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책 옮긴 지 이틀째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11.10.



 11월 8일 드디어 책을 옮겼다. 내 살림집에 책이 있지 않다 보니 얼마나 조마조마하며 애가 탔는지 모른다. 이 책들이 곰팡이를 얼마나 먹으면서 시름시름 앓는지 걱정스럽고, 끈에 묶인 채 숨이 막히느라 고달파 하는 소리를 듣기 힘겨웠다.

 아침 일곱 시 반부터 책을 짐차에 싣는다. 두 시간 남짓 들여 짐차에 책을 다 싣는다. 짐차에 책을 워낙 많이 실은 탓에 충청북도 음성에서 전라남도 고흥까지 짐차가 닿는 데에 여덟 시간 즈음 걸린다. 책꽂이와 책을 내려 등짐으로 옛 흥양초등학교 교실로 나르는 데에 다섯 시간 남짓 걸린다.

 어찌 되든 다 옮겼다. 이래저래 말과 일과 뭐가 있든 없든 일을 다 해낸다. 책은 다 왔을까? 사이에 새거나 사라지지 않았을까? 샌 책이 있든 사라진 책이 있든 어쩌는 수 없다고 느끼나, 이 큰 덩이를 모두 옮길 수 있기에 홀가분하다. 이제부터 나는 내 사랑스러운 책들로 사랑스러운 삶을 누리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쓰고 싶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시골자락에서 옆지기가 마음밭과 흙밭을 예쁘게 일구는 나날을 즐거이 누리고 싶다. 잔뜩 쌓인 책을 갈무리하는 일은 이제부터 기쁘게 하기만 하면 된다. 재촉하거나 다그치는 사람이란 없다. 해코지하거나 헐뜯거나 등칠 사람 또한 없다. 나는 내 삶을 아끼면서 내 책을 아끼면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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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가락으로 쓰는 글


 빨래를 하면서 손가락에 힘을 준다. 엊그제 책짐을 나르느라 새벽 한 시 가까이까지 너덧 시간 쉬지 않고 등짐을 날랐더니 이듬날에는 손가락에 힘을 넣을 수 없었고, 이틀째에는 그럭저럭 손가락을 쓸 만하다. 이듬날에는 빨래를 하기 벅찼으나 천천히 꾹꾹 누르며 했고, 아이들 씻길 때에도 아이고 아야 허리야 팔이야 하면서도 차근차근 쓰다듬으면서 씻겼다.

 손가락에 힘이 없으니 책을 부치려고 택배종이에 주소와 이름과 전화번호를 꾹꾹 누르면서 적을 때에 몹시 고단하다. 혼자서 택배종이를 다 쓰려 했으나 끝내 옆지기한테 보내는이 주소는 적어 달라고 이야기한다. 손가락에 힘이 없는 만큼 팔뚝과 손목과 어깨에는 힘이 더 없다. 팔뚝과 손목과 어깨로 힘을 못 쓰는 만큼 등과 허리와 허벅지와 종아리와 다리로 쓸 힘 또한 얼마 없다. 이틀쯤 그저 푹 쉬고 싶으나, 느긋하게 쉬지 못한다. 곰곰이 생각한다. 나는 쉬면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내 몸에 따라 천천히 일하면서 몸을 푸는 길을 걸어야 한다. 집안일이건 집밖일이건 천천히 하면서 몸을 맞출밖에 없다. 책등짐을 나를 때에도 다른 일꾼은 담배를 물면서 몇 분 동안 쉬지만, 나는 이렇게 쉴 수 없는 몸이라 등짐 부피를 줄이고 천천히 걸어가면서 쉰다. 더 곰곰이 돌이키니, 군대에서 무거운 베낭과 소총과 탄통 들을 잔뜩 짊어지며 멧길을 걸어야 할 때에도 걷는 빠르기를 조금 줄이는 일이 쉬는 일이었다.

 손가락으로 글을 쓴다. 작은 공책에 손가락으로 글을 쓴다. 하루하루 살아가며 그때그때 겪고 느끼는 이야기를 조금조금 글로 옮긴다. 손가락으로 글을 쓰노라면, 네 살 첫째 아이는 어느새 아버지 곁에 붙어서 저도 글을 쓴다며 제 공책에 글그림을 그린다. 처음 글그림을 그릴 때에는 꼬물꼬물 그림이었는데, 곧 다섯 살 나이에 접어들 첫째 아이는 꽤 글꼴 티가 나는 글그림을 그린다. 곁에서 아이를 바라보며 참 멋지네 예쁘네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나는 내 아버지한테서 무엇을 보며 자랐을까. 나는 내 어머니한테서 무엇을 보며 컸을까.

