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눈아 봄꽃들아 과학은 내친구 23
이제호 글.그림 / 한림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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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도 꽃도 자연도 ‘과학’이 아니에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09] 이제호, 《겨울눈아 봄꽃들아》(한림출판사,2008)



 겨울눈과 봄꽃을 찬찬히 살피며 꼼꼼하게 담은 그림책 《겨울눈아 봄꽃들아》(한림출판사,2008)를 바라봅니다.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우리 집 네 살 딸아이가 이 그림책을 즐길 만할까 어림해 봅니다. 갓난쟁이 둘째 아이는 이 그림책을 앞으로 좋아할 만할까 갸웃해 봅니다.

 어쩌면, 집 안팎과 마을에서 마주하는 나무에 맺히는 눈과 잎과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이 그림책 《겨울눈아 봄꽃들아》에 실린 그림을 견줄는지 모릅니다. 아이가 바라보며 그린 나무 그림이랑 《겨울눈아 봄꽃들아》에 실린 나무 그림을 나란히 놓고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이제호 님이 빚은 그림책 《겨울눈아 봄꽃들아》는 그림이 푼더분합니다. 빛깔이 흐드러집니다. 한 땀 두 땀 얼마나 알뜰히 힘을 쏟았는가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아쉽습니다. 이 겨울눈과 봄꽃을 왜 바라보아야 할까요. 이 겨울눈과 봄꽃은 우리 삶하고 어떻게 이어졌을까요.

 이른바 세밀화라는 이름으로 그려서 선보이는 그림책을 들여다볼 때면 으레 이 대목을 떠올립니다. 이들 세밀화 그림책은 왜 읽어야 하나요. 이들 세밀화 그림책은 우리 삶하고 어떻게 맞닿을까요.

 시골사람한테는 세밀화 그림책이 부질없습니다. 늘 보며 언제나 살피니까요. 나무를 늘 보지 못하고 자연을 언제나 벗삼지 못할 도시사람이 아니고서야 세밀화 그림책은 덧없습니다. 살아숨쉬는 자연처럼 아름다운 그림이 없어요. 손가락을 가만히 대며 느끼는 겨울눈 숨결이랑 종이에 아로새겨진 그림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느낄 겨울눈 빛깔은 사뭇 달라요.

 그저 모양만 예쁘장하게 그리는 어수룩한 나무 그림을 떠올린다면, 《겨울눈아 봄꽃들아》는 참 잘 빚은 그림책입니다. 다만, 꼼꼼하며 찬찬히 바라본 그림이기에 어수룩하게 그린 나무 그림보다 더 살갑거나 따사롭지는 않아요. 더욱이, 이 그림책 《겨울눈아 봄꽃들아》에는 “과학은 내 친구”라는 ‘묶음책 이름’이 붙어요. “과학은 내 친구” 스물셋째 그림책이라는 《겨울눈아 봄꽃들아》입니다.

 여러모로 궁금합니다. 겨울나무 겨울눈은 과학인가요. 봄나무 봄꽃은 과학인가요. 아이들한테 나무는 과학인가요. 아이들한테 꽃과 잎사귀와 열매는 과학인가요.

 나는 나무도 열매도 잎도 꽃도 눈도 모두 삶이라고 여깁니다. 내 하루를 북돋우는 삶이요, 나랑 함께 살아가는 집식구 모든 삶이라고 느낍니다. 삶이지 않고서는 나무를 바라보거나 껴안을 수 없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목숨이 아니라면 나무를 어루만질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아파트로 이루어진 보금자리에서 《겨울눈아 봄꽃들아》를 읽힐 어버이라면 한 번쯤 곰곰이 생각에 잠기면 좋겠습니다. 그림책으로만 겨울눈과 봄꽃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하루 빨리 아파트를 떠나 나무 한 그루 심을 만한 흙땅 있는 조그마한 집을 찾아야 합니다. 아파트에서 살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나무를 심어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랑할 수 있는 터를 마련해야 합니다.

