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영어] 서빙serving



서빙(serving) : 음식점이나 카페 따위에서 음식을 나르며 손님의 시중을 드는 일

serving : (음식의) 1인분

サ-ビング(serving) : 1. 서빙 2. 봉사 활동. 남을 위해 하는 일



일본을 거쳐서 들어왔구나 싶은 ‘서빙’은 아예 우리 낱말책에 올림말로 나옵니다. 그러나 영어 낱말책에는 ‘한그릇(1인분)’이라는 뜻만 덩그러니 달려요. 이 대목을 살피면서 아리송하게 여기는 분이 있을까요? 그저 일본영어일 ‘서빙’일 텐데 ‘서브·서비스’처럼 ‘일·일하다’나 ‘이바지·바라지·도와주다·돕다’로 고쳐씁니다. ‘베풀다·거들다·보내다·거스르다·주다’로 고쳐쓰고, ‘넣다·부축·몫·나르다’로 고쳐쓰지요. ‘거저·그냥’이나 ‘이바지품·이바지몫’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 ‘덤·더’나 ‘작은돈·잔돈’으로 고치면 되고, 크게 주는 덤은 ‘큰덤·한덤’이라 하면 되어요. 크게 돕는다면 ‘큰몫·큰품’이나 ‘큰바라지·한바라지’라 할 수 있습니다. ㅍㄹㄴ



식당에 가면 서빙하는 이들이 무척 바쁠 때가 있다

→ 밥집에 가면 나르는 이들이 무척 바쁠 때가 있다

→ 밥집에 가면 일하는 이들이 무척 바쁠 때가 있다

《가장 사적인 평범》(부희령, 교유서가, 2024)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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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호흡곤란



 호흡곤란의 증상을 보인다 → 숨이 가빠 보인다

 호흡곤란이 오는 이유를 분석해서 →  헐떡이는 까닭을 헤아려서

 격하게 호흡곤란까지 온다면 → 몹시 힘들다면 / 무척 답답하다면


호흡곤란(呼吸困難) : [의학] 힘쓰지 아니하면 숨쉬기가 어렵거나 숨 쉬는 데 고통을 느끼는 상태. 이물질이 차 있거나 천식, 폐렴인 경우에 일어난다.



  숨을 쉬기 어려울 적에는 ‘숨막히다·숨가쁘다’라 합니다. ‘가쁘다’나 ‘갑갑하다·답답하다’라 하기도 합니다. ‘학학·헉헉·헐떡이다’로도 나타내는데, ‘버겁다·벅차다’나 ‘힘겹다·힘들다’로 나타내어도 어울립니다. ㅍㄹㄴ



비행기를 탈 때마다 심한 불안을 느낀다. 그래도 아직은 호흡곤란이 오거나 기절한 적은 없다

→ 날개를 탈 때마다 몹시 두렵다. 그래도 아직은 헐떡이거나 넋나간 적은 없다

→ 하늘을 날 때마다 무척 떤다. 그래도 아직은 숨가쁘거나 뻗은 적은 없다

《가장 사적인 평범》(부희령, 교유서가, 202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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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적인 평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부희령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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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7.4.

인문책시렁 436


《가장 사적인 평범》

 부희령

 교유서가

 2024.9.4.



  우리집에는 ‘에어컨’이 없습니다. ‘선풍기’도 안 씁니다. 이미 저는 1995년에 어버이집을 떠날 무렵부터 ‘맨손’과 ‘온몸’으로 살아가려는 뜻이었고, 빨래도 집안일도 으레 손발로 일굽니다. 이불도 손으로 빨래하고, 저잣마실은 등짐으로 나릅니다. 나라에서는 가난집(빈민)한테 에어컨을 들이는 일을 꽤 예전부터 했고, ‘에어컨을 돌리는 가난집이 치를 삯(전기세)’까지 내주는 줄 알지만, 이런 이바지를 모두 안 받기로 했습니다. 인천에서는 동사무소 일꾼이, 전남 고흥에서는 면사무소와 군청 일꾼이 놀라더군요. “아니, 왜 공짜인데 안 받으려고 해요?”


