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 303호 2011.09.05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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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한테 읽히는 책일까
 [책읽기 삶읽기 86] 《기획회의》(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303호



 책을 다루는 잡지 《기획회의》(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303호(2011.9.5.)를 읽으며 생각한다. 《기획회의》 303호는 ‘대안의 삶을 꿈꾸다’를 내걸며 꾸린다. 책마을 안팎에서 힘껏 일하는 분들이 퍽 좋다 손꼽을 만한 책을 한두 가지씩 들면서 ‘다른(대안) 삶길’을 이야기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나로서는 선뜻 와닿는 이야기가 없다고 느낀다. 한 마디로 간추려 ‘바로 오늘 이곳에서 무엇부터 함께하면 좋을까’ 하는 이야기를 다루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가 온전하게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두 시골살이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디에서 뭘 하고 살든 일상에서, 마음속에서 ‘시골’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이때 ‘시골’은 곧 생태적 감수성의 회복, 혹은 겸손하고 자족적인 생활의 추구와 다른 뜻이 아니다 ..  (17쪽 여는글/최성각)


 참다이 즐겁게 살아가자면 바로 오늘 이곳부터 내 나날을 고쳐야 한다. 좋다고 여기는 삶이라면 더 좋게 고치고, 안 좋다고 생각하는 삶이라면 좋게 고쳐야 한다. 더도 덜도 아니다. ‘좋게’ 고칠 삶이다.

 나는 ‘생태적 감수성의 회복’과 같은 말놀이가 달갑지 않다. 무슨 소리인가. ‘생태적 감수성’이란 무엇인가. 누가 알아들으라는 말인가. 이런 말을 알아들을 사람한테 읽히면 되는 《기획회의》인가. 이런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말은 알아들으’면서 ‘삶은 안 고치느’라 ‘책만 더 많이 읽고 살아가’지는 않는가.

 책은 덜 읽어도 된다. 책은 안 읽어도 괜찮다. 아름다이 살아가면 넉넉하다. 착하게 어깨동무하면 흐뭇하다.

 텃밭을 일구거나 꽃그릇농사를 지으는 나날을 누린다면, 서울이나 인천이나 부산이나 대구에서도 얼마든지 예쁘게 살아갈 만하다. 그러나, 텃밭도 꽃그릇농사도 짓지 못하며 시멘트와 아스팔트 울타리에서 플라스틱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는 도시사람이면서 ‘시골살이 넋을 보여주는 책을 골고루 읽는’대서 스스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궁금하다. 아니, 달라지기는 하는가.


.. 후일담이지만, 책을 낸 뒤 “기획자인 당신은 이 가운데 몇 권이나 읽었나?” 그리고 “제목대로 된다는데 이 책도 안 팔리면 어쩌냐?” 하는 질문 또는 걱정을 많이 들었다 ..  (131쪽/정희용)


 그야말로 책은 안 읽어도 된다. 사람으로서 사람다이 살아갈 수 있으면 좋다. 사람다운 사랑을 일구지 못하며 책만 많이 알거나 읽거나 좋아한다면, 고운 목숨 선물받아 살아가는 뜻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내 어버이한테서 왜 고운 목숨을 선물받았는가. 나는 내 아이한테 왜 고운 목숨을 선물하는가.

 책은 안 팔려도 되고 덜 팔려도 된다. 제대로 읽혀야 비로소 책이다. 제대로 읽힐 수 있은 다음에 알맞게 팔리면 된다.

 1000권 팔리니 안타까운 책일 수 없다. 1만 권 팔리니 그럭저럭 쏠쏠한 책일 수 없다. 10만 권이나 100만 권 팔려야 책이라는 이름이 걸맞지 않다. 한 권이 팔리건 열 권이 팔리건, 한 권이 팔릴 때에는 한 사람이 옳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길을 보여주고, 열 권이 팔릴 적에는 열 사람이 바르게 사랑하며 지내는 꿈을 들려주어야 바야흐로 책이다.


.. 모든 일의 최우선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  (151쪽/한기호)


 좋은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한다면 참 기쁘리라. 그런데 ‘어떤 사람’한테서 ‘어떤 마음’을 얻으려 하는가부터 똑똑히 알아야 한다. 나쁜 사람한테서 나쁜 마음을 얻어도 될까? 어설픈 사람한테서 어설픈 마음을 얻어도 되나? 짓궂은 사람한테서 짓궂은 마음을 얻어도 되려나?

 책을 다루는 잡지 《기획회의》일 테지만, 책만 다루는 잡지로 나아가기보다는, 책을 사랑하는 삶을 아끼는 이야기를 다룰 줄 아는 길을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책은 덜 읽거나 책은 잘 모르거나 책하고는 좀 멀리 떨어진 채 살아가더라도 착하며 참답고 예쁜 나날을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들 글을 조금이나마 함께 싣는다면 반갑겠다.

 《기획회의》 303호는 ‘대안적 삶을 꿈꾸다’라 말하지만, 정작 ‘다른 자리에서 다른 꿈을 꾸면서 다른 사랑을 나누는’ 글을 찾아 읽을 수 없었다. 좋은 사람들이 좋은 글을 써서 담았으나, 그저 좋다 여길 만한 글에 머물 뿐, 착하며 아름다운 다른 사랑까지 거듭나지 못하고 만다. (4344.11.11.쇠.ㅎㄲㅅㄱ)


― 기획회의 303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2011.9.5./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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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밭 사진관
신현림 지음 / 눈빛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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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쟁이 된 능금나무밭에서 사진으로 찍는다
 [찾아 읽는 사진책 67] 신현림, 《사과밭 사진관》(눈빛,2011)



 신현림 님은 사진책 《사과밭 사진관》(눈빛,2011)을 내놓으면서 100쪽에 걸쳐 사진을 보여주고 40쪽에 걸쳐 글을 들려줍니다. 신현림 님은 사진과 글로 함께 이야기합니다. 맨 먼저 “사과꽃이 피고, 빨간 사과가 열리는 곳. 사과밭 쪽을 바라보자, 내게 푸른 바람이 불어왔다. 몹시 따사롭고 정에 넘치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 속에서 사과꽃 하나가 내 손에 사뿐 내려앉았다(105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능금꽃을 신현림 님 사진감으로 삼으면서 하얀 능금꽃과 빨간 능금알이 가슴속으로 어떻게 스며들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푸른 바람을 맞으며 푸른 몸이 되었다면 푸른 사진을 찍습니다. 맑은 바람을 쐬면서 맑은 넋이 된다면 맑은 사진을 담아요. 보드라운 바람을 누리며 보드라운 꿈을 키운다면 보드라운 사진을 이루어요. 사랑스러운 바람을 즐기며 사랑스러운 뜻을 나눌 때에는 사랑스러운 사진을 낳아요.

