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책읽기


 모든 사람은 살아갑니다.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죽은 넋입니다. 모든 사람은 새로운 밥을 먹으면서 새로운 목숨을 얻어 새로운 나날을 살아갑니다. 새로운 밥을 먹어 새로운 목숨을 얻듯, 사람들은 날마다 새롭게 살아갑니다. 새롭게 살아간다 할 때에는 새롭게 자란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늙는다’고 하는데, 늙기 또한 ‘자라기’입니다. 어린이나 푸름이는 ‘크기’로 ‘자라기’를 이루고, 어른은 ‘늙기’로 ‘자라기’를 이룹니다. 어린이나 푸름이는 자라면서 한껏 싱그러운 꿈을 키운다면, 어른은 자라면서 머잖아 눈을 감고 숨을 거둘 마지막날을 헤아리는 꿈을 보듬습니다.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숨을 쉬기에 살아갑니다. 살아가기에 날마다 새로운 한 가지를 배웁니다. 오랜 나날 살아온 깜냥을 바탕으로 슬기를 빚을 수 있지만, 오랜 나날 살아온 깜냥은 잊은 채 하루라도 더 튼튼하거나 젊은 몸으로 뛰놀고프다는 덧없는 밥그릇에 얽매이는 바보스러움을 일굴 수 있습니다. 슬기도 배움이요 바보스러움도 배움입니다. 《어머니의 감자밭》이라는 그림책처럼, 사람들은 끔찍하게 죽이고 죽는 싸움(전쟁)을 치러야 비로소 나눔(평화)이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가를 깨닫곤 합니다. 그러니까 어리석은 삶, 바보스러운 짓, 멍텅구리 같은 모습 또한 고마운 슬기 구실을 합니다.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살아가는 책읽기입니다. 살아가는 사람인 만큼 살아가는 마음읽기입니다. 살아가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랑읽기예요.

 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저 먼 곳에서 살아가거나 살았거나 살아갈 사람들 나날을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저 먼 때에 살았거나 살아갈 사람들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따사로운 손길을 받고 너그러운 눈길을 보냅니다. 저 먼 누리에서 어떤 사랑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서 씨를 냈는가를 따사롭고 너그러이 나눕니다.

 둘째 갓난쟁이는 새벽녘 칭얼거리다가 어머니 젖을 물고 잠듭니다. 이윽고 오줌을 누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 울다가 다시 어머니 젖을 물고 새근새근 예쁜 소리를 내며 잠결에 듭니다. 첫째 네살박이는 어제 하루 고단하도록 놀더니 한밤에 힘겨운 몸으로 깨어 앓는소리를 하다가 어머니가 따숩게 건네는 말마디를 듣고 아버지가 살며시 가슴에 얹는 손바닥 따스함을 느끼면서 고즈넉히 꿈나라로 접어듭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마음을 열고, 마음을 열 때에 책 하나 손에 쥐어 읽을 만합니다. 살아가는 책읽기는 사랑하는 책읽기입니다. (4344.9.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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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 인디언 - 눈빛 아카이브
에드워드 커티스 지음, 이주영 옮김 / 눈빛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아름다운 넋을 사진으로 담다
 [찾아 읽는 사진책 52] 에드워드 커티스, 《북아메리카 인디언》(눈빛,2011)



 해맑게 웃음지으면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해맑게 웃음짓곤 합니다. 잔뜩 찌푸린 얼굴이었어도, 고단한 일에 시달려 지친 몸이었어도, 둘레에서 해맑게 웃음지으면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은 이 아이들한테서 해맑은 웃음과 기운과 넋과 꿈을 조금씩 나누어 받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옷을 마련해 줍니다. 아이들은 아직 스스로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할 줄 모를 뿐 아니라, 길쌈이나 실잣기나 물레질을 하기 힘듭니다. 오직 어른들이 온갖 일을 치러서 옷을 한 벌 마련한 다음 아이들한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옷을 비롯해 밥과 집을 마련해 줍니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내 아이나 이웃 아이한테 옷과 밥과 집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어른입니다. 아이라면 내 어버이나 이웃 어버이한테서 옷과 밥과 집을 얻어야 합니다. 마땅한 노릇이에요. 아이들은 사랑을 받아먹어야 하고, 밥을 받아먹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좋은 잠자리를 고마이 얻어야 하며, 좋은 옷을 기쁘게 얻어야 해요.