 손가락으로 글을 쓰면서 우리 아이가 손가락과 손마디와 손바닥에 좋은 느낌을 좋은 사랑을 실어 받아들일 수 있기를 꿈꾼다. 손가락으로 글을 쓰면서 오늘 하루 고단한 삶을 마무리짓는 땀방울을 곱게 품에 안자고 다짐한다. 손가락으로 글을 쓰면서 머잖아 우리 집 살림이 시나브로 피면서 책을 잔뜩 쌓은 옛 흥양초등학교 건물과 터를 우리 집숲이자 책숲으로 일구는 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꿈꾼다. 늦가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첫째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처음으로 면내마실을 다녀왔다. 좋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삶이 좋다. 발가락을 움직이는 삶이 즐겁다. 손가락으로 아이 머리를 감기면서 살며시 쓸어넘기는 결이 좋다. 발가락을 버티며 아이들 안고 시골길 걷는 동안 맡는 풀내음이 고맙다. (4344.11.1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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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살기 1호>를 내놓았습니다. 

<함께살기>는 '1인 단행본'이에요. 1인 단행본 1호는 

<자가용을 버려야 책을 읽는다>입니다. 

이 책은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지킴이'가 되신 분들한테는 그냥 부칩니다. 

http://blog.aladin.co.kr/hbooks/5137783 

요 글을 읽으시면 '한 평 지킴이' 알림글이 있어요. 

<자가용을 버려야 책을 읽는다>는 

여느 책방에 넣지 않아요. 

다음주부터 두 군데 책방에는 책을 보내요. 

인천 배다리 <나비날다>와 서울 명륜동 <풀무질> 두 군데에. 

이 책이 궁금해서 사고 싶으신 분들은 

댓글로 주문해 주셔요 ^^ 

- 책 받을 곳, 전화번호, 이름, 이렇게 세 가지 남겨 주신 다음 

책값(14000 + 1000)을 계좌이체로 넣으시면 돼요.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책 1권 값은 14000원인데, 택배로 부쳐야 하기에 1000원을 더합니다 ^^ 

(남은 택배값 2000원은 제가 내요) 

.. 

 자가용을 버려야 책을 읽는다

ㄱ. 눈을 밝히는 책읽기 ……… 10
책읽기 1
책읽기 2
책읽기 3
인천사람 책읽기
좋은 책 읽기 1
좋은 책 읽기 2
새책을 읽으며
눈을 밝히는 책읽기
글쓰기와 책읽기

ㄴ. 책읽기 잇는 삶 ……… 20
전철에서 책읽기 1
무릎과 책읽기
책읽기 4
전철에서 책읽기 2
아픈 사람과 책읽기
아이한테 책 읽히기 1
아이한테 책 읽히기 2
책읽기 잇는 삶
전철에서 책읽기 3
책을 사는 까닭
시골사람 책읽기
서두르는 책읽기

ㄷ. 내가 읽는 책과 사람과 ……… 35
버스와 책읽기
내가 읽는 책과 사람과
졸면서 책읽기
젊음과 책읽기
줄거리와 책읽기
지식인과 책읽기
눈쓸기 책읽기
새벽녘 책읽기

ㄹ. 한국책 말할 자유 ……… 48
바보가 되는 책읽기
한국책 말할 자유
천재와 책읽기
콩콩콩 책읽기
아침맡 책읽기
좋은 삶과 책읽기
헌책과 책읽기
책읽기와 느낌글
책베개 책읽기

ㅁ. 군대와 책읽기 ……… 67
뜨개책
분석하는 책읽기
제넋을 찾는 책읽기
개와 책읽기
군대와 책읽기
미군부대와 책읽기
좋은 글과 책읽기
도움받는 책읽기
제넋과 책읽기

ㅂ. 맹자 어머니 책읽기 ……… 87
권정생 할아버지처럼 아파하자
어느 만큼이나 책읽기
견문 넓히는 책읽기
맹자 어머니 책읽기
오른팔꿈치와 책읽기
목숨을 걸고 책읽기
손가락과 책읽기 1
사람과 책읽기
어린이노래와 책읽기

