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3.27. 

어머니가 두 벌째 뜬 옷을 입고 노는 아이. 치마면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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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sel Adams (Hardcover)
Lauris Morgan-Griffiths / Quercus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사람을 남기는 사진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3] 안젤 아담스(Ansel Adams), 《landscapes of the American West》(Quercus,2008)
 Lauris Morgan-Griffiths (엮음)


 자연을 찍은 사진이란 자연을 찍은 사진입니다. 그러나, 자연이 아닌 풍경을 찍은 사진이라면 ‘자연 사진’이 아닌 ‘풍경 사진’입니다. 꽃을 찍으면 ‘꽃 사진’입니다. 꽃에 깃든 자연을 찍을 때에는 ‘자연 사진’이지만, 자연을 헤아리지 않고 꽃만 찍는다면 ‘꽃 사진’에 그칩니다. 나무를 찍거나 하늘을 찍거나 바다를 찍거나 논밭을 찍어도 매한가지입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 스스로 나무만 바라본다면 ‘나무 사진’이지 ‘자연 사진’이 될 수 없습니다. 시골 논밭을 찍었대서 ‘자연 사진’이나 ‘시골 사진’이 되지 않아요. 때로는 ‘논밭 사진’조차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으로 찍힌 모습은 논밭일지라도, 사진기를 쥔 사람은 논밭을 논밭 그대로 바라보거나 받아들이면서 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골목길을 찍었기 때문에 언제나 ‘골목 사진’일 수 없어요. 사진감은 골목길이지만, 사진쟁이 마음이 골목길을 골목길 터전 그대로 껴안지 못한다면 ‘골목 사진’이 되지 못합니다.

 사람 얼굴을 찍거나 사람 몸을 찍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말해서 ‘얼굴 사진’이나 ‘사람 사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사진쟁이 스스로 한 사람을 한 목숨으로서 사랑하면서 찍느냐 아니냐에 따라 ‘사람 사진’인지 아닌지가 갈립니다. 기계처럼 찍어대는 일이야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만, ‘사람 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하거나, 나아가 ‘사진’이라 할 만하도록 이루어 내는 일은 누구나 하지 못합니다.

 안젤 아담스 님이 빚은 사진책 《landscapes of the American West》(Quercus,2008)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안젤 아담스 님은 언제나 ‘미국 대자연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고들 일컫습니다. 안젤 아담스 님 사진에서 사진감은 틀림없이 ‘미국 대자연’입니다. 북중미 대자연을 큼지막한 사진기로 한 장씩 천천히 담았습니다. 그렇다면, 안젤 아담스 님이 빚은 사진에 깃든 이야기 또한 ‘미국 대자연’이라 할 만하를 헤아려야 합니다. 사진감이 미국 대자연이래서 사진이야기 또한 미국 대자연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진책 《landscapes of the American West》는 여섯 갈래로 나눕니다. 첫재는 하늘이고, 둘째는 물이며, 셋째는 푸나무이고, 넷째는 돌이요, 다섯째는 집입니다. 마지막 여섯째는 삶입니다.

 하늘에서 비롯하여 물로 흐르다가는 푸나무에서 기운을 얻은 다음 돌로 우뚝 서고는 집을 마련합니다. 이리하여 삶입니다.

 안젤 아담스 님은 무슨 사진을 이루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까요. 안젤 아담스 님 사진에는 어떠한 이야기가 깃들면서 우리가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을까요.

 하늘은 하늘 그대로가 아닙니다. 내가 바라보는 하늘, 곧 사람이 올려다보는 하늘입니다. 물은 그저 물이 아닙니다. 내가 마시는 물이요, 내 목숨을 이루며 건사해 주는 물입니다. 푸나무는 그예 푸나무가 아니에요. 내 밥이 되는 풀이요 내 집을 짓도록 몸을 내어주는 나무입니다. 돌은 딱딱하게 굳은 흙이나 모래일 뿐일까요.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디디며 섰을까요. 내가 선 지구별이란 어떤 곳일까요. 더운 곳에서는 더운 곳대로 집을 짓습니다. 추운 곳에서는 추운 곳대로 집을 짓습니다. 저마다 다 다른 터에 걸맞게 집을 짓습니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저마다 다 다른 터에서 저마다 다 다른 삶을 일굽니다.

