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70] 온날떡

 둘째가 태어난 지 백날이 지납니다. 백날째를 맞이해서 흰떡을 합니다. 이 흰떡을 누구한테 돌릴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옆지기가 읍내 가게 어디어디를 들러 인사를 하라 이야기할 때에 비로소, 아하, 이 흰떡은 이곳저곳에 많이 돌려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읍내로 가는 길에 생각합니다. 떡 한 가득 담은 상자를 수레에 실어야 하니 첫째를 태울 수 없습니다. 백‘날’을 맞이했기에 백날떡이지만, 백‘일’을 맞이했다고 여기는 거의 모든 사람들한테는 백일떡일 테지요. 초·중·고등학교를 거치고 살짝 대학교에 발을 담그는 동안 어느 학교에서도 ‘온’이라는 낱말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즈믄’이라는 옛말을 옛문학을 배우며 처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뿐입니다. 옛문학에 나오는 옛말 ‘즈믄’이지, 우리들이 살아가는 바로 이곳 이때에 쓸 만한 낱말로 여기지 않습니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갈 무렵 ‘즈믄둥이’라는 말이 새삼스레 쓰였으나, 다른 어느 자리에서도 ‘즈믄’을 쓰는 사람을 만날 수 없습니다. 첫째와 둘째를 막 낳아 갓 보살피던 세이레를 놓고도 ‘이레’를 알아듣는 어른이나 이웃이나 동무는 없었습니다. 수레에 떡을 싣고 수박까지 한 통 사서 싣습니다. 아주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더 생각합니다. 내 마음속으로는 ‘온날떡’을 해서 둘째와 옆지기하고 나눈다고 생각합니다. (4344.8.3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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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31 11:49   좋아요 0 | URL
온날떡...
이름이 너무 곱네요, 백일떡 보다 훨씬 좋습니다.
앞으로 온날떡이라 부르겠어요.

파란놀 2011-08-31 12:12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 님이 이렇게 이야기해 주신다니 고맙습니다.
다문 한 사람이라도 입에 가만히 굴리면
좋은 사랑이 널리 퍼질 수 있으리라 믿어요~
 

 


 흙놀이 책읽기


 개구리가 올챙이 적을 모른다는 옛말이 있지만, 참말 개구리가 올챙이였던 나날을 모를는지는 알 길이 없다. 사람은 개구리가 아니요, 개구리 삶을 모르며, 개구리 넋을 짚을 수 없으니까. 개구리를 빗대어 이야기하지만, 옳게 말하자면 어른은 어린이였던 지난날을 모른다고 해야 한다. 아기였던 나날을 떠올리는 어버이가 드물거나 없다고 해야 한다. 나부터 헤아린다면, 두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막상 내가 이 두 아이만 한 나이였을 때에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생각하며 어찌 지냈는가를 하나도 떠올리지 못한다.

 첫째 아이가 흙놀이를 하는 모습을 가끔 바라본다. 아직 혼자서 마당에서 놀지 못한다. 빨래를 널거나 걷으러 마당에 나올 때면 쪼르르 따라나와서 흙놀이를 하곤 한다. 흙놀이를 마친 아이는 흙 묻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거나 옷에 문지른다. 아마, 나도 첫째 나이만 했을 때에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아이가 옷에 흙을 묻힌다고 나무라려 한다면, 나 또한 어린 나날 나무라는 소리를 들은 일을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방으로 들어와서 손을 물에 씻는다 하더라도 금세 다시 흙놀이를 한다. 씻으나 마나라 할 테지만, 또 씻겨야 할 테지.

 인천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 곧잘 갯벌마실을 가서 갯벌흙을 만지며 놀았다. 바닷가에서는 모래흙도 만지고 뻘흙도 만질 수 있어 좋다. 질척질척한 뻘흙으로는 이것저것 만들기 쉽다. 수많은 구멍을 좇아 어떤 목숨들이 옹크리는가를 살핀다. 뻘흙에서 논 다음에는 바닷물로 손을 씻으면 된다.

