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탄생 - 한국어가 바로 서는 살아 있는 번역 강의
이희재 지음 / 교양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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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말투’는 없고 ‘번역 말투’만 있다
 [책읽기 삶읽기 79] 이희재, 《번역의 탄생》(교양인,2009)



 나라밖 책을 한국사람이 읽도록 옮기는 일을 하던 이희재 님이 《번역의 탄생》(교양인,2009)이라는 책을 이태 앞서 내놓았습니다. 이태 앞서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늦게 이러한 책이 나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2011년에 나왔다 한들, 또 2013년이나 2015년에 다른 책이나 비슷한 책이나 더 나은 책이 나온다 한들, 이 나라 번역 문화는 그닥 달라지지 않는구나 싶어요. 누구보다 번역을 하는 분이 읽을 《번역의 탄생》이지만, 이러한 책을 읽으면서 ‘번역말이 더 한국말다울 수 있도록 힘쓰는 분’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거든요.

 이희재 님은 “직역은 한국어를 살찌우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입니다. 외국어의 참신한 비유는 앞으로도 과감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33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곧이어 “한국의 직역주의는 자기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보다는 그저 원문을 무작정 우러러보는 종살이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3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작가와 독자는 ‘-게 하다’라는 사역 표현에 무척 익숙합니다. 번역서에서 워낙 그런 문장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지요(108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세 마디를 가만히 놓고 생각합니다. ‘직역’이라는 번역 말투는 오늘날 이 나라에 아주 널리 퍼졌습니다. 이희재 님은 이 직역이 한국말을 크게 살찌웠다고 이야기하는데, 이희재 님 입으로 ‘한국사람은 서양말이나 중국말이나 일본말을 무턱대고 우러르며 쓰기만 하는 종살이’를 한다고 나무랍니다.

 몹시 궁금합니다. 스스로 내 삶을 다스리는 임자 구실을 못하는 한국사람이라면서, 종살이와 같이 말을 하거나 글을 쓴다면서, 이러한 ‘직역’으로 한국말을 어떻게 얼마나 살찌울 수 있을는지요. 아니, 살찌우려고 하기나 했을까요. 조금이나마 살찌웠다 할 만한가요. 소 뒷다리로 개구리를 잡는다 하듯, 직역 말투로 한국말을 살찌운 대목이 있을는지 모릅니다만, 제 나라말을 곱다시 여기지 못하는 매무새로 서양말·중국말·일본말을 섬기는 한겨레는 한국말을 하나도 살찌우지 못했다고 해야 올바릅니다.


.. 일본어는 한국의 사전에서도 끄떡없이 살아남았습니다. 한국의 사전 편찬자들은 해방 후에 영한사전을 만들 때도 영일사전을 전범으로 삼았습니다 … 일본어는 한자를 쓰기 때문에 같은 뜻이라도 한자로 어렵게 표현하려는 경향이 한국어보다 강합니다. 그런데 영일사전을 베끼다 보니까 영일사전에 나와 있는 한자로 된 딱딱한 풀이어들이 발음만 한국어로 표기되어서 영한사전에 그대로 들어왔습니다 … 한국어는 주어는 안 쓰더라도 문장은 될수록 능동문으로 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역동적이고 힘찹니다. 일본어는 될수록 수동문으로 만들려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  (28∼29, 93쪽)


 《번역의 탄생》은 “번역이 태어났다”고 밝히는 책이 아닙니다. “번역이라는 새 말투가 태어났다”고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이제 웬만한 한국사람 누구나 익숙하게 젖어든 ‘번역 말투’가 어떠한가를 찬찬히 살피면서, ‘조금 더 한국말답게 말을 하거나 번역을 헤아리는 길’을 돌아보자고 이끄는 책입니다.

