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12. 전파과학사 책살피



  ‘현대과학신서’라는 이름은 일본책을 그대로 따왔고, 예전 손바닥책은 엮음새도 꾸밈새도 일본판을 고스란히 들여왔다. 우리는 우리 손끝으로 책을 꾸리고 지은 지 아직 얼마 안 된다. 그러나 모두 발자취이다. 창피낯도 자랑낯도 발자취이고, 흉내낯도 지음낯도 발자취이다. 맨바닥에서 하나하나 일구고 쌓으려 하던 땀으로 여길 수 있다. 다만 뉘우침글(반성문)은 책마을 스스로 쓸 수 있어야 할 테지.


  ‘전파과학사’ 책살피는 드물다. 좀처럼 보기 어렵다. 1970해무렵에 우리나라 웬만한 펴냄터마다 ‘일본 손바닥책 책살피’를 흉내내어 책에 하나씩 꽂곤 했는데, 크기도 꾸밈새도 다 일본살림을 고스란히 따왔다. 그렇지만 모두 발자국이다. 시늉낯도 배움낯도 발자국이고, 따라쟁이낯도 스스로낯도 발자국이다. 그저 돌아봄글(반성문)은 책마을 스스로 남길 수 있어야 하겠지.


  대구책집으로 마실을 온 길에 뜻밖에 ‘전파과학사 책살피’를 여럿 만난다. 고맙게 값을 치르고서 품는다. 낮에 한참 대구 여러 곳을 걷고 둘러보면서 책짐을 등에 졌으니, 저물녘에는 이제 부산으로 돌아갈 텐데, 이 길에 작은책을 읽자. 해가 넘어갈 때까지 읽고 쓰면서 하루를 마감하자.


  천천히 걸으면 된다. 느긋이 헤아리면 된다. 하나씩 짚으면 된다. 별이 돋을 하늘을 그리면 된다. 나는 오늘을 생각하면서 새롭게 배우고 한 발짝을 또 내딛는다. 나는 모레를 그리면서 새삼스레 익히고 두 발짝을 다시 뻗는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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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11. 해가 미운 나라



  불볕이라지만, 여름더위는 이미 7월 8일부터 꺾였다. 이제 마당에 내놓는 빨래는 17:30을 넘기면 가볍게 추진다. 지난 6월 25일 즈음부터 긴낮(하지)이 꺾여서 해가 차츰 눕는다. 한낮 뙤약볕도 요즈막에는 하나도 안 따갑다. 해를 늘 꾸준하게 쬐고 머금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한여름에 더울 일이 없다. 햇볕을 맞이하는 살갗이 까무잡잡하면서 튼튼하게 거듭난다. 햇볕을 가로막는 옷이나 가리개나 챙이나 갓(모자)이나 거품(크림) 탓에 살갗이 허옇게 죽어버린다. 해를 안 먹는 사람이 부쩍 늘면서 다들 앓고 아프다.


  그러나 날씨를 알리는 이 나라는 사람들을 “해미워!”로 길들이려고 한다. 여름이니 마땅히 더워야 하건만, 여름더위가 마냥 나쁘다고 몰아세운다. 우리는 스스로 나라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한 나머지, 부채 하나와 나무그늘과 구름그늘로 넉넉한 여름을 자꾸 팽개치려 한다. 첫여름을 잊고 한여름을 까먹고 늦여름을 팽개친다.


  예부터 온누리 모든 아이어른은 여름에 깜둥이가 되었다. ‘깜둥이’는 그저 여름말이다. ‘깜둥이’는 놀림말이 아닌 ‘삶말’이다. ‘까만몸·까만살·까만낯’이란 무엇이겠는가? 바로 여름에 튼튼히 피어나는 철꽃이라고 할 만하다. 한여름 뙤약볕에 신나게 놀거나 일하기에 다들 까무잡잡한 흙빛으로 바뀐다. 가을일을 마칠 즈음부터 조금씩 깜빛이 빠져서 새봄녘에는 살짝 허연 살빛으로 바뀐다. “해 좀 쬐야지.” 같은 말씀은 해가 바로 살림빛(보약)이라는 오랜 슬기를 나타낸다. 고삭부리 아이어른은 한여름이건 한겨울이건 낮볕을 듬뿍 머금으라고 일렀다.


