇게 잘 나가시는데, 혹시 하고 싶은 사진 없으세요?” 기자의 질문에 그가 대답했다. “언젠가는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습니다.” 나는 그때 내심 코웃음을 쳤다. ‘당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다큐멘터리는 안 돼. 잘 나가는 연예인들의 젖가슴이나 찍으며 희희낙락 하루하루 밥벌이에 연연하는 그 배짱으로, 삶의 진실을 캐기 위해 배를 곯며 카메라 한 대로 지구촌을 돌아다닐 수 있겠어?’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은 행동하는 철학이다. 철학하는 행동이고, 이미 독자나 관객의 입맛을 의식한 사진 작업을 오랫동안 해 오고 거기에 젖은 사람은 자신의 굴레를 벗어나 진정한 삶의 질문을 던지는 게 쉽지 않다 ..  (14∼15쪽)


 예부터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 했고, 익지 않은 벼는 뻣뻣하게 서 있다가 쭉정이가 됩니다. 김홍희 님은 쭉정이 아닌 익은 벼가 되어야 할 분입니다. 섣불리 괜스러운 주의와 주장을 책 하나에 빼곡하게 실으려고 채근대지 말아야 합니다. 즐거이 살아가는 마음으로 당신 하루하루를 일구는 가운데 사진기를 쥐어들어야 비로서 즐겁게 사진을 맞아들입니다. 즐겁지 않은 삶이면서 사진기만 쥔다고 갑자기 즐거워지겠습니까. 삶은 하나도 즐겁지 않은데, 사진기만 쥐면 난데없이 즐거움투성이가 될 수 있는가요.

 김홍희 님은 연예인 젖가슴 사진을 찍는 이들을 나무라지만, 눈빛 파란 스님 까까머리 사진을 찍는 일하고 연예인 젖가슴 사진을 찍는 일하고 다르지 않습니다. 연예인 젖가슴을 찍는다 하여도 ‘훌륭한 넋으로 훌륭히 찍으’면 아름답습니다. 눈빛 파란 스님 까까머리 사진을 찍으면서 ‘다른 갈래 다른 사진 찍는 이를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린다’면 김홍희 님으로서 눈빛 파란 스님 까까머리 사진을 찍으며 무엇을 얻거나 배운 셈인지요.


.. 옥상마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너절하고 삶에 지친 오래 전 우리의 삶을 상상했었다. 그러나 실제 옥상마을을 방문하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시장 옥상에 지어진 집들이 얼마나 깨끗하고 단정한지. 좁은 골목길이지만 담배꽁초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나의 너절한 상상을 단번에 깬 것이다. 이런 경우, 사진을 찍는 나의 행위는 존재 증명도 아니고 관념 증명도 아닌 무위로 끝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  (40쪽)


 김홍희 님은 가난하게 살아 본 적이 없는 분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 아주 잘 알 수 있습니다. 김홍희 님 스스로 ‘너절하고 삶에 지친’ 동네에서 살아 본 적이 있다면 부산 옥상마을이라는 이름만 들으면서 그곳이 어떠하다고 지레 짚을 수 없습니다. 너절한 삶이란 무엇인가요? 당신이 생각한 너절한 삶이란 어떤 모습이지요? 골목동네, 그러니까 가장 가난한 사람이 모여서 게딱지 집을 이루어 지내는 곳에서 태어나 살아 본 사람은, 이 골목동네에 ‘담배꽁초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음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가난한 골목사람들은 당신 삶터에 담배꽁초를 버릴 일이 없을 뿐더러, 철없는 사람들이 버린 담배꽁초를 주워 당신 집 쓰레기통에 버려 버릇 하니까요. 골목동네에서 태어나지도 않고 살아 보지도 않으며 찾아가 보지조차 않은 이들이나 이러한 골목동네 터전을 하나도 모를 뿐입니다. 골목동네에 담배꽁초나 빈 병을 버리는 사람은 골목사람이 아닙니다. 골목동네를 스쳐 지나가는 건달이나 아파트내기입니다.

 사진이란 ‘편견을 품은’ 사람이 찍을 수 없는 예술입니다. 편견을 품은 사람은 오직 편견 담긴 사진만 쏟아냅니다. 편견을 품은 사람은 오로지 편견 깃든 글만 써 냅니다. 편견을 품은 사람이기에 그예 편견 가득한 그림만 그려댑니다.


