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쟁이 아치 1 : 앗! 오줌 쌌어 - 실수로 오줌 싼 아이를 위한 책 개구쟁이 아치 시리즈 1
기요노 사치코 글.그림, 고향옥 옮김 / 비룡소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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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책을 만드나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5] 기요노 사치코, 《개구쟁이 아치》(비룡소,2009)



 1985년에 ‘논탕’ 이야기가 처음으로 한국말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논탕’을 살려서 내놓은 그림책이 아니라 ‘논탕’을 ‘곰돌이’로 바꾼 책입니다. 이른바 《꾸러기 곰돌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어요. 《꾸러기 곰돌이》를 처음 펴낸 곳은 웅진출판사. 나중에 세상모든책이라는 곳에서 다시 나오는데, 1970년대에 일본에서 나온 ‘논탕’ 그림과 그림결과 이야기 모두 훔쳐서 내놓은 틀에서 그닥 달라지지 않습니다. 2000년대 중반에 ‘개정판’이라는 이름을 달고 줄거리와 배경과 주인공 또래동무를 다르게 그리기는 했지만, ‘논탕 느낌’과 ‘논탕 그림결’은 그대로입니다.

 이 그림책들을 보며 생각합니다. ‘웅진 곰돌이’이든 ‘세상모든책 곰돌이’이든 도둑질입니다. 바보스럽고 슬픈 짓입니다. 그러나 ‘갓빠에우센’을 ‘새우깡’으로 슬그머니 고쳐서 팔아도 잘만 사서 먹는 한국사람입니다. ‘십육차’를 ‘십칠차’로 바꿔서 팔더라도 거리끼지 않는 한국사람이에요.

 이 나라 어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꾸러기 곰돌이》를 만들었을까요. 《꾸러기 곰돌이》에 글을 쓴 남미영 님과 그림을 그린 오명훈 님은 아이들한테 무슨 꿈과 넋과 사랑을 물려주고 싶었을까요. 도둑질을 하는 그림책을 내놓으면, 이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이 무엇을 느끼거나 헤아리거나 깨달을까요.

 디자인을 살짝 바꾸면 도둑질이 아닌 셈일까 궁금합니다. 왼귀 접힌 토끼를 오른귀 접힌 토끼로 그리면 도둑질이 아닌 셈인지 궁금합니다. 고양이를 곰으로 바꿔 그리면 도둑질이 아니라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곰을 돼지로 바꿔 그리면 이 또한 도둑질이 아니라 해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장만한 그림책을 선물받아 읽는 아이들은 ‘좋은 줄거리’만 읽으면 그만이지 않습니다. 그림책을 읽는 아이들은 ‘지식과 정보만 받아들여’도 되지 않습니다. 그림책을 읽으며 마음을 살찌울 아이들은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넋과 말과 꿈과 사랑과 믿음을 물려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림책 하나 빚어 아이들 앞에 내놓는 어른들은 따사로운 사랑과 너그러운 믿음을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 앞에서 떳떳해야 합니다. 아이들 앞에서 아름다울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웃고 울어야 합니다. 아이들이랑 신나게 어울리면서 노는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한테 무엇을 물려주려는 마음인지 돌아보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야 해요.

 어쩌면 마땅히 좋은 그림책이 옮겨지지 않았으니 슬그머니 베끼거나 훔쳐서 ‘창작’ 그림책을 내놓는다 둘러댈 수 있을 텐데, 창작하는 결이 좀 어수룩하거나 모자라더라도 베끼거나 훔치는 일은 좋지 않습니다. 배우거나 받아들이는 일이랑 베끼거나 훔치는 일은 달라요. 배우거나 받아들이는 사람이 한두 대목만 슬쩍 바꿔서 ‘내 것’인 듯 내놓는 일은 올바르지 않아요.

 더 깊이 헤아린다면, 일본 창작 그림책 ‘논탕’을 그린 기요노 사치코 님 또한 누군가한테서 그림을 배웠을 테고, 어린 나날부터 수많은 사람들 좋은 그림책을 널리 보았겠지요. 기요노 사치코 님한테 좋은 창작 그림책 넋을 불어넣은 다른 그림쟁이들 또한 먼 옛날 다른 그림쟁이들 좋은 그림을 두루 보면서 아름다운 넋을 북돋았을 테고요.