 신현림 님은 “나는 사과꽃 풍경 속에서 참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120쪽).”고도 이야기합니다. 능금밭에서 사진을 찍고 놀고 쉬고 일하면서 더없이 사랑받았구나 싶어요. 신현림 님을 낳은 어머님은 어린 신현림 님이 어른 신현림 님이 되기까지 돌보고 아끼면서 사랑씨를 가슴에 살며시 심었겠지요. 어린 신현림 님은 어른 신현림 님이 되어 딸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 딸아이 가슴에 사랑씨를 새롭고 새삼스레 심겠지요.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사랑을 못 나누란 법은 없어요. 다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란 없어요.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른 빛깔과 결과 내음과 무늬로 사랑을 받아요. 사람들 스스로 얼마나 사랑받는 줄 모르거나 어떻게 사랑받는 줄 못 깨달을 뿐이에요.

 온누리에 넘치는 글은 하나같이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온누리에 흐르는 그림은 한결같이 사랑이 감돕니다. 온누리에 빛나는 사진은 온통 사랑이라 할 만해요.

 신현림 님은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나는 사람들에게 자연 그리고 예술과 가까워지라고 말하고 싶다(128쪽).”는 말마디로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사람은 고운 목숨을 아끼며 살아가자면 누구나 어디에서나 사랑을 하기 마련이요, 사랑을 하는 삶을 누리면, 누구나 어디에서나 예술을 꽃피울 수 있어요.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삶이 망가지거나 흔들리는 셈이고, 사랑을 하지 않는 삶으로는 어떠한 예술도 꽃피우지 못해요.

 사진책 《사과밭 사진관》에 나오는 능금나무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어느 능금나무이든 키가 참 작습니다. 죄다 난쟁이 능금나무입니다. 그런데, 이들 난쟁이 능금나무는 가지마다 끈을 묶어 땅바닥에 박아요. 하늘로 뻗지 못하도록 붙잡힙니다. 하늘로 가지를 높일 수 없고, 열매를 ‘하늘을 나는 새’하고 나누지 못해요.

 사람들은 능금알을 맛나게 먹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이 언제 어디에서라도 퍽 값싸게 장만하면서 능금알을 즐깁니다. 능금알을 즐기면서 이 능금이 어떤 나무에서 어떻게 매달린 채 자라는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능금나무가 무엇을 먹고 능금알을 맺는지 헤아리지 않습니다. 능금알은 능금꽃이 피어야 맺힐 수 있는 줄 깨닫지 않습니다.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을 본 사람이라면, 앤이 처음 푸른지붕집 있는 마을로 들어서려고 마차를 타고 달릴 때에 한 마디조차 벙긋하지 못하면서 눈부시게 하얀 능금꽃 흐드러지는 길을 달린 모습을 떠올리리라 봅니다. 앤이 앞으로 살아갈 마을에서는 능금나무가 우뚝우뚝 솟아요. 하늘을 바라보며 자라요. 마음껏 가지를 뻗고 굵다란 열매를 맺습니다. 먼 옛날,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 무대가 되는 마을에서는 농약이든 비료이든 뿌리지 않습니다. 아니, 농약이나 비료나 없어요. 어느 사람도 가지를 끈으로 잡아당겨 땅에 못을 박지 않아요. 스스럼없이 자라나는 능금나무요, 사람들은 사다리를 타고 능금알을 따며, 이렇게 능금알을 딴다지만 멧새와 들새는 마음껏 날아들어 먹고픈 대로 알맞게 능금알 콕콕 쪼며 나누어 먹어요.

 오늘날 한국땅에서는 어른 키보다 높은 능금나무조차 보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한국땅에서는 굵직한 능금알만 얼른 잔뜩 매달아야 하는 슬픈 능금나무만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손쉽게 능금을 깨물어 먹지만, 막상 능금이 사람한테 베푸는 사랑이 무엇인가를 느끼지 못합니다. 사랑을 모르는 채 능금을 먹고 배를 먹으며 복숭아를 먹습니다. 사랑을 헤아리지 않으면서 수박을 먹고 참외를 먹으며 토마토를 먹습니다. 더 값싸다는 열매를 먹거나 유기농으로 키웠다는 열매를 먹을 뿐입니다. 사랑으로 씨앗을 심어 사랑으로 보살핀 다음 사랑으로 거둔 열매를 먹지 않아요.

 사진책 《사과밭 사진관》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이제껏 능금나무나 능금밭을 사진감으로 삼아 예쁜 사랑을 나누려고 마음을 기울여 살가이 만난 사람이 얼마나 있었나 궁금합니다. 꼭 능금나무가 아니더라도 배나무이든 대추나무이든 석류나무이든 감나무이든, 곁에서 애틋하게 사랑하면서 열매를 얻기도 하고 잎과 꽃과 줄기를 고루 즐기면서 사랑한 사진쟁이는 몇이나 될까 궁금합니다.

 스스로 나무를 심는 사진쟁이는 있는가요. 스스로 나무 심을 흙땅을 마련하는 사진쟁이는 있을까요. 스스로 나무와 같이 살아가자며 흙을 누리는 시골자락으로 살림터를 뿌리내리는 사진쟁이는 있나요.