.. 아, 생각난 김에 한 마디만 더 하자. “프로는 사진을 자랑하고, 아마추어는 카메라를 자랑한다.”는 말이 있다. 당신은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는 지금 당신의 수중에 있는 카메라다. 당신과 함께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며 거침없이 일을 해 주고 즐거움을 주는 카메라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라는 것을 지금 이 순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만 ‘사진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 ..  (83쪽)


 비아냥거리려고 이런 말씀을 올리지 않습니다. 슬프고 갑갑해서 이런 말씀을 올립니다. 제발, 김홍희 님부터 ‘사진에 마음을 쏟아’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바보 멍청이가 ‘프로는 사진을 자랑하고, 아마추어는 카메라를 자랑한다’ 따위 흰소리를 주워섬기는지 궁금합니다. 프로이든 아마추어이든 사진이나 카메라를 자랑할 때에 이이는 쓸개빠진 떨거지이지, 사진쟁이가 아닙니다. 프로 사진쟁이라면 당신 사진을 자랑할 까닭이 없고, 아마추어 사진쟁이라면 기계를 자랑할 턱이 없습니다. 프로 사진쟁이라면 당신이 사진을 찍으며 흘리는 땀방울을 기쁘게 즐깁니다. 아마추어 사진쟁이라면 당신이 사진으로 담는 사람과 어우러지는 삶을 반갑게 즐깁니다. 미쳤습니까. 프로 사진쟁이가 사진을 자랑하게. 돌았습니까. 아마추어 사진쟁이가 기계를 자랑하게.


.. 처음 사진 공부를 하러 온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주문한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아무거나 우선 찍어 오십시오.” 그러면 학생들은 대개 당황한다. 아마 정해진 숙제를 하는 데만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  (98쪽)


 뭘 찍어야 좋을지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한테 아무것이나 찍으라 한다고 아무것이나 찍지 못합니다. 뭘 찍어야 좋을지를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진을 찍고픈 사람 가장 가까운 곳에 아주 흔하게 보이는 무언가(사람이든 건물이든 자연이든 짐승이든)를 눈여겨보며 차근차근 찍으라고 이끌어야 합니다. 세 살박이 어린이한테 “네 마음대로 놀아 봐.” 해서야 되겠습니까. 일곱 살박이 어린이한테 돈 만 원 쥐어 주고 “네 마음대로 아무 데나 가서 알아서 밥 사 먹어.” 해서야 되겠습니까.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아무것이나 막 하라고 하면 ‘사진을 가르치는’ 일이 아닙니다. 김홍희 님 스스로 김홍희 님한테 사진을 배우겠다고 하는 사람 삶을 들여다보고 이야기 나누며 어깨동무해야 합니다. 당신 스스로 제자한테 다가서며 말을 건네고 손을 내밀며 사진밭에 신나게 뛰어들어 즐기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당신이 할 몫을 당신 스스로 안 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제자 앞에서 낄낄대’는 매무새는 아닐까 걱정스럽습니다.


.. 이런 준비가 없다면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없다. 좋은 사진에는 일반인들이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치밀한 구성이 있다. 그저 지나가는 아름다운 몸놀림에 눈을 빼앗겨 셔터를 누른 사진과 축제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셔터를 누른 사진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 노출을 잘 맞춘다거나 수동으로 노출을 맞추어 사진 찍는 것을 자랑으로 늘어놓는 아마와 프로를 보면 나는 속으로 웃는다. 그 시간에 책이나 한 줄 더 읽고 다른 선수들의 사진이나 한 장 더 감상하는 것이 자신의 사진을 위해 훨씬 나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믿어라 ..  (103, 166∼169쪽)


 우리는 사진을 찍을 때에 꼭 한 가지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입니다. 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 한 가지만 ‘미리 갖출(준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미리 갖춘 내 마음이라 할지라도 정작 사진기를 어깨에 걸치고 살아가노라면 언제나 조금씩 달라집니다. 늘 같은 내 마음은 아니에요. 골목에 피어난 꽃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고, 짓궂게 빵빵거리는 자동차 때문에 마음이 들쑤석거리며, 좋은 벗님한테서 오랜만에 전화가 걸려 와 한참 기쁜 얘기를 주고받으며 마음이 들뜹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을 어느 자리에 놓느냐에 따라 우리 사진을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도록 이끌어 냅니다. 내 마음을 사랑으로 채우고 있다면, 내가 미놀타 엑스300을 쓰든 니콘 에프3을 쓰든 사랑을 담은 사진을 얻습니다. 내 마음을 미움으로 채우고 있다면, 캐논에프1을 쓰든 핫셀블라드를 쓰든 내 사진에는 미움이 기어듭니다.