ㅅ. 달삯과 책값 ……… 106
손가락과 책읽기 2
사람한테서 책읽기
책읽기와 춤추기
술과 책읽기
걸으면서 만화책 읽기
달삯과 책값
아픈 몸으로 책읽기
찬물 빨래 하고 책읽기
책 하나를 되풀이 읽기
봄비에 책읽기
아껴 아껴 책읽기

ㅇ. 사진책 읽는 어린이 ……… 126
아이하고 책읽기
고기와 책읽기
서울마실과 책읽기
손으로 쓰는 책
느긋하게 책읽기
뒷차와 책읽기
사진책 읽는 어린이
그림책 읽는 어린이
밥하고 책읽기
발톱과 책읽기
배우는 책읽기
무덤가에서 책읽기
밀치며 책읽기

ㅈ. 학교와 책읽기 ……… 151
군대에서 휴가 나와 책읽기
나비 날갯짓과 책읽기
원자력발전소와 책읽기
손으로 책읽기
학교와 책읽기
입가를 닦으며 책읽기
팔베개를 하고 책읽기
값을 매기는 책읽기
겨우 책읽기
고양이 사진책 읽기
죽은이 책읽기
새눈과 책읽기
아프니까 책읽기

ㅊ. 저녁에 ……… 174
밤하늘 별빛과 책읽기
나라밖 나들이와 책읽기
사진과 책읽기
하루하루 책읽기
자전거와 책읽기
저녁에
빨래하고 책읽기
머리끈과 책읽기
책읽기 5
아침 밥하기와 책읽기
마실을 떠나며 책읽기

ㅋ. 당근씨와 책읽기 ……… 193
도시사람과 책읽기
돈과 책읽기
세겹살과 책읽기
쑥부침개와 책읽기
네 살 아이 호미질과 책읽기
네 살 아이 새벽맞이와 책읽기
말과 삶이 하나
피아노와 사진기와 책읽기
발바닥 붙임딱지와 책읽기
당근씨와 책읽기
빼쫑빼쫑 새와 책읽기

ㅌ. 사랑하는 책읽기 ……… 217
단풍꽃과 책읽기
밥먹기와 책읽기
벼락과 책읽기
둘째와 책읽기
삶과 죽음과 책읽기
사랑하는 책읽기
발가락 책읽기
시골집 책읽기
산들보라
바쁘니까 책읽기

ㅍ. 눈부신 빨래 ……… 237
병원과 책읽기
졸업장과 책읽기
즐겁게 살고 싶어 책읽기
뻐꾸기 소리와 책읽기
기저귀 빨래와 책읽기
똥 만지는 손으로 책읽기
나무숲 책읽기
눈부신 빨래
서당개 책읽기
힘드니까 책읽기
책을 읽는 즐거움

ㅎ. 자가용과 책읽기 ……… 256
감자꽃 책읽기
미역국 책읽기
재미난 책읽기
기계와 책읽기
자가용과 책읽기
학교이름과 책읽기
말과 책읽기
개똥벌레 책읽기
집안일과 책읽기
손바닥 책읽기
갈치구이와 책읽기
빗소리 책읽기
사람과 삶과 사랑

맺음말 : 책읽기는 삶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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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1-11-15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척이나 바쁘실텐테도 책을 내셨네요. 잘 받아서 고맙게 잘 읽고 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사진으로 찍어야 아름다운가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17] 주명덕 사진·이상일 글, 《한국의 장승》(열화당,1976)



 오늘이 되어 새 사진이 반짝 하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제가 되어 옛 사진이 반짝반짝 빛나지 않습니다. 글피가 되어 다른 사진이 번쩍번쩍 나타나거나 반짝거리던 빛이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사진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모습이기에 더 빛날 만한 사진이 아닙니다. 골목개를 찍거나 골목고양이를 찍기에 더 예쁘거나 더 남다르지 않아요. 정치꾼들 모습을 찍으니까 더 볼썽사납거나 더 재미없지 않아요. 이름난 사람을 찍으니까 더 돋보이거나 빛나지 않습니다. 이름 안 난 사람을 담기에 덜 도드라지거나 덜 볼 만하지 않습니다.