 사진을 찍고 글을 쓴 신현림 님부터 능금밭 능금나무 그대로 결을 살리는 마을에서 딸아이와 예쁘게 뿌리내릴 수 있을 앞날을 꿈꿉니다. 《사과밭 사진관》을 즐긴 사람들 가운데 다문 한 사람이라도 능금밭 돌보는 흙집이라든지 능금나무 곱게 심어 아이들한테 물려줄 넋으로 살아가는 분이 한 사람이라도 나올 수 있기를 꿈꿉니다. (4344.11.11.쇠.ㅎㄲㅅㄱ)


― 사과밭 사진관 (신현림 글·사진,눈빛 펴냄,2011.10.4./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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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25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나무를 심고, 나무를 심을 흙땅을 마련하고
흙을 누리는 시골자락 살림터를 뿌리내리는 사진쟁이, 함께살기님 계시잖아요. ~^^
참, 사과나무와 능금나무는 같은 나무인가요~^^;;
저도 프로필 이름을 '능금나무'로 바꾸고 싶네요.^^;;;
 
경계의 린네 6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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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으로 사람을 움직여 사랑을 이룬다
 [만화책 즐겨읽기 78] 다카하시 루미코, 《경계의 린네 (6)》



 엊그제 이삿짐을 모두 날랐습니다. 도시인 인천을 떠난 2010년 가을부터 지내던 충청북도 멧골자락에서 한 해 남짓 살다가 전라남도 고흥군 시골마을로 옮겼습니다. 멧골집을 시골집으로 옮기려고 반 해 가까이 책짐을 꾸리면서 새터를 알아보러 다녔어요. 이동안 집식구와 집과 책과 살림 모두 고단하게 지냈습니다. 오래오래 뿌리내리고픈 마음으로 심은 살구나무 두 그루도 그대로 둔 채 떠나야 했어요.

 새터를 찾고 빈집을 얻어 이렁저렁 지낼 만큼 고친 다음 책짐을 나르러 충청북도 옛 멧골집으로 찾아가면서 시외버스를 아홉 시간 탔습니다. 전라남도 고흥에서 충청북도 음성으로 가는 차편이 마땅하지 않아 돌고 돌다 보니 아홉 시간 걸리더군요. 오래 걸릴 줄은 알았으나 너무 오래 걸렸고, 오래 걸리리라 여기며 시외버스에서 읽자며 책을 서너 권 챙기는데, 버스간에서 머리가 몹시 어지러워 얼마 못 읽고 덮습니다.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가벼운 만화책을 읽어도 졸립더군요. 마음을 깊이 기울이면서 사랑스러운 넋으로 읽어야 하는 아나스타시아를 읽을 때에도 졸립고요. 조복성 님 곤충기는 그럭저럭 견디며 읽었으나 속이 메스꺼워 한손으로는 이마를 짚고 한손으로는 배를 쓰다듬으며 머리는 창문에 기대며 버티었습니다.

 새삼스러우면서 새롭지 않은 일일 텐데, 여느 도시사람은 도시에서 시내버스나 전철을 어떻게 타고 다니는지 참 모를 노릇입니다. 버스이든 전철이든 한 시간 넘게 타는 일은 몸을 매우 지치게 합니다. 자가용이든 택시이든 한 시간 넘게 탄다면 지치는 몸 따라 지치는 마음이 되겠구나 싶어요. 좋은 책을 읽고픈 마음이 생기지 않아요. 좋은 책을 손에 쥐어도 읽히지 않아요. 좋은 책을 애써 읽어도 가슴으로 삭이기 벅차요. 좋은 책을 차근차근 삭이려 하더라도 온삶 들여 새로 거듭나는 길이 꽉 막혔어요.


- “틀림없어. 나는 저주받고 있어.” “대체 누가 …… 츠바사!” “(뜨끔) 어.” “무슨 방법이 없을까? 츠바사는 퇴마사잖아.” ‘그, 그건.’ “누가 그랬는지 몰라도, 사람을 저주하는 건 저질이야.” “뭔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구나. 그래도 저질이야.” (33∼34쪽)


 다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1) 6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삿짐을 모두 나르고 나서 이틀을 푹 쉰 끝에 천천히 읽으며 생각합니다. 맑은 꿈과 밝은 길을 재미나게 들려주는 다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인데, 이러한 만화책 또한 몸이 지치고 마음이 힘들면 옳게 헤아리기 어렵겠구나 싶습니다. 더욱이, 《경계의 린네》 6권은 ‘나쁜 마음을 품는 사람이 불러들이는 나쁜 짓’과 ‘착한 마음을 품는 사람이 새로 북돋우는 좋은 일’을 시나브로 보여줘요.

 마음으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마음으로 이루는 사랑입니다.

 마음으로 하는 일이에요. 마음으로 즐기는 놀이예요.

 마음이 있기에 사람입니다. 마음으로 나누는 삶입니다. 마음으로 기쁜 사랑이에요.


- “로쿠도도 아버지의 피해자라는 걸 잘 알았죠? 이제 다시는 생명의 불꽃 같은 걸 빼앗지 말아요.” “흥.” (187쪽)


 좋은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좋은 마음으로 좋은 사랑을 나누는 좋은 삶을 누리면 돼요. 좋은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좋은 돈이란 많은 돈이 아닌’ 줄 옳게 깨달아 좋은 삶을 좋은 사랑으로 누릴 만한 좋은 돈이 얼마만큼인가를 착하게 헤아리면 돼요.

 마음이 예뻐야 사람이에요. 마음이 아름다울 때에 살가운 목숨이에요. 마음이 어여쁘지 않고서야 꽃이든 풀이든 나무이든 어여삐 쓰다듬지 못해요. 경계에 선 린네는 일만 해서 빚만 갚는 가난뱅이로 끝날 수 있는 삶이지만, 착한 마음으로 아리따이 살아가려는 사랑을 천천히 받아먹으면서 튼튼한 빛줄기를 가꿉니다. (4344.11.11.쇠.ㅎㄲㅅㄱ)


― 경계의 린네 6 (다카하시 루미코 글·그림,서현아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10.2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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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앞서 올린 글하고 거의 같은데, 앞서 올린 글에 '못 담은 이야기'가 있어 따로 붙입니다. 앞서 올린 글은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올리면서 이래저래 자르고 다듬은 글'이고, 이 글은 기사가 되기 앞서 '덜 정리된 채 여러 뒷이야기를 조금 더 많이 담은 글'이에요. 아무튼, 여덟 해나 묵은 글이라서 부끄러운 말투와 말법이 많이 보이네요... ㅠ.ㅜ hnine 님 아무쪼록 즐거이 읽어 주셔요...



