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책읽기


 이른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의 쉬지 않고 뛰어노는 아이를 바라본다. 둘째가 태어날 날을 손꼽으면서 마무리지을 온갖 집일을 건사한다. 모처럼 일요일 햇살이 아침부터 포근하면서 바람이 조용하다고 느껴, 지난겨울 아이가 입던 두툼한 겉옷 세 벌을 빨기로 한다. 한 벌씩 빨아 마당 빨랫줄에 넌다. 오늘은 한 벌만 빨고 이듬날에 또 한 벌, 모레에 다시 한 벌을 빨까 생각했지만, 모레이든 글피이든 날이 좋으리라고는 알 수 없다. 오늘 몰아서 다 해야 마음이 홀가분하다.

 생각해 보면, 이듬날이든 모레이든 글피이든 다른 빨래를 해야지. 둘째가 태어날 때에 누일 깔개를 찾고, 겨우내 덮은 이불과 깔개를 빨아야지. 내 겉옷과 옆지기 겉옷도 빨아야지. 빨래만 헤아려도 아직 다 끝마치려면 멀었다. 어느 한 가지도 미룰 수 없다. 빨래 한 가지만 하더라도 무척 많은데, 집일을 하느라 아이하고 못 놀기 일쑤일 테지만, 아이는 이제 혼자서 마당 이쪽에서 저쪽으로 신나게 달음박질을 치며 소리치고 논다. 세 살 적까지만 하더라도 빨래하는 아버지 곁에서 물놀이를 했음직한 아이가, 물놀이보다 더 재미난 뜀박질을 찾은 듯하다. 마당 한쪽 끝에서 민들레 노란 꽃송이나 냉이 하얀 꽃송이를 뜯는다. 날마다 뜯고 또 뜯어도 꽃은 흐드러진다. 아이가 날마다 수십 송이씩 꺾는다 하더라도 날마다 수백 수천 송이씩 새로 피고 진다.

 우리 식구가 인천에서 살던 때에는 아버지가 날마다 골목마실을 여러 시간 하는 동안 아이는 골골샅샅 누비면서 골목꽃을 구경했다. 골목꽃을 구경하며 걷던 때에는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했다. 골목이웃이 애써 어여삐 키우는 꽃을 함부로 꺾을 수 없다. 공무원이 찻길에 심는 꽃은 그다지 꺾을 만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골목길 틈바구니에서 자라는 민들레나 개불알꽃이나 냉이꽃이나 망초꽃은 먼지를 듬뿍 뒤집어쓰곤 해서 고운 빛깔이 또렷하지 못하다.

 멧자락 시골집에서는 들꽃이나 들풀이 먼지를 뒤집어쓸 일이 드물다. 아니, 먼지를 뒤집어쓸 일이란 없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흩날리고 나부끼며 춤춘다. 바람결에 따라 뒤집어지는 나뭇잎이 반짝거린다. 도시에서는 아래쪽 나뭇가지를 모조리 잘라내어 나무가 어떻게 자라는가를 옳게 살피기 힘들다. 멧골짝에서 자라는 나무를 굳이 가지치기 하는 사람이란 없다. 이럴 겨를도 없고, 이렇게 한대서 누가 돈을 주지도 않지만, 숲속 나무를 가지치기할 까닭부터 없다.

 나뭇잎이 어디에서 돋아 어떻게 흐드러지는가를 고스란히 들여다본다. 아이가 나뭇가지를 꺾거나 나뭇잎을 뜯거나 꽃잎을 딴대서 걱정할 일이 없다. 꺾거나 뜯은 잎과 가지는 흙한테 돌려주면 된다. 흙한테 돌려주면 흙이 살아날 거름이 될 테고, 나무한테 돌아가는 밥이 되겠지.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아이한테 자연그림책은 거의 쓸모가 없다. 왜냐하면, 어떤 자연그림책이건 시골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아이가 읽도록 엮거나 쓰거나 만들지 않으니까. 어떤 자연그림책이건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갈 아이가 읽도록 엮거나 쓰거나 만드니까.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어른한테 생태환경을 다룬 책은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왜냐하면, 어떤 생태환경책이건 시골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어른이 읽도록 엮거나 쓰거나 만들지 않으니까. 어떤 생태환경책이건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갈 어른이 읽도록 엮거나 쓰거나 만드니까.

