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끈과 책읽기


 아이가 일어난다. 어제도 늦게까지 안 자고 버티며 놀겠다 하던 아이였지만, 오늘도 아침에 일찌감치 일어난다. 어쩔 수 없지, 아이로서도 따스한 봄날 일찍 일어날밖에 없지, 늦게까지 잠들라 할 수 없지 않겠나.

 아이한테 쉬해야지 하고 말하며, 아빠는 응가하러 나갔다 온다. 아이는 쉬를 한 번 했고, 이내 응가까지 한다. 응가가 마려워 오늘은 더 일찍 일어났나?

 아이는 틀림없이 아침부터 뭔가를 먹고프다 할 테니까, 당근을 갈아서 주기로 한다. 아이한테 물을 한 모금 마시라며 물병을 건넨다. 아이는 물을 조금 마신다. 당근을 갈아 작은 밥그릇에 담아 내민다. 자, 바지 입고 앉아서 먹어야지.

 아이는 금세 한 그릇을 비운다. 오늘은 벌써부터 아침을 마련해서 차려야 하나. 아이는 방울 둘 달린 머리끈을 가져와서 내밀며 “아버지, 미끈.” 하고 말한다. 히유, 가늘게 한숨을 쉬며 “빗, 빗 가져와야지.” 하고 대꾸한다. 아이를 뒤로 앉힌다. 머리를 빗질한다. 뒤에서 한 갈래로 묶으려 하는데, 아이가 그러지 말라며 머리를 왼쪽으로 숙인다. 오른손으로 오른머리를 짚는다. 오른쪽에만 묶어 달란다. 아직 머리숱이 안 많아 힘들 텐데? 게다가 네 아버지는 두 갈래로 따로 묶기를 아주 못하거든?

 어머니는 꽤 잘할 텐데 하고 생각하다가, 아버지로서 두 갈래 묶기를 영 못한다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못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생각하며 해 보기로 한다. 못한다지만 날마다 자꾸자꾸 해 버릇하면서 해 줄 수 있어야 할 테니까.

 그렇지만 영 삐뚤빼뚤이다. 머리카락이 요리조리 삐죽삐죽이다. 내 머리도 잘 못 묶는데 아이 머리라고 잘 묶기란 힘든지 모른다. 아이는 마냥 좋다며 웃지만, 이 엉터리 머리끈을 어쩌나. 아버지는 아침에 일을 해야 하니까 건드리지 말라 말하지만, 아이는 아버지 무릎에 올라타고 등에 업힌다. 곁에서 책 하나 꺼내어 아이한테 내민다. 무릎에 앉은 아이를 들어서 옆에 앉힌 다음 이불을 덮는다. 아이는 몇 번 스윽 넘기더니 “책 다 봤어.” 한다. 그래, 그게 다 읽은 꼴이니. 에이그, 너 참 잘났다.

 아버지는 이제 아침일을 그쳐야 할까 보다. 아침을 마련해서 차려야지. 너는 또 반찬 나르기와 상차리기를 거든다며 “내가 할게요!” 하고 옆에서 종알종알 부산을 떨겠지. 행주로 밥상을 닦을 때에도 “내가 닦을게요!” 하면서 끝없이 행주질을 해대겠지. (4344.4.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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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읽기 5


 어머니는 뜨개책을 펼치고 아버지는 만화책을 펼친다. 아이는 어머니 등을 타다가 아버지 등을 타다가, 슬그머니 그림책을 하나 집어 펼친다. 조금 뒤, 아이는 제가 보던 그림책을 들고 아버지한테 와서 그림책에 춤 추는 언니가 나왔다면서 뭐라뭐라 종알종알 한참 떠든다. 아버지한테 책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소리인지, 아버지한테 책을 읽어 주겠다는 모양인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아이가 저랑 안 놀아 준다며 꾀 부리듯이 아버지 얼굴에 책을 디밀다가는 까르르거리며 웃는다. 책을 쥐고 아버지 얼굴에 들이미는 아이를 덥석 안아 함께 뒹군다. (4344.4.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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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하고 책읽기


 빨래를 할 때에 아이는 곁에서 물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물놀이를 할 때면 으레 옷을 다 적시니까 싫어하지만, 아이가 놀고 싶어 하는 데에 차마 말리지 못합니다. 가장 좋은 길이라면, 빨래를 할 때에 아이가 씻도록 하는 일이 될 테지요. 집에서 물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날을 맞이해서 얼른 이처럼 빨래하며 물놀이 어린이를 바라볼 수 있는 날을 손꼽습니다.

 빨래기계를 쓰면 손빨래 일감을 크게 줄입니다. 빨래기계를 쓰면 한 시간쯤을 손빨래 일에서 벗어납니다. 하루에 한 시간 빨래하기에 들인다 하더라도 한 달이면 하루 하고도 한 나절 남짓을 빨래에 쏟는 셈입니다. 밥을 하고 치우느라 날마다 두 시간쯤 쓴다면 다달이 이틀이나 사흘쯤은 밥하기에만 보내는 셈입니다. 따지고 보면, 하루 1/3은 잠을 자는 데에 쓰니까, 이렇게 내 겨를을 헤아리는 일은 좀 부질없습니다.

