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알라딘에도 상품이 떴군요! 

ㅠ.ㅜ 

지난주 월요일에 나왔는데 

책방 배본은 어제오늘 즈음 겨우 되었고, 

다른 책방에는 배본이 아직 까마득한..... -_-;;;;;; 

그래도 종이책으로 태어났으니 더없이 고맙습니다~~ :)

.. 

(책 머리말을 걸쳐 놓습니다. 책이름처럼은 아니지만, 제대로 사랑받을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말을 해야 하니 생각을 해야지요


 아이는 어른이 하는 말을 귀로 듣고 살갗으로 느끼며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제 말을 가다듬습니다. 어른이 하는 말마디만 익히는 아이가 아닙니다. 어른이 들려주는 말투와 말씨와 말결과 말넋과 말무늬와 말높이와 말자리와 말씀씀이와 말빛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배웁니다. 어른 스스로 따스한 사랑을 말 한 마디에 담는다면 아이는 마땅히 말 한 마디에 따스한 사랑을 담는 결을 배웁니다. 어른 스스로 툭툭 내뱉기만 하는 딱딱하고 차가운 삶을 보내고 있으면 아이는 저절로 툭툭 내뱉기만 하는 딱딱하고 차가운 삶을 좇습니다.

 우리는 밥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밥을 안 먹고 살 수 있다면 내가 먹는 밥을 어떻게 마련하고 어떻게 차리며 어떻게 치워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밥을 먹어야 살 수 있기에 밥 한 그릇에 어떤 손길이 깃들었고 밥 한 그릇이 되기까지 누가 어느 땅에서 땀흘려 일구었으며 어떠한 흐름을 타고 우리 집까지 찾아왔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한테 먹이는 밥이기 앞서 어른 스스로 먹는 밥을 아무렇게나 차릴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만 나쁜 첨가물 깃든 먹을거리를 내어주면 안 될 뿐 아니라 어른부터 나쁜 첨가물 깃든 먹을거리를 손사래쳐야 합니다.

 우리는 말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마땅한 노릇입니다. 밥을 먹기 앞서 밥이 어떠한 밥인가 살펴야 하듯, 말을 하기 앞서 말이 어떠한 말인가 살펴야 합니다.

 사람을 사귈 때에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 살펴야 합니다. 주머니나 가방끈이나 겉모습을 따지라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 됨됨이를 살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착한지 참된지 고운지를 살펴야 합니다. 착한 삶 참된 삶 고운 삶인가를 살펴야 한다는 뜻입니다.

 책을 읽어야 한다면 어떤 책을 읽으려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자가용을 몰고자 한다면 어떤 자가용을 왜 몰아야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권정생 할배는 자가용을 버려야 이라크 파병을 안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권정생 할배는 자가용뿐 아니라 갖가지 물질문명을 거의 안 쓰며 지냈습니다. 저 또한 권정생 할배처럼 자가용과 갖가지 물질문명을 거의 안 씁니다. 다만, 권정생 할배는 텔레비전을 보셨으나,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습니다. 우리는 빨래기계나 냉장고나 전자레인지나 청소기를 쓰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갈 때에 자가용 없으면 힘들다 하지만, 두 다리를 튼튼히 가누면서 시골버스를 즐기면 모자랄 구석이 없습니다. 한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버스를 타려고 한참 기다린다거나 시골버스 타는 데까지 이십 분이나 삼십 분을 걸어가는 일은 ‘시간 버리기’가 아닙니다. 읍내에 장보러 자전거 타고 한 시간 즈음 달려야 하는 일은 ‘시간 버리고 몸 버리기’가 아닙니다.

 사람들 스스로 땀흘리며 살아갈 때에는 사람들 말마디에 땀내음이 깃듭니다. 땀내음이 깃든 말을 나누는 사람은 화장품내음이라든지 돈내음을 풍기기 어렵습니다. 늘 땀을 흘리는 사람이 화장품으로 몸을 치레할 수 없습니다. 땀을 흘리는 사람은 돈이 아닌 몸을 써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이리하여, 땀흘리는 삶을 즐기는 사람은 조금 더 생각하며 말할 수 있고, 한결 살가이 생각을 즐기며 말꽃을 피울 수 있다고 느낍니다. 땀흘리기보다는 머리만을 쓰며 살아가는 숱한 사람들은 생각을 않고, 아니 아예 생각없는 하루하루로 돈을 더 많이 벌면서 아무 말이나 ‘말만 되면 되지(의사소통만 되면 되지)’ 하는 버릇에 젖어든다고 느낍니다. 돈을 더 벌면 된다는 마음이란 바로 말뜻을 얼추 알아듣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옮아갑니다.

