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글쓰기 삶쓰기 ㉠ 말을 가꾸고 글을 일구기


 말사랑벗님은 글쓰기 숙제를 얼마나 하는가요. 책을 읽고 나서 느낌글을 쓰라는 숙제나, 일기를 쓰라는 숙제나, 어디 현장학습 다녀와서 보고서 쓰라는 숙제 들을 하는지요?

 저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니는 동안 글쓰기 아닌 글짓기 숙제를 몹시 많이 하며 살았어요. 국민학교라는 이름이 붙은 초등학교 여섯 해를 다닐 때에는 무엇보다 일기쓰기가 가장 벅찼습니다. 그때 일기는 한 주에 세 번 넘게 써야 매를 안 맞았어요. 한 주에 사흘치를 썼더라도 일기를 쓴 길이가 일기장 한쪽 2/3를 넘지 않으면 안 쓴 셈치고 똑같이 매를 맞았고요. 한 주에 너덧새는 일기를 쓰라는 소리를 들었고, 한 주에 예닐곱 날치 일기를 쓴 아이들은 선생님이 따숩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저 같은 동무들한테서 부러움을 샀어요.

 다달이 느낌글 쓰기가 아닌 독후감 숙제를 해야 했고, 두어 달에 한 차례씩 반공 글짓기를 하면서 웅변처럼 발표를 해야 했습니다. 한 달 걸러 과학 글짓기를 하고, 군인 아저씨께 올리는 위문편지를 쓰는 한편, 부모님께 띄우는 효도편지를 써야 했어요. 게다가 한 해에 몇 차례씩 동시쓰기까지 했어요. 방학을 맞이하면 방학숙제로 여행글 쓰기까지 해야 했습니다. 제 둘레에는 가난한 동무가 많아 여름이고 겨울이고 방학이라 해 보았자 어디 나들이 다니지 못하는 아이가 많았기에, 다른 글보다 여행글 쓰기를 아주 힘들어 했습니다.

 한편, 날마다 받아쓰기를 하고, 교과서 베껴쓰기 숙제를 했어요. 히유, 이제 와 돌아보면 그때 학교를 어떻게 꾹 참고 다녔나 모를 일이에요. 숙제만 해도 한 가득인데요. 중학교에 들어서자 ‘깜지’라는 이름으로 손목이 달아날 만큼 힘겨운 베껴쓰기 숙제를 날마다 수없이 해야 했습니다. 초등학생 때에 교사들이 베푸는 매질은 가벼운 어루만짐이라 느낄 만큼, 중학생 때부터는 큼직한 나무몽둥이에 골프채에 밀걸레 자루에 곡괭이 자루에 야구방망이에 …… 선생님들은 매타작을 하러 학교에 나오는가 싶도록 ‘베껴쓰기 숙제 안 한 아이를 두들겨패며’ 하루를 보냈어요.

 열두 해에 걸쳐 학교를 다니는 동안 이처럼 매질하고 글짓기가 어우러지다 보니, 제 동무들 가운데 ‘글 좀 쓰라’는 이야기를 달가이 맞아들이는 녀석은 거의 없어요. 다들 몸서리를 쳐요. 글을 어떻게 쓰느냐는 둥, 글을 왜 쓰느냐는 둥 이야기합니다. 말사랑벗님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어떠한가 궁금하네요.

 가만히 돌아보면, 글을 써서 내 마음을 나타내는 일은 몹시 뜻이 있습니다. 쓸모가 있고 보람이 있어요. 그렇지만 글을 써서 내 마음을 이웃하고 나누도록 즐거이 이끄는 몫을 우리네 학교에서는 제대로 맡지 못했어요. 제가 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한 반에 아이들 숫자가 지나치게 많기도 했고, 교사마다 주어진 행정업무 짐이 참 컸습니다. 그러나, 이와 맞물려 더 벅차며 무거운 짐이나 굴레는 대학입시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학교며 사회며 정치며 문화며 온통 ‘더 이름나고 훌륭하다는 대학교로 보내는 일’에 얽매였으니까요.

