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손이 - G&S 어린이 만화 5
이두호 지음 / 게나소나(G&S)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착하게 살면서 아름다이 마주하기
 [만화책 즐겨읽기 19] 이두호, 《두손이》



 우리가 날마다 꾸리는 삶을 담는 길은 여럿입니다. 첫째로는, 몸뚱이입니다. 살붙이랑 동무랑 이웃이랑 복닥이는 그대로 내 삶을 담습니다. 이야기꽃을 피우고 살림을 꾸리는 결 그대로 내 삶을 보여줍니다.

 둘째로, 노래와 춤입니다. 구성진 노래도 부르고 해맑은 노래도 부릅니다. 신나게 춤을 추고 구슬핀 몸짓을 실어 손짓 발짓 몸짓을 합니다.

 셋째로, 그림입니다. 흙땅에 나뭇가지로 그리든 종이에 먹을 찍거나 연필을 들든 그림을 그립니다. 넷째가 글이고, 다섯째가 오늘날 사진입니다. 영화와 연속극도 내 삶을 담는 길이 됩니다.

 생각해 보면, 그림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종이에 남아 오늘까지 이어진 작품으로 쳐도 오래되었으나, 작품으로 남지 않고 동굴그림이나 벽그림으로 남은 그림도 몹시 오래되었습니다. 흙땅이나 모래밭에 그리던 그림이라면 참으로 헤일 길 없이 오래되었다 할 만합니다.

 만화는 그림 갈래에서 비롯한 새삼스러운 길입니다. 그림하고 글이 어우러지면서 남다른 길이 되었습니다. 만화는 여섯째나 일곱째쯤으로 ‘사람 삶을 나타내는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아이들이나 좋아하는 만화라고 깎아내리지만, 아이들이 몹시 좋아한다는 소리란, 아이들이 쉽게 알아듣거나 받아들인다는 소리입니다. 아이들한테 쉽게 눈높이를 맞출 뿐더러, 학교 문턱을 오래도록 많이 밟지 않은 사람들 누구나 수월하게 마주할 만한 문화이자 예술이라는 소리입니다. 어린이부터 즐길 만한 길이요, 어린이와 함께 즐기면서 흐뭇한 삶이라는 뜻입니다.


.. “지금 달 떠 있지?” “아니, 달 안 떴어.” “하늘에 검은 구름이 잔뜩 끼었어.” “거짓말 마라! 달 떴다. 내 마음의 눈으로 다 보인다.” “너 점쟁이냐?” “아니다. 거짓말하지 않는 올바른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도 다 볼 수 있는 법이다.” ..  (56∼57쪽)


 만화를 만화 그대로 살피지 못하는 어른들은 만화를 얕잡습니다. 만화가 얼마나 사랑스러우면서 그윽한 삶자락 하나인지 읽지 못하는 어른들은 만화를 멀리합니다. 만화에 담는 삶에 어떠한 멋과 맛이 깃드는지를 껴안지 않는 어른들은 만화를 비웃거나 까맣게 모를 뿐더러, 더 너른 삶밭을 만나지 못합니다.

 만화는 아주 쉽습니다. 만화는 머리를 지끈지끈 앓도록 하지 않습니다. 만화는 억지스레 꾸미지 못합니다. 만화는 그림 하나와 말 하나로 모든 삶을 나타냅니다. 만화는 우리 삶을 고스란히 담을 뿐 아니라 우리 꿈을 남김없이 보여줍니다. 만화로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울타리가 없습니다. 글을 몰라도 즐기는 만화요, 글 없이도 좋아할 수 있는 만화입니다. 만화는 신나는 이야기꽃입니다. 만화는 고운 삶꽃입니다.

 쉬우면서 고운 이야기꽃인 만화인 터라, 만화는 푸대접받거나 따돌림받습니다. 먼 옛날, 여느 사람 누구나 쉽게 배워 쉽게 쓰며 쉽게 생각을 나누도록 도와줄 글인 한글(훈민정음)이 막대접을 받거나 따돌림을 받았듯, 만화처럼 울타리 없고 스스럼없는 문화요 예술은 제 대접을 못 받습니다.

