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방 : 승무 - 춤과 그 사람
정범태 사진, 구히서 글 / 열화당 / 199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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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바로 오늘 바로 여기에 있다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0] 정범태, 《춤과 그 사람, 이매방 : 승무》(열화당,1992)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와 함께 지냅니다. 오늘날 여느 아버지는 어느 일터 하나를 붙잡아 새벽바람으로 일 나갔다가는 밤 늦게 돌아오곤 하지만, 저는 아이를 처음 배어 낳을 때부터 집에서 일하고 집에서 살림하며 집에서 아이를 돌보았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면, 아이한테서 느낄 좋으며 살가운 모습부터 궂으며 미운 모습까지 샅샅이 마주합니다. 주말에만 살짝 보는 아이가 아니라 날마다 보는 아이일 때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 온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일쑤입니다. 제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 삶을 그림으로 그리느라 몹시 바쁠 뿐 아니라 팔이 빠질 만큼 힘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나 이제나 우리 삶터는 그닥 남녀평등이 이루어졌다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남자 권리와 여자 권리를 헤아린다는 이들치고 아이를 낳아 돌볼 때에 서로서로 어버이로서 어떻게 해야 즐거우며 좋은가를 살피는 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아이를 낳기 앞서도 남자 쪽 어버이인 아버지들은 집살림이나 사람살림을 마음쓰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여자 쪽 어버이인 어머니라 해서 어머니가 되는 길을 제대로 마음쓴다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아이를 배었으니 술담배를 줄이고 달 맞추어 병원에서 환한 불빛을 쬐며 회음부를 자르고 진통제를 맞추어 쑤욱 하고 아기를 잡아당겨서는 예방주사를 발바닥에 찰싹 꽂는다고 애낳이가 되지 않아요. 내 아이가 아닌 내가 어떻게 태어났으며, 내가 어떻게 태어나야 좋을는지를 생각한다면, 또 내 아이가 아닌 내가 어린 나날 어떻게 자라면 좋을까를 돌아보면서 내 아이를 마주할 수 있어야 참다이 애낳이를 한달 수 있습니다. 남녀평등이란 육아휴직이나 가사노동분담이 아니라 삶을 함께하는 길입니다.

 이제부터 제 사랑스러운 짝꿍보다 훨씬 오래 늘 곁에서 돌봐야 할 사람은 아이인 만큼, 아이하고 살아가려 한다면 내 삶을 크게 바꾸거나 아주 바꾸거나 새로 바꾸지 않고서는 아이를 맞이할 수 없어요.

 아이는 하루하루 새로운 모습입니다. 아니, 하루 사이에도 1분마다 1초마다 새로운 모습입니다. 아이는 끝없이 자라며, 끝없이 자라기 때문에 아이요, 우리 어른들처럼 키가 더 안 큰다든지 뼈가 더 굵어지지 않는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숨을 한 번 들이쉴 때마다 자랍니다.

 집에서 아이와 살아가며 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다 보면, 고작 하루치 아이 모습이라 하지만 백 장을 거뜬히 넘곤 합니다. 《윤미네 집》이라는 살가운 사진책이 한 권 있습니다만, 누구나 제 아이를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꼭 하루 동안 제 아이 모습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찍어서 사진책 하나 빚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내 아이 이야기 하루치로 사진책 하나 빚을 만하며, 이름있는 사진쟁이이건 이름없는 사진쟁이이건 이러한 ‘내 아이 삶자락 이야기’ 사진책은 둘레 사람 누구한테나 아름다우며 빛고운 넋을 나누어 줍니다.

 사진기자 정범태 님은 사진기자로서 여러 가지 사진책을 내놓았습니다. 이 가운데 “춤과 그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열 권짜리 사진책은 한겨레 옛춤을 오늘날에도 멋들어지게 추는 열 사람 이야기를 열 가지 이야기로 묶습니다. ‘한국 전통춤’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냥 한 권짜리 사진책으로 내놓아도 될 법하다 여길 수 있으나, 정범태 님은 굳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따로따로 나누어 낱권책으로 일굽니다. 한영숙 님은 살풀이요, 하보경 님은 밀양 북춤이요, 김숙자 님은 도살풀이요, 안채봉 님은 소고춤이요, 하면서 “춤과 그 사람” 열 권마다 춤쟁이 이름과 춤사위 이름을 하나하나 들면서 사진이야기로 선보입니다.