 나무는 씨앗을 받아 심으면 됩니다. 씨앗을 심을 마땅한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면, 아니 도시에서는 씨앗을 받아 나무를 심으려 한다면 ‘새싹을 몰라볼 사람’들이 마구 짓밟거나 풀약을 쳐서 죽이고 말 테니까, 어린나무를 사서 심을 때가 더 나을 수 있어요. 어린나무 한 그루 값은 5천 원이 안 됩니다. 그림책 한 권 값이 안 돼요. 아이들하고 아름답다 싶을 그림책 하나 더 나누어도 기쁜 나날이요, 아이들하고 아름답다 싶을 어린나무 한 그루 사서 이 나무가 곱게 자랄 흙땅을 튼튼하게 지켜도 기쁜 삶입니다.

 삶을 생각하고 삶을 느끼며 삶을 사랑할 수 있는 어버이로서 아이하고 손을 맞잡아 주셔요. (4344.11.19.흙.ㅎㄲㅅㄱ)


― 겨울눈아 봄꽃들아 (이제호 글·그림,한림출판사 펴냄,2008.2.27./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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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짚는 손


 첫째 아이와 함께 읽을 그림책을 잔뜩 장만한다. 저녁나절, 하루가 저물 무렵 저녁밥 먹고 나서 방바닥에서 뒹굴며 그림책을 집는다. 첫째 아이는 스스로 내키는 그림책을 집어서 펼친다. 그래도 그림책 쥐고 아이를 무릎에 앉혀 함께 읽으면 더 좋아할까.

 옆지기가 둘째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넘긴다. 둘째 아이가 그림책을 함께 쥐기도 하고, 그림 있는 자리에 손을 뻗어 짚기도 한다. 첫째 아이도 이무렵 이렇게 놀았겠지. 다만, 둘째 아이한테는 바람씻이랑 찬물더운물씻이를 아직 못 한다. 밥차림 다스리기도 제대로 못 한다. 해야 할 일이 많고 다스릴 살림이 벅차다고 느껴 둘째 아이 아토피 털어내는 데에 마음을 못 둔다 할 만하다. 그렇지만, 첫째 아이를 낳아 살아갈 때에는 일이 적거나 없었겠나. 어린 갓난쟁이가 아토피를 비롯해 힘겨운 몸앓이를 스스로 이기기란 참 버겁다. 어쩌면 하루이틀 흐르는 나날이 저절로 풀어 준다 할는지 모르지만, 어버이로서 옳게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는 나날이라 한다면, 아이 스스로 기운을 낼 수 없다. 나부터 기운을 차리고, 나부터 따사로운 숨결을 북돋아야 한다. 나부터 새힘을 내고, 나부터 모든 일을 한결 씩씩하게 어루만져야 한다.

 책을 짚는 손은, 책에 깃든 이야기를 지식으로 담는 손이 아니다. 책을 짚는 손은 온몸으로 사랑을 실어 따사로이 살아가는 손이다. (4344.11.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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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ifornia on the Breadlines (Hardcover) - Dorothea Lange, Paul Taylor, and the Making of a New Deal Narrative
Jan Goggans / Univ of California Pr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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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서 읽은 책은 이 <캘리포니아 어쩌고>가 아니지만, 이 사진책에 캘리포니아 모습이 적잖이 나온다. 아무튼, 도로디어 랭 사진책을 '간추린 판'이 아닌 '사진책'으로 사서 읽는다면, 사람들이 흔히 고정관념처럼 아는 사진하고는 다른 이야기를 느끼리라 믿는다. 



 사진 한 장에 담기는 사람들 삶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38] Dorothea Lange, 《Photographing the Seocnd Gold Rush》(Heyday books,1995)


 1895년에 태어나 1965년에 숨을 거둔 도로디어 랭(Dorothea Lange) 님 사진을 바탕으로 새롭게 꾸민 사진책 《Photographing the Seocnd Gold Rush》(Heyday books,1995)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조그마한 사진책에는 “Dorothea Lange and the Bay Area at War, 1941∼1945”라는 자그마한 이름 하나 덧붙습니다. 그러니까 1941년부터 1945년 사이에 찍은 사진이요, ‘두 번째 금광찾기’가 된다는 사진이라는 셈입니다.