  고흥에서 부산으로 건너가는 시외버스를 타니 앞이 안 보인다. 모든 자리마다 해를 꽁꽁 가린다. 미쳤구나. 여름해를 멀리하니 여름빛이 모자라서 앓거나 아프게 마련이다. 해를 가리기에 좀(암)이 부쩍 는다. 해를 미워하니 다들 따뜻마음·포근마음·아늑마음까지 나란히 내버린다. “해미워!”에 갇히고 사로잡힌 나머지, 해마음·해사랑·해살림을 까먹는다. ‘한글’이란 ‘하늘글’이면서 ‘하얀글’에 ‘해글’을 가리킨다. 우리말을 담는 한글이듯, 우리가 서로 나누는 마음인 ‘한말’인데, ‘해글·해말’을 스스로 잊고 잃을 적에는 거칠고 메마르고 사납게 뒹굴 뿐이다.


  나는 말한다. “에어컨을 버려야 평화요 민주입니다. 미닫이를 활짝 열고서 부채를 쥐어야 평화요 민주입니다. 땀흘려 일하고 놀고 맑은물로 씻고 쉬어야 평화요 민주입니다. 해바라기·새바라기·비바라기·별바라기·숲바라기일 적에 평화요 민주입니다.” 여름볕을 반기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갈수록 이 나라는 아름터로 거듭난다. 여름바람을 즐기는 사람이 둘씩 셋씩 늘어갈수록 이 삶터는 사랑터로 깨어난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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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 - Yerong's Doodles 예롱쓰의 낙서만화
예롱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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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7.12.

“한국말 잘하네”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

 예롱

 뿌리와이파리

 2019.10.28.



  처음 보는 사람한테 “한국말 잘하네?” 하고 말을 찍 뱉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이 그이보다 나이가 많을 수 있으나 아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한국말 잘하네?”를 가볍게 웃음말로 삼으면서 하하호호 떠드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이런 말을 이웃나라 사람한테 함부로 뱉는 사람도 많지만, 우리나라 사람한테 마구 뱉는 사람도 많아요. 저는 열 살 무렵부터 쉰 살에 이르도록 “한국말 잘하네?” 하고 뱉는 말을 숱하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뱉는 이는 제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어머, 한국사람이야? 한국사람 같지 않은데? 외국사람 아니야?” 하고 되묻기 일쑤입니다. 그야말로 스스로 얼굴에 쇠가죽이라도 뒤집어썼는지, 창피도 부끄럼도 모르는 말과 매무새예요.


  여태까지 누가 “한국말 잘하네?”를 읊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할매할배도 많지만, 아줌마 아저씨도 많고, 젊은 순이돌이도 많고, 어린이와 푸름이도 많습니다. 그냥 다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어떤 굴레나 틀에 길들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한국말 잘하네?”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읊습니다. 그렇다면 이분들은 이런 말만 읊을까요? 아닙니다. 이 터전과 마을과 푸른별과 들숲메를 바라보는 눈도 나란히 일그러지더군요. 들녘을 들녘으로 안 바라보고, 숲을 숲살림으로 안 느끼고, 멧자락을 멧빛으로 안 헤아리는 삶인 터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일그러진 말씨를 그냥그냥 읊는다고 느낍니다.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는 검은살갗인 짝지하고 지내는 동안 보고 듣고 겪고 치러야 한 숱한 이야기 가운데 몇 가지를 간추린 꾸러미입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온 2019년뿐 아니라, 지난 2009년이나 1999년에도, 또 2025년에도 아직 단단히 틀어박힌 굴레와 말뚝을 짚는다고 할 만합니다. 살짝 샛길로 빠진 줄거리가 더러 있되, 우리 스스로 눈에 들보를 쓴 얄궂은 모습과 민낯을 제대로 들여다보면서 바꾸고 가꾸자는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우리나라를 보면, 서울사람은 스스로 으뜸이자 첫째입니다. 서울밖은 언제나 버금이나 둘째일 뿐 아니라 밑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서울에서조차 높낮이가 있어요. 서울 어느 곳이 더 높거나 낮다고 여겨요.


  숲에는 아무런 높낮이가 없습니다. 바다와 하늘에는 아무런 높낮이가 없지요. 더 뛰어난 별이나 덜떨어지는 별은 없습니다. 서로 다르기에 나란한 별이자 숲이자 바다이자 하늘입니다. 서로 다르기에 어깨동무하면서 즐거울 삶과 사람 사이입니다. 이제 눈에서 들보를 치울 노릇입니다. 들보는 집에 놓아야지요. 들보를 집에 안 놓고서 눈에 두면 집도 와르르 무너집니다.