 사람들은 착한 일을 하기도 하지만, 미운 짓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참답게 살아가기도 하지만, 그릇되게 뒹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아름답게 어우러지기도 하지만, 돈이나 이름값이나 권력 때문에 등치거나 짓밟기도 해요.

 우리는 햇볕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구름을 모르면서 살아갈 수 있나요. 하늘에서 비나 눈이 내리지 않아도 우리 목숨을 이을 수 있나요. 가게에서 돈을 치러 먹는샘물 페트병을 사다 먹으면 목이 안 마르나요. 꼭지를 틀어 물을 쓰면 되나요.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도록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꽁꽁 뒤덮는 도시에서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나요. 안젤 아담스 님은 참말 ‘풍경 사진’을 찍은 사람일까요. 안젤 아담스 님은 ‘너른 자연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붙일 만한 사진쟁이로 그칠 수 있나요.

 한국땅에서 설악산을 찍거나 제주섬을 찍는 사람들은 왜 찍는가 궁금합니다. 풍경을 찍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은 얼마나 좋은 풍경일는지 궁금합니다. 왜 내가 살아가는 보금자리나 마을은 어여쁜 풍경으로 담지 않고, 굳이 자가용을 몰아 멀리멀리 나들이를 가거나 비행기를 타고 바깥으로 나다니며 사진을 찍나요.

 가난한 사람은 티벳이나 인도에만 있나요. 내 살림집 옆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나요. 한국에는 골목길이 없나요. 한국에는 높은 산이나 시원한 골짜기가 없을까요. 한국에서는 어떤 햇볕을 쬘 수 있는가요. 이 나라에서는 어떤 바닷물을 마시고 어떤 갯벌에서 어떤 조개를 캐서 먹으려나요.

 모든 사진은 사람을 남깁니다. 사람 모습이 드러나도록 찍으며 사람을 남기는 사진이 되기도 하지만, 사람 그림자란 얼씬도 하지 않지만 사람을 남기는 사진이 되기도 합니다.

 모든 사진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고마운 목숨 하나 얻으며 살아가며 복닥이는 이야기를 담는 사진입니다.

 모든 사진은 사람이 빚습니다. 착한 사람이든 미운 사람이든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똑똑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좋은 사람이든 엉망진창 사람이든, 누구나 제 깜냥껏 살아가는 대로 사진 하나 빚습니다.

 겉치레로 사진을 하는 사람도 사진을 남기고, 속마음으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도 사진을 남깁니다. 돈벌이로 사진일을 붙잡는 사람도 사진을 남기며, 집에서 내 아이 사랑하며 돌보는 사람도 사진을 남깁니다.

 누군가는 그럴싸한 사진책을 몇 권 내놓거나 그럴듯한 대학교수 이름표를 앞에 내밀면서 사진을 한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아마추어나 풋내기라는 이름을 언제까지나 꼬리표로 붙이면서 사진책은커녕 아무런 사진비평을 듣지 못하면서 홀로 좋아하는 사진을 혼자서 누리며 스러집니다.

 안젤 아담스 님 사진은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안젤 아담스 님 사진은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안젤 아담스 님 사진은 그리 거룩하지 않습니다. 안젤 아담스 님 사진은 그리 어수룩하지 않습니다.