 한편, 어른들은 아이들한테서 꾸밈없이 자라는 넋을 나누어 받습니다. 어른들 누구나 내 아이나 이웃 아이와 같이 어린 나날이 있은 줄을 되새깁니다. 아이들을 낳아서 돌보든, 이웃 아이들을 사랑스레 보살피든, 이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내 지난날을 되짚고 내 앞날을 돌아봅니다. 내가 걸어온 길과 아이들이 걸어갈 길을 살핍니다. 내가 어른이 되기까지 걸었던 길이 얼마나 아름답다 할 만한가를 짚고, 이 아이들이 앞으로 걸어갈 길을 얼마나 아리땁게 건사할 만한가를 가눕니다.

 전문 사진쟁이가 되든, 여느 어버이나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되든, 사진기를 손에 쥐고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으려는 이들은 웃습니다. 아이들 해맑은 낯빛을 바라보며 함께 웃는 ‘사진기를 손에 쥔 모든 어른’입니다. 아이들 슬프거나 괴롭거나 고단한 얼굴빛을 마주하며 함께 우는 ‘사진기를 손에 쥔 모든 어른’입니다. 궂은 일을 숱하게 치르며 잔뜩 찌푸리던 어른이라 하더라도, 근심걱정 훌훌 털고 맑게 웃으며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을 때에는, 궂은 일을 숱하게 치르며 짓눌렸던 마음이 스르르 풀어집니다. 좋은 일을 끝없이 누리면서 활짝 웃던 어른이라 하더라도, 근심걱정이 잔뜩 쌓여 몹시 슬프고 아프며 괴로운 몸짓을 하는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사진을 찍을 때에는, ‘내가 이 아이들한테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슬픔과 아픔과 괴로움을 나란히 나누어 받습니다.

 누군가는 ‘나부터 아름답게 살겠습니다’ 하는 다짐을 새기면서 참말 아름다이 살아가려는 넋과 말과 몸짓을 건사하면서 사진을 찍겠지요. 누군가는 먹고살기 팍팍한 나머지, 또는 웬만큼 돈을 벌고 이름을 얻으면서 ‘티없이 꿈꾸던 첫마음’을 잃거나 내려놓은 나머지, 아름다운 사람과 사랑과 삶을 수수하게 껴안는 넋과 말과 몸짓이 없어진 채 사진을 찍겠지요.

 어떠한 넋과 말과 몸짓이건, 착한 꿈과 참다운 말과 고운 몸짓으로 웃으면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사진을 찍는 ‘사진쟁이 어른’은 아이들한테서 착한 웃음과 참다운 눈물과 고운 삶을 느낍니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서 마음밥을 나누어 받고, 마음옷을 나누어 입으며, 마음집을 나누어 지냅니다.

 미국사람 에드워드 커티스 님이 빚은 사진과 글을 그러모은 두툼한 사진책 《북아메리카 인디언》(눈빛,2011)을 읽습니다. 그동안 한국땅에서는 북아메리카 토박이를 담은 에드워드 커티스 님 사진을 요모조모 가위질해서 내놓는 책이 더러 있었습니다. 이런 책이든 저런 책이든, 북아메리카 토박이 삶과 넋과 말을 다루는 책에서, 으레 에드워드 커티스 님 사진을 조용히 가위질해서 쓰곤 했습니다. 언제나 사진만 살짝 가위질해서 쓸 뿐, 에드워드 커티스 님이 북아메리카 토박이와 함께 지내면서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들어 책으로 일군 땀방울을 깊이 돌아보거나 넓게 살핀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우리 한국땅에서 에드워드 커티스 님 사진책이 한국말로 옮겨질 일은 없으리라 여겼습니다. 퍽 비싼 값을 치러야 하지만, 일본에서 나오는 책이나 미국이나 유럽에서 나오는 책을 장만해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글판으로 예쁘게 엮은 무겁고 두툼한 책을 만지작거립니다. 일본말과 영어로 된 책만 뒤적이면서 오직 사진만 읽던 책이 아니라, 한글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지작거리다니 마치 꿈만 같습니다. “아이들과 연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굳이 해석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인디언들은 아직도 자연 가까이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상업적인 이익을 보여주는 통계수치로 가득한 이야기가 아니라 큰 나무와 키 작은 덤불나무, 태양과 별, 번개나 비와 같은 우주 현상에 따르고 순응하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나눈다. 모든 자연의 현상은 인디언들에게는 생명이 있는 창조물이다(12쪽).”처럼 한글로 옮겨진 에드워드 커티스 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고맙습니다.