 정범태 님은 사진책 머리말에 “사십여 년 동안 ‘이 소중함들을 어떻게 간직할 것인가’라는 나 자신에게 던진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사진책을 묶었다고 밝힙니다. 이 소담스럽거나 대수롭거나 놀랍거나 아름답거나 거룩하거나 살뜰한 춤사위를 홀로 알기에는 아쉬울 분더러 홀로 필름에만 얹혀 놓기에는 안타까웠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누고 싶기에, 보이고 싶기에, 또 함께 즐기거나 누리고 싶기에,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말하면서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몸소 느끼고 싶기에 “춤과 그 사람” 열 권이 태어날 수 있었구나 생각합니다.

 다만, 정범태 님 스스로 밝히듯 “그러나 나는 그들의 춤 그릇과 움직임만을 이곳에 풀어 놓을 뿐 그들의 길고도 깊은 한의 이야기로 묶인 정신세계는 내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로는 담아낼 수가 없었음을 고백해야겠다”는 말처럼, 춤쟁이 넋과 얼은 이 사진책에 담지 않습니다. 한편, “현대화에 발맞추어 변질되어 가는 우리 춤들 중에서 원형에 가장 가까운 몸짓들을 이 책에 담았다는 자부심은 있다”는 말처럼 한겨레 옛춤을 있는 그대로 잘 담습니다.

 사진책 《춤과 그 사람, 이매방 : 승무》이건 《춤과 그 사람, 김덕명 : 양산 사찰학춤》이건 《춤과 그 사람, 강선영 : 태평무》이건, 이와 같은 춤사위가 어떠한 가락에 따라 어떠한 멋과 몸짓으로 이루어지는가를 살뜰히 보여주는 정범태 님 사진책입니다. 이와 함께 이러한 춤사위마다 어떠한 넋과 얼이 깃들었는가는 짚지 못하는 정범태 님 사진책이에요.

 사진기자 정범태 님이 머리말에서 밝히는 말마디를 그저 ‘고개숙이기’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정범태 님은 정범태 님으로서 할 수 있는 온힘과 온땀을 들여 이 사진책 열 권을 이룹니다. 나머지 몫, 그러니까 오늘날까지 이들 춤쟁이가 춤사위를 꾸준히 잇는 길과 결을 고이 살펴, 이들 춤쟁이 넋과 얼을 사진으로 알뜰히 담아 ‘한겨레 춤사위를 즐기는 사람들은 어떠한 넋으로 어떠한 사랑을 어떠한 얼에 따라 어떠한 몸짓으로 펼치는가’를 보여줄 만한 새로운 사진을 선보여 준다면, 남보다 먼저 한겨레 춤쟁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사람으로서 고마우며 기쁘겠다는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춤과 그 사람, 이매방 : 승무》를 비롯한 춤사위 사진책 열 권은 이 나라에서 사진길을 걷는 젊은이한테 물려주는 선물이자 빛이자 열매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찾아나서면서 밝히거나 나눌 이야기가 참으로 많은데, 이 가운데 춤 하나만 꼽아도 춤꾼마다 사뭇 다르며 서로 놀랍도록 아리따운 모습이 넘치니, 이러한 춤길에서 사진길을 길어올릴 수 있다고 물려주는 선물입니다. 누군가는 이매방 님 발자취 하나만 좇을 수 있고, 누군가는 강선영 님 발자국 하나만 살필 수 있겠지요. 한 사람 발자취만 좇더라도 사진책으로 열 권 스무 권이 태어날 만합니다. 춤꾼 한 사람이 마흔 해 예순 해를 춤사위에 넋을 실어 춤을 빚는다면, 사진꾼 한 사람은 마흔 해 예순 해를 사진사위에 넋을 실어 사진을 빚을 수 있습니다. 춤쟁이 한 사람이 하루 한 자리에서 펼치는 춤놀이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사진쟁이 한 사람은 하루 한 자리에서 느끼는 춤놀이 이야기를 한 자리에서 필름 열 통이든 스무 통이든 쓰면서 사진놀이 한 자락 일굴 수 있습니다. 또한, 젊은 사진쟁이 누군가는 ‘까망하양 빛깔로 담는 춤 사진’을 넘어 ‘무지개 빛깔로 싣는 춤 사진’을 꽃피울 수 있어요.

