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싹 내인생의책 그림책 5
스티브 브린 지음, 강유하 옮김 / 내인생의책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포근한 보금자리로 사랑스레 돌아오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92] 스티브 브린, 《찰싹》(내인생의책,2007)



 그림책 《찰싹》을 장만한 날부터 첫째 아이는 이 그림책을 몹시 재미있게 들여다봅니다. 하루에 서너 차례 보기도 하고, 방바닥에 이리저리 굴리다가도 또 들여다보곤 합니다. 아버지도 자리에 드러누워 펼쳐서 아이한테 읽히기도 하고, 어머니도 자리에 드러누워 둘째까지 함께 보라며 읽히곤 합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한테 수없이 되풀이해서 읽힐 만하지 않다면 그림책으로서는 어딘가 모자라다고 느낍니다. 한두 번 읽히고는 더 읽힐 마음이 들지 않다면, 이런저런 지식이나 정보를 보여주기는 하더라도 덧없다고 느낍니다. 하루에도 차근차근 열 번 스무 번 되읽을 만하지 않다면, 이만 한 그림책은 처음부터 장만하지 않을 노릇이라고 느껴요.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기 앞서는 이런 지식이나 저런 정보를 다루는 그림책도 곧잘 장만하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아직 없으니, 어른은 나 혼자 보는 그림책이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때부터, 이런저런 지식 그림책이나 정보 그림책은 썩 덧없습니다. 자연이나 생태나 환경을 다루는 그림책도 그다지 재미나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가 멧골자락에 깃든 작은 집에서 살아가기에 자연 그림책이나 생태 그림책이 그닥 재미나지 않을는지 모르나, 한국에서 내놓는 자연 그림책이든 일본이나 서양에서 내놓는 자연 그림책이든 ‘자연 생태계 지식’이나 ‘꽃 정보’에 머물곤 합니다. 이와 같은 지식과 정보를 보여주려는 넋을 옳게 드러내지 못해요.

 그림책 《찰싹》에는 푸른개구리가 나옵니다. 이 그림책에는 푸른개구리가 무얼 먹고 얼마만 한 크기이며 어디에서 사는지를 한 마디로도 덧붙이지 않습니다. 개구리를 잡아먹는 다른 짐승이 무엇인지를 밝히지 않고, 개구리 한살이나 짝찟기나 갈래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저, 푸른개구리 한 마리가 작은 못에서 살아가며 겪는 여러 가지 일을 보여줍니다.

 곰곰이 들여다보면, 이 그림책에 나오는 푸른개구리 보금자리는 푸른개구리가 좋아하면서 즐거이 지내는 터전입니다. 푸른개구리는 작은 날벌레를 잡아먹습니다. 개똥벌레까지 잡아먹습니다. 어린 푸른개구리는 커다란 잠자리까지 잡아먹지는 못합니다. 푸른개구리를 잡아먹을 만한 여러 가지 큰 새가 나오지만, 이 그림책에서 큰 새들은 푸른개구리를 잡아먹지 않고, 이모저모 도와줍니다. 이밖에, 푸른개구리 ‘찰싹이’가 머나먼 곳을 널리 돌아다니면서 지나가는 곳이 어떠한 터전이요 살림인가를 자연스레 보여줍니다.


.. (푸른개구리) ‘찰싹’은 혼자서 하기를 좋아합니다. 뭐든지 혼자서 ..  (3∼4쪽)


 만화와 같은 결로 보여주는 그림책 《찰싹》은 따로 어떤 가르침(교훈)이 없다고 여길 수 있지만, 이 그림책을 아이한테 읽히는 어버이에 따라 무언가 가르침말을 들려줄 수 있습니다. 따로 어떤 ‘말’이 적히지 않는 그림책이기에, 이 그림책에 나오는 그림을 아이한테 풀어서 들려줄 때에 어버이들 나름대로 이런 덧말 저런 덧생각을 들려주면 돼요. 다만, 가르침말이란 따분해서는 안 되고, 억지스러워서도 안 됩니다. 아이들이 기쁘게 받아들이고 즐거이 맞아들일 만한 사랑스러운 나눔말이어야 합니다.