 이오덕,권정생 선생님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할 사람
 [책읽기가 즐겁다 39] 허락도 없이, 출판계약서도 없이 책을 낸 한길사



 <1>

 지난 2003년 11월 5일 새로운 책이 하나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나온 일은 그 책을 펴낸 출판사에서만 알고 있었습니다. 책은 차근차근 서점에 진열이 되었고 독자들도 한 사람 두 사람 책을 사 보았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신문 광고도 냈고, 보도자료도 돌려서 신문사 문화부 기자들은 그 보도자료를 보며 기사를 썼습니다. 그래서 지난 11월 12일에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 11월 13일에는 <문화일보>에서 큼직한 지면을 빌어서 책을 소개했습니다.

 새로 나온 책은 <살구꽃 봉오리를 보면 눈물이 납니다>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어린이문학과 교육을 살리고자 온몸을 바친 두 분이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책입니다. 먼저 한 분은 지난 2003년 8월 25일에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 다른 한 분은 이오덕 선생님에게는 둘도 없는 벗인 권정생 선생님. 이오덕 선생님은 살아계실 적에도 권정생 선생님과 주고받은 편지를 세상에 내놓아 알리고픈 마음을 품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처럼 깨끗하면서도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 삶을 널리 알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와 가르침이 되리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런 마음을 `생각'으로만 품었지 책으로는 펴내지 않았습니다. 책으로 내기에는 어려운 대목이 많아서입니다. 가난하고 힘겹고 아픈 몸으로 죽음과 몇 번이나 싸우면서 겨우겨우 살아가는 권정생 선생님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비참하고 동정이 가는 불쌍한' 모습이 그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거든요. 더구나 세상에 아직 알려지면 안 되는 당신 지난 삶 이야기가 편지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오덕 선생님도 좋은 뜻만 품었을 뿐 책으로 내는 일은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허락'은 하지 않은 채였습니다. 다만, 언제라도 권정생 선생님이 "책으로 내도 좋겠어요" 하고 말을 하면 책으로 내도록 준비만은 해서 편지를 `한길사'라는 출판사에 맡겨서 한번 검토하라고 했을 뿐입니다.


 <2>

 그러는 가운데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편지가 세상에 공개되는 걸 바라지 않았으나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그 편지 가운데 몇몇(일부)을 방송에 공개했습니다. 물론 유족과 권정생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채였습니다.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을 기리는 방송에 그 편지 몇 통을 공개한 거죠.

 약속을 어기고 공개한 김언호 사장은 왜 그랬을까요? 무척 궁금한 대목입니다. 돌아가신 뒤 한 달 반쯤 지난 어느 날입니다. 한길사 편집부에서 이오덕 선생님 유족이 사는 충주로 내려와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 이러한 책을 내려고 했다'면서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이 주고받은 `편지봉투'를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유족은 그때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고, 유족은 이오덕 선생님 유언에 그런 책을 내라는 이야기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편지 가운데 얼마가 방송에 공개되었다고 했을 때는 `편지 내용을 검토해 보고, 이미 공개가 되었으니 할 수 없이 내야 한다면 내야겠다'고 하면서 한길사 편집부 직원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이오덕 선생님 유족은 그 `편지 내용'을 볼 길이 없었습니다. 한길사 쪽에서 유족에게 원고를 보내주지 않았거든요. 더구나 편지봉투 몇 장을 빌려간 뒤로는 아직까지 돌려주지 않은 채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덜컥 소리소문도 없이 책을 낸 거죠.

 이오덕 선생님 유족은 그 뒤로 농사일과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 뒷일을 보느라 정신이 없이 바빴고, 그리하여 `한길사에서 보내지 않은 편지 원고'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며칠 뒤 이오덕 선생님 방 한쪽 구석에서 `한길사에서 지난날 가제본으로 찍은 편지 원고 사본'을 찾았습니다. 물론, 그때까지도 한길사에서는 원고도 사본도 보내지 않은 채였습니다. 그리하여 유족은 그 편지 원고 사본을 하나씩 살펴보았는데, 아무래도 내서는 안 되겠고, 낼 수도 없다고 생각하여 권정생 선생님에게 전화를 드려서 "책을 낼 수 없겠다"고 말씀을 드렸고, 권정생 선생님은 그때 "내(권정생)가 죽은 뒤 ◎◎년 뒤에 내면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내지 말아라" 하고 말했습니다.


 <3>

 그렇게 시간은 흘러서 11월 10일입니다. 이오덕 선생님 유족이 어느 독자에게 전화를 받습니다. `신문에 난 광고'를 보았고 `책을 서점에서 사서 읽'었다며 어찌된 일인지 묻는 전화였습니다. 이튿날에도 또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하여 이오덕 선생님 유족은 한길사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한길사 직원 말은 "광고만 냈다"였습니다. `책은 안 냈다'였습니다. 그러다가 10분쯤 뒤, 한길사 김언호 사장이 유족에게 직접 전화를 겁니다. 그리고 유족에게 "좋은 책 내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며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 "이미 허락을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궁금증이 듭니다. "출판을 허락"했다면 틀림없이 `출판계약서'를 씁니다. 하지만 이오덕 선생님이나 권정생 선생님은 유언이든 전화로든 `허락'을 하지 않았으며 `출판계약서' 한 장조차 쓰지 않았습니다. `출판계약서'를 쓰지 않고서 `허락을 했다'는 말만으로 책을 낼 수가 있을까요?


