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글쓰기


 아이를 안고 비알진 멧기슭을 천천히 탄다. 아이는 아빠가 하듯 나뭇가지를 한손으로 들어서 앞을 틔운다. 판판한 길이 나오니 아빠 등에 붙은 나뭇잎과 잔가지를 털어 준다. 아이는 어디에서 이런 몸짓을 배웠을까. 엄마나 아빠가 하는 양을 보다가 따라했을 테지. 엄마나 아빠가 다른 양을 보여주었다면 다르게 움직였겠지. 그리 굵지 않은 나무가 띄엄띄엄 선 풀숲 한복판에 조용히 앉아 우리 살림집을 내려다본다. 멧기슭을 고작 조금 올라왔을 뿐인데 사뭇 다르게 보인다. 내가 살아가는 곳에서 아이가 자라나고, 내가 바라보는 곳에서 아이 눈높이가 자라며, 내가 사랑하는 글을 아이가 읽으며 큰다.

 잠자리에 들기 앞서 아이를 품에 안으며 엉덩이와 등을 토닥인다. 아이한테 바라는 말을 조곤조곤 들려주고, 아이가 얼른 고뿔이 나아 더 씩씩하게 놀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천천히 이부자리에 앉아 아이를 눕힌다. 아이 이마와 가슴과 어깨에 살며시 성호를 그리니 “또또와 또또와 아멘.” 한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참답고 착하며 고운 사랑을 물려주어야 한다. 내가 쓰는 글을 먼 뒷날 아이가 커서 읽을 무렵에 아이는 내 글에 참답고 착하며 고운 사랑이 깃들어 있다고 느낄 수 있겠는가. (4343.10.19.불.ㅎㄲㅅㄱ)
 

(그래, 너 세 살이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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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삼총사 웅진 세계그림책 116
나카야마 치나츠 지음, 하세가와 요시후미 그림, 장지현 옮김 / 웅진주니어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도시에서 너무 힘겹게 다투며 살기 때문에
 [즐기는 그림책 21] 나카야마 치나츠(글)+하세가와 요시후미(그림), 《안돼 삼총사》(웅진주니어,2007)



 그림책 《안돼 삼총사》에서 ‘안돼’와 ‘안된다’와 ‘안된당께’ 셋은 집을 나옵니다. ‘안돼’는 아버지가 너무 꾸중을 하는 바람에 터벅터벅 걸어서 집을 나오고, ‘안된다’는 어머니가 몹시 성을 내는 바람에 울면서 집을 나오며, ‘안된당께’는 애틋한 동무 둘을 걱정하는 바람에 머리를 깎다가 불쑥 집을 나옵니다.

 나어린 세 동무는 어디로 가야 좋을지 모르지만 길을 나섭니다. 꾸중하고 나무라는 어른들 틈바구니를 떠나, 따스하며 넉넉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곳을 찾아나섭니다. 세 동무는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새로운 동무를 사귑니다. 이를테면 ‘안되지비’랑 ‘메이요’랑 ‘다메’랑 ‘이테키’랑 ‘하파나’랑 ‘나아’랑 ‘넷’이랑 ‘나인’이랑 ‘노’랑 ‘농’ 같은 동무들입니다.

 어른들은 나어린 세 동무 앞에서 늘 골을 부리거나 성을 냈습니다. 어른들은 “하지 말라”는 말을 일삼으면서 이맛살을 찌푸리기만 했습니다. 어른들은 “이렇게 해 볼까”라든지 “이처럼 하자” 같은 말은 좀처럼 꺼내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은 늘 당신 잣대와 눈높이에서만 생각하고 살피며 말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못난쟁이 어른들한테서 자라나던 아이들이 따스하며 넉넉한 말과 꿈을 펼칩니다. 아이들이 꺼내는 말은 어른들하고 똑같은 ‘안 돼-안 된다-안 된당께’이지만, 이 말을 쓰는 자리와 느낌이 사뭇 달라, 서로서로 손을 마주잡으며 살가이 웃는 매무새로 ‘안 돼-안 된다-안 된당께’를 읊으니 자꾸자꾸 새로운 동무를 사귈 수 있습니다.


