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말(인터넷말) 59] 댓글쓰기

 누리집마다 글을 쓰는 자리가 있고, 글을 쓰는 자리에는 댓글을 남기도록 짜 놓습니다. 글을 쓰는 곳이기에 ‘글쓰기’라는 그림단추를 마련하는 곳이 있으며, 글쓰기라는 이름을 한자말로 옮겨 ‘작성(作成)’이나 ‘문서작성(文書作成)’ 같은 이름을 쓴다거나 아예 영어로 ‘write’를 쓰는 곳이 있어요. 댓글을 쓰는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곳은 쓰임새 그대로 ‘댓글쓰기’라 이름을 붙일 테지요. 그런데, ‘댓글쓰기’라는 이름을 수수하게 잘 붙이면서도, 글을 읽은 느낌을 함께 적는 그림단추에는 ‘cool’과 ‘bad’라는 영어를 적고 맙니다. 이러다가는 ‘좋은 글에는 엄지를!’이라는 말꼬리를 붙입니다. ‘좋아’나 ‘싫어’라든지 ‘훌륭해’나 ‘따분해’ 같은 말마디를 넣을 수 없었을까요. ‘잘 읽었어요’나 ‘재미없어요’ 같은 말마디를 넣으면 어떠할까요. 곱게 쓰는 말마디는 곱게 읽는 눈썰미로 이어지고, 착하게 쓰는 말투는 착하게 듣는 말결로 예쁘게 흐릅니다. (4344.3.3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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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봉오리


 노란 꽃망울이 터질 듯 말 듯합니다. 인천에서 살아가던 때에도 골목마다 터질 듯 말 듯한 봄철 꽃망울을 어디에서나 만났습니다. 집에 거는 달력은 으레 한두 달 뒤이기 일쑤이지만, 골목을 거닐면서 봄이 오고 여름이 찾아오며 가을이나 겨울이 되는 줄 느꼈습니다. 멧기슭 따라 아이하고 천천히 거닐면서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는다고 느낍니다. 올 한 해 새로 찾아와 주는 봄볕을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맞아들입니다. 바람이 제법 쌀쌀해 아직 스산하구나 싶지만, 드디어 집안 물이 녹아 집에서 빨래를 합니다. 집에서 물을 쓰며 빨래하는 일이란 이처럼 고맙구나 하고 새삼 깨달으며 봄을 반깁니다. (4344.3.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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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30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1-03-30 00:49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꽃은 봉오리라고 하는군요 @.@ 고맙습니다~
 

[헌책방 사진 이야기] 9. 인천 마을로가는책집 2007.가을.


 예순 해 동안 헌책을 만지며 여든 나이까지 헌책방을 지키다가 조용히 일을 그만둔 할아버지 한 분 이야기를 다루는 신문글을 읽은 적이 없습니다. 헌책방 할아버지 한 사람이 숨을 거둔들 지역신문 끄트머리 궂긴 이야기에라도 실리는 일이란 없습니다. 두 군데 헌책방 일꾼은 신문기자가 책손으로 드나들었기 때문에 신문에 궂긴 이야기로 몇 줄 실린 적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신문이나 잡지나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헌책방 일꾼 이야기를 굳이 다루지 않아도 됩니다. 헌책방이란 밖으로 널리 이름을 알리거나 팔려는 곳이 아니니까요. 책을 사랑하거나 아끼는 사람들 조그마하면서 어여쁜 손길을 살포시 어루만지는 조용한 곳이 헌책방이니까요. 내 마음밭을 살찌울 책을 내 손으로 고른 다음, 헌책방 할아버지가 찬찬히 둘러보면서 당신 마지막 손길을 묻히며 내미는 책을 받아들어 돈 몇 푼 책값으로 치르고는 내 가방에 담아 집으로 돌아와 펼치면, 헌책방 할배 삶자국도 살짝 읽습니다. (4344.3.29.불.ㅎㄲㅅㄱ)


- 2007.가을. 인천 배다리 마을로가는책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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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삶읽기 사람읽기 6
― 사진을 배우러 떠나다



 적잖은 분들이 사진을 배우러 길을 떠납니다. 어떤 이는 고등학교 적부터 사진을 배우다가 대학교 사진학과에 들어갑니다. 어떤 이는 미국이나 프랑스나 독일이나 영국 같은 나라로 사진을 배우러 떠납니다. 사진을 배우러 떠나는 이들이 일본으로 가는 일은 꽤 드문데, 곰곰이 살피면 한국땅에 머물면서 사진을 배우겠다고 하는 사람은 훨씬 드뭅니다.

