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5.4. 

바람에 휘날리는 봄철 단풍꽃. 

가까이에서 보면 새로 핀 꽃송이가 보이는데, 

멀찍이 떨어지니 새로 돋은 단풍잎 빛깔이 아주 곱습니다. 

.. 

드디어 알라딘서재 사진넣기가 되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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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맞아요? 웅진 세계그림책 122
고토 류지 지음, 고향옥 옮김, 다케다 미호 그림 / 웅진주니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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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와 있을 자리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 다케다 미호·고토 류지, 《우리 엄마 맞아요?》(웅진주니어,2008)



 아이는 제 어버이하고 신나게 놀 때에 활짝 웃습니다. 아이가 차츰차츰 자라 천천히 동무를 하나둘 사귀거나 언니 오빠 누나를 만날 뿐더러 동생을 알 때에는, 동무들하고 마음껏 놀며 활짝 웃습니다. 아이한테 어버이는 맨 처음 사귀는 놀이동무입니다.

 어버이는 아이하고 신나게 놀지만, 언제나 신나게 놀 수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아이 스스로 밥을 차리거나 옷을 입거나 집을 장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밥을 차리거나 옷을 마련하거나 집을 장만하며 손질한다면, 이제 다 커서 제금나도 될 만하다 하겠지요. 아직 아이가 퍽 어리다면, 어버이 되는 사람은 아이한테 밥을 차리거나 옷을 마련하거나 집을 건사하려고 마음을 쏟고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밥벌이를 해야 하고 집일을 하며 집살림을 꾸려야 합니다.

 아이키우기에 앞서, 밥벌이와 집일과 집살림이 있습니다. 짝꿍을 만나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여기에 사랑나눔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집안을 이루는 어버이는, 적어도 다섯 가지를 알뜰살뜰 해야 하는 셈입니다. ‘집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온대’서 다른 네 가지를 안 해도 되지 않습니다. 아이키우기 한 가지만 잘할 수 없고, 집일과 집살림만 따로 잘할 수 없어요. 사랑나눔만 잘하면 집안살림과 아이는 엉망이 되겠지요.

 아이는 다섯 가지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짐스럽지 않습니다. 아이한테는 다섯 가지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맡지 않는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다섯 가지이든 쉰 가지이든 오백 가지이든, 따로 제몫을 안 맡아도 괜찮습니다. 아이는 어버이 곁에서 어버이가 하는 일을 말끄러미 바라보기만 해도 좋습니다. 어버이가 맡는 집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눈으로 익힌다든지, 가벼운 심부름을 한다든지, 어버이 일을 제 놀이 삼아 흉내내면서 일놀이를 한다든지 하면 됩니다.


.. 엄마, 안녕하세요? 나도 잘 있어요. 어버이날이라서 편지를 씁니다. ‘여러분, 부모님께 감사 편지를 쓰세요!’라고 담임 선생님이 엄하게 말씀하셔서 쓰는 거예요. ‘날마다 맛있는 밥을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내 짝꿍 승현이는 잘도 쓰는데, 나는 부끄러워서 그런 말은 못 쓰겠어요. 대신 눈 딱 감고,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을 쓰겠습니다 ..  (4쪽)


 배고픈 아이는 손으로 집어먹고 싶지만, 어버이가 곁에서 젓가락과 숟가락을 쓰면서 저한테 젓가락과 숟가락을 쓰라 이르면, 먹고픈 밥을 코앞에 두고는 용을 쓰며 젓가락질이나 숟가락질을 합니다. 떠먹여 주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스스로 떠먹으려고 떠먹이는 손을 손사래치거나 물리치곤 합니다. 걸레질을 할 때에 작은 걸레 하나를 내주면, 아이는 작은 걸레로 제가 닦고픈 것을 찾아 여기저기 슥슥삭삭 문지릅니다. 슥슥삭삭 문지르면서 방긋 웃습니다.

