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책읽기


 사진으로 보여주면 애써 글로 차근차근 풀어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진이 없던 지난날에는 꿈조차 꿀 수 없던 모습이라 할 만하지만, 사진이 아주 널리 퍼지거나 자리잡은 오늘날에는 아주 마땅하다 싶은 모습입니다.

 이야기를 글로 들려줄 때에, 그러니까 그림이나 사진 없이 글로만 이루어진 책일 때에는 따분하거나 재미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만나 입으로 조잘조잘 떠들며 나누는 이야기란 그림이나 사진을 보여주지 않고 말(글)로만 이야기를 들려주는 셈인데, 혼자 스스로 조용히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글책 읽기는 자꾸 주눅들거나 시듭니다.

 이야기는 차분히 들어야 합니다. 서둘러 죽죽 읽어치우려 하면 제아무리 짧은 글이라 하더라도 옳게 헤아리지 못합니다. 글로 이루어진 책을 찬찬히 읽어내어 헤아리지 못할 사람이라면, 그림이나 사진이 가득 깃든 책일지라도 이 그림이나 사진이 무슨 이야기를 담는지를 똑똑히 읽어내어 헤아리지 못합니다. 글읽기가 되는 사람이어야 말듣기를 제대로 하고, 글읽기와 말듣기를 참다이 할 때라야 그림읽기나 사진읽기 또한 참다이 합니다.

 그림읽기와 사진읽기가 한결 수월할 수 없습니다. 글읽기를 하면서 내 마음속으로 생각날개를 펼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림읽기이건 사진읽기이건 젬병이거나 어긋나기 일쑤입니다.

 사진 많이 깃든 책을 바란다거나 사진을 좋아해서 사진잔치에 자주 놀러다닌다 하더라도 사진읽기를 슬기롭게 해낼 수 없습니다. 사진읽기에 앞서 글읽기를 할 줄 알아야 하며, 글읽기를 하면서 사람읽기와 삶읽기를 함께 해야 합니다. 사람읽기와 삶읽기를 하는 동안 사람마다 제 삶을 어떻게 사랑하여 글을 이루었는가를 읽어야 합니다. 곧, 사랑읽기를 하며 글읽기를 마무리짓습니다.

 책 하나 읽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하느냐 여길 수 있습니다. 참말 책 하나 읽는 일이란 그다지 대수롭지 않습니다. 뜨개질로 옷 하나 짓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하느냐 여길 수 있습니다. 날마다 먹는 밥 한 그릇 하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하느냐 여길 수 있습니다. 손바닥만 한 텃밭 하나 일구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하느냐 여길 수 있습니다. 자가용하고 안 사귀며 두 다리나 자전거로 살아가는 나날이 뭐 그리 대단하느냐 여길 수 있습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안 보내고 집에서 함께 놀며 키우는 나날이 뭐 그리 대단하느냐 여길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도 안 대단합니다. 마땅한 우리 삶이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아끼며 사랑할 내 삶이기 때문에 따로 대단하다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나, 돈이 대단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뽑기가 대단할 수 없습니다. 4대강사업 가로막기가 대단할 수 없습니다. 국가보안법이나 언론자유가 대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 누리에 대단한 일이란 없습니다. 오직 우리 삶이 있을 뿐이요, 우리 삶은 대단하다거나 대단하지 않다거나 금을 긋듯 가를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한 번 선물받은 삶이며 목숨일 뿐이고, 누구나 한 번 선물받아 일구는 삶이자 목숨일 뿐입니다. 1975년 12월 7일도 하루 한 번뿐이요, 20110년 3월 28일도 하루 한 번뿐입니다. 두 번이나 세 번 맞이할 수 없는 하루 한때입니다.

 삶을 읽는 눈일 때에 사람을 읽고, 사람을 읽는 마음일 때에 사랑을 읽으며, 사랑을 읽는 가슴으로 책에 담기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읽습니다. (4344.3.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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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58] FAQ MORE