 푸른개구리 찰싹이한테든, 이 그림책을 읽을 아이한테든, 가장 바라고 가장 좋아하며 가장 빛나는 마음밥이란 바로 사랑일 테니까요.


.. 찰싹은 완전히 혼자가 되었습니다 ..  (29쪽)


 사랑은 따스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너그러운 사랑입니다. 사랑은 살가운 사랑입니다. 사랑은 넉넉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즐거운 사랑입니다. 사랑은 믿음직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얼싸안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깨동무하는 사랑입니다.

 아이하고 밥 한 그릇을 밥상에 차려서 먹는 자리에서도 사랑이 어린 밥을 내놓고 함께 먹습니다. 아이하고 손을 맞잡고 읍내 저잣거리에 마실을 나가는 길에도 어버이는 따사로운 손길로 아이를 보듬습니다.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슬슬 마실을 다닐 때에도 아이가 바람을 시원스레 맞으면서 이 시골길을 마음껏 즐기기를 바라는 사랑입니다.

 사랑이기에 홀가분합니다. 사랑이기에 예쁩니다. 사랑이기에 해맑습니다. 아이는 어른 앞에서 맑은 눈빛으로 조잘조잘 떠듭니다. 아이는 어른 앞에서 맑은 귀를 열어 어른들이 맑은 소리를 들려주기를 기다립니다. 어른들이 맑은 소리를 들려주면 이 맑은 소리는 아이들 가슴에서 맑은 꽃망울을 터뜨려 맑은 노래로 되살아납니다. 어른들이 맑지 않은 소리를 아이들 앞에서 섣불리 들려준다면, 아이들 가슴에서는 맑지 못한 먼지가 피어오르겠지요.

 맑은 삶을 사랑하면서 맑은 넋과 꿈으로 맑은 이야기를 길어올릴 어른들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푸른개구리 찰싹이는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귀로 흘리면서 제멋대로 놀려다가 그만 아주 혼자가 됩니다. 아주 혼자가 된 다음 깊이 생각에 잠기고, 깊이 생각에 잠긴 끝에 집으로 돌아가서 어머니하고 함께 살아갈 길을 찾습니다.

 꼭 함께 살아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서로를 따사로이 아끼는 사랑을 애써 등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따사로이 아끼는 사랑어린 보금자리를 마다 할 까닭이 있다고 느끼지 않아요.

 그저 배만 불리는 밥이란 맛나지도 즐겁지도 반갑지도 않아요. 배는 좀 덜 부르더라도 따순 손길로 알뜰히 마련해서 함께 즐기는 밥이라면, 제아무리 가난한 살림살이 가난한 밥상이라 하더라도 맛나고 즐거우며 반갑습니다. 푸른개구리 찰싹이는 사랑스러운 따스한 보금자리가 얼마나 좋은가를 천천히 깨달아 너그러운 어머니 품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4344.9.7.물.ㅎㄲㅅㄱ)


― 찰싹 (스티브 브린 글·그림,내인생의책 펴냄,2007.11.1./1만 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옥수수 책읽기


 음성 할머니가 아이한테 옥수수를 쪄서 내준다. 옥수수는 퍽 뜨겁다. 그렇지만 아이는 이 뜨거운 옥수수자루를 거침없이 집어든다. 아뜨 아뜨 하면서도 옥수수자루를 입에 문다. 워낙 옥수수를 좋아하다 보니 뜨거운 옥수수라 하더라도 뜨거움을 견디면서 먹는다.