 삶이 대단할 때에 사진 또한 대단한데, 대단한 삶이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내 어머니나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여기기에, 내 어머니나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찍은 사진이 참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삶이 거룩할 때에 사진 또한 거룩한데, 거룩한 삶이란 어떠한지 알쏭달쏭합니다. 저로서는 제 살림을 제 손으로 일구며 꾸리는 사람들이 거룩하다고 느끼기에, 여느 농사꾼이나 고기잡이들이 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 이들 사진이 참 거룩하다고 느낍니다. 아니, 굳이 스스로 사진기를 쥐지 않아도 숱한 사진쟁이들이 농사꾼이나 고기잡이 삶을 사진으로 담아 주니까, 이 사진으로 들여다보기만 해도 참 거룩하다고 느낍니다.

 사람을 남기는 사진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발자국을 남기는 사진입니다. 안젤 아담스 님은 당신이 바라보며 사랑하는 삶을 당신 사진에 차곡차곡 아로새깁니다. 자연이나 대자연이 아닌 ‘미국 서쪽 땅’에서 ‘미국 서쪽 땅 사람들’하고 어울리며 지내던 이야기를 사진으로 차근차근 담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삶을 당신이 아끼는 사진으로 옮깁니다. 당신이 고맙게 여기는 사람들 삶을 당신이 고맙게 여겨 마지 않는 사진으로 그립니다. (4344.4.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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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태평양의 은빛 영혼 연어를 찾아서
프리먼 하우스 지음, 천샘 옮김 / 돌베개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자동차를 버릴 수 없는 사람들
 [환경책 읽기 29] 프리먼 하우스, 《북태평양의 은빛 영혼 연어를 찾아서》



- 책이름 : 북태평양의 은빛 영혼 연어를 찾아서
- 글 : 프리먼 하우스
- 옮긴이 : 천샘
- 펴낸곳 : 돌베개 (2009.12.21.)
- 책값 : 12000원


 (1) 자동차와 삶


 우리 식구가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간다 했을 때에 둘레에서 들려준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작은 짐차 하나라도 장만하라’입니다. 도시에서 살던 때에도 우리 식구는 ‘작은 자동차 하나라도 마련하라’는 이야기를 으레 들었습니다. 책방마실을 하면서 책을 가방에 잔뜩 짊어지거나 두 손에까지 끈으로 묶어 낑낑대며 들고 다니는 일은 어리석거나 몸이 힘든 일이니, 자가용을 몰라고 했습니다.

 자가용을 모는 사람이 많고, 새 차로 갈아타는 사람이 많습니다. 조금 묵었으나 퍽 괜찮은 헌 차도 꽤 되겠지요. 적은 돈으로도 자가용 한 대 마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헌 차라 하더라도 50만 원이고 100만 원이고 200만 원이고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다달이 내야 할 기름값은 누가 대 주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몰면 그저 앞만 보며 찻길을 달려야 합니다. 골목동네 한켠을 우리 자가용 한 대가 더 차지하며 서는 일이 썩 내키지 않습니다.

 시골살이를 하면서 작은 짐차 하나라도 있으면 읍내 마실이든 어디를 다니든 퍽 수월합니다. 그런데 짐차 하나는 자가용보다 훨씬 비쌉니다. 집부터 읍내까지 버스삯이 1150원이고, 오가는 거리는 16킬로미터입니다. 버스삯이나 기름값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어쩌면 기름값이 더 든다 할는지 모르고, 자가용이나 짐차가 있으면 읍내에 마실을 갔을 때에 졸립다며 잠들려는 아이를 고이 눕히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그리 힘들이지 않으며 다닐 수 있어요. 아마, 읍내뿐 아니라 조금 먼 시내까지 다닐는지 모르지요.

 그러고 보면, 우리한테 자가용이나 짐차가 없기 때문에 멀리 나다닐 일이 적은지 모릅니다. 우리한테 자가용이나 짐차가 없으니 늘 걷습니다. 자전거에 수레를 달고 아이랑 마실을 다니기도 하지만, 자동차가 없기 때문에 늘 자동차 없는 흐름에 맞추어 하루하루 살림을 꾸립니다.