 <4>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11월 12일 충주로 내려와서 이오덕 선생님 유족을 만납니다. 내려오기 앞서 펴낸 책을 `판매중지'를 시키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내려온 날, 그 다음날(11/13), 또 이튿날(11/14)까지도 판매중지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미 낸 책과 관련된 `출판계약서' 한 장도 가지고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출판을 허락하지도 않았으나 `사후조처'로 출판계약서를 쓰는 일조차 하지 않습니다.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충주를 거쳐 안동으로 갑니다. 안동에는 권정생 선생님이 살고 있습니다.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안동에 가서 `권정생 선생님과 웃는 얼굴로 이야기'했다며 `책을 내는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시더라' 하는 이야기를 이오덕 선생님 유족에게 이야기합니다. 한길사 사장과 전화 통화를 한 다음, 이오덕 선생님 유족은 권정생 선생님에게 전화를 합니다. "출판 허락을 했느냐"고 묻는 유족 말에 "절대 아니다"며, "방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밖에 세워서 벌벌 떨게" 해서 돌려보냈다고, "읽으라고 가져온 책은 읽지 않고 아직도 그냥 밖에 그대로 있다"고 했습니다.


 <5>

 이오덕 선생님은 권정생 선생님과 주고받은 편지를 세상에 알리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경우가 없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권정생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고 동의를 얻은 다음'에 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한길사에서는 이오덕 선생님에게 `확답'을 받지 않은 가운데,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저작권 승계자인 아드님에게도 허락이나 동의를 받지도 얻지도 않았습니다. 나아가 `반드시 권정생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으라'는 말까지 어기는 한편, 출판계약서조차 쓰지 않는 가운데 책을 펴냈습니다.

 더불어 `판매정지'를 시킨 다음 `사과'를 빌고 `양해'를 얻으려 한다고 말했음에도 `판매정지'나 `출판정지'나 `출고정지' 가운데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일반 서점에서 이 책은 잘 팔리고 있습니다.

 여러 정황과 흐름과 상황으로 볼 때 지금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여러 가지로 큰 죄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첫째, 돌아가신 분, 유족, 권정생 선생님 모두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책을 냈다.
 둘째, 거짓말을 했다.
 셋째, 출판계약서도 쓰지 않았다.
 넷째, 책이 나오고도 알리지 않았다.
 다섯째, 책이름조차 멋대로 붙였고, 머릿글도 허락을 안 받고 함부로 실었다.
 여섯째, 신문사 기자에게 이상한 말을 해서 권정생 선생님을 나쁘게 비치게 했다.
 일곱째, 잘못을 저지르고도 오히려 뻔뻔스럽게 자기는 `잘했다'고 한다.
 여덟째,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백일도 되지 않았는데 이런 잘못을 저질러 선생님 유족들 마음을 더욱 아프고 무겁게 만들었다.


 <6>

 권정생 선생님은 이 책을 두고 "당신이 죽은 뒤 ◎◎ 해 뒤"에 내면 몰라도, 그때까지는 죽어도 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 유족은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편지를 보았습니다. 유족들은 나중에 내용을 보고서 문제가 되는 내용이 많아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나아가 출판사 쪽에서는 유족에게 내용을 보여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을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 원고를 정리하다가 선생님 방 한쪽 구석에 박혀 있던 `가제본 뭉치'를 보고서야 내용을 알았습니다. 틀림없이 몇 번씩이나 `내서는 안 된다'고 했음에도 한길사는 책을 냈습니다. 그런데 한길사 쪽에서 하는 말은 "좋은 책 낸다는데 무슨 문제입니까?"입니다.

 지난 11월 12일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는 새로 나온 책 기사가 실렸습니다. 11월 13일에는 <문화일보>에 책소개 기사가 실렸습니다. 더불어 책이 나온 이야기와 신문에 났다는 이야기를 모두 `책을 사서 읽은 독자'가 보고서 유족에게 전화로 연락했습니다. 더구나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권정생 선생님"이 "완강히 반대"를 해서 출판이 늦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마치 권정생 선생님이 그저 `반대만 고집스레' 한 사람인 것처럼 비추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를 했을 뿐 아니라 내지 못하게 한 책임에도 `한길사에서 출판정신과 계약과 법을 어기고 책을 냈다'는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실려 있지 않습니다.

 "광고만 냈다"는 책은 벌써 책방에 깔린 뒤였고, 신문에도 소개가 나왔습니다. 목요일에는 <문화일보>에 더욱 큰 기사로 소개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이야기일까요. 이오덕 선생님 유족과 권정생 선생님은 `책이 나오는 일'을 `절대 반대'했기 때문에 두 분이 미리 알면 당연히 못 내게 할 테니, 몰래몰래 일을 꾸며서 한길사 쪽에서 자기들끼리 주물럭주물럭 만져서 책을 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한길사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혐의가 또 하나 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선생님 뜻을 기리고 헤아리는 책이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출판사들을 제쳐놓고 `이오덕 선생님 책을 선점하여 출판사 이름값도 높이고 한길사가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 뜻을 높이 기리는 좋은 출판사인 것으로 선전하려는 속셈이란 혐의 말입니다. 어떻게 보아도 한길사에서 출판 계약도 없이, 허락도 받지 않고, 나아가 몰래 책을 내고, 판매정지도 시키지 않는 가운데 말 바꾸기만을 되풀이하는 모습은 돌아가신 분 이름과 글을 팔아서 출판사 배를 채우는 일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7>

 어차피 책이 나오면 다 알게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뻔뻔스러운 일을 한길사에서는 했을까요?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옛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야기 사이에 곁들여 지난날 있었던 일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 계실 적 이야기입니다. <우리 글 바로쓰기>를 낸 지 얼마 안 된 뒤 이야기입니다. 그때 한길사 김언호 사장과 이오덕 선생님과 다른 여러 선생님들이 한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침 이오덕 선생님이 잠깐 화장실을 가셨습니다. 그때 김언호 사장이 하는 말이, "저 고집불통 늙은이...". 조금 뒤 이오덕 선생님이 화장실에서 돌아오자 하는 말이, "아이고 선생님..."