 뜨거운 옥수수를 맛나게 먹는 아이를 바라보는 옆지기는 이듬해에 옥수수를 많이 심어야겠다고 얘기한다. 그렇지. 아이도 옆지기도 옥수수를 잘 먹는데, 우리 텃밭에 옥수수를 잔뜩 심어야지. 새 보금자리에서 우리가 지을 텃밭을 얼마나 얻을 만한지 모르지만, 요 빈터 저 빈터에 신나게 심어야지. 겨우내 똥오줌 거름 잘 모아서 거름도 예쁘게 주어야지. 새해를 맞이해서 새롭게 옥수수를 심을 때에는 첫째 아이는 다섯 살이 될 테니까, 올해보다는 흙일을 한결 잘 거들겠지.

 아이는 아직 글을 모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더라도 아이한테 글을 가르칠 생각이 없다. 네 살이건 다섯 살이건 글을 배우기에 퍽 이르다고 느낀다. 일곱 살까지는 글을 몰라도 되고, 여덟 살이 되어도 글을 몰라도 돼. 아이 스스로 글을 배우고 싶다고 아버지 어머니한테 이야기할 때에 비로소 글을 가르치면 돼.

 글을 모르는 아이라 하지만, 호미 쥐기는 제 아버지와 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배운다. 씨앗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하나씩 둘씩 집어 밭고랑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어 쏙쏙 넣고 손바닥으로 판판하게 덮는 일 또한 제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는 양을 바라보면서 배운다. 아이는 흙을 일구는 이야기를 다루는 책을 읽지 않는다. 아이는 이런 책을 읽을 수조차 없다. 아이는 몸으로 배우고 삶으로 익힌다. 아이는 스스로 흙하고 하나로 얼크러지면서 흙을 돌보거나 아끼거나 사랑하는 길을 배운다.

 돌이켜보면, 자연사랑이나 환경사랑 같은 이야기는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대서 깨닫거나 느끼거나 배울 수 없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자연사랑이나 환경사랑을 할 수 없다. 도시 일자리를 내려놓고 시골로 가야 한다. 도시에서 돈을 좀 덜 벌면서 빈터가 있는 보금자리를 찾아 텃밭을 일구어야 한다. 스스로 흙을 만지면서 하늘바라기를 할 줄 모른다면, 환경책을 천만 권 읽는들 더할 나위 없이 부질없다. (4344.9.7.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2℃ 책읽기


 엊저녁부터 22℃로 떨어진다. 드디어 올해에도 가을이 한복판에 이르는 한편, 머잖아 겨울이 다가온다는 뜻이다. 저녁나절 방 온도가 22℃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보일러를 한 차례 돌린다.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던 때 22℃는 이제부터 보일러를 적게 때거나 안 때도 된다는 뜻이고, 여름을 지나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 22℃는 이제부터 신나게 보일러를 때야 하는 철이 닥쳤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22℃는 온도계를 보기 앞서 내 살갗과 몸으로 먼저 느꼈다. ‘어, 오늘은 저녁부터 퍽 쌀쌀한데. 오늘은 창문을 더 일찍 닫아야 하는구나.’ 하고 느꼈다. 아직 한가위가 안 되었는데 벌써부터 꽤 쌀쌀하다고, 좀 서늘하다고 느끼는 저녁바람이 되었다고 느끼면서 온도계를 보았다. 그제까지는 저녁에 24℃나 25℃였고, 한밤에 23℃나 22℃까지 떨어졌다. 이제는 해가 떨어진 저녁부터 22℃가 되었으니, 곧 한밤에 20℃나 19℃까지 떨어지겠지.