 책상맡으로 스미는 햇볕 흐름을 좇으면서도 사진책을 하나 마련할 수 있습니다. 시골집 우리 텃밭에 비치는 햇살을 새벽부터 밤까지 돌아보며 사진책 하나 엮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늘 우리 둘레에 있습니다. 삶은 바로 내 손으로 일굽니다. 사진기를 쥔 내 손은 내가 이름난 쟁이가 아니더라도 빛납니다. 사진기 단추를 어루만지는 내 손가락은 내가 손꼽히는 꾼이 아니어도 예쁩니다. 사진은 바로 오늘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4344.3.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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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56] 어린이 청소년 코너

 요사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이’나 ‘어린이’라 말하지 않는 어른이 꽤나 많습니다. 으레 ‘키즈’나 ‘주니어’라 말합니다. 때로는 ‘영’이라고도 말할 테지요. 어린이책이든 푸름이책이든 내놓는 출판사를 살피면 ‘무슨무슨 키즈’라든지 ‘무슨무슨 주니어’라 이름을 붙이는 곳이 제법 있습니다. ‘차일드 어쩌고’를 붙이는 곳도 있어요. 왜 어린이한테 어린이라 말하지 못할까요. 왜 푸름이한테 푸름이라 말하지 않을까요. 그나마, ‘어린이’와 ‘청소년’이라는 이름을 쓰는 곳조차 ‘코너’라든지 ‘섹션’이라든지 하는 말을 뒤에 달랑달랑 답니다. 그냥 ‘어린이책·청소년책’이라고만 해도 될 텐데요. ‘어린이·청소년 마당’이라 하든지요. (4344.3.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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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3.13. 

뭘 들여다보니? 

 

네 발을 보면, 네가 잘못하더라도 꾸짖을 수 없다. 

 

아버지 도와주려는 마음으로도 고맙다. 

  

네 마음껏 훨훨 날아라. 

 

이제 귤은 더 안 나온다니, 마지막 귤까기 아이가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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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병우


 공병우 님하고 함께 살았던 집식구는 공병우 님을 어떻게 바라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공병우 님이 살던 무렵에 만나뵌 일이 없을 뿐더러, 공병우 님이 쓴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공병우 님 집식구를 알 수 있지는 않으니까요. 그저, 공병우 님이 남긴 글과 사진을 돌아보면서 당신 삶결을 더듬을 뿐입니다. 아마, 앞으로 쉰 해나 백 해쯤 뒤라면 공병우 님 집식구 이야기를 알 길이란 오늘보다 훨씬 적을 테며, 이백 해나 오백 해 뒤에 공병우 님을 되새길 사람들은 당신 글과 사진으로만 당신을 읽거나 살피겠지요.

 사진밭에서 공병우 님을 생각하거나 말하는 일은 대단히 드뭅니다. 공병우 님을 생각하거나 말하는 자리는 안과 의사인 공병우 박사와 세벌식 한글타자기를 만든 한글운동꾼 공병우 님입니다. 그러나 공병우 님은 짧고 굵게 사진쟁이로 살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나이 일흔을 넘긴 때에 누구도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던 사진일을 했습니다.

 공병우 님이 누구보다 거룩하거나 대단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또한, 공병우 님한테는 의사나 한글운동꾼이나 사진쟁이라는 이름이 그다지 걸맞지 않구나 싶습니다. 그저 공병우 님은 당신 삶을 좋아하면서 아름다운 길을 걸으려고 온힘을 쏟은 멋진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신 목숨을 고마이 여기며 기쁜 나날을 마음껏 누리려고 온땀을 바친 착한 사람이 아니랴 싶어요. (4344.3.2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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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3-22 23:18   좋아요 0 | URL
공병우님이란면 세벌식 타지기를 만드신 그 안과 의사분이신가요?

파란놀 2011-03-23 07:42   좋아요 0 | URL
네.. 글에 썼잖아요. ㅋㅋㅋㅋ

카스피 2011-03-23 22:1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런^^;;;;
 
도시의 속살 - 도시여행자 김대홍이 자전거 타고 카메라에 담은 우리 도시 이야기
김대홍 지음 / 포토넷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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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사람, 작은 자전거, 작은 이야기
 [책읽기 삶읽기 45] 김대홍, 《도시의 속살》



 인천에 살면서 서울로 마실을 하거나 서울로 일거리를 찾아 떠나는 일은 많습니다. 서울에 살면서 인천으로 마실을 다니거나 인천으로 일거리를 찾아 오가는 일은 드뭅니다.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밀양이나 청도에 살면서 부산이나 대구로 마실을 하거나 일거리를 찾아 떠나기는 할 테지요. 그러나 부산이나 대구에 살면서 밀양이나 청도로 마실을 다니거나 일거리를 찾아 오가는 일은 얼마나 될까요.

