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닫은 헌책방


 아침 일곱 시부터 나르는 책 일은 아침 열한 시 이십 분 무렵 끝납니다. 몇 평쯤 될까 싶은 참 작은 헌책방에서, 그러니까 너덧 평쯤 될까 싶은 조그마한 헌책방에서 1985년부터 2011년까지 차곡차곡 쌓이기도 하고 꾸준히 팔리며 새로 꽂히기도 한 책을 차근차근 빼냅니다. 자그마한 헌책방 한 곳에 깃든 책은 어제 하루 짐차로 한 대가 나갔고, 오늘은 짐차로 석 대 나갑니다. 이 자리에서는 1985년부터이지만, 건너편에서는 1978∼79년부터였습니다. 건너편 헌책방은 훨씬 작았다니까, 어쩌면 한두 평이나 두어 평이었을까요.

 네 시간 즈음 여러 사람이 바지런히 나르고 쌓으며 책을 빼냅니다. 몇 만 권이었을까요. 몇 만 권은 몇 해가 이룬 더께와 이야기와 굳은살이었을까요. 우리는 돈으로 이 책을 어떻게 셈할 수 있을까요.

 헌책방 한 곳에 깃들던 책은, 이 책방이 튼튼하고 씩씩하게 서던 때에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이 차츰 줄었고, 문을 닫는다고 할 때에도 알아보는 사람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책들을 넘겨받은 헌책방에서 이 책을 되살릴 때에 여느 책손은 어느 만큼 새롭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책 또한 물건으로 바라볼 수 있으나, 물건으로만 그치는 책이라면 굳이 헌책방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책 또한 지식으로 마주할 수 있으나, 지식으로만 맴도는 책이라면 애써 옛책을 되읽지 않습니다. 헌책방 일꾼은 당신이 건사하던 모든 책을 고이 내려놓고는 조용히 당신 일터를 마무리짓습니다. (4344.4.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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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일기 어린이를 위한 사진 동화 시리즈
이상교 지음, 황헌만 사진 / 소년한길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민들레꽃 한해살이를 사진으로 싣는 넋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2 : 황헌만·이상교, 《민들레 일기》(소년한길,2007)



 어느 한 해 4월 20일부터 이듬해 2월 2일까지 민들레꽃 한 송이를 가만히 들여다본 발자취를 담은 사진책 《민들레 일기》(소년한길,2007)는 이 땅 어린이가 이 땅 터전을 고이 돌아보도록 도우려는 작은 책입니다. 이 땅 어린이한테 이 땅 터전을 고이 느끼도록 돕는 이야기책이 퍽 드문 한국인데, 《민들레 일기》는 《민들레의 꿈》과 《내 이름은 민들레》하고 나란히 나오면서 ‘민들레꽃 한 송이로 읽는 자연’을 베풉니다.