 손빨래하는 어버이 곁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몸씻이를 하면서 크다 보니, 아이는 퍽 갓난쟁이였을 적부터 빨래하는 시늉을 하며 빨래놀이를 했습니다. 밥상을 차릴 때에 반찬통 나르기를 즐기고, 수저를 맞추어 놓을 줄 압니다. 밥상을 행주로 닦을 때면 “제가요, 제가 할게요.” 하고 말하면서 어버이 손을 붙잡습니다. 텃밭에서 풀을 뽑으려고 호미를 들면, 저도 어버이 곁에서 풀을 뽑는 시늉을 하듯이 땅을 호미로 콕콕 쫍니다.

 그렇게까지 머나먼 옛날이 아닌 지난날, 이 나라 이 겨레 이 땅 사람들이 하던 일은 거의 모두 ‘흙 일구기’였습니다. 바닷마을에서 살아가더라도 흙을 일굽니다. 물고기만 먹고는 살 수 없으니까요. 논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밭이라도 일구기 마련입니다. 지난날 사람들은 너나없이 ‘흙을 일구면서’ 살았어요.

 지난날 사람들 가운데 양반과 사대부와 임금과 권력자들만 흙을 일구지 않습니다. 마을과 마을을 넘나들며 장사하던 사람도 흙을 일굴 수 없겠지만, 이들은 어느 한 곳에 뿌리내리지 않으면서 장사를 했으니 흙을 일굴 수 없을 뿐입니다.

 ‘신동’이나 ‘천재’라 할 만한 아이는 없습니다. 모든 아이가 신동이요 천재입니다. 어느 아이라 하든, 제 어버이가 하는 일을 곁에서 가만히 바라보면서 고스란히 받아들이거나 배우지 않고서는 목숨을 이을 수 없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삶을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쏙쏙 받아먹고 남김없이 받아들입니다.

 어버이가 학문을 하는 양반집 사람이라면, 아이도 어린 날부터 책이나 글을 가까이하겠지요. 어린 날부터 책이나 글을 가까이했으니 퍽 어린 나이부터 책을 곧잘 읽거나 글을 곧잘 쓰겠지요. 퍽 어린 나이부터 ‘흙을 일구는 어버이’ 곁에서 호미놀이를 했으면, 이 아이는 서너 살부터 호미질을 합니다.

 멧골집 우리 아이가 ‘호미질 천재’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주 마땅한 삶입니다. 집이 온통 책이요 글을 쓰며 살아가는 어버이 곁에서 자라나는 아이가 돌쟁이 무렵부터 연필을 아주 다부지게 잘 쥐며 ‘글쓰기 놀이’를 했대서 ‘글쓰기 천재’일 수 없습니다. 자리에 누워 제 어버이를 마냥 바라보던 때부터 늘 보던 모습이 ‘글을 쓰는 모습’이니, 저도 손가락에 힘이 붙어 연필을 쥘 수 있던 때에 아주 놀랍도록 야물딱지게 연필을 쥐어 종이에 꼬물꼬물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뿐입니다.


.. ‘세상에, 돼지우리가 따로 없네!’라고 하면서, 제발 마음대로 내 방 청소하지 마세요! 난 돼지가 아니에요, 사람이라고요! 엄마는 깔끔하게 정리된 방이 좋을지 모르지만, 나는 뒤죽박죽인 방이 더 좋단 말이에요. 너무 깨끗해서 반짝반짝 빛나면 괜히 마음이 불편해요. 나는 마음껏 어질러 놓고, 손때 묻은 정든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어야 마음이 편해요 ..  (12쪽)


 그림책 《우리 엄마 맞아요?》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 아버지는 안 나옵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아버지는 일찍 죽었거나 아버지하고 헤어진 채 어머니랑 아이가 둘이서 살아간달 수 있습니다. 《우리 엄마 맞아요?》에 나오는 집안이 어떠한지는 굳이 몰라도 됩니다. 어머니만 있는 집이든 아버지만 있는 집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가 둘이건 셋이건 남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도시에서 어머니랑 아이 둘이 살아가자면 어떠한 살림이어야 할까를 헤아려 봅니다. 어머니는 몹시 바쁘게 바깥일을 하며 돈벌이를 해야 하고, 집일과 집살림을 함께 꾸리는 한편, 아이를 잘 돌봐야 합니다. 제아무리 남녀평등이니 성평등이니 외치는 나라나 사회라 하더라도, 여자가 남자처럼 예순이니 예순다섯이니 하는 정년 때까지 일하기란 몹시 버겁습니다. 여느 남자들처럼 바깥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 ‘저녁 밥상 알뜰히 차려 놓을 집일꾼(으레 어머니가 맡는 몫)’이라든지 ‘집안일 다 해 놓고 몸 씻을 물 덥혀 놓을 집일꾼(이 또한 거의 어머니가 맡는 몫)’이 있는 어머니란 없다고 해야 맞습니다. 하루일을 마치느라 고단했으니까, 보리술이라도 한잔 하라며 몇 가지 가벼운 안주를 내미는 집일꾼(언제나 어머니가 맡는 몫) 또한 없겠지요.