 이 땅 살림꾼을 도맡는 어머님들은 밥 한 그릇을 차리든 아이를 갓난쟁이 적부터 돌보든 빨래를 하든 걸레질을 하든 늘 생각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날마다 똑같은 반찬을 차릴 수 없는 노릇이요, 먹는 사람 입맛과 몸을 헤아려서 밥차림을 달리할 노릇입니다. 늘 말끔하며 정갈하게 옷을 차려입도록 빨래를 손수 하셨습니다. 집에서 쉴 사람이 더욱 느긋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게끔 집안을 쉴새없이 치우고 닦고 갈무리하셨습니다. 살림거리가 많아 생각할 겨를이 없을 수 없습니다. 살림거리가 많기에 더더욱 생각을 하며 밥하고 빨래하며 쓸고닦는 살림을 맡으셨습니다.

 저는 이 책 《사랑하는 글쓰기》에 담는 글을 처음 쓰고 두세 번 너덧 번 대여섯 번 예닐곱 번 일고여덟 번 …… 자꾸자꾸 손질하고 고쳐쓰면서 우리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제가 갓난쟁이였을 적부터 어떤 말마디로 나를 돌보고 가르쳐 왔을까 떠올렸습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은 눈으로 읽으며 속으로 헤아리실 테지만, 저는 이 글을 쓰고 고치는 동안 늘 입으로 혼자말을 하며 썼습니다. 저로서는 글쓰기가 아닌 말하기로 《사랑하는 글쓰기》 이야기를 엮습니다. 사람들이 생각을 않고 사는 바람에 얄딱구리하게 ‘겹말’이 끊이지 않는 슬픈 모습을 조금 더 따스하게 어루만지거나 넉넉하게 보듬고픈 꿈을 담습니다.

 말은 삶입니다. 내 말이란 내 삶입니다. 삶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삶을 가꾸는 말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말씀하셨는데, 삶을 가꾸는 글쓰기란 ‘사람을 가꾸는 글쓰기’요 ‘삶을 가꾸는 말하기’이며 ‘사람을 살리는 말하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삶을 가꾸는 글쓰기’라는 이름 하나에 얽매이거나 고이거나 사로잡힐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고맙게 받아들이며 내 아프거나 튼튼한 몸뚱이를 반갑게 사랑할 노릇입니다.

 곁에서 아픈 삶을 온몸으로 나누어 주는 따스한 살붙이가 있기에 《사랑하는 글쓰기》라는 책 하나 고맙게 일구어 제 좋은 이웃한테 선물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도시에서는 골목동네에서 골목꽃을 껴안으며 즐거웠고, 시골에서는 멧부리 기스락에서 들풀과 들나무와 들벌레하고 부대끼며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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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스미추'는 인천광역시 남구청에서 내는 구청 소식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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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랑 엄마랑 모처럼 나란히 인천으로 헌책방마실을 나오다.

 - 2010.12.16.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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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읽기 글쓰기


 글이란, 글을 읽는 사람 몫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 몫이 아닙니다. 제아무리 글을 아름답고 알맞게 잘 썼어도 글을 읽는 사람이 아름답거나 알맞게 헤아리지 못하면 부질없습니다. 글쓴이한테 부질없지 않습니다. 글을 읽는 사람한테 부질없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빈틈없거나 옹글게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 제 마음속에서 샘솟는 싱그러운 물줄기가 있기에 글을 씁니다. 여기저기 엉성하거나 어리숙할 테지요. 이 엉성하고 어리숙한 가운데 깃든 보배덩어리를 읽는이가 받아들이거나 맞아들이면 넉넉합니다. 맞느냐 틀리느냐를 따지는 글읽기가 아닙니다. 나 스스로 한결 아름다우며 사랑스럽게 살아가는 길을 느끼면서 살피고자 찾아서 하는 글읽기입니다. 글쓴이는 처음부터 삶쓰기를 하듯이 글쓰기를 합니다. 읽는이 또한 처음부터 삶읽기를 하듯이 글읽기를 하면 됩니다. 삶쓰기와 삶읽기가 어우러질 때에 글쓴이와 읽는이는 마음과 마음으로 만납니다. 술자리에서 다 함께 소주 열 병을 까야 술맛이 나지 않습니다. 고작 보리술 한 병을 앞에 놓고 헬렐레 할지라도 술맛이 납니다. 가락이니 높낮이니 엉터리라 할지라도 노래하는 맛이 있습니다. 노래하는 마음이 있으니까요. 글을 쓰는 마음은 하느님 마음이나 부처님 마음이 아닙니다. 그저 조그마하며 모자란 사람 마음입니다. 글을 읽는 마음 또한 하느님 마음이나 부처님 마음이 아닙니다. 그예 작달막하며 어줍잖은 사람 마음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삶과 삶을 나누며 사랑과 사랑이 예쁘게 어깨동무합니다. 이 사이에서 책 하나 태어납니다. (4343.12.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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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바늘꽃 카르페디엠 15
질 페이턴 월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능금나무는 전쟁을 모릅니다
 [책읽기 삶읽기 32] 질 페이턴 월시, 《분홍바늘꽃》