.. “이봐 이봐 싸움은 안 돼 안 된다 안 된당께. 사이좋게 지내야지 안 돼 안 된다 안 된당께. 이기든 지든 안 돼 안 된다 안 된당께. 어쨌든 싸움은 안 돼 안 된다 안 된당께.” ..  (31쪽)


 이제 막 스물일곱 달로 접어든 아이를 데리고 길을 나섭니다. 늘 걷는 산길로 가 볼까 하다가 오늘은 다른 산길로 가 보기로 마음먹습니다. 아이가 아빠 손을 잡아끌며 “이리로, 이리로!” 하는데, 아빠는 아이가 잡아끄는 대로 가다가는 “응, 오늘은 다른 데로 가 볼까?” 하니까 “응?” 하더니 고분고분 따라 줍니다.

 멧기슭 산골집으로 들어온 지 석 달이 지나고 넉 달째이지만 막상 ‘길이 안 나 있는’ 산길을 타 본 적은 없습니다. 오늘은 겨울이 오기 앞서 길 없는 산길을 올라 보고 싶어 아이 손을 붙잡고 나무다리를 건너 비알진 기슭으로 넘어갑니다. 아이는 외나무다리가 무섭다며 웁니다. “살살 건너면 돼. 한 발씩 옆으로 가 봐.” 하고 말하지만 한 발씩 떼지 못합니다. 하는 수 없이 아빠가 아이를 덥석 안아 건넙니다. 길이 없는 산길이기에 잔가지를 헤치며 걷습니다. 비알진 기슭에 아이를 내려놓으니 안아 달랍니다. 아직 이런 산길을 걷기엔 너무 힘들겠지, 하고 생각하며 아이를 안고 차근차근 비알진 산길을 오릅니다.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헤치며 올라섭니다. 가다가 한 번 쉬며 풀숲에 앉습니다. 아이도 풀숲에 앉힙니다. “자, 저기 봐. 저 나무 사이에 우리 집이야. 그치? 우리 집하고 풀숲하고 고작 요만큼만 떨어져 있는데, 여기에서 보니까 무척 다르게 보이지?”

 살짝 쉬었다가 다시금 산길을 탑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영차영차 오릅니다. 집에서 아이하고 복닥일 때에는 아이랑 제대로 놀지 못하며 을러대기 일쑤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아이가 깨어 있는 동안 아빠나 엄마는 다른 일은 하나도 못하고 오로지 아이하고만 놀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이랑 제대로 놀 마음을 못 냈다고 느낍니다. 스물네 시간 고스란히 둘이서 놀 수 있으면 더 좋을 테지만, 스물네 시간 내처 함께 놀지 않더라도 그림책을 함께 보고, 빨래할 때에 옆에서 물놀이를 하도록 하며, 밥할 때에는 불 가까이 오지 않도록 하면서 꾸준히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빨래를 마당에 널 때에 아이를 불러 마당에서 신나게 뛰도록 하면 되고, 이불을 털면서 아이보고 너도 함께 이불을 털어 보렴 하고 얘기하면 됩니다.

 야트막한 산기슭을 다 오르니 반반하게 길을 잘 닦은 산길이 나옵니다. 나무와 풀과 잔가지를 모두 쳐 놓은 길이 왼쪽과 오른쪽으로 죽 뻗어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 길을 잘 냈을까 궁금합니다. 왼쪽 길은 읍내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가는 마을길로 이어지겠다 싶은데 오른쪽 길은 어디로 이어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른쪽 길로 가 보기로 합니다. 아이는 “아빠, 손!” 하고 부릅니다. 아이 손을 잡고 천천히 걷습니다. 얕은 멧자락 풀숲인데, 이 얕은 멧자락 풀숲에 깃들어 있어도 아주 포근합니다. 숲이란, 나무란, 풀이란 너그러운 품이라고 새삼 느낍니다. 이 너그러운 품에 몇 가지 멧짐승이 살아가겠지요. 다람쥐이든 고라니이든 멧돼지이든 멧비둘기이든 까마귀이든 꿩이든 오순도순 제 보금자리를 하나씩 마련하여 지낼 테지요.

 제법 깊이 들어왔다 싶을 무렵 무덤 하나 나타납니다. 어, 이런 데에 무덤이 있네. 아이도 “어, 뭐 있네?” 하고 놀랍니다. 무덤 앞에 섭니다. 꾸벅 인사를 합니다. 길이며 무덤이며 손질이 잘 되어 있습니다. 산임자는 당신 어버이를 이곳에 보듬어 놓았군요. 이 나라에는 산에 들에 무덤이 너무 많다는 말들을 하는데,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볕 잘 들며 고즈넉한 한켠에 어버이 무덤 하나 써 놓으면 퍽 괜찮겠구나 싶습니다. 바글바글 도시에서는 꿈꿀 수 없으나, 느긋하며 한갓지게 살아가는 터전에서는 이렇게 산길을 찬찬히 올라 어버이 무덤에 찾아가는 일이 무척 좋아 보입니다. 날마다 아이 손을 잡고 산길을 올라 무덤 앞에서 밥 한 끼니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도 즐거우니까요.