 이제껏 아무도 사진으로 안 담던 모습이기에, 내가 처음으로 사진으로 담을 때에 빛이 나지 않습니다. 여태껏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으로 담던 모습인 만큼, 나까지 사진으로 담을 때에 따분하거나 틀에 박히지 않아요.

 새삼스럽거나 새롭다 할 만한 이야기를 다룬다 해서 사진답다 하지 않습니다. 낯설거나 놀랍다 할 만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해서 글답거나 그림답지 않듯, 사진답다는 이름은 쉬 얻지 못합니다.

 흔한 이야기라서 흔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보잘것없다고 여긴대서 보잘것없는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눈여겨보는 사람이 드물기에 눈여겨볼 만하지 못한 사진으로 나뒹굴지 않아요. 알아주지 않는 이야기를 찍기 때문에 알아줄 만하지 않은 사진으로 따돌림받지 않습니다.

 주명덕 님이 사진을 찍고 이상일 님이 글을 넣은 《한국의 장승》(열화당,1976)을 읽습니다. 헌책방에서 만난 《한국의 장승》은 1976년에 1쇄를 찍고 1979년에 재판을 찍었다고 나옵니다. ‘재판’은 2쇄를 가리킬는지 3쇄를 가리킬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재판’이나 ‘중쇄’라고만 밝히기 일쑤였거든요.

 《한국의 장승》에 글을 넣은 이상일 님은 “환경이 바뀐 때문에 장승이 아름다움으로 변신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을 것인데,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11쪽/이상일).” 하고 이야기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옳다 할 만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옛날 사람은 장승을 아름답다고 여겼을는지 아름답지 않다고 여겼을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굳이 아름답다고 여기며 장승을 세웠겠습니까. 아름다움을 빛내려고 장승을 세웠겠습니까. 장승은 장승이니까 세워요. 장승은 장승이기에 마을마다 섭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장승을 하찮게 여기거나 나쁘게 여기기에 장승을 꺾거나 분지르거나 뽑아 버리려나요. 장승을 모르니까 아무렇게나 다룰까요. 장승은 쓸데없다고 여겨 함부로 내치는가요.

 1970년대이든 2010년대이든 장승은 ‘사라지는’ 한겨레 삶입니다. 1970년대를 휘몰아치던 새마을운동은 흙으로 짓고 짚으로 이던 작은 시골집을 모두 밀어냈습니다. 시멘트로 벽을 바르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잇도록 했습니다. 마을길도 시멘트길로 바꾸고 아스팔트 고속도로를 쭉쭉 늘렸어요. 곧, 흙도 흙일꾼도 흙삶도 내팽개치는 첫무렵입니다. 이러한 물결에 휩쓸리며 장승이든 나무문이든 짚신이든 고무신이든 빨래방망이든 워낭이든 하나둘 자취를 감출밖에 없습니다.

 장승이 서던 자리에는 신호등이 서겠지요. 장승이 있던 자리에는 마을 이름 굵직하게 새긴 커다란 돌이 들어서겠지요. 장승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바라보겠지요. 장승 앞에서 절을 하던 사람들은 예배당 뾰족탑 앞에서 절을 하겠지요.

 달라지는 삶이요 삶터입니다. 달라진 삶이자 삶터인 만큼 신호등을 사진으로 찍고, 아파트를 사진으로 찍으며,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마을사람 모여 두레를 하고 품앗이를 하며 부르던 노래가 사라지듯, 텔레비전과 라디오와 인터넷을 따라 흐르는 대중노래가 온누리에 넘실거립니다.

 벼베는 기계로 벼를 베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낫으로 벼를 베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우니, 애써 사진으로 찍기도 힘들지만 오늘날 굳이 사진으로 찍을 까닭이 없다 할 수 있습니다. 아마, 낫을 어떻게 쥐고 벼포기를 어떻게 잡으며 낫을 휘휘 쓸어야 하는가를 모르는 사람투성이일 텐데, 낫질하는 모습 사진을 누군가 찍는들, 이 사진에 서린 이야기를 누가 읽거나 느낄 수 있겠습니까.

