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싸울 가치가 있다 2
코다마 하츠미 지음, 김수연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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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6.27.

외롭지 않아


《이 세상은 싸울 가치가 있다 2》

 코다마 하츠미

 김수연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5.30.



  하찮은 책이건 대단한 책이건, 한 벌을 훑고서 ‘읽었다’고 여기는 마음이기에, 오늘날에는 책을 ‘많이 사는’ 사람은 많아도, 막상 책을 ‘알아보는’ 눈길은 드물다고 느낍니다. 온누리에 안 바쁜 사람은 아무도 없게 마련이라서, 어느 책이건 여러 벌 차근차근 되읽을 틈을 스스로 내지 않을 적에는, 어느 책이건 겉이며 속을 제대로 모르는 채 지나가기만 하겠지요.


  ‘읽기’란 스스로 이곳에 고이 있으면서, 나하고 너(나를 둘러싼 모든 숨결)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면서 이으려고 하는 몸짓이라고 봅니다. ‘읽다’란 ‘일다 + 익다’이기에, 마음에 일어나고 마음으로 익히는 ‘읽다’를 이루려면, 더 많은 책을 더 많이 눈으로만 훑을 적에는 ‘훑다’에서 그칠 테지요. 틈이 없이 밭아서 훑는 하루에서 그친다면, 스스로 이곳에 있으면서 물결을 일으키는 읽는 살림에는 못 닿는구나 싶어요.


  마음에 드는 몇 가지 책이나 글바치만 되읽을 적에는 으레 몇 가지 눈길에 고이거나 닫힌다고 느낍니다. 마음에 안 드는 모든 책이나 글바치도 언제나 나란히 되읽으면서 차분히 새길 적에는 스스로 새롭게 피어나는 눈길로 깨어난다고 느낍니다.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읽눈(문해력)을 잃고 잊는 까닭이라면, 먼저 어른 자리에 있는 사람들부터 읽눈을 되찾을 일이라고 봅니다. 모든 책을 꾸준히 지켜보고 살펴보고 돌아볼 적에, 모든 일과 이웃과 들숲메바다를 찬찬히 헤아리고 알아보고 품을 적에, 나부터 읽눈을 틔우고서 아이어른 모두 읽빛을 밝힐 테고요.


  《이 세상은 싸울 가치가 있다 2》은 이제 더 살아갈 값어치가 없다고 느낀 나날에서 막바지 발버둥을 치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둘레(사회)에 맞추어 그저 굽신굽신 고분고분 지내던 나날을 멈추고서, “나는 뭘 하려고 이곳에 태어났는가?” 하고 돌아보는 길을 걸어가려고 한다는 줄거리입니다. 책이름은 ‘거꾸로’ 말하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싸울 값어치가 없는데 여태 싸워 온 줄 느끼고서, 이제부터는 그만 싸우고서 나답게 하루하루 살겠노라 외치는 셈입니다.


  싸우려고 들기에 밉놈을 세워야 합니다. 밉놈을 세워야 하니 마음에 사랑이 아닌 미움을 놓아야 합니다. 사랑이 아닌 미움을 놓는 마음이기에, 스스로 무엇을 하는 길인지 어느새 잊어버립니다. 마음을 잊어버리니 살림도 숲도 마을도 죄 안 보이면서 무엇보다도 ‘나’를 바라보거나 품을 수 없습니다.


