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될 집 앞에 놓인 빗자루는 그저 그대로 헐려야 할 집하고 나란히 남습니다.

 - 2010.10.2. 인천 남구 도화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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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톰(토비오)과 이주노동자와 재일조선인과


 〈우주소년 아톰〉 만화영화를 본다. 아이와 함께 네 번째 이야기를 본다. 아톰은 로봇이고, 둘레에는 모두 사람이다. 사람들은 거의 모두 아톰을 깔보거나 얕잡거나 따돌리거나 푸대접한다. 생각해 보니, 첫째나 둘째나 셋째 이야기에서도 아톰을 비롯한 수많은 로봇은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으로 다루어진다. 더구나, 궂고 지저분하며 힘든 일은 온통 로봇한테 떠맡긴다. 청소를 하건 집일을 하건 로봇이 하지, 사람이 하지 않는다. 놀이터에서 사고를 친 아이들을 아톰이 살려내는데, 이때에 아이들을 살린다며 찾아오는 일꾼은 ‘119 구조대원’ 같은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고, 이 로봇은 자기장에 휩싸여 금세 잿더미가 되어 버린다.

 사람은 로봇을 부리며 탱자탱자 놀듯 살아간다. 머리에는 온갖 지식을 집어넣고 몸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단추 하나만 눌러도 모든 일이 다 된다. 로봇은 사람 일을 모조리 해 줄 뿐 아니라,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심심하지 않게 노리개가 되거나 놀이꾼이 되어 주기까지 한다.

 아톰은 제 아빠를 잃고 새로운 어버이를 만난다. 새 어버이는 아톰을 학교에 넣는다. 아톰은 로봇으로 태어나기 앞서 ‘토비오’라는 어린이였는데, 어린이 ‘토비어’는 그만 사고로 죽는다. 로봇으로 다시 태어난 아이인 ‘토비오’인데, 이 아이가 제 나이에 걸맞게 초등학교 3학년에 들어가지만, 학교에서도 꽤 많은 아이들은 아톰을 따돌리거나 괴롭힌다. 마치, 일본에서 이주노동자하고 재일조선인이 따돌림을 받거나 푸대접을 받듯이.

 그렇구나. 아톰을 비롯한 수많은 로봇은 이주노동자와 똑같이 다루어진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을 다루듯 아톰을 다룬다면, 한국에서는 돈이 없거나 이름이 없거나 힘이 없는 사람들을 아톰을 비롯한 로봇처럼 다루는구나 싶다. 사람들이 보이는 못난 모습 때문에 아톰이 슬퍼 하면서 눈을 내리깔 때마다 함께 슬프다. 아톰하고 한 배에서 태어난 ‘아트라스’가 사람들을 몹시 싫어하면서 스스로 ‘지구별 사람을 깡그리 쓰러뜨리어 세계 정복’을 하겠다는 꿈을 품을밖에 없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아톰은 로봇도 사람도 똑같이 사랑스러우며 평화로이 살아갈 수 있을 아름다운 나날을 꿈꾼다. 나는 데즈카 오사무 님 슬프면서 착한 만화가 좋다. (4343.1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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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와 글쓰기


 새벽에 빗소리를 듣는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살짝 깬다. 얼마만에 내려 주는 비인가. 이 가을비는 겨울을 부르는 비인가.

 시골마을마다 가을걷이를 하기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가을을 맞이하기까지 여름 내내 얼마나 비가 잦았고 햇살은 안 비쳤는가. 한가위를 앞두고 푸성귀며 열매며 제대로 여물지 않어 농사짓는 사람들 한숨이 얼마나 깊었던가. 그나마 벼베기를 해야 하는 동안에는 비가 안 왔을 뿐 아니라 햇살이 퍽 따사롭게 내리쬐 주기까지 했다.

 빗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든다. 아이는 고이 잠잔다. 아이는 빗소리를 들었을까. 아이는 빗소리를 어떻게 들으려나. 아이는 도시 골목동네에서 살며 듣던 빗소리하고 시골 멧기슭에서 듣는 빗소리하고 어떻게 얼마나 다른가를 헤아릴 수 있을까. 시골집으로 들어온 지 고작 다섯 달이라지만, 이내 도시에서 살던 자취는 탈탈 털고 시골내음과 시골자락으로 몸과 마음을 넉넉히 품어 주려나.

 아침에 비가 그친다. 바람이 제법 세게 분다. 햇살이 들락 말락 하기에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빨래를 마당에 내놓는다. 기저귀 빨래가 바람에 마구 나부낀다. 안 되겠다 싶어 방으로 들인다. 창문을 꽁꽁 닫아걸고 있자니 바람소리는 잘 안 들리지만, 바람에 흩날리거나 나부기는 나뭇잎이 창밖으로 꽤 많이 보인다.