 오랜 나날에 걸쳐 돌고 도는 넋이자 슬기입니다. 숱한 사람 손길을 거치며 갈고닦는 얼이자 빛줄기입니다. 그러니까, 새로 태어난대서 ‘창작’입니다. 내 삶을 내 나름대로 새로 바라보며 누리기에 ‘창작’이에요. 베끼는 일은 흉내내기입니다. 훔치는 일은 도둑질입니다. 베끼거나 훔치는 까닭은 땀흘리지 않고 돈을 많이 벌고 싶기 때문입니다. 눈먼 돈을 벌어들여 배부르고 싶기 때문이에요. 귀먼 돈을 거두어들여 이름값을 높이고 싶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이 사랑스레 배우고 너그러이 가르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괘씸하게 베끼거나 멍청하게 훔치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지 않아요. 아이들이 돈을 더 많이 벌어들이는 일이 반갑지 않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며 알맞게 돈을 벌면 좋겠어요. 참다이 어깨동무하면서 아이들 저희 삶에 쓸 만큼 돈을 다스리면 기쁘겠어요.

 더 똑똑해질 까닭이 없어요. 꾸밈없이 따뜻하고 해맑게 포근하면 돼요. 좋은 밥과 좋은 꿈과 좋은 사랑으로 하루하루 빛날 수 있으면 돼요. 《개구쟁이 아치》가 2009년부터 제대로 나오는 만큼, 이제라도 《꾸러기 곰돌이》는 떳떳이 고개숙이며 물러설 줄 알면 좋겠어요. 아픈 생채기로 남아 천천히 아물며 새살이 돋도록 이끌면 반갑겠어요. (4344.11.2.물.ㅎㄲㅅㄱ)


― 개구쟁이 아치 (1) 앗! 오줌 쌌어 (기요노 사치코 글·그림,고향옥 옮김,비룡소 펴냄,2009.7.21./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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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11-03 19:47   좋아요 0 | URL
ㅎㅎ 넘 슬픈 현실이네요.구지 일본책을 저리 베낄필요가 있을까 싶군요.저걸보니 갑자기 아이디어 회관의 SF책들이 생각납니다.이거 역시 일본책을 고대로 베낀것인데 삽화마저도 그래도 베꼈지요.뭐 이책이야 70년대니 그렇다고 해도 꾸러기 곰돌이는 좀 너무하네요.그나저나 저도 꾸러기 곰돌이 몇권을 친척 아이에게 사준 기억이 나네용^^

파란놀 2011-11-04 04:35   좋아요 0 | URL
많은 사람들이 예전부터 알던 이야기인데
제대로 비평이나 비판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뻔히 알면서도 제대로 비판하지 않으니,
더구나 '웅진' 같은 곳이 이렇게 했고,
이 그림책 글을 쓴 사람과 그림을 그린 사람들이
하는 대외활동이 있기에...
이 나라는 아주 서글픕니다.
 



 네 해만에 비닐 뜯긴 만화책


 오제 아키라 님이 그린 만화책 《술의 장인 클로드》 1권을 읽고 2권째 읽는다. 이 만화책은 2007년에 처음 나왔다. 그러니까 내가 산 만화책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비닐이 안 뜯긴 채 있던 셈. 2007년에 나왔으면서 용케 판이 안 끊어졌다 할 만해서 놀랍다. 2쇄를 찍지 못했으니 아직 남았다 할 텐데, 곰곰이 살피면, 너덧 해 묵혀 읽히는 책이란 만화책뿐 아니라 글책이나 그림책이나 사진책이 참 많다. 갓 나올 무렵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읽히지 못하는 책이 얼마나 많은가. 처음 나올 때에 보도자료이니 홍보자료이니 하면서 200권 남짓 이곳저곳에 뿌려질 텐데, 보도자료나 홍보자료라는 이름이 붙은 책을 받고 나서 차근차근 기쁘게 읽어 주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신문·방송·잡지 기자는 새로 나온 책을 거저로 받으면서 알뜰히 읽어 주려나. 알뜰히 읽고 나서 아름답다 느낀 책을 아름다이 느낌글로 적바림하고, 어딘가 아쉽다 여긴 책은 무엇이 어떻게 아쉬운가 하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밝혀 주려나.