 《번역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이 나라 한국에서 나오는 책은 하나같이 번역 말투입니다. 여느 문학책이든 인문책이든 다르지 않아요. 어린이책이라 해서 번역 말투에서 홀가분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는 좀 다를까요? 중·고등학교 푸름이가 읽어야 할 교과서는 좀 낫다 할까요?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싫든 좋든 초등학교부터 번역 말투로 교과서를 배웁니다. 더욱이, 초등학교에 앞서 어린이집에서도 번역 말투로 이야기를 듣거나 주고받습니다. 게다가, 어린이집에 들기 앞서 ‘아이를 낳은 어버이’라면 누구나 ‘아주 마땅하다’ 할 만큼 번역 말투로 생각을 나눠요.


.. 난해한 한자어를 쉬운 말로 바꾸는 것은 그 자체가 번역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 제가 한국어 번역에서 대명사를 명사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영어가 자기 정체성을 지키려는 의지의 몇 분의 일이라도 한국어가 자기 정체성을 지키기를 바라는 균형 감각 때문일 것입니다 … 한국어는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주어는 사람이라는 의식이 확고하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수동문을 쓰지 않습니다. 주어가 겉으로 드러나야 하는 언어일수록 수동태가 발달합니다. 영어가 그렇습니다 … 전치사가 들어간 영어 문장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동사를 덧붙여 주어야 자연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전치사 자체가 강한 행동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  (31, 56∼57, 80, 236쪽)


 여느 인문책이나 문학책이나 학술책이 ‘번역 말투로 가득하다’고 걱정하거나 슬퍼하기 앞서, 이 나라 모든 교과서와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은 ‘일찌감치 번역 말투로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전문가나 학자나 여느 어버이나 교사 또한 ‘으레 번역 말투를 여느 삶말로 여겨’ 주고받아요. 연속극에서도 영화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말로 옮기는 나라밖 그림책도 이와 똑같습니다. 처음부터 한국사람이 빚은 한국 그림책 또한 이와 같아요.

 한국말다이 한국말을 돌보면서 한국말을 나누려는 어른이 없습니다. 한국말다이 한국말을 보듬으면서 한국말을 주고받으려고 땀흘리거나 애쓰는 어른이 없습니다. 이 나라 푸름이와 어린이는 ‘생각 안 하고 살아가는 어른들 번역 말투’를 고스란히 물려받습니다. 이 나라 푸름이와 어린이가 어른이 될 때에도 저희들이 어린 나날부터 익숙해지거나 길든 번역 말투로 저희 아이들을 낳고 기릅니다.


.. 한자는 아무런 뜻이 없는 고유명사를 적는 데도 불리합니다. 뜻글자는 의미 환기력이 워낙 강하다 보니, 그것을 차단하려면 될수록 의미가 이어지지 않는 글자들을 모아야 하고, 심지어 새 글자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같은 소리로 나는 수많은 한자어 중에서 어떤 한자어를 고유명사의 발음에 대응시킬지 막연합니다 … 그런데 왜 멀쩡한 ‘공약’이라는 좋은 말을 두고 ‘매니페스토’라는 말을 요즘 뜬금없이 쓰는 것일까요? 기존 영한사전에 manifesto의 풀이어로 ‘공약’이 안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manifesto는 그냥 공약이 아니라 책임 있는 공약이기나 한 것처럼, 흔히 말하는 ‘공약’과는 구별해서 써야 하는 말인 것처럼, 한국어 ‘공약’은 영어 manifesto의 뉘앙스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입니다 ..  (322, 344쪽)


 한국땅에서 번역 말투가 이처럼 널리 퍼진 지는 얼마 안 된 일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참 짧은 햇수만에 번역 말투가 온누리 구석구석 퍼졌다고 여길 만합니다.

 이처럼 널리 쉬 퍼진 번역 말투가 ‘한국말을 살찌웠다’고 잘못 생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처럼 널리 쉬 퍼지는 ‘번역 말투 또한 한국말로 삼아야 한다’고 바보스레 생각하고야 맙니다.

 번역 말투가 아닌 한국말다운 한국 말투를 쓰는 일을 낯설게 여기는 요즈음이니까요. 이제는 번역 말투를 ‘번역 말투’ 아닌 ‘한국 말투’로 삼아야 한다고 여겨도 틀리지 않다고 할 만하니까요. 아니, 이제 한국사람들 한국 말투란 ‘번역 말투’라 해야 올바르겠지요. 지난 2000년대와 오늘 2010년대와 앞으로 맞이할 2020년대 한국땅 한겨레 말투란 ‘번역 말투’라 해야 하겠지요.