 20세기 첫무렵 유럽에서는 커다란 싸움판이 두 차례 벌어졌습니다. 흔히들 ‘세계대전’이라 하지만, 가만히 따지면 ‘유럽 싸움’입니다. 유럽사람들이 저희 나라나 겨레를 한껏 살찌우려는 마음으로 이웃 나라나 겨레로 총칼을 들고 밀어붙이면서 벌어진 싸움판입니다.

 그런데 이 싸움판을 벌인 나라나 겨레를 들여다볼 때에, 싸움을 일으킨 나라에서 밑바닥 자리에 있는 사람들, 이를테면 농사꾼이라든지 노동자들은 어떤 삶이었을까 궁금합니다. 밑바닥 자리에 있는 사람들 또한 이웃 나라나 겨레로 총칼을 들고 쳐들어가서 죽이고 죽으며 돈과 보배를 빼앗는 가운데 내 밥그릇을 채우는 일을 기쁘게 맞아들였으려나요. 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바보처럼 따르거나 얼간이처럼 못난 짓을 하고 말았으려나요.

 유럽에서 펼쳐진 두 번째 큰 싸움판을 무대로 쓴 청소년소설 《분홍바늘꽃》을 읽습니다. 이 청소년소설을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싸움을 일으킨 독일 권력자는 크나크게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싸움을 일으킨 독일 권력자 뒤에는 세계 경제와 무기시장을 주름잡던 거대재벌이 있었고, 이 거대재벌은 미국에 있는 록펠러와 모건이었다고 합니다. 총칼과 같은 무기란 거대재벌이 돈을 벌어들이는 ‘공장 상품’이고, 더 큰 탱크와 더 빠른 비행기와 더 무서운 항공모함은 더 어마어마하게 큰 돈을 벌어들이는 ‘공장 인기상품’입니다.

 으레 독일하고 이탈리아만 못된 짓을 저질렀다고들 역사책에 적힙니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영국이든 프랑스이든 네덜란드이든 에스파냐이든 …… 아프리카며 아시아며 중남미며 닥치는 대로 쳐들어가서 식민지를 삼았습니다. 이들 ‘힘있고 돈있으며 이름있는’ 유럽 나라들은 제 나라와 겨레 밥그릇을 더 크게 불리려고 총칼을 앞세우며 싸움박질을 했습니다. 어쩌면, 유럽에서 벌어진 큰 싸움이란 권력자끼리 맞붙은 ‘식민지 넓히기 싸움’이라 해야 알맞을는지 모릅니다. 이 나라 밑바닥 사람이든 저 나라 밑바닥 사람이든 그저 고달파야 하고 싸움터에 병사로 끌려가 총알받이가 되어야 했던 슬픈 굴레인지 모릅니다.


.. 나는 전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어른들은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전보다 뉴스에 더 많이 귀를 기울였다. 나는 비행기를 보는 것이 좋았다 ..  (17쪽)


 학교에서 가르치는 한국사나 세계사는 거의 모두 ‘싸움박질을 해서 땅넓이를 얼마나 넓혔고, 정치권력자는 언제 어떻게 물갈이가 되었는가’ 하는 데에 머무릅니다. 지난날 사회와 문화를 다루는 대목 또한 ‘한 나라나 겨레를 이루는 수수한 사람들 삶’이 아닌 ‘권력자가 누리던 삶’을 다룰 뿐입니다.