 저는 고등학생 때 릴케 시집이나 황순원 소설책을 선생님한테 빼앗기곤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교과서와 참고서 아닌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 모조리 ‘불온도서’로 여겼어요. 지난해였나, 우리나라 국방부에서 불온도서를 스물 몇 가지인가 꼽으며 이런 책을 군인한테 읽히지 못하도록 한 적 있는데, 이 불온도서 가운데에는 동화쓰는 권정생 할아버지가 쓴 《우리들의 하느님》 같은 책도 끼었어요. 그저 우리한테 ‘첫손 꼽는 대학교에 들어갈 생각만 하라’고 짓누르는 흐름이 아직까지 이어지는 모습이라 할까요. 초등학교부터 아이들을 짓누르고 길들이면서 홀가분하거나 너그러운 마음꽃이 피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고 할까요. 아니, 초등학교에 앞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갖가지 지식그림책과 과학동화를 읽히니까, 모두 똑같은 틀에 똑같은 생각에 똑같은 눈길로 살아가도록 옥죈다고 할까요.

 좋은 책 하나를 좋은 넋으로 읽으면 좋은 삶을 일구는 밑거름을 넉넉히 다스리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애 아빠인 저부터 학교를 다니는 말사랑벗까지, 누구나 좋은 책 하나로 좋은 넋을 보듬고 좋은 삶을 일구면서 하루하루 아름다이 여미면 즐겁습니다. 이처럼 좋은 삶이라 느끼며 하루하루 아름다이 여밀 때에, 이 같은 결과 무늬와 빛깔이 내 넋으로 곱게 아로새겨지고, 내 넋이 곱게 아로새겨질 때에 내 말 또한 곱게 아로새길 수 있습니다.

 글쓰기를 한다고 할 때에는, 머리로 이 생각 저 생각 쥐어짜서 글을 써서는 내가 읽어 보아도 따분하며 싱거운 글만 쏟아지지만, 나 스스로 내 삶을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가운데 꾸밈없이 한 줄 두 줄 적바림하노라면, 내가 내 글을 읽으면서 빙긋 웃거나 뚝뚝 눈물을 흘려요. 가슴으로 책을 읽듯이, 가슴으로 글을 씁니다. 가슴으로 책 줄거리를 받아들이듯이, 가슴으로 내 삶을 일구면서 이 이야기를 글로 담아요. 말을 가꾸는 일이란 삶을 가꾸는 일이고, 삶을 가꿀 때에 바야흐로 빛나는 말 하나 알뜰살뜰 얻어요. 글을 일구는 일이란 삶을 일구는 일이고, 삶을 일굴 때에 비로소 알찬 글 하나 기쁘게 얻습니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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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을 읽는 삶과 책과 사람
 [책읽기 삶읽기 33] 김점선, 《점선뎐》



 책이란 줄거리읽기가 아닌 삶읽기입니다. 책이란 지식쌓기가 아니라 이야기나눔입니다. 책이란 정보찾기가 아닌 마음읽기입니다.

 어느 책 하나를 읽으면서 줄거리를 헤아리기만 한다면 참으로 덧없습니다. 흔히들, 초·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책을 읽히고 나서 독후감을 쓰도록 하는데, 이 독후감이라는 글을 읽으면 하나같이 줄거리를 간추려 줄줄줄 늘어놓기만 합니다. 한자말 ‘독후감’이란 “읽은 다음 느낌”을 뜻하는데, 정작 아이들한테 독후감을 쓰라 하는 어른들부터 독후감이 어떻게 써야 하는 글인 줄 제대로 모릅니다. 차라리, 우리 말로 쉽게 ‘느낌글’을 쓰라 이야기한다면, 아이들도 줄거리 간추리기에 허덕일 일은 좀 줄지 않으랴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름만 느낌글로 고쳐서 쓴다 한들, 독후감이든 느낌글이든 책을 읽고 나서 글 하나를 쓴다 할 때에, 또는 신문이나 잡지 같은 데에서 ‘책 소개 기사’를 싣는다 할 때에 보면, 어김없이 줄거리 늘어놓기에서 허덕입니다.