 1941년부터 1945년 사이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떠했는가 돌이킵니다. 일제강점기 막바지였던 이무렵 숱한 지식인과 지성인은 친일부역을 합니다. 나로서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살지 못했으니 이때가 얼마나 어떻게 괴로우며 벅찼는가를 알 수 없습니다만, 옳으며 바른 길을 착하고 맑게 걷기란 몹시 힘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옳으며 바른 길을 착하고 맑게 걷는 모든 길이 꽉 막히지 않았겠느냐 싶습니다. 멧골 깊이 들어가 조용히 흙을 일구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외딴섬 조그마한 집에서 아주 고요히 바다와 벗삼으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흙을 일구어야 먹고살 수 있던 지난날 한겨레인데, 뻔히 일본총독부한테 쌀과 곡식과 푸성귀를 빼앗길 줄 알면서도 흙을 일구어야 하는 삶에서 어떻게 견디거나 버틸 수 있었을까요. 시골사람은 창씨개명을 할밖에 없으며, 도시사람은 친일부역을 할밖에 없던 슬프며 아픈 나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핑계감으로 삼는 말이 아니라, 참 배고프고 외로우며 아픈 나날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1950년부터 남녘과 북녘은 총부리를 맞대며 서로 죽이고 죽는 끔찍한 짓을 저지릅니다. 왜 한겨레끼리 이토록 죽임질에 목을 매야 했는가 돌아보면 그예 슬프며 아플 뿐입니다. 그런데, 이무렵 1950년부터 몇몇 나라는 군수공장을 펑펑 돌리면서 어마어마하게 돈벌이를 합니다. 이른바 ‘무기 만들고 팔아 금광찾기’를 하는 꼴입니다.

 그러니까, 모르는 노릇이지만, 미국땅에서 1941년부터 1945년은 ‘무기 만들고 팔아 금광찾기’를 하던 나날이었다고 여길 만합니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일으켜 준 전쟁 때문에 쉴새없이 ‘무기팔이’를 할 수 있었고, 미국에서는 일본이 일으켜 준 전쟁이 있기에 더욱더 힘을 내어 ‘무기장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은 누군가한테는 그야말로 죽이고 죽는 끔찍한 짓입니다. 전쟁은 누군가한테는 집도 식구도 돈도 꿈도 몽땅 날아가는 터무니없는 아픔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또다른 누군가한테는 어마어마한 돈벌이입니다. 전쟁은 누군가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크나큰 훈장이나 이름값입니다.

 1941년부터 1945년 사이, 한국땅에서 마주할 수 있던 사람들 모습에서는 어떤 빛을 읽을 수 있었을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길어올릴 만하고, 어떤 웃음꽃이 피어날 만하며, 어떤 꿈이 이루어질 만한지 궁금합니다.

 1942년에도 혼인한 사람이 있겠지요. 1944년에도 태어난 아이가 있겠지요. 1943년에도 글을 배운 아이가 있겠지요. 1945년에도 예순잔치가 있겠지요.

 도로디어 랭 님 사진책 《Photographing the Seocnd Gold Rush》를 넘기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사진 밑에 붙인 ‘사진 찍은 해’가 없다면, 이 사진을 1941년 사진으로 여길는지, 1951년 사진으로 여길는지, 1961년이나 1971년이나 1981년 사진으로 여길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참말 언제 찍은 사진이라 할 만할까 모르겠습니다.

 가난한 미국사람한테 1945년은 어떤 해였을까요. 가난하다가 갑작스레 살림이 편 미국사람한테 1944년은 어떤 해였을까요. 이무렵 일자리라면 아무래도 군수공장이 가장 많았으리라 보는데, 군수공장에서 일거리를 얻어 돈벌이를 하며 집식구를 먹여살리던 어버이들한테 1943년은 어떤 해였을까요.

 사진에 담기는 사람들 삶은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같은 해 다른 자리 사람들 사진은 저마다 어떤 이야기를 품을 수 있을까요. 같은 자리 다른 삶 사람들 사진은 저마다 어떤 빛과 그림자를 껴안을 수 있을까요.