 《한국의 장승》은 한국땅에서 장승이 재빠르게 사라지던 때에 찍은 사진을 그러모읍니다. 재빠르게 사라지지만 그나마 좀 남던 때에 찍은 사진을 갈무리합니다. 이제 2010년대를 맞이한 오늘날 한국땅에서는 “한국의 장승”이건 “전라도 장승”이건 “경상도 장승”이건, 사진으로 담기조차 빠듯하리라 느낍니다. 어쩌면 이제는 이러한 이름을 붙이는 이야기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할 만하구나 싶어요. 이제는 “전남 영암군 금정면 쌍계사 터 장승”이라든지 “경북 충무시 문화동 장승”처럼 ‘가까스로 살아남았을까 싶은 장승 하나’만 날마다 숱하게 찾아가서 오래오래 바라보면서 ‘장승 하나만을 네 철 삼백예순닷새에 걸쳐 느낀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야 할까 싶습니다.

 ‘열화당 미술문고’ 22번으로 나온 《한국의 장승》입니다. 주명덕 님이 찍은 장승 사진이 이 작은 손바닥책에 모두 담기지는 않았겠지요. ‘열화당 미술문고’ 22번은 이제 찾아볼 길이 없기도 합니다. 지난날 찍었으나 미처 못 담은 숱한 장승 사진에다가, 2010년에 새로 달라졌을 장승 사진을 더할 수 있으면, 그야말로 “한국의 장승”이라는 이름이 걸맞는 사진책 하나 그럴듯하게 태어나리라 생각합니다.

 한겨레가 살아온 발자취가 어떠한지 헤아리고, 한겨레가 살아가는 오늘이 어떤 모습인가를 곱씹으면서, 어제 오늘 글피로 이어지는 삶이란 우리들 저마다 얼마나 값있거나 뜻있는가를 되새기는 사진이야기를 사진쟁이 두 다리 튼튼하게 내딛는 싱그러운 삶길로 보여준다면 참 고맙겠구나 생각합니다. (4344.11.1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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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인형의 행복 - 3~8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11
가브리엘 벵상 글.그림 / 보림 / 199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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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쁘게 놀며 자라나는 즐거움과 그림책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94] 가브리엘 벵상, 《곰인형의 행복》(보림,1996)



 보금자리를 옮기느라 한 달 남짓 집식구가 한 자리에 모여 조촐히 지내기 퍽 힘들었습니다. 애써 한 자리에서 지내며 밥을 함께 먹더라도 미처 못 옮긴 짐에 아직 치우지 못한 짐이 한가득이요, 옆지기 어버이 살아가는 집에서 여러 날 머물 적에도 아이들 놀잇감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 달 하고 스무 날 만에 드디어 아이들 놀잇감을 이삿짐 나르는 짐차에 싣고 전남 고흥군 시골집으로 들어옵니다. 네 살 딸아이는 한 달 스무 날 만에 피아노를 만지고 놉니다. 아버지는 첫째 아이 놀잇감 가운데 인형을 곱게 담은 상자꾸러미를 맨 먼저 끌릅니다. 상자꾸러미를 끌러 아이를 불러 보여주지는 않고, 아이가 오가는 길목 잘 보이는 자리에 상자꾸러미를 열어 놓기만 합니다. 삼십 분쯤 뒤, 아이는 인형 상자를 이내 알아채고는 하나하나 꺼내어 “예쁘다” 하고 말하면서 잠자리맡에 한 줄로 나란히 앉힙니다.


.. “아니, 여기 또 있네! 이런 개울에서 무얼 하고 있어? 길을 잃어버렸니? 누가 너를 버렸어? 자, 우리 집으로 가자. 내가 보살펴 줄게.” ..  (4쪽)


 첫째 아이가 갖고 노는 인형 가운데 어머니(랑 아버지)가 사 준 인형은 딱 둘입니다. 옆지기(아이 어머니)가 꼭 한 번 사고프다 하던 인형 두 가지만 우리가 사서 아이한테 선물했을 뿐, 다른 인형은 모두 다른 사람이 놀다가 물려주었거나, 헌 물건 파는 데에서 값싸게 얻었거나, 옆지기가 어릴 적 갖고 놀던 인형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새 인형은 없습니다. 아이 나이하고 비슷한 인형이 없어요. 네 살 딸아이가 갖고 노는 인형들 나이가 서른 살 즈음 되었다고 할까요. 딸아이가 앞으로 이 인형들을 예쁘게 갖고 놀면서 예쁘게 건사할 수 있다면 딸아이가 낳을 딸아이한테 곱게 물려주면서 ‘예순 살 먹은 인형’이 될 수 있으며, 딸아이가 낳을 딸아이 또한 예쁘게 갖고 놀며 곱게 물려준다면 ‘아흔 살 먹은 인형’까지 될 수 있어요.