 사진기 초점이나 빛(조리개)이나 셔터빠르기를 그때그때 맞추며 사진을 찍는 사람은 이런저런 초점·빛·빠르기를 바꾸는 데에 1초가 걸리지 않습니다. 0.1초조차 안 걸리곤 합니다. 사진기를 손에 들고 사진기를 쳐다보지 않는 가운데 아주 부드러이 손가락 두엇 날렵하게 움직이며 다 맞추어 놓습니다. 사진기가 눈에 닿을 무렵 아주 스스럼없이 찰칵 하고 한 장을 찍습니다. 자동노출과 자동초점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수동노출과 수동초점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보다 더 잽싸거나 매끄럽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 더 잘 나오는 사진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어느 쪽이 ‘좋은 사진’이라거나 ‘나쁜 사진’이라 말해서도 안 돼요. 우리는 우리 사랑을 사진에 싣고자 할 뿐, 사진찍기 솜씨자랑을 하는 바보나 얼간이는 아니잖아요.


.. 사진의 진정한 목표는 생명의 공생에 있다. 생명의 공생은 공생 대 생며의 교감이다. 거기에 감동이 있는 것이다. 남을 감동시키기 위해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을 알게 됐다면, 우리가 느낀 감동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거짓 위에 서 있는 진실의 허상일 뿐이다. 그 사진을 보고 감동한 우리가 패악을 함께 저지른 것이다 ..  (261쪽)


 내 마음을 먼저 사랑으로 가득 채우며 글을 쓰는 한국 글쟁이가 하나둘 새로 태어나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부터 기쁘게 사랑으로 빛내면서 그림을 그리는 한국 그림쟁이가 둘씩 셋씩 새로 우뚝 서면 반갑겠습니다. 내 마음바탕에 사랑이 언제나 감돌도록 하루하루 삶을 알뜰히 일구는 사진쟁이 네 사람 다섯 사람 우리 누리 곳곳에서 조용히 땀흘리면 고맙겠습니다. 김홍희 님, 부산이라는 터전은 아주 넓습니다. 이 넓은 부산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면 아무쪼록 부산땅 모든 골목길을 철 따라 백 번씩은 누벼 보고 나서 힘차게 말하시기를 빕니다. 아무쪼록, 김홍희 님 사진에 참다우며 착하고 고운 사랑이 깃들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4343.9.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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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유령, 친구가 괴롭혀!
나카야 미와 지음, 김난주 옮김 / 웅진주니어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좋은 그림책 하나 알아보며 즐기려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 나카야 미와, 《깡통유령, 친구가 괴롭혀!》



 사람들은 스스로 안다고 생각합니다만, 사람들은 참 잘 모르기 일쑤입니다. 무언가를 지식으로 알아야 무언가를 들여다보거나 깨달을 수 있지 않습니다. 언제인가 유홍준 님이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고 어떤 이는 말을 뒤집어 “보는 만큼 안다”고 했는데, 아는 만큼 볼 수 없을 뿐더러 보는 만큼 알 수조차 없습니다. 우리는 사는 만큼 보며, 보는 만큼 살아갑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어떻게 꾸리고 있느냐에 따라 내 이웃을 알아보는 눈썰미가 달라집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느냐에 따라 내 동무하고 어깨동무하는 세기가 바뀝니다.

 참다이 살아가지 않는 내 하루라면, 나로서는 참과 거짓을 가리지 못합니다. 착하게 살아가지 않는 내 나날이라면, 나로서는 착하거나 나쁜 짓을 가누지 못합니다. 곱게 살아가지 않는 내 날들이라면, 나로서는 곱거나 궂은 매무새를 가다듬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해맑으며 싱그럽게 뛰어놀며 자라는 까닭이란 다른 데에 있지 않습니다. 아직 어른들이 입시지옥에 붙잡아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괜히 입시지옥에 붙들고 싶지 않은 어른이, 어른 스스로 조금이라도 아름다이 살아가고자 용을 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어른들이 돈에 팔려 아이하고 따순 사랑을 나누는 일을 저버린다면, 아이는 어느새 해맑음과 싱그러움을 걷어찹니다. 우리 어른들이 이름값에 목매달려 아이랑 넉넉한 믿음을 주고받는 삶을 등돌린다면, 아이는 어느 결에 기쁨과 즐거움을 담은 눈물웃음을 내팽개칩니다.