.. 옆집에 사는 안돼가 집을 나갔다. 아빠가 너무 꾸중하셔서. “이거 하면 안 돼. 저거 하면 안 돼. 가서는 안 돼. 안 가도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  (3쪽)


 어른들이라고 처음부터 아이들 앞에서 윽박지르고 싶어 윽박지르리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어른들 또한 아이였고, 어른들이 아이였을 때 얼마나 개구지게 놀았겠어요. 어른들이 아이였을 때에도 당신 어버이께서는 당신을 윽박지르기만 했을는지 모르지만, 어른들이 아이였을 때 당신 어버이는 너그러우며 따사로운 품으로 고이 쓰다듬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도시로 나와 살면서(또는 처음부터 도시에 살면서)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하고 부대끼는 가운데 따뜻한 사랑과 너른 믿음을 잃거나 잊고 맙니다. 서로서로 즐거이 어깨동무하는 삶이 아니라 서로서로 더 치고받으며 내 배를 채워야 하는 삶에 젖어드니까요. 알맞춤하게 모인 사람들이 알맞춤하게 어울리는 도시가 아니라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서로 겨루거나 다투면서 이웃이나 동무 등을 타고 올라야 하니까요.

 집 바깥에서 뭇사람하고 내내 겨루거나 다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삶일 때에는 집 안에서도 식구들하고 자꾸자꾸 겨루거나 다투는 삶이 됩니다. 집 바깥에서 뭇사람하고 한결같이 사랑스레 어울리거나 어깨동무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삶일 때에는 집 안에서도 살붙이랑 오순도순 지내며 보듬는 삶이 될 테지요.

 가장 좋기로는 엄마나 아빠가 바깥에서 돈을 버느라 아이는 엄마한테만 맡긴다든지 할머니한테 맡긴다든지 어린이집에 맡긴다든지 하지 말고, 엄마와 아빠가 집에서 아이하고 줄곧 지내는 삶입니다. 더 벌어서 더 번 돈을 어린이집과 학원과 바깥밥에 쏟아붓기보다 알맞게 벌어서 알맞게 버는 만큼 작으며 조촐히 온 식구 따사로이 어우러지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에만 이처럼 지낼 수 있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도 일자리를 나누며 살 수 있어요. 밤샘 일을 하거나 여덟 시간 일을 마친 뒤에도 더 일을 하지 말고, 아니 여덟 시간조차 일을 하지 말고 네 시간이나 여섯 시간 일을 하면서 일삯은 적게 받으며 더 많은 사람이 일할 자리를 마련하는 가운데, 적게 버는 만큼 단출하며 가볍고 작은 살림을 꾸리면 됩니다. 이러는 동안 집식구하고는 더 오래 더 많이 더 가까이 어울리면 좋아요.

 즐겁게 살자면서 버는 돈인데, 정작 돈은 벌지만 내 식구랑 동무랑 이웃이랑 다른 살붙이랑 어깨동무할 겨를은 잃어버리는 오늘날 삶이거든요. 넉넉히 살자면서 더 돈을 벌어야 한다고 여기지만, 정작 돈을 더 벌어도 이 돈을 우리 식구랑 동무랑 이웃이랑 다른 살붙이랑 알뜰살뜰 재미나게 쓸 틈이란 거의 없는 요즈음 삶이에요.


.. 안돼와 안된다와 안된당께는 여행을 하면서 친구들이 점점 늘었다 ..  (21쪽)


 아이하고 산길을 내려오다 밤나무밭에서 밤 세 알 줍습니다. 산임자가 돌보는 밤나무에서 웬만한 밤은 산임자가 다 따 가셨는데 꼭 한 송이가 흙바닥에 데굴데굴 구르기에, 요 한 송이를 벌려 세 알을 줍습니다. 엊그제 이웃 이오덕학교 선생님들하고 고구마밭에서 고구마를 함께 캤습니다. 이때에 우리들은 찬찬히 캔다고 캤으나 틀림없이 미처 못 캐고 지나쳐 땅속에 고이 묻혀 있는 고구마도 어느 만큼 있으리라 생각해요. 아마, 못 캔 고구마는 흙으로 되돌아간다든지 멧짐승 먹이가 될 테고, 산임자가 미처 모르고 못 주운 밤톨 또한 멧짐승 먹이가 되겠지요. 자잘한 밤톨이 제법 바닥에 굴러다니기에 우리 세 식구 몫으로 꼭 세 알만 줍습니다.

