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시스터즈 4
쿠마쿠라 다카토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새 하루가 기쁘게 찾아오는 까닭
 [만화책 즐겨읽기 72] 쿠마쿠라 다카토시, 《샤먼 시스터즈 (4)》



 돈이 넉넉하게 있으면 내 삶을 한결 넉넉하게 일굴 수 있는지 잘 모릅니다. 돈이 빠듯하거나 벅차면 내 삶은 한결 어둡거나 메마른지 잘 모릅니다. 돈이 넉넉하지 않거나 모자라다면, 아무래도 몸을 쓰는 일이 많거나 늘 몸을 쓰면서 살아가겠지요. 돈이 넉넉하거나 많다면, 아무래도 스스로 몸을 쓰기보다는 남한테 일을 맡긴다든지 몸이 수월할 만한 길을 찾겠지요.

 서른일곱 해를 살면서 몸을 덜 써도 된다거나 몸이 수월할 만한 일을 해 본 적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으레 몸을 쓰는 일을 하고, 노상 몸을 쓰며 자전거를 몰거나 두 다리로 걷습니다. 책방마실을 하면서 가방 가득 책을 채울 뿐 아니라 끈으로 두어 덩이 책짐을 만들 때에도 한두 시간 남짓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거나 버스·전철을 타고 집으로 왔어요.

 빗소리 듣는 새 보금자리에 드러누워 꿈을 꿉니다. 네 식구가 이제부터 느긋하게 두 다리 뻗고 집 옮길 걱정 없이 지낼 새 보금자리에서 첫잠을 자면서 꿈을 꿉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그치지 않는 숱한 일을 치르느라 몸이 무거우니 마음 또한 지치는데, 이렇게 지치더라도 부디 내 마음을 잃거나 놓치지 말자고 꿈을 꿉니다.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에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 만큼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 모두 사랑으로 따뜻한 나날을 누리자고 꿈을 꿉니다.

 꿈을 잊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나는 꿈을 먹는 사람이지 돈을 먹는 사람이 아닌 줄 알자고 생각합니다. 나는 싱그러이 웃으면서 예쁜 손길을 나눌 사람이지 얼굴 찌푸리면서 거친 말을 쏟을 사람이 아닌 줄 깨닫자고 헤아립니다. 나는 씩씩하게 살아갈 사람이지 힘알이 없이 축 처질 사람이 아닌 줄 알아차리자고 되뇝니다.


- “알고는 있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요?” “시즈루?” “사호 언니의 자세는 바람직하긴 해도, 실제로 그런 입장이 되면, 그땐 그렇게 행동하기 힘들 거예요.” “…….” (23쪽)
- “사호 언니는 그쪽을 보려고 노력한 나머지, 그물 같은 것에 걸려들어서 주위를 못 보게 된 건 아닐까요. 하지만 이쪽을 보지 못해서는 그쪽도 보지 못해요.” (30쪽)


 고양이 한 마리 죽습니다. 이른아침에 고양이 한 마리 돌울타리 한켠에 조용히 쓰러져 죽은 모습을 봅니다. 고양이는 제 목숨이 다한 줄 깨닫고는 사람들 눈에 잘 뜨이지 않거나 다른 짐승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자리로 찾아들었는지 모릅니다. 아마 여느 길짐승이나 멧짐승이나 들짐승도 이처럼 조용히 제 무덤자리를 찾아갈 테고, 마지막 힘이 빠지고 나면 흙에 몸뚱이를 누인 채 흙벌레가 하나하나 살점을 뜯어 온몸이 흙과 하나되도록 하겠지요.

 빗방울 하나둘 듣는 저녁 무렵에 연장을 챙깁니다. 아침과 낮에는 우리 보금자리를 손질하느라 고양이 주검을 어찌할 겨를이 없습니다. 아니, 깜빡 잊었다가 다른 사람이 고양이 주검을 알아보았을 때에 비로소 다시 생각했습니다.