 홀로 아이를 맡아 살림을 돌봐야 할 어머니는 아이를 일찍부터 어린이집에 넣어야 합니다. 여러 학원에 넣어야 합니다. 아이랑 놀고픈 마음이 굴뚝같아도 아이랑 놀 수 없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는 예쁜 모습을 곁에서 즐거이 지켜보기 힘듭니다. ‘어라, 어느새 이렇게 다 컸나?’ 하고 느낄 뿐입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넣을 때에는, ‘어머니가 집에서 아이하고 부대끼며 스스로 가르치고 서로서로 배우며 보내는 고마운 나날’을 돈을 주면서 남한테 맡기는 셈입니다.

 옳게 따진다면, 어린이집 사람들은 어머니한테 돈을 주어야 맞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귀엽고 해맑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곁에서 바라보며 싱그러운 기운을 듬뿍 얻을 뿐 아니라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흐뭇할 테니까요. 이 싱그럽고 사랑스러우며 흐뭇한 기운을 ‘아이 어머니’한테서 얻어서 누리니까, 어린이집을 꾸리는 이들이 어머니한테서 돈을 받는 일이란 거꾸로 된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초등학교 교사이건 중·고등학교 교사이건 매한가지예요. 교사가 아니어도 아이들은 지식을 얼마든지 쌓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얻지 못하는 한 가지라면 졸업장입니다. 아이들은 중학교 세 해를 학교에 얽매여야 ‘중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과 슬기’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중학교 세 해 지식이래 보았자, 집에서 한 달만 책을 파헤쳐도 다 익힙니다. 지식은 참 보잘것없어요. 중학교를 세 해 다녀야 한다면, 열너덧 살 되는 아이들이 제 나이에 걸맞게 삶과 사람과 사랑을 맞아들이는 살가운 누리를 느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식이나 졸업장 때문에 중학교를 다닐 까닭이 없습니다.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매한가지입니다. 지식이나 졸업장 때문에 학교를 다녀야 한다면, 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얼마나 슬플까요. 아이를 학교에 넣는 어버이는 또 얼마나 가엾을까요.


.. 날마다 엄마는 휘리릭 아침 준비를 하고 북북 빨래를 하고 ‘준비물, 챙겼지?’ 하고 나한테 물어 보잖아요. 그리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바람처럼 회사에 가죠. ‘너희 엄마, 멋있다!’ 은지는 엄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대요. 하지만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 높은 구두 신고 넘어지지 마세요 ..  (28쪽)


 그림책 《우리 엄마 맞아요?》를 읽으면, 온통 아이 목소리입니다. 아이 어머니 목소리는 한 군데에도 안 나옵니다. 아이 어머니는 말없이 아이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냥 듣는 소리도 아니고, 찬찬히 귀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사서 엄마랑 나랑 번갈아 가며 먹었잖아요. 그 아이스크림 막대기도 가져왔는데……. 이제 다 없어졌어요. 그렇게 여러 가지 물건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죠, 뭐.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앞으로 내 방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  (26쪽)


 아이는 제 어머니를 ‘멋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는 제 어머니가 ‘멋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는 제 어머니한테 꼭 한 가지만을 바랍니다. 아이는 제 어머니가 그저 ‘내 어머니’이기만을 바랍니다.