  혼자 걸어가면 외롭다고 여기면서 길들이려는 나라(사회·정부)입니다. 함께 걸어가도록 무리를 지어야 한다고 여기면서 길들이려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함께걷기’를 하자면 ‘혼자걷기’를 하는 사람이 다 다르게 만나야 할 뿐입니다. 그저 발걸음을 똑같이 맞춘대서 함께걷기이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걸을 뿐 아니라, 이리로 걷거나 저리로 걸으면서 홀가분하게 춤출 수 있어야 함께걷기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즐겁기에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외로워도 혼자 걸어가지 않아요. 나는 나로서 숨을 쉬고, 나는 나대로 둘레를 보고, 나는 나답게 눈을 뜹니다. 나는 바로 ‘나’라고 하는 ‘하나’부터 알아보아야, ‘너’라고 하는 ‘다른 하나’을 알아차립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혼자·홀·홑)인 줄 받아들일 적에, 하늘도 물도 바다도 숲도 그저 오롯이 하나인 줄 깨닫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으레 바쁘다고 외치면서 책도 글도 못 읽습니다. 책을 사읽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책 한 자락을 느긋이 다섯 벌이고 열 벌이고 되읽을 줄 알아야 비로소 책읽기입니다. 보임꽃(영화)도 한 벌 슥 보고 끝난다면 “아예 안 봤다”고 해야 맞습니다. 책이건 보임꽃이건 다섯 벌이며 열 벌이며 꾸준히 다시 짚으면서 차근차근 짚어 나가야 비로소 ‘읽다’라고 여깁니다. 우리가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할 적에 한 마디만 들려주어도 다 알아들을 수 있나요? 때로는 한 마디로 넉넉하겠으나, ‘이야기’란 “끝없이 주고받는 말”입니다. 물이 흐르면서 싱그러이 잇듯, 말도 끝없이 흐르면서 맑게 이을 적에 이야기인 터라, 책읽기이건 삶읽기이건 구태여 싸울 까닭이 없이 살림하는 손길로 지을 적에 제대로 깨어납니다.


ㅍㄹㄴ


“전 남친 때려눕히고 돈 돌려받아서 돌아온 날 바로 이사하고 싶어졌거든.” (9쪽)


‘하지만 이렇게 그 누구에게도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시간낭비는 처음 해 봤어. 나쁘지 않은데―!” (35쪽)


“그게 재밌어.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배우들의 손때 묻은 연기, 더는 내 것이 아닌 대사.” (60쪽)


“부모님이 널 사랑으로 키워 주셔서, 동그랗고 예쁜 그릇이 된 거지. 자기 스스로가 타인을 받아들이는 그릇이라고 생각해 봐. 힘은 경험으로 보충할 수 있어. 하지만 그릇은 부모에게서만 받을 수 있다고.” (117쪽)


“그래도 옛날에 들었던 그 말이 다시 깨달음을 줬어. 결산을 계속해 나간다면 분명 이런 일이 여러 번 생길 거야. 인간은 한쪽 면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으니까. 내 인생에 가치가 있었는지 알려면 매사의 표면만을 더듬어서는 안 돼.” (175쪽)


“내 의지를 관철하는 일은 곧 고독을 마주보는 일이구나.” (194쪽)


#この世は戰う價値がある

#こだまはつみ


+


《이 세상은 싸울 가치가 있다 2》(코다마 하츠미/김수연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


그 누구에게도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시간낭비는 처음 해 봤어. 나쁘지 않은데―!

→ 그 누구도 돕지 않으며 헤프게 처음 지내 봤어. 나쁘지 않은데!

→ 처음으로 누구도 안 살피고서 부질없이 지냈어. 나쁘지 않은데!

→ 처음으로 아무도 안 보면서 헛되게 놀아 봤어. 나쁘지 않은데!

35쪽


인간의 방정식을 모으는 중이지

→ 사람이란 실타래를 모으지

→ 사람이란 수수께끼를 모으지

64쪽


성인군자라는 요란한 말도 왠지 진실감이 느껴져

→ 꽃어른이라고 떠드는데 왠지 참말 같아

→ 온꽃이라고 하는데 왠지 거짓없다고 느껴

141쪽


그래도 옛날에 들었던 그 말이 다시 깨달음을 줬어

→ 그래도 옛날에 들은 그 말이 다시 깨우쳐 줬어

→ 그래도 옛날에 들은 그 말로 다시 깨달았어

175쪽


결산을 계속해 나간다면 분명 이런 일이 여러 번 생길 거야

→ 꾸준히 되짚어 나간다면 아마 이런 일이 여럿 생겨

→ 그대로 되살펴 나간다면 또 이런 일이 여럿 생길 테야

175쪽


인간은 한쪽 면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으니까

→ 사람은 한쪽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으니까

→ 누구나 한쪽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으니까

17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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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26. 시골에서 시골로