 어디에 묻어야 좋을까 어림합니다. 마땅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집 뒤꼍 감나무 자리는 그늘이 질 테고, 모과나무 옆은 볕이 잘 들지만 도서관 터가 될는지 모르니 안 되고. 마침 밀차로 빈터를 넓게 다진 뒤라서 팔 만한 흙이 마땅하지 않지만, 볕이 제법 드는 돌울타리 한쪽 조금 굵은 나무 옆자리가 좋겠구나 싶습니다. 삽도 호미도 없어 쇠스랑으로 어렵게 흙을 파고 돌을 고릅니다. 차갑게 식은 고양이 주검을 내려놓습니다. 앞발을 펴고 싶으나 벌써 딱딱하게 굳었기에 오른발은 앞으로 뻗친 모습 그대로 내립니다. 흙을 덮고 돌로 누릅니다. 돌이 무겁지 않을까 싶으나, 이 돌을 치우며 고양이 주검을 파낼 다른 짐승은 없겠지요. 밤새 조금조금 내리는 빗방울은 흙으로 돌아간 고양이한테도 천천히 스며들겠지요.


-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생물이란 다들 특이한 거예요. 단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고 그것이 각각의 재산이죠. 그리고 그 까닭에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도 생기는 거고요. 우리들을 싫어하는 것도 당신의 소중한 감정. 당신의 체질을 이용해 장난을 친 것도 동료들의 순수한 감정.” (56쪽)
- ‘시골이라 영은 많지만, 할아버지는 공존하는 법을 알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셨다. 하지만 마을 중심 쪽의 것들은 위험해 보여서 방심할 수가 없었다. 너무 들떠 있으면 당하기 쉬운 건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110쪽)



 잠든 아이들 이불을 여미면서 팔을 살며시 들 때에는 보드라이 움직입니다. 숨이 붙은 목숨이요 예쁜 핏덩이일 테니까요. 숨이 빠지고 피돌이가 멈춘 몸뚱이는 팔이며 몸이며 뻣뻣합니다. 이제 더는 움직이지 못하니까요.

 살아숨쉬니까 이렇게 보드라우면서 말랑말랑하군요. 싱그러운 숨이 펄떡펄떡 뛰니까 이토록 따스하면서 포근한 몸뚱이로군요. 밥을 먹으며 기운을 얻는 목숨이고, 사랑을 먹으며 꿈을 얻는 몸뚱이라 하겠지요.

 이 아이들은 아이들 나이를 기쁘게 누리면서 푸름이로 자라고, 푸름이에서 젊은이로 자라다가는, 저마다 저희 깜냥과 꿈과 뜻에 맞는 새로운 길을 찾아 새로운 삶터를 일구리라 생각합니다. 어버이라 하는 사람은 어버이 스스로 제 깜냥과 꿈과 뜻이 무엇인가를 옳게 느끼며 받아들여서 참다우면서 착하게 살아야 하고, 이러한 삶을 온몸과 온마음으로 아이들한테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로 가르치지 못하고, 책으로 가르치지 못하며, 학교로 가르치지 못해요.

 가만히 보면 누구나 이와 같은 얼거리를 잘 알거나 느낄 만한데, 정작 참다이 살거나 착하게 지내는 어른은 퍽 드물어요. 고단한 나날이라 잊을 수 있어요, 바쁜 일에 휘둘리느라 참답거나 착하게 살려 하지 않을 수 있어요. 돈에 메말라 그만 예쁜 삶하고는 동떨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은 밥을 먹어 몸을 살찌우기만 해서는 살아간다 할 수 없는 목숨이에요. 사람은 사랑을 먹으며 마음을 살찌워야 비로소 두 다리로 내 땅에 선 목숨이라 할 만해요.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사랑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면서 사랑을 받아먹습니다. 꿈을 살찌우면서 사랑을 얻고, 사랑을 보살피면서 꿈이 새로 피어납니다.


- “할머니의 감기가 좀더 오래가면 엄마가 더 오래 있어 줄까? 헤헤헤.” 퍼억! “아. 아프잖아. 왜.” “네가 지금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을 했는지 알아? 미즈키! 아냐고!” (117∼118쪽)
- “할머니, 벌써 일어나셔도 괜찮아요?” “그래, 너희가 걱정해 준 덕에 다 나았단다.” “무리하지 마세요.” “알았다.” (138쪽)


 쿠마쿠라 다카토시 님 만화책 《샤먼 시스터즈》(대원씨아이,2005) 넷째 권을 읽습니다. 온누리를 감도는 두 갈래 넋을 느끼거나 볼 줄 아는 아이들한테는 어떤 일이 가장 마음 쓰일 만한 일이라 할는지 곰곰이 돌아보면서 읽습니다. 아이들은 ‘죽고 나서 온누리를 떠도는 넋’을 보거나 느낄 줄 아니, 이들 넋을 보거나 느끼는 일에 가장 마음을 쓰면서 살아갈까요. 이들 넋을 보거나 느끼는 일이 아이들한테 가장 대수로우면서 가장 커다란 일이 될까요.