 내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고 형하고 인천 송도유원지에 마실을 다녀오던 퍽 어린 어느 날, 형하고 내가 땅바닥에서 무언가를 주울 때, 내 아버지, 곧 아이들 할아버지가 나와 형이 옹크린 모습을 사진으로 한 장 찍었다. 나는 내 아이가 시골집 마당에 옹크리며 흙놀이를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

 몇 해를 기다린 끝에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를 모두 장만한다. 2002년에 한 번 찍고 판이 끊어진 책인데, 출판사에서 용케 2011년에 새로 찍어 주었다.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한글을 깨치고 만화책을 신나게 읽을 무렵일 2020년 언저리에 《불새》가 다시 나오리라 바랄 수 없다. 《불새》뿐이랴. 《아톰》이나 《블랙잭》이 다시 나오리라 꿈꿀 수 있을까. 《나의 손오공》은 2020년에도 장만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은 모든 책을 다 읽어낼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이 어떤 책을 읽고 싶어 하더라도 “자, 여기에 있어.” 하고 내미는 어버이가 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이건 뭐야?” 하고 물을 때에, “응, 이건 이렇단다.” 하고 보드라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버이가 되어야 하리라. 지치지 말고, 꺾이지 말며, 책을 읽듯 삶을 읽으면서 삶을 읽듯 책을 읽는 예쁜 어버이로 살아야 한다고 느낀다. (4344.8.3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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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1-08-31 10:47   좋아요 0 | URL
언제 보아도 참 행복해보이는 아이랍니다,
우리딸도 저럴때가있었는데 요즘 엄마가 너무 욕심을 부리고 있구나 싶어요,,ㅎㅎ

파란놀 2011-08-31 11:01   좋아요 0 | URL
앞으로도 곱고 예쁜 모습 그대로일 딸아이로
사랑스레 자라리라 믿어요~
 
불새 2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불새>는 2011년에 새로 찍어 '세트판'으로만 다시 살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뜯어 읽을 값이 아주 크기에, 이렇게 낱권으로 느낌글을 적습니다.



 한길로 이어지는 한결같은 사랑
 [만화책 즐겨읽기 57] 데즈카 오사무, 《불새 2》


 후덥지근한 무더위입니다. 가만히 앉거나 누워도 땀이 흐릅니다. 방에 있는 온도계는 28℃밖에 안 되지만 몹시 괴롭습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며 온도계가 30℃나 31℃까지 되던 날보다 훨씬 괴롭습니다.

 어떻게 이처럼 괴로울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무너지는 자연 터전을 헤아린다면, 자연을 무너뜨린 사람으로서 후덥지근한 무더위에 괴로워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이 잘못했든 만 사람이 잘못했든 모든 사람들이 후덥지근한 무더위에 지치거나 괴로워야 합니다.


- “나기, 난 30년 간 히미코 님을 모셔 왔다. 그것도 온마음을 다해서. 무려 30년이나 인생을 허비한 거야. 그리고, 지금 무엇이 남았을 것 같냐? 내가 정말 어리석었지. 그러니 나기, 너만은 나같은 청춘을 보내지 말아라. 인간의 일생에는 여러 가지 목적이 있어.” “싫어!” (18∼19쪽)
- “풀이다. 이런 구멍 밑바닥에 풀이 나 있다니. 그래, 구멍 입구에서, 씨앗이 떨어져, 약간의 햇빛과 빗물로 여기만 풀이 자랐구나! 으음, 먹을 수 있어. 마, 맛있다.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겠어. 난 살아남을 거야! 하나쿠와 함께 살고 말 거야!” (27쪽)



 만화책 《불새》 2권을 읽습니다. 《불새》 1권에서는 사람들이 일구는 삶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머나먼 옛날 사람들은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는가를 차분히 이야기합니다.

 현대 물질문명하고 견주어 이른바 ‘미개’하거나 ‘원시’라 할 만하대서 ‘나쁘’다고 할 수 있는 머나먼 옛날이 아닙니다. 옛날은 옛날대로 아름다운 삶입니다. 오늘은 오늘대로 아름다운 삶이에요. 더 낫거나 덜 나은 삶이란 없어요. 모두 사랑스러운 어버이요, 저마다 사랑스러운 아이요, 다 함께 사랑스러운 벗이자, 서로서로 사랑스러운 이웃입니다.

 한식구끼리 조그맣게 모여서 살림을 꾸려도 아름답고, 여러 식구가 마을을 이루어 조금 크게 살림을 꾸려도 아름답습니다. 다만,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마련하는 일을 하지 않고 ‘부족을 다스린다’고 하는 우두머리가 나타날 때에는 하나도 아름답지 않습니다. 부족이든 고대국가이든 나라이든, 우두머리 자리에 서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지내는 터전보다는,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며 땅을 넓히고 힘을 키우는 데에 사로잡히거든요.