 어느 책 하나를 찾고 장만하여 읽어서 얻는 삶이란 고작 줄거리에 머물 뿐인 오늘날 대한민국입니다. 책 하나 읽으며 아름다운 삶을 만났다는 느낌글을 찾아 읽기 너무 힘듭니다. 책 하나 읽으면서 글쓴이하고 살가이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느낌글을 마주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책 하나 읽고 난 다음, 글쓴이뿐 아니라 내 둘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하고 마음읽기와 마음얘기를 나누도록 새로 태어나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 동료가 훌륭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것은 곧 내 또래도, 그래서 나 자신도 훌륭할 수 있다는 느낌이었다. 사물을 독자적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일, 그것은 훌륭한 일이고, 칭찬받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 시골사람들은 그걸 자선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너무나도 당연히 나누어 먹는다. 무엇이든 나눈다. 정보도 나누고 우환도 나눈다. 그런 나눔 문화는 취미생활이나 여가활동이 아니다 ..  (37, 216쪽)


 그림쟁이였던 김점선 님 발자국을 찬찬히 아로새긴 책 《점선뎐》을 읽었습니다. 김점선 님은 당신이 그리고픈 대로 그림을 그렸다 합니다. 김점선 님은 당신이 살고픈 대로 한삶을 보냈다 합니다.

 김점선 님 그림이 좋은지 안 좋은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딱히 제 마음이나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이 아니라 더욱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누구 그림을 흉내내어 그렸다고는 느끼지 않아 반갑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이라 해서 더 훌륭한 그림일 수 없어요. 제가 안 좋아하거나 몰라보거나 눈길을 안 두는 그림이라 해서 덜 떨어지거나 형편없는 그림일 수 없습니다. 그저 그림은 그림입니다.

 김점선 님이 꾸린 삶 또한 ‘좋다 나쁘다’라 잘라말할 수 없습니다. 김점선 님 삶은 그예 김점선 님 삶입니다. 김점선 님 스스로 좋아하는 대로 즐겼다고 흙으로 돌아간 삶이면 넉넉합니다. 아쉬울 대목이란 슬플 대목이란 서운할 대목이란 없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따라 씩씩하고 힘차며 슬기롭게 걸어가면 될 삶입니다.


.. 그전까지 어른들이 내 앞에서 자기 자신을 조금이라도 낮춰 본 적이 없었다. 어른들은 한결같이 의욕에 차서, 욕망에 부풀어 터질 듯한 모습이었다. 그때까지 어른들은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면서, 너희들이 뭘 아니 하면서 잘난 체하든지, 나를 소외시키든지 했었다 … 내가 실컷 놀고 들어가서 져넉 밥상머리에서 오늘은 이런저런 놀이를 했다며 즐겁게 떠들면 어머니는 자기도 어려서 그런 놀이를 했었는데 아주 신이 났었다고 하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가 친구같이 여겨져 아주 기분이 좋았다 … 나는 우리 나라에서 활기차게 아무 데나 다니면서 아무나 만나면서 천진난만하게 살고 싶다 ..  (51, 61, 310쪽)


 책이란 내가 좋아하는 삶에 걸맞게 찾아서 만나는 읽을거리입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삶을 억지스레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꾸릴 수 없습니다. ‘뜻을 이룬다(성공)는 생각으로 이름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자꾸 엉뚱한 데로 흐르도록 한다면 참 안쓰럽습니다. 한 나라에서 손꼽히는 그림쟁이가 되어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온누리에 첫손 꼽히는 그림쟁이로 사랑받아야 할 까닭이 있나요.

 나는 내 삶터에서 내 그림을 좋아하며 내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넉넉합니다. 김점선 님은 다른 사람 말고 김점선 님 스스로 당신 삶을 사랑하며 당신 그림을 좋아하면 넉넉합니다.

 《점선뎐》이라는 책, 이른바 김점선 님 자서전은 당신 스스로 죽음이 곧 다가왔구나 하고 깨달으며 허물없이 털어놓은 이야기책입니다. 김점선 님 스스로 당신 삶을 참다이 사랑했는지, 거짓스레 사랑한다 말했는지, 아쉬움은 있는지, 얼마나 즐거운 삶이었는지를 곰곰이 돌아보며 적바림한 일기장입니다.