 나한테는 내 삶에서 무엇이 가장 마음을 쓸 만한 일인가 곱씹습니다. 책, 새 보금자리, 글, 살림돈, 이런저런 것들에 이모저모 마음을 쓸 수 있을 텐데, 책한테 마음을 쓸 수 있다 하더라도 가장 마음을 쓸 만한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새 보금자리이든 글이든 살림돈이든 이와 매한가지예요. 내가 가장 마음을 쓸 만한 대목이라면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옆지기와 아이들입니다. 옆지기와 아이들한테 가장 깊고 넓게 마음을 쓰면서 내 책들과 새 보금자리한테 마음을 기울일 수 있어야 아름답고 좋아요.


- “이런 얘기가 있어. 어느 마을에서 아이들이 뱀을 잘라 죽인 뒤 꼬치에 꿰어서 놀고 있었지. 그걸 지나가던 촌장님이 본 거야. 촌장님은 그걸 보고 굉장히 무서워했어. 그때 뱀에 홀린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해? 촌장님이야. 우리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친다면 보는 일도 씌는 일도 없을지 몰라.” (171∼172쪽)
- “그렇지만 꼭 그런 견해만 있는 건 아니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는 게 어떨까요? 저는 이렇게 당신과 얘기할 수 있어서 기쁘니까요.” (62쪽)



 참 맞는 노릇이지 하고 느끼면서 다시금 생각합니다. 새벽녘 홀로 조용히 일어나 곰곰이 돌아볼 때에는 이렇게 맞는 생각을 한다 할 텐데, 머잖아 동이 트고 또 새 하루를 맞이하면서 새 보금자리를 이래저래 손질하거나 고치는 일을 붙잡아야 할 때에는 옆지기랑 아이들 삶을 또 잊거나 옆으로 밀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다짐을 되풀이하고 뉘우치기도 되풀이합니다. 꿈도 되풀이하고 사랑도 되풀이합니다. 삶은 언제나 되풀이하며, 목숨 또한 한결같이 되풀이해요.

 고이 살아가려는 내 넋이 고이 살아가는 내 아이가 됩니다. 예쁘게 꿈꾸려는 내 얼이 예쁘게 꿈꾸려는 내 아이가 돼요. 따사로이 사랑하려는 내 살림살이가 따사로이 사랑하려는 내 아이 살림살이가 되겠지요. 기쁘게 찾아온 새 하루를 기쁘게 누리고 싶습니다. (4344.10.22.흙.ㅎㄲㅅㄱ)


― 샤먼 시스터즈 4 (쿠마쿠라 다카토시 글·그림,문준식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5.7.15./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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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집 벽종이 붙이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10.21.


 네 식구 새로 살아갈 시골집 작은방 한 곳에 벽종이를 붙입니다. 얼마 안 되는 자그마한 방인데, 이 방 하나에 벽종이를 붙이느라 하루해가 넘어갑니다. 벽종이를 붙이는 품보다 낡은 벽종이를 긁어서 떼느라 훨씬 오래도록 더 많이 품을 들여야 합니다.

 하룻밤 묵히고 이듬날 새벽에 들여다봅니다. 저녁에는 좀 들뜬다 싶던 자리가 하룻밤 자면서 제법 가라앉습니다. 썩 볼 만하지 않으나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어제 작은방 하나를 벽종이 붙여 보았으니 오늘은 곁달린 작은방에도 벽종이를 잘 붙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곁달린 작은방은 보꾹까지 해야 할 텐데요. 곁달린 작은 방에는 나무로 얹은 시렁까지 있습니다.