 사진이라는 갈래는 프랑스에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사진 특허를 사들였을 때에 몇몇 사람이 홀로 차지하며 권리를 누리도록 하기보다는 누구나 마음껏 사진을 즐기면서 사진꽃이 피기를 바라며 ‘특허권을 없앴다’고 합니다. 참말 프랑스라는 나라는 사진뿐 아니라 그림이든 연극이든 영화이든 남다른 나라요 남다른 빛깔과 숨결과 소리가 넘치는 나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프랑스 같은 나라로 사진을 배우러 길을 떠나서 여러 해 프랑스 숨결을 들이마시는 이들은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국 사진꽃을 한결 흐드러지게 피우도록 이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미국으로 사진을 배우러 간 이들이든, 독일이나 영국으로 사진을 배우러 간 이들이든, 일본으로 사진을 배우러 간 이들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저마다 다 다른 길을 걸으며 저마다 다 다른 사진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 모두 훌륭하며 아리따운 사진밭을 일구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이 지구별에서는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만 사진을 하거나 예술을 하기에는 무대가 참말 좁다 할 만합니다. 온누리에 선보이며 온누리에 이름을 떨칠 사진이나 예술을 한다면 더욱 빛난다 할 만합니다. 어차피 품는 꿈이라면 더욱 크며 더 예쁘게 보듬을 만하겠지요.

 나라밖으로 사진을 배우러 가든 경제학을 배우러 가든 철학을 배우러 가든 노래나 춤을 배우러 가든, 나라안에서는 내가 바라거나 뜻하는 대로 배우기 힘들기 때문에, 돈과 품과 겨를을 들여 비행기를 타고 길을 나섭니다. 낯설고 물선 나라에서 밑바닥부터 바둥거리든, 내 어버이한테 돈이 많아 돈 걱정 없이 복닥이든, 나라밖에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이들은 언제나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이야기를 마주합니다.

 사진이든 예술이든, 내가 걷는 사진길이나 예술길은 ‘남이 걸어간 길을 따라 걷는 길’이 될 수 없습니다. 나는 나 스스로 내 길을 걸어가면서 내 뜻과 꿈을 이룰 뿐 아니라, 내 밥벌이 또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라밖으로 배움나들이를 가려 하는 까닭이란, 이 작은 나라에서는 ‘남이 걷지 못한 내 새 길을 찾기 힘들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눈을 트도록 도움을 받거나 깨우치거나 생각문을 열고자 나라밖으로 나들이를 가곤 합니다.

 그런데, 나라밖으로 애써 배움나들이를 떠났으나 막상 아무것도 못 보는 사람이 어김없이 있습니다. 외려 외롭거나 힘들거나 지치면서 몸과 마음이 늙은 채 돌아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때로는 겉멋이 들거나 ‘한국이란 참 어설프고 못났지’ 하며 콧대가 높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사진은 남한테서 배울 수 없습니다. 삶은 남한테서 배우지 않습니다. 문화이든 예술이든 남한테서 배워 내 문화나 내 예술을 꽃피우지 않습니다. 언제나 내 안에서 샘솟는 사진이고 삶이며 문화랑 예술이라고 느낍니다. 내 몸을 내 마음에 따라 내 손발을 놀려 움직이는 동안 찬찬히 일구는 사진이거나 삶이거나 문화이거나 예술이라고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벽만 바라보고 가만히 앉아서 깨달음을 찾으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 한 푼 없이 빈몸으로 뚜벅뚜벅 걸어서 이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며 깨달음을 얻으려 합니다. 어떤 이는 여러 날 밥굶기를 합니다. 어떤 이는 높은 산을 오릅니다.