 시골에서 살아가더라도 읍내나 시내로 일하러 다니는 사람은 이러한 온도를 잘 못 느끼리라 본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날마다 하늘과 구름과 달과 해와 바람과 나무와 풀을 살필 때에 비로소 이러한 온도를 잘 느끼리라 본다. 두릅나무 작고 하얀 꽃이 한창 흐드러지다가 이제 하나둘 저문다. (4344.9.7.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똥 씻기


 아침에 아이를 씻기는데 무언가 미끈거려 내려다보니, 허벅지에 똥이 묻었다. 바지에도 묻었다. 이 녀석이 똥을 언제 누었지? 소리 없이 누었나? 아니, 소리 내며 누었을 텐데 아이를 씻기려고 물을 받는 사이에 누었나 보다. 그래, 잘 했다. 씻기다가 똥을 누었으면 물을 다시 받아야 하잖아. 내가 입던 바지도 곧 빨아야 했으니 잘 되었지. 똥 눈 아이 엉덩이부터 씻기고 몸을 씻긴 다음 똥빨래를 신나게 한다. 마땅한 노릇이지만, 모두 내 맨손으로. (4344.9.7.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달려라 하니 1 - 바다어린이만화
이진주 지음 / 바다출판사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살아갈 힘을 북돋우는 오직 한 가지
 [만화책 즐겨읽기 39] 이진주, 《달려라 하니 (1)》


 두 아이를 데리고 음성 할아버지한테 찾아갑니다. 며칠 앞서 음성 할아버지 태어난 날이었는데, 이날 마침 춘천으로 새 보금자리를 보러 다녀와야 했기 때문에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며칠 늦은 생일축하를 하러 어제 온 식구가 찾아갑니다.

 생일축하를 하러 간 우리 네 식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옆지기가 아침에 집에서 구운 케익을 칼로 알맞게 썰어 그릇에 담아 가져갑니다. 나는 ‘아버지가 되어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시로 하나 써서 깨끗한 종이에 옮겨적어 가져갑니다. 첫째는 마냥 신나게 뛰어놉니다. 둘째는 얌전하게 누워서 새근새근 잡니다.

 생각해 보면, 누구한테든 생일축하로 가장 좋은 일이란 더 큰 선물이나 더 돋보이는 선물이나 더 값진 선물이 아니라 할 만합니다. 함께 어울리고 나란히 밥을 먹으며 느긋하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한때가 가장 좋은 일일 수 있어요. 무슨 선물보따리를 잔뜩 짊어지고 찾아가도 나쁘지는 않을 테지만, 생일을 맞이한 사람한테 찾아가는 ‘내’가 바로 살아숨쉬는 선물일 수 있으리라 느껴요.

 곧, 내가 바로 선물이고 옆지기가 바로 선물이며 두 아이가 바로 선물이에요. 나부터 내 생일 때에 누군가 이런저런 선물을 잔뜩 안길 때보다, 서로 얼굴 한번 보자며 찾아와서 몇 마디 말을 섞을 때가 더없이 반갑고 고마우며 즐거워요.


- “이 악바리야! 졌지? 별거 아닌 것이 사나이 앞에서 까불고 있어! 앞으로는 내 앞에서 까불지 마! 알았지? 이 키 작은 못난이 계집애야!” (24쪽)
- “너 달리기 좋아하니? 그, 뭐냐, 육상이란 거 한 번 해 보지 않을래?” “뛰는 거요? 저도 가끔 한 번씩 힘차게 달려 봤음 하고 생각해요. 숨이 차도록! 특히 엄마 생각이 날 때면 엄마 품까지 내처 달려 보고 싶어요. 하늘 끝까지라도.” (80쪽)


 1985년에 〈보물섬〉에 실리고, 1989년에 만화영화로 나온 《달려라 하니》(드림필드) 1권을 새삼스레 다시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어느덧 스물예닐곱 해를 먹은 만화가 된 《달려라 하니》인데, 만화책으로나 만화영화로나 참 ‘오래된’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느끼면서, 이 ‘오래된’ 이야기에 깃든 따스함이나 너그러움을 요즈음에는 쉬 찾아볼 수 없다고 느낍니다.