 오늘날 웬만한 일거리는 더 커다란 도시에 많습니다. 더 작은 도시나 시골로 들어가면 일거리가 없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돈을 더 많이 벌어들일 일거리라 한다면 더 큰 도시에 많을밖에 없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린 커다란 도시에 더 돈 될 만한 일이 많다 할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더 커다란 도시로 몰리다 보니, 조금 더 작은 도시는 볼품을 잃거나 빛이 바랩니다. 더 커다란 도시는 더 커다랗게 되어야 하고, 더 작은 도시는 커다란 도시에 지지 않으려고 아웅다웅합니다.


..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산길은 걷기 좋다. 길은 고둥을 닮았다 ..  (92쪽)


 군 한 곳에 5만이 살든 10만이 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7만이거나 8만이라면 더 낫다 할 수 없고 좀 모자라다 할 수 없습니다. 5만이면 5만대로 즐겁고 10만이면 10만대로 괜찮습니다.

 군이 굳이 시가 될 까닭이 없습니다. 읍이 반드시 군으로 홀로서야 하지 않습니다. 면이 애써 읍이 되어야 하거나 리를 꼭 면으로 올려야 하지 않습니다.

 아니, 리가 면이 된대서 올라간달 수 없고, 면이 읍이 되니까 올라가는 셈이 아닙니다. 서울이 되어야 할 부산이나 대전이 아닙니다. 광역시가 되어야 할 통영이나 창원이 아닙니다.

 인천에서 태어나 살던 때, 인천보다 작은 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인천이 큰도시라서 부럽다’는 말이랑 ‘서울하고 가까우니 좋겠다’는 말을 곧잘 했습니다. 서울사람은 인천을 시골로 여겼으나, 서울하고든 인천하고든 제법 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인천만 하더라도 대단한 도시로 여겼습니다.

 인천을 떠나 아홉 해쯤 서울에서 살던 때, 서울에서 살아간다니 인천에 있는 동무들은 부러워 하거나 남다르게 바라봅니다. 다른 곳으로 돌아다니면 ‘서울 깍쟁이’라고 했습니다. 몸은 서울에 있어도 삶은 서울내기가 아니지만, 서울이라면 다 똑같은 서울내기가 되고 맙니다.

 서울을 떠나 충북 충주시 끄트머리 음성하고 맞닿은 멧골자락으로 들어가서 지내던 때, 도민이 되니 이것저것 새롭게 느낍니다. 큰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이제 온나라 어디이든 길이 잘 뚫렸’으니까, 어느 시골에서든 서울로 손쉽게 오갈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서울사람은 술자리에서 인천사람이 일고여덟 시쯤이면 자리를 털고 바지런히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줄을 모르고, 서울사람은 한낮부터 시골사람이 얼른 집으로 돌아가려고 발길을 재촉해야 하는 줄을 모릅니다.


.. 3000원짜리 칼국수는 푸짐하다. 익지 않은 김치와 푹 익은 김치, 오징어포 무침을 곁들여 든든하게 저녁을 먹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에 홀려 두부 파는 노점 앞에 섰다. 한 모를 사고, 사진기를 꺼내 찍으려 하니 주인 아주머니가 “이거 비싼 거죠?”라고 묻는다. “쫌요.”라고 하니, “무척 좋은 직장 다니시나 봐요.”라고 말한다. DSLR카메라가 비싸긴 하다. DSLR카메라를 갖고 다닌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직장 다닌다’고 믿는 아주머니와 나는 같은 시대 같은 동네에 산다 ..  (139∼141쪽)


 《도시의 속살》이라는 이야기책을 읽습니다. 누리신문 〈오마이뉴스〉 기자로 일하던 김대홍 님이 남녘땅 여러 도시를 자전거나 기차나 버스를 타고 오가며 마주한 사람과 삶과 터전 이야기를 그러모은 책입니다. 오늘날 신문기자나 잡지기자 가운데 ‘자가용 아닌 자전거’라든지 ‘자가용 아닌 기차나 버스’를 타고 이 땅 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마주한 이야기를 신문에 이어싣는 일은 아직 없다고 느낍니다. 두 다리로 내 고향을 느낀다든지, 자전거로 이웃마을을 만나는 일이란 좀처럼 볼 수 없다고 느낍니다.