  낱말책(국어사전)을 쓰느라 온갖 책을 끝없이 읽지만, 언제나 주머니를 털어서 장만합니다. 펴냄터에서 보내주는 책을 으레 손사래칩니다. 그냥 보내주는 책이라 하더라도 ‘읽어 보고’서 ‘아닌 책은 아닙니다’ 하고 느낌글을 씁니다. 이 삶터에 이바지할 책이 아닌, 돈장사를 바라보면서 내놓는 책은 티가 나지 않나요? 티가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돈을 바라는 글과 그림과 빛꽃(사진)은 다 티가 납니다. 돈바라기가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돈만 바라니 안쓰러울 뿐입니다. 먼저 글과 그림과 빛꽃을 가다듬고 갈고닦으면서 스스로 빛날 노릇이지 않을까요?


  까칠글을 쓰더라도 책을 꾸준히 보내는 펴냄터는 딱 한 곳이고, 글님도 딱 한 분 있습니다. 까칠글을 받아들이는 펴냄터하고 글님을 보면, 언제나 조금씩 스스로 거듭나는 대목을 엿봅니다. 이는 거꾸로 보아도 매한가지예요. 우리는 서로 배우려고 까칠하게 잔소리를 할 노릇입니다. 그냥그냥 좋게좋게 넘어가 주면, 서로 굴러떨어집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아기가 혼자서 서려고 할 적에 손을 안 잡습니다. 어버이는 아이가 걸음마를 떼려고 할 적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기다립니다. 어버이는 아이가 다릿심을 키우는 동안 일부러 안 업고 안 안습니다. 어미새는 새끼새가 둥지나기를 할 때부터 먹이를 더는 안 줍니다. ‘까칠읽기’에 ‘까칠쓰기’란, 누구나 스스로 까풀(꺼풀)을 벗고서 ‘껍데기’ 아닌 속빛으로 깨어나라고 북돋우는 길입니다.


  《가장 사적인 평범》을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꽤나 까칠하게 적는 글발이 반갑습니다. 다만 ‘너무 여린 까칠글인걸?’ 싶더군요. 이른바 ‘부드럼 까칠글’입니다. 조금 더 ‘매콤맛 까칠글’로 펼쳐냈다면 한결 빛났을 만하다고 느껴요. 우리나라 민낯을 신나게 벗겨낼 적에 이 나라가 아름답게 거듭날 길을 다같이 찾아나설 수 있습니다. 반드르르한 겉치레를 몽땅 벗겨내지 않고서야 새길을 못 갑니다.


  먼나라 옛말에 “새 포도술은 새 자루에”가 있어요. 새 자루 아닌 헌 자루에 새술을 담그면 어찌될까요? 퀴퀴하고 케케묵은 냄새와 맛이 고스란히 밸 뿐 아니라, 새로 빚은 술이 썩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름지기 글빗(비평·평론)은 가장 까칠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글꾼은 글빗을 읽고서 울어야 합니다. 글꾼을 울리지 않으면 글꾼은 못 거듭납니다. 우리나라는 글빗과 글꾼이 짝짜꿍 장난질이 지나칩니다. 되도 않는 글을 끝없이 치켜세우면서 잔뜩 팔아치우니, 어느새 우리 스스로 눈이 멀고 말아요. “눈뜬 장님”인 글빗과 글꾼이 판치는 나라입니다.


  부디 “그저 나다운 나(가장 사적인 평범)”를 더 까칠하게 여미어서 선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 그대로 “그저 나다운 나”이면 됩니다. 껍데기를 벗고서 “나다운 나”를 품을 줄 알아야 “너다운 너”을 알아보게 마련이에요. 우리는 서로 “눈감은 눈”으로 마주할 노릇입니다. 겉모습에 사로잡히는 겉눈이 아닌, 속빛을 마주하는 ‘감은눈’으로 보는 눈길을 키울 일입니다.