 그림책 《깡통유령, 친구가 괴롭혀!》를 읽습니다. 그림책 《깡통유령, 친구가 괴롭혀!》를 읽는 내내, 어찌하여 한국에서는 이토록 빛깔과 그림결이 고우며 어여쁜 그림책을 일구지 못하는가 싶어 슬픕니다. 그림책 《깡통유령, 친구가 괴롭혀!》를 덮고 들추다가는 또 덮고 다시 들추는 동안, 어이하여 한국땅 그림쟁이는 이와 같이 예쁜 그림을 그리지도 못하지만 예쁜 이야기를 예쁘장하게 엮는 땀방울 맛을 모르는가 싶어 쓸쓸합니다.

 참말 《깡통유령, 친구가 괴롭혀!》라는 그림책은 어여쁩니다. 더없이 곱습니다. 이야기는 살가우며 부드럽습니다. 아이와 어른 모두를 고맙게 가르치며 일깨우는 그림책이기도 한데, 그지없이 보드라이 풀어내는 줄거리로 어루만집니다.

 그림책을 또 한 번 더 들춥니다. 이 그림책 줄거리는 누구나 뻔히 알 만한 이야기로 짜여 있습니다. 이 그림책 흐름은 누구나 생각할 만하고 누구나 수다를 떨며 나누는 우리 삶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이렇게 흔하고 수수한 우리 곁 이야기를 그림책 하나로 담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이와 같이 너르며 투박한 우리 둘레 이야기를 글책이나 사진책 하나로 여미지 않습니다.

 저기, 머나먼 별나라나 달나라를 찾아가야 캐내거나 일굴 수 있는 어린이문학이나 어른문학이 아닙니다. 내 손으로 호미와 쟁기를 들고 논밭을 일구며 땀을 흘리는 삶 하나에서 얼마든지 생각힘이 자라나며 창조와 슬기가 빛나는 문학이 태어납니다.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든 사무실에서 자판을 또닥이든, 이러한 흔하며 너른 삶에서 얼마든지 예쁘고 살가운 글책·그림책·사진책 하나 영글기 마련입니다. 억지로 쥐어짜듯 그린다고 해 봤자 그림책이 되지 않습니다. 모델을 억지로 어떤어떤 모습으로 세워 놓고 사진을 찍는다고 뜻깊은 작품이 나오지 않습니다. 인도로 여행을 하고 티벳을 오르며 산티아고를 걷는다고 놀라운 글 하나 쓸 수 있지 않아요. 부엌에서 도마질을 하는 삶을 살갗 깊이 받아들이며 우리 살붙이한테 해 주는 밥차림 이야기를 그림책 하나로 담을 만합니다. 아이하고 손수 밥해 먹는 이야기라면 그림책 한두 권이 아닌 백 권 이백 권 그려도 끝이 나지 않습니다. ‘요리책’이 아닌 ‘밥하기책’으로 재미나게 웃고 떠드는 삶을 그림책으로 알뜰히 엮을 수 있어요. 아이랑 공기놀이를 하든 숨바꼭질을 하든 까꿍놀이를 하든 쌓기놀이를 하든, 이 모든 놀이마다 따로따로 그림책 하나 묶을 수 있답니다. 사진책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랑 노는 이야기를 따로따로 하나씩 묶으면 돼요. 글책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책이란 바로 우리 삶입니다. 책이란 바로 우리 스스로 들여다보는 삶입니다. 책이란 바로 우리가 우리 이웃과 오순도순 즐겁게 나누는 삶입니다. 아는 만큼 보는 문화재가 아닙니다. 사는 만큼 껴안는 우리 터전이요 삶자락이요 살림살이입니다. 박물관에 들여놓으면 ‘여느 살림집 밥그릇’조차 문화재가 됩니다. 그런데 이런 문화재를 ‘여느 살림집에서 여느 살붙이 삶에 맞춰 쓰고’ 있으면 살림살이가 됩니다. 임금님이 쓰던 물건이라야 문화재가 되지 않습니다. 오래된 절집에서 모시고 있던 부처님 그림이나 조각이라야 문화재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어린 나날 쓰던 몽당연필 한 자루 또한 좋은 문화재입니다. 내가 우리 아이하고 닳고 닳도록 갖고 놀던 작은 공 하나 또한 거룩한 문화재입니다.