 옆지기와 아이와 내가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던 때를 돌이킨다. 이무렵 장만해서 읽던 자연그림책 가운데 몹시 아름다우면서 가슴으로 촉촉히 젖어들던 책이 얼마 안 된다고 떠오른다. 그때에는 도시내기였지만, 도시내기 눈으로 들여다보더라도 자연그림책을 너무 지식으로만 다루기 때문에 썩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랑스러운 자연을 사랑스레 마주하면서 나 스스로 사랑스러운 자연으로 녹아들도록 이끄는 자연그림책은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어른으로서 읽던 생태환경책도 매한가지이다. 왜 어른 스스로 생태와 환경이 몸으로 녹아드는 삶이 되는 이야기를 담는 생태환경책을 엮거나 쓰거나 만들지 못할까.

 나는 인문책을 가까이하지 못한다. 오늘날 한국땅 인문책은 거의 모두 지식책에 머물기 때문이다. 사람들 삶을 착하거나 따스하거나 아름다이 돌보는 나날을 적바림하는 인문책은 너무 드물어, 인문책이 그닥 손에 잡히지 않는다.

 4대강을 반대해야 하거나 88만 원 세대를 달래야 하거나 입시지옥을 걱정해야 하거나 재벌 권력과 교회 권력을 꾸짖어야 하거나 이명박을 나무라며 진보정치를 꿈꾸어야 하는 책은 인문책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책은 모두 지식책이라고 느낀다. 4대강은 지식이 아닌 삶으로 살피면 이런 통계 저런 수치란 모두 부질없다. 더욱이, 4대강뿐 아니라 작은 도랑과 실개천은 어떠하고. 얕은 멧자락이나 너른 들판은 어쩌지? 사람들은 4대강에 파묻혀 정작 내 보금자리 자그마한 숲과 들과 멧골이 파헤쳐지며 사라지는 모습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88만 원 세대만 있겠는가. 50만 원 어린이와 40만 원 어버이도 있다. 모두들 대학교 졸업장 때문에 다투니까 입시지옥인데, 모두들 대학교에 안 가면서 사람답게 살아가자고 다짐하면 된다. 재벌 회사에 들어갈 생각을 안 하면서 내 작은 마을에서 내 작은 일거리를 찾아서 조용히 살아가면 된다. 예배당 십자가가 아닌 마음속 하느님을 믿으며 섬기면 된다. 이명박을 나무란다지만 내 살림집에서 내 살림살이를 사랑스레 일구지 못한다면 진보도 개혁도 번혁도 이루지 못한다.

 아이는 꽃을 꺾어 머리에 핀하고 함께 꽂아 달라고 내민다. 아이 머리에 꽃을 꽂아 준다. 아이는 머리에 꽂은 꽃이 떨어지는 줄 느끼지 못하면서 신나게 달음박질을 치며 논다. 몇 시간쯤 달음박질을 치며 놀다 보면 머리에 꽂던 꽃이 어찌 된 줄 모르지만, 꽃이 사라진 줄 알면 새로 꺾어서 한손에 쥐며 또 달음박질을 친다. 우리 집에는 자가용이 없고, 아버지는 운전면허가 없으며, 어머니는 장롱면허이면서 둘째를 밴 몸이라 적성검사를 받으러 갈 겨를이 없다. 자동차 없는 널따란 마당과 숲 사이에서 골짜기 물소리를 들으면서 마음껏 논다. 저녁나절에는 모두 지쳐서 아이한테 그림책 한 권 읽어 줄 기운조차 없이 곯아떨어진다. (4344.5.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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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락 책읽기