 어린이가 보는 사진책을 내놓은 황헌만 님은 《섬서구메뚜기의 모험》(소년한길,2009)이라든지 《날아라, 재두루미》(소년한길,2010)라든지 《춤추는 저어새》(소년한길,2011)를 내놓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을 내놓겠구나 싶은데, 우리 어른들이 사진을 한다고 하면서 늘 놓치는 대목 가운데 하나인 ‘누구한테 사진을 읽히려 하고 누구하고 함께 볼 사진을 찍으려 하는가’를 슬기롭게 풀어내려 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우리 아이들한테는 글로 빚은 아름다운 책을 비롯해서 그림과 만화로 이루는 어여쁜 책에다가 사진으로 일구는 아리따운 책을 선물해야 하거든요. 어른들 스스로 ‘글만 있는 책’을 차츰 적게 즐기고 ‘사진을 함께 곁들이거나 사진을 퍽 많이 넣는 책’을 즐기면서, 막상 아이들한테는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을 베풀지 않는 일은 알맞지 않습니다. 오늘날처럼 숱한 아이들이 손전화 사진기로도 사진을 찍을 뿐 아니라, 사진을 가까이에서 늘 마주하는 터전에서 ‘어린이 사진책’이 없거나 모자란 일은 몹시 안타깝거나 슬프다 할 만합니다. 왜냐하면, 여느 어른이 그려서 아이한테 보여준다는 그림이나 만화를 보면 ‘일부러 유치하게 그리는’ 그림이나 만화가 참 많거든요. 아이들한테 삶을 삶 그대로 보여주면서 삶을 찬찬히 읽거나 느끼도록 이끄는 그림이나 만화가 꽤 드뭅니다. 이런 흐름에서 어른들이 아이 앞에서 할 몫 가운데 하나는, 글은 글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만화는 만화대로 사진은 사진대로 가장 훌륭하면서 어여쁜 이야기꽃을 피우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린이 사진책 《민들레 일기》는 이제 막 꽃을 피운 민들레 꽃송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이야기를 엽니다. 시골자락 논둑에 피어난 민들레 꽃송이를 살며시 들여다봅니다. 시골자락에서 논을 갈고 눈삶이를 하며 모를 심어 돌보다가 벼베기를 하는 분들은 민들레를 잡풀로 여겨 뽑을 수 있지만, 그냥 그대로 꽃구경을 하려고 둘 수 있습니다. 서양민들레가 짓궂게 널리 퍼지니까 때로는 ‘요놈 서양민들레!’ 하면서 뽑을 테지만, 서양민들레이건 아니건 고운 꽃이라 여기며 얌전히 지켜볼 수 있습니다.

 논둑에 피어난 민들레는 논둑에 피어났기에 다른 자리에 피어난 민들레보다 좋은 보금자리를 얻었다 할 만합니다. 논에는 늘 물을 대니까 이곳 민들레는 물 걱정이 없겠지요. 게다가 논은 다른 흙땅보다 기름질 테니 먹이 얻기에 한결 나을 테고요.

 《민들레 일기》를 들여다보면, 흙을 일구는 일꾼이 이 사진책 때문에 민들레 꽃송이만 뽑지 않았구나 하고 느낍니다. 사진으로 보이는 민들레 둘레 논둑은 말끔하게 풀베기를 해 놓았거든요. 그러니까, 아주 자연스레 담은 민들레 사진은 아닙니다. 《민들레 일기》를 펼칠 때에도 사진이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작은 꽃송이와 넓은 무논을 보여주고자 광각렌즈를 써야 할는지 모르지만, 민들레를 바라보는 거리하고 뒤편 무논하고 어우러진 모습이 살짝 어중간하지 않나 싶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민들레를 바라보며 담는 사진이기는 하되, 바라보는 눈길이 너무 틀에 박혔다 할 만합니다. 그리고 너무 맑은 날에만 사진을 담아서, “민들레 일기”라는 이름이 썩 어울리지 않을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흐린 날이 있고 궂은 날이 있으며 비오는 날이 있습니다. 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라든지 아주 쨍쨍한 날이 있을 테지요. 어린이 사진책 《민들레 일기》에서는 따로 ‘날짜 일기’를 옆에 보여주지 않는다면 언제쯤 모습일는지를 읽기 어렵습니다. 이 사진책을 읽을 눈높이는 높은학년 어린이만이 아니요, 낮은학년 어린이부터 읽는 줄을 헤아린다면, 또 이 그림책을 볼 어린이란 시골 어린이가 아닌 도시 어린이임을 살핀다면, 사진 찍음새와 책 엮음새에 더 마음을 쏟았어야 했다고 느낍니다.