.. 홀로 나의 길을 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스스로 자신이 가장 원하는 짓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철학적인 사고체계 같은 거는 다 바다에 처넣어 버리고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 결국 그림도 생각을 벗어난 행위는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생각을 더 많이 해서 생각이 가지게 되는 해석마저 제거해야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 청년실업이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지금의 청년들을 기른 어른들 자체가 일률적인 가치관이니 이 꼴이 된 것이다. 청년의 부모들이 오직 밥 먹고 사는 데 허덕이던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  (110, 111, 274쪽)


 책을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김점선 님 이야기책은 그다지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림쟁이 한 사람 삶은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어디에나 있는 흔한 삶이요 어디에서나 보는 여느 이웃입니다.

 박수근이면 어떻고 이중섭이면 어떠하겠습니까. 박수근이든 이중섭이든 김점선이든, 하나같이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간 이웃입니다. 또는 동무입니다. 때로는 동생이고, 누군가한테는 살붙이일 테지요.

 대단하다 싶은 사람이 쓰는 자서전이 아닙니다. 내 삶을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쓸 자서전입니다. 많은 사람들한테 널리 읽히려고 쓰는 자서전이 아닙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돌아보며 내 한길이 얼마나 즐거웠는가를 짚어 보고자 쓰는 자서전입니다.

 자서전은 뉘우치는 책이 될 수 있고, 아쉬워하는 책이 될 수 있습니다. 삶이 저물고 죽음 문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내 한삶을 되짚는 가운데 내 뒤에 선 숱한 사람들한테 한 마디 남겨 놓는 선물입니다. 막상 죽음을 코앞에 두고 보니, 내가 걸어온 길이 나한테 어떠하더라 하고 이야기를 걸면서, 한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서 보배롭게 보듬을 대목이란 무엇이더라 하고 깨달은 여러 가지를 적바림하는 일기장입니다.


.. 무언가를 아끼고 무언가를 조심하느라 주춤거리고 그러면서 좋은 작품이 나오리라고 기대하는 자는 예술가가 아닌 협잡꾼이다 ..  (386쪽)


 김점선 님은 “대기업 앞에 길게 줄서는 청년들의 머리속에, 일류대학에 목맨 부모나 학생들의 머리속에 다른 꿈을 심어 줘야 한다(274쪽).”는 이야기를 남기며 삶을 마무리짓습니다. 생뚱맞은 이야기가 되려나요. 자서전이라는 글을 쓰면서 이 같은 이야기를 적는 사람은 좀 엉뚱하다 싶으려나요. 그렇다고 김점선 님이 제도권 교육을 나무란다든지 자율학습·보충수업 때문에 아이들이 얼마나 시들어 간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잘 안다거나 손사래치는지는 알 노릇이 없습니다. 다만, 사람이 사람다이 살다가 사람다이 죽는 길을 즐거이 걷자면, 누구보다 당신과 당신 아이를 생각한다면, “대기업 앞에 길게 줄서는 청년들의 머리속에, 일류대학에 목맨 부모나 학생들의 머리속에 다른 꿈을 심어 줘야 한다.”는 말을 되뇔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책을 읽는 삶은 사람을 읽는 삶입니다. 사람을 읽는 삶은 마음을 읽는 삶입니다. 마음을 읽는 삶은 사랑을 읽는 삶입니다. 대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대학교이든 갤러리이든 청와대이든 모두 사랑이 아닌 돈입니다. (4344.1.5.물.ㅎㄲㅅㄱ)


― 점선뎐 (김점선 글·그림,시작 펴냄,2003.3.2./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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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여름날 아직 인천에서 살던 때에 써 놓은 글입니다. 

삶은 아름다운 사랑인가 쓰레기더미인가
― 백민, 《문답으로 풀어 본 문학 이야기》
 


- 책이름 : 문답으로 풀어 본 문학 이야기
- 글 : 백민
- 펴낸곳 : 현장문학사(1990.2.25.)