 무시무시한 잔소리꾼이 아닌 사랑스러운 어머니이기를 바랍니다. 멋있어 보이는 회사원이 아니라 살가운 집식구이기를 바랍니다. 아줌마라는 나이에도 예뻐 보이는 아가씨(여자)가 아니라 좋은 놀이동무·삶동무·마음동무이기를 바랍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쓴 편지를 읽으며, 잔소리꾼에서 사랑스러운 어머니로 돌아옵니다. 멋있어 보이는 회사원 허울을 벗고 살가운 집식구로 바뀝니다. 예뻐 보이는 아가씨(여자)라는 옷을 내려놓고 좋은 동무 자리로 들어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와 있을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어머니이면서 어머니 자리에 있지 않거나 아버지이면서 아버지 자리에 있지 않다면, 참으로 어떤 자리에 뭐 하러 있는지 돌이켜보거나 되새겨야 합니다. (4344.5.6.쇠.ㅎㄲㅅㄱ)


― 우리 엄마 맞아요? (다케다 미호 그림,고토 류지 글,고향옥 옮김,웅진주니어 펴냄,2008.4.30./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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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5-06 13:52   좋아요 0 | URL
밥벌이, 집일, 집살림, 아이키우기, 사랑나눔이~~~ 우와~~
간신히 밥벌이 좀 하고요, 집일이나 집살림은 아주초콤합니다~ 참, 민망해지네요^^;
그래도 사랑나눔은 많이 합니다~

파란놀 2011-05-06 17:31   좋아요 0 | URL
저도 그닥 잘 하지 못해요.
이렇게 글을 써 보면서 제 삶부터 곰곰이 돌아보곤 해요.
힘들 때마다 이런 글이 나오면서
다시금 기운을 내자고 다짐을 하곤 합니다.
에구궁....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4〉秋田の民俗 (ちくま文庫) (文庫)
木村 伊兵衛 / 筑摩書房 / 199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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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두 그리운 모습, 오늘은 오늘을 찍는다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4] 기무라 이헤이(木村伊兵衛),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 4 秋田の民俗》(筑摩書房,1995)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사진을 찍습니다. 책으로 묶는다든지 사진잔치를 열어야 비로소 사진쟁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끼리 웃고 떠들며 넘기는 사진첩에 담을 사진을 찍더라도 사진쟁이가 됩니다.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누구나 그림을 그립니다. 멋들어진 곳에서 멋들어진 틀에 끼워 그림을 내다 걸어야 그림쟁이가 되지 않습니다. 나와 벗과 살붙이가 웃고 떠들며 돌아보는 살가운 그림이 된다면 그림쟁이가 됩니다.

 이름난 문학평론가가 손뼉을 쳐 주는 문학을 써야 글쟁이가 아닙니다. 이름난 출판사에서 책으로 나와 수십 수백만 권이 팔려야 비로소 쓸 만한 글이 아닙니다. 나라 안팎에 널리 알려지거나 불리는 노래를 짓거나 불러야 좋은 노래가 아닙니다.

 나 스스로 좋아서 쓰는 글입니다. 내가 좋아하니까 그리는 그림입니다. 내 마음을 담아 부르는 노래입니다. 내 삶을 사랑하면서 찍는 사진입니다.

 모두 그리운 모습이기에 오늘은 오늘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모두 애틋한 이야기이기에 오늘은 오늘을 글로 씁니다. 모두 살가운 이웃이기에 오늘은 오늘을 그림으로 담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어제나 그제 이야기를 쓴다든지, 모레나 글피 이야기를 쓴다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어제 이야기를 돌이키든 모레 이야기를 톺아보든, 언제나 오늘을 살아가는 나로서 쓰는 오늘 글에서 비롯합니다. 꽃이나 나무나 사람을 그림으로 그릴 때면, 처음 붓을 들 때와 마지막 붓질을 할 때는 다르다 할 만합니다. 여러 날을 두고 그림을 그리면, 처음 바라보던 모습을 처음 모습 그대로 그린다 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1초 만에 휘리릭 그려내든 1분 만에 재빨리 담아내든, 그림을 그린다 할 때에는 1초와 1분 사이에 살아낸 모습을 고스란히 옮깁니다. 한 달에 걸쳐 그림 한 장을 그린다면 한 달이라는 나날과 삶과 모습과 이야기가 그림 한 장에 스미는 셈입니다.