 만화에는 권력이 없고, 만화쟁이는 권력모임을 꾸릴 수 없습니다. 만화가 벗하는 사람이란 이 땅 가장 낮은 자리에서 숨죽이는 사람입니다. 어린이하고 사귀며, 글을 잘 모르는 사람하고 사귑니다. 경제도 사상도 철학도 역사도 정치도 문학도, 만화하고 어우러지거나 만화로 다시금 빚으면 놀랍도록 사랑스러운 이야기꽃으로 거듭납니다.

 권력자는 만화를 깎아내릴밖에 없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만화 맛과 멋을 즐긴다면, 권력자 꿍꿍이는 금세 까밝혀지기 때문입니다. 교사는 만화를 손사래칠밖에 없습니다. 만화는 아주 쉽고 재미나며 주먹다짐 없이 가르치는데, 교사는 딱딱한 지식을 무시무시한 몽둥이를 한손에 들고는 머리속에 쑤셔넣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또 나는 노인을 공경할 줄 알고 어린 것을 귀여워할 줄 알며, 나보다 약한 자를 건드린 적이 없고, 나보다 강한 자에게 비겁해 본 적이 없다. 남의 물건을 훔친 적이 없고 아무 데서나 침 뱉고 오줌 눈 적도 없다. 난 길에 더러운 게 떨어져 있으면 치울 줄 알고, 밭이나 들에 난 어린 싹을 밟지 않고, 산짐승을 만나도 새끼를 잡지 않지. 특히 난 욕심이 없어 마음이 늘 푸르지. 이만하면 되었느냐? 이만하면 내가 양반인 이유가 충분하냐고?” “그럼 네가 나와 같은 양반이다, 그거냐?” “뭐? 내가 언제 너보고 양반이라고 했느냐? 내가 보기엔 너나 이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너의 선조들은 똑똑했고 이 사람들의 선조는 똑똑하지 못해서 지금 처지가 달라졌을 뿐이지.” ..  (109∼111쪽)


 만화쟁이 이두호 님 작품 《두손이》를 읽습니다. 혼자서도 읽고 옆지기하고도 읽다가는 요사이에는 아이하고도 읽습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맛이고, 다시 읽을 때마다 시원시원한 그림칸 요 구석 조 구석 다시 돌아봅니다. 처음 볼 때에 느끼던 맛을 다시 볼 때 거듭 느끼기도 하지만, 처음 보던 때에 지나치던 대목을 다시 보면서 새삼스레 깨닫기도 합니다.

 혼자 볼 때랑 둘셋이서 볼 때랑 다릅니다. 말없이 책장을 넘길 때하고 아이한테 한 대목씩 짚으며 이야기 살을 붙일 때하고 다릅니다.

 만화는 만화 그대로 좋기 때문에, 어른 혼자 읽든 아이 혼자 즐기든 좋습니다. 한 걸음 나아가, 나와 내 아이가 함께 즐긴다든지, 나와 옆지기가 나란히 즐길 만화를 생각한다면, 숱한 만화책 모두 장만할 수는 없습니다. 이 가운데 우리 삶을 착하면서 아름다이 돌보는 데에 길동무가 될 작품을 추립니다. 두고두고 읽을 만화를 고릅니다. 길이길이 사랑할 만화를 살림집 책꽂이에 꽂습니다. 오래오래 아낄 만화를 집식구 모두 보드라운 손길로 어루만집니다.