 가난해도 밥을 먹습니다. 가멸차도 잠을 잡니다. 못생겨도 사랑을 합니다. 잘생겨도 헤어집니다. 집이 없어도 살림을 꾸립니다. 집이 있어도 텃밭을 못 일구곤 합니다. 돈이 없어도 웃음꽃을 활짝 피웁니다. 돈이 있어도 눈물나무만 자랍니다.

 누군가는 가난하거나 힘겹다 싶은 살림을 꾸리는 사람을 찍은 사진은 어둡거나 퀴퀴하거나 슬프거나 아파야 한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그러면, 가멸차거나 수월하다 싶은 살림을 누리는 사람을 찍은 사진은 어떠해야 할까요. 사진은 돈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까요. 글은 돈에 따라 빛깔이 달라지나요. 노래는 돈에 따라 내음이 바뀌는가요.

 더 큰 선물보따리를 받아야 웃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밥그릇을 두서넛쯤 받아야 함박웃음으로 밥을 먹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한 사람은 밥 한 그릇이면 넉넉합니다. 하루 두어 끼니면 배부릅니다. 누구나 조그마한 밥그릇으로 조그마한 사랑을 조그마한 꿈에 담아 누립니다.

 도로디어 랭 님이 농업안정국이라는 데에 몸담으며 사진을 찍었든, 홀가분하게 당신 사진감을 찾아 사진을 찍었든, 두 갈래 사진은 그닥 다르지 않습니다. 사진에 담기는 사람들 삶이 무엇을 이야기하는가를 사진쟁이 스스로 읽을 줄 알면 됩니다. 사진에 담기는 사람들 삶이 사진기를 손에 쥔 사진쟁이한테 무엇을 보여주며 깨우치는가를 알아채면 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길을 닦는 사람입니다. 누군가는 사랑길을 닦을 테고, 누군가는 돈길을 닦을 테며, 누군가는 꿈길을 닦을 테지만, 누군가는 이름길을 닦겠지요. (4344.11.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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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바의 미소 미래그림책 3
칼 노락 글, 루이 조스 그림, 곽노경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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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씨 뿌려 웃음열매 짓는 삶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08] 루이 조스·칼 느락, 《키아바의 미소》(미래M&B,2001)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좋다고 여깁니다. 흐린 날은 흐린 날대로 좋다고 느낍니다. 갠 날은 갠 대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궂은 날은 궂은 날대로 좋다고 받아들입니다. 꼭 어떠한 날을 더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 다른 날을 맞아들이고 싶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삶을 일구고 싶습니다.

 어릴 적부터 놀이가 되든 날씨가 되든 골고루 누릴 때에 즐겁다고 여겨 버릇했기에, 사진을 찍을 때에도 사진이 더 잘 나오는 날씨가 있다고는 헤아리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삶을 누리는 하루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사랑스럽다 싶은 사진을 찍는다고 봅니다. 나 스스로 아끼는 삶이고 사랑이며 사람이라면, 어느 갈래 어느 글을 쓰더라도 내 꿈이 곱게 깃드는 글꽃으로 피어나요.

 배부른 느낌이 좋습니다. 배고픈 느낌이 고단합니다. 배부른 느낌과 배고픈 느낌을 함께 누리기에 내 삶이 이루어지겠지 하고 여깁니다. 주머니에 살림돈이 넉넉하지 못해 이것저것 마음대로 장만할 수 없습니다. 나와 옆지기는 이것저것 쉽게 장만하며 살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살아가며 꼭 누리거나 쓸 것만 알맞게 알뜰히 장만하고 싶어요.

 돌이키면, 이렇게 살아가는 결 그대로 이루어지는구나 싶어요. 내가 수월하고 홀가분한 나날만 꿈꾼다면 수월하고 홀가분한 길을 걸을는지 몰라요. 나는 내 몸으로 온갖 일을 부대끼며 천천히 깨닫거나 배운다고 꿈꾸니까, 숱한 가시밭길이랑 수렁을 건너야 하는지 몰라요.