 가슴으로 읽어 가슴으로 아로새기는 책이다. 눈알을 굴려 글줄을 읽는다지만, 눈알을 거쳐 내 가슴이 움직여야 책을 읽는다. 마음으로 와닿지 않는 줄거리라면 기꺼이 읽는 책이 되지 못한다. 책을 내놓는 사람은 온 사랑을 가득 담을 노릇이요, 책을 맞아들여 읽는 사람은 온 사랑을 넉넉히 누릴 노릇이다.

 아마 열 해나 스무 해만에 비닐 뜯기는 만화책이 있겠지. 헌책방에서 장만하며 서른 해만에 비닐 뜯던 만화책이 있다. 참말 만화책뿐인가. ‘드림’ 도장 찍힌 채 서른 해나 마흔 해를 아주 정갈하게 살아남은 채 헌책방으로 흘러드는 책이라면 서른 해나 마흔 해만에 겨우 첫 쪽을 넘긴다 할 만하다.

 어떤 마음일까. 서른 해 동안 따사로운 손길 기다리던 마음은 어떠할까. 이렇게 오래도록 따사로운 손길 기다리는 책이 있고, 내 곁에는 내가 마음을 제대로 읽으면서 어깨동무하기를 기다리는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가 있겠지. 책을 마음으로 읽듯, 살붙이도 이웃도 동무도 마음으로 읽으며 사귄다. 일은 마음을 바쳐 하고, 놀이 또한 마음을 바쳐 즐긴다. 밥 한 그릇 마음을 쏟아 누리고, 걸레질과 빨래 모두 마음을 바쳐 한다. 내가 좋아할 아름다운 삶을 씩씩하게 되새기자. (4344.11.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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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바지 빨래