 그림책 《깡통유령, 친구가 괴롭혀!》를 더 헤아려 봅니다. 조금도 무섭지 않을 뿐더러 무서움을 느끼기 어려운 어린이 유령은 저와 같은 어린 사람아이랑 사귀면서 제 일을 배우고 제 놀이를 즐깁니다. 아이들이 제 어버이를 따라 빨래하는 시늉을 한다든지 차를 모는 흉내를 내며 일놀이를 받아들이듯, 깡통유령인 어린 유령은 제 엄마 유령 아빠 유령이 시키는 대로 사람누리로 내려와서 유령되기를 가다듬습니다. 깡통유령을 만난 어린 벗들은 저마다 막히거나 답답했던 일을 스스럼없이 깡통유령한테 털어놓으며 어떻게 해야 이 막힘과 답답함을 풀며 시원하고 홀가분할 수 있는가를 찾아내려 합니다.

 꼭 또래동무라야 우리 아이하고 잘 놀아 주면서 서로서로 즐겁지 않습니다. 나이로는 어른이라는 우리 스스로 얼마든지 어린이마음이 되고 어린이 눈높이가 되며 어린이 삶이 되면서 어린이랑 ‘어깨동무 씨동무 미나리밭에 앉았다’ 하는 노래를 함께 부르고 손을 맞잡으면 됩니다.

 삶을 재미나게 즐기고 삶을 보람차게 누르며 삶을 신나게 얼싸안으면 그림책 하나 시나브로 고맙게 얻습니다. 내 삶에서 얻어 내 나름대로 곰삭인 다음 내 깜냥껏 맑고 환히 펼쳐 내는 그림책입니다. 이리하여, 나카야 미와 님은 재미나고 신나며 보람찬 삶을 그림책 하나로 모두어 놓는데, 우리들 또한 우리 나름대로 재미나고 신나며 보람찬 삶을 즐기고 있다면 《깡통유령, 친구가 괴롭혀!》를 사랑스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썩 재미나지 않게 내팽개치거나 우리 삶이 아무렇게나 흐르도록 짓누르고 있다면 《깡통유령, 친구가 괴롭혀!》이든 뭐든 하나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다시금 되풀이합니다만, 알아야 사들여 아이랑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 아닙니다. 추천도서 목록이나 권장도서 목록이 있어야 아이한테 괜찮거나 좋을 그림책을 사 줄 수 있지 않습니다. 아이랑 그림책을 함께 읽는 마음이 되어야 하고, 아이에 앞서 어른부터 스스로 그림책을 맛깔나게 즐기는 매무새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사 읽는다더라 하는 데에 휩쓸리거나,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더라 하는 데에 휘말린다면, 그림책이 아닌 플라스틱 쓰레기를 아이한테 떠넘기는 꼴입니다. 썩지 않는데다가 우리 땅을 망가뜨리는 플라스틱 쓰레기 같은 그림책이 아니라, 피와 살이 되어 일과 놀이를 신나게 즐기도록 손을 내미는 그림책 하나에 손을 뻗어 주소서. (4343.9.3.쇠.ㅎㄲㅅㄱ)


― 깡통유령, 친구가 괴롭혀! (나카야 미와 글·그림,웅진주니어,2006.2.28./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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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바라기


 태풍이 훑고 지나간 하늘 자리는 그지없이 파랗고 해말간 빛깔. 그러나 태풍이 훑고 지나간 다음조차 하늘을 올려다볼 줄 모르는 사람이 참 많다. 태풍이 훑기 앞서 우리네 하늘이 얼마나 찌들고 쪄들며 오그라들어 있었는가를 살피지 못하는 사람이 몹시 많다. 하늘을 제대로 올려다보며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이 책 하나 제대로 들여다보며 느낄 줄 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하늘바라기를 하는 사람일 때라야 비로소 책바라기를 할 수 있다. (4343.9.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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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 책 지식, 좋은 책, 책


 좋은 책을 읽는다고 더 좋은 삶이지 않고, 나쁜 책을 읽는다고 더 나쁜 삶이지 않다. 받아들여 일구는 내 삶 그릇이 어떠하고, 내가 일구는 내 삶결이 어느 길로 접어드느냐를 살펴야 한다.

 그나저나 도시에서 지내면 숱한 자동차·광고·소비·물질문명·기계·가공식품·쓰레기하고 마주한다. 시골에서 지낼 때에는 숲·나무·멧부리·풀벌레·논밭·흙·바람·구름·냇물하고 어깨동무한다.

