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11. 해가 미운 나라
불볕이라지만, 여름더위는 이미 7월 8일부터 꺾였다. 이제 마당에 내놓는 빨래는 17:30을 넘기면 가볍게 추진다. 지난 6월 25일 즈음부터 긴낮(하지)이 꺾여서 해가 차츰 눕는다. 한낮 뙤약볕도 요즈막에는 하나도 안 따갑다. 해를 늘 꾸준하게 쬐고 머금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한여름에 더울 일이 없다. 햇볕을 맞이하는 살갗이 까무잡잡하면서 튼튼하게 거듭난다. 햇볕을 가로막는 옷이나 가리개나 챙이나 갓(모자)이나 거품(크림) 탓에 살갗이 허옇게 죽어버린다. 해를 안 먹는 사람이 부쩍 늘면서 다들 앓고 아프다.
그러나 날씨를 알리는 이 나라는 사람들을 “해미워!”로 길들이려고 한다. 여름이니 마땅히 더워야 하건만, 여름더위가 마냥 나쁘다고 몰아세운다. 우리는 스스로 나라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한 나머지, 부채 하나와 나무그늘과 구름그늘로 넉넉한 여름을 자꾸 팽개치려 한다. 첫여름을 잊고 한여름을 까먹고 늦여름을 팽개친다.
예부터 온누리 모든 아이어른은 여름에 깜둥이가 되었다. ‘깜둥이’는 그저 여름말이다. ‘깜둥이’는 놀림말이 아닌 ‘삶말’이다. ‘까만몸·까만살·까만낯’이란 무엇이겠는가? 바로 여름에 튼튼히 피어나는 철꽃이라고 할 만하다. 한여름 뙤약볕에 신나게 놀거나 일하기에 다들 까무잡잡한 흙빛으로 바뀐다. 가을일을 마칠 즈음부터 조금씩 깜빛이 빠져서 새봄녘에는 살짝 허연 살빛으로 바뀐다. “해 좀 쬐야지.” 같은 말씀은 해가 바로 살림빛(보약)이라는 오랜 슬기를 나타낸다. 고삭부리 아이어른은 한여름이건 한겨울이건 낮볕을 듬뿍 머금으라고 일렀다.
고흥에서 부산으로 건너가는 시외버스를 타니 앞이 안 보인다. 모든 자리마다 해를 꽁꽁 가린다. 미쳤구나. 여름해를 멀리하니 여름빛이 모자라서 앓거나 아프게 마련이다. 해를 가리기에 좀(암)이 부쩍 는다. 해를 미워하니 다들 따뜻마음·포근마음·아늑마음까지 나란히 내버린다. “해미워!”에 갇히고 사로잡힌 나머지, 해마음·해사랑·해살림을 까먹는다. ‘한글’이란 ‘하늘글’이면서 ‘하얀글’에 ‘해글’을 가리킨다. 우리말을 담는 한글이듯, 우리가 서로 나누는 마음인 ‘한말’인데, ‘해글·해말’을 스스로 잊고 잃을 적에는 거칠고 메마르고 사납게 뒹굴 뿐이다.
나는 말한다. “에어컨을 버려야 평화요 민주입니다. 미닫이를 활짝 열고서 부채를 쥐어야 평화요 민주입니다. 땀흘려 일하고 놀고 맑은물로 씻고 쉬어야 평화요 민주입니다. 해바라기·새바라기·비바라기·별바라기·숲바라기일 적에 평화요 민주입니다.” 여름볕을 반기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갈수록 이 나라는 아름터로 거듭난다. 여름바람을 즐기는 사람이 둘씩 셋씩 늘어갈수록 이 삶터는 사랑터로 깨어난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