 ‘FAQ’가 무슨 뜻을 가리키는가를 알아보려고 누리집 찾기창에 넣으면, “frequently asked question”을 줄인 영어로, “자주 묻는 질문”이라고 풀이합니다. 으레 이렇게들 이야기하고, 어느 곳에서는 “자주 묻는 질문”이라는 말마디를 게시판 이름으로 삼기도 합니다. 그런데, ‘質問’이란 “묻는 말”입니다. 묻는 말을 가리키는 한자말 ‘질문’ 앞에 ‘묻는’을 넣으면 겹말입니다. 영어를 고스란히 옮기다가 겹말을 쓰는 셈이라 할는지 모르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또렷하게 깨닫지 않으니 이런 번역에 이런 영어를 아무렇지 않게 쓴다고 해야지 싶습니다. 우리 말로는 “자주 묻는 말”이나 “자주 묻는 이야기”나 “궁금한 이야기”입니다. “묻고 알려주기”는 말 그대로 누군가 물었을 때에 누군가 알려주는 자리요, “궁금한 이야기”는 누가 묻기 앞서 궁금해 하리라 여기는 이야기를 먼저 밝히는 자리입니다. 영어를 쓴대서 글이 더 짧아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그닥 멋있지 않습니다. 우리 말로 짤막하게 “궁금해요”라든지 “궁금이”라든지 “궁금궁금”이라든지 “궁금”처럼 적어 놓으면 됩니다. 또는 “알쏭달쏭”이나 “알쏭알쏭” 이나 “알쏭” 같은 말을 써 보아도 돼요. (4344.3.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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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57] HOME, BACK, TOP

 오늘날 ‘HOME’, ‘BACK’, ‘TOP’ 세 가지 영어를 못 알아들을 어린이나 푸름이나 젊은이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이든 어른 가운데에는 이 손쉽다 할 만한 영어를 모를 분이 있겠지요. 컴퓨터이니 인터넷이니 낯익지 않은 어른한테도 이 손쉬운 영어는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아채기 어려울 수 있고요. 그러나, 인터넷에 마련하는 집인 누리집을 만드는 사람은 모두 젊은 사람이며, 누리집을 만드는 사람은 영어를 웬만큼 할 줄 알며, 한글보다 알파벳으로 꾸미는 누리집이 한결 어여쁘거나 멋스럽다고 여깁니다. 누리집을 꾸미는 일을 ‘꾸민다’ 하지 않고 ‘디자인한다’ 하고 말합니다. 우리 말 “처음으로, 뒤로, 위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누리집에 이 같은 우리 말 세 마디를 찬찬히 적어 넣는 모습은 찾아보기 몹시 어렵습니다. (4344.3.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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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고양이를 찾아가다 집요한 과학씨, 웅진 사이언스빅 21
이자와 마사코.최종욱 지음, 조영경 옮김, 히라이데 마모루.양순옥 그림, 신남식 감수 / 웅진주니어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아끼는 삶을 고운 그림책 하나로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0] 히라이데 마모루·이자와 마사코, 《집요한 과학씨, 야생 고양이를 찾아가다》(웅진주니어,2008)


 겨울이 되어 날이 꽁꽁 얼어붙으면 뭇 풀은 모조리 숨을 죽입니다. 풀싹과 풀잎과 풀줄기는 바싹 말라서 죽습니다. 그러나 풀씨는 살며시 흙으로 내려앉은 채 겨울나기를 합니다. 곰이나 다람쥐가 겨울잠을 자듯이 풀씨 또한 겨울잠을 새근새근 잡니다. 밥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시면서 아주 가느다랗게 숨을 쉬며 겨울잠을 잡니다.

 풀씨가 겨울잠을 자는 줄 느끼거나 헤아리거나 살피는 사람은 아주 드물거나 거의 없습니다. 사람들은 사람대로 겨우내 옷을 두툼하게 껴입으며 겨울나기를 하느라 바쁘기 때문입니다. 풀씨 하나야 살든 죽든 마르든 비틀어지든 아랑곳할 겨를이 없습니다.

 풀씨는 겨울잠을 자며 목숨을 잇고, 풀씨가 맺히기까지 햇볕을 쬐고 물을 마시고 바람을 들이마신 풀줄기와 풀잎과 풀뿌리는 흙으로 돌아갑니다. 스스로 숨을 끊으며 흙기운을 북돋우는 거름이 됩니다.

 거름이 된 풀줄기와 풀잎과 풀뿌리는 새 풀씨가 새봄에 새싹을 틔워 새롭게 푸른삶을 이어가도록 밑바탕이 됩니다. 밑거름이 되어 줍니다. 생각해 보면, 모든 늙은 사람이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가며 모든 새 어린 사람이 태어나 흙을 디디며 살아갈 수 있게 하듯이, 늙은 풀은 거름이 되고 늙은 사람은 슬기를 남긴 채 뒷사람 삶을 도우려 합니다.


.. 나는 고양이를 연구해요. 고양이가 어떻게 사는지 조사하기 위해 하루 종일 고양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죠.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나 스스로 먹이를 찾아다니며 자유롭게 사는 고양이나 똑같은 고양이입니다. 하지만 사는 모습은 아주 다르지요 ..  (4쪽)


 봄이 되어 차츰 풀리는 날씨에 따라 온 들판에 작고 앙증맞은 풀잎이 돋습니다. 도시에서도 시멘트와 아스팔트 틈바구니 한켠에서 풀씨가 뿌리를 내리며 풀잎 고개를 내밉니다.