 자가용이 오늘날처럼 두루 퍼지지 않던 꽤 예전에는 신문기자이든 잡지기자이든 기차나 버스를 타고 취재를 다녔겠지요. 때로는 취재 자동차를 탔겠지만, 맨몸으로 골골샅샅 다니던 이들이 꽤 있었겠지요.

 나날이 새로 쏟아지는 숱한 여행책을 들여다보면 으레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거쳐 찾아가는 길’을 ‘서울에서 길을 떠나는 틀’로 보여주기 일쑤입니다. 하나같이 판박이라 할 만하고, 한결같이 뻔하다 할 만합니다.

 찬찬히 읽으면, 《도시의 속살》도 여느 여행책하고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남녘땅 도시를 ‘자전거와 기차와 버스’로 만난다는 대목이 다르다 할 뿐, 남녘땅 도시를 만나며 풀어내는 이야기 얼거리는 매한가지입니다. 도시마다 어떠한 발자취였고 어떠한 오늘날 모습인가를 짚는데, 좀 많다 싶도록 ‘지나온 발자취’ 이야기가 크게 차지합니다.


.. 6070거리는 옛날 드라마 세트장 같다. 안성장터 특징이 담겨 있지 않아 아쉽다. 우리는 사라진 것들을 아쉬워하지만 지금도 먼 훗날 아쉬워할 것들을 숱하게 지우는 중이다 ..  (200쪽)


 이야기책 《도시의 속살》이라 한다면, 말 그대로 ‘속살’이란 ‘이름과 힘과 돈이 있던 사람들이 벌인 좀 많이 알려진 옛이야기’가 아니라, ‘이름도 힘도 돈도 없으나 예쁘며 즐거이 살아온 하나도 안 알려지거나 동네에서만 살가이 아닌 삶이야기’에 눈길을 맞추었다면 훨씬 재미나지 않았겠느냐 생각합니다.

 그러나, 《도시의 속살》은 ‘자전거와 기차와 버스’로 한결 천천히, 조금 더 느리게, 값싸면서 호젓한 밥과 술과 잠집을 마주하며 누리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습니다. 애써 다큐멘터리 영화나 사진처럼 ‘아주 가난하거나 몹시 꾀죄죄해 보이는’ 밑바닥 사람들을 파헤치려 하지 않습니다. 국수장수이건 두부장수이건 스스럼없이 만납니다. 시골 장마당이건 멧길이건 그렁저렁 돌아다닙니다.

 더 돋보여야 할 이야기란 없습니다. 더 뒤처져야 할 이야기란 없습니다. 모두 사람들이고, 모두 삶이며, 모두 이야기입니다.

 요즈음 번쩍번쩍 눈부시다 해서 이야기가 훨씬 많을 도시일 수 없습니다. 이제 많이 기울어졌다 하기에 이야기가 하나도 없는 도시일 수 없어요.

 이야기란 언제나 어디에나 있습니다. 이야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로 갈릴 뿐입니다.


.. 작은 자전거라 속도가 느린 단점은 곧 도시여행에선 장점이었다. 느리니 그만큼 찬찬히 보고 많이 볼 수 있었다. 웬만하면 옆길로 새고 많이 보자는 여행 목적과는 잘 들어맞았다. 작고 귀여운 자전거라서 사람들이 친근감을 느끼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자연스레 사람들이 말을 걸어 왔고, 아이들은 ‘태워 달라’라고 조르며 사진모델이 돼 주었다 ..  (317쪽)


 자가용으로 씽씽 달리면 ‘가려는 곳’까지 거침없이 빨리 갑니다. 자전거로 씽씽 달려도 ‘가려는 곳’에 자가용만큼은 아니지만 무척 빨리 갑니다.

 자가용으로 달려도 느리게 20킬로미터 밑으로 달릴 수 있으면 마을을 조금이나마 느끼겠지요. 자전거로 달려도 20킬로미터 넘게 달린다면 마을이건 동네이건 시골이건 도시이건 느끼기 어렵겠지요.

 작은 사람이 작은 자전거를 타고 작은 마을을 찾아다닐 때에 작은 이야기를 작은 손으로 작게작게 길어올립니다. 큰 사람은 큰 비행기를 타고 큰 나라를 찾아다니며 큰 이야기를 뽑아오겠지요. (4344.3.22.불.ㅎㄲㅅㄱ)


― 도시의 속살 (김대홍 글·사진,포토넷 펴냄,2010.9.15./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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