 아직 집에서 빨래를 할 수 없어, 다른 집에서 물을 얻어 쓰면서 빨래를 하다가, 다른 집 씻는방에 놓은 빨래기계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텅텅텅 소리를 내는 커다란 빨래기계에 든 빨래감은 내 오늘 빨래감보다 적어 보입니다. 그런데 빨래기계가 빨래를 해내는 데에는 저보다 훨씬 오래 걸립니다. 아마, 기계는 사람보다 물과 전기까지 훨씬 많이 먹을 테지요.

 손빨래를 하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내가 빨래기계를 써서 날마다 한 시간쯤 다른 데에 내 겨를을 쓸 수 있다면, 이만 한 겨를에 나로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나로서는 날마다 한 시간을 더 누리면서 물과 전기를 더 쓰는 일을 더 보람차거나 알차게 누릴 수 있을까 하고.

 손빨래를 안 하고 빨래기계 장만해서 쓴다면 집살림을 조금 더 알뜰히 돌보는 내 삶이 될까요. 빨래기계 쓸 만한 녀석을 장만하자면 거의 100만 원 가까운 돈을 장만해야 하는데, 나는 1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어떻게 무슨 일을 하면서 벌어야 할까요. 오늘날 같은 누리에서 빨래기계 안 쓰는 사람은 바보이거나 멍청이라 할 만할까요.

 어제 하루 새삼스레 찬물로 빨래를 합니다. 물을 얻어 쓰는 데에서 따신 물이 안 나왔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는 기름으로 보일러를 돌리니까, 빨래를 하며 따신 물을 쓰자면 이웃 기름을 내가 더 써야 합니다. 내 집 보일러를 돌려 따신 물을 쓰면 내 집 기름을 쓰니까 걱정스럽지 않지만, 이웃 씻는방에서 빨래를 할 때에는 되게 미안합니다. 빨래기계는 따신 물 아닌 차가운 물로 얼마든지 잘 빨아 주니까 빨래기계를 쓰면 기름을 안 먹으니까, 빨래기계가 전기랑 물을 쓰더라도 똑같은 셈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빨래를 마칩니다. 마무리지은 빨래는 물병과 함께 가방에 넣습니다. 자전거 수레 뒤쪽에 10리터들이 물통을 넣습니다. 아이를 수레에 앉힙니다.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몰아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이는 자전거를 타며 좋아합니다. 빨래를 하면서 아이가 곁에서 물놀이를 하도록 하거나 씻기자면 품과 겨를을 더 들여야 합니다. 그렇지만,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라면, 이 몫을 마땅하면서 거뜬히 즐길 노릇이리라 생각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물통을 내려놓고 빨래를 넙니다. 다 마른 빨래를 걷습니다. 아이하고 빨래를 개려 했지만, 몸이 고단해 한동안 드러눕습니다. 허리를 폅니다. 책을 몇 쪽쯤 읽고 싶었지만, 눈이 따끔거려 아예 한 쪽조차 펼치지 못합니다. 책으로 태어나도록 하는 글을 쓰는 사람은 어디에서 누구하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헤아리며 까무룩 잠이 듭니다. 아이가 종알종알 노래 부르는 소리를 꿈결처럼 듣다가 햇볕이 차츰 수그러들기에 깜짝 놀라듯이 깨어납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저녁밥을 짓습니다. (4344.4.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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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4-05 10:14   좋아요 0 | URL
아이가 참 이뻐요. 옆에서 돌아가고 있는 세탁기 소리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모든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파란놀 2011-04-05 13:56   좋아요 0 | URL
고마운 삶은 참으로 마땅한 나날이기에,
이 고마운 삶을 늘 고맙게 받아들이려고
오늘도 더 즐겁게 생각하며 힘을 씁니다..
 

 

[누리말(인터넷말) 61] 뮤직 컴필레이션

 “내가 들은 음악”을 모으거나 찾는 자리에 붙는 이름은 ‘뮤직’입니다. 우리한테는 ‘노래’라는 우리 말이 있지만, 노래를 하는 사람들은 정작 “저는 노래하는 사람입니다.”라 말하기보다 “저는 음악하는 사람입니다.”라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스스로 ‘노래꾼’이나 ‘노래쟁이’라 말하는 사람은 아직 못 보았습니다. 다들 ‘음악인’이라 하거나 ‘뮤지션’이라 할 뿐입니다. 네이버라는 곳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그러모으는 자리에 “나만의 컴필레이션은 내 리스트에”라고 적바림합니다. ‘목록(目錄)’은 우리 말이 아니라 합니다. 그렇다고 이 낱말을 어찌저찌 가다듬는다든지 털어낸다든지 알맞고 좋은 우리 말을 새롭게 빚는다든지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제는 이 낱말이 우리 말이고 아니고를 떠나 아무렇지 않게 쓸 뿐 아니라, 아예 영어로 ‘리스트(list)’를 쓸 뿐입니다. 회사에서 ‘영업부’가 ‘마케팅부’로 바뀌듯, 그냥 한자에서 영어로 갈아타면 그만입니다. 곱게 쓸 우리 말이냐라든지, 바르게 쓸 우리 말이냐는 벌써 머나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4344.4.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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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우리말 살가이 살피기 ㉠ 띄어쓰기