.. 이 시에 보면 우리 노동자의 일반적인 심리가 잘 지적되어 있습니다. 어두운 조명등 아래서 찢어지는 팝송을 들으면서 미싱을 박는 우린, 사람들이 무식하고 답답하다고 강요하는 의식 속에서 살지요. 그런데 그것은 바로 노예의식이고 ‘못 배운 게 죄’라는 자본가의 생각입니다 ..  (19쪽)


 옆지기가 가지고 왔던 고양이 노리개는, 고양이 열 마리를 모두 길로 내보낸 뒤에는 옥상에서 비를 맞으며 썩어 갔습니다. 집에 들여놓을 수 없어 바깥에 둔 노리개였는데, 이제는 버려야 할 판이 되었습니다. 가게에서 100리터짜리 큰 쓰레기봉투를 둘 사 와서 꾸역꾸역 담습니다. 비가 오락가락 하다 보니, 쓰레기차가 지나갈 때 내놓아야 하는데, 선뜻 내놓지 못합니다. 오늘도 빗줄기가 조금씩 듣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질구레한 쓰레기 몇 가지를 큰 봉지에 눌러 담으면서, 우리 집에서 언제 쓰레기를 내놓았는가 헤아려 봅니다. 글쎄, 거의 없었지 싶은데. 우리 집에서 쓰레기가 안 나와서 내놓지 않았는가? 그런가? 그러고 보면, 웬만한 물건은 다시쓰기를 하려고 버리지 않았으며, 쓰레기가 될 만한 물건을 사들이는 일이 없으니, 내다 버릴 물건이 거의 없습니다.

 그때그때 먹을 만큼만 날푸성귀를 사다가 먹는데, 집에서 뒹구는 비닐봉지와 장바구니를 꼬박꼬박 챙기고 있기에 새 비닐봉지가 더 생기지 않습니다. 과자부스러기 군것질을 안 한다면, 전자제품 바꾸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도시에서 살면서도 쓰레기 나올 일은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우리 식구는 손빨래를 하고 텔레비전이나 냉장고조차 안 쓰니, 이런 데에서도 살림은 단출하다고 할 만하겠지요.


.. 이런 식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우린 우리 자신의 실생활을 성찰하고 변혁시킬 글을 쓰지 못하는 겁니다. 글쓰는 일뿐만 아니라 교과서에서 심어 준 ‘문학은 부드럽고 편안하고 초역사적이다’라는 고정관념은 우리가 해야 할 실천의지를 망각하게 합니다. 또한 교과서에 ‘문학비평 글’이 실리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청소년 시절에 건전하게 비평, 비판하는 훈련을 못 배웠기에 참고서에 씌어진 대로 암기만 하는 꿀벙어리로 자라났죠 ..  (37쪽)


 다만, 우리 집 살림에서 책이 거의 모두를 차지합니다. 한 번 보고 버리는 물건이 아닌 책인 터라, 한두 번씩 읽은 뒤에도 고스란히 모입니다. 부피는 크지 않다지만, 열 권이 넘고 백 권이 넘고 천 권이 넘다가 만 권도 넘어가면, 장난이 아닌 부피가 되어 버립니다.

 마음에 새기는 책이기 때문에, 한 번 마음에 새기고 나서는 다른 이한테 물려주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내가 읽은 책을 틈틈이 헌책방에 내놓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 집살림 크기를 줄이고, 좋은 책을 이웃과 두루 나눈다는 뜻으로.

 우리 식구는 동네 도서관을 차렸습니다. 책을 버릴 수 없는 일을 하며 삽니다. 이러다 보니, 여느 살림 쓰레기는 거의 없지만, 앞으로 집을 옮겨야 할 일이 있다면 아주 끔찍하게 되겠다고 느낍니다. 집을 옮길 걱정이 없이 살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한테 돈이 적고 많고를 떠나서, 지자체나 중앙정부에서 ‘재개발 계획’을 세우면, 우리 살림터는 고스란히 내어주고 떠나야 합니다.


.. 삶이라는 샘물에서 시의 생수를 끌어내기 때문에, 우린 감동하는 겁니다. 이런 시는 구체적인 체험 없이는 쓰지 못하는 거죠 ..  (123쪽)


 책상맡에 앉아 이 책 저 책 들추어 보다가 한동안 책을 덮습니다. 등을 책꽂이 한쪽 벽에 기대고 천장을 올려다봅니다. 오늘 우리 집에 있는 이 책들은 나한테 무슨 뜻이 있을는지 헤아립니다. 이 책들을 읽은 나는 무엇을 읽고 배웠는지 곱씹습니다. 책 하나와 내 삶 한 자락을 어떻게 다독이는가 생각합니다.