.. 우리 나라는 신문물을 죄악시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신문물에 지고 말아 반만 년 역사의 나라를 빼앗기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때도 조상들은 조국 사랑은 바로 우리 마을 사랑이고, 우리 자신을 아끼는 것이 나라를 아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느껴집니다 ..  (그린이 말)


 《두손이》는 서양사람이 조선땅에 막 쳐들어오던 무렵 바닷가 여느 마을 사람들 살림살이를 다룹니다. 이 조선땅은 강화섬이나 인천 앞바다일 수 있고, 목포나 군산 둘레일 수 있습니다. 바닷마을 생김새로 보아서는, 또 서양(러시아) 군함이 쳐들어오는 흐름을 보아서는 거문도는 아니고, 강화섬이나 인천, 또는 북녘땅 황해도 께로 여길 만하지만, 한양 들머리인 강화섬이나 인천 영종섬 즈음을 무대로 삼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뭐, 무대야 어디이든 좋습니다. 나오는 사람들이 백정이든 중인이든 농사꾼이든 양반이든 임금님이든 좋습니다. 무엇을 다루고 어떻게 보여주며 누구하고 말벗을 삼으려는 이야기인가를 살필 노릇입니다. 만화를 그린 이두호 님이 어느 자리에서 어떤 사람하고 이웃하는가를 느낄 노릇입니다.

 한 권으로 끝맺지 말고, ‘두손이’가 ‘방실이’하고 서양으로 떠나며 ‘배워서 돌아와 이 나라를 살찌우겠다’고 다짐하는 이야기를 2권으로 그린다든지, 3권째에는 조선으로 돌아와 복닥이는 삶을 그린다든지, 4권째에는 식민지살이를 그린다든지, 5권째에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그린다든지, 6권째에는 이동안 아이를 낳아 함께 키우는 나날을 그린다든지, 7권째에는 어둡지만 빛을 보는 가난한 사람들 살림자락을 그린다든지, 8권째에는 고향을 잃거나 잊어야 하는 농사꾼 살림살이를 그린다든지, 9권째에는 눈부신 경제개발 그늘에 드리운 사람들 땀방울과 한숨을 그린다든지, 10권째에는 오늘을 새롭게 살아가는 손자나 증손자를 바라보며 조용히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숨결을 그린다든지 할 수 있어요.

 짧은만화는 짧은만화대로 내 나름대로 생각날개를 펼칠 수 있어 좋습니다. 길게 내다보면서 온삶을 두루 담는 긴만화는 긴만화대로 좋습니다. 이두호 님이 다른 걱정을 하지 않고 만화그리기에만 온마음 바칠 수 있다면, 《두손이》는 1권으로 끝이 아닌 10부작 만화쯤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터전에서는 《두손이》라는 만화책 하나 태어난 일로도 반가우며 기쁩니다.

 ‘두손이’는 힘과 이름과 돈 하나 없지만 착한 마음과 슬기로운 넋과 아름다운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힘보다 사랑이 좋고, 이름보다 믿음이 좋으며, 돈보다 아름다움을 찾습니다.

 착하게 살아야 착한 만화를 알아보며 즐깁니다. 아름다이 살려고 힘쓸 때에 아름다이 어우러지는 만화를 살포시 껴안습니다. 나부터 오늘 하루 새롭게 착하고 아름다이 아이랑 옆지기랑 어깨동무하자고 다짐합니다. (4344.1.12.물.ㅎㄲㅅㄱ)


― 두손이 (이두호 글·그림,GenaSona 펴냄,2003.11.15./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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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 are not alone'이라면서 '솔로금지' 아닌 '혼자금지'라 하네. '혼자는 안 돼'라 하든지 '솔로금지'라 하든지, 아니면 'you are not alone'은 집어치우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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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하나 새로 만들면서 이름 하나 예쁘고 알맞으며 살가이 지을 줄 모르는 한국사람. '보디'는 무엇이며 '히트'는 무엇일까. 영어로는 이렇게 이름을 지으면서, 우리 말로는 아뭇소리 못하는 한국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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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1-12 21:40   좋아요 0 | URL
그거 보면 중국 사람이 대단한것 같더군요.무슨 외국어로든 자국어로 바꾸는 능력이 대단하지요.可口可樂(가구가락)은 코카콜라르 중국식으로 만든건데 뜻도 재미있지만 실제 중국어로 읽어도 코카 콜라와 발음이 비슷하다네요.

파란놀 2011-01-12 22:50   좋아요 0 | URL
나라마다 제 삶자락에 따라 즐겁게 말을 빚어서 쓰면 될 텐데, 우리는 한국사람임을 거의 생각하지 못합니다...
 