 아이가 책을 읽는다. 아버지가 그림책을 집어들어 펼치면 저도 함께 읽겠다면서 아버지 무르팍으로 파고든다. 책을 읽는 아버지 곁에서 아이는 책을 읽는 아이가 된다. 아버지가 옷을 갈아입고 자전거를 탈 낌새를 보이면 아이는 금세 알아챈다. 자전거를 타는 아버지 둘레에서 아이는 자전거를 함께 타는 아이가 된다. 부엌으로 가서 밥을 할라치면 아이는 어느새 부엌으로 쪼르르 따라온다. 마늘을 빻거나 달걀을 풀거나 반죽을 하거나 다지거나 채 썬 푸성귀나 나물을 냄비에 부을 때에, 아이는 옆에서 제가 하겠다고 나선다. 밥상을 세워 다리를 펴려 하면 아이는 이때에도 제가 하겠다고 먼저 붙잡는다. 텃밭으로 가려고 호미를 쥐면 아이는 부리나케 쪼르르 달려와서 저한테도 호미를 달라며 부르다가는 아버지 곁에서 흙을 쫀다.

 아이가 책을 읽는다. 아버지가 그림책 아닌 글책을 읽으니, 글책은 그닥 볼거리가 없으니 제 그림책을 펼쳐 읽는다. 아이는 책을 읽을 때에 그림책을 무릎에 올려놓는다. 그림책 끄트머리에는 으레 아이 발가락이 뽀롱 나온다. 아이는 그림책을 보면서 발가락이 가만히 있기도 하지만, 꼬물꼬물 꼼지락꼼지락 하기도 한다. 깊이 빠져들 때에는 발가락이 얌전하고, 종알종알 떠들며 책장을 넘긴다든지 앞뒤가 궁금해서 요모조모 들출 때에는 발가락이 춤춘다.

 한참 책을 넘기고 펼치고 하더니 손가락으로 하나를 짚으며 나한테 묻는다. 나보고 같이 들여다보라며 부른다. 아이는 맛난 먹을거리를 혼자 먹지 않고 나눈다. 아이는 좋은 볼거리를 혼자 보지 않고 부른다. (4344.5.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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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레와 글쓰기


 새벽 다섯 시 십이 분에 일어나서 마당으로 나옵니다. 하얗게 동이 튼 하늘을 올려다보며 푸른 잎사귀 나부끼는 숲을 바라봅니다. 깊은 시골이건 얕은 시골이건, 아침에 일어나거나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에는 푸른 빛깔을 맞아들입니다.

 텃밭 가장자리에 쉬를 누고 들어가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텃밭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날마다 무당벌레를 잡고 또 잡아도 새 무당벌레가 잔뜩 보입니다. 토마토 잎이나 줄기에 붙어 갉아먹는 녀석, 감자 잎이나 줄기에 붙어 뜯어먹는 녀석을 톡톡 쳐서 흙바닥에 떨군 다음 작은 돌로 뭉갭니다. 우리 살림집 텃밭은 참 조그맣고, 조그마한 텃밭 푸성귀는 몇 가지 안 됩니다. 널따란 밭을 일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이 벌레란 얼마나 무시무시하거나 끔찍할까요.

 영화 〈로빙화〉를 보면 차밭 벌레를 잡으며 애먹는 흙일꾼이 어렵사리 풀약을 얻어 차밭에 좌아악 뿌릴 때에 시원하게 활짝 웃습니다. 흙일꾼뿐 아니라 고아명과 고차매 남내도 활짝 웃습니다. 돈이 없어 여태껏 손으로 벌레를 하나하나 잡아서 죽였는데, 이제 벌레 걱정에서 조금은 시름을 덜었거든요. 새로 온 곽운천 선생님이 아이들을 이끌고 차벌레 잡이를 거들기도 했으나, 이렇게 몇 차례 거든대서 잡아 없앨 수 있는 차벌레는 아닙니다. 잡으면 또 있고, 다 잡았다 싶으면 또 기어오르는 차벌레입니다. 풀약 안 쓰는 깨끗한 농사를 이루기란 가난하고 힘겨우며 일손 모자란 집에서는 아득한 꿈입니다.