 쉬를 눌 때에 부러 멧기슭으로 가거나 감나무 앞으로 간다. 바람에 떨어진 가을잎을 내려다보다가는 아직 대롱대롱 달린 나뭇잎을 올려다본다. 바람은 잘 익은 감알을 어루만지며 지나간다. 자그마한 시골 멧자락이 곱다. 집으로 달려가 사진기를 들고 다시 나온다. 깊은 골짜기 커다란 멧자락은 얼마나 고울까. 아마 대단히 곱겠지. 아마 참 많은 사람들이 깊은 골짜기 커다란 멧자락으로 가을마실을 떠날 테지. 외딴 곳에 깃든 자그마한 시골집 가을소리는 아이랑 아빠랑 엄마가 듣는다. 여기에 엄마 배속에서 천천히 자라는 둘째도 시골집 가을소리를 함께 듣겠지. 고맙다. (4343.1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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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과 글쓰기 2


 그야말로 찍고 싶다고 느끼니 사진찍기를 즐깁니다. 이 사진으로 오늘 이곳 이 한때를 고운 이야기로 갈무리하고 싶어서 사진찍기를 즐깁니다. 돈이 없다고 필름사진 못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디지털사진기와 메모리카드와 셈틀이 있어도 사진기를 들지 않을 뿐더러 아무 생각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싸하거나 대단한 모습이더라도 내 마음이 움직여야 사진찍기를 즐깁니다. 돈이 된다거나 이름값 얻는다 할지라도 내 소담스러운 삶을 바쳐 담아낼 만한 값이 있어야 하며, 이렇게 삶을 바치는 땀방울이 즐거워야 비로소 사진기를 쥘 수 있습니다. 내 사진감인 헌책방을 찍을 때에 어느 한 곳 사진을 100장 찍어도 모자라고 1000장이더라도 늘 아쉬우며, 1만 장이나 10만 장에 이르러도 못내 서운합니다. 그렇지만, 이러는 가운데 다문 사진 한 장으로 모든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어요. 10만 장을 찍은 사진 가운데 어느 사진 한 장을 뽑더라도 갖가지 이야기를 깊고 넓게 나눌 수 있어요. (4343.11.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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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되는 책 만들기