.. 한국의 번역 문화는 한국어의 논리보다는 외국어의 논리를 너무 숭상하는 풍토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 외국어의 논리라는 것도 심도 있는 분석을 통해서 수미일관한 체례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즉물적이고 맹목적으로 따라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문화도 그렇습니다. 외국 문화의 방정식을 규명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유행하는 답만 열심히 받아적어 왔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좌는 좌대로 우는 우대로 외국 전문가와 외국 이론을 그대로 들여와서 한국 현실에 들이미는 풍토가 일제로부터 독립한 지 두 세대가 넘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  (402쪽)
 

 《번역의 탄생》을 쓴 이희재 님은 우리 모습을 찬찬히 살피면서 낱낱이 보여줍니다. 우리 모습이 나아지거나 거듭나거나 새로워질 길을 따로 밝힐 수 없습니다. 거듭나려고 애쓴다 한들, 둘레 다른 사람들 얄궂거나 슬픈 모습에 휩쓸리거나 휘둘리거나 다칩니다. 맑게 다시 태어나거나 밝게 새로 태어나려고 힘쓴다 한들, 내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말삶을 착하거나 참답거나 곱게 일구지 않습니다.

 말을 바르게 다스릴 길을 살피지 않는 이 나라입니다. 말을 아름다이 북돋울 길을 찾지 않는 이 나라입니다. 아니, 이 나라가 말썽이기 앞서,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내 매무새부터 내 말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나부터 내 말을 아끼거나 보살피거나 믿지 않아요.

 한국말은 없고, 한국글은 없습니다. 번역말과 번역글만 있습니다. 돈에 사로잡힌 말이랑 이름값이나 학벌이나 권력에 젖어든 글만 있습니다. (4344.9.18.해.ㅎㄲㅅㄱ)


― 번역의 탄생 (이희재 씀,교양인 펴냄,2009.2.10./1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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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머리 2011-10-29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본지는 오래 되었지만 번역의 예만 주의깊게 보고 배우느라 책에서 정말 말하고 싶은 문제의식은 그냥 넘기고 말았다는 생각을 이 글을 보고 해 보게 되네요...

파란놀 2011-10-30 02:36   좋아요 0 | URL
번역 보기 바로잡기는...
글쓴이부터 글쓴이 삶에서
제대로 녹아들면서 조금만 보여줄 수 있으면 돼요.

그러니까, '문제의식'은 나부터 내 삶에서
내 넋과 말을 아름다이 돌볼 줄 아는 길에서
실마리를 얻어요..
 

 

[누리말(인터넷말) 86] 샘플 페이지

 사람들은 누구나 ‘사진’을 말하지만, 정작 사진 일을 하는 사람들이건 사진을 찍는 여느 사람들이건 ‘카메라’라고만 말합니다. ‘사진기’라고 말하지 않아요. 그나마 ‘사진가방’이라 말하고 ‘포토백’이라고는 잘 말하지 않으니 고맙다 할 만한데, 사진과 얽힌 이런저런 행사 자리를 들여다보면 온통 영어투성이입니다. ‘잔치’나 ‘행사’라는 말마디보다 ‘이벤트’가 더 나아 보인다고 여기듯, ‘보기’라는 말마디보다 ‘샘플 페이지’나 ‘sample’이 한결 어울려 보인다고 여깁니다. (4344.9.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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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물조물 어린이


 공책에 조물조물 그림을 그린다. 나날이 조금씩 모양이 잡힌다고 할 수 있지만, 아이는 아이 나이에 맞게 제 손을 놀려 제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그리겠지. 나도 살짝 책을 읽다가 공책에 글을 쓰고, 아이도 살짝 책을 보다가 공책에 그림을 그린다. 하루 가운데 몇 분쯤 아주 살짝 느긋하게 지내고, 사이좋게 어울리며, 조용히 보내는 한때. (4344.9.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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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달빛 담요 너른세상 그림책
에일런 스피넬리 글 그림, 김홍숙 옮김 / 파란자전거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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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넋들이 주고받는 아름다운 사랑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97] 제인 다이어·에일린 스피넬리, 《소피의 달빛 담요》(파란자전거,2001)