 앞과 뒤에서 보이는 행동이 다른 모습을 보여온 흐름 위에서 출판정신을 거스르는 한편 유족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일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더구나 아직까지도 유족과 권정생 선생님에게 입바른 사과조차 하지 않은 한길사입니다.

 책을 몰래 냈으니 책이름도 한길사 마음대로 붙였습니다. 죽어도 낼 수 없다고 했으나 몰래몰래 만들어 내는 책에 `머릿글'을 넣어야 했으니 권정생 선생님이 다른 매체에 쓴 `이오덕 선생님 추모글'을 몰래 실었습니다. 편지도 몰래 허락도 받지 않고 내고, 머릿글도 허락도 안 받았습니다. 사실 관계도 사실 관계지만, 취재를 하는 가운데 보고 알게 된 이런 대목에서는 놀라움과 함께 분노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길사에서는 백배사죄를 해도 죄값을 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유족과 권정생 선생님이 입은 상처를 조금이나마 씻어드리는 길은 지금까지 낸 모든 책을 오늘부터 당장 거두어들이고 두 분이 보는 앞에서 폐기를 시키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미 팔린 책까지도 독자에게 수소문을 해서 책값의 몇 갑절을 손해보상을 해 주고 거두어들여서 마찬가지로 폐기를 하면 좋겠고요. 또 하나 있습니다. 벌써 언론 매체에는 보도자료까지 돌려서 소개가 크게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언론 매체에도 `소개가 나온 기사 크기'만큼 공개사과를 올려야 할 줄 압니다. 나아가 오늘 이때까지도 책을 팔고 있는 한길사는 책을 팔아서 거둔 모든 수익과 그 수익의 몇 갑절을 `사죄'하는 뜻으로 사회에 기부해 어렵게 살아가는 분들을 돕는 성금으로 내면 더욱 좋겠고요.

 잠깐 고개를 들어 가만히 생각해 보아요. "좋은 책"은 "좋은 마음과 부지런히 흘리는 땀방울과 올곧은 얼"로 만들어야 좋습니다. 줄거리는 좋은 책이라고 하지만, `좋은 책'을 만드는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그 책을 좋은 마음으로 읽을 수가 없어요. `나쁜 마음'이 아닌 `좋은 마음'으로 책을 만드는 문화가 우리 나라에 자리잡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좋은 책'을 함부로 만져서 `좋은 책'을 더럽히는 일은 이 땅에서 사라져야겠고요.


 <8>

 기사를 맺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은 한길사라는 출판사가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곳으로 알고 있어요. 출판인회의라든지 파주 책마을이라든지 말이에요. 어둡던 독재 정권 때는 좋은 책을 또 얼마나 많이 펴냈던가요. 그런데, 그런 출판사에서 알고 보니 책을 이렇게 내고 있으며 이오덕 선생님 유족과 권정생 선생님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면서도 사과를 하지 않고 법을 어겨가며 낸 책을 판매정지도 하지 않아요.

 참 안타깝습니다. 무어라 할 말이 없습니다. 더구나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아직 100일도 되지 않았는데 이런 낯부끄러운 일을 저질러서 더욱 슬픕니다. 이오덕 선생님 유족도 유족이고 권정생 선생님도 권정생 선생님이지만 무덤에 묻힌 이오덕 선생님은 얼마나 마음이 무거울까요.

 요 며칠 동안 날이 참 찌뿌둥합니다. 혹시나 이 찌뿌둥한 날씨가 땅속에 계신 이오덕 선생님 마음이 무거운 뜻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한길사에서는 독자와 언론 앞에 고개숙여 사죄를 하고 앞으로는 출판얼을 똑바로 지키는 출판사로 거듭나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부디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과 유족과 권정생 선생님과 독자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하기를 바랍니다.
 
                                           4336(2003).11.1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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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서재 hnine 님이 '이오덕-권정생 편지책' 뒷이야기를 궁금해 하시기에, 이제 이 글을 걸칩니다. 벌써 여덟 해나 지난 일이지만, 여태껏 그닥 달라지거나 나아진 대목은 하나도 없기에 예전 글을 걸쳐 봅니다. 2003년에 알라딘서재 게시판에는 이 글을 안 올렸군요. (그때에 알라딘서재가 있었나 잘 모르겠습니다) 2003년에 쓴 글이라서, 이 글을 다시 살피니 '올바르지 않은 말법과 말투'가 곳곳에 부여 부끄럽네요 ㅠ.ㅜ 

아무튼 글이 퍽 길고 여럿이며,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공식으로 올림 기사입니다. 이 기사를 바탕으로 모든 중앙일간지에 후속보도가 이루어졌고, 이 기사가 나간 지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출고정지'와 '일시품절'을 해서 책이 더 팔리지는 않았으나, 실제로는 1800권쯤 팔린 줄 압니다. 남은 책은 이오덕 선생님 유족한테 책을 돌려주었습니다.



 한길사는 이오덕·권정생 선생님 앞에 사죄해야
 [책읽기가 즐겁다 39] 허락도 없이, 출판계약서도 없이 책을 낸 한길사



 <1>

 지난 2003년 11월 5일 새로운 책이 하나 세상에 나왔습니다. 책은 차근차근 서점에 진열이 되었고 독자들도 한 사람 두 사람 책을 사 보았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신문 광고도 냈고, 보도자료도 돌려서 신문사 문화부 기자들은 그 보도자료를 보며 앞다퉈 기사를 썼습니다.

 새로 나온 책은 <살구꽃 봉오리를 보면 눈물이 납니다>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어린이문학과 교육을 살리고자 온몸을 바친 두 분이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책입니다. 먼저 한 분은 지난 8월 25일에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 다른 한 분은 이오덕 선생님에게는 둘도 없는 벗인 권정생 선생님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살아 계실 적에도 권정생 선생님과 주고받은 편지를 세상에 내놓아 알리고픈 마음을 품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처럼 깨끗하면서도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 삶을 널리 알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와 가르침이 되리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런 마음을 `생각'으로만 품었지 `실천'으로 옮겨 책으로 펴내지는 않았습니다. 책으로 내기에는 어려운 대목이 많아서입니다. 가난하고 힘겹고 아픈 몸으로 죽음과 몇 번이나 싸우면서 겨우겨우 살아가는 권정생 선생님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비참하고 동정이 가는 불쌍한' 모습이 그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거든요.