.. 오늘날 우리 대부분은 풍요로운 자연 양식의 체계 속에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쉽게 이해하지 못하며, 우리가 배우는 학문들로 더욱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생물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자연의 풍요로움과 다양성이 감소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형성되었다 ..  (26쪽)


 우리 집에 자동차가 있다면 책을 장만해도 더 많이 장만했을까 헤아려 봅니다. 어쩌면, 책방마실을 할 적에 한결 느긋하게 책을 장만하겠지요. 백 권이든 이백 권이든 걱정없이 실을 테니까요. 그런데, 책방마실을 하며 책을 백 권쯤 사들이면 이 책을 언제 다 읽으려나요. 아니, 한꺼번에 책을 백 권쯤 장만할 돈이 어디에서 솟아날는지요.

 시골집에서 읍내 나들이를 자주 하면서 과일도 자주 사고 뭣도 자주 산다면, 이렁저렁 사는 돈은 어디에서 샘솟을까요. 자동차가 없다고 찻삯을 적게 쓴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만(때때로 택시를 타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굴리면서 들어야 하는 목돈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굴리면, 자동차를 굴리는 만큼 들어야 할 목돈을 벌자며 다른 돈구멍을 찾아야 하고, 무엇이든 더 돈이 될 길을 걸으려고 용을 써야 합니다.

 더 많이 누리면서 더 많이 써야 하니까, 더 많이 거머쥐어야 하고 더 많이 벌어들여야 합니다. 더 많이 누리면서 더 많이 쓰는 동안, 더 많이 쓰레기를 내놓고 더 많이 땅과 물과 바람을 더럽힙니다.

 자가용을 몰든 짐차를 몰든, 자동차를 몰면서 이 자동차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를 살피는 사람이 있기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자가용이나 짐차를 몰면서, 우리 터전 물과 바람과 흙이 나날이 어느 만큼 더러워지는가를 깨닫는 사람이 있기나 있는지 궁금합니다.


.. 인간의 목적 때문에 최근에 급격히 변한 시골에 가 보면 그 전의 풍경을 상상하기가 힘들 것이다. 예를 들면, 완전히 벌목된 숲속에서 누가 예전의 짙푸른 숲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 변해버린 자연환경 속에서 자신들이 없애버린 문화와 견줄 만한 삶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  (70, 220쪽)


 자가용을 몰지 않기 때문에 아이를 걸립니다. 아이는 다리가 몹시 아프다 할 때에만 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안고 가방을 짊어진 채 걷습니다. 사진기는 목에 걸고 어깨에는 천으로 짠 바구니를 맵니다. 따로 하는 운동이란 없습니다. 따로 하는 운동이라면 가방 짊어지기요, 아이 안기입니다. 천천히 걸어다녀야 하는 만큼, 내가 살아가는 마을을 찬찬히 둘러봅니다. 천천히 걸어야 하는 만큼, 도시로 볼일 보러 나올 때에는 골목에서고 큰길 거님길에서고 머리가 어지럽고 어수선합니다. 두 다리로 걸으며 살아야 하는 만큼, 두 다리로 걸으면서 내가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즐거울까를 온몸으로 돌아봅니다. 두 다리로 거닐며 사람을 마주하기에, 나는 내 두 다리로 느낀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자동차로 움직이고 자동차로 짐을 나르는 사람들은 따로 ‘자동차 없이 몸을 써서 땀을 빼거나 살을 빼는’ 일을 해야 하기 일쑤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동차를 몰아 골프를 즐기는 곳을 드나드는데, 여느 때에 자동차를 안 타고 살아가는 살림을 꾸린다면, 애써 골프를 하든 달리기를 하든 헬스클럽에 다니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느 때에 두 다리로 걷고, 두 손으로 집일을 하면 골프이든 공차기이든 헬스클럽이든 부질없습니다. 아니, 스스로 집일을 하다 보면 골프라든지 헬스클럽이라든지 할 겨를이 있을 수 없겠지요. 집일과 집살림을 꾸리면서 내 아이를 내 손으로 돌보는 나날을 보낸다면, 집에서 복닥이는 나날로도 기운이 쪼옥 빠져 저녁나절에 그대로 곯아떨어질 테지요.