 낮 네 시 이십 분 즈음 자전거를 몰아 면내 우체국으로 간다. 돈을 넣고 빨래집하고 몇 군데 가게에 들른다. 우리 살림집 손질한 일꾼들 가게에 들러 영수증 다 되었느냐고 여쭈는데 몇 차례째 들르는데 아직 만들지 않았단다. 말로는 얼른 적어서 갖다 준다 하면서 벌써 며칠째인가. 오늘은 끝방 벽종이를 바르려 했으나 부엌 싱크대 공사 마무리하러 오는 바람에 부엌 살림을 치워 건사하다 보니 너무 바빠 천장에 붙일 벽종이만 겨우 자른다. 보일러 돌려 따스한 물 나올 때까지 머리를 감고 기저귀 빨래를 한다. 물이 웬만큼 따스해진 다음 첫째 아이를 부른다. 이제 첫째 아이는 부르기만 해도 뽀르르 달려와서 스스로 옷을 벗는다. 일손이 얼마나 크게 줄어든지 모른다. 이렇게 착하고 스스로 잘하는 아이인데. 아이를 큰 통에 들여보내 물놀이를 시키고 싶으나, 날마다 이렇게 하자면 내가 너무 힘들어 하루 걸러 하루만 길게 물놀이를 시키고, 하루는 살짝 시키기로 한다. 아이가 씻은 물로 빨래를 헹군다. 빨래를 다 마친 뒤 통을 씻고 따순 물을 다시 받는다. 이제 둘째를 씻긴다. 둘째를 씻길 때에는 먼저 작은 바가지에 물을 담아 낯과 머리와 손발과 몸을 한 번 닦은 다음 통에 담근다. 여섯 달째 접어들려는 둘째 아이는 통에 살짝 앉혀도 잘 논다. 물에 담그면 얼굴부터 확 핀다. 두 아이 옷가지까지 빨래하고 나서 나온다. 빨래를 방 안팎에 넌다. 아침부터 빨래해서 말린 옷가지를 그러모아 하나하나 갠다. 첫째 아이가 제 치마랑 둘째 기저귀싸개를 척척 갠다. 제법 맵시 나게 갠다. 그러고는 스스로 옷장에 척 하고 쌓는다. 수두룩한 기저귀를 하나씩 개는데, 잘 씻고 나와 놀던 둘째 아이가 뒤집기를 해서 엎드린 채 뽀지직 소리를 낸다. 똥을 누는구나. 기저귀 개기를 멈추고 아이를 눕힌다. 누워서 똥을 마저 누렴. 조금 기다린다. 바지 앞쪽이 노랗게 물든다. 바지 빨래 새로 나오는구나. 이제 다 누었나 하고 생각하며 아이를 안고 씻는방으로 다시 간다. 바지를 벗긴다. 노란 똥으로 흥건하다. 밑을 씻기려는데 자꾸 발버둥을 친다. 이 바람에 사타구니에 묻은 똥물이 웃도리 밑자락에 묻는다. 녀석아, 웃도리는 새로 입혔는데 몇 분이나 되었다고 다시 빨래거리로 만드니. 쉴 틈 없는 손바닥은 꺼끌꺼끌하다. 온몸에서 욱씩거리는 소리가 나지만 둘째 엉덩이를 마저 닦이고 방에 가서 눕힌다. 곧장 똥바지 빨래를 한다. 똥바지랑 똥기저귀랑 똥저고리랑 새 빨래 석 점. 아직 남은 따신 물로 빨래를 하니 노란 물이 잘 빠진다. 새 빨래 석 점을 헹구고 짜서 나온다. 빈자리에 넌다. 개다 만 빨래를 갠다. 아이들이 갓난쟁이일 때 똥을 눈 모습도 사진으로 담아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이 녀석들이 똥을 누고 나서 1초나 2초쯤 서둘러 사진을 찍은 적이 거의 없다. 똥이 엉덩이와 사타구니에 번져 찝찝해 할 생각에 바삐 손을 쓴다. 둘째도 머잖아 낮기저귀 뗄 날을 맞이하겠지. (4344.11.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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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장인 클로드 1 - 술의 참맛
오제 아키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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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로서로 좋아하면 즐겁습니다
 [만화책 즐겨읽기 74] 오제 아키라, 《술의 장인 클로드 (1)》



 시골에서 살아가며 술 한 병 마시기란 참 힘들다. 나는 자가용이 없고 자가용을 몰 생각이 없으니, 시골에서는 술 한 병 마시기가 퍽 고단하다. 두 다리로 걸어서 가장 가깝다 싶은 가게(가장 가까워도 새로 옮긴 시골마을에서는 2.1킬로미터를 가야 한다. 예전 살던 시골마을에서는 가장 가까운 가게가 7.9킬로미터였다)로 가든, 자전거를 몰고 가든 해야 한다. 막상 자전거를 이끌고 면내 가게에 들른다 하더라도 술을 열 병 스무 병 사지 못한다. 이렇게 샀다가는 무거워서 못 들고 오기도 하지만, 애써 나갔다 하더라도 하루 마실 만큼 산다. 산다 하더라도 한 번 마실하며 보리술 두 병.

 면내나 읍내로 마실을 나가서 먹을거리를 장만할 때에는 집식구 먹을 여러 가지를 함께 장만하니까 술병 담을 자리가 없다 할 만하다. 짐꾸러미 짊어지고 자전거를 이끌며 돌아오면 땀이 쏟아지니 한 병쯤 우겨넣을 수 있는데, 어찌 되든 자가용 없는 시골사람이 술 한 병 장만하기란 참 까마득한 노릇이다.

 시골에서는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술을 고르기 까다롭다. 시골 가게에서 갖추는 보리술은 늘 뻔하니까. 읍내 하나로마트쯤 되지 않고서야 이 술 저 술 골고루 두지 않지만, 읍내 하나로마트는 큰도시 웬만한 마트보다 가짓수가 적다. 그러니까, 언제나 뻔한 술 아니고는 마주하기조차 어렵다.