 그냥 ‘논둑에 핀 민들레 한해살이’만 들여다본다면, 굳이 시골자락까지 찾아가서 민들레를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도시 어디에서나 보는 민들레를 찍어도 됩니다. 어쩌면, 도시 어린이한테는 도시 어디에서나 보는 민들레 한해살이를 담을 때에 더 남다르거나 돋보인다 할 수 있어요. 도시 어린이로서는 길가 한 귀퉁이에서 애처롭거나 간당간당 뿌리를 내려 줄기를 올리고 꽃을 피운 민들레가 어찌저찌 살아남는가를 지켜보면서 ‘민들레를 비롯한 숱한 풀꽃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북돋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민들레 일기》는 일부러 논둑 민들레 하나를 마주하면서 사진으로 이야기를 빚는 뜻을 더욱 끌어내야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논둑에 민들레 한 송이만 남기고 다른 풀은 모조리 베어낸 썰렁한 모습 때문에 사진을 찍는 틀이 딱딱하게 굳을밖에 없다 여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농사꾼이건 논둑밀이를 다 합니다. 논둑에 난 풀을 다 뽑아내지는 않으나(이렇게 하다가는 큰비가 찾아올 때에 논둑이 무너지니까요), 낫으로 풀을 다 베어요. 외려 ‘논둑 다른 풀은 모두 베었으나 민들레 한 송이만큼은 남긴 모습’을 찬찬히 보여주면서 또다른 이야기라든지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습니다. 논둑 풀을 베는 모습도 보여주면서 ‘아, 민들레는 농사꾼 아저씨 낫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하는 말을 넣을 만하며, ‘이야, 농사꾼 아저씨는 노랗고 예쁜 꽃 한 송이는 곱게 남겨 놓았습니다.’ 하는 말을 넣을 수 있어요. 이렇게 하면서 농사짓기를 하면서 풀베기란 얼마나 고된 일인지 느끼도록 할 테고, 농사를 지을 때에 민들레 또한 벨 수밖에 없는 풀이 되기도 하겠다고 느끼도록 할 테며, 우리 삶터와 자연과 풀꽃이 어떤 이음고리로 이어지는가를 살피도록 할 터입니다.

 한 자리에서 찍자면 말 그대로 아주 똑같은 한 자리에서만 찍을 노릇이지, 살짝 한쪽으로 기울인다든지 뒷모습이 자꾸 조금씩 움직인다든지 하는 일은 썩 반갑지 않습니다. 아예 똑같은 한 자리를 못을 박고 찍거나, 민들레 둘레 시골 논밭자락을 두루 느끼도록 이끌 때에 반갑습니다.

 요즈음 초등학교에서도 ‘식물 관찰 일기’를 쓰도록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이 둘레 터전에서 ‘스스로 자라 스스로 씨앗을 맺고 스스로 흙으로 조용히 돌아가는 들꽃’을 얼마나 지켜볼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 해를 두루 통틀어 꽃송이 하나를 바라보며 아이 스스로 아이 마음밭을 한 해를 통틀어 곱다시 보살피도록 돕는 어른이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어린이 사진책 《민들레 일기》는 민들레꽃 한 송이를 빌어 민들레 한 송이만 예쁘장하게 바라보자는 사진이야기가 아니요, 민들레꽃 한 송이와 마찬가지로 어여쁘면서 착하고 좋은 내 ‘어린 나날’ 삶임을 깨닫거나 느끼도록 이끄는 사진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땅에서 사진을 한다는 이가 꽤나 많은 만큼, 한국땅에서 사진을 한다는 이들 가운데 1/10이든 1/100이든 어린이를 사랑하는 넋을 기르는 사진을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꿈을 꾸어 봅니다. 황헌만 님은 민들레이니 저어새이니 두루미이니 섬서구메뚜기이니를 찍었지만, ‘민들레 사진이든 메뚜기 사진이든 이렇게 달리 찍을 수도 있습니다’ 하는 매무새로 새롭게 민들레 사진책을 빚는 젊은 사진쟁이가 태어난다면 기쁘겠습니다. 냉이라든지 꽃다지라든지 쑥을 들여다보는 ‘어린이 사진책’을 일구어도 기쁘겠습니다. 개구리라든지 지렁이라든지 참새라든지 까마귀라든지 다람쥐라든지 참나무라든지 두릅나무라든지 은행나무라든지 얼마든지 살필 수 있으며, 우리 둘레 수수한 목숨붙이를 ‘어린이 사진책’ 눈높이와 눈썰미와 눈결을 돌아보면서 사진이야기를 빚으면 참으로 기쁘겠어요.