 오늘은 아침 여덟 시에 삽차가 와서 헌 웃집을 헐기로 했습니다. 헌 웃집을 헐고 바닥을 판판하게 골라 도서관 자리로 삼을 생각입니다. 이 일을 얼른 마무리지어야 책짐과 남은 살림을 고흥 시골자락에 풀어놓을 수 있습니다. 옆지기 어머님과 아버님이 함께 오셔서 일손을 많이 거들기 때문에, 혼자 했으면 한 달은 넉넉히 걸릴 만한 일을 며칠 만에 해냅니다. 오래 빈 집을 손질하느라 아이들한테 살가이 말마디 건넬 겨를을 내지 못합니다.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 얼굴을 들여다볼 때에만 예쁘다 여기지 말고, 말똥말똥 눈을 뜬 낮 동안 예쁘게 얼싸안을 수 있자면, 내 몸을 어떻게 건사해야 좋을까요. 제 어버이가 다른 일로 바빠 저희를 들여다보지 못하는구나 하는 아이들 자리에서 나를 바라본다면 내가 얼마나 심심하고 따분한 어버이인지 느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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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숲’을 마련하는 책터를 꿈꾸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10.13.



 누군가는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돈이나 땅이 있어서, 금세, 아니 처음부터 따사로우며 넉넉한 ‘집숲’을 마련하거나 누리겠지요. 가장 아름답고 좋은 일이에요. 모든 사람이 가장 아름다우면서 좋게 살아갈 때가 참 즐거우리라 느껴요. 그러나, 둘째로 좋거나 막째로 좋다 하더라도, 이 길 저 길 거치거나 에돌면서 차근차근 ‘집숲’을 일굴 수 있으면, 이대로 또 예쁘면서 사랑스러우리라 믿어요. 우리 네 식구부터 좋은 마을자락 한켠에 깃들면서 고운 사람들 이웃으로 맞이하는 착한 일꾼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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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센터 시작합니다
쇼도 가오루 지음, 박재현 옮김, 야마다 우타코 그림 / 가치창조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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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이 살아가며 즐거이 읽기
 [어린이책 읽는 삶 11] 쇼도 가오루, 《심부름센터 시작합니다》(가치창조,2000)



- 책이름 : 심부름센터 시작합니다
- 글 : 쇼도 가오루
- 그림 : 야마다 우타코
- 옮긴이 : 박재현
- 펴낸곳 : 가치창조 (2010.4.20.)
- 책값 : 8500원


 가을이 깊어지면서 나뭇잎이 하나둘 집니다. 찬바람이 싱싱 불면서 들판과 밭자락에서 끝없이 자라려 하던 들풀이 수그러듭니다. 앙상한 나무는 잎을 모두 떨군 채 겨울나기를 할 테고, 들풀이 수그러든 들판과 밭자락은 이들 들풀이 거름이 되고 이불이 되면서 겨울살이를 하겠지요.

 날이 쌀쌀하니 소매 긴 옷을 챙겨 입습니다. 찬바람에 따라 긴옷입니다. 그런데, 여느 도시에서는 한여름에도 긴옷을 입곤 합니다. 시골에서 도시로 볼일을 보러 마실을 해야 할 때에도 긴옷을 챙겨야 합니다. 버스이든 기차이든 전철이든 온통 에어컨을 펑펑 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와글와글 북적이는 전철이나 버스에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다면 숨통이 막힐 테지요. 그렇지만 언제부터 왜 자동차에 에어컨을 달아야 했을까 궁금합니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쐴 수 없는 노릇인가요. 지난날에는 기차도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쐬었어요. 전철도 땅밑을 오가지 않고 땅위를 달릴 때에는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아들였어요.

 가만히 돌이키면, 자동차가 부쩍 늘어나면서 에어컨을 써야 합니다. 자동차가 부쩍 느는 바람에 버스를 타며 창문을 열면 매캐한 바람이 잔뜩 몰려들어 재채기가 나옵니다. 자동차를 모는 사람 또한 창문을 열기보다는 에어컨을 틀곤 합니다. 내 자동차를 비롯해 숱한 자동차가 내뿜는 매캐한 배기가스를 들이마시고 싶지 않으니까요.

 여름날 면사무소를 찾아간다든지, 은행에 들른다든지, 우체국에 가 본다든지, 무슨무슨 기관에 발을 디딘다든지 하면, 바깥하고는 너무 다른 차가운 바람 때문에 오슬오슬 떨곤 합니다. 그예 철을 잊습니다. 고스란히 날을 잊습니다.