 시골사람은 산들바람을 느끼며 푸른 잎사귀를 뜯고, 도시사람은 바쁜 도시살이에 찌드느라 발밑 들풀을 느끼지 못합니다. 도시사람은 민들레라도 노란 꽃을 피워야 비로소 발밑을 내려다볼는지 모르지만, 막상 노란 민들레 꽃봉우리가 소담스레 방긋방긋 웃어도 발밑은커녕 흙 둘레조차 둘러보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자동차를 모는 이들이라면 자동차 바퀴가 자그마한 꽃봉우리를 우지끈 짓밟는 줄조차 못 느끼겠지요.

 전쟁이란 자동차가 작은 풀잎과 꽃송이를 짓밟는 일하고 똑같습니다. 우리 스스로 못 느끼는 사이에 가녀린 목숨을 밟아 죽이듯, 우리 스스로 총칼을 들고 싸움터에 나가서 누군가를 해코지하거나 죽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낸 세금으로 사들이거나 갖춘 전쟁무기로 자꾸자꾸 군대가 커지고, 이 군대는 끝없이 적군을 만들어 전쟁을 일으킵니다.

 봄이 와도 봄이 깃들지 않는 총부리요, 봄이 되어도 봄기운이 스미지 못하는 탱크요 전투기요 군함이요 대포입니다.


..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처음 본 고양이는 모래 색깔의 긴 털을 가진 고양이였어요. 가슴이 두근거렸지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며 지켜보았더니 한가로이 길을 걷다가 정육점을 기웃거리고 있었어요. 우리 마을 고양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지요 … 캥거루를 실제로 본 건 처음인데, 모습이 정말 신기했어요. 또 타조와 비슷하게 생긴 커다란 에뮤도 봤어요. 고개를 앞뒤로 흔들면서 느긋하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귀여운 동물들과 같이 살고 있는 고양이는 어떤 모습일가요? ..  (8, 10쪽)


 그림책 《집요한 과학씨, 야생 고양이를 찾아가다》(웅진주니어,2008)를 읽습니다. 혼자서 읽고, 잠자리에 아이를 무릎에 앉히며 읽습니다. 아이는 그림책 첫머리에서는 좀 따분해 합니다. 첫머리는 그닥 재미나지 않거든요. 그러나 첫머리에서 글쓴이가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날까 하고 꿈꾸는 모습’을 지나, 글쓴이가 이제 막 오스트레일리아에 닿아 들판을 누비며 들고양이를 찾아다니는 그림이 나오면, 아이는 눈빛을 반짝입니다.

 아이는 제 아버지와 함께 들판과 나무숲 사이에 고양이가 어디어디 숨었는가를 찾습니다. 귀를 찾고 꼬리를 찾습니다. 토끼가 맴돌며 노는 사이 자는 척하다가 덥석 한 마리 물어서 잡아먹는 모습을 봅니다.

 들고양이는 들토끼를 사냥해서 새끼한테 먹입니다. 사람 어버이는 밥을 지어 아이한테 먹입니다. 토끼는 풀을 뜯어 스스로 배를 채웁니다. 저마다 제자리에서 제 삶을 돌봅니다. 여우는 틈틈이 들고양이 사냥을 노리지만, 꾀바른 들고양이는 제 새끼를 잘 건사하면서 지키기도 하지만, 때때로 여우 또한 제 새끼를 먹이려는 사냥을 훌륭히 해내어 새끼 고양이 한두 마리를 잡기도 하겠지요.

 다 함께 살아가는 터전에서는 다 함께 고마운 밥을 얻어, 다 함께 고마운 하루를 보냅니다. 내 배가 고프듯 네 배가 고프며, 내 잠자리가 그립듯 네 잠자리 또한 그립습니다.


.. 사실 고양이들은 토끼 굴에서 살아요. 토끼에게는 반갑지 않은 이웃이죠. 하지만 새 보금자리를 찾는 것은 더 힘든 일이에요. 다행히 토끼 굴은 미로같이 복잡하기 때문에 토끼도 그리 쉽게 붙잡히지 않죠 … 완전히 자란 새끼들은 독립해서 자신만의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갔어요. 먹이도 물도 구하기 힘든 험한 계절을 혼자서 헤쳐 나가야 합니다. 새끼 고양이만이 아닙니다. 몇 년에 한 번씩 유독 가뭄이 심한 해가 있어요. 그때는 어른 고양이도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땅을 찾아나섭니다. 몇 백 킬로미터나 되는 먼 곳까지 걸어가기도 하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들어가 살기도 하지요 ..  (22∼23, 39쪽)