 어떻게 무엇을 어디에서 하든, 모두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면서 내 마음결을 다스리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진을 배우든 철학을 배우든 정치를 배우든, 누구한테서 무엇을 배워야 깨닫거나 알아채는 사진이나 철학이나 정치가 아닙니다. 누구한테서 따로 배우지 않더라도, 또 어떤 대단한 책이나 교재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내 가슴속에 고운 사랑씨나 삶씨나 사진씨나 배움씨가 있을 때에 나 스스로 내 사랑이나 삶이나 사진이나 배움이 일어선다는 소리입니다.

 사람들이 으레 나라밖으로 배움나들이를 떠나는 까닭은 내 가슴속에 깃든 사진씨를 나라안에서는 좀처럼 건드리지 못할 뿐 아니라 잠을 깨우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더 큰 자극’이나 ‘더 센 자극’이나 ‘더 남다른 자극’을 받아 내 넋이 알을 깨어 우뚝 일어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배우는 나들이를 생각하는 분이라면 이 대목을 먼저 짚어 주면 좋겠습니다. 알을 깨어 나올 병아리는 늘 제힘으로 알을 깨야 합니다. 어미가 부리로 알을 조금이라도 깨 주면 병아리는 얼마 못 살고 죽습니다. 병아리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 크고 단단한 알을 그 여린 주둥이로 깨고 나오겠습니까마는, 참말 그 여린 주둥이와 그 여린 힘으로도 크고 단단한 알을 스스로 깨고 일어서야 병아리는 제 목숨을 고맙게 선물받은 그대로 살아낼 수 있습니다.

 나라밖으로 배움나들이를 떠날 생각이라면 그야말로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나라밖 배움나들이에 드는 돈과 품과 겨를이란 몹시 큽니다. 내 어버이한테 돈이 많아 돈 걱정이 없달지라도 내 어버이는 내가 배움나들이를 떠난다고 할 때에 배움삯을 대려고 허리가 휩니다. 나 때문에 허리가 휠 어버이를 떠올리면서 ‘큰짐을 짊어졌다는 무게’가 아닌 ‘이 고마운 선물을 흐뭇하며 신나게 누려서 내 삶을 알차게 일구어야겠다는 보람’ 으로 되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한 가지를 더 곰곰이 헤아립니다. 나는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내 값싸며 자그마한 사진기로 노상 들여다보고 단추를 찰칵찰칵 누르면서 내 사진길을 나 스스로 배우며 살아왔다고 곰곰이 헤아립니다. 참말, 저는 따로 누구한테서 사진을 배운 적이 없고, 사진학교나 사진강좌나 사진학과 같은 데를 다닌 적이 없습니다. 어떤 교재나 책을 읽어 사진찍기나 사진읽기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사진길을 걸었고, 나중에 사진책을 이것저것 사서 읽으며 내 사진길 곁에서 또다른 사진길을 걷는 숱한 사진동무를 느꼈습니다. 나한테는 사진스승이란 없습니다. 오로지 사진동무만 있습니다. 브랏사이라 하든 브레송이라 하든 이해선이라 하든 임응식이라 하든 모두 내 사진동무일 뿐입니다. 저마다 다른 삶을 저마다 다른 손길로 사랑하며 사진을 붙잡은 어여쁜 사진동무일 뿐입니다.

 모두들 목돈을 모아 여섯 달이든 한 해이든 몇 해이든 사진 배움길을 떠나려고 하는데, 애써 모은 목돈으로 나라밖 사진책 장만하는 데에 쓴다면, 그러니까 사진책 장만하는 데에 삼천만 원이든 오천만 원이든 쓰면서 나 스스로 사진책을 읽거나 살피거나 헤아리는 눈길을 기르는 데에 여섯 달이든 한 해이든 여러 해이든 써 보는 사람이 다문 하나라도 있으면 어떠하랴 싶어요. 똑같은 배움길이 아니라 새로운 배움길을 찾으면서 즐거우리라 봅니다. 내 나름대로 스스로 할 만한 배움길을 찾아보아도 퍽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자전거 한 대를 장만해서 한 해 동안 자전거로 우리 나라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또다른 틀에서 사진 배움길을 거닐 수 있어요.