ㅍㄹㄴ


가나의 여러 가지 문화 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Akan이 이름을 짓는 방식이었다. (119쪽)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면, 내가 가진 틀부터 부숴야 될 것 같아. (190쪽)


“‘좋은 의도’로 하면 차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239쪽)


차별 자체에 공감하기 어려울 수는 있어. 하지만 상대방이 겪었을 감정에 먼저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는 없는 걸까? (302쪽)


아무리 몇몇 교사들이 노력해도, 가정이나 사회에서 다시 도루묵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321쪽)


우리는 모두 한때 아이였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며 경험하고 배웠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333쪽)


“내가 너한테 ‘영어 잘한다’고 평가할 필요가 없지.” … “그 사람이 한국인일 수도 있고, 한국어를 나보다 잘할 수도 있는데, 겉모습만 보고 평가하는 거니까.” (378, 379쪽)


+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예롱, 뿌리와이파리, 2019)


나만의 책이 아닌 너와 나의 책을 만들게 되어서 기뻐

→ 나만이 아닌 너와 내가 함께 책을 지어서 기뻐

→ 내 얘기만이 아닌 너와 내 얘기로 책을 묶어서 기뻐

5


뭐, 그거야 이해할 수 있다지만

→ 뭐, 그쯤이야 그렇다지만

→ 뭐, 그 일이야 끄덕이지만

17


흑인은 성기가 크다는 인종차별적인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 같아

→ 검으면 고추가 크다고 비웃는 굴레에서 비롯한 듯해

→ 검은이는 밑이 크다고 깔보는 버릇에서 비롯한 듯싶어

46


사회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상대적 약자인 여성으로서, 인종보다 중요한 건 안전이야

→ 삶터로나 몸으로나 여린 순이로서, 사람씨보다 아늑하느냐가 큰일이야

→ 마을에서나 몸으로나 작은 쪽인 순이로서, 갈래보다 든든하냐가 큰일이야

84


미의 기준이라는 실체도 없는 것을 왜 남들이 함부로 판단해?

→ 귀엽다는 눈금은 없는데 왜 남들이 함부로 따져?

→ 멋있다는 잣대는 없는데 왜 남들이 함부로 가름해?

→ 곱다는 길은 없는데 왜 남들이 함부로 다뤄?

96


완전 시혜적인 태도잖아요

→ 아주 베푸는 눈이잖아요

→ 그저 내주겠다잖아요

236


‘좋은 의도’로 하면 차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 ‘뜻이 좋으’면 따돌림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듯해요

→ ‘좋게좋게’ 하기에 빻지 않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구나 싶어요

239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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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 - 식물학자가 자연에서 찾은 풍요로운 삶의 비밀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존 버고인 삽화 / 다산초당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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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7.12.

까칠읽기 83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

 로빈 월 키머러 글

 존 버고인 그림

 노승영 옮김

 다산초당

 2025.5.27.



《The Serviceberry》를 옮긴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책이름을 왜 바꾸었을까? 난데없다. 왜 ‘베리’라는 영어를 우리말로 안 옮겼을까?. “숲(자연)은 셈(계산)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이 책이 들려주려는 줄거리하고 안 맞기도 할 뿐 아니라, 들숲메를 너무 모르는 말이라고 느낀다.


윤동주 님이 남긴 노래 한 자락은 〈별 헤는 밤〉이다. 사투리로 ‘헤다’요, 서울말로 ‘세다’이며, ‘헤다 ㄱ’은 ‘헤아리다’로 뻗는 밑동을 이루는 낱말이다. ‘헤다’는 꼴은 같되 다른 낱말이 여럿이다. ‘헤엄’과 ‘헤치다’와 ‘헹구다’를 가리키는 ‘헤다 ㄴㄷㄹ’이 있다.


들숲메는 헤아리지(헤지·세지·생각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가? 아니다. 들숲메는 늘 헤아리고, 헤고, 세고, 생각한다. 사람만 헤아리지 않는다. 풀꽃나무뿐 아니라 돌흙모래도 철과 날과 달과 해를 헤아린다. 바람과 바다도 철과 날과 달과 해를 헤아린다. 헤아리지 않는다면 이 푸른별은 이미 망가졌다.


언제 싹트거나 움틀는지 헤아리는 씨앗이다. 언제 뿌리내리고 줄기를 뻗을는지 헤아리는 씨앗이다. 언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에 조용히 흙으로 돌아갈는지 헤아리는 씨앗이다. 그저 ‘사람과 다르게 헤아릴’ 뿐이다. 바람과 바다도 ‘사람과 다르게 헤아린’다. 사람처럼 헤아리지 않는다면 ‘헤아리지 않는다’고 해도 되겠는가? 아니다. 해파리는 해파리대로 헤아리고, 문어는 문어대로 헤아리고, 파리와 모기는 파리와 모기대로 헤아린다.