 우리네 전통문화를 들여다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궁중음식과 궁중옷을 전통문화로 다룹니다. 궁중에서 임금님과 신하들이 누리던 노래를 전통음악으로 여깁니다. 따지고 보면, 역사책을 쓰는 사람은 나라에서 돈과 지위를 받아 나라일을 적바림하는 사람이지, 여느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서 여느 사람들 삶과 발자취를 살피거나 적바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인데, 대학교수가 되어 역사를 파고들면서 역사를 쓰지, 골목동네나 시골 농삿집 사이에서 함께 밑바닥 삶을 꾸리는 가운데 역사를 파헤치거나 파고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재 너머 사래 긴 밭 언제 갈려 하느냐” 하고 노래하는 시는 있어도, 몸소 밭갈이 논갈이 씨뿌리기 김매기 가을걷이를 하는 가운데 ‘지식인 스스로 생활인이 되어 땀흘리는 삶을 노래하는 시’는 한 꼭지조차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흐름은 그리 바뀌지 않습니다. 집안에서 살림하고 아이 키우고 밥을 하고 빨래를 하는 나날을 노래하는 대중가요나 문학이나 영화는 얼마나 될는지요. 비정규직이든 대형마트 점원이든 중·고등학교 수험생 자리에서든 내 삶을 노래하는 대중가요나 문학이나 영화는 있기나 한지요.


.. 갑자기 짜릿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흐르며 몸이 떨렸다. 자유였다. 아무도 나를 돌봐 주지 않을 것이다. 나를 걱정해 주거나, 뭔가를 시키거나, 제때에 먹으라고 하거나, 이를 잡으려 하거나, 다친다고 막아 주지도 않을 것이다. 어른들은 모두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모두들 전쟁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  (44쪽)


 청소년문학 《분홍바늘꽃》은 영국 런던이라는 도시에서 힘겨이 살아남은 아이들이 주인공입니다.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싸움을 일으켜 놓고는 아이들이 걱정스럽다며 ‘도시에서 내보내 시골로 옮기는’ 일을 합니다. 그렇다고 시골에 살붙이나 피붙이가 있지 않은 아이들도 많을 뿐더러, 시골로 옮기기만 한다고 아이들이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습니다. 어른들부터 그저 도시에서만 살고파 하면서 아이들만 달랑 시골로 보내서 무엇이 나아지겠습니까. 어른들 스스로 도시에서 득시글거리는 삶을 그치며 시골에서 손수 땅을 일구어 조용히 꾸리는 삶이라 한다면, 아이들 또한 즐거이 시골로 갈 만합니다. 어른들은 도시에서 돈을 벌거나 싸움터로 나아가 이웃 나라 사람들을 죽이는 수렁에서 허덕이는데, 아이들이 시골로 가고파 할까 모르겠습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영국이든 독일이든 프랑스이든 이탈리아이든 …… 이들 나라 사람들이 더 큰 도시를 키우지 않고, 스스로 수수하게 농사지으며 제 살림을 조그맣게 꾸리는 즐거움을 누린다면 싸움이 일어났을까 하고.

 싸움판 이야기는 떠올리기 싫어 책상맡 시집을 하나 꺼냅니다. 갑갑할 때마다 늘 펼치는 신동엽 님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입니다. 책장을 죽 넘겨 〈산문시 1〉를 읽습니다. “스킨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대통령이 청와대 같은 데에서 갖가지 서류에 둘러싸인 채 일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짐자전거에 막걸리병을 싣고는 슬슬 골목길을 달리고 고샅길을 달리며 시인 아저씨네에 놀러간다면, 온누리 어디에서고 싸움이 터질 까닭이 없습니다. 너 죽고 나 살자는 끔찍한 싸움이란 벌어지지 않습니다. 총칼을 든 싸움이든 돈뭉치로 벌이는 싸움이든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경제대국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고, 국민소득이 이만 달러이든 이십만 달러이든 되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국민소득이 이백 달러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아름다우며 즐겁게 살아가는 길이 있어요. 국민소득이 아예 0원이랄지라도 서로서로 예쁘게 어깨동무하며 살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 길이 구멍투성이라서 버스가 덜컹거리며 지나갔다. 사람들은 건물 더미 사이로 좁은 길을 힙겹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가게 진열장들에는 유리창 대신 널빤지가 대어진 채 ‘정상 영업’이라는 글씨가 페인트로 조잡하게 쓰여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이 붉은 버스 차장 아주머니가 우리한테 몸을 기울이고 창밖을 보더니 말했다. “맙소사. 똑같이 갚아 줘야 돼!” 줄리가 나에게 물었다. “우리 편도 저렇게 (이웃나라를 폭탄으로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는 짓을) 할까?” 나는 몸소리를 치며 대답했다. “나도 모르겠어.” ..  (66∼67쪽)


 유럽에서 크나큰 싸움이 벌어지던 때, 모든 나라가 무기를 들지는 않았습니다. 몇몇 나라는 그냥 흰 깃발을 들었다고 합니다. 괜한 싸움으로 제 나라 여느 사람들이 다치거나 여느 사람들 살림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흰 깃발을 펄럭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밑자락에서는 조용히 싸우는 사람이 있었다지만, 평화를 지키거나 사랑하는 길은 총칼에 있지 않음을 몸소 보여줍니다.