 사진은 오늘을 찍습니다. 사진은 어제도 모레도 찍지 못하고, 오로지 오늘만을 찍습니다. 1초에 여러 장을 찍을 수 있는 사진기인 만큼, 사진은 오늘 가운데에서도 몇 시 몇 분 몇 초로 끊으면서 찍을 수 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모습을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야기를 담아 보여줄 만합니다.

 같은 글이라 하더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 맛과 멋이 다릅니다. 같은 그림이라 하더라도 그리는 사람에 따라 깊이와 너비가 다릅니다. 돌멩이를 찍든 문짝을 찍든,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이 돌멩이와 문짝을 어떻게 바라보며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느끼는가에 따라 사진맛과 사진멋이 달라져요. 사진깊이와 사진너비가 새롭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몇 년 몇 월 몇 일 몇 시 몇 분 몇 초라는 틀에 사로잡힌 채 ‘오늘 사진’을 찍지만, 누군가는 ‘나와 네가 처음 태어나던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르게 일군 삶을 나란히 마주하면서 느끼는 오늘 사진’을 찍기 때문입니다.

 기무라 이헤이(木村伊兵衛) 님이 빚은 사진을 그러모은 자그마한 사진책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 4 秋田の民俗》(筑摩書房,1995)을 들여다봅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사진책을 이처럼 손바닥책으로 아기자기하게 묶어서 내놓곤 합니다. 책값은 고작 840엔. 쪽수는 208쪽. 한국에서는 한 사람 사진삶과 사진넋을 조그마하면서 예쁘장한 책 하나에 살뜰히 그러모으기 힘들다고 새삼 느낍니다. 이 사진을 더 큼지막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느낌이 한결 깊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자그마한 크기로 바라본대서 느낌이 옅거나 어수룩할 수 없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며 오늘을 아름다이 사진으로 옮긴 아름다운 손길을 얼마든지 느낍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지난날 김기찬 님이 내놓은 《골목 안 풍경》이라는 사진책을 이렇게 조그마하면서 예쁘장한 판꾸밈으로 아기자기하게 새로 엮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고. ‘기무라 이헤이 사진문고’처럼 ‘김기찬 손바닥 사진책’이라든지 ‘임응식 손바닥 사진책’을 어여삐 묶어서 오래오래 사진꿈과 사진얼을 맛볼 수 있게끔 하면 참으로 기쁘겠다고 느낍니다.

 일본 사진쟁이 기무라 이헤이 님은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사람들 얼굴을 사진으로 찍고, 사람들 차림새를 사진으로 찍으며, 사람들 살림살이라든지 살림집이라든지 마을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어느 한 가지를 더 돋보이도록 하지 않습니다. 몇몇 사람을 도드라지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저마다 작은 사람입니다. 저마다 고마운 목숨을 어버이한테서 선물받아 저마다 새로운 목숨을 제 아이한테 선물하며 살아가는 고운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아니고 힘겨운 사람이 아닙니다. 외로운 사람이거나 슬픈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내 이웃인 한 사람’입니다. ‘내 동무인 두 사람’입니다. ‘나와 살붙이라 할 만한 세 사람’이고, ‘나랑 한 마을에서 지내는 네 사람’이에요.

 돈이 없기에 슬픈 삶일 수 없습니다. 돈이 있기에 기쁜 삶일 수 없습니다. 어버이 두 분이 몸이 튼튼하든 어버이 두 분이 일찍 돌아가셨든, 어느 한쪽이 더 슬프거나 더 기쁘지 않습니다. 내 아이큐가 150이 되든 100이 되든 50이 되든 다를 일이란 없습니다. 내 걸음이 빠르든 느리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내 키가 크든 작든 어떠하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내 삶은 그예 내 삶입니다. 내 길은 고스란히 내 길입니다. 내 넋은 사랑스러운 내 넋입니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더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더 똥구멍 찢어지게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야 ‘다큐멘터리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아니, 굳이 다큐사진을 찍어야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연예인이나 예쁜 아가씨를 알몸으로 벗기고 사진을 찍는다든지, 또는 예쁘다 하는 옷을 입히고 사진을 찍는다든지, 아름답다는 나라로 가서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라는 아가씨를 사진으로 찍는다고 하든지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패션사진’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옷 만드는 회사 이름이나 상품을 널리 알리거나 파는 데에 도움이 되는 길을 걸어가기에 ‘여느 사람 눈길을 확 끄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 테지만, 사람들 눈길을 확 끌기에 아름다운 사진이 되지는 않아요.