 이제 집에 닿습니다. 아빠는 빨래를 걷습니다. 이불을 털어 걷습니다. 이불을 털 때에 아이는 옆에서 아빠가 하는 몸짓을 따라하며 웃습니다. 두 손으로 넓게 이불을 잡고 털 때에는 저도 두 손을 벌려 흔들고, 이불을 주섬주섬 접어 한손으로 탕탕 칠 때에는 또 요런 움직임을 따라하며 웃습니다.

 아빠는 지난주부터 고뿔에 걸려 해롱거리는 몸입니다. 아침에도 끙끙대며 누워 있다가 밥을 차리며 빨래를 했고, 아이하고 조금 놀다가도 몸이 무거워 다시 자리에 누워 있다가 이렇게 벌떡 일어나서는 산길 마실을 했습니다. 이제 더는 못 버티겠다 싶어 그만 드러눕습니다. 아이는 엄마랑 조금 더 놀더니 어느새 제 옆에 누워 새근새근 잠듭니다.

 그림책을 볼 때마다 늘 느낍니다. 이 그림책들은 아이들한테만 보여주려고 일군 책은 아니지 싶습니다. 어떠한 그림책이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들이 뭔가 좀 제대로 알거나 느끼며 옳고 바르게 살아가라며 빚은 책이지 싶습니다. 어설프며 어줍잖은 어른들이 그동안 지나 온 나날을 돌아보면서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도록 슬기롭게 이끌 좋은 슬기를 찬찬히 곱씹으라고 도움말을 건네는 책이라고 봅니다. 《안돼 삼총사》도 이러한 그림책 가운데 하나라고 느낍니다. 아이들 스스로 읽으라고 던져 준다든지, 어린이 나이에만 읽힌다든지 할 책이 아닙니다. 한꺼번에 열 권 스무 권 왕창 장만해서 집구석에 꽂아 놓을 책이 아니에요. 어버이부터 책방 마실을 하여 스스로 읽고 기꺼이 장만할 책이고, 차근차근 되새기면서 마음으로 받아안을 책이며, 아이를 무릎에 앉혀 그림과 글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서로서로 즐길 책입니다. 함께 즐기면서 고운 빛과 재미난 이야기를 받아먹는 그림책입니다. (4343.10.19.불.ㅎㄲㅅㄱ)


― 안돼 삼총사 (나카야마 치나츠 글,하세가와 요시후미 그림,장지현 옮김,웅진주니어 펴냄,2007.7.10./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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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수레에 아이를 태우고 한 번 달렸기 때문인가. 예전에는 꼬마자전거 뒷자리에 죽어도 안 앉겠다 하던 녀석이 꼬마자전거 뒤에 앉아서 언니들보고 '달려' 하고 외친다. 이웃 언니 가운데 한 아이 즐겁게 태워 주었다. 

- 201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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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동네마다 꽃잔치집이 있어 동네를 환하면서 곱게 빛내어 줍니다. 제아무리 큰돈을 들이거나 대단하다는 재개발정책을 내놓아도 꽃잔치집을 만들지 못합니다. 

- 2010.10.8. 인천 남구 숭의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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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사람 - 이문열 조정래 백낙청 김민수 김상봉 김종철을 만나다
이명원 지음 / 이매진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지식인들 수다는 왜 재미없을까
 [책읽기 삶읽기 13] 이명원, 《말과 사람》



 문학평론을 하는 이명원 님이 지식인이라 할 만한 여섯 사람을 만난 이야기를 책 하나로 묶었다. 이문열, 조정래, 백낙청, 김민수, 김상봉, 김종철, 이렇게 여섯 사람이다. 여섯 사람 발자취를 곰곰이 더듬는다면 틀림없이 이 여섯 사람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따로 한 권씩 책으로 낼 만하다. 모두들 할 말이 많은 사람이며, 늘 숱한 말을 내어놓는 사람이다. 이들이 왼쪽에 있든 오른쪽에 있든, 또는 어중간하게 있든 대수롭지 않다. 어느 쪽에 있거나 스스로 줏대 단단히 세우며 살아가면 된다. 어느 쪽에서 무얼 하든 옳고 바르며 참된 넋으로 착하고 사랑스러우며 곱게 살아간다면 된다.