  시골에서는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건너가는 길이 멀다. 그저 멀다. 오늘날 눈길로 보면 대수롭잖을 테지만, 두다리로 걸어다니던 지난날에는 그냥 먼길이다. 마을끼리 만나거나 어울리는 길은 마냥 멀었고, 이 삶은 고스란하다. 이러다 보니 ‘울마을’과 ‘놈마을’은 남남이자 위아래이기도 하다.


  조금이라도 마을이 크면 조금이라도 마을이 작은 데를 ‘시골놈(촌놈)’으로 친다. 서울에서 보면 인천과 부산은 시골것(촌것)이다. 인천과 부산에서 보면 부천과 창원은 시골것이다. 또한 부천과 창원에서 보면 …… 끝이 없다.


  모든 사람은 그저 사람이다. 높낮이가 없다. 모든 사랑은 그저 사랑이다. 모든 사랑은 그대로 사랑이다. 모든 책은 그저 책이요, 모든 글은 그대로 글이다. 모든 별은 그저 별이고 모든 들숲메는 그대로 들숲메이다.


  무엇을 보는 어떤 눈인가. 어디에 서는 어떤 몸인가. 누구하고 이웃하는 어떤 마음인가.


  쓰고 읽는다. 읽고 쓴다. 함께놀기 함께살림 함께누리 함께사랑 함께마을 함께마음 함께하늘 …… 문득 하나하나 그려 본다. 함께걷기를 하기에 발맞추면서 노래가 흐른다. 이쪽 시골에서 저쪽 시골로 가서 이웃 시골아이를 만나고서, 저쪽 시골에서 이쪽 시골로 돌아오려고 읍내를 거쳐서 먼먼 길을 한참 돌고돌았다. 사람마을과 사람마을 사이는 멀다지만, 구름까지 솟구치며 노래하는 새는 두 마을과 두 고을과 두 나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오가면서 싱그럽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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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열한·열둘



1985년 여름 어느 날

마을 귀퉁이에 있는

철조망으로 둘러친 보일러실이 있는데

동무들하고 철조망에 올라서

아슬아슬 걸으며 놀았다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척척 잘 걸었는데

옆에서 부르는 아이를 보다가

그만 미끄러졌다

왼손등부터 왼어깻죽지까지 좍

찢어졌다 피도 잔뜩 났다

꿰맬 수 없다고 했는데

이듬해에 흉터 없이 사라졌다


2025.6.16.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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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영어] 스탠드stand



스탠드(stand) : 1. 물건을 세우는 대(臺) 2. 음식점이나 술집 따위에서 카운터를 향하여 의자를 설치한 자리 3. 책상 위에 올려놓거나 방구석 따위에 놓아서 그 부분을 밝게 하여 주는 이동식 전등 = 전기스탠드 4. 경기장의 계단식 관람석

stand : [움직씨] 1. 서다, 서 있다 2. 일어서다 3. (어떤 위치에) 세우다 4. (특정한 곳에) 서[위치해] 있다 5. (특정한 조건·상황에) 있다 6. (키·높이가) …이다 7. (수준·양 등이) …이다 [이름씨] 1.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태도[의견] 2. 저항, 반항 3. 가판대, 좌판 4. -대(전시회 등에서 전시·홍보용 물건을 얹어 놓기 위해 만든 시설) 5. (…용) 스탠드[세움대] 6. (경기장의) 스탠드[관중석]