 더구나 세상에 아직 알려지면 안 되는 당신의 지난 삶 이야기가 편지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오덕 선생님도 좋은 뜻만 품었을 뿐 책으로 내는 일은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허락'은 하지 않은 채였습니다. 다만, 언제라도 권정생 선생님이 "책으로 내도 좋겠어요" 하고 말을 하면 책으로 내도록 `준비'만은 해서 편지를 `한길사'라는 출판사에 맡겨 한번 검토하라고 했을 뿐입니다.


 <2>

 그러는 가운데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편지가 세상에 공개되는 걸 바라지 않았으나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그 편지 가운데 몇 편을, 이오덕 선생을 기리는 방송에서 공개했습니다. 물론 유족과 권정생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채였습니다.

 사실 책으로 나온 과정도 문제이지만 여기서도 큰 문제입니다. `한길사'에는 두 분이 주고받은 편지를 `보관'할 권리는 있었지만 `공개'할 권리는 없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한 달 반쯤 지난 어느 날입니다. 한길사 편집부에서 이오덕 선생님 유족이 사는 충주로 내려와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 이러한 책을 내려고 했다'면서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이 주고받은 `편지봉투'를 빌려달라고 했답니다.

 하지만 유족은 이오덕 선생님 유언에 그런 책을 내라는 이야기가 없었다며 `편지 내용을 검토해 보고, 이미 (방송에) 공개가 되었으니 할 수 없이 내야 한다면 내겠다'고 일단 한길사 편집부 직원을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길사는 원고를 유족에게 보내주지 않았고 더구나 편지봉투 몇 장을 빌려간 뒤로는 아직까지 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덜컥 책이 나온 것이죠.

 며칠 뒤 이오덕 선생님 방 한쪽 구석에서 `한길사에서 지난날 가제본으로 찍은 편지 원고 사본'을 우연하게 찾아내서 살펴본 유족은, '아무래도 내서는 안 되겠고, 낼 수도 없다'고 생각해 권정생 선생님에게 전화를 드려 "책을 낼 수 없겠다"고 말씀을 드렸고, 권정생 선생님은 그때 "내(권정생)가 죽은 뒤 ◎◎년 뒤에 내면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내지 말아라"고 말했다 합니다.


 <3>

 그 뒤 11월 10일 이오덕 선생님 유족은 어느 독자로부터 책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한길사로 확인했습니다. 이에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유족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좋은 책 내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며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이미 허락을 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출판을 허락"했다면 틀림없이 `출판계약서'를 씁니다. 하지만 이오덕 선생님이나 권정생 선생님은 유언이든 전화로든 `허락'을 하지 않았으며 `출판계약서' 한 장 쓰지 않았습니다. `출판계약서'를 쓰지 않고서 `허락을 했다'는 말만으로 책을 낼 수가 있을까요?

 기자는 이 대목에서 참과 거짓을 가리고자 한길사 편집부 강옥순 주간과 전화통화를 했고, 이오덕 선생님 유족이 사는 충주에 내려가서 서류와 사실 관계를 알아보았습니다. 비록 간접이지만 이오덕 선생님 아드님인 이정우님 곁에서 권정생 선생님과 전화통화 하는 내용을 옆에서 직접 듣기도 했습니다.

 기자는 한길사에 "출판계약서를 쓰지 않은 까닭"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한길사에서는 "이오덕 선생님은 예전에도 한길사에서 책을 내실 때는 출판계약서를 쓰지 않았다"며 "구두로만 계약을 한 뒤 인세가 발생하면 이를 정산해서 지급해 드렸"고, 이렇게 하면 "이오덕 선생님이 받아들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유족은 "아버님(이오덕 선생님)은 아주 꼼꼼하신 분"이라면서 "당신이 전화통화를 누구하고 하고 무슨 말을 했는가까지도 수첩이나 일기에 적는 분"이고 "글 하나를 선집에 실을 때도 출판동의서를 받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기자도 실제 이오덕 선생님 유고 뭉치에서 `출판계약서'와 `출판동의서' 뭉치를 보았으며, 그 출판계약서 가운데에는 한길사 것도 있었습니다.

 한길사에서는 1997~1998년 사이에 이오덕 선생님이 편지모음을 책으로 내는 일을 `허락'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오덕 선생님은 2003년 8월까지도 `완전동의'를 하지 않았기에 책이 나올 수 없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한길사 출판'을 `완전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편지 원고는 한길사로 보내 `책을 낼 준비는 해 두라'고 했겠지만 `편지봉투'는 한길사 쪽에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오덕 선생님 책 관련 저작권과 사용권은 아드님인 이정우님에게 정식 승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비록 이오덕 선생님이 `구두로 허락'을 했다고는 하지만 `출판계약서'나 `출판동의서'가 없는 상태에서 책을 내는 일은 문제가 있습니다.

 한길사에서는 "(아드님이 아닌) 제3자에게 이오덕 선생님이 출판권을 일임했다"고 말했고 그 분의 허락을 받았다고 했지만 그 내역을 알아보니 `일임'이 아니라 `고문 상담'이었습니다.


 <4>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11월 12일 충주로 내려와서 이오덕 선생님 유족을 만납니다. 내려오기 앞서 펴낸 책을 `판매중지'를 시키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14일까지도 판매중지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미 낸 책과 관련된 `출판계약서' 한 장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한길사에서는 모두 3000권을 찍었고 이중 1200권이 시중에 깔렸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시중에 깔린 책에 대한 판매중지는 이뤄지지 않았고 현재 이 책은 서점에서 계속 판매되고 있습니다.