ㅍㄹㄴ


(백화점) 점원은 나를 흘낏 보더니 빠르게 말했다. “그거 비싼 거예요.”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듣고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한 말이지? (40쪽)


그해 겨울, 종로의 서점 앞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싶었던 사람은 너였을까? (47쪽)


(슬로베니아 분이) 대답했다. 너희들은 사회주의를 몰라서 그래. 속속들이 알아봐라. 똑같이 지어진 아파트 안 통로를 걸어가면, 어느 집에서나 할 것 없이 양배추 삶는 냄새가 나지. 양배추가 어떤 채소인지 아니? 냉장고에 넣어두면 한 달 동안 썩지 않는 거란다. 사회주의란 그런 거야. (96쪽)


이모는 일 년에 한두 번쯤 우리집에 불쑥 찾아왔다. 명절도 아니고 어머니 생일도 아니었다. 초인종 소리가 들려서 대문을 열면, 흐릿한 빛깔의 한복 차림에, 보따리를 가슴에 안은 이모가 서 있었다. (139쪽)


사람들은 정말 자유를 원하는 걸까. (174쪽)


인간을 바라볼 때 드론의 시점을 취하기 쉬운 위치가 있다. 한 집단의 리더, 군대의 지휘관, 대통령, 기업의 경영자, 고위 관료처럼 높은 지위와 권력이 밀어올려놓은 자리들이다. (187쪽)


+


《가장 사적인 평범》(부희령, 교유서가, 2024)


요즘에는 부캐라고 부르며 여러 자아를 운용하는 사람을 능력자로 여긴다

→ 요즘에는 곁빛이라 하며 여러 나를 돌보는 사람을 대단하다고 여긴다

→ 요즘에는 다른꽃이라며 여러 나를 부리는 사람을 빼어나다고 여긴다

10쪽


경로석에 앉아 마음껏 연애소설 읽는 할머니로

→ 어른자리에 앉아 마음껏 사랑글 읽는 할머니로

→ 늙님칸에 앉아 마음껏 사랑얘기 읽는 할머니로

11쪽


비행기를 탈 때마다 심한 불안을 느낀다. 그래도 아직은 호흡곤란이 오거나 기절한 적은 없다

→ 날개를 탈 때마다 몹시 두렵다. 그래도 아직은 헐떡이거나 넋나간 적은 없다

→ 하늘을 날 때마다 무척 떤다. 그래도 아직은 숨가쁘거나 뻗은 적은 없다

17쪽


식당에 가면 서빙하는 이들이 무척 바쁠 때가 있다

→ 밥집에 가면 나르는 이들이 무척 바쁠 때가 있다

→ 밥집에 가면 일하는 이들이 무척 바쁠 때가 있다

52쪽


류블랴나에서 십오 년을 살았다는 교민의 말이 떠올랐다

→ 류블랴나에서 열닷 해를 살았다는 이웃 말이 떠오른다

→ 류블랴나에서 열다섯 해를 산 한겨레 말이 떠오른다

98쪽


누군가가 빈정거린 것처럼 운하에서 물비린내나 하수도 썩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 누가 빈정거리듯 물골에서 물비린내나 밑길 썩는 냄새는 나지 않았따

→ 누가 빈정거리듯 뱃길에서 물비린내나 구정길 썩는 냄새는 나지 않았따

106쪽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전신마취를 하고

→ 아흔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온재움을 하고

→ 아흔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온몸잠을 하고

120쪽


필요 없는 책, 옷, 가구 등속을 모두 버렸다

→ 쓸데없는 책, 옷, 세간 들을 모두 버렸다

→ 안 쓰는 책, 옷, 살림을 모두 버렸다

17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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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6.17.


《결혼식은 준비하지만, 결혼은 준비하지 않았다》

 김수현 글, 스토리닷, 2025.6.14.