 미우라 아야코 님 책 《기도해 보시지 않을래요?》(홍성사,1988)를 읽으며 밑줄을 긋는다. “왜냐하면 우리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보거나 듣는 모두 뇌세포에 아로새겨지기 때문이다. 이는 사진기로 찍을 때처럼, 아니면 녹음할 때처럼 또렷이 뇌에 새겨진다. 나는 내 머리속에 끔찍한 모습이나 더러운 말들이 더는 아로새겨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렇게 쌓이고 쌓인 생각조각들이 문득 떠올라 언제 어느 곳에서 나 스스로를 못된 구렁으로 이끌어 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106쪽).”

 지식이란 무엇인가. 책 지식이란 무엇일까.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인가. 책이란 참말 무엇일까.

 나쁜 책도 읽기 나름이기에, 잘 읽으면 좋은 앎이 된단다. 좋은 책 또한 읽기 나름이라, 제아무리 좋거나 훌륭한 책을 잔뜩 읽었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나 훌륭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단다.

 우리는 책을 왜 읽지? 우리는 책을 왜 가까이해야 하지? 사람들은 아이들한테 책을 뭣 하러 읽히지? 초·중·고등학교 어린이와 푸름이는 왜 교과서를 달달 외우며 시험점수가 높게 나와야 하지?

 상식이란 뭐지? 텔레비전에서는 왜 상식풀이 풀그림을 내보내며 어마어마한 돈을 상금으로 내걸고 있지? 축구선수 이름을 모르면 안 되나? 야구선수 이름을 꼭 알아야 하나? 길가 들꽃 이름 하나 몰라도 괜찮은가? 구름 모양에 따라 이름이 다 다름을 깨닫지 않아도 좋은가?

 아이들은 둘레 어른들이 하는 모든 일과 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어김없이 모조리 빨아들인다. 어른들 스스로 당신 어른들 삶을 아름다이 일구면 아이들은 ‘청소년 범죄’ 따위를 일으키지 않을 뿐더러 아이들이 욕을 할 일이란 없고, 아이들이 장난감 총으로 놀 일조차 없다. 어른들 스스로 범죄를 끔찍하게 일으키니까 아이들이 따라한다. 어른들 욕을 아이들이 따라한다. 미국만 전쟁 미치광이가 아니다. 한국 또한 전쟁 미치광이가 아닌가. 어디를 보아도 군인옷 입은 사람투성이요, 무시무시한 몽둥이나 총을 든 사람이 길거리를 지나다니며 가로막기까지 한다. 평화 지키기라는 허울로 전쟁 군수 산업이 얼마나 발돋움하고 있는가. 이런 나라에서 아이들한테 장난감 총을 갖고 놀지 말라고 해 본들 덧없는 말다툼이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어떤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고 있는가. 우리 어른들 가운데 아이들 앞에서 참으로 아름답다 여길 만한 삶을 기쁘고 신나며 가난하게 꾸리는 사람은 몇이나 있는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데에서 책이 날마다 몇 만 권씩 팔린들, 이 나라 사람들 스스로 아름다워지지 않는다면,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책이란 읽을 값어치가 없는 쓰레기 지식조각더미에 머물고 만다. (4343.9.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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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그림·사진


 누구나 날마다 보고 들으며 겪은 그대로 글을 쓰든 말을 하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할 뿐입니다. 누구도 더 빼어난 그림이라든지 한결 훌륭한 글이라든지 훨씬 아름다운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누구라도 이제까지 살아온 결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나타냅니다. 잘 찍은 사진 한 장이란 없고 잘 쓴 글이란 없으며 잘 그린 그림이란 없습니다. 스스로 잘 살아왔으면 어떠한 글·그림·사진이든 잘 빚은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잘못 살아왔으면 어떠한 글·그림·사진이든 잘못되거나 엉뚱한 이야기입니다. 학교를 오래 다닌들 나아질 수 없는 글·그림·사진입니다. 거룩한 스승한테서 배운들 조금도 거룩해지거나 발돋움할 수 없는 글·그림·사진입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일구어야 비로소 한 걸음씩 거듭나는 글·그림·사진입니다. 이런 글·그림·사진을 자꾸자꾸 책으로 배운다든지 학교에서 배운다든지 스승을 찾아 배운다든지 하려고 드니까 자꾸자꾸 엉터리 글·그림·사진만 쏟아집니다. (4343.9.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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