 그림책 《집요한 과학씨, 야생 고양이를 찾아가다》에 그림을 넣거나 글을 쓴 이들은 언제나 ‘고양이 꽁무니를 좇아다니며 고양이 삶 들여다보기’를 즐깁니다. 고양이 앞에서 고개를 내민다든지 옆에서 같이 걷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고양이는 고양이끼리 조용히 살아가고프지, 옆에서 누가 알짱거리면 걸리적거리거나 귀찮으니까요. 사람들은 얌전히 고양이 둘레에서 고양이처럼 해바라기를 하거나 낮잠을 자거나 밥을 먹으면서 고양이 한삶을 지켜봅니다. 오래오래 고양이를 바라보며 한삶을 들여다보기에 《집요한 과학씨, 야생 고양이를 찾아가다》 같은 그림책이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로서 하루 내내 제 아이를 들여다보며 가만히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아이를 키우는 한삶을 그림책이나 글책으로 알뜰히 여밀 만합니다. 내 아이를 사랑하는 넋으로 내 아이 삶자락을 사진으로 날마다 한 장 두 장 담는 사람은, 꼭 이름난 사진쟁이가 아니더라도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사진책 하나를 빚습니다. 이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사진책은 ‘사진첩 한 권짜리 사진책’으로 될 수 있고, 누군가 책으로 내놓아 줄 수 있을 텐데, 따로 사진책으로 나오지 않고 ‘사진첩 한 권’으로 끝나더라도 빛깔 고운 이야기가 배어들기 마련입니다.

 책이란 남 앞에 드러내는 이야기꾸러미가 아니라, 나 스스로 아끼거나 사랑하거나 믿는 좋은 삶을 적바림하는 이야기꾸러미이니까요.

 우리 나라에서도 누군가 들꽃 한 송이를 여러 해에 걸쳐 물끄러미 살펴보며 사랑하는 이야기를 그림책 하나로 그릴 수 있으리라 꿈을 꿉니다. 한국에서도 누군가 작은 멧새라든지 도시 한켠 참새 한 마리를 오래오래 마주하며 살갑거나 포근한 이야기를 일구어 그림책 하나로 여밀 수 있으리라 꿈을 꿉니다.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거미를 바라보는 그림책도 좋습니다. 우리 집 멍멍이 이야기를 담는 그림책도 좋습니다. 텃밭에서 벌레 잡거나 풀 뜯는 그림책도 좋겠지요. 아침저녁으로 학교를 오가며 마주하는 동네나 골목이나 이웃이나 동무 이야기를 싣는 그림책도 좋아요. 나 스스로 내 삶을 살포시 담는 자그마한 이야기 한 자락이면 즐겁습니다. 아이 기저귀를 빨래하는 나날을 그림책으로 그릴 수 있어도 재미나요. (4344.3.27.해.ㅎㄲㅅㄱ)


― 집요한 과학씨, 야생 고양이를 찾아가다 (히라이데 마모루 그림,이자와 마사코 글,조영겸 옮김,웅진주니어 펴냄,2008.1.28./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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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46] 손잡기

 아이하고 빨래하러 가는 길입니다. 아버지는 빨래를 하고, 아이는 신나게 뛰어놉니다. 아이하고 빨래를 하러 간다기보다 아버지는 빨래를 하러 가고, 아이는 놀러 갑니다. 아이하고 집에서 길을 나설 때에 아이는 아버지를 보며 “손!” 하고 외칩니다. 손 하나를 저한테 내놓으라는 뜻입니다. 아버지는 두 손에 빨래짐과 설거지거리를 가득 들었으니 내줄 손이 없습니다. 새끼손가락 하나를 펼쳐서 달랑달랑 흔듭니다. 아이는 새끼손가락 하나로도 넉넉합니다. 아이 조그마한 손은 아버지 새끼손가락 하나를 잡아도 걱정없습니다. 멧자락 멧길을 아이하고 손을 잡으며 천천히 걸어 오릅니다. 웃마을 집에서 돌보는 짐승우리 둘레에 까마귀가 내려앉습니다. 짐승한테 주는 밥을 얻어먹으려는가 봅니다. 아이도 고개를 들어 까마귀를 바라봅니다. “까마귀야.” “까막이?” “응, 까마귀.” 새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멧길을 거닐며 아침바람을 쐽니다. 아이는 새소리를 듣고 까마귀 까만 빛깔을 바라보며 차츰 밝으며 파란 빛깔 짙게 물드는 시골하늘을 느끼겠지요. 여기에, 아버지하고 손잡고 걷는 오늘 이 길을 마음으로 받아안을 테고요. 무럭무럭 자라면 아버지하고 어깨동무도 해 줄까요. (4344.3.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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