 책을 덮고 곰곰이 헤아립니다. 에드워드 커티스 님은 북아메리카 토박이들이 서로서로 주고받는 말을 ‘알 수 없’었다고 밝힙니다. 그렇지만 ‘굳이 낱낱이 풀어서 알아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북아메리카 토박이가 스스로 자연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에드워드 커티스 님 또한 자연으로 살며시 녹아들면서 마주할 때에는 가슴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말이 있거든요. 당신은 이 마음말이나 가슴말로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목숨이 깃든 아름다운 넋’을 사랑하는 참말 ‘목숨이 깃든 아름다운 넋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하나하나 옮기면 넉넉합니다.

 예부터 이 나라 옛 어르신이나 북아메리카 토박이는 이야기했습니다. 사진을 찍으면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 얼이 조금씩 빠져나간다고.

 사진을 찍는 나는 늘 느낍니다. 사진을 찍으면 사진으로 찍힌 사람 얼이 틀림없이 조금씩 빠져나갑니다. 사진을 찍히는 사람은 제 얼을 조금씩 나누어 줍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내 사진에 깃드는 사람들과 푸나무와 집과 땅과 하늘과 빨래와 벌레들 모두가 고맙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언제나 되새깁니다. 나한테 당신 얼을 조금씩 나누어 주는 사람들 따스한 사랑을 포근하게 껴안자고 되새깁니다. 당신은 나한테 사진에 깃드는 얼을 나누어 준다면, 나는 사진기 단추를 누를 때마다 이 손짓에 내 얼을 담아서 고스란히 나누어 주자고 생각합니다. 내 얼과 네 얼이 사진 한 장에 예쁘게 어우러지도록 하자고 다짐합니다.

 《북아메리카 인디언》에 담긴 사진들을 조용히 바라봅니다. 사진으로 찍힌 사람들 얼이 보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 얼이 나란히 보입니다. 두 얼이 서로 만납니다. 두 얼은 즐겁게 만나 기쁘게 춤을 춥니다.

 억지로 멋을 부리려 했다면,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이 얼을 나누어 주지 않습니다. 마음을 닫은 사람을 애써 멋들어지거나 거룩하게 보이도록 찍는댔자, 가슴으로 북받칠 만한 즐거움이나 기쁨이 샘솟지 않습니다. 이때에는 그냥 ‘그럴싸해 보이는 사진’이 ‘만들어졌구나’ 하고 느낍니다.

 사진은 만들 수 없습니다. 사진은 찍을 뿐입니다. 사진은 애써 꾸밀 수 없습니다. 사진은 수수하게 살아가는 그대로 투박하게 찍을 뿐입니다.

 “에드워드 커티스는 30여 년에 걸쳐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전통과 풍속을 사실적이면서도 예술성 높은 사진으로 기록하였고, 1907년부터 1930년에 걸쳐 전 20권의 전집으로 출판하였다. 커티스가 인디언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에는 5년 안에 전 20권을 모두 출판할 계획이었지만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게 되면서 작업이 지연되어 193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완간할 수 있었다(762쪽).”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좀 달리 느낍니다. 에드워드 커티스 님은 “사실적이면서도 예술성 높은 사진으로 (북아메리카 토박이를)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에드워드 커티스 님은 다른 숱한 사진쟁이들하고 다르게 ‘찍히는 사람과 찍는 사람 얼이 나란히 사진 한 장에 깃들 수 있게끔’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사진삶을 누렸습니다. ‘사라지는 북아메리카 토박이 삶’을 ‘적바림(기록)’하는 일을 짊어진 에드워드 커티스 님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J.P.모건이라는 재벌한테서 돈을 조금 받아서 사진책을 낼 수 있었다는 에드워드 커티스 님이라지만, 누구한테서 돈을 더 받거나 안 받거나 한다고 사진이 달라진다면, 이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부터 가슴으로 피어날 사랑꽃은 아예 없습니다. 돈이 넉넉히 있거나 값진 장비를 알뜰히 갖추었기에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없습니다. 돈이 모자라거나 값싼 장비를 한 가지만 겨우 갖추었대서 사진을 못 찍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부터 내 마음을 사랑씨앗 담아서 내밀고, 나와 마주한 벗이 당신 마음을 사랑열매로 일구어 나눌 때에, 시나브로 사랑꽃 어여삐 오래도록 흐드러지는 사진이 태어납니다.