- 학설에 따르면 대륙에서 온 기마민족 가운데 누군가가 일본 원주민을 정복하고 야마토에 수도를 세웠다고 한다. 일본은 이렇게 침략과 전쟁, 살육의 역사 속에서 점점 국가로서의 형태를 잡아 갔던 것이다. (79쪽)
- “당신, 쿠마소의 생존자라지?” “그래.” “쿠마소는 우리 야마타이국에 의해 멸망했지?” “…….” “모두들 죽임을 당했어?” “그래.” “정말 한 명도 남김없이 죽은 거야?” “여자며 아이들, 갓난아기까지?” “이유도 없이?” “거짓말, 거짓말이야! 우리가 그렇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리 없어.” “정말이야! 그건 분명 너희 군대가 저지른 짓이야. 이번엔 너희에게 그 차례가 돌아온 거라구.” “그럼 당신은 우리가 더없이 밉겠지? 그런데 왜 우리 편이 된 거지?” “왜 너희 편이 됐냐고? 누가 너희 편이라는 거야? 난 죽고 싶지 않을 뿐이야.” (109∼110쪽)


 싸움터에는 사내들이 나섭니다. 싸움터에 가시내들이 나서는 일은 거의 없거나 아주 드뭅니다. 싸움터에 나서는 사내들은 이웃 부족이나 겨레나 나라를 아낌없이(?) 괴롭히면서 죽입니다. 갓난쟁이라 하든 가녀린 어머니라 하든 가리지 않습니다. 빈틈없이(?) 훑으면서 개미새끼 한 마리 살아남지 못하도록 깡그리 죽입니다.

 나는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역사를 배우는 자리에서 ‘옛 고구려가 땅을 넓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깨가 조금도 우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겨레가 수없이 이웃나라 창과 화살에 시달리면서 고달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슬플 뿐 아니라, 쳐들어오는 이웃나라 사람들 또한 슬프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여 돈을 얻거나 여자를 빼앗거나 땅을 넓히는 일이 즐거울 수 있나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무기를 더 튼튼하고 더 세며 더 우악스레 만드는 일이 ‘문명 발돋움’이라 할 수 있나요. 돌에서 청동기로 넘어가고 쇠붙이로 다시 넘어가는 일은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 연장’이라는 테두리에서 살피지 않습니다. 노상 ‘전쟁무기가 더 힘세거나 대단해진다’는 테두리에서 살펴요.

 조선 때 이순신이라는 분이 만든 거북배 또한 전쟁무기입니다. 최무선이라는 분이 만든 대포나 화약 또한 전쟁무기예요.

 이웃나라에서 자꾸 쳐들어오니까 이 나라를 지키려고 전쟁무기를 만들어야 했다지만, 막상 이 나라 우두머리 노릇을 하거나 정치를 하는 이들이 벌인 일이나 마련한 제도를 살피면, ‘조금도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를 걱정하거나 살피지 않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흙을 일구는 여느 사람들이 군대로 끌려가서 이웃나라와 싸우며 지킨 것이란 그저 ‘임금님 자리’였습니다.


- “죽은 노예 녀석 따위 깨끗이 잊어버리고 내게 와라.” “싫어요!” “뭐라고? 싫어? 왜지? 천하를 쥔 내게 무엇이 불만인 거지?” “내겐 당신이 살인에 미친 자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나는 승리자다. 널 복종시키고 말겠어. 이리 오너라, 우즈메.” “오호호호호호호, 내 뱃속에는 그 사람의 아이가 있어요.” “뭣이? 사루다히코의 아이라고? 그 아이가 태어난단 말이냐?” “그래요, 앞으로 다섯 달만 지나면. 호호호, 어때요? 대량학살의 승리자님, 야마타이국의 인간은 또다시 태어날 거예요. 당신은 강물처럼 피를 흘리며 모두를 멸망시킬 셈이죠. 그리고는 이겼다고 생각하나요? 호호, 착각 말아요. 우리 여자들에게는 무기가 있어요. 승리한 당신의 군사들과 결혼해 아이를 낳는 거죠. 태어난 아이는 우리의 아이예요. 우리는 그 아이들을 키워 언젠가 당신을 멸망시킬 거예요.” (145∼146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 2권에서는 어머니 자리와 빛줄기를 이야기합니다. 가시내라고 하는 사람이 어떤 목숨이요, 어떤 넋이고, 어떤 사랑으로 살아가는가를 따사롭게 이야기합니다. 어머니가 있기에 삶이 있고, 어머니가 있어서 삶이 따스합니다. 어머니한테서 새 목숨이 태어나고, 어머니한테서 새 사랑이 피어납니다.