 이명원 님은 문학평론을 하기 때문에 《말과 사람》이라는 책에 실린 여섯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주 마땅하다. 이명원 님으로서는 헌책방 일꾼이라든지, 분식집 아줌마라든지, 시골버스 기사라든지, 농사짓는 할배라든지, 이주노동자 아무개 씨라든지, 제도권 학교를 일찌감치 떠난 아이라든지 만나기 어렵다. 아니, 만날 수야 있으나 이들한테서 깊고 너른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거나 고맙게 얻어 듣기는 힘들다.

 사람들을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를 책으로 바지런히 엮는 지승호 님이 있다. 이이는 ‘사람들한테서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꽤 여러 권을 엮었다. 참 마땅한 일이다만, 이 나라에는 이와 같은 책이 퍽 드물다. 모든 책이란 따지고 보면 ‘사람 사는 이야기’인 만큼, 저마다 다 달리 살아왔으나 따로 스스로 내 삶을 글로 쓸 겨를을 못 내는 사람한테서 몇 시간이나 며칠쯤 이야기를 듣는다면 책 한 권이 저절로 나온다. 사람들은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어 당신 이야기를 책으로 알뜰히 묶지 못해서 그렇지, 어떤 사람이든 당신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놓고 보면 몹시 재미나다. 이름난 사람 이야기이건, 이름 안 난 사람 이야기이건 매한가지이다. 온누리에 이름값을 떨친 적이 없을 뿐더러 이름값 떨칠 일조차 없던 우리 할머니 삶이든 옆집 아줌마 삶이든, 이분들은 하루하루를 견디거나 즐기거나 받아들이면서 눈물과 웃음으로 살아냈다. 이분들이 살아낸 삶이 바로 책이며 ‘감동’이다. 다만, 지승호 님이라든지 이명원 님이 내놓은 책은 제법 이름있거나 꽤 널리 알려진 사람들 삶자락에서 맴돈다.

 《말과 사람》이라는 책은 꽤 재미있다. 먼저, 소설쓰는 이문열 님 이야기를 맨 앞에 실어 더욱 재미있다. 《말과 사람》에 실린 이문열 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분이 오롯이 소설쓰기에 온마음 바칠 수 있었다면 노벨상을 노릴 수 있었겠구나 싶기도 하다. 다만, 노릴 수는 있으나 탈 수는 없겠지. 왜냐하면 소설쓰기에만 온마음을 바친다면 소설에 깃드는 글월을 한껏 빛내거나 훨씬 잘 매만질 수야 있다만, 소설이라는 문학에 담는 줄거리에서 밑바탕이 될 ‘글쓴이 삶’은 한껏 북돋우거나 훨씬 아름다이 여밀 수 없으니까. 글만 잘 쓴다 해서 소설이 아니다. 글솜씨 빼어나고 짜임새 대단하며 줄거리 돋보인다 해서 문학이 아니다.

 그런데, 《말과 사람》이라는 책이 더 재미있으려면 어슷비슷한(?) 사람들을 여섯 만나기보다, 아주 다른 자리에서 사뭇 달리 살아가는 사람들을 여섯 만났어야 하지 않느냐 싶다. 아니면, 아예 한 갈래 지식인들만 만나든지.

 《말과 사람》에 실린 여섯 사람 삶을 헤아려 본다. 이분들 삶은 그리 안 다르다 할 수 있다. 한통속으로(?) 묶을 만하니 이렇게 여섯 사람 이야기를 그러모을 수 있다. 또한, 엮은이 이명원 님 삶이 이 여섯 사람하고 비슷하게 흐르니까 이들 여섯 사람을 만날밖에 없기도 하다. 잡지 〈녹색평론〉을 내는 김종철 님은 ‘한국땅에서 변두리라는(?) 대구’를 떠나 아예 서울로 옮겼는데, 이 책을 낼 무렵에는 아직 대구를 송두리째 버리지는 않고 서울에서 오래 머물며 책을 만들었다. 이명원 님은 김종철 님 같은 사람이라면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갔음직한데 외려 서울 한복판으로 들어오니 아리송하다고 말한다. 맞는 얘기이다. 김종철 님은 “몸이 편안해지자 자기도 모르게 생각들도 작아지고, 왜소해지는 것이다 … 우리 문학을 보면 결국 땅에서 멀어지니까 야생의 정신이랄까 하는 게 점점 희박해지는 것 같다(218, 219쪽).” 하고 말한다. 김종철 님은 다른 지식인을 놓고 이렇게 이야기했으나, 나로서는 김종철 님 당신 삶이 이와 같다는 소리가 아닌가 하고 느낀다. 왜 김종철 님 같은 분이 스스로 땅하고 더 가까와지고자 하지 않는가. 왜 이 땅에 두 다리 튼튼하게 박으려 하지 못할까.