 틀에 박지 않으면서 틀에 매이지 않는 좋은 어린이 사진책을 기다립니다. 다 다른 어린이가 다 다른 삶틀을 스스로 가꾸면서 나날이 좋은 마음밭 일구는 목숨빛을 내도록 어여쁜 빛그림을 베푸는 한국땅 사진쟁이를 기다립니다. (4344.3.3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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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을 닫는 헌책방


 엊저녁 서울 ㅎ동에 오래도록 자리하며 책삶과 책사랑을 나누어 온 헌책방 일꾼 한 분한테서 전화가 오다. ㅎ동 헌책방 일꾼은 이제 더는 헌책방 살림을 꾸릴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당신 헌책방에 건사한 책을 통째로 넘겨받을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다며, 한번 알아보아 주면 좋겠다 하면서, 문을 닫기 앞서 밥 한 그릇 같이 먹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수많은 동네새책방이 일찌감치 아주 조용히 사라졌다. 수십 군데나 수백 군데가 아닌 수천 군데 동네새책방이 참으로 아주 조용히 사라졌다. 문화체육관광부나 통계청에는 ‘한국에서 문닫은 동네새책방 숫자’를 해에 따라 표로 만들었을까. 이런 통계를 갖추었을까. 책을 읽자느니 책을 읽히자느니 하지만, 정작 책을 어디에서 만나고 어디에서 사야 하는가를 놓고 깊이 마음을 쓰는 공무원이나 책벌레나 평론가나 지식인이나 기자는 몇이나 있을까.

 헌책방 일꾼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러 서울마실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속이야기를 속시원히 나눌 만한 책손이 나날이 줄다가는 그예 자취를 감추는 오늘날이기에 헌책방 일꾼 한 사람은 책방살림 꾸리기 힘드셨겠지요. 밥동무이든 말동무이든 술동무이든 고작 하루밖에 안 될 테지만, 마지막 책동무이든 내 몫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숱하게 많던 동네새책방들이 문을 닫던 때, 동네새책방을 고이 이어오던 그분들은 마지막 자리에서 누구하고 마지막 밥과 말과 술과 책을 나누었을까. 문을 닫는 헌책방이 있으면 문을 여는 헌책방이 있을 테고, 문을 닫는 가게만큼 문을 여는 가게가 있겠지.

 서울에는 사람도 많고, 서울에는 자가용도 많고, 서울에는 아파트도 많고, 서울에는 출판사도 많고, 서울에는 돈도 많은데, 서울에는 헌책방 하나 동네에서 예쁘장하게 살아숨쉬기란 참 버겁구나. 아, 그러고 보니, 서울에는 자전거도 많고, 비싼 자전거도 많으며, 자전거 동아리도 참 많구나. (4344.3.3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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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60] naver me beta

 한국말 다루는 사전에도 ‘메일(mail)’과 ‘이메일(email)’이라는 영어가 실립니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쓰는 편지라는 뜻으로 ‘email’이라는 새 낱말을 지었고, 한국말을 쓰는 사람 또한 인터넷에서 쓰는 편지라는 뜻으로 ‘누리편지’라는 새 낱말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한국말을 쓰는 한국사람은 한국말 ‘누리편지’를 좀처럼 쓰지 않고, 영어로 ‘이메일’이나 ‘메일’이라는 낱말만 씁니다. 한국사람이 쓸 낱말을 한국사람 스스로 빚고도 한국사람 스스로 안 씁니다. 이런 말버릇은 천천히 뿌리를 내리다가는 그예 깊이 뿌리가 박히면서, 인터넷으로 마주하는 누리마당을 꾸미는 이들은 으레 ‘beta’ 같은 꼬리말을 붙이면서 한결 돋보이려고 애를 씁니다. (4344.3.3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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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3.30. 

논둑을 거닐며 쑥을 뜯는다. 많이 난 데가 있고 이제 막 나는 데가 있다. 날마다 한 바퀴 돌면서 날마다 쑥국을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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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1-04-11 17:11   좋아요 0 | URL
쑥으로 전을 부쳐 먹으면 참 맛있어요~~

파란놀 2011-04-12 04:07   좋아요 0 | URL
오늘은 쑥부침개를 마련해 봐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