 시골에서 살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일이란 참 많다. 이 가운데 하나는 날이 갈수록 농사꾼다운 농사꾼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대목. 농사꾼이 잘못이기 때문이 아니요, 농사를 잘못 지어서가 아니다. 농사짓기란 땅과 하늘과 물과 바람과 목숨을 사랑하는 가운데 내 삶을 사랑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런 마음을 잊거나 잃을밖에 없는 이 나라 얼거리에서 몹시 짓눌리거나 아파하다가 그만 참사랑하고 멀어지고 만다. 이 걱정스러운 일은 앞으로 더욱 불거지리라 본다. 농사꾼이라 하여 모두들 참으로 농사를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사람이 살아가는 밑바탕이니까. 따질 값어치조차 없다. 생각해 보자. 책을 내는 책마을 일꾼한테 대고 “당신은 책을 사랑하고 아낍니까?” 하고 물어 볼 일이란 없다. 아니, 물어 보아서는 안 된다. 묻고 자시고 할 까닭 없이 책마을 일꾼이라면 마땅히 책을 사랑하고 아끼는 매무새를 밑바탕으로 다스려야 하니까. 이러한 밑바탕을 살뜰히 다스리면서 책을 얼마나 더 사랑하고 아끼는가를 북돋아야 하니까. 그런데 농사꾼이고 책꾼이고 밑바탕으로 다스릴 매무새를 잃은 지 오래가 아닌가 싶다. 자꾸자꾸 잃거나 잊는구나 싶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먹고살아야 하기에 얄궂은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만, 우리 사회와 틀거리가 워낙 사람을 팔푼돌이로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금세 돈에 지고 만다. 아니, 금세 돈에 젖어들고 만다. 이리하여, 농사꾼치고 돈 되는 곡식을 안 심는 사람이 없다. 책마을 일꾼치고 돈 되는 책을 안 내려는 사람이 드물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마을 터전 땅과 물과 바람에 걸맞게 곡식을 즐겨 심는 한편, ‘나와 내 살붙이가 먹을 만큼’ 심었다. 요사이는 돈이 되는 고추며 담배며 인삼이며 가리지 않고 심는다. 능금이랑 배랑 복숭아랑 참외랑 수박도 마찬가지이다. 돈을 더 벌도록 곡식이나 열매나 푸성귀를 심어 가꾼다. 어느 시골이든 ‘아무개 마을 고추가 으뜸이다’라느니 ‘우리 마을 능금이 으뜸이다’ 하고 내세우는데, 정작 따지고 보면 ‘고추로 이름나지 않은 마을’이나 ‘능금으로 이름나지 않은 시골’이 있을까. 있으려나. 있을 수 있겠는가. 더 돈을 벌도록 농사를 지으려 하니까 자꾸자꾸 풀약을 치고 비료를 준다. 비닐농사를 지을밖에 없고, 비닐농사를 지은 다음, 이 비닐을 그냥 땅에 파묻거나 태우고 만다. 비닐이 땅에 묻히면 어떻게 된다고 돌아보지 못한다. 비닐을 태울 때에 어찌 되는가를 살피지 않는다.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먹은 곡식이 우리 몸에 어떻게 스며들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오늘날 출판사들 매무새를 곱씹어 본다. 요즈음 출판사들은 돈 되는 책이라면 서로 다퉈 가면서 낸다. 돈이 있으면 돈이 있는 대로 선인세라는 이름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갖다 바치면서 수없이 많은 광고를 퍼부으면서 마구마구 팔아치운다. 그런데, 이렇게 수없이 많은 광고를 퍼붓고 어마어마한 돈을 갖다 바친 책을 오늘날 사람들은 잘도 사 읽어 준다. 어린이책을 내는 출판사들은 이런 진흙탕 싸움을 더 거칠게 한다. 홈쇼핑에 처음부터 터무니없이 값싸게 책을 집어넣어 동네책방이 싸그리 문을 닫게 내몰 뿐 아니라 어린이책 전문책방마저 문을 닫게끔 몰아세운다. 뜻있다는 출판사라 해서 ‘홈쇼핑 책넣기’를 안 하는가? 한때는 홈쇼핑을 손가락질하던 뜻있다던 출판사들이 하나둘 홈쇼핑으로 돌아서는 한국 책마을이다. 이 가운데에도 돈 많은 몇몇 출판사들은 나라밖에서 나온 ‘좋다고 하는 책’을 서로 웃돈 주고 사들인다. 좋다는 책을 내는 일이 나쁘지는 않다. 우리는 좋다고 하는 책을 내기도 해야 할 텐데, 우리 힘으로 이 나라 사람들과 살가이 나눌 새로운 좋은 책을 차근차근 함께 내놓아야 한다. 이러다 보니, 웬만한 출판사마다 어린이책 안 내는 곳이 드물며, 이제는 “우리는 인문교양서를 냅니다!” 하고 외치기까지 한다. 어린이책을 내놓는 일이 나쁘다거나 인문교양서를 낸다고 외치는 일이 글러먹었다는 소리가 아니다. 여태까지는 어린이책을 하찮게 깔보았을 뿐 아니라, 어린이책은 ‘어리숙한 책’이라고 업신여기까지 했으면서, ‘이제 어린이책이 꽤 돈이 된다’ 싶으니 너도 나도 게걸스레 달겨드는 모습이 불쌍하다. 참으로 어린이책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든지, 어린이책을 내놓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알면서 어린이책판에 뛰어드는 ‘이름나거나 손꼽히는’, 그러니까 ‘어른책만 내며 이름나거나 손꼽히던’ 출판사로 어느 곳을 들 수 있을까. 나로서는 어떠한 ‘어른책만 내던 이름난 출판사’도 참답고 착하며 곱게 어린이책을 만든다고 느낄 수 없다. 또한, 온누리 어떤 책이 ‘인문교양서’가 아닌가. 만화책이든 그림책이든 사진책이든 인문교양서이다. 어른책이든 어린이책이든 인문교양서이다. 요즈음 수많은 출판사들이 떠벌이는 ‘인문교양서’라는 이름은 “아무 책이든 돈이 된다고 하면 가리지 않고 내겠다”는 꿍꿍이를 허울좋게 뒤집어씌운 껍데기라고 느낀다. 큰 틀로 보았을 때 ‘교육’이면 교육, ‘환경’이면 환경, ‘어린이’면 어린이, ‘철학’이면 철학만 곧게 낼 수 있는 줏대와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이렇게 책을 내놓으면 이 출판사에서 내놓는 모든 책은 ‘어린이책이면서 어른책’이요 ‘하나같이 아름다운 인문책’으로 뿌리를 내린다. 어쩌면, 책도 물건인 만큼 책을 팔아야 먹고산다 할 만할 뿐더러, 먹고살 생각으로 책을 만들겠다 밝힐 수 있다. 그래, 그렇겠지. 그러면, 참말 돈을 바라고 이름을 바라며 힘을 바란다면, 책 말고 다른 것을 만들면 되지. 책 만들어 얼마나 커다란 돈을 번다고 그러나. 책이 뭐 로또복권인가. 농사짓기가 무슨 로또복권인가. 책이든 농사이든 삶이다. 하루하루 소담스러우며 아름다운 삶이다. 날마다 고마우며 즐거운 삶이다. 내 마음을 다스리고 내 넋을 북돋우는 삶인 농사짓기요 책만들기로 거듭나야 한다. 농사다운 농사를 짓고, 책다운 책을 일구며,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이 되어야 한다. (4338.5.24.불.처음 씀/4343.11.8.달.고쳐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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