 사진책 《북아메리카 인디언》을 찬찬히 넘기면서 새삼스레 느낍니다. 나한테 있는 에드워드 커티스 님 다른 사진책을 옆에 나란히 펼치고 넘기면서 한결같이 느낍니다. 어느 누구도 등떠밀려 사진으로 찍히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못마땅한 얼굴인 채 사진으로 찍히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싫은데 사진으로 찍히지 않습니다. 떳떳하고 스스럼없으면서 즐거이 사진으로 찍힙니다. 기쁘며 반갑고 예쁘게 사진으로 찍힙니다.

 내 아이를 사진으로 담거나 이웃 아이를 사진으로 담을 때 노상 느낍니다. 아름다운 넋으로 뛰노는 아름다운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는 동안 내 몸과 마음은 어느새 아름다운 넋과 아름다운 손길로 거듭납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때뿐 아니라, 사진기를 손에서 내려놓은 자리에서도 나부터 내 아이와 이웃 아이 모두한테 아름다운 넋으로 아름다운 삶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어른으로 즐거이 꽃필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덧붙입니다. 훌륭하게 처음 태어난 《북아메리카 인디언》이라는 사진책 하나 몹시 고맙습니다. 아주 기쁘게 장만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책에 실린 사진결은 퍽 아쉽습니다. 에드워드 커티스 님이 애써 삶을 바쳐 찍은 사진이 꽤 많이 ‘새까맣게 죽었’습니다. 에드워드 커티스 님은 얼굴 주름 하나까지 사진으로 담으려 했고, 손으로 지은 옷 무늬와 바느질 결까지 사진으로 옮기려 했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 두 올까지 낱낱이 사진으로 담으려 했어요. 그렇지만 한국판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이러한 결과 무늬와 느낌을 많이 죽이고 말았습니다. 너무 오래된 자료를 바탕으로 책을 묶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을 텐데, 판이 작은 사진이든 판이 커다란 사진이든, 더 많은 사진을 차곡차곡 싣는 일 못지않게 사진 하나하나 더 보드라이 매만져야 했다고 느낍니다. 한국판 사진책만 장만해서 읽는 분은 잘 모를는지 모르나, 나라밖에서 나온 여러 가지 사진책을 장만해서 읽은 사람이라면, 한국판이 더없이 아쉽다고 여길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이만 한 책이 한국에서 나온 일이 아주 고맙고 기쁩니다. 앞으로 찬찬히 가다듬거나 북돋우면 되지요. (4344.9.11.해.ㅎㄲㅅㄱ)


― 북아메리카 인디언 (에드워드 커티스 글·사진,이주영 옮김,눈빛 펴냄,2011.8.8./2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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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위 빨래


 한가위를 맞이해서 네 식구가 찾아온 할머니·할아버지 댁에서 할머니 일을 아주 조금만 거들면서 둘째 갓난쟁이 기저귀를 빨거나 품에 안아 어르느라 바쁘다. 첫째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하는 말은커녕 할머니가 하는 말조차 거의 듣지 않으면서 이리저리 뛰놀기만 한다. 한가위에도 빗줄기는 그치지 않아 빨래가 아주 안 마른다. 온 집안에 둘째 천기저귀가 가득 널린다. 스무 장 가까이 널렸을 때에 도무지 안 되겠구나 싶어 다리미를 든다. 다리미를 들어 석 장쯤 말릴 때에 새 오줌기저귀가 나온다. 이럭저럭 다섯 장을 다리미로 말리는 동안 오줌기저귀가 두 장 나온다. 아득한 옛날까지는 아닐 내 어머니 젊은 날, 한가위날이나 설날이나 제삿날에 어린 아이들 돌보기와 갓난쟁이 기저귀 빨래에다가 집일이랑 숱한 먹을거리 장만하기를 어떻게 한꺼번에 치를 수 있었을까. 아버지들 가운데 이 숱한 일 가운데 한 가지라도 도운 사람이 있었을까. 어머니들만 이 숱한 일을 홀로 치러야 했을까. 어머니들끼리 치를 이 숱한 일을 어머니들이 서로서로 조금씩 돕고 거들면서 살아냈을까. 아버지들은 이 숱한 일 가운데 어느 한 가지조차 제대로 건사하거나 맡거나 나누지 않으면서 무슨 거룩한 역사나 정치나 문화나 예술이나 사회나 경제나 교육이나 철학을 세웠을까. (4344.9.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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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위 빗줄기