 좋은 책은 좋은 벗입니다.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랑입니다. 좋은 삶은 좋은 꿈입니다. 목돈을 모아 나라밖 배움나들이를 다녀와도 즐겁고, 목돈으로 한국땅 곳곳을 오래오래 누비면서 내 겨레말을 함께 쓰는 사람들 삶과 하나로 녹아들면서 배움삶을 누려도 기쁩니다. 한국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며 한국사진을 하기 때문에 꼭 한국땅 곳곳을 누비며 한겨레 이웃을 마주해야 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며 한국사진을 하더라도 얼마든지 일본에서건 미국에서건 사진을 배우고 돌아와도 됩니다. 내 넋이 참말 내 넋이면서 내 뜻이고 내 길이어야 합니다. 내 사진길은 내 사진길이지, 남한테 기대거나 남 뒤꽁무니를 좇는 사진길이 될 수 없습니다. (4344.3.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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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게게의 기타로 1
Mizuki Shigeru 지음, 김문광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무서운 사람, 두려운 이야기, 끔찍한 삶
 [만화책 즐겨읽기 32] 미즈키 시게루, 《게게게의 기타로 (1)》



 그다지 높지 않으나 멧자락으로 둘러싸인 시골집에서 맞이하는 밤은 몹시 깜깜합니다. 밤에 쉬가 마려 마당으로 나와 텃밭 가장자리에 오줌을 누면 멧기슭에서 바스락바스락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때로는 흙이 부스스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러한 소리를 듣는 사람으로서 무섭다 여길 수 있으나, 멧기슭 한켠에서 얌전히 잠들던 자그마한 멧짐승이 훨씬 무섭다 여길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나라 멧자락에서는 사람을 잡아먹을 만하다 싶은 덩치 큰 짐승은 없다시피 하니까요. 그저 조그마한 멧쥐라든지 멧새라든지, 또는 오소리나 너구리나 고라니쯤 돌아다닐 테니까요.

 앞으로 언제까지 우리 나라 도시들이 부피를 키울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만, 어느 도시이든 밤이 깜깜한 곳은 없습니다. 조금 깜깜하다 싶은 곳은 어김없이 등불을 밝힙니다. 후미지다는 골목이나 어둡다는 길이란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람 사는 동네는 하나도 어둡지 않아요. 낮에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도시 한복판 같은 데가 밤에 몹시 어둡습니다. 걸어서 오가는 사람이 적고 으레 자가용으로만 오가는 아파트 둘레가 한결 어두컴컴합니다.

 요즈음 도깨비를 보았다는 사람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도깨비불을 본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도깨비나 도깨비불을 볼 수 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외려 오늘날에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도깨비나 도깨비불을 볼 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이 훨씬 많고 흙 한 줌 없으며 풀이나 나무가 깃들 빈틈이 없는 도시인데, 이 도시야말로 도깨비굴이 되거나 도깨비집이 될 만하지 않나 싶어요.

 생각해 보면 무슨무슨 괴담이라 하면서 무서운 이야기가 태어나는 곳은 오늘날에는 깊은 멧자락이나 시골이나 바닷가 같은 데가 아니라 도시 한복판이라 할 만합니다.