 술이면 다 같은 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술맛을 한 모금 보면, 갈래마다 맛이 참 다르다고 금세 알아챈다. 날마다 밥을 해서 먹을 때에도 날마다 밥맛이 조금씩 다른 줄 느끼는데, 술맛을 못 느낄까. 더구나, 잔뜩 벌여놓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술이 아니라, 한 모금씩 아끼며 천천히 즐기는 술이라 할 때에는.

 그러나, 나는 밥맛이나 반찬맛을 그닥 깊이 느끼지 못한다. 옆지기는 밥맛이나 반찬맛을 나와 견주어 훨씬 잘 느끼거나 알아챈다. 코가 안 좋으니 혀 또한 맛을 옳게 못 느낀달 수 있다. 옆지기는 옆지기 몸으로 받아들이는 먹을거리가 어떠한가를 나보다 더 깊이 헤아리면서 마음을 기울이니, 나보다 한결 잘 느끼거나 알아채리라 본다.


- “나도 이런 사소한 일로 트집잡는 놈이 아니라구. 흥도 깨지고 말야. 하지만 서비스업은 이런 사소한 일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단 말이지.” (27쪽)
- “이 가게를 어떤 가게로 만들고 싶은지, 손님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실례지만 이 가게는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것 같군요.” (139쪽)


 깊은 밤, 잠에서 깬 나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셈틀을 켠다. 첫째 아이가 쉬 마렵다고 징징거릴 때에 깨어서 쉬를 누이고 난 다음, 첫째 아이는 토닥토닥 재웠으나, 나는 잠이 오지 않는다. 글을 쓴다. 하루를 돌아본다. 오늘은 새 보금자리 끝방 벽종이를 바르려고 부산을 떠는데, 부엌 싱크대 놓는 분이 낮밥 무렵 들이닥친다. 전화를 하면 사흘쯤 뒤에 온다 하더니, 아침 열한 시 오십 분쯤 전화했는데 한 시간 만에 찾아온다. 빨래하랴 청소하랴 마당 치우랴, 손수레 바닥에 깔 헌 장판 씻어서 말리랴 끝방 낡은 벽종이 떼랴, 벽종이 떼며 나무창틀에 달라붙어 잘 안 떨어지는 낡은 벽종이조각 긁으랴, 이래저래 바쁜 때에 싱크대 공사 마무리를 한다. 겨우 마무리를 지은 다음 냄새 빠지라고 문을 연다. 부엌 바닥에 쌓은 상자 둘을 끌르고 아래쪽 싱크대에 놓은 물건을 갈무리한다. 이러면서 낮밥거리로 무얼 할까 생각할 틈이 없어, 어제 먹고 남은 미역국에 라면을 끓이기로 한다. 밥이 다 되고 라면이 다 된다. 불기 앞서 먹자고 식구들을 부른다. 큰소리로 여러 차례 부르는데 네 살 딸아이조차 아무 대꾸가 없다. 옆지기랑 아이가 셈틀 앞에 앉아 노래를 듣느라 내가 부엌에서 부르는 소리를 못 듣는가 보다.

 아버지는 삐친다. 아니, 힘이 든다. 생각해 보니, 옆지기랑 아이는 주섬주섬 뭔가를 먹어 배가 안 고픈지 모른다. 부엌 살림 마저 갈무리한다. 끝방 벽종이 긁기를 조금 한다. 천장 길이를 잰다. 이 길이에 맞게 벽종이를 열넉 장 자른다. 풀을 갤까 하며 시계를 보니 네 시 이십 분. 오늘은 우체국에 들러야 하는데 자칫 늦을까 걱정스럽다. 하던 일은 여기에서 멈추고, 얼른 자전거를 끌고 나가려 한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부엌을 들여다보는 두 사람은 그동안 차갑게 식은 불어터진 라면을 본다.