.. 우리가 정확하게 무엇을 잃어 가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 슈퍼마켓에서 사람들이 접하는 풍요에 대한 환상을 … 야생의 보존이라는 개념을 저녁식사에 올라온 음식이나 일상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  (119, 123쪽)


 자동차를 얻어서 타야 할 때에는 얻어서 타야 합니다. 자동차를 몰아야 할 때에는 무척 고맙다고 여기며 몰아야 합니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들기까지 어마어마한 자원을 쓰면서 지구별을 더럽힙니다. 자동차 한 대를 굴리자면 어마어마한 자원을 써서 땅밑에서 석유를 뽑아내는 한편, 이 석유를 자동차에 넣기까지 어마어마하게 지구별을 더럽히면서 경유나 등유나 휘발유를 가려야 하는데다가, 자동차에 기름을 넣어 굴리면 배기가스라든지 ‘바퀴가 닳으며 흩날리는 고무 먼지’라든지 어마어마합니다.

 자동차를 스스로 몰든 얻어서 타든, 늘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 내 몸을 덜 쓰면서 내 짐을 덜도록 해 주는 자동차인 줄 헤아려야 합니다. 타야 할 때에는 고맙게 여기면서 타고, 안 타도 될 때에는 흐뭇하면서 호젓하게 내 몸을 즐겨야 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땅을 깨닫고, 내가 선 자리를 느끼며, 내가 이웃한 사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땅은 고속도로가 아닙니다. 무슨무슨 고속도로로 이 나라를 나눌 수 없습니다. 크게 보자면 서울이고 인천이고 경기도이고 충청남도이고 충청북도이며 강원도와 경상남도와 전라북도이자 제주도입니다. 작게 보면 서울 은평구이고 인천 동구이며 경기도 평택입니다. 충청남도 예산이고 충북 음성이요 강원 횡성입니다. 더 작게 보면 인천 동구 송림3동이고, 충북 음성 생극면입니다. 더더 작게 보면 인천 동구 송림3동 5번지이자, 충북 음성 생극면 도신리입니다.

 서울부터 부산까지 몇 시간 만에 달릴 수 있느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서울과 부산 사이에 어떠한 마을과 자연이 있으며, 이 마을과 자연에는 어떠한 사람과 목숨이 살뜰히 어우러지며 살아가느냐가 대수롭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한 목숨 두 목숨이 어여쁩니다.


 (2) 내 마을을 지키려는 땀방울


 이야기책 《북태평양의 은빛 영혼 연어를 찾아서》를 읽습니다. 미국에서도 연어를 살리려고 여러모로 애쓰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한국에서도 연어를 살리자며 여러모로 애쓰곤 합니다.

 연어 한 마리가 냇물에서 알을 깨고 태어나 머나먼 바다를 두루 돌다가 다시 냇물로 돌아오는 흐름을 살리거나 건사할 수 있을 때에 연어를 지키는 일이 마무리됩니다.

 연어가 냇물에서 알을 낳자면 냇물이 깨끗해야 합니다. 연어가 냇물에서 알을 낳자면 둑이나 댐이 없어야 합니다. 연어가 냇물로 돌아오자면 바다에서 한두 해나 여러 해 동안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바다가 넉넉한 삶터이자 놀이터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얻으려는 생각으로 냇물과 냇가를 더럽히거나 망가뜨리면 연어는 알을 낳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아예 씨가 마르고 맙니다. 사람들이 바닷가에 끝없이 공장이나 발전소를 세우고 말면, 연어는 바다에서도 숨이 막힙니다.