 이 책들은 우리한테 얼마나 참다운 삶을 가르쳐 주거나 내보이는가를 돌아봅니다. 이 책들은 엮은이가 얼마나 땀을 흘려서 엮었을는지 곱씹습니다. 글쓴이나 그림그린이나 사진찍은이 삶이 얼마나 속깊이 스며들었을까 가누어 봅니다. 무엇을 바라면서 펴낸 책인지 톺아보고, 누구한테 읽히고자 묶은 책인지 가누며, 어떤 누리를 꿈꾸면서 내놓은 책인지 곰곰이 짚어 봅니다. (2008.6.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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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아 먼길 떠나는 발걸음
― 김찬삼, 《끝없는 여로, 세계일주무전여행기》



- 책이름 : 끝없는 여로, 세계일주무전여행기
- 글·사진 : 김찬삼
- 펴낸곳 : 어문각 (1962.1.10.)



 1960년대 사람들 눈길로 1960년대 우리 나라를 돌아보는 가운데, 1960년대 나라밖 여러 사람들을 굽어살피는 《끝없는 여로》를 읽습니다. 어느덧 쉰 해나 흐른 오늘날 헤아린다면, ‘《끝없는 여로》에서 김찬삼 님이 나무라는 일본사람 모습’이란 바로 ‘한국사람 오늘날 모습’이기도 하며, 구태여 일본을 손가락질하기 앞서 우리네 삶자락부터 찬찬히 되씹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해방된 지 열대여섯 해 즈음인 1962년에 생각하는 일본이라는 나라는, 한국사람으로서 얼마나 못마땅하려나요. 그런데 못마땅한 모습은 못마땅한 모습이지만, 일본사람이 땀흘리거나 애쓰는 삶은 이러한 삶대로 바라보는 가운데, 모자라거나 구슬픈 모습은 모자라거나 구슬픈 모습대로 삭여야지 싶어요.

 남 눈치를 볼 일이 없기도 하지만, 남이 잘하거나 못하거나 할 때에 추켜세우거나 깎아내리기보다는 나부터 내 삶을 얼마나 아름답거나 알차게 일구는가를 살필 노릇이니까요. 남들이 미역국을 먹든 김치국을 먹든 내 밥상에 무슨 국을 올리는가를 살필 일입니다.


.. 파리서 만난 일본 어느 상업 미술가가 무대배경 진열 강좌의 밑천이 떨어져 왔노라고 하던 것이 생각났다. 이렇듯 일본은 창조라기보다 모방의 밑천을 줍는 것인가 하고 일본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했다. 그리고, 세이론에서 사귄 독일 여성이 독일제 물품이 일본제 때문에 타격을 받으며, 일본 제품은 값은 싸지만 실질적인 것이 못 된다고 하며, 독일제는 결코 눈속임으로 만들지 않는다고 하던 말이 옳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 현재는 일본 물건이 판을 치고 있지만, 유럽을 따르기는 어려우며, 더구나 일본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유럽을 따르려면 아직도 멀 것만 같았다. 일본 출판물을 보면 외국 못지않게 꾸몄으며, 독서들도 많이 하지만, 일반 생활용어엔 상소리가 많은 것으로 보아 문화민족이라고는 볼 수 없지 않을까! 게다가 건축미술 수준은 더욱 그렇다. 최근에 지었다는 도오쿄오의 빌딩도 수백 년 전의 프랑스 샨제리제를 감히 따라가지 못하니 말이다. 그러나, 구미에선 사고방식이 기계화되었으며, 남이 뭘 하든 참견하지 않으며 냉정한데, 일본은 인구 과잉인지 사람들이 친절하며 심지어 사람이 없어도 되는 에스칼레타에까지도 여자가 달려 있어 친절히 인사하는 것이다 ..  (358쪽)


 김찬삼 님은 쉰 군데 넘는 온누리 여러 나라를 돌면서 갖가지 일을 겪습니다. 아프리카땅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인종차별을 겪으며 소리높여 다투지만 살갗 하얀 신문기자도 목사도 온통 살갗 까만 사람들한테 숱한 문화와 문명을 심으며 도와주었는데 고마워할 줄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적습니다.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칠리(칠레)’에서는 어느 여학교에 초대되어 사회생활과 시간에 들어가서 한국을 소개하는 사진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그러면서 역사에 남긴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는 정말 적면赤面할밖에 없었다. 내가 갔을 때는 마침 칠리의 독립기념일(9.18.)이 며칠 남지 않은 때라 학교에서도 그 행사준비가 한창이었다(161쪽).”는 이야기를 적습니다.