- “할머니, 죄송해요. 저는 일본에 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냥 할머니처럼 꿈속의 일본에만 만족해야 했어요. 지금 일본은 가는 곳마다 온통 시멘트뿐이에요.” (47쪽)
- “좋은 술 만드는 사람, 좋은 술 마신다! 주임님, 좋은 술 만드는 사람! 저녁 반주, 좋은 술 마신다!” (119쪽)



 마음을 다친 때에는 술을 마시지 못한다. 마음이 힘들거나 아플 때에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 이럴 때에는 술이 참 아무렇게나 들어가고 만다. 이때에는 몸을 망가뜨리는 술이 되기에 스스로 술을 꺼린다. 어떻게든 마음을 풀어야 한다. 마음을 풀지 않으면 밥조차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면내 볼일 마치고 돌아와서 빨래를 걷고 새 빨래를 하며 아이들을 씻긴다. 씻고 나서 똥을 눈 둘째 아이 밑을 다시 씻기고 빨래를 새로 더 한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깊어지는데 낮잠 안 자며 떼를 많이 쓰던 첫째 아이는 도무지 잘 생각을 안 한다. 나는 더 버틸 수 없다. 몸이 견디지 못한다. 내가 내 몸을 더 아끼려는 뜻이 아니라, 집안일과 집밖일을 아울러 도맡는 아버지가 쓰러지면 이 보금자리가 어떻게 될까 근심스럽다. 그러니까, 몸이 견디지 못할 때에는 그만 드러눕는다. 몸이 아프면 얼마나 힘든데. 몸이 아파 일을 못하면 아이들 빨래와 밥과 살림은 어떻게 하는데.

 한숨을 쉴 수 없다. 하소연을 할 수 없다. 어머니를 생각한다. 아이들한테 어머니가 될 옆지기를 헤아린다. 옆지기가 그릴 옆지기 어머님을 떠올린다.

 내 어머니는 당신 삶을 어떻게 일구었을까. 두 아이 어머니인 옆지기는 하루 삶을 어떻게 보내는가. 두 아이 어머니가 된 옆지기와 여러 아이를 낳아 돌본 장모님은 어떤 나날이었을까. 옆지기 어머님을 낳아 기른 어머님은 또 어떤 삶이었을까. 내 어머니를 낳고 사랑한 어머니는 또 어떤 모습이었을까.

 즐거울 때나 힘겨울 때나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내가 홀로 홀짝이는 보리술 한두 잔은, 이제 어머니 곁을 떠나 살아가며 나 또한 어머니처럼 아이를 낳아 보살피는 자리에 서며 내 말과 넋과 삶을 차분히 되새기도록 이끄는 징검돌이다. 속풀이 술이 아니고, 질펀한 놀이가 아니다. 절고 전 술이 아니요, 해롱대는 술이 아니다.


- “클로드, 네가 빛나 보인다. 매일 전표를 보고 돈 계산을 하다 보면 꿈 같은 건 꾸고 있을 여유가 없거든.” “지금 비꼬는 거야, 히로? 내가 어리석은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다만, 너의 꿈을 이루기 전에 니혼슈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91쪽)
- “왜 술 만드는 걸 배우고 싶으십니까?” “니혼슈가 좋아서입니다.” “그것뿐인가요?” “그것만으로는 이유가 되지 않습니까?” “제 말은 말도 통하지 않고, 일본인도 술 만드는 건 잘 모르거든요. 미국인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은 통하지 않아도 맛이나 향은 알 수 있습니다. 찐살, 누룩, 모로미 ……. 쿠라엔 많은 향과 맛이 있고, 그것들이 나에게 많은 것 가르쳐 줍니다. 언어 이상으로.” (114쪽)



 좋은 사람으로서 좋은 사랑을 하고 싶다. 좋은 밥을 먹고 좋은 몸을 다스리고 싶다. 좋은 술을 마시며 좋게 즐기고 싶다. 좋은 꿈을 꾸며 좋은 길을 걷고 싶다. 좋은 책을 읽으며 좋은 슬기를 갈고닦고 싶다. 좋은 삶을 좋은 옆지기하고 일구면서 좋은 아이들 좋은 꽃이 피도록 좋은 힘을 내고 싶다. 좋은 마을 좋은 집에서 좋은 일을 하고 싶다.