 한가위를 맞이해서 비가 내립니다. 아마 한가위 보름달을 올려다볼 수 없겠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 살붙이하고 시골집에서 한가위 초승달하고 한가위 반달을 보았습니다. 한가위 보름달은 올려다볼 수 없지만, 한가위 초승달조차 여느 때 보름달보다 훨씬 밝은 줄 다시금 느꼈고, 한가위 반달은 여느 날 보름달보다 한껏 빛나는 줄 새삼스레 보았기 때문에 고맙습니다. 한가위 보름달은 올려다볼 수 없으나, 길디긴 칠팔월 궂은 비가 구월에 접어들어 한동안 멎었기에 고맙습니다. 두 달에 걸쳐 비가 그치는 날이 거의 없는 채 살아오면서 둘째 기저귀 빨래를 끝없이 해댔으니, 한가위에 이쯤 비가 오더라도 기저귀가 안 마를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고마운 한가위요, 즐거운 하루하루입니다. (4344.9.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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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시스터즈 2
쿠마쿠라 다카토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오늘 이곳에서 살면서 바라보는 모습
 [만화책 즐겨읽기 63] 쿠마쿠라 다카토시, 《샤먼 시스터즈 (2)》



 한 해에 한 번 맞이하는 한가위에는 다른 어느 때보다 밝고 크게 보이는 달이 뜹니다. 한가위처럼 한 번 맞이하는 설날에도 더없이 밝으며 크게 보이는 달이 뜨고, 큰보름날에도 참으로 밝으며 크게 보이는 달이 뜹니다.

 다른 여느 날에는 그다지 안 밝고 썩 안 크다 할 달이 뜬다 할 테지요. 그렇지만, 시골자락에서 올려다보는 달은 여느 날에도 참 밝으면서 크구나 싶은 별입니다. 달을 비롯해 수많은 별을 올려다볼 수 있습니다. 새까만 밤하늘을 느끼고, 이 새까만 밤하늘을 함께 올려다보는 우거진 푸나무를 느끼며, 우거진 푸나무에서 살아가는 뭇 풀벌레들을 느낍니다.

 사람은 작습니다. 사람은 작기 때문에 지구별에서 육십 억이든 칠십 억이든, 또 더 늘어나서 백 억이 되든 이렁저렁 살아갈 만합니다. 사람이 너무 크다면 육십 억은커녕 십 억이나 일 억조차 살아갈 만하지 않습니다. 너무 크면 너무 많이 먹어야 하고, 너무 많이 먹어야 할 때에는 지구별 크기로는 도무지 먹이를 댈 수 없어요. 사람은 작은 목숨이기 때문에 작은 먹이로 흐뭇합니다. 작은 밥그릇 하나로 넉넉하면서 고맙습니다. 굳이 넘치게 먹어야 할 까닭이 없고, 겉치레를 하자며 먹이를 헤프게 쓸 까닭 또한 없습니다.

 그런데 작은 사람은 스스로 작은 사람인 줄을 자꾸 잊습니다. 스스로 작은 사람인 줄 자꾸 잊으면서, 스스로 큰 사람인 듯 거들먹거린다든지 샛길로 빠집니다. 작은 사람 작은 밥그릇에 걸맞게 작은 살림을 일구면서 작은 사랑을 나누면 즐거울 텐데, 작지 않은 사람들은 작지 않은 밥그릇을 바랍니다. 작지 않은 밥그릇을 바라니까 작지 않은 살림을 키우려 하고, 작지 않은 사랑을 꾀하며, 작지 않은 돈을 벌려 합니다.