 그림책 《소피의 달빛 담요》(파란자전거,2001)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 글을 쓴 분은 젊었을 적 하숙집에서 지낼 때에 3층에 살던 아주머니가 가난한 살림을 일구면서 구멍이 송송 난 담요를 아기한테 덮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집임자한테서 받은 ‘낡은’ 담요를 ‘새로’ 태어난 아기한테 덮이는 모습을 딱하게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글쓴이는 젊었을 적에는 돈이 딱히 없었을 테니, 어찌저찌 도와주지 못했겠지요. 나중에 글 한 자락 써서, 당신은 이렇게 ‘달빛 담요’ 하나를 드리고 싶었다면서, 넌지시 마음선물을 베풀었겠지요.

 3층집 가난한 아주머니는 새 담요 하나 살 만한 돈이 마땅히 없습니다. 돈이 없는 만큼 헌 담요 한 장 얻습니다. 아기한테 헌 담요를 덮는 일이 슬플 수 있으나, 헌 담요는 그냥 헌 담요가 아니라, 퍽 예전에 ‘새로 태어났’던 아기가 덮던 담요입니다. 이제는 더께가 앉아 좀 낡았다 할 테지만, 지난날 새로 태어난 아기한테 기쁨과 고마움과 웃음을 베풀려고 장만했던 담요입니다. 이러한 기운이 오늘 이곳에서 새로 태어난 아기한테 이어집니다.

 나와 옆지기는 우리 집 두 아이한테 새 옷을 거의 못 사 줍니다. 아니, 새 옷을 사 줄 돈이 없다고 해야 옳습니다. 두 아이는 헌 옷을 얻어 입습니다. 둘레에서 먼저 아이를 낳아 키우던 분들이 당신 아이들한테 입히던 옷을 보내 주기에, 우리로서는 참 고맙게 받아서 아이한테 입힙니다.

 아이들도 ‘새로 사는 옷’을 아예 모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들한테는 예쁘게 보여 예쁘게 입으면 예쁜 옷입니다. 고맙게 얻어 고맙게 입으면 고마운 옷입니다. 사랑스레 선물받아 사랑스레 입으면 사랑스러운 옷이에요.


.. 소피는 보통 집거미가 아니었어요. 소피는 예술가였지요 ..  (6∼7쪽)


 그림책 《소피의 달빛 담요》에 나오는 집거미 소피는 여느 집거미가 아니라 합니다. 그렇겠지요. 지구별에 오직 하나뿐인 목숨을 제 어버이한테서 선물받은 아름다운 거미입니다. 집거미 소피가 제 목숨을 바쳐 뜬 달빛 담요를 선물받은 아기도 온누리에 하나뿐인 목숨이요, 아기 어머니도, 아기 어머니한테 방을 내준 집임자도 온누리에 하나뿐인 목숨입니다.

 마음을 열지 못하는 다른 아주머니 아저씨 요리사 들도 모두 온누리에 하나뿐인 목숨입니다. 다만, 마음을 열지 못하며 거미를 괴롭히거나 내쫓으려는 이들은 당신부터 온누리에 하나뿐인 목숨인 줄 깨닫지 못합니다. 스스로 제 목숨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놀라운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마음을 열지 못하고, 거리낌없이 사랑을 나누지 못해요.


.. 마침내 도착한 선장 아저씨의 다락방은 온통 회색 빛깔뿐이었어요. 회색 셔츠에 회색 바지, 회색 스웨터……. ‘선장 아저씨에겐 새 옷이 필요해.’ 소피는 생각했어요. ‘그것도 밝은 색깔로, 파란색. 그래! 하늘처럼 파란색이 좋겠다.’ ..  (16쪽)


  그림책 《소피의 달빛 담요》는 그다지 대단하다 싶은 작품이 아닙니다. 이 그림책을 대단하다고 여기면 안 됩니다. 이 그림책은 수수한 삶과 사랑을 살포시 담습니다. 서로 아끼는 삶을 보여주고, 나란히 어깨동무하는 사랑을 들려줍니다.