スタンド(stand) : 1. 스탠드 2. 대(臺). 작은 탁자 3. 매장(賣場). 판매대. 경음식점 4. (경기장 등의) 계단식 관람석 5. 전기 스탠드. 갓이 달린 조명기구 6. 일어섬. 일어남



영어 ‘stand’는 움직씨와 이름씨로 따로 쓰임새가 무척 넓습니다. 서른 가지 즈음 된다고 여길 만한데, 우리나라에서 쓰는 ‘스탠드’는 일본을 거쳐서 들어온 쓰임새라고 느낍니다. 이때에는 ‘디딤턱·다락턱·다랑턱’이나 ‘세우다·세움틀·서다·선자리’로 고쳐쓸 노릇입니다. ‘불·불빛·불빛줄기’나 ‘불살·불줄기’로 고쳐쓰고, ‘빛·빛살·빛발·빛줄기’나 ‘책상불’로 고쳐쓰면 되어요. ㅍㄹㄴ



스탠드의 불을 켜자

→ 책상불을 켜자

→ 자리에 불을 켜자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곽재구, 문학동네, 2019) 78쪽


밤낮으로 태양 대신 낮은 스탠드 불빛 아래

→ 밤낮으로 햇빛 아닌 낮은 불빛에서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김상미, 문학동네, 2022)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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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영어] 댄디·댄디즘dandyism



댄디 : x

댄디즘(dandyism) : 겉치레, 허세 따위로 멋을 부리려는 경향. 문학에서는 정신적 귀족주의 경향으로 나타난다

dandy : 1. 멋쟁이 (남자), 멋을 많이 부리는 남자 2. 아주 좋은

dandyism : 치장, 멋부림

ダンディ-(dandy) : 1. 댄디 2. 멋쟁이 사내. 세련된. 멋을 내는

ダンディズム(dandyism) : 댄디이즘, 멋부림, 치레, 멋



우리 낱말책에 ‘댄디즘’이 나오는데 ‘겉치레·겉발림·겉옷’이나 ‘겉멋·겉짓·껍데기·겨’로 고쳐쓰면 되어요. 영어 낱말책과 일본 낱말책을 살피니 ‘멋부림·멋부리기’나 ‘멋내기·멋질’로 고쳐써도 되겠구나 싶습니다. 수수하게 ‘멋·옷’이라고만 해도 될 테고요. ‘반지르르·번드르르·말로·말뿐’이나 ‘눈가림·치레·흉허물’로 고쳐쓰고, ‘옷나래·옷날개·옷맵시·옷차림’이나 ‘옷꽃·옷빛·옷섶’으로 고쳐쓸 만합니다. ‘입성·입다·입으로·입만’이나 ‘차림·차림결·차림멋·차림빛·차림새’로 고쳐써도 되어요. ㅍㄹㄴ



제일 비싼 방에서 머무른 것은 무위도식을 표방한 그다운 댄디즘이지 않았을까

→ 가장 비싼 칸에서 머무르기는 놀고먹기를 내세운 그다운 겉멋이지 않았을까

→ 가장 비싼 칸에서 머무르기는 흥청망청을 내세운 그다운 겉치레이지 않았을까

→ 가장 비싼 칸에서 머무르기는 느긋이 놀기를 앞세운 그다운 멋이지 않았을까

→ 가장 비싼 칸에서 머무르기는 노닥질을 앞세운 그다운 멋내기이지 않았을까

《작업실 탐닉》(세노 갓파/송수진 옮김, 씨네북스, 2010) 33쪽


묘하게도 아버지는 집밖으로 나오면 가장 대신 멋진 댄디가 되어 나를 모른 체했다

→ 얄궂게도 아버지는 집밖으로 나오면 기둥 아닌 멋쟁이가 되어 나를 모른 체했다

→ 재밌게도 아버지는 집밖으로 나오면 들보 아닌 겉멋이 들어 나를 모른 체했다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김상미, 문학동네, 2022) 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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