 한국땅에서 더 나은 교육을 꿈꾸거나 바라는 사람들이 미국으로든 독일으로든 프랑스로든 영국으로든 많이들 배우러 떠납니다. 사진을 하든 그림을 하든 문학을 하든 다들 이렇게 나라밖, 아니 유럽에서 이름난 나라들로 떠나곤 합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이름난 나라들보다 이름이 적게 나거나 덜 나거나 안 난 나라로 가곤 합니다. 이를테면 스웨덴이나 덴마크나 핀란드로 배우러들 갑니다. 이러면서 ‘핀란드 교육혁명’이라든지 ‘스웨덴 교육혁명’을 읊습니다. 이들 핀란드이든 스웨덴이든 덴마크이든 교육을 혁명하지 않았는데, 우리 사회하고는 아주 크게 다르니까 마치 혁명이라도 되는 듯 여깁니다.

 이들 나라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무기 아닌 논밭연장을 만듭니다. 지식이 아닌 사랑을 가르치고, 정보가 아닌 믿음을 일깨웁니다.

 저마다 사이좋게 어우러지며 살아갈 사람임을 몸소 드러낼 뿐이니, 혁명이라는 이름은 걸맞지 않습니다. 누구나 오순도순 얼크러지며 기쁘게 웃을 사람임을 스스로 보여줄 뿐이기에, 대단한 교육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시험을 치를 까닭이 없습니다. 학교는 말 그대로 배움터여야 합니다. 학교에서 교사 일을 맡은 이는 아이들이 참답고 착하며 고운 사람으로 크도록 돕는 한편, 교사 스스로 참답고 착하며 고운 어른으로 당신 넋을 지키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전쟁 반대”나 “평화 사랑”이라는 목소리를 낼 우리들이 아닙니다. 내 삶을 사랑하며 아끼는 길을 조용히 씩씩하게 걸어가야 할 우리들입니다. 내 고향마을을 아끼고, 내 보금자리인 살림집을 사랑할 우리들입니다. 성경책에는 내 한쪽 뺨을 때렸으면 내 다른 쪽 뺨도 때리라 이야기합니다. 우리 옛말에는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 했습니다. 삶은 사랑이고, 사랑은 삶입니다. 전쟁은 미움이고 미움은 전쟁인데, 전쟁이든 미움이든 삶하고는 너무 동떨어집니다.


.. 우리 집 양쪽 옆집과 건너편 집 두 채가 무너졌는데, 창문 유리가 길 끝까지 날아갔다. 우리 집이 있던 자리에는 커다란 구멍만 남았다. 하지만 사과나무는 거의 뿌리까지 둘로 가라지기는 했어도 이듬해 봄에 새싹이 돋아났고 그 뒤로 꿋꿋이 살아남았다 … 바보같이 들리겠지만, 아무리 히틀러의 폭격기가 하늘을 가득 메워도 나뭇잎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해 보였다. 물론 당연히 그래야 하고, 또 그렇게 되었지만 말이다 ..  (63, 76쪽)


 능금나무는 싸움이든 전쟁이든 모릅니다. 분홍바늘꽃 같은 조그마한 들꽃 또한 싸움이든 전쟁이든 모릅니다. 호박꽃이 싸움을 알까요. 오얏나무가 전쟁을 알려나요.

 전쟁무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상추 한 잎보다 잘날 구석이 없습니다. 총칼을 움켜쥐며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사람을 죽이거나 괴롭히는 권력자는 시금치 한 포기보다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나와 동무를 사랑할 길을 찾을 사람입니다. 내 터와 이웃마을을 고루 아끼는 길을 찾을 사람입니다. 《분홍바늘꽃》에 나오는 아이들은 바보스럽고 우악스러운 어른들 굴레에 빠져들지 않습니다. 처음 제 어버이한테서 목숨을 선물받던 때 느낌 그대로, 사랑과 믿음으로 이 땅에서 튼튼하고 당차게 살아내고픈 꿈을 건사합니다.

 어른들은 힘이 좀 여리면 좋겠습니다. 어른들은 돈이 좀 적으면 좋겠습니다. 어른들은 이름이 좀 없으면 좋겠습니다. 수수하고 투박하면서 고즈넉한 삶을 얼싸안는 참사람으로 아이들과 웃고 떠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3.12.23.나무.ㅎㄲㅅㄱ)


― 분홍바늘꽃 (질 페이턴 월시 글,햇살과나무꾼 옮김,양철북 펴냄,2007.12.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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