 흔히들, 풀 먹는 일, 이른바 ‘채식’이란 ‘몸뚱이 큰 목숨을 먹지 않으려 하’면서 ‘목숨을 더 사랑하는 일’이라 여깁니다만, 풀을 먹는대서 목숨을 안 먹는 일이 아닙니다. 고기를 먹어도 목숨을 먹는 일이고, 풀을 먹어도 목숨을 먹는 일입니다. 고기가 되는 짐승을 잡을 때에 고기짐승이 끔찍하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든지, 눈물을 흘리는 눈망울을 바라보아야 한다든지, 배를 갈라 내장을 끄집어내며 살을 발라야 한다든지, 이러한 모습이 보기 나쁘다 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푸성귀를 길러 먹을 때에도 풀을 다듬습니다. 풀을 다듬고 씻어서 손질합니다. 목숨이 깃들지 않은 풀은 메말라서 먹을 수 없습니다. 풀이든 고기이든 모두 목숨이요, 모두 다른 목숨이 내 몸으로 스며들며 내 목숨이 어이지는 흐름입니다.

 더욱이, 사람 몸을 더 아끼거나 살린다 하는 유기농이나 무농약이나 저농약이 될 때에는 수많은 벌레를 잡아서 죽어야 합니다. 온갖 목숨을 죽이고 나서야 바야흐로 풀먹기를 할 수 있습니다. 시금치 한 묶음, 감자 한 알, 오이 하나, 배추 한 뿌리를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벌레를 죽여야 하는지 헤아리지 못한다면, ‘목숨을 더 사랑하려는 뜻에서 한다는 풀먹기’가 어떠한 뜻이나 값이 되는가를 모르는 셈입니다.

 좋거나 훌륭하거나 거룩하거나 대단하거나 놀랍다 싶은 줄거리를 다루는 글이라 해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지식을 보여주거나 밝히는 글은 부질없습니다. 삶을 깨닫고 스스로 삶을 사랑하는 하루하루 즐길 수 있도록 어깨동무를 하는 글이 되어야 비로소 사랑스럽습니다. 아름다이 살아가는 사랑을 빛내는 책 하나입니다. 아름다이 살아가는 사랑을 빛내는 책을 살가이 이루는 글입니다. (4344.5.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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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
노암 촘스키.하워드 진.에드워드 W. 사이드 외 17인 지음, 강주헌 옮김, 데이빗 버사미 / 시대의창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착한 삶 사랑할 때에 바른 말 하는 사람
 [책읽기 삶읽기 58] 데이비드 바사미언,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시대의창,2006)



 한자말 ‘양심(良心)’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양심 있는 사람이 된다 할 때에는 옳고 그른 줄을 아는 사람이 된다는 사람을 가리킨다 할 테지만, 이에 앞서 ‘착한’ 사람을 일컫는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良心’에서 ‘良’이란 ‘착할 량’이거든요.

 말이며 몸가짐이며 곱거나 바르거나 상냥할 때에 착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말이며 몸가짐이며 곱거나 바르거나 상냥하자면, 옳은 말과 몸가짐을 알아야 합니다. 옳은 말과 몸가짐을 모르고서야 곱거나 바르거나 상냥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으레 ‘선량’이나 ‘양심’이나 ‘선행’이나 ‘선심’ 같은 갖가지 한자말을 들먹입니다만, 어떠한 말마디라 하더라도 한 가지로 모둘 수 있습니다. ‘착함’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내 마음을 착하게 가다듬을 때에 내 삶을 옳은 쪽으로 접어들도록 애쓰는 셈이고, 내 하루를 착하게 돌볼 때에 내 삶을 바른 길로 접어들도록 힘쓰는 노릇이며, 내 말을 착하게 다스릴 때에 내 삶을 상냥한 결로 돌보도록 온몸을 쓴다 할 만합니다.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라는 책이라 한다면, 이 지구별에서 ‘착하게’ 살아가면서 ‘바르게’ 말하려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는 소리라고 느낍니다.