 얼굴에 주름이 졌으니까 주름진 얼굴을 고스란히 보여주되, 주름진 얼굴만큼 주름진 옷과 주름진 집과 주름진 땅과 하늘을 보여줍니다. 방아를 찧거나 물레를 잣거나 벼를 훑으며 고단하기에 고단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지만, 방아를 찧으며 밥을 얻는다는 즐거움이 있고 물레를 자으며 옷을 얻는다는 기쁨이 있습니다. 고단함과 즐거움과 기쁨을 한 자리에 그러모읍니다.

 사진과 함께 걷는 따사로운 길 하나는 ‘모두 그리운 모습’이라고 느끼며, ‘오늘은 오늘을 찍는’ 사진길입니다. 내 오늘을 예쁘게 사랑하는 사람이라 한다면, 애써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 4 秋田の民俗》 같은 사진책을 들추지 않더라도 ‘내 예쁜 오늘과 내 예쁜 오늘 사진’을 살갗으로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내 오늘을 예쁘게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한다면, 기무라 이헤이를 들추든 토몬 켄을 넘기든 살가운 속살을 헤아리지 못하겠지요. (4344.5.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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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삶읽기 사람읽기 7
― 필름과 메모리카드와



 4기가라는 메모리카드 하나가 맛이 갑니다. 이 메모리카드에 담긴 사진은 여러 날이 걸려 겨우 되살리지만, 이 메모리카드는 되살리지 못합니다. 어쩌다 잘못해서 불량품이 제 손으로 들어왔는지 모릅니다. 몇 차례 못 쓴 새 메모리카드가 말썽이 나고 말았습니다.

 필름으로 애써 잘 찍었다지만, 인화를 맡은 이가 깜빡 잘못하면 사진이 와르르 날아갑니다. 필름에 애써 잘 담았다지만, 미처 다 감지 않았는데 사진기 뚜껑을 일찍 열면 사진이 아지랑이처럼 날아갑니다. 때로는, 멋모르고 ‘다 쓴 필름’을 끼워넣고는 ‘한 번 찍힌 자리에 다시 찍히도록’ 하곤 합니다. 이때에는 두 가지 사진을 한꺼번에 날리는 셈입니다. 어떤 이는 일부러 이렇게 찍기도 한다지만, 필름 하나에 한 가지 이야기만 담으려 하던 사람으로서는 땅을 치고 가슴을 치더라도 돌이키지 못합니다.

 바보스러운 짓, 또는 어처구니없는 잘못, 때로는 슬픈 일 때문에 오랜 나날 오랜 품을 들인 사진이 먼지가 됩니다. 먼지가 된 사진을 알아볼 사람은 없습니다. 제아무리 빼어난 평론가라 하더라도 먼지가 된 사진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먼지가 된 사진은 내 눈과 가슴과 머리에만 아로새겨집니다. 어느 때에 어느 곳에서 어떠한 마음과 느낌으로 사진을 찍었지 하는 생각만 어루만집니다.

 디에스엘알이라는 사진기이든 똑닥이라는 사진기이든 손전화 사진기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가며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을 만한 사진기이면 나한테 어울리며 즐겁고 좋습니다. 나는 내 좋은 이야기를 갈무리하고 싶어 사진을 찍으니까요. 나는 내 좋은 이야기를 두고두고 건사하면서 사랑할 뿐 아니라, 둘레에 나누고 싶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필름을 써야 더 좋은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필름 가운데 중형이나 대형을 써야 더 훌륭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메모리카드에 담는 디지털사진이라 해더 덜 좋은 사진일 까닭이 없습니다. 이제 온누리는 필름을 지나 메모리카드로 바뀐 만큼, 메모리카드로 해야 사진다운 사진이 된다 할 수 없습니다.

 몇 천만 원짜리 사진기를 쓰든 몇 백만 원짜리 사진기를 쓰든 몇 십만 원짜리 사진기를 쓰든 몇 만 원짜리 헌 사진기를 쓰든 사진이 달라질 수 없습니다. 달라지는 한 가지란 내 마음입니다. 바뀌는 한 가지란 오직 내 삶입니다.