 상황을 알아보고자 11월 15일 토요일에는 교보문고를 찾아갔고, 다른 도매상과 소매상에서는 책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또 17일 아침에 교보문고 북마스터에게 전화를 걸어 출고 상황과 출고 문제를 확인했습니다.

 결과는 "출판사로 주문하면 책이 들어올 수도 있다"입니다. 다른 도매상에는 아직 재고가 있기에 그곳에서 받아서 팔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여러 가지 정황과 형편을 헤아려 본다면 한길사에서는 `판매중지'를 하지 않았고 `출고정지'만 시켰을 뿐입니다.

 이와 관련 한길사 강옥순 주간은 14일 <오마이뉴스> 편집부와의 통화에서 "이미 서점에 깔린 책은 (현실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지 않느냐. 다만 (유족과 권정생 선생의) 허락을 받기 전까지는 더 이상의 책은 출고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권정생 선생과 유족쪽은 "독자에게 팔린 책 한 권까지도 카드 결재를 하나하나 확인해서 모두 회수해서 유족이 수긍할 수 있는 상황과 근거 아래 폐기처분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출판사쪽에서는 실질로는 `출고정지'만을 한 상태이며, 도소매상에 `판매 중단' 통지문만 보내도 시중에 깔린 1200권이 더는 팔리지 않도록 막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안 한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5>

 지난 11월 12일,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충주를 거쳐 안동에 있는 권정생 선생님을 찾아갑니다.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안동에 가서 `권정생 선생님과 웃는 얼굴로 이야기'했다며 `책을 내는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시더라' 하는 이야기를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이오덕 선생님 유족에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에 유족은 곧바로 권정생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출판 허락을 했느냐"고 물었고, 권정생 선생님은 "절대 아니다"라고 부인했습니다. 기자는 유족이 권정생 선생님과 전화통화를 하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한길사 사람들을) 방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밖에 세워서 벌벌 떨게" 해서 돌려보냈다"고 했습니다. 덧붙여 "읽으라고 가져온 책은 읽지 않고 아직도 그냥 밖에 그대로 있다"고 했습니다.

 이쯤에서 다시 `출판계약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앞에서는 `이오덕 선생님-유족'과 관련된 계약서 문제입니다. 이번에는 `권정생 선생님' 문제입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낸 책은 평소에는 이오덕 선생님이 출판계약서와 인세 정산까지도 하나하나 꼼꼼히 챙겨 주셨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당신이 쓴 책이 엄청나게 많이 팔려서 인세 수입이 대단하다고도 하겠으나 무척 가난하게 살아가십니다. `돈'에 미련이나 욕심이 없는 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돈'에 미련이 없다고 해서 `출판계약서' 한 장조차 없이 책을 내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은 문을 닫은 `종로서적'에서 권정생 선생님 이야기를 `허락'이나 `동의'를 받지 않고 낸 적이 있습니다.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라는 책으로 책을 낸 다음에도 무척 화를 내셨다고 합니다. 이번 한길사 문제도 지난날 종로서적 책과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살아 계실 때에도 "반드시 권정생 선생님께 동의를 받아야만 책을 낼 수 있다"는 `단서'를 단 `조건부 허락'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한길사에서는 이런 `조건부 단서'를 `구두 허락이자 계약'이라고 말을 하면서 책을 냈고, 책을 낸 뒤에도 이 사실을 유족과 권정생 선생님에게 바로 알리지 않았습니다.

 저작권자가 둘이라면 두 사람에게 허락과 동의를 얻은 뒤 출판계약서를 써서 내야 합니다. 백 번 양보하여 `이오덕 선생님이 구두로 계약을 해서 내기로 했다(이 또한 사실이 아님을 앞서 밝혔습니다)'고 친다 해도, `권정생 선생님과 계약을 안 했다'는 대목에서도 문제가 됩니다. 한길사에서는 이 대목에서는 "나중에 허락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며 "이렇게까지 어려울 줄 몰랐다"고 말을 합니다.

 어떤 분들은 `권정생 선생님이 (책의) 머릿글을 썼으니 동의한 게 아니냐'고 물어옵니다. 이번에 한길사에서 나온 책 머릿글은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권정생 선생님이 어떤 회보에 쓴 추도글'입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한길사에서 나온 책을 위해서 쓴 글'은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이 글 또한 권정생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책에 실었습니다.

 지난 11월 12일치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권정생 선생님"이 "완강히 반대"를 해서 출판이 늦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마치 권정생 선생님이 그저 `반대만 고집스레' 한 사람인 것처럼 비추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를 했을 뿐 아니라 내지 못하게 한 책입니다. 이런 데에서도 `권정생 선생님'에게 또다른 피해와 손해를 입혔습니다.


 <6>

 처음에 기자는 `이오덕 선생님 뜻을 기리고 선생님 책을 소개하는 글 후속 보도'를 하고자 충주로 여러 번 내려갔습니다. 그렇게 내려가서 유족 분과 이야기하는 가운데 이번 일이 터진 걸 알았으며, 사건이 일어난 그날부터 충주에서 유족 곁에서 사건을 지켜보았습니다.

 저 또한 출판사에서 일을 했고, 지금도 책과 얽힌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일을 보며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책이고, 꼭 세상에 알려져야 하는 책이라고 해서 "지은이 모르게 낼 수는 없"으며 "지은이 허락을 안 받고 낼 수 없"으며 "지은이가 살아 있을 때 했던 일과 했던 말과 다르게 말씀을 하면서 책을 낼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개인 생각입니다만, 책을 낸 한길사에서는 언론에 `책이 크게 보도'된 만큼 언론에 `공개사과'를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불미스럽고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라고 해서 감추거나 숨기는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가난하면서도 부지런히 살아가고자 애썼던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입니다. 그런 두 분 뜻을 제대로 기리자면, 책도 좀더 소박하게, 좀더 정성껏, 좀더 따뜻하며 아우르는 마음으로 사랑을 담아서 즐겁게 만든다면 좋겠습니다. `책'은 그 다음입니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최종규 . 2003+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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