.. 이번 여행을 돌이켜보건대, 새로운 세계의 모습을 보는 기쁨도 그지없었읍니다만, 그 반면에 눈물 흘린 때도 여러 번 있었읍니다. 내가 곤궁에 빠졌을 때가 아니라, 낯선 나라 사람끼리 민족의식을 초월하여 세계의 비극에 공감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지상의 모든 사람은 분명 사랑에 굶주리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읍니다 ..  (9쪽)


 1962년 1월에 1쇄를 찍은 여행책 《끝없는 여로》는 1965년 6월에 자그마치 16쇄를 찍습니다. 사람들은 오래된 책을 헌책방에서 사거나 팔 때에 으레 ‘첫판’을 높이 치거나 여기지만, 저는 첫판보다 2쇄나 3쇄나 10쇄 같은 책을 좋아합니다. 아니, 몇 쇄로 찍은 책이건 그리 따지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거나 빈자리에 이 생각 저 마음 끄적이기 때문에, 되도록 깨끗하거나 밑줄이 없는 책을 좋아합니다. 꽤 묵은 책들이면서 첫판이면 으레 값이 비싸지만, 첫판이 아니라면 제법 값이 눅곤 합니다.

 첫판을 더 높이 사기도 하지만, 쇄가 많은 책은 많이 찍어 많이 팔린 만큼 조금 더 쉬 만날 수 있다 할 만하니 값이 눅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첫판 아닌 책들은 내가 찾으려는 묵은 책이 지난날 몇 쇄나 찍어 얼마나 사랑받았는가를 헤아리는 잣대가 되곤 합니다. 이제는 문닫고 사라진 출판사라면 어느 책 하나를 몇 부 찍었는가 도무지 알 수 없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튼튼히 선 출판사일지라도 서류를 제대로 건사하지 않았다면 몇 부나 팔렸는가 모를 수 있어요. 헌책방에서 마주하는 책들 간기를 보며 얼마쯤 되겠거니 어림합니다.


.. 스토크호름(스톡홀름)엔 운하가 많다. 문화 수준이 높으며, 국왕도 도보로 호위 없이 걸으니 얼마나 민주적인 나라인가! 이 서울의 인구는 700만인데, 법률 없이도 살 수 있는 국민 같다. 그들의 어진 얼굴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느끼게 된다 ..  (339쪽)


 이제 세계여행은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을 뿐더러, 딱히 땡전 한 푼 없이 맨몸으로 온누리를 밟아 보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온누리 삶터가 많이 바뀌기도 했을 테지만, 제아무리 사람들과 삶터와 나라가 바뀌었달지라도 내 모두를 훌훌 털면서 밑바닥부터 복닥이고자 애쓰는 사람이 몹시 줄거나 거의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마음씨 따스한 사람은 예나 이제나 따스하고, 마음결 차가운 사람은 이곳에서나 저곳에서나 차갑습니다. 지난날 김찬삼 님은 더 많은 나라를 더 오래오래 다니려는 발걸음이라기보다, 이 나라에도 넉넉히 있는 따스한 사랑을 이웃한 나라에서도 넉넉히 마주하고픈 꿈을 꾸며 길을 나섰으리라 느낍니다. 좋은 넋과 좋은 꿈이라면 나부터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면서 좋은 동무를 사귑니다. (4344.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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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만들기


 주말에 서울에 볼일이 있어 가는 김에, 일산 옆지기 어버이 댁에 들르기로 한다. 옆지기 어버이 댁에 들르기 앞서, 선물로 드릴 사진을 만든다. 첫딸 사름벼리가 시골집에서 복닥이며 노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큰 녀석과 작은 녀석 두 가지로 만든다. 사진찍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사진 선물. 글쓰는 사람한테는 구슬땀 흘려 내놓은 책이 가장 좋은 선물이 되겠지. 왜냐하면 사진찍기와 글쓰기를 빼고 딱히 내놓을 만한 재주가 없고 돈도 없으니까. (4344.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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