 사랑은 대단하지 않아요. 사랑은 자연스럽습니다. 사랑은 거룩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누구한테나 있어요.

 하느님만 사랑을 베풀지 않습니다. 대통령만 사랑을 선물하지 않아요. 네 살 어린이도 사랑을 베풉니다. 한 살 갓난쟁이도 사랑을 선물합니다. 가난한 집 아주머니도 사랑을 베풉니다. 넉넉히 잘사는 아저씨도 사랑을 선물해요.

 사랑은 누구나 베풀며 누구나 받습니다. 사랑은 모든 사람이 알게 모르게 선물하면서, 모든 사람이 다시금 알게 모르게 선물받아요.


.. 담요를 짜기 시작하자 자꾸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어요. 소피는 그 모든 것을 넣어 담요를 짜기 시작했어요. 향기로운 솔잎 이슬 조각, 밤의 도깨비불, 옛날에 듣던 자장가, 장난스런 눈송이 … 막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을 때, 소피는 담요의 마지막 귀퉁이를 짜고 있었어요. 그 마지막 귀퉁이에 바로 자신의 가슴을 넣고 있었지요 ..  (27, 29쪽)


 삶이 예술입니다. 집거미가 거미줄을 뜨는 삶이 예술입니다. 여느 살림집 여느 어머니랑 아버지가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며 빨래를 하는 일이 모두 예술입니다. 아이 손을 잡고 숲길을 걷는 일이 예술입니다. 아이하고 노래를 부르는 나날이 예술입니다. 호미를 쥐고 텃밭을 돌보는 일이 예술입니다. 쉬를 눈 아기를 토닥이며 기저귀를 갈아 말끔히 빨고는 해바라기하는 마당에 눈부시게 내다 너는 일이 예술이에요.

 밥 한 그릇이 예술이자 삶입니다. 식구들이 오순도순 나누는 이야기 한 자락이 예술이자 삶입니다. 집거미 소피도 예술이자 삶이며, 소피를 낳은 어머니도 예술이자 삶입니다. 소피한테서 담요를 선물받은 새로 태어난 아기도 예술이자 삶이에요. 모두 아름다운 넋이기에 서로서로 아름다운 사랑을 주고받습니다. (4344.9.18.해.ㅎㄲㅅㄱ)


― 소피의 달빛 담요 (제인 다이어 그림,에일린 스피넬리 글,김흥숙 옮김,파란자전거 펴냄,2001.12.1./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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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
이일우 지음 / 팝콘북스(다산북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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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대로 느끼며 바라보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59] 이일우, 《내 인생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팝콘북스,2006)



 살아가는 대로 느끼면서 바라보는 사진입니다. 살아가는 대로 깨달으며 찍는 사진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결을 스스로 어떻게 일구거나 여미거나 다스리거나 돌보는가에 따라, 내 눈길로 읽는 사진과 내 손길로 찍는 사진이 거듭납니다.

 내 눈길이나 손길은 맨 처음에는 아주 서툴거나 엉성하거나 투박할 수 있습니다. 서툴다 해서 나쁘지 않습니다. 서툴 때에는 서툴 뿐입니다. 엉성하대서 모자라지 않습니다. 엉성할 때에는 엉성할 뿐이에요. 투박한 눈길이나 손길도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투박하게 읽으면 투박하게 읽는 대로 나한테 기쁘며 좋은 사진입니다. 투박하게 찍으면 투박하게 찍는 대로 내게 보람차며 반가운 사진이에요.