.. 토착민들은 더 많이 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뒤를 이은 통조림공장 소속의 어부들은 더 많이 잡을 수 있는 여건에서, 분명 그렇게 하였다 … 미국 초기의 인공 양식장은, 생산적인 어종은 인간의 소비량을 조달하기 위해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래되어야 한다는 유럽적 사고에 기초해 있었다 ..  (87, 105쪽)


 연어를 너무 많이 잡아먹을 때에도 연어는 씨가 마를 테지요. 그렇지만 연어가 깃들 냇물을 더럽힌다면, 더욱이 냇물뿐 아니라 냇물이 맑게 흐를 수 있도록 냇물이 깃든 멧자락을 어지럽힌다면, 냇물은 남아도 냇물이 냇물다울 수 없습니다. 멧자락에 나무들이 푸르게 우거지면서 멧짐승이 오붓하게 살아갈 때에야, 비로소 냇물 또한 맑고 시원하게 흐릅니다. 나무 없고 멧짐승 없는 멧자락 냇물에 어떤 연어가 찾아올 수 있겠습니까. 연어를 되살리자면 냇물을 되살려야 하고, 나무와 멧짐승이 되살아나도록 사람이 숲에서 떠나야 합니다. 사람이 숲을 아껴야 합니다. 사람이 아파트나 도시나 쇼핑센터나 자동차를 아끼지 말고, 숲을 아껴야 합니다. 더 많은 학교와 더 많은 공공기관과 더 많은 재개발과 더 많은 고속도로와 더 많은 댐과 더 많은 발전소 따위가 아니라, 더 많은 숲과 더 많은 논밭과 더 많은 작은 집이 있어야 합니다.

 자가용을 몰수록 스스로 살림을 꾸리는 길하고 멀어집니다. 자가용을 몰지 않을수록 나 스스로 내 살림을 꾸리는 길하고 가까워집니다.

 자가용을 몰수록 내 보금자리를 덜 사랑하고 맙니다. 자가용을 몰지 않을수록 내 보금자리를 한결 찬찬히 돌아보며 사랑합니다.


.. 교과서에 찬양하는 국가와 왕국의 역사, 정치경제적 형세 같은 것들은 우리가 장소와 실제적인 관계를 맺는 데 필요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 인간의 공동 선택권을 가치 있게 판단하는 데 필요한 역사는 대부분의 경우, 미국의 경우,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역사이다 … 물속에 발을 담그고, 파손되어 벗겨진 개울둑이나 그 위의 마른 비탈들을 재무장하기 위해 거대한 바위와 통나무들을 옮기고 조림하는 작업은 인간 공동체가 야생의 과정과 깊게 연관되어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  (200, 202쪽)


 《북태평양의 은빛 영혼 연어를 찾아서》를 읽으며, 이 책을 쓴 분이 참으로 ‘북태평양을 빛내는 눈부신 넋’인 연어를 헤아리는가 아리송했습니다. 왜냐하면, 북태평양 연어 이야기보다 ‘연어가 연어답게 살 수 없도록 냇물과 멧자락과 바다를 더럽히는 사람들’ 이야기가 잔뜩 나올 뿐더러, 연어 삶터를 되살리려는 사람들 이야기가 또 잔뜩 나오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연어를 쫓아낸 ‘돈에 눈이 먼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또 연어를 다시 불러들이려는 ‘자연에 눈을 뜨려는 사람’ 이야기를 펼치면서, 얼마든지 북태평양을 빛내는 눈부신 넋이 무엇인가를 밝힐 수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들이 무엇을 잃으면서 무엇을 얻는지를 살필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무엇을 내동댕이치면서 나 스스로 무엇을 거머쥐려 하는가를 톺아볼 수 있습니다.