 《달려라 하니》에 나오는 하니를 예쁘게 볼 수도 있을 테지만, 하니나 하니를 둘러싼 사람들은 예쁜 모습이나 예쁜 얼굴이라기보다 귀여운 모습이나 얼굴이라 할 만하고, 조금 더 찬찬히 살피면, 하나같이 동글동글한 모습이요 수수하거나 투박한 모습입니다. 만화 줄거리를 이루면서 하니하고 맞수가 되는 어린이나 어른 한두 사람은 좀 뾰족하거나 모가 났다고 느끼지만, 이들도 나중에는 동글동글하면서 투박한 매무새로 거듭납니다. 도드라질 대목이 없고, 눈부신 모습이 없으며, 남다른 빛깔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도드라질 대목이 없으면서 재미나고, 눈부신 모습이 없으면서 아름다우며, 남다른 빛깔이 없이 착합니다.

 오늘날 숱한 만화책이나 만화영화에서는 한결같이 ‘도드라져 보이려는 줄거리’에 ‘눈부시게 보이려는 모습’에 ‘남달리 보이려는 그림’이 가득합니다만, 썩 재미나거나 아름답거나 착하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겉보기로는 대단할는지 모르나, 만화책으로든 만화영화로든 두고두고 되읽거나 다시 보면서 즐길 만한 맛과 멋을 헤아리지 못하는 오늘날 만화책이요 만화영화라고 느끼요.

 나는 국민학교 4학년 때에 《달려라 하니》를 읽으면서 하루에도 서너 차례 되읽었습니다. 이듬날에도 서너 차례 또 되읽었습니다. 다음날에도 새삼스레 서너 차례 되읽었습니다. 동네에 한 주에 두 번 찾아오는 ‘책 빌려주는 차’에서 〈보물섬〉을 빌려서 사흘에 걸쳐 아홉 번이나 열 번은 가볍게 다시 보면서 가슴으로 빨아들였습니다.

 한 번 보고 다시 안 볼 만한 만화라면 처음부터 볼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공부나 숙제를 안 해도 되고 만화책만 보아도 된다면, 아마 하루 동안 열 차례이든 스무 차례이든 되읽을 테지요.


- “잔소리 말고 가서 두부나 두 모 사 와!” “칫! 매일 나만 시키고. 명화 누나는 왜 안 시켜요?” “누나는 대학생인데다 매일 아침마다 열심히 피아노 연습하지 않니?” “아빠는요?” “쿨! 드르렁!” (50쪽)
- “하니! 너 지금 뭐 하는 거니? 소꿉장난 하냐?” “김치요.” “에라! 이 녀석아! 이리 내놔! 김치란 이렇게 담근다는 걸 보여줄 테니까 … 음식 맛이란 손끝에서 우러나는 정성과 양념 양에 따르는 거란 말야. 마늘과 파, 중요한 거야. 난 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혼자 살며 자취하기 때문에 죄다 알아. 그래서 나는 어려서 혼자도 살아 보고 고생하며 크는 걸 찬성하는 사람이란다. 물론 딴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는 안 되지. 그런 나의 기준으로 본다면, 하니! 너를 보고는 안심했다. 넌 얼마든지 혼자 힘으로 꿋꿋하게 지낼 놈이야. 자! 간이 어떤지 맛 좀 봐라!” (76∼78쪽)



 하니는 중학교 1학년 나이에 홀로 옥탑방을 얻어 밥을 하고 김치를 담급니다. 그렇다고 살림을 잘 해내지는 못해 홍두깨 선생님이 하나하나 도와줍니다만, 열네 살 나이에 꿋꿋하고 씩씩하게 제 길을 걸어요. 열네 살이나 되었으면서 ‘엄마 품’만 그리워 할 수 있겠느냐 따질 수 있을 텐데, 가슴에 사무치는 고운 사랑이기 때문에 열네 살이 아닌 스물네 살이나 서른네 살에도 이처럼, 하니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직 철이 덜 들었으니 이렇겠지 하고 여길 수 있을 텐데, 철이 덜 들면 철이 덜 든대로 아름다이 살아가면 되고, 철이 더 들었으면 철이 더 든대로 참다이 살아가면 됩니다.