 사진길을 뚜벅뚜벅 걷다 보면, 처음에는 서툴던 눈길이나 손길이 차츰 단단해지기도 하고 야물차기도 합니다. 엉성하던 매무새가 짜임새를 갖출 수 있고, 투박하던 사진이 매끄럽거나 멋스러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다 좋습니다. 사진은 반드시 야물차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서툴어도 됩니다. 사진은 꼭 짜임새가 빼어나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엉성해도 됩니다. 사진은 어김없이 멋스럽거나 예뻐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투박해도 됩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느낌은 그닥 대단하지 않습니다. 초점이나 셔터빠르기는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흔들려도 좋고 어긋나도 괜찮아요. 사진이라는 이름이 붙을 때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야기는 깃들지 않으면서 멋스러이 보이기만 한다면 사진이 아니에요. 빈 껍데기입니다. 이야기를 담지 못하면서 예쁘장하기만 한다면 사진이 되지 않아요. 덧없는 겉치레입니다. 이야기를 즐거이 살아내지 않으면 사진하고 동떨어져요.

 《내 인생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팝콘북스,2006)라는 책을 내놓은 이일우 님은 대학교 사진학과를 나오고, 독일로 사진을 배우러 다녀왔지만, 처음부터 ‘사진을 알’거나 ‘사진을 느끼’지 못합니다. 아니, ‘사진으로 살아가지’조차 못합니다. “나는 단지 경제적인 이유 하나만으로 충무로에 있는 작은 잡지사 사진기자로 취직을 했다(10쪽).”라는 말마따나,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를 뿐더러, 사진으로 삶을 일구는 길을 영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사진을 작업하지 않고 머리로만 공부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11쪽).”고는 느낍니다.

 이리하여, ‘몸(실천과 행동)’으로 찍지 않고 ‘머리(지식과 이론)’로 찍는 사진을 털어내려 애씁니다. 꾸준히 애쓰면서 “‘무엇을 찍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우리가 매일 걸어다니는 길 위에 이미 있다(20쪽).” 하고 깨닫습니다. 적어도 ‘사진길 첫걸음’은 떼는 셈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게 아니라 사진가가 찍는다는 사실이다(25쪽).” 하고 다짐하듯, 이제 막 아장걸음을 뗍니다.

 한국에서 사진찍기를 한다는 이들 가운데 이만큼이라도 스스로 털어놓으면서 새로 태어나고자 애쓰는 분이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살아가는 대로 느끼며 바라보는 사진인데, 스스로 내 삶부터 얼마나 아름다이 여미려고 힘쓰는지 궁금합니다. 내 삶을 알차고 사랑스레 돌볼 때에 내 사진 또한 시나브로 알차며 사랑스러울 수 있는 줄 느끼는 분이 얼마나 될는지 궁금해요.

 이일우 님은 “자연은 내 노력에 비해 훨씬 큰 것들을 준다(46쪽).” 하고 이야기하지만, 이러한 말을 꺼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동안 이 황량하고 척박한 사막에서 무엇을 사진으로 옮겨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내 앞에 있는 게으름뱅이 낙타처럼 이곳에 존재하는 하나하나의 사물들에서도 사막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12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자연이 얼마나 크나큰 선물을 베푸는가를 조금 깨달았다고 하면서, 막상 사막으로 사진마실을 다녀오는 동안 ‘자연이 베푸는 선물’을 제대로 맛보지 못합니다. 아니, 자연이 선물을 베푼다고 느끼지 못해요.

 무엇을 사진으로 옮겨야 할지 걱정하지 마셔요. 내 가슴으로 느끼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으면 돼요. 낙타가 게으름뱅이라고요? 낙타를 사진으로 담아 이야기 하나 길어올리지 못하는 사진쟁이가 게으름뱅이예요. 낙타한테서, 낙타를 모는 일꾼한테서, 사막에 가득한 모래에서, 사막을 내리쬐는 햇살에서, 뜨거운 바람에서, 작은 샘과 풀포기에서, 차근차근 사막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한테는 어떠한 사진넋도 태어나지 못합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닙니다. 내 삶그릇만큼 내 사진그릇입니다. 내 삶길과 같은 내 사진길입니다. 내 삶눈에 따라 내 사진눈입니다. 내 삶넋으로 이루어지는 내 사진넋입니다. (4344.9.18.해.ㅎㄲㅅㄱ)


― 내 인생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 (이일우 글·사진,팝콘북스,2006.10.23./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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