숱한 들딸과 멧딸과 숲딸은 다 다른 철에 다른 꽃을 먼저 피우고서 다 다른 맛과 냄새와 빛깔로 알이 익는다. 다 다른 딸(딸기)은 다 다르게 자라면서 다 다른 숲짐승과 사람한테 이바지한다. 사람만 다 다르지 않다. 모든 숨결이 다 다르다. 들과 숲과 메를 이루는 빛도 언제나 다르다. 이 다른 결이 얼마나 다른지 헤아릴 때라야 비로소 들숲메바다를 다루는 글과 책을 제대로 쓰고 옮길 수 있으리라 본다.


ㅍㄹㄴ


서비스베리님은 실제로 수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간뿐 아니라 지구의 여러 다른 주민들이 그 혜택을 입는다. (15쪽)


#TheServiceberry #RobinWallKimmerer


+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로빈 월 키머러/노승영 옮김, 다산초당, 2025)


저녁의 서늘한 숨결이 언덕 숲에서 흘러나와 낮의 열기를 흩뜨리고 새들이 모여든다

→ 서늘한 저녁 숨결이 언덕숲에서 흘러나와 낮볕을 흩뜨리고 새가 모여든다

→ 언덕숲에서 부는 저녁바람이 서늘하여 낮볕을 흩뜨리고 새가 모여든다

11쪽


왁자지껄한 부름 소리가 웃음소리처럼 들린다

→ 왁자지껄한 새소리가 웃음소리 같다

→ 왁자지껄 새소리는 웃음소리처럼 들린다

11쪽


행복한 웃음을 터뜨리는 이 순간, 내 동명이인들에게 더없는 유대감을 느낀다

→ 즐겁게 웃음을 터뜨리는 너랑 나는 더없이 가깝다

→ 환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너와 나는 더없이 살갑다

11쪽


풍성한 베리는 땅이 베푸는 순수한 선물처럼 느껴진다

→ 푸진 딸기는 땅이 베푸는 빛나는 열매라고 느낀다

→ 이 땅은 푸짐한 딸기를 눈부시게 베푼다고 느낀다

12쪽


서비스베리님 같은 절기 식물은 토착민이 철마다 식량을 찾아 거주지를 옮길 시기를 정하는 데 중요하다

→ 텃사람은 철마다 밥살림을 찾아 삶터를 옮길 적에 들딸기님 같은 철맞이풀을 살핀다

→ 텃내기는 철마다 먹을거리를 찾아 터전을 옮길 적에 베풂딸기님 같은 철풀꽃을 본다

→ 텃님은 철마다 밥감을 찾아 마을을 옮길 적에 멧딸기님 같은 제철풀꽃으로 가늠한다

14쪽


이런 감사에는 ‘고맙습니다’라는 공손한 말보다 훨씬 큰 의미가 있다

→ 이런 말은 ‘고맙습니다’라는 점잖은 말보다 훨씬 크다

→ 이런 절은 ‘고맙습니다’라는 얌전한 말보다 훨씬 뜻깊다

19쪽


받은 선물을 헤아리면 풍요의 감각이 생겨난다

→ 받은 빛을 헤아리면 넉넉하다고 느낀다

→ 받은 사랑을 헤아리면 푸지다고 느낀다

22쪽


필요한 것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 살림살이를 이미 갖춘 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 이미 다 있는 줄 알기 때문이다

22쪽


관계로서의 호혜성에 대해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 주고받는 사이를 똑똑히 해두어야겠다