 우리말에는 띄어쓰기가 없었습니다. 처음 훈민정음이 태어나서 훈민정음으로 쓴 책이든, 지난날 한문으로 쓴 책이든 띄어쓰기를 하지 않습니다. 굳이 띄어서 쓰지 않아도 되는 우리말이며 한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글을 읽기 몹시 어렵습니다. 지난날에는 따로 띄어서 쓰지 않더라도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가를 훤히 알 수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하나하나 잘 띄어서 쓰지 않으면 엉뚱한 이야기로 여길 수 있습니다.

 띄어쓰기는 알파벳을 쓰는 서양에서 쓰는 글법입니다. 한자를 쓰는 중국이라든지 가나를 쓰는 일본은 띄어쓰기를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본책도 띄어쓰기를 아예 안 하지는 않으나, 굳이 띄어쓰기를 하지 않기도 합니다.

 글을 쓸 때에 띄어서 쓰는 까닭은, 띄어서 적지 않으면 무슨 글이고 무슨 뜻이며 무슨 얘기인지 알아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말사랑벗들이 가만히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깨달을 텐데, 요즈음 글을 쓰는 사람치고 쉽고 알맞으며 바르게 글을 쓰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갖은 영어에 한자 지식 자랑이 넘칩니다. 쉽고 바르게 썼더라도 모두 붙여서 적으면 읽기에 만만하지 않을 텐데, 쉽지도 않고 바르지도 않은데다가 갖가지 영어와 한자를 집어넣은 글일 때에는 띄어서 적지 않으면 읽기에 얼마나 힘들까요.

 그러니까, 띄어쓰기란, 읽기에 알맞거나 좋도록 띄자고 하는 글법이요, 서로서로 맞은편 사람을 헤아리는 글쓰기입니다. ‘글 읽는 사람’ 마음이 되어 쓰는 글법이에요.

 그런데 우리말 띄어쓰기는 뒤죽박죽입니다. 한 가지로 튼튼히 서지 못해요. 어느 때에는 붙여도 되고 어느 때에는 띄어도 된다고 하는 예외규정이 아주 많아요. 더구나, 정부 국립국어원에서 마련한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낱말이면 붙이고, 이 사전에 안 실린 낱말이면 띄어야 한다는 틀까지 있습니다.

 한편, 국어사전에 안 실렸으나 ‘한자로 지은 낱말’은 붙여서 써도 괜찮다는 ‘말없는 예외규정’이 있어요. 이를테면 ‘百夢’이나 ‘千夢’은 국어사전에 안 실립니다. 그런데 이 한자말을 ‘띄어서 쓰라’ 하지 않아요. ‘百夢’이라면 백 가지 꿈이고, ‘千夢’이라면 천 가지 꿈일 테지요. 한자로 지은 이러한 낱말은 붙여서 쓰라 하는데, 이와 비슷하게 ‘꿈길’을 이야기하듯 ‘사진길’이나 ‘책길’이나 ‘마음길’이나 ‘사람길’이나 ‘자전거길’이나 ‘버스길’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이러한 낱말은 국어사전에 안 실렸으니 띄라고만 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말을 새롭게 일구거나 빚도록 도와주지 못하는 띄어쓰기인 셈입니다.

 띄어쓰기를 옳게 가다듬는 일이란 어려울 수 있으나, 아주 쉬울 수 있습니다. 국어사전에 부록으로 실리는 띄어쓰기 말법을 읽으면 되고, 정 모르겠으면 ‘내 글을 읽을 사람이 잘 알아보도록 알맞게 띄자’고 생각하면 됩니다.

 알고 보면, 신문기자이든 출판사 편집자이든 국어학자이든 빈틈없이 띄어쓰기를 맞추지는 못해요. 중·고등학교 국어교사나 대학교 국어학과 교수이든 띄어쓰기를 알뜰살뜰 여미지는 못합니다. 학자들조차 띄어쓰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나머지 ‘늘 국어사전을 다시 들추고 규정을 거듭 읽으’면서 살펴야 한답니다.

 아무렇게나 띄거나 함부로 붙여서는 안 됩니다만, 글을 쓸 때에 띄어쓰기에 지나치게 매이지 않아야 한결 홀가분하면서 아름다이 내 생각을 펼칩니다. 사랑스러이 말하고 싶어 ‘사랑말’을 빚을 수 있고, ‘사랑편지’뿐 아니라 ‘사랑일기’를 쓸 수 있어요. 이러한 말마디를 내 나름대로 만들고 싶으면 얼마든지 붙여도 됩니다. ‘즐겨찾기’가 한 낱말이 되듯, 말사랑벗 스스로 즐기는 말삶을 차근차근 일구면서 좋은 새말을 ‘붙여쓰기’ 하면서 마련할 수 있어요.

 언제나 살아숨쉬는 말입니다. 말사랑벗부터 살아숨쉬는 고운 목숨입니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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