 어머니들은 싸움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어머니들은 싸움을 일으킬 까닭이 없습니다. 어머니들은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면서 사랑을 물려줍니다. 갓 태어나 기거나 걷기까지 몇 해가 걸리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봅니다. 말을 익히고 스스로 수저를 쥐어 밥을 먹기까지 여러 해가 걸리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핍니다.

 어머니들은 이웃나라 땅을 빼앗지 않습니다. 어머니들은 이웃나라 땅을 빼앗을 까닭이 없습니다. 조그마한 보금자리에서 조그마한 먹을거리를 얻어 조그마한 한식구를 넉넉히 먹일 수 있습니다. 이웃나라에는 이웃나라대로 또다른 목숨을 사랑하고 아끼는 어머니가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내 나라에서는 내 나라대로 내 아이를 사랑할 노릇이요, 이웃나라에서는 이웃나라대로 저희 아이를 사랑할 노릇이에요.


- ‘살아야 해!’ ‘누가 날 부르는 거지? 난 이제 죽을 거야. 불새 너냐? 네가 나한테 말하고 있는 거야?’ ‘그래. 당신은 죽으면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 해!’ ‘왜지? 왜 내가 살아야 하는데?’ ‘당신에겐 살 권리가 있으니까.’ ‘권리? 권리가 뭐지?’ ‘당신은 지금 살아 있어. 그러니까 계속 살 수 있다구!’ (159쪽)


 한길로 이어지는 한결같은 사랑입니다. 한길로 이어질 한결같은 목숨입니다.

 무시무시한 무기를 앞세워 지구별 모든 나라를 발밑에 짓밟는대서 거룩한 임금이나 훌륭한 우두머리가 되지 않습니다. 따사로운 품으로 너그러이 사랑을 나누는 조그마한 어머니 한 사람이 될 때에 비로소 거룩한 님이 되면서 훌륭한 삶이 돼요.

 그런데, 싸움을 일으켜 넓디넓은 땅을 차지하며 우쭐거리는 사람들은 역사책에 이름이 적힙니다. 싸움을 일으키지 않을 뿐더러, 오직 사랑과 믿음으로 따사로운 품을 나눈 어머니들은 어느 누구도 역사책에 이름이 적히지 않습니다.

 역사책에 이름이 적히는 일이 뜻있을까 궁금합니다.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니까, 싸움을 일으켜야 하거나 경제성장을 이루어야 하거나 올림픽 같은 운동경기에서 노란 메달을 따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4344.8.30.불.ㅎㄲㅅㄱ)


― 불새 2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2.1.2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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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가 두 개야


 옆지기가 말하기 앞서 나 스스로 느낀다. 아이는 어버이가 저를 나무라는 말까지 고스란히 따라한다. 아이는 저를 나무란다고 느끼지 못하기 일쑤이다. 아이는 저 스스로 잘못한 줄을 모르기 일쑤이고, 잘못한 줄을 모르기 일쑤이니 나무라더라도 나무라는 줄을 모르기 일쑤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나무라는 어른(어버이)이 잘못이다.

 아이가 잘못이 아닌 어른이 잘못이지만, 아이는 잘못한 어른이 다시금 잘못을 되풀이하더라도 예쁘게 함께 살아간다. 이러면서 꾸준하게 말을 건다. 언제까지 잘못을 되풀이하시겠어요?

 아이가 음성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일산 할아버지 할머니를 함께 만난다. 첫째가 네 살이 된 때에 이르러 비로소 네 분이 한 자리에 모인다. 늘 따로따로 마주하던 첫째는 네 분이 한 자리에 모인 한참이 지난 다음 한 마디를 한다. “할머니가 두 개야.”