 아이들 갖고 노는 놀잇감을 찬찬히 바라봅니다. 옆지기가 어릴 적 옆지기 어머님과 아버님이 선물한 놀잇감이 꽤 많습니다. 옆지기 어린 동생이 갓난쟁이일 무렵 갖고 놀던 놀잇감 또한 퍽 많습니다. 첫째 아이는 제 어머니랑 외삼촌이 갖고 놀던 놀잇감을 살그머니 물려받습니다.

 이 가운데 아버지가 어린 날 갖고 놀던 놀잇감은 얼마 없습니다. 아버지라고 놀잇감이 얼마 없지는 않을 텐데, 참말 아버지 놀잇감은 얼마 없어요. 그렇다고 아버지 놀잇감이 모두 쓰레기터 어딘가에 묻히거나 불타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이럭저럭 아버지 놀잇감도 제법 남았어요.

 다만, 아버지 놀잇감은 종이상자에 차곡차곡 담겨 짐꾸러미 어딘가에 틀어박힙니다. 아버지는 어릴 적 갖고 놀던 놀잇감을 꺼내지 않습니다. 옆지기가 이녁 놀잇감을 아이한테 물려주며 예쁘게 건사하도록 이끄는 맑은 빛을 모르던 아버지이기에, 아이가 조금 더 자랄 때에 ‘네 아버지하고 함께 살아오던 낡은 물건’이랍시고 보여주기만 하겠구나 싶어요.


.. “누가 좀 가르쳐 줘. 사람들은 왜 나를 쓸모없다고 할까? 내가 그렇게 낡았니?” “조용히 해! 조용히 해! 그건 우리도 모두 마찬가지야. 그만 조용히 해!” ..  (9쪽)


 내 어린 날을 돌이킵니다. 내 어린 날 우리 어머니는 형이랑 내가 갖고 놀던 놀잇감을 틈틈이 그러모아 말끔히 내다 버리셨습니다. 형이랑 내 놀잇감을 말끔히 내다 버리고 나면, 형이랑 내가 쓰던 작은 방이 무척 넓게 보이고 시원해 보입니다. 그러나 허전합니다. 텅 비고 쓸쓸합니다. 동생은 으레 쓰레기터에 들어가 쓰레기내음으로 온몸이 절면서 버려진 놀잇감을 찾습니다. 이렇게 찾아서 돌려놓아도 어머니는 다시 버리셨고, 또 찾고, 또 버려지고 …… 끝끝내 아주 버려진 놀잇감이 많고, 끝까지 되살린 놀잇감이 제법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어린 날을 보낸 나머지, 내 살아남은 놀잇감을 쉽사리 아이한테 보여주면서 아이가 마음껏 갖고 놀도록 이끌지 못해요. 바보스러운 생각만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옆지기 어머님이나 아버님은 옆지기 어린 나날 놀잇감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한쪽에 잘 건사해 주셨습니다. 옆지기는 이런저런 놀잇감이 있었는지조차 떠올리지 못하기도 합니다. 옆지기는 어릴 적에 이 놀잇감들로 신나게 놀았고, 이제 이 놀잇감들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아이들이 갖고 놀도록 합니다.

 아이들은 아직 손짓 몸짓이 무르익지 않았으니, 또 이것저것 궁금하기도 하니까, 혼자 섣불리 갖고 놀다가 부러뜨리거나 잃어버리곤 합니다. 이때에 옆지기는 딱히 무어라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혼자 곁에서 ‘아이고!’ 할 뿐입니다.

 그런데, 아이는 때때로 드물게 부러뜨리거나 잃어버리기는 해도, 늘 부러뜨리거나 잃어버리지는 않아요. 아니, 옆지기랑 내가 어머니와 아버지로서 옳게 사랑하지 못하는 날이나 참다이 살아내지 못하는 날에 이렇게 놀잇감을 망가뜨리거나 잃곤 합니다. 어버이부터 어버이답게 착하면서 슬기로울 때에는 아이들도 아이답게 착하면서 슬기롭습니다. 어버이부터 사랑스러우면서 해맑을 때에는 아이들도 아이답게 사랑스러우면서 해맑아요.