 어떤 틀에 박혀야 하지 않습니다. 어떤 틀에 맞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규율이 있고 규칙이 있다지만, 어떤 규율이나 규칙이든 사람들이 사람다이 살아가기 좋도록, 곧 사람이 사람다운 아름다움을 빛내도록 이끌거나 돕는 규율이나 규칙이어야 합니다. 어떠한 틀에 짜맞추려는 규율이나 규칙이라 한다면 독재 정치예요. 다 다른 사람이 다 같은 규율이나 규칙을 맞출 수 없습니다.

 다 다른 사람은 달리는 빠르기가 다르고, 밥 먹는 부피가 다르며, 몸으로 쓰는 기운이 달라요. 어린 하니는 빛처럼 빨리 달린다지만 창수는 어영부영 느립니다. 어린 하니는 응어리진 생채기로 괴롭지만, 창수는 집식구들 따스한 사랑을 받으면서 외로운 하니한테 따스한 사랑을 나눌 줄 압니다. 홍두깨 선생은 어릴 적부터 가난과 따돌림과 괴롭힘으로 시달렸지만, 이 모든 아픔을 남을 해코지하는 데에 쏟지 않아요. 이 모든 아픔을 내 이웃과 동무를 더 따사로이 보듬는 착한 넋으로 북돋웁니다. 나애리는 달리는 솜씨 하나를 타고났으나, 이 타고난 솜씨로 고운 빛줄기를 갈고닦는 데에 끌어올리지 못합니다. 타고난 솜씨를 끌어올리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않고 찾지 못하며 찾을 뜻이 없습니다.

 만화책 《달려라 하니》는 이토록 다른 사람들이 한 동네에서 얼크러지면서 툭탁툭탁 쌓아올리는 사랑을 들려줍니다. 어설퍼도 기쁜 사랑을 쌓아올리고, 모자라도 너그러운 사랑을 쌓아올리며, 슬프기에 눈물로 어루만지는 사랑을 쌓아올립니다.


- 놀림을 받아도 또 한 번 쳐다보게 되는 아이. 그렇게 좋은 감정. 사춘기가 오는 소리. (61쪽)
- ‘엄마는 그저 하니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으면 돼! 난 엄마에게 아무것도 안 바랄 거야. 언제나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 가슴의 기억만 있으면 돼.’ (130쪽)
- ‘그 집은 처음부터 내가 살던 집이야. 자기들 멋대로 팔아버렸지만 내 집이야. 그 집, 거기엔 엄마의 기억이, 그 집 거기엔, 엄마와의 소중한 추억이. 우리 엄마의 체취가 남아 있는 집을 빼앗은 계집애! 다음에도 까불면 가만 안 놔둘 거야. 조심해! 가만 안 놔둘 테니까!’ (157쪽)


 한창 가을로 접어든 날이기에 이제부터 낮이 짧아지고 어스름이 일찍 찾아듭니다. 슬슬 어스름이 찾아들 무렵 네 식구는 멧골자락 작은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할아버지가 자가용을 몰아 데려다주십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첫째 아이가 곯아떨어집니다. 첫째 아이는 할아버지 차를 타기 앞서까지 지칠 줄 모르는 듯 ‘어쨌든 졸린 눈’으로 신나게 놀다가, 할머니 품에 안겨 한 오십 미터쯤 달릴 무렵 아주 깊이 잠듭니다. 온 기운을 쏟아 마음껏 놀았겠지요. 모든 힘을 터뜨려 신나게 뛰었겠지요.

 살아가는 힘은 사랑입니다. 살아내는 기운은 믿음입니다. 사랑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기에 오늘 하루를 더 살아냅니다.

 돈이 있기에 살아가지 않습니다. 든든한 일자리가 있대서 살아내지 않습니다. 자가용이 없으면 걷거나 버스나 택시를 타면 됩니다. 자전거도 있으며, 때로는 다른 사람 차를 얻어 타면 돼요. 집이 없으니 다른 사람 집에서 얻어 지내거나 방 하나 얻어 함께 살아갑니다. 나한테 돈이 없으면 누군가 나보다 돈이 더 있는 사람한테서 얻습니다. 나한테 땅이 없으면 누군가 땅이 있는 사람한테서 빌려서 흙을 일굽니다.