 누구나 옷과 밥과 집이 있어야 합니다. 작은 사람은 누구나 옷과 밥과 집을 스스로 마련했습니다. 스스로 옷과 밥과 집을 마련하기 빠듯할 때에는 내가 더 거두어들이는 옷이나 밥이나 집을 다른 사람하고 바꾸거나 주고받으면서 살림을 이었습니다. 쌀을 주고 물고기를 받든, 나무를 주고 옷감을 받든, 서로서로 옷과 밥과 집이 될 밑감을 스스로 마련해서 알맞게 나누었어요.


- ‘그래도 그날 아침은 왠지 상쾌한 기분이었다. 어쩌면 조금은 벗겨 줬는지도 몰라. 아, 그랬구나. (봄이 왔구나. 꽃이 피었구나.)’ (40쪽)


 조용히 착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지만, 나라가 서고 정치가 태어나며 경제가 이룩되는 동안 조용한 넋과 착한 얼을 잊거나 잃습니다. 조용하지 않고 착하지 않다 보니, 작은 사람으로 어깨동무하며 작은 살림을 사랑하던 매무새 또한 사그라듭니다. 바야흐로 전문쟁이가 태어납니다. 나라일만 돌본다는 전문쟁이가 태어납니다. 궁궐에서만 지내는 정치 전문쟁이 곁에서 심부름을 하는 전문쟁이가 태어나고, 정치일을 쥐락펴락 할 힘을 거머쥐려고 다투는 또다른 전문쟁이가 태어납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운동경기만 할 줄 아는 전문쟁이가 새로 태어납니다. 운동경기 전문쟁이 가운데에는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어들이는 몇몇이 있습니다. 한창 젊은 스물 몇 살에 ‘이제까지 온삶을 바쳐서 하던 운동경기’를 그만두어야 하기 일쑤입니다. 더 젊고 더 힘세며 더 잘난 뒷사람한테 내 자리를 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나 이제나 흙을 일구는 사람한테는 은퇴, 곧 내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이란 없습니다. 흙을 일구는 사람은 어리건 젊건 늙건 내 옷과 밥과 집을 스스로 마련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결같이 먹고 입고 자야 하기에, 흙을 일구는 사람은 노상 내 옷과 밥과 집을 스스로 마련해서 스스로 쓰고 스스로 돌봅니다. 이와 달리, 정치 전문쟁이나 경제 전문쟁이나 운동경기 전문쟁이나 대입수험 전문쟁이나 대기업 전문쟁이나 공장 전문쟁이나 버스운전 전문쟁이는 ‘돈은 벌’되 ‘삶을 이루는 옷·밥·집’은 스스로 다스리거나 건사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아니, 살아가지만 살아간다는 뜻을 모릅니다. 살아간다는 뜻을 모를 뿐더러, 살아가는 아름다움이나 사랑이나 꿈을 잊어요.


- “미즈키, 이 말은 할아버지께서도 자주 하셨겠지만, 너나 시즈루의 능력은 저쪽 세계와 이쪽 세계를 잇는 고마운 능력이란다. 힘든 일도 있겠지만, 결코 그 능력을 갈고닦는 걸 게을리 해선 안 된단다.” (69쪽)
- “확실히 미코시는 흉악한 성격이 아니니까 계속 올려다보고만 있다간 죽을 수도 있어. 하긴 올려다보다 죽었다는 이야기는 거의 없지만.” “아, 우린 참 성가신 체질이구나. 앞으로 괜찮을까? 이대로 계속 할아버지한테 의지할 수도 없는데.” (78쪽)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거나 중학교라든지 고등학교 같은 데에 다니게 된다면, 이 일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할까 하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보통교육이나 기본교육이라 하는 초등학교조차, 이 초등학교를 다닐 여덟∼열셋 나이 어린이가 제 나이에 걸맞게 삶을 느끼거나 배우거나 받아들이거나 나누는 아름다움과 사랑과 꿈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옳게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에요.