 바깥 볼일을 마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시골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합니다. 철을 잊은 터에서 일하는 사람한테는 어떤 철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날을 잊는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날을 누릴까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따순 바람과 함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살아갈 목숨을 텐데, 사람은 따순 햇살과 함께 차가운 물을 마시며 살아갈 목숨일 텐데, 철도 날도 잊는다면 무엇을 아는 목숨으로 살아낼 만한지 모르겠습니다.


.. 이름 있는 고전적인 자동차는 아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좋아했던 부품을 모아서 만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자동차다 … “너, 조수가 되어 일해 줄래?” “너라고 말하지 말아요. 나는 ‘미카’예요. 이름으로 제대로 불러 주세요.” …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광택, 녹슴, 곰팡이 예방’이라고 쓰여 있었어. 성분은 밀랍, 밍크오일, 부처꽃, 괭이밥의 이파리, 푸조나무의 껍질, 물잠자리의 날개 ..  (5, 32, 57쪽)


 즐거이 살아가는 사람은 즐거이 나누는 사랑입니다. 바삐 살아가는 사람은 바쁜 나머지 잊거나 잃는 사랑입니다. 즐거이 살아가는 사람은 즐거이 읽는 책입니다. 허둥지둥 살아가는 사람은 허둥지둥 앎조각을 쌓거나 자격증을 거머쥐려고 읽는 책입니다. 즐거이 살아가는 사람은 고마이 먹는 밥입니다. 돈벌이에 매여 살아가는 사람은 돈벌이할 틈을 쪼개느라 밥맛을 하나하나 차분히 느낄 틈이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자면 서로 즐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갈 사람은 바쁠 수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싶기에 꿈 한 자락 즐거이 나눕니다. 서로 사랑할 틈이 없기에 그만 매몰차거나 딱딱한 몸짓과 말투가 되고 말아요.

 아이들이 반드시 대학교에 가야 한다면 아이들 모두 대학교에 갈 수 있도록 대학교 문이 열려야 합니다. 아이들이 굳이 대학교에 가야 하지 않는다면 대학교 문턱은 높아도 됩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이 나라는 아이들이 굳이 대학교에 가야 하지 않아요. 대학교 문턱이 너무 높거든요. 입시지옥 굴레가 너무 모질고, 대학교 배움값이 지나치게 비싸요. 이런 나라에서는 대학교는 부질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문턱이 낮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낌없이 마음을 여는 이웃이랑 사귀고, 허물없이 마음을 열어젖힌 동무랑 사랑을 나눌 노릇이에요. 문턱 높은 이웃하고는 사귀지 못해요. 허물 많이 뒤집어쓰려는 동무랑 사랑을 나누지 못해요.


.. 꿈을 꾸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꿈이 샘물처럼 솟아오른다고 해요. 먹어도 먹어도 또 좋은 꿈이 쌓인대요 … “엄마는 늘 바쁘니까 귀찮게 굴면 안 돼라고 말해요. 나도 할 수 있는 심부름이 있는데도요.” ..  (22, 33쪽)


 곡식은 좋은 밥입니다. 열매는 좋은 살입니다. 풀잎은 좋은 물입니다. 스스로를 기꺼이 내주어요.

 익은 벼는 스스럼없이 고개를 숙이면서 온몸을 밥으로 내줍니다. 무르익은 열매는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리면서 온몸을 맛난 살로 내줍니다. 갓 돋은 풀잎은 싱그러운 빛을 뿌리면서 고운 내음 번지는 푸른 물을 내줍니다.

 사랑이면서 삶이에요. 삶이면서 사랑이에요. 흙은 누구한테나 밥을 내줍니다. 햇살은 누구한테나 밥을 먹입니다. 물은 누구한테나 밥을 베풉니다. 바람은 누구한테나 밥을 차려 줍니다.

 이야기책 《심부름센터 시작합니다》(가치창조,2000)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자동차 하나를 온사랑으로 보듬는 젊은이는 마을 이웃을 따사로이 사랑하는 길을 걸으면서 살림을 꾸립니다. 돈을 더 많이 벌려고 바둥거리지 않아요. 혼자 돈을 거머쥐려고 버둥거리지 않아요. 젊은이 삶을 아끼려고 애씁니다. 젊은이 나날을 사랑하려고 힘씁니다.