 

 편의점부터 작은 가게일 텐데, 이 작은 가게에 또다른 작은 가게가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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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가 흙 똥을 누었어 자연과 만나요 3
이성실 글, 이태수 그림, 나영은 감수 / 다섯수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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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한테 ‘어떤 책’ 선물을 할까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9] 이태수·이성실, 《지렁이가 흙똥을 누었어》(다섯수레,2009)



 그림책은 어른들이 어린이들한테 내어주는 빛깔 고운 선물이라고 느낍니다. 그림책으로 지식을 익히도록 한다든지, 그림책으로 성교육을 한다든지, 그림책으로 과학을 더 깊이 알도록 한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그림책이 다루는 갈래는 자연도 있고 과학도 있으며 삶도 있거나 학교도 있는 가운데 성교육도 있을 테지만, 어떠한 갈래를 다루든, 그림책이란 아이들 마음을 따숩게 보듬는 이야기를 베풉니다. 아이들 마음을 따숩게 보듬는 이야기를 베풀지 못한다면 그림책이라 할 수 없습니다.

 판타지 그림책이라든지 옛이야기 그림책이라든지 자연 그림책이라든지 과학 그림책이라든지 철학 그림책이라든지, 갖은 이름을 붙이는 어른들이지만, 정작 아이들로서는 ‘그림책’이기만 합니다. 그림책은 그림책이지 ‘지식책’이나 ‘정보책’이나 ‘교육책’이 아닙니다. 어른들 또한 이런저런 갈래로 나누어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읽히려는 생각을 털어야 합니다. 그림책에 글을 넣든 그림을 넣든, 그림책을 쓰거나 엮는 분들은 아이들이 따뜻한 넋과 착한 얼과 보드라운 품을 아낄 수 있게끔 땀을 흘려야 합니다. 아이들이 넉넉한 가슴과 참다운 마음과 싱그러운 눈빛을 사랑할 수 있도록 힘을 쏟아야 합니다.

 사랑을 담는 책이 되어야 하는 그림책입니다. 믿음을 나누는 책이 되어야 하는 그림책입니다. 서로 좋아하면서 다 같이 즐길 그림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수수하게 웃고 보배로이 울 수 있는 그림책으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 지렁이는 땅속 농부야. 지렁이가 일구어 놓은 땅속에서 감자알이 실하게 여물어 가고 있어. 지렁이 똥은 스펀지 같아서 비가 올 때 물을 머금었다가 식물에게 물이 필요할 때 다시 내주어 잘 자라게 해 ..  (21쪽)


 ‘자연과 만나요’라는 이름으로 세 권째 나온 《지렁이가 흙똥을 누었어》를 읽습니다. 첫 권은 《개구리가 알을 낳았어》(2001)이고, 둘째 권은 《개미가 날아올랐어》(2002)입니다. 개구리와 개미와 지렁이 차례인데, 세 가지 목숨붙이는 우리 둘레에서 아주 흔하거나 너르‘던’ ‘흙’동무입니다.

 오늘날 한국 삶터에서 개구리이든 개미이든 지렁이든 흔하거나 너른 흙동무가 되지 못합니다. 첫째, 도시에서는 개구리이건 개미이건 지렁이이건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도시에서는 그나마 집에 ‘개미’들이 들어온다고도 하지만, 개미가 마음껏 살아가는 터전은 아닙니다. 거미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집에 개미가 있으면 꾹꾹 눌러 죽이거나 파리약을 칙칙칙 뿌리기만 하지요.

 개구리이든 개미이든 지렁이이든, 너른 땅에 흙이 소담스레 있어야 합니다. 흙이 없이는 개구리이든 개미이든 지렁이이든 살아가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면, 이들 목숨붙이뿐 아니라, 어떠한 목숨붙이라도 흙이 있어야 삽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벌레이든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을 아끼지 않는다면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람다이 살 수 없습니다. 흙을 밟거나 만지지 않으면서는 사람 목숨이 산 목숨이 아닙니다. 흙을 고이 여기면서 흙내음이 물씬 나면서 흙기운으로 밥을 차리며 일하지 않고서야 사람 넋이 착하거나 참답거나 고울 수 없습니다.