.. 자연의 치유력을 발견하면서 우리는 위안을 얻었고, 감사하는 마음과 고결한 감동을 느꼈다. 지구는 스스로를 치유한다 ..  (214쪽)


 나는 자전거를 즐겨탑니다. 옆지기는 자전거를 배울 즈음 첫째를 낳고, 이제 좀 첫째가 자라서 아버지가 수레에 태우고 함께 자전거를 탈까 싶더니 둘째를 뱁니다. 둘째가 태어나고 어느 만큼 자라 첫째는 스스로 자전거를 타거나 아버지 자전거 뒤에 안장을 하나 덧붙여 태운 다음 둘째를 수레에 실을 무렵에, 비로소 옆지기도 자전거를 찬찬히 배우며 함께 움직일 수 있으리라 꿈꿉니다.

 자전거라는 물건은 처음부터 공장에서 만들지 않았습니다. 자전거라는 물건도 사람들이 저마다 한 대씩 뚝딱뚝딱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공장에서 만드는 자전거인데,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품과 자원과 돈을 헤아리자면, 자전거 백 대를 만들고도 더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이삼백 대는 거뜬히 만들 수 있겠지요.

 나는 자전거를 혼자서 손질할 수도 있으나, 되도록 자전거집에 가서 자전거를 손질합니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자전거집이 자전거를 팔 뿐 아니라 손질해 주면서 먹고살 만큼 살림을 꾸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마을에서 삼사백 집쯤 자전거를 타면서 두어 달에 한 번씩 자전거를 손질하며 손질값을 치르면 자전거집은 그닥 많이 버는 살림은 아닐지라도 그럭저럭 걱정없이 먹고살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자전거 타기가 익숙하지 않다면 걸어다니면 됩니다. 걷다가 힘들면 버스를 타면 됩니다. 버스를 타기에는 짐이 많거나 다리가 아프면 택시를 부르면 됩니다.

 내 살림을 돌보면 됩니다. 내 몸을 살피면 됩니다. 내가 깃든 마을이 작게 작게 예쁘게 이어지도록 가꾸면 됩니다.


.. 그러나 기업은 기업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지에서 생명을 존중하는 척하지도 않았고, 토지에 기반을 둔 기업들조차도 자신들의 소유지가 다른 생명체에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대신 주주들에 대한 지급 능력이 떨어지지 않게 유지하는 데만 급급했다. 기업의 경영진들은 개벌지가 훗날엔 다시 자라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런 행위가 유역의 야생 생태계 집단을 영원히 근절할 만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231쪽)


 북중미에 살던 토박이들은 먹을 만큼만 연어를 잡았지, 깡통에 담아서 팔거나 돈을 잔뜩 벌어들일 꿈으로 연어를 마구 잡아대지 않았습니다. 북중미 토박이는 연어 터전까지 빼앗으며 사람 터전을 늘리지 않았습니다. 곰이나 새나 숱한 들짐승과 날짐승은 연어를 모조리 잡아먹을 듯 달려들지 않았습니다. 배가 부를 만큼만 잡아먹었습니다.

 우리는 자동차를 얼마나 몰면서 살아가나요. 우리는 전기를 얼마나 쓰면서 살아가나요. 써야 할 때에는 써야 할 물건이고, 다루어야 할 때에는 다루어야 할 기계입니다. 우리는 자동차를 비롯한 갖가지 물질문명을 얼마나 써야 하기에 이토록 쓰는지 아리송합니다. 우리는 돈을 얼마나 많이 벌어야 하고, 이렇게 많이 번 돈은 또 어디에서 얼마나 써야 하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북태평양에서든 한국에서든, 연어를 살리는 길은 과학자나 생태학자나 환경운동가나 공무원이나 지식인이나 전문가나 기자나 교수 손에 달리지 않습니다. 연어를 살리는 길은 책이나 지식이 아닌 내 삶에 달립니다. 자동차가 있으면 대형마트에 가서 연어 몇 마리 값싸게 사들여서 냠냠짭짭 먹겠지요. (4344.4.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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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끈과 책읽기


 아이가 일어난다. 어제도 늦게까지 안 자고 버티며 놀겠다 하던 아이였지만, 오늘도 아침에 일찌감치 일어난다. 어쩔 수 없지, 아이로서도 따스한 봄날 일찍 일어날밖에 없지, 늦게까지 잠들라 할 수 없지 않겠나.