 교수 자리에서 쫓겨난 김민수 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이명원 님은 “해직이 되고 보니 그동안 피상적으로 사회를 읽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121쪽).”고 말한다. 이는 김민수 님도 매한가지이다. 교수 자리에서 쫓겨나 강단이라는 울타리가 아닌 ‘수수한 여느 사람들 자리’를 밟으며 돌아다닐 겨를이 나면서(강의를 할 수 없어 생긴 말미) 이 나라를 더 깊이 보거나 더 널리 살필 수 있었단다. 다만, 김민수 님이나 이명원 님이나 ‘겉훑기로 이 나라를 보았다’고 생각은 하지만 뉘우치기까지는 하지 못한다. 부끄러워 하거나 남우세스럽다 여기지 못한다.

 조금 더 시금털털할 수는 없는가. 조정래 님은 “보수 세력들은 별다른 노력 없이 민주화 세력의 정치적 무능 때문에 기득권을 회복하고 있다(48쪽).”고 말한다. 맞는 말이며 옳은 소리이다. 진보 세력이든 개혁 세력이든, 또는 열린 마음이나 깨친 넋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든, 나 스스로 참다웁고 착하며 고운 삶을 일구어야 한다. 참다웁고 착하며 곱게 살아가며 이러한 삶을 글로 담고 책으로 엮을 노릇이다. 처세와 돈굴리기를 다룬 책이 참말 잘 팔리는 흐름을 슬퍼하기 앞서, 사람들이 즐거이 읽을 글을 담은 책을 내놓을 일이다. 이명원 님은 여섯 지식인과 만나서 들은 이야기로 당신 깜냥을 가다듬거나 북돋았구나 싶은데, 이렇게 주워듣기로만 책을 엮어서는 널리 읽자고 건넬 만큼 깊거나 너른 책이 되기는 힘들다.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나를 더 낮추거나 더 드러내야 한다. 내 목소리를 아예 지우거나 내 목소리를 훨씬 키워야 한다. 스승한테서 배운다는 매무새로 이야기를 듣거나, 동네 깡패한테 뜨거운 맛 좀 보여주겠다는 몸가짐으로 타일러야 한다. 여러모로 재미있다 싶을 짜임새이며 이야기책이 될 만한 《말과 사람》이지만 적잖이 어중간한 자리에서 머물고 만다. 아직 이명원 님한테는 ‘글읽기’가 익숙하고 ‘삶읽기’는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모른다. 지식인이 끄적여 내놓는 글은 읽더라도 지식인이 살아가며 몸으로 보여주는 삶은 읽지 못하는 탓인지 모른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어차피 이렇게 우리 사회 지식인 생각을 귀담아듣는 이야기책을 엮으려 했다면 ‘남자 지식인’ 여섯을 따로 하나, ‘여자 지식인’ 여섯을 따로 하나 묶으면 어떠했으랴 싶다. 그런데, 지식인이라 하면 남자이든 여자이든 엇비슷할는지 모르겠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지식인이라는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않으니까. 나는 지식인보다는 ‘살림꾼(생활인)’이 좋은데, 살림꾼을 만나 이야기를 즐거이 들으며 찬찬히 갈무리하는 모습을 보기는 몹시 어렵다. 이를테면 만화쟁이 장차현실 님 같은 분하고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면 얼마나 남다르며 재미날까. 애를 둘 키운 공선옥 님 같은 분하고 만나 삶을 나누었다면 얼마나 새삼스러우며 맛깔스러웠을까. (4343.10.19.불.ㅎㄲㅅㄱ)


― 말과 사람 (이명원 엮음,이매진 펴냄,2008.11.24./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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