 끔찍한 막공사라든지 막개발이 끊이지 않는 까닭은 오직 하나입니다. 정치꾼 몇몇 사람이나 언론매체 몇 군데 때문이 아닙니다. 재벌회사 몇몇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꾐수를 부리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흙하고 멀어진 채 돈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나 스스로 흙하고 가까이 지내면서 조용하고 착하게 어깨동무하는 삶이라면, 그 어떤 막공사나 막개발이나 부정부패가 생길 수 없습니다. 동네에 커다란 할인마트가 들어서는 일을 법으로 막아야 한다고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동네 작은 가게를 즐겨 다니면 될 뿐입니다. 큰 할인마트에 안 가면 그만이에요. 몸에 나쁘지만 값이 싼 먹을거리를 안 먹으면 됩니다. 유행을 따지지 않고 상표를 가리지 않으면 됩니다. 시골 장터와 도시 저잣거리를 즐겨 다니면 됩니다.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라는 책이 아니라, 내 마음을 살찌우는 책이랑 내 넋을 보듬는 책이랑 내 눈길을 따사로이 어루만지는 책을 즐겁게 읽으면 돼요.


.. 도시에서 시골로 옮겨 그림을 그리면서 마당 곳곳에 지렁이 똥이 새삼스럽게 보였어요. 아침에 마당이 있는 조그만 텃밭을 둘러볼 때마다 새로운 지렁이똥이 소복소복 쌓여 있었어요 ..  (그린이 말/이태수)


 흙을 밟고 살아가니 지렁이똥을 만납니다. 지렁이똥만 만나겠습니까. 멧기슭에 고라니가 산다면 겨우내 먹을거리를 찾아 사람집 둘레에 내려와서 똥 질금질금 눌는지 모릅니다(이럴 일이야 드물겠지만). 고라니똥을 볼 수 있겠지요. 버섯을 딴다든지 이냥저냥 멧길을 거닐면 고라니똥을 마주할 수 있어요. 염소를 풀어 기른다면 곳곳에서 염소똥을 볼 만합니다. 멧자락 어느 한켠에는 멧토끼똥이 있을 테지요. 사람 눈으로는 보기 어렵지만, 틀림없이 개미도 똥을 눌 테고, 개구리이며 뱀이며 똥을 누겠지요. 모든 목숨붙이는 흙에서 먹이를 얻고 흙에서 잠자리를 마련하면서 흙으로 똥오줌을 돌려줍니다. 사람들도 흙과 함께 살아갈 때에는 흙밥을 헤아리고 흙똥을 곱씹습니다. 내 삶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고울까를 돌아보면서 흙기운을 가득 품고 흙넋을 예쁘게 끌어안습니다.

 그림책 《지렁이가 흙똥을 누었어》는 앞서 나온 ‘자연과 만나요’ 두 권과 나란히 예쁘장한 그림책이기도 하지만, 앞서 나온 《개구리가 알을 낳았어》랑 《개미가 날아올랐어》랑 견주면 조금은 다른 결입니다. 한결 흙내음이 나는 그림책입니다. 이야기 결은 아직 ‘자연 지식 그림책’에 더 가깝지만, 차츰 ‘자연 이야기 그림책’으로 달라지면서, ‘자연 삶 그림책’으로 나아가겠다고 느낍니다. 한 걸음 두 걸음 찬찬히 걸어가노라면, 어느 때부터인가는 ‘자연 지식’이든 ‘자연 삶’이든 모두 내려놓고 ‘그림책’ 하나로 빛나겠지요. 지식도 삶도 이야기도 흙과 같이 수수하면서 투박한 가운데 보들보들 스며나는 그림책으로 거듭나겠지요.