- “아무튼 그 녀석(기타로)이 언제 불쑥 나타날지 생각하면, 도대체 맘 편히 인간들의 피를 빨아먹을 수가 없다니까.” (6쪽)
- “너희들이 나쁜 짓을 하니까 기타로한테 지옥 유배를 당한 거야.” “산 채로 지옥에 끌려온 거라구.” (50쪽)
- “기, 기타로 선생님! 지금 밖에 적의 사자가 와 있는데요.” “적의 사자?” “이 섬을 반씩 나누어 평화공존 하잡니다.” “말도 안 돼!” “부탁입니다. 섬사람들을 위해 그 조건으로 휴전하시죠.” “하지만 정말일까?” “이대로 가다간 우리는 모두 굶어죽고 말아요.” “알았어.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지.” (199쪽)


 도깨비이든 귀신이든 요괴이든 착한 사람을 해코지하는 일은 드뭅니다. 아니, 애써 착한 사람을 해코지할 일이란 없습니다. 때때로 애꿎게 착한 사람이 시달린다고도 하는데, 도깨비에 홀리거나 도깨비가 쓰인 사람이란 으레 ‘마음 한켠에 얄궂은 꾐수나 꿍꿍이를 품은’ 이들이기 일쑤입니다. 샘을 내거나 꾀를 부리는 이들이 도깨비를 부릅니다.  이웃한테 사랑을 나누기보다 홀로 배부르기를 꾀하는 이들이 귀신을 불러들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이들이 요괴를 맞아들입니다.

 착한 사람을 괴롭히는 님이란 도깨비나 귀신이나 요괴라기보다 우리들 사람입니다. 착한 사람을 괴롭히는 못된 사람들이 있고, 착한 사람을 후린다거나 들볶는 나쁜 사람들이 있어요.

 착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은 말 그대로 착하게 사랑을 나눌 뿐, 누구를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거나 등치려 할 까닭이 없습니다. 밥 한 숟가락을 덜어 밥나눔을 하든, 종이 한 장을 맞들든, 이불 한 조각을 나누어 덮든 하면서 서로 어깨동무하는 사람이 착한 사람입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모습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낮이고 밤이고 무서워 하지 않는다 했어요. 하늘을 우러러 남부끄러운 짓을 일삼는 사람은 밤보다 낮이 더 무서울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범을 무서워 할 까닭이라든가 늑대를 두려워 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범도 늑대도 모두 이웃이나 동무로 삼으면 되니까요. 모두 고마운 목숨이고, 모두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목숨이며, 모두 사랑받을 목숨입니다.


- “이건 작지만 사례란다.” “그런 건 안 받아요. 난 그냥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길 바라고 싸우는 것뿐인걸요.” (34쪽)
- “세상에 이게 다 뭐람. 마을 사람들 용케도 참고 사네.” “가난해서 그래유.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데가 없는걸유.” (60쪽)
- “기타로! 대해수의 피를 내놔!” “웃, 비겁한 녀석! 너의 뒤틀린 마음이 나을 때까진 절대로 대해수의 피를 넘겨줄 수 없어.” (233쪽)



 만화책 《게게게의 기타로》를 봅니다. 작은 풀벌레한테서 ‘게게게’ 기림노래를 듣는 기타로는 요괴입니다. 요괴를 놓고 착한 요괴와 나쁜 요괴를 나눌 수 있나 모를 일이지만, 기타로라는 요괴는 나쁜 짓이나 못된 짓을 일삼지 않습니다. 나쁜 짓이나 못된 짓을 일삼는 요괴가 있으면 이 나쁘거나 못된 짓을 더는 할 수 없게끔 타이릅니다. 그리고, 나쁜 짓이나 못된 짓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한테도 이처럼 나쁘거나 못된 짓을 서슴지 않도록 나무랍니다.

 언뜻 보자면, 요괴 기타로는 사람을 아끼거나 좋아한다 여길 만합니다. 그러나 기타로는 사람을 아끼거나 좋아한다기보다, 착하고 예쁘게 살아가는 목숨붙이를 괴롭히거나 억누르는 모든 미운 짓을 싫어합니다. 사람이든 요괴이든 여느 짐승이든 푸나무이든,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서 아름다이 어우러지면서 착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꿈꿉니다.