 나는 내가 더 가지거나 더 누린다고 여기는 무언가를 나눕니다. 글을 쓰는 나는 글을 나눌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나는 사진을 나눌 수 있습니다. 케익을 굽고 뜨개양말을 뜰 수 있는 옆지기는 집에서 구운 케익을 나누고 손수 여러 날 걸쳐 뜬 뜨개양말을 나눕니다.


- 악바리라 불리워 버린 소녀. 부릅뜬 두 눈과 굳게 다문 입. 키 작은 몸으로 무서운 스피드를 내는 소녀. 그러나 그 뒷모습은 언제나 쓸쓸한, 그 애 이름은 하니! (26∼27쪽)
- 아직은 엄마 품에서 응석을 부릴 나이, 부릅뜬 두 눈이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이 펑펑 쏟아져내릴 것 같은 아이. 악바리라 불리는 아이, 하니! (33쪽)



 어느새 저녁이 찾아들고 반달이 뜹니다. 어느덧 반달은 기울고 머잖아 새벽이 희뿌윰하게 밝겠지요. 온갖 풀벌레는 거침없이 웁니다. 풀벌레들은 저희 목숨을 오롯이 누리면서 새벽이고 아침이고 낮이고 저녁이고 밤이고 울음소리를 곱게 나누어 줍니다. 나는 이 풀벌레 울음소리를 받아먹으면서 가을날을 실컷 누립니다. 고운 결 노랫소리는 귀로도 스미고 살갗으로도 스미며 가슴으로도 스밉니다. 새근새근 자는 두 아이 몸으로도 스미고, 곁에서 갓난쟁이한테 젖을 물리는 옆지기한테도 스밉니다. 작은 살림집에 건사하는 책들한테도 스밀 풀벌레 노랫소리이고, 날마다 우리 식구들 고맙게 먹는 밥그릇에도 스밀 풀벌레 울음소리입니다.

 나는 이 가을날 풀벌레가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우면서 고맙고 즐겁습니다. 나는 이 가을날 책상맡에 《달려라 하니》를 얌전히 꽂고는 백 번이고 즈믄 번이고 신나게 꺼내어 다시 들출 수 있어 반가우면서 고맙고 즐겁습니다. 네 살 아이도 《달려라 하니》를 혼자 스스럼없이 꺼내서 주루룩 넘겨서 보곤 합니다. 아이는 이선희 님이 부른 만화영화 주제노래를 아주 잘 부릅니다. (4344.9.7.물.ㅎㄲㅅㄱ)


― 달려라 하니 1 (이진주 글·그림,드림필드 펴냄,1996.10.27./판 끊어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1-09-07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달려라 하니 다시 보고 싶어요.
저 어릴 때 동네 만화가게는 요즘의 만화방 같지 않고 (요즘 만화방이 어떤지는 사실 잘은 모르지만) 정말 초등학생 꼬마들만 가는 만화가게였어요. 다닥다닥 모여 앉아 만화 읽는 재미에 빠져 밖이 어두워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저를 찾아나선 할머니에게 잡혀 나왔지요 ㅋㅋ
꺼벙이도 하니도 모두 그리워져요.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인지도 모르지요.

파란놀 2011-09-07 19:48   좋아요 0 | URL
저 2001년에 다시 나온 판도 얼마 안 되어 품절이 되었어요. 새로 나와도 요즘 아이들은 재미있게 사 읽지 않으니까 추가 쇄를 안 찍는 듯해요. 어쩌면 만화책 운명은 이와 같은지 모르지요.

그래도, 인터넷에서 판도라티비에서 찾아보면 1989년에 했던 만화영화를 다시 볼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