.. 키아바는 우쭐해졌어요. 그런데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방금 잡은 물고기가 키아바를 보고 미소를 짓고 있는 거예요 ..  (5쪽)


 맑은 길을 헤아립니다. 내가 혼자 걷는 맑은 길이란 어떤 모습이고, 우리 집 살붙이랑 함께 걷는 맑은 길이란 어떤 이야기일까 헤아립니다.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일 때에 얼마나 맑으면서 씩씩하게 할 수 있는지 곱씹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보금자리에서 함께 누릴 만한 맑은 일은 어떻게 다스릴 때에 아름다울까 되뇝니다.

 날마다 먹는 밥을 날마다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길을 생각합니다. 날마다 비슷하게 차리는 밥을 날마다 새삼스레 느끼며 즐길 만한 길을 생각합니다. 날마다 꾸준하게 빨래하는 옷가지를 날마다 반가이 다루는 길을 생각합니다.

 날마다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할 때마다 돌아봅니다. 방바닥이나 책상에 앉은 먼지를 쓸고 닦으며 이 먼지를 그대로 두었다면 모두들 고스란히 마셔야 했겠지 하고 돌아봅니다. 그러면, 이 먼지는 모두 어디에서 왔을까요. 어떻게 이 먼지들이 집안에 켜켜이 쌓이는가요.


.. 키아바의 아빠는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겁을 주어 곰을 쫓으려고 하셨어요. 아빠가 무섭게 소리를 지르면 지를수록 곰도 점점 더 사납게 으르렁거렸습니다 ..  (10∼11쪽)


 집 안팎을 가득 채우던 쓰레기를 치웠습니다. 쓰레기 묻는 곳으로 실어다 날랐습니다. 예전에 살던 이가 남긴 쓰레기가 이만큼인데, 나는 내 예전 살던 집에 쓰레기를 어느 만큼 남겼는가 되돌아봅니다. 새 보금자리에 있던 쓰레기를 어느 곳에 갖다 버렸으니 이 쓰레기는 사라졌을까요. 그저 자리를 옮기고 모양만 바뀔 뿐, 쓰레기는 한결같지 않을까요.

 한삶을 누리면서 쓰레기를 내놓거나 쓰레기를 만들거나 쓰레기를 이룬다면, 얼마나 즐겁거나 기쁘거나 흐뭇할까요. 내가 누리는 한삶에서 사랑을 짓고 꿈을 지으며 믿음을 짓는 일이랑 쓰레기를 짓는 일이랑, 어느 쪽이 보람차면서 해맑을는지요. 내가 누릴 한삶은 또렷합니다. 쓰레기를 짓는 삶이 아니라 사랑을 짓는 삶이어야 합니다. 쓰레기를 치우는 삶이 아니라, 사랑을 보듬으며 돌보는 삶이어야 합니다. 좋은 마음을 쓰고 좋은 꿈을 나누어야 합니다.

 서로 웃으며 얼싸안는 나날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함께 웃으며 노래하는 나날일 때에 어여쁩니다. 웃음씨, 웃음꽃, 웃음나무를 일굴 내 한 목숨입니다.


.. 키아바는 뛰어서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폭풍이 웃고 있는 동안은 바람을 불게 하는 걸 잊어버릴 거야.’ 이렇게 생각하자 키아바는 기분이 좋아졌어요 ..  (22쪽)


 루이 조스 님 그림과 칼 느락 님 글로 이루어진 그림책 《키아바의 미소》(미래M&B,2001)를 읽습니다. 어린이책인데 자꾸자꾸 “미소를 짓고 있는 거예요”와 같은 말투가 튀어나옵니다. “웃고 있는 동안”이라고도 옮김말을 적지만, 자꾸자꾸 ‘微笑’라는 일본말을 씁니다. 낱말로 살필 때에 ‘미소’부터 마땅하지 않고, “짓고 있는 거예요” 꼴 또한 마땅하지 않습니다. “웃음을 지어요”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웃고 있는 동안”은 ‘웃다’를 쓰니 한결 낫지만, “웃는 동안”으로 바로잡아야 올발라요.

 어른책부터 옳고 바른 말로 빚어야 아름답습니다만, 어린이책은 더욱더 옳고 바른 말로 일구어야지요. 좋은 넋으로 좋은 말을 심어 좋은 꿈이 자라도록 도와야지요. 착한 얼로 착한 글을 가꾸며 착한 삶을 누리도록 이끌어야지요.

 그림