.. 인도 정부는 비폭력이란 개념을 지향해 왔습니다. 따라서 비폭력 저항과 비폭력 지배가 인도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지요. 중국이나 터키, 인도네시아와 달리 인도는 국민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정부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고 국민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꾹 참고 기다릴 뿐입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하고, 그 결과는 무시해 버립니다 … 인도 공공분야의 기반시설은 국민의 돈으로 지난 50년 동안 꾸준히 건설된 것입니다. 정부는 이런 기반시설을 엔론에게 팔 권리가 없습니다 … 야라 나라가 핵무기를 비축해서, 인도와 파키스탄과 미국처럼 자기 국민을 속이고 다른 나라를 위협하는 세계는 위험한 세계입니다 …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라 말하면서, 핵폭탄을 만드는 데 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 도시의 좁은 틈바구니에는 예외없이 가난한 사람이 몸을 쪼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한 곳은 빛이 너무 환한데, 어둠은 그 주변에서 점점 짙어 갑니다. 엘리트들은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 내가 쓴 글대로 행동하고, 내가 글로 쓴 것을 끝까지 해내려고 애씁니다 ..  (아룬다티 로이/145∼151쪽)


 나부터 착해야 합니다. 내 마을이 착해야 합니다. 내 겨레와 내 나라가 착해야 합니다. 여느 일자리를 찾아 여느 살림을 꾸리는 나부터 착해야 합니다. 공무원이나 교사로 일하는 사람도 착해야 하고, 정치를 하건 회사를 꾸리건 착해야 합니다.

 착한 사람은 제 밥그릇을 챙기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은 나와 네가 서로 웃으면서 마주할 밥상을 차립니다. 착한 사람이 제 밥그릇 떵떵거릴 까닭이 없고, 착한 사람이 어깨를 우쭐거릴 일이 없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며 정치를 한다 할 때에는 제 힘을 키우려 하지 않습니다. 서로서로 즐거울 터전을 일굴 정치를 할 착한 사람입니다. 회사를 꾸리건 공장을 꾸리건 다르지 않습니다. 일하는 사람 누구나 땀값을 받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착한 사람입니다. 착한 사람은 돈을 더 벌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은 내 살림을 사랑하고 내 이웃 살림을 사랑합니다. 다 함께 오붓하게 누리거나 즐길 보금자리를 사랑합니다.


.. 우리에겐 더 이상 관광객이 필요없습니다. 우리는 관광객을 원하지 않습니다. 관광객을 위한 휴양지가 세워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 하와이에는 사방이 골프장입니다. 온갖 종류의 살충제가 뿌려집니다. 원주민이 쫓겨난 땅에 골프장이 세워집니다 … 환경오염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환경적 인종차별이기도 합니다 … 관광객들도 와이키키가 자동차와 사람으로 만원이라고 투덜댑니다. 교통난이 끔찍합니다. 관광객들은 다른 섬으로도 끊임없이 찾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다른 섬들까지 단기간에 황폐화시킵니다 … 하와이를 찾는 관광객의 대부분은 우리 역사를 모릅니다. 우리가 미국의 일부가 되기를 기꺼이 원한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진 매우 낭만적 이야기를 알고 있을 뿐입니다 ..  (하우나니 카이 트라스크/173∼177쪽)


 나는 어버이로서 생각합니다. 어버이인 나부터 착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우리 집 아이가 학교를 다니건 안 다니건 그닥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는 제 어버이가 일구는 착한 삶을 가까이에서 늘 지켜보면서 스스로 착한 길을 걸을 수 있으면 됩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착한 삶을 스스로 헤아리면서 아이한테 가장 걸맞으며 아름다울 착한 나날을 일구면 됩니다.

 굳이 초등학교이니 중학교이니 고등학교이니 대학교이니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학문은 제도권학교가 아닐 뿐더러, 배움은 대안학교 또한 아닙니다. 졸업장이 있대서 학문을 잘 갈고닦은 사람이 아닙니다. 대안학교를 다녔기에 열린 넋이나 얼로 사랑을 나누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 학교는 제도권이라 하든 대안이라 하든, 정작 가야 할 길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왜냐하면, 배우는 곳이라 하는 학교는, 교과 과정이 아니라 삶을 가르치며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삶을 가르치며 배울 수 없다면 배움터가 아닙니다. 삶이 아닌 지식을 가르치거나 배운다면 입시학원입니다. 시험문제를 풀거나 교과서를 외우도록 이끈다면 입시학원입니다. 학교는 학원이 아닌 학교라는 이름을 쓴다지만, 껍데기가 학교라 하기에 학교이지 않습니다. 알맹이가 학교라야 학교이지, 학교 노릇은 안 하거나 못 하면서 이름만 학교라 일컫는대서 학교일 수 없습니다.