 사진길을 걷고 싶은 사람들이라 할 때에는, ‘사진 새내기 길잡이 이야기책’을 들추지 말아야 합니다. ‘무슨무슨 길잡이’라든지 ‘무슨무슨 잘 찍는 법’ 같은 책이 아니라 ‘사진을 사진 그대로 느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는 삶을 비추는 이야기책’을 찾고 살피며 만나서 사진과 삶과 사랑과 사람을 배우며 껴안아야 합니다.

 곰곰이 헤아린다면, 슬기롭게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따로 책이 없어도 됩니다. 요리책이 있어야 밥을 잘 하지 않습니다. 살림을 꾸리는 일을 책읽기로 배우지는 않습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삶자락을 책으로 익힐 수 없습니다. 꽃이 얼마나 예쁘고 어떻게 예쁜가 하는 느낌이나 생각은 책을 읽는대서 깨달을 수 없습니다. 나 스스로 흙을 밟고 선 숲이나 들이나 논둑에서 나 스스로 꽃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마음에서 샘솟는 아름다움이 있을 때에 바야흐로 ‘꽃이 예쁘구나’ 하고 느끼면서 삶과 자연과 목숨과 사람과 사랑을 배웁니다. 사진을 참다이 사랑하거나 배우려 한다면, 사진강의나 사진책이 아니라 사진삶이 어떠한가를 되짚으면서 내 하루하루를 아끼거나 사랑해야 합니다.

 유리판을 거쳐 필름이 되었고, 필름을 지나 메모리카드가 되었습니다. 메모리카드는 하루가 다르게 나아지거나 새로워집니다. 머잖아 메모리카드조차 사라지면서 또다른 ‘사진을 담는 그릇’이 태어나겠지요. 메모리카드를 넘어서거나 메모리카드와는 사뭇 다른 ‘그릇’이 나오면, 그때에는 또 ‘메모리카드 사진이 참 사진’이냐 ‘새로운 그릇에 담는 사진이 참 사진’이냐를 놓고 말다툼을 하려나요.

 우리는 오로지 사진을 할 뿐입니다. 우리는 늘 사진을 즐길 뿐입니다.

 우리는 오직 사랑을 할 뿐입니다. 우리는 노상 사랑을 즐길 뿐입니다.

 집에서 낳는 아기이든 산부인과에서 낳는 아기이든 조산소에서 낳는 아기이든, 한결같이 사랑스러운 아기입니다. 첫째 아기이든 셋째 아기이든 막째 아기이든 하나같이 고마운 목숨입니다.

 풋내기 사진쟁이 사진이든 이름난 사진쟁이 사진이든, 그저 사진입니다. 내가 바라보면서 나한테 얼마나 아름답게 스며드는 사진인가를 살필 수 있으면 됩니다.

 사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진을 사랑해야 합니다. 기계가 아닌 사진을 바라보고, 기계가 아닌 사진을 사랑해야 합니다.

 필름이 좋으면 필름을 쓰면 됩니다. 필름을 노래하거나 추켜세울 까닭이 없습니다. 메모리카드가 좋으면 메모리카드를 쓰면 됩니다. 현대 물질문명 사회라 한대서 메모리카드만 있지 않은 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필름과 메모리카드와 유리원판 따위에 앞서, 모든 사진은 맨눈으로 찍거나 ‘감은 눈’으로 찍으면서 내 가슴에 깊이 돋을새김했습니다. 마음으로 찍지 못하는 사진이라면 기계로도 찍지 못하는 사진입니다. (4344.5.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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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서재 사진넣기 '기능 불안정'은 언제 제자리를 잡을까. 

하루도 이틀도 사흘도 아니다. 

몇 달째 몇 해째 이어진다. 

사진을 한꺼번에 여러 장 올리지도 못해 

늘 대단히 번거로운데, 

이런 사진넣기마저 안 되는 모습이란. 

.. 

사진책 이야기를 띄우려고 새벽부터 글을 써서 세 꼭지를 마무리지었지만, 

아무 글도 올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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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5-06 12:22   좋아요 0 | URL
불안정하게 요대로 유지해주는거라도 감사해야 하는 건가 봅니다 -_-; 참,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