→ 오가는 바를 또렷이 해두어야겠다

→ 어울리는 뜻을 뚜렷이 해두어야겠다

24쪽


자연경제에서 흐름의 원천이 태양이라면

→ 숲살림이 샘솟는 곳이 해라면

→ 숲살이가 흐르는 바탕이 해라면

29쪽


천연자원은 우리가 가치를 부여하는 무언가로 전환될 연료를 뜻하니 말이다

→ 나무돌흙은 우리가 값을 매길 만하게 바뀔 땔감을 뜻하니 말이다

→ 돌흙나무는 우리가 값을 붙이려고 바꾸는 밑감을 뜻하니 말이다

39쪽


선물 경제의 단위는 나가 아니라 우리다

→ 먼저 얻는 살림은 나가 아니라 우리다

→ 미리꽃은 나가 아니라 우리로 본다

51쪽


자연계를 사유재산이 아닌 선물로 이해하면 자신의 것이 아닌 풍요의 축적에는 윤리적 제약이 따른다

→ 숲을 돈이 아닌 빛으로 여기면 혼자 거머쥐지 않고 넉넉히 쌓으면서 곧은길로 가른다

→ 들숲메를 돈주머니 아닌 빛으로 보면 혼자 움켜쥐지 않고 널리 모으면서 옳게 가눈다

52쪽


식탁 장식용으로 가져가는 것을 보며 흐뭇해한다. 교환의 화폐는 은밀히 주고받는 미소다

→ 밥자리를 꾸미려고 가져가면 흐뭇해한다. 주고받는 돈이란 넌지시 주고받는 웃음이다

→ 밥자리 멋살림으로 가져가면 흐뭇해한다. 오가는 돈이란 가만히 주고받는 웃음이다

60쪽


도서관, 공원, 산책로, 문화경관을 우리는 공공재로 여기며 공유자원이라고 부른다

→ 우리는 책숲, 쉼터, 거님길, 살림마당을 고루거리로 여기며 나눔살림이라고 한다

→ 우리는 책터, 쉼터, 마을길, 살림자리를 두루거리로 여기며 모둠살림이라고 한다

74쪽


주체가 ‘무언가’가 아니라 ‘누군가’이므로 소비에 도덕적 딜레마가 따른다

→ 임자는 ‘무엇’이 아니라 ‘누구’이므로 함부로 쓸 수 없다

→ 지기는 ‘무엇’이 아니라 ‘누구’이므로 마구 쓸 수 없다

80쪽


나는 평생 식물에게 여러 문제에 대해 가르침을 구했다

→ 나는 여태 풀꽃한테 여러 가지를 배웠다

→ 나는 이제껏 푸나무한테 물어보며 살았다

87쪽


공짜 원료인 빛, 물, 공기의 선물을

→ 빛, 물, 바람을 거저로 받아서

→ 빛, 물, 바람을 그냥 얻고서

88쪽


여기에는 교육효과도 있다고 말한다

→ 여기서 배울 대목도 있다고 말한다

→ 여기에 배울거리가 있다고 말한다

108쪽


나는 식물학자이기에 들판과 숲의 세계에 가르침이 있다는 걸 안다

→ 나는 풀꽃지기이기에 들판과 숲이 우리를 가르치는 줄 안다

→ 나는 풀손가락이기에 들판과 숲한테서 배우는 줄 안다

116쪽


체제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 틀은 어떻게 거듭날까

→ 얼거리는 어떻게 바뀔까

120쪽


우리 부족은 카누의 부족이었다

→ 우리는 배겨레였다

→ 우리는 거룻배겨레였다

131쪽


바침은 한데露地에서만 이루어졌으며 우리가 사는 마을에서는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다

→ 한데에서만 바쳤으며 우리 마을에서는 바친 적이 없다

→ 길에서만 바쳤으며 우리 마을에서는 바치지 않았다

13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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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7.7.


《히틀러가 분홍토끼를 훔치던 날》

 주디스 커 글·그림/김선희 옮김, 북극곰, 2023.4.19./2024.5.10.



여름볕이 대단하다. 그렇다고 불볕이라고는 안 느낀다. 지난 2012년부터 올해에 이르도록 우리집을 작은숲으로 바꾸었다. 풀과 나무와 나비와 풀벌레와 개구리와 뱀과 새가 나란히 이곳을 푸른터로 돌보았다고 느낀다. 한낮에 집안이 33℃까지 오르기는 하더라도 밤에는 29℃나 28℃로 내려간다. 아이들이 낮잠이나 밤잠을 누릴 적에는 즐겁게 부채질을 한다. 부채 하나가 있기에 여름더위를 푼다. 낮에 가볍게 저잣마실을 다녀왔다. 노래꾸러미(시창작수첩)를 집에 놓고 나온 줄 느꼈지만, 빈종이에 새로 한 자락을 적는다. 어디에라도 쓰면 될 뿐이니까. 《히틀러가 분홍토끼를 훔치던 날》을 즐겁게 읽었다. 읽은 지 한 해가 넘으나 아직 느낌글을 미룬다. 느낌글을 얼른 매듭지으면 이 책을 떠나보낼 테니 조금 더 곁에 두면서 돌아보고 되새기고 쓰다듬는다. 나고자란 나라를 떠나야 하는 아이랑 어버이는 낯선 나라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새길을 찾아야 했고, 스위스와 프랑스가 얼핏 ‘열린마음’이 있는 듯하면서도 ‘닫힌마음’이 컸다고 한다. 주디스 커 님은 여러 나라를 거쳐서 영국에 뿌리를 내렸다. 굳이 처음 태어난 나라에서 일하거나 살아야 하지 않는다. 어느 곳이건 온사랑을 기울여서 살림씨앗을 심을 수 있으면 보금자리를 이룬다.


#JudithKerr #WhenHitlerStolePinkRabbit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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