해날을 잇는다. 여러 날 밀린 글을 추스른다. 아침하고 낮에 집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새소리를 듣는다. 작은아이가 “음, 꾀꼬리 노랫소리이네요.” 한다. 꾀꼬리 노랫소리는 2011년에 고흥에 깃든 첫해부터 내도록 들었다. 언제 들어도 놀랍도록 우렁차면서 맑다. 씻고 쉬다가 집안일을 두 아이한테 맡기고서 읍내 나래터를 다녀오면서 저잣마실을 한다. 저녁에 〈티처스 2〉을 넷이서 함께 본다. 지난 해날에 나온 풀그림인데, ‘대치동 엄마’가 ‘대치동 아이’를 끔찍하게 몰아세우는 줄거리이다. ‘배움삯(학원비)’으로 이미 ‘작은고장 아파트 한 채’ 값만큼 나갔다는데, 엄마아빠 모두 “이만큼 돈과 품을 바쳤으니 네가 적어도 이쯤 값(성적)이 나와야 한다”고 몰아세우는 모습이 소름이 돋는다. 《결혼식은 준비하지만, 결혼은 준비하지 않았다》를 천천히 읽는다. ‘함께살기(결혼·연대·공존)’란, 그저 한집에서 알콩거리는 길이 아니다. “하늘빛으로 하나되어 하얗게 빛나는 큰(한)길을 나란히 살아가기”이기에 ‘함께살기’이다. 두 가시버시가 한빛을 이루고, 아이어른이 한넋을 가꾸고, ‘너나’가 ‘우리’로 맺는 사랑이기에 ‘함께살기’이다. 겉모습이나 겉치레가 아닌, 살림을 짓는 ‘함께’를 마주하는 이웃님을 그린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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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6.16.


《후쿠시마에서 살아간다》

 땡땡책협동조합 엮음, 땡땡책, 2014.3.11.



새벽에 일어난다. 비는 그치지 않는다. 이른아침에 옆마을로 걸어간다. 비를 반갑게 맞는다. 질머리(포두) 한켠에서 내린다. 이윽고 영남초등학교로 건너간다. 오늘부터 이곳 어린씨하고 노래짓기(시쓰기 수업)를 편다. 시골배움터 어린씨는 모두 스물넷. 시골배움터 곁은 제법 높다란 멧숲이고, 이 둘레를 부릉부릉 지나가는 쇳덩이는 드물다. 온하루를 멧새노래와 바람노래가 감돈다. 책을 펴지 않더라도 누구나 푸른살림을 온몸과 온마음으로 익힐 만한 터전이다. 여러모로 보면, 오늘 우리는 ‘틀(학교교육)’에 갇힌 나머지 ‘틈(자기표현)’을 잊는구나 싶다. 움·눈·싹은 ‘틀’로는 트지(움트지·눈뜨기·싹트지) 않는다. 집과 마을에서 내도록 노래하는 새가 누구요, 복숭아가 나무에서 어떻게 익어가며 수박은 밭에서 어떻게 꽃을 피우는지 눈여겨볼 적에 비로소 사랑을 익히고 알아간다. 6월 16일에 수박꽃이 노란 밭이되, 가게에 수박알이 나온 지 벌써 달포째이다. 뭐가 어긋난 ‘틀(제도권교육·문학·문화)’인지 못 알아채거나 안 알아보려 한다면, 우리가 바로 스스로 ‘틈’을 못 내면서 숨이 막힌다.


《후쿠시마에서 살아간다》를 읽은 지 여러 해이다. 느낌글을 쓰려다가 그만두기를 여러 해 잇는다. 나쁜책은 아니나 여러모로 아쉽다. 섣불리 내놓은 책이라고 느낀다. 더 삭이거나 오래 들여다본 다음에만 써야 하지 않으나, ‘핵발전소는 나빠!’ 하나만 붙잡으려고 하면 갈피를 못 잡게 마련이다. ‘어떤 전기를 써야 하느냐?’ 하고 외치기 앞서 ‘전기를 왜 쓰지?’부터 짚을 노릇이다. 우리가 서울에 우글우글 모이는 굴레가 아닌, 저마다 제 고장과 마을과 시골과 들숲메바다에서 살림을 잇는다면, 핵발전소는커녕 크고작은 발전소가 없어도 될 만하다.


이제라도 조금 더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제라도 “수박꽃이 여름에 피는 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여름에 꽃이 피는 수박을 한봄이나 늦봄부터 열매로 먹는다면, ‘핵발전소’는 저리 가라 할 만큼 커다란 고름덩이를 우리 스스로 키우는 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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