 기타로 둘레에는 착하며 예쁜 사람이 늘 있습니다. 착하며 예쁜 요괴도 언제나 곁에 있으면서 기타로를 돕고 기타로한테서 도움을 받습니다. 어설프거나 어줍잖게 살던 사람들은 기타로한테서 도움을 받으며 스스로 무언가 놓친 대목을 깨닫곤 합니다. 도움을 받으나 하나도 못 깨닫는 사람 또한 꽤 많습니다.

 기타로는 몇 백 해를 거뜬히 삽니다. 여느 사람은 백 해조차 살아내기 힘듭니다. 고작 백 해조차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짧은 나날을 스스로 알차거나 알뜰히 일구기보다는, 무언가를 품에 더 거머쥐려고만 합니다. 기타로는 몇 백 해를 아무렇지 않게 살지만 서두른다든지 조바심을 낸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제 한삶을 즐깁니다. 사람보다 오래 살 수 있기에 느긋한 기타로는 아닙니다. 큰집을 쌓는다든지 높은 이름값을 얻는다든지 많은 돈을 그러모은다든지 하는 슬픈 꿍꿍이를 부리지 않기 때문에 노상 느긋한 기타로입니다.

 기타로가 타이르거나 다스리려 하는 요괴들을 보면, 요괴이면서도 무언가 자꾸 꿍꿍이를 부리면서 나쁜 길로 빠져듭니다. 사람한테 물든 나쁜 요괴인지, 사람들이 품는 나쁜 마음이 스며들어 그만 나쁜 길로 빠지고 만 요괴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습니다. 이 지구별 어떤 들짐승이나 들풀이나 들나무라 하더라도 혼자 모두 차지하며 배 띵띵 부르도록 살아가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만 혼자 차지하려 합니다. 그예 사람만 잔뜩 짊어진 채 이웃사랑이나 동무사랑을 펼치지 않습니다.


- 기타로를 대해수로 만든 야마다 소년은 기타로의 복수가 두려운 나머지, 강철로 대해수를 만들어 기타로를 죽이려 한다. 하지만 기타로가 갖고 있던 부족을 보고 야마다의 여동생 게이코는 대해수가 기타로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마침 그때 게이코는 어머니한테서 이전부터 여러 가지 신비한 방법으로 기타로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 아버지가 없는 우리 가족의 은인이었던 거네요.” “그렇고말고.” (282∼283쪽)
- “오빠! 명예만이 다가 아니야. 노벨상이 뭐란 말야! 훈장이 뭐야! 세상에는 사람들이 아직 모르는 훨씬 더 훌륭한 것도 많다구.” (296쪽)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에서는 무엇이 훌륭하다 할 만한지 생각해 봅니다. 노벨상을 받으면 훌륭하다 할까 헤아려 봅니다. 대통령이 되거나 시장이 되거나 법관이 되면 훌륭하다 할 만한지 되뇌어 봅니다. 회사를 차려 사장이 되어 돈을 많이 번다면, 큰회사에 들어가 젊은 나이부터 이사이니 상무이니 되면 훌륭하다 할 만한지 곱씹어 봅니다. 장사를 잘해서 끝없이 많은 돈을 벌어들이면 훌륭하다 할 만한지 가누어 봅니다. 글을 써서 책을 많이 팔거나 이름을 드날린다면 훌륭하다 할 만한지 갸우뚱갸우뚱 해 봅니다.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지구별에서 우리가 훌륭하다 할 만한 일이나 모습이나 삶이란 무엇인지 참으로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 바야흐로 봄을 맞이하려는 이때, 멧자락마다 막 터지려는 꽃망울이 가득합니다. 아직 앙상한 가지만 보이는 멧나무도 많으나, 앙상해 보이는 나무라 하더라도 가까이에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지마다 자그마한 새눈이 힘차게 자라는 모습을 느낄 수 있어요. 밤 동안 날이 제법 추워 새벽에 일어나 보면 얼음이 얼지만, 이런 날씨라 하더라도 아침이 되고 낮이 되어 차츰차츰 따뜻해지면 노란빛 첫 꽃나무가 흐드러지게 온 멧자락을 가득 채우리라 봅니다. 멧길을 오르내리다가 자꾸만 우뚝우뚝 발걸음을 멈춥니다. 혼자 씩씩하게 앞장서서 달리던 아이는 제 아버지가 뭔가를 들여다본다며 한 곳에 가만히 섰으니 후다닥 달려와서 아버지 곁에 섭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번쩍 안아서 “자, 여기 보렴. 이 나무들 꽃망울이 곧 터지려 하지? 며칠만 있으면 이제 노란 꽃이 가득 피어난단다. 살살 만져 봐.”