 교과서에는 삶을 적바림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삶을 다루지 않으며 말하지 않습니다. 교과서로 수업진도를 나가는 교사는 삶을 이야기하거나 가꾸거나 북돋우지 않습니다. 특기교육이나 적성교육이란 얼마나 부질없나요. 현장수업이나 현장체험은 얼마나 덧없나요. 아이들한테는 모든 날 모든 수업 모든 이야기가 현장, 곧 내 삶터여야 합니다. 교사부터 삶을 가르치고 나누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학생은 삶을 배우며 어깨동무하는 보람을 누려야 합니다. 더 낫다는 성적을 거두어 더 낫다는 학교에 가는 일이 교사와 학생 모두한테 얼마나 뜻있거나 값있을까 궁금합니다. 전국 몇 %가 되어 이름나다는 대학교에 들어가는 일이 오늘날 아이들한테 훈장처럼 달린다면, 이런 훈장은 아이들 삶을 얼마나 따사로이 비추는 햇살이 될는지요.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손전화를 만지작거리도록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느 어른조차 스마트폰을 갖고 놀며, 나도 일 때문이라고 하면서 손전화를 씁니다. 나는 참말 일할 때에만 손전화를 쓰지만, 이 손전화 기계에는 전화를 걸고 받는 기능만 있지 않으니까, 아이들이 자꾸 만지작거리고 싶어 합니다. 따지고 보면, 어른인 나부터 이 손전화를 안 써야 옳은 셈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쓰거나 누리거나 가진 모든 것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고스란히 물려받으니까요.

 어른들 스스로 사랑스러이 삶을 일구면서 사랑스러이 말을 나눈다면, 아이들은 이 사랑스러운 삶을 받아먹고 사랑스러운 말을 꽃피웁니다. 아이들을 입시학원 같은 데에 보내거나 특기학원 같은 곳에 넣는다 해서 아이들이 아이들 삶을 사랑스레 북돋울 수 없습니다. 피아노학원에 가야 피아노를 칠 수 있지 않아요. 태권도학원에 다녀야 태권도를 익힐 수 있지 않아요. 글쓰기학원에 가야 글을 쓸 수 있지 않아요. 요리학원에 다녀야 밥을 할 수 있지 않아요.

 삶을 모르는 아이들한테 삶을 가르치는 학원을 마련해서 보내야 하나요. 사랑을 잊는 아이들한테 사랑을 느끼도록 하는 학원을 세워서 넣어야 하나요. 꿈을 놓치는 아이들한테 꿈을 붙잡는 학원을 만들어서 몰아세워야 하나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뿐 아니라, 아이를 낳지 않은 어른 모두, 나 스스로 옳고 바르며 해맑게 살아가는 터전을 사랑하면서 이 터전에서 어린 아이들이 즐겁고 신나며 아름다이 지낼 빛줄기를 가다듬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 “그저 보이기만 해선 더욱 불안해질 뿐이다. 보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넌 저쪽의 지식을 배우고 거기에 네 생각을 더해야 돼.” (81쪽)
- “네가 느꼈던 불안은 그런 거란다. 쿠단이 나타나서 무엇을 예언할 것인가보다는, 쿠단이 나타나 예언을 한다는 상황이 실제로 생기는 것. 쿠단은 언젠가 꼭 나타난단다. 두려워해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돼.” (146쪽)



 쿠마쿠라 다카토시 님이 빚은 만화책 《샤먼 시스터즈》(대원씨아이,2004) 2권을 읽습니다. 1권은 한참 앞서 읽었지만, 아니 1권은 2004년에 일찌감치 읽었으나, 이때에 2권까지 읽자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일곱 해가 지나고서야 비로소 2권을 손에 쥡니다. 《샤먼 시스터즈》는 몇 해 앞서 9권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야기가 마무리되기까지 1권만 달랑 읽고 뒷권은 하나도 읽지 않았습니다. 왜 안 읽었을까 하고 더듬으면, 아무래도 내 마음에 와닿지 못했으니 안 읽었다 할 텐데, 내 마음에 와닿지 못했다기보다는 내 마음이 이 만화책을 읽어 받아들이거나 헤아릴 만큼 무르익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누구한테나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 마음에 와닿지 못하는 만화책이 있습니다. 아니, 사람들 마음에 와닿지 못하는 책이 있고 노래가 있으며 그림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스스로 마음으로 못 읽고 마음으로 못 받아들이며 마음으로 못 헤아리는 책이나 노래나 그림이 있어요. 아름다운 책이지만 무엇이 어떻게 아름다운지 못 느끼곤 합니다. 사랑스러운 노래이지만 왜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못 느끼곤 해요. 놀라운 그림이지만 어느 대목에서 놀라운지 못 느끼곤 하지요.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같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틀에 사로잡히거나 갇힌 채, 무엇을 즐겁게 바라보고 무엇을 기쁘게 맞이하며 무엇을 아낌없이 부둥켜안아야 하는가를 잊습니다. 날마다 바라보지만 나 스스로 바라보는 모습이 무엇인가를 옳게 못 깨닫곤 합니다. 무엇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는지를 못 살피곤 합니다. 내 삶이 어디로 흐르고, 내 삶이 어떠한 결이나 무늬인가를 못 느끼곤 해요.


