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22. 밥을 안 먹는
이른바 고속버스에는 손전화에 밥을 먹으는 꼬마돼지코가 있다. 나는 늘 기나긴길을 다니느라 꼬마돼지코에 줄을 꽂는데, 여러 해 앞서부터 고흥과 서울 사이를 오가는 버스는 밥을 안 먹는다. 밥줄이 있으나 마나이다. 그러려니 싶으면서도 고흥군수나 공무원 어느 누구도 이 대목을 모르리라 느낀다.
시외버스에서 한숨 푹 자고서 책을 석 자락 읽고 노래 한 자락을 쓴다. 요사이에 힘을 많이 쓴 왼팔꿈치가 찌릿해서 어제오늘 틈틈이 주무른다. 서울은 뭉게구름밭이더니 충청도는 소나기였고 전라남도가 가까우면서 옅은깃털구름으로 파란하늘이다. 고흥에 닿으면 저물녘 바람이 불면서 제비노래가 반길 테지.
올여름도 부채 하나로 가볍게 지나간다. 부채질은 나한테보다 밤에 자는 아이들한테 했고, “애쓰는 셈틀(컴퓨터)”이 덜덜거릴 적마다 뜨거운 기운을 부채질로 식혔다.
더우니 여름이고, 더우니 하루에 예닐곱이나 열벌쯤 씻는다. 여름은 하루에 석벌쯤 빨래를 한다. 볕이 가득하면 웃통을 벗고서 해바라기를 누린다. 여름이니 개구리와 풀벌레와 매미가 노래하는 어울가락을 즐긴다. 작은아이는 매미허물을 둘 찾고서 빙그레 웃는다. 우리집 마당에서 깨어난 범나비에 파란띠제비나비에 부전나비에 배추흰나비에 네발나비에 숱한 나방이 저마다 새롭게 팔랑거리고, 잠자리 몇은 거미줄에 걸리고, 참새나 직박구리가 거미줄 먹이를 낚아채고, 마을에서 또 풀죽임물을 뿌려대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빛살을 그린다.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다. 봄은 꽃피어야 제맛이다. 가을은 열매가 익어야 제맛이다. 여름은 땀흘려 일하고 놀아야 제맛이다.
덥다고 푸념하거나 짜증내는 이웃을 보며 웃는다. “보셔요! 하늘이 이 여름에 뙤약볕이라는 눈부신 사랑을 베푸는군요! 함께 해를 먹어요!” 두 팔을 펴고서 뙤약볕 한복판에 서서 빙그르르 돈다. 온몸 구석구석 햇볕을 먹인다.
하늘은 틀림없이 우리더러 웃고 춤추라며 여름볕을 베풀면서 새랑 개구리랑 풀벌레랑 매미를 깨운다. 별은 참말로 우리더러 눈뜨고 생각을 틔우라면서 날마다 미리내를 베푼다. 배롱꽃 곁에 자귀꽃이 발갛다. 달개비꽃이랑 달맞이꽃이 낮밤을 갈마든다.
여러 해째 “주시경 이야기”를 짠다. 밑틀은 짜되 아직 첫머리조차 안 쓴다. 늦여름에 첫 줄을 적어 볼까? 그래, “주시경 배움모임”을 꾸리면 저절로 글을 쓸는지 모른다. 우리집 두 아이하고 먼저 이야기꽃을 펼 수 있겠구나. 작은아이한테는 자취(근현대사)를 곁들여서, 큰아이한테는 길(문법)을 곁들여서 들려줄 만하다.
그나저나 시외버스에서 나 혼자만 천(커튼)을 활짝 걷고서 하늘바라기와 숲바라기를 한다. 그렇다. 그렇지. 그래.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