.. “콩콩아, 그만 울고 어서 자야지. 내일 보자, 안녕!” ..  (13쪽)


 두 아이 외삼촌인 옆지기 동생은 이듬해에 고등학생이 됩니다. 고작 세 해 앞서까지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아이들 외삼촌은 이녁이 어릴 때에 갖고 놀던 놀잇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기도 합니다. 아이들 외삼촌은 외삼촌대로 오늘 나이에 맞게 새로운 놀잇감을 찾아 즐깁니다. 우리 아이들도 우리 아이들 나이에 맞게 저희 놀잇감을 즐기면서 한 살 두 살 새로 먹겠지요. 아버지인 나는 아이들 노는 양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아이들이 더 갖고 놀지 않는 놀잇감’이 보이면 넌지시 집어서 조용히 상자에 담겠지요. 아이들이 앞으로 나이를 더 먹고 나서 돌려줄 수 있게끔, 아이들이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이 되면 슬그머니 내밀며 ‘너희 어버이는 돈 버는 재주가 없어 돈을 물려주지 못한다만,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을 모을 줄만 알아 이런 것만 겨우 물려준다.’ 하는 글월 하나 붙이겠지요.


.. “그래 그래, 이건 네 거야. 자, 어서 가져가. 하나 더 가지고 싶다고? 그래, 그것도 가지렴! 안녕.” ..  (35쪽)


 가브리엘 벵상 님이 일군 그림책 《곰인형의 행복》(보림,1996)을 아이와 함께 읽습니다. 나는 이 그림책을 두 아이가 아직 이 땅에 찾아오지 않고, 옆지기 또한 아직 모르던 때부터 혼자 즐거이 읽었습니다. 나하고 함께 살아갈 옆지기가 있을까 없을까 모르던 때부터 그저 혼자 즐겁게 읽었습니다. 내 숨결이 사랑이 되어 작은 씨앗으로 빚어지는 예쁜 아이들이 태어날는지 안 태어날는지 알 노릇이 없던 때부터 그예 홀로 신나게 읽었습니다.

 첫째 아이가 네 살이 된 때에 이 그림책을 새로 장만합니다. ‘아버지가 보던 책’은 따로 있는데, ‘딸아이가 볼 책’을 구태여 다시 장만합니다. 우리 집에는 아버지가 예전에 혼자 보던 그림책이 많습니다. 이 그림책마다 아이 손자국이며 연필 자국이며 가득 묻습니다. 두 번 다시 살 수 없는 옛날 그림책에까지 아이가 볼펜으로 죽죽 그림을 그려 아이고야 한 적이 있으나, 그래도 어쩌는 수 없이 고맙게 여기자고 느껴요. 애틋한 물건으로 치면 슬프지만, 살가운 물건으로 치면 새 살이 돋는 셈이거든요. 참말 앞으로 우리 딸아이가 저처럼 예쁜 딸아이를 낳아 돌보는 날을 맞이할 때까지 내가 살아갈 수 있으면, 나는 내 딸아이가 낳은 딸아이를 무릎에 앉히고는 “자 봐라, 여기 이 그림과 줄이 너희 어머니가 너희 할아버지 알뜰히 여긴 책에 남긴 선물이란다.” 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아마 어느 날은 ‘딸아이가 낳을 딸아이’가 할아버지한테 여쭙겠지요. “왜 이 그림책은 두 권이 있어요? 어, 이 그림책은 세 권이나 있네?” 하고. 그러면 할아버지가 될 나는 “너희 어머니가 신나게 보느라 다 낧거나 닳으면 너희가 볼 수 없으니, 앞으로 오래오래 간직하면서 보여주고 싶어 부러 한두 권 더 장만해서 갖춘 책이란다.” 하고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어쩌면, 《곰인형의 행복》은 2040년까지 판이 안 끊어질 수 있고, 2040년 무렵 우리 딸아이가 딸아이를 낳을 때에도 새책방에서 찾아볼 수 있어, 새책으로 장만한다면, 오래오래 묵은 내 그림책과 내 딸아이 그림책에다가 ‘딸아이가 낳은 딸아이’ 그림책 세 가지가 한 자리에 놓이리라 생각합니다. (4344.11.10.나무.ㅎㄲㅅㄱ)


― 곰인형의 행복 (가브리엘 벵상 글·그림,보림 펴냄,1996.7.30./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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