 아이한테 쉬해야지 하고 말하며, 아빠는 응가하러 나갔다 온다. 아이는 쉬를 한 번 했고, 이내 응가까지 한다. 응가가 마려워 오늘은 더 일찍 일어났나?

 아이는 틀림없이 아침부터 뭔가를 먹고프다 할 테니까, 당근을 갈아서 주기로 한다. 아이한테 물을 한 모금 마시라며 물병을 건넨다. 아이는 물을 조금 마신다. 당근을 갈아 작은 밥그릇에 담아 내민다. 자, 바지 입고 앉아서 먹어야지.

 아이는 금세 한 그릇을 비운다. 오늘은 벌써부터 아침을 마련해서 차려야 하나. 아이는 방울 둘 달린 머리끈을 가져와서 내밀며 “아버지, 미끈.” 하고 말한다. 히유, 가늘게 한숨을 쉬며 “빗, 빗 가져와야지.” 하고 대꾸한다. 아이를 뒤로 앉힌다. 머리를 빗질한다. 뒤에서 한 갈래로 묶으려 하는데, 아이가 그러지 말라며 머리를 왼쪽으로 숙인다. 오른손으로 오른머리를 짚는다. 오른쪽에만 묶어 달란다. 아직 머리숱이 안 많아 힘들 텐데? 게다가 네 아버지는 두 갈래로 따로 묶기를 아주 못하거든?

 어머니는 꽤 잘할 텐데 하고 생각하다가, 아버지로서 두 갈래 묶기를 영 못한다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못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생각하며 해 보기로 한다. 못한다지만 날마다 자꾸자꾸 해 버릇하면서 해 줄 수 있어야 할 테니까.

 그렇지만 영 삐뚤빼뚤이다. 머리카락이 요리조리 삐죽삐죽이다. 내 머리도 잘 못 묶는데 아이 머리라고 잘 묶기란 힘든지 모른다. 아이는 마냥 좋다며 웃지만, 이 엉터리 머리끈을 어쩌나. 아버지는 아침에 일을 해야 하니까 건드리지 말라 말하지만, 아이는 아버지 무릎에 올라타고 등에 업힌다. 곁에서 책 하나 꺼내어 아이한테 내민다. 무릎에 앉은 아이를 들어서 옆에 앉힌 다음 이불을 덮는다. 아이는 몇 번 스윽 넘기더니 “책 다 봤어.” 한다. 그래, 그게 다 읽은 꼴이니. 에이그, 너 참 잘났다.

 아버지는 이제 아침일을 그쳐야 할까 보다. 아침을 마련해서 차려야지. 너는 또 반찬 나르기와 상차리기를 거든다며 “내가 할게요!” 하고 옆에서 종알종알 부산을 떨겠지. 행주로 밥상을 닦을 때에도 “내가 닦을게요!” 하면서 끝없이 행주질을 해대겠지. (4344.4.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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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읽기 5


 어머니는 뜨개책을 펼치고 아버지는 만화책을 펼친다. 아이는 어머니 등을 타다가 아버지 등을 타다가, 슬그머니 그림책을 하나 집어 펼친다. 조금 뒤, 아이는 제가 보던 그림책을 들고 아버지한테 와서 그림책에 춤 추는 언니가 나왔다면서 뭐라뭐라 종알종알 한참 떠든다. 아버지한테 책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소리인지, 아버지한테 책을 읽어 주겠다는 모양인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아이가 저랑 안 놀아 준다며 꾀 부리듯이 아버지 얼굴에 책을 디밀다가는 까르르거리며 웃는다. 책을 쥐고 아버지 얼굴에 들이미는 아이를 덥석 안아 함께 뒹군다. (4344.4.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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