 아이는 ‘개’라는 낱말을 잘못 썼다. 그러나 아이가 ‘개’를 잘못 썼으니 “할머니가 두 사람이야.” 하고 바로잡을 수 있으나, 이보다 아이 스스로 “할머니가 두 분 있는” 줄을 깨달은 대목을 반가이 여겨야지 싶다. 아이가 하는 말이야, 굳이 아버지가 나서지 않아도 두 분 할머니가 잘 타이르며 이끌어 주겠지. (4344.8.3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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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처럼 아이처럼 - 자녀교육, 예수처럼 사랑하고 아이처럼 생각하라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 지음, 전병욱 옮김 / 달팽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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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에 앞서 어른부터 착해야지요
 [책읽기 삶읽기 75]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 《예수처럼 아이처럼》(달팽이,2011)


 “아파 보지 않아서 모른다” 같은 말을 듣거나 “아프지 않으니 알 수 없다” 같은 말을 들을 때처럼 가슴을 후벼파는 느낌이 드는 때는 드뭅니다. 다른 어느 말보다 ‘아픔’을 몸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마음이 열리거나 닿거나 기울지 않는 모습을 깨달을 때처럼 슬픈 일이란 없다고 느낍니다.

 몸이 몹시 아프거나 무너져서 꼼짝을 할 수 없을 때, 아픈 나는 아픈 누군가처럼 아픈 눈길과 아픈 눈높이로 살아갑니다. 아픈 눈길과 아픈 눈높이로 다문 하루를 살더라도, 아픈 눈길로 무엇을 볼 수 있고 아픈 눈높이로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를 깊디깊이 받아들입니다.

 아픈 눈길로 바라볼 수 있을 때라야 어린 눈길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픈 눈높이로 살아내려 할 때라야 푸른 눈높이로 마주할 수 있습니다.

 아프지 않을 때에도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이 없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맑거나 밝은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몸이 아프지 않을 때에도 어린 눈길을 느끼면서 따스히 어루만지리라 생각합니다. 곧, 나 스스로 제대로 맑거나 밝은 마음이 되어 살아가지 못하기에, 나부터 내 몸이 몹시 아파서 괴롭거나 힘들 때를 닥쳐야, 비로소 어린 눈길을 헤아리고 푸른 눈높이를 톺아보는구나 싶어요.


.. 어린 아이들에게 뭔가를 요구하는데도 잘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이들이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우리의 요구를 내려놓는 것이 마땅합니다 … 아이의 인격이 존중받지 못하고 어른들의 기질을 강요받게 되면 아이 양육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 당연하다 … 아이들은 배우처럼 어른들에게 오락거리를 제공할 줄 모르며, 어떤 진지한 것을 가지고 공허하지만 즐거움을 만들어 낼 줄도 모른다 … 수많은 아이들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예수의 방법이 아니라 부모들의 세속적이고 인간중심의 방식으로 양육받고 있다 … 부모인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그저 성경과 종교 의식 속에서만 만나고 여러분 마음에 모시지 않는다면 아이들을 그리스도께 이끌 수 없다 ..  (28, 36, 45, 72∼73쪽)


 돈이 넉넉한 삶, 이른바 가멸차거나 가면 삶일 때에는 나처럼 돈이 넉넉한 사람들이 누리는 삶을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느낍니다. 돈이 없는 삶, 그러니까 가난하거나 찢어지는 삶일 때에는 나처럼 돈이 없는 사람들이 부대끼는 삶을 돌아보거나 생각하거나 알아챕니다.

 자동차를 몰 때에는 자동차를 모는 다른 사람들 마음을 헤아립니다. 자전거를 탈 때에는 자전거를 타는 다른 사람들 느낌을 함께 나눕니다. 두 다리로 걸을 때에는 두 다리로 걷는 다른 사람들 꿈을 맞아들입니다. 바퀴걸상에 앉는다든지 한 자리에 꼼짝을 할 수 없다면 이제서야 걸을 수 없는 사람들 삶을 가슴으로 아로새깁니다.

 살아갈 때에 비로소 바라보면서 느끼고 껴안습니다. 지식을 쌓으며 안다 할 때에는 조금도 바라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으며 껴안을 수 없습니다.

 내 삶이 될 때에 ‘참다이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삶이 아닌 지식일 때에는 ‘껍데기를 훑는다’고 말할 뿐,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지식이 늘지, 삶이 되지 않습니다. 한 줄을 읽더라도 온몸으로 부둥켜안도록 살아내야 비로소 안다 할 만해요. 한 줄조차 못 읽더라도 온몸으로 부둥켜안는 삶이 아름다워야 비로소 안다 할 만합니다. 백 권이나 천 권을 읽는다지만, 정작 내 삶을 하나도 고치거나 바꾸지 않는다면 하나도 모른다 할 만합니다. 책을 꾸준히 읽는 삶을 사랑하려면, 내 삶을 꾸준히 손질하면서 날마다 거듭나는 매무새가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새롭게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날마다 읽는 책이란 얼마나 부질없을까요.