 값싸게 빚는 술이래서 나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냥 알콜 몇 퍼센트 섞는 술은 달갑지 않고, 화학첨가물이 무엇인지 안 밝히는 소주는 내키지 않다. 그렇다고 한국 보리술이 좋은 보리를 좋은 농사를 지어 얻은 다음 좋게 빚는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한국땅 들판을 보라. 어디에서 보리가 자라는가. 어느 시골마을에 보리밭이 널찍하게 펼쳐지는가. 보리밭 마땅히 없는 이 나라에서 보리술은 왜 이리 많이 팔리는가. 한국땅에서 마시는 보리술은 어느 나라 어떤 흙일꾼 어떤 보리로 빚은 술일까.

 나는 2005년에 중국 연길시 둘레를 다녀오고 나서 중국술을 좋아한다. 옥수수로 빚은 중국술이 참 좋구나 하고 깨닫는다. 중국술에도 알콜을 퍼부을까. 중국술도 알콜을 퍼부어 도수를 맞출까. 모를 노릇이지. 다만, 한국땅에서는 옥수수로든 고구마로든 감자로든 쌀로든 보리로든, 한국땅에서 고이 길러 고이 술로 빚으려고 하는 일이 퍽 드물다. 한국에는 막걸리가 있지만, 화학첨가물 안 넣는 막걸리는 아직 구경하지 못했다. 왜 화학첨가물을 꼭 넣어야 할까. 먼 옛날 막걸리를 빚은 한겨레붙이는 화학첨가물을 넣었을까. 왜 한국사람은 한국술을 이다지도 엉터리로 빚으면서 엉터리 술이요 엉터리 삶이며 엉터리 사랑인 줄 느끼지 못하나. 참사랑을 느끼는 가슴은 어디에 있을까. 참삶을 찾으려는 몸부림은 어디에 있는가.


- “그 한편으론 니혼슈의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도 못하고 말이야. 기껏해야 술 취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감동도 없는 술이지. 클로드, 나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술을 만들고 싶어.” (132쪽)
- “네, 노력할게요. 하지만 저,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간단해요. 술을 많이 사랑해 주세요. 그게 손님을 늘리는 것보다 중요하니까요.” (162쪽)



 오제 아키라 님 만화책 《술의 장인 클로드》(대원씨아이,2007) 1권을 읽는다. 오제 아키라 님 다른 만화책에서도 느끼는데, 이분은 ‘술을 알리는 만화’를 그리지 않는다. ‘일본술을 알리는 만화’ 또한 그리지 않는다. 오제 아키라 님은 ‘사람이 사랑할 삶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다. 다만, 오제 아키라 님이 ‘사람이 사랑할 삶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그리는 징검돌(이야기 주제)이 ‘술’이요, 이 가운데 ‘일본술’일 뿐이다.

 오제 아키라 님이 술을 알린다거나 일본술을 알린다는 생각으로 만화를 그렸다면 대단히 따분했으리라 느낀다. 홍보나 소개를 꾀하며 그리는 ‘정보와 지식 넘치는’ 만화란 얼마나 재미없는가.

 사람은 누구나 배우기 마련이요, 늙어서 눈을 감는 날까지 배워야 한다지만, 지식조각이나 정보조각으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오직 사랑으로 배운다. 오로지 사랑을 배운다.

 《술의 장인 클로드》 1권을 마칠 무렵 ‘일본술 도매상 아줌마’ 입을 거쳐 읊은 “술을 많이 사랑해 주세요”란 그저 ‘많이 사랑해 주세요’이다. 내 삶을 사랑하고, 내 옆지기 삶을 사랑하며, 내 아이들 삶을 사랑할 노릇이다. 서로서로 사랑하고, 서로서로 아끼며, 서로서로 좋아할 노릇이다. 서로서로 좋아하면 즐겁다. 즐거울 때에 술 한 잔 홀짝인다. (4344.11.2.물.ㅎㄲㅅㄱ)


― 술의 장인 클로드 1 (오제 아키라 글·그림,임근애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7.10.15./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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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퍼센트 에누리 5600원 앞에서도 해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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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어디서 시작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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