 학교라는 이름을 붙이려 한다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부터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착한 꿈과 착한 말로 착한 삶을 사랑하는 교사가 있어야 비로소 학교입니다.

 착한 교사가 착한 아이들을 맞아들여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착한 배움길을 걸어가려 할 때에 바야흐로 배움터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착하지 않고서야 무슨 가르침이고 어떤 배움이겠습니다.

 착함이란 옳고 바르게 살아가는 길이요, 착함이란 아름답고 해맑게 살아내는 나날이며, 착함이란 따스하며 넉넉하게 얼싸안는 사랑입니다.


.. 어머니는 여성만의 힘으로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어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남자는 탐욕과 자아로 가득해서 긴장과 폭력을 낳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 어머니는 “나일론 옷을 사 주는 건 문제가 아니란다. 하지만 네가 어떻게 살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는지 생각해 보거라. 그럼 먹을 것이 직공의 손에 들어가는 게 낫겠니? 이익이 산업자본주의자의 손에 들어가는 게 낫겠니?”라고 말했습니다 … 내가 아직도 수공예품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수공예품을 단순히 제품으로만 보지 말고 인간의 창조력과 노동으로 빚어진 산물로 생각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 미국 영화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엘리트들에게 미국식의 에너지 소비자가 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세계화를 간단히 정의한다면 ‘시장이 될 만한 곳을 찾아내라!’는 것입니다 … 우리는 마시는 물에 돈을 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계은행은 물이 공짜이기 때문에 남용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물이 남용되는 진짜 이유는 물을 대규모로 사용하는 산업체가 물을 알뜰하게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물을 오염까지 시키고요 … 사회적 책임, 노동자의 권리, 자원의 이용이나 독극물의 방출에 대한 제한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자본과 무역만 자유화하는 세계 헌법에 찬성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현재의 자유무역협정은 이 땅에서 생명을 고갈시키려는 협정입니다 … 대기업들과 싸우면서 그들이 겉으로는 막강한 힘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한없이 공허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짜릿한 전율감마저 느낍니다 ..  (반다니 시바/340∼349쪽)


 이야기책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데이비드 바사미언이라는 사람이 만난 스무 사람은 한결같이 ‘착한 꿈’을 ‘착한 말’로 펼치며 ‘착한 삶’을 들려주려 합니다. 꿈과 말과 삶이 한동아리로 착하게 흐르도록 힘을 쏟습니다. 넋과 글과 일놀이가 착하게 뿌리내리도록 땀을 흘립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닙니다. 그저 착한 길입니다. 착한 마음일 때에 착한 얼굴이고, 착한 손길로 착한 글을 쓰거나 착한 그림을 그리거나 착한 사진을 찍습니다. 사랑바라기를 하면서 조그맣게 살림을 꾸립니다. 믿음바라기를 하면서 예쁘게 두레를 하거나 울력을 합니다.

 굳이 남 앞에서 멋들어져 보이는 옷을 차려입을 까닭이 없습니다. 내 고운 결을 아끼면서 내 고운 보금자리를 어여삐 돌보는 삶을 일구면서 내 숨결을 살찌우는 자연을 헤아리는 옷을 자연에서 얻어 자연스레 웃으면 됩니다. 치레하는 삶이 아닌 사랑하는 삶입니다. 내보이거나 뽐내는 삶이 아닌 보살피거나 어깨동무하는 삶입니다. (4344.5.15.해.ㅎㄲㅅㄱ)


―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 (데이비드 바사미언 엮음,강주헌 옮김,시대의창 펴냄,2006.9.18./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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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5.13. 

책을 읽는 발꼬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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