.. 아이는 ‘항상’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생각한다 … 아이는 방해받지 않고 행복함을 느낄 때 가장 고분고분해진다. 또한 마음이 안정감을 갖고 차분해진다 …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기대하지 말고 설사 많은 말썽을 일으키더라도 사랑해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버릇없는 행동까지도 품어야 한다 …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  (34, 38, 49, 74쪽)


 누구한테든 날마다 새로 찾아오는 하루가 반갑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한테든 날마다 맞이하는 새날이 고맙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즐거운 일이 가득하다면 즐거운 일이 가득한 대로 반갑습니다. 고단한 일이 넘친다면 고단한 일이 넘치는 대로 고맙습니다.

 돈 500원이 없어 쩔쩔매는 살림은 돈 500원이 없어 쩔쩔매면서 반갑습니다. 돈 100만 원이 없어 괴로운 살림은 돈 100만 원이 없어 괴로우면서 고맙습니다. 보일러에 기름이 가득해 걱정없이 방바닥을 덥힐 수 있는 살림은 걱정없이 겨울나기를 하는 대로 반갑습니다. 애틋한 옆지기하고 입맞추는 사람은 애틋한 옆지기하고 입맞추는 대로 고맙습니다.

 못 누리거나 덜 누리는 사람 때문에 내가 누리는 삶을 부끄러이 여길 까닭이 없습니다. 더 누리거나 많이 누리는 사람 때문에 내가 못 누리는 삶을 남우세스러이 돌아볼 까닭이 없습니다.

 못 누릴 때에는 못 누리는 대로 좋습니다. 더 누릴 때에는 더 누리는 대로 좋아요. 모든 삶은 늘 돌아갑니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듯, 좋은 일이 있으니 궂은 일이 있어요. 좋은 일만 잇달지 않고, 궂은 일만 이어지지 않아요. 삶만 끝없을 수 없으며, 죽음만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아름다운 내 삶입니다. 늘 빛나는 내 삶터입니다. 노상 싱그러운 내 삶자락이에요.


.. 그저 아이들과 함께 놀아 주고 이야기하고 사랑하는 것 말고 더 필요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 아이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존경해야 한다. 하지만 부모들도 마찬가지로 자녀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교육의 목표는 언제나 지배계급을 만드는 것이었다 … 아이가 아이로 살 때 아이는 행복하다 ..  (51, 65, 76, 110쪽)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한테 ‘배움 길잡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예수처럼 아이처럼》(달팽이,2011)을 읽습니다. 133쪽에 이르는 조그마한 책에 깃든 조그마하면서 단출한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깁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아이하고 나눌 ‘배움 길잡이’는 얼마 안 됩니다. 아니, 얼마 안 된다기보다 꼭 한 줄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면서 살아가면” 돼요.

 아이가 나중에 돈벌이를 잘 하기를 바라는 일은 사랑이 아닙니다. 아이가 너덧 살에 한글을 떼기를 꿈꾸는 일은 사랑이 아닙니다. 아이가 어느 한 가지 운동경기를 뻬어나게 잘 하기를 꾀하는 일은 사랑이 아니에요.

 사랑이란 아이가 아이답게 살아가면서 아이다움을 예쁘게 누리도록 하는 일입니다. 아이가 하는 말을 마음으로 듣고, 아이가 보여주는 몸짓을 몸으로 들으며, 아이가 바라보는 눈길을 내 넋으로 받아들이는 일이어야 사랑입니다.

 《예수처럼 아이처럼》은 ‘예수처럼 사랑하고 아이처럼 생각하라’는 줄거리를 담습니다. 이런 지식 저런 사례를 알거나 따진대서 아이를 사랑할 수 없으며, 지구별과 온누리를 빚은 하늘님과 땅님 넋을 껴안을 길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착하게 살아가는 길을 밝힙니다. 참다이 어깨동무하는 삶을 들려줍니다. 아름다이 어우러지는 꿈을 보여줍니다. 아이를 낳은 어른부터 스스로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살아가면 됩니다. 아이만 착하기를 바라지 말고, 어른부터 착하면 됩니다. 아이만 예쁘기를 빌지 말고, 어른부터 예쁘게 살아내면 돼요.


― 예수처럼 아이처럼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 글,전병욱 옮김,달팽이 펴냄,2011.7.15./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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