.. 장난감 가게에 들어가서 나는 아이코, 하고 생각했다. 주위에는 유모차를 밀고 있는 엄마나 아이들의 손을 잡은 아빠로 가득했다. 여자 아이는 장난감도 보지 않고, 그런 가족들의 모습을 부러운 듯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갈까?” “네.” … 나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를 지켜봐 준 이가 있었다니! ..  (29, 69쪽)


 다만, 젊은이는 모든 사랑을 빈틈없이 갖추지 않습니다. 젊은이 한 사람이 온갖 사랑을 빠짐없이 건사하지 않아요. 아직 틈이 많아요. 아직 많이 모자라요. 그래, 그러니까 젊은이입니다. 비고 모자란 틈이 많기에 젊은이입니다. 천천히 배우고 천천히 깨달으며 천천히 사랑하기에 젊은이예요.

 새롭게 배우기에 젊은이입니다. 고맙게 맞아들이기에 젊은이입니다. 해맑게 어깨동무하기에 젊은이예요.

 아직 젊은 한 사람은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 같은 슬기가 있을 턱이 없습니다. 아직 젊은 두 사람은 쉰 해 예순 해 일흔 해를 살아온 할매나 할매처럼 깜냥을 갈고닦을 턱이 없습니다. 스무 살 젊은이는 스무 살 젊은이답게 여러 가지를 합니다. 스물두 살 젊은이는 스물두 삶 젊은이답게 여러 사람을 만납니다.

 여러 일을 하고 여러 사람을 마주하면서 제 얼굴과 눈길과 마음을 가다듬는 젊은이예요. 젊은이는 “심부름집을 꾸리”면서 사랑을 배웁니다. 심부름집 일을 하면서 사랑을 느낍니다.


.. “태어나는 많은 것들에게는 봄바람과 빛이 필요하거든.” … “나는 젊은 시절에는 늘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이 세상에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에 와서, 오히려 시간이 넉넉한 것처럼 생각이 드네요.” ..  (70, 84쪽)


 쇼도 가오루 님 글과 야마다 우타코 님 그림이 보드랍게 어우러진 이야기책 《심부름센터 시작합니다》는 아주 대단한 삶을 담지 않습니다. 아마 이 책 비슷한 이야기는 어렵지 않이 다른 데에서도 찾아 읽거나 들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꽤 되리라 생각해요.

 이야기책 《심부름센터 시작합니다》는 젊은 한 사람이 젊은 한 사람대로 스스로 제 삶을 사랑한 줄거리를 보여줍니다. 이 마을 이 사람은 이 마을 이 사람대로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저 마을 저 사람은 저 마을 저 사람대로 당신 이야기를 들려줘요.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사랑을 길어올립니다. 다 다른 이웃들은 다 다른 사랑을 오순도순 나눕니다. 다 다른 사랑은 다 다른 삶터에서 다 다른 무지개옷을 입으며 가만히 흙에 뿌리내려 새잎을 냅니다. (4344.10.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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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ferry 2011-10-19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둘러보아요. 된장님의 서재에서는 긴장이 되요. 쉽게 쓰던 말들도 조심하게 되고......얼마나 많은 우리 말을 잊어가는 중인지 깨닫게 되기도 하고요, 다정한 말투지만 그 안에 단단한 확신과 진정성을 담기위해 꾹꾹 눌러쓴 된장님의 비평을 읽고 있노라면 왠지 재능없고 노력을 게을리 하는 작가이거나, 무지한 독장의 입장이 되어 얼굴이 화끈거리고요. >~<::
동시에 된장님의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들이 제 삶에 건강한 자극을 줍니다.:-)

파란놀 2011-10-23 05:11   좋아요 0 | URL
즐거이 살아가며 즐거이 읽고
즐거이 나눌 수 있으면 돼요~ ^^
 



 딱딱한 신


 딱딱한 아스팔트·시멘트·대리석·쇠판만 밟으며 살아갈 서울이나 큰도시인 탓에 모두들 딱딱한 신을 꿰고 딱딱한 눈길·얼굴·몸짓이 되고 마는군요. 흙을 밟으면서 살아간다면 말랑말랑한 신을 꿰며 발바닥이 단단해지고 몸·손·마음 또한 단단해져요. 맨발로 흙을 박차요. 서울사람은 딱딱한 신에 말랑말랑한 발을 감추고는 서로를 등치거나 들볶는 굴레에서 안쓰러이 허우적거려요. (4344.10.1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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