- “히시미도 참, 좀더 부드럽게 말해도 될 텐데.” ‘그건 그래. 우리도 나중에 그렇게 얘기해 주는데 말야. 으음, 많이 다르구나.’ (162쪽)


 사랑을 하고 싶을 때에는 사랑을 하면 됩니다. 믿음을 이루고 싶을 때에는 믿음을 이루면 됩니다. 꿈을 지키고 싶을 때에는 꿈을 지키면 돼요. 다만, 사랑을 하고 싶을 때에는 참답고 착하며 고운 넋으로 사랑을 해야 합니다. 참답지 않고 착하지 않으며 곱지 않은 넋으로는 사랑을 하지 못합니다. 참답지 않을 때에는 믿음을 이루지 못합니다. 착하지 않으면서 꿈을 지키지 못합니다. 곱지 않으면서 내 삶을 나 스스로 어떻게 느낄 수 있으려나요.

 만화책 《샤먼 시스터즈》는 사람들 눈에 보이는 삶과 보이지 않는 삶을 한 자리에 겹쳐 놓고 이야기를 풀고 맺습니다. 보이는 삶이 모두일 수 있고, 보이지 않는 삶이 모두일 수 있습니다. 보이는 삶과 보이지 않는 삶이 알맞게 어우러질 수 있습니다. 보이는 삶과 보이지 않는 삶 둘레에 또다른 삶이 있기도 합니다.

 어떻든 한 번 누리는 내 삶입니다. 고맙게 선물받아 일구는 꼭 한 번 누리는 내 삶입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닙니다. 언제나 한 번 선물받고 한 번 선물하는 내 삶이에요.

 나는 썩 좋지 못하다 싶은 터전에서 꽤 좋지 못하다 싶은 선물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낳아 돌볼 아이들한테 썩 좋지 못하다 싶은 터전을 고스란히 물려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내가 썩 좋다 싶은 터전을 선물받고도, 내 아이한테 썩 좋지 못하다 싶은 터전을 물려줄 수 있어요. 앞길은 모르고 앞날은 아리송합니다. 앞길은 흐리고 앞날은 어지럽습니다. 바로 이곳, 바로 오늘, 내 삶을 나 스스로 모르면 내 앞길은 모릅니다. 바로 이곳, 바로 오늘, 내 삶을 나 스스로 알면 내 앞날은 아리송하지 않아요. 아주 또렷합니다.

 아름다이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아름다이 살아갈 길을 찾습니다. 돈을 조금 더 벌며 이름도 이럭저럭 얻고 싶은 사람은 돈을 조금 더 벌며 이름도 이럭저럭 얻을 만한 길을 찾습니다. 다만, 이런 길을 찾든 저런 길을 찾든, 드디어 길을 찾았구나 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도무지 길을 못 찾는 사람이 있어요. 《샤먼 시스터즈》 2권을 덮고 3권째 읽습니다. 나는 내 보람차며 고마운 오늘을 마음껏 누리고 싶어, 오늘 한가위에도 둘째 갓난쟁이 기저귀를 끝없이 손빨래합니다. 한가위를 맞이해 할머니·할아버지 댁에 찾아오니 첫째 아이는 마냥 끝없이 뛰놀기만 하려 드는데, 하루 빨리 우리 네 식구 살가운 숲속 조용한 보금자리를 찾아 옹글며 오롯이 뛰놀 터전에서 네 식구가 그야말로 옹글며 오롯이 뛰놀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4344.9.12.달.ㅎㄲㅅㄱ)


― 샤먼 시스터즈 2 (쿠마쿠라 다카토시 글·그림,문준식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4.1.15./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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