- 그때 아무도 모르는 늪 가운데 있는 섬에서 기타로를 존경하는 두꺼비와 지네들이 기타로의 활약을 칭송하는 노래 ‘게게게’를 합창하고 있었다. 이윽고 기타로의 손이 독거미와 전갈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나자 합창은 한층 눞아졌다 ..  (18쪽)
- 기타로는 세상의 원인 모를 사건들을 남모르게 해결하고, 오늘도 정처 없는 발걸음을 옮긴다. (81쪽)


 일본 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시에는 ‘미즈키 시게루 길’이 있다고 합니다. 1965년부터 1970년까지 그린 만화 《게게게의 기타로》를 기리는 뜻에서 마련한 길이라 합니다. 만화를 그린 햇수는 그리 길지 않고, 이동안 그린 작품도 그렇게까지 많지 않습니다만, 《게게게의 기타로》는 2009년까지 만화영화로 자그마치 다섯 차례 만들어집니다.

 시골자락 작은 마을 작은 사람 작은 요괴 이야기를 다룬 《게게게의 기타로》인데, 미끈하다거나 눈부시다거나 피 튀기는 싸움 모습이라거나 나오지 않는 만화인데, 참 많은 사람들이 참 오래도록 사랑하는 작품입니다. 게다가 만화작품 한 가지를 기리며 도시 한 곳이 온통 ‘기타로 만화 이야기’로 가득 채우는 모습이 놀랍습니다. 일본 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시는 한낱 관광상품으로 만화 거리를 마련하고 만화 전철을 몰며 만화 누리를 마련했을까요.

 역사가 짧거나 없다고 할 만한 일본사람은,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 내세우려고 하는 셈일까요. 일본 요괴 이야기를 다루는 《게게게의 기타로》를 세계에 손꼽히는 작품으로 떠받들려는 셈일까요.

 일본에는 ‘오니’가 있고, 한국에는 ‘도깨비’가 있습니다. 《게게게의 기타로》에는 일본나라 요괴가 잔뜩 나오는데, 가만히 돌아보면 한국나라에도 ‘요괴라 할 만하’든 ‘귀신이라 할 만하’든 온갖 님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이 나라 사람들하고 함께 이웃하거나 동무하던 숱한 님을 찬찬히 되새기거나 어깨동무하는 일이 없을 뿐입니다. 너무 틀에 박히고, 자꾸 틀에 갇히며, 끝내 틀에서 맴도는 한국나라입니다.

 더군다나, 착한 삶이나 참다운 삶이나 고운 삶하고는 어째 등을 돌리려고만 하는 한국나라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무서운 사람이 되려 하고, 스스로 두려운 길을 걸으려 하며, 스스로 끔찍한 삶을 붙잡으려 합니다.

 왜 허울을 뒤집어쓰려 할까요. 왜 껍데기를 꾸미려 하나요. 왜 속사랑을 나누지 않는가요. 왜 참사랑을 빛내려 하지 않나요.

 만화쟁이 미즈키 시게루 님은 ‘투박하면서 어여쁜’ 시골자락 요괴 이야기를 ‘투박하면서 어여쁜’ 그림결로 수수하게 담아내어 만화책 《게게게의 기타로》를 낳았습니다. (4344.3.29.불.ㅎㄲㅅㄱ)


― 게게게의 기타로 1 (미즈키 시게루 글·그림,AK커뮤니케이션즈,2009.10.25./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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