[2쪽] 굴을 파기 시작했어 → 굴을 파 / 굴을 파는구나
[5쪽] 피부로 숨을 쉬어서 → 살갗으로 숨을 쉬어서
[5쪽] 축축한 흙이 필요해 → 축축한 흙이 있어야 해
[6쪽] 지렁이는 스트레칭 선수야 → 지렁이는 쭉쭉이를 잘하지
[6쪽]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줘 →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줘
[6쪽] 둥근 마디로 이어져 있지 → 둥근 마디로 이어졌지
[13쪽] 하지만 걱정하지 마 →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
[13쪽] 새살이 돋아날 거야 → 새살이 돋아나니까 / 새살이 돋아나거든
[15쪽] 지렁이는 안전하지 못해 → 지렁이는 느긋하지 못해 / 지렁이는 걱정스러워
[17쪽] 지렁이 똥이 쌓여 있어 → 지렁이 똥이 쌓였어
[21쪽] 감자알이 실하게 여물어 가고 있어 → 감자알이 알차게 여물어
[21쪽] 지렁이 똥은 스펀지 같아서 비가 올 때 물을 머금었다가
→ 지렁이 똥은 비가 올 때 물을 머금었다가
[21쪽] 식물에게 물이 필요할 때 → 푸나무가 물을 바랄 때
[22쪽] 더 깊이 굴을 파고 겨울을 준비해 → 더 깊이 굴을 파고 겨울을 맞이해
[24족] 농부가 쟁기질을 시작했어 → 농부가 쟁기질을 해
[24쪽] 흙을 뒤엎기 시작했나 봐 → 흙을 뒤엎는가 봐 / 이제 막 흙을 뒤엎는가 봐



 살가우며 구수하게 자연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렁이가 흙똥을 누었어》를 읽으며 여러 군데 손질할 곳을 살핍니다. 이 그림책은 여느 어른도 함께 읽을 만하지만, 누구보다 어린이 스스로 읽으며 즐기도록 마련한 책인 만큼, 몸글에서 고쳐야 할 대목을 열여섯 군데만 짚어 봅니다. 다른 어린이책에서도 이 대목을 어렵잖이 보는데, 어린이책을 쓰는 어른들은 ‘어린이 말’과 ‘어린이가 배울 말’과 ‘어린이가 쓸 말’을 한결 깊이 살펴 주면 고맙겠습니다. 이래저래 흔히 쓰는 한자말이건 여러모로 익숙하게 쓰는 말투이건, 다듬거나 손질해야 한다면 다듬거나 손질해야 합니다.

 “-하기 始作했어”나 “-이 必要해”는 한자 말투이기 앞서 일본 말투입니다. “-ㄹ 거야”처럼 ‘것’을 함부로 넣으면 우리 말투가 아닙니다. 우리 말투는 ‘그렇지만(그러하지만)’이지 ‘하지만’이 아니에요. 겨우나기란 겨울을 맞이하는 일이기에 “겨울을 준비해”라 해도 틀리지 않으나, 아이들 삶과 말을 헤아린다면 “겨울을 맞이해”로 적바림해야 알맞습니다. 감자알이든 씨알이든 굵거나 알차게 여뭅니다. 축구나 농구에서는 ‘도움주기’라는 낱말을 쓰기도 하지만 “도움을 주다”가 아니라 “도와주다”가 제대로 적는 우리 말입니다. ‘스트레칭’이나 ‘스펀지’ 같은 말마디야 흔히 쓰기는 하지만, 지렁이와 흙을 이야기하는 삶하고는 영 걸맞지 않습니다. 이런 말마디는 굳이 안 써도 되며, 글과 이야기에 소롯이 녹아나도록 풀어서 적으면 한결 낫습니다.

 어린이를 생각하는 그림책에는 그림부터 살가이 담아야 하고, 글 또한 살가이 여미어야 합니다. 말끝을 입말 투로 맞추는 데에 마음을 쓰는 일도 훌륭하지만, 입말 투 아닌 글말 투라 하더라도 옳고 바르며 참답다 할 우리 말투를 살릴 때에 비로소 글맛을 즐깁니다. (4344.1.13.물.ㅎㄲㅅㄱ)


― 지렁이가 흙똥을 누었어 (이태수 그림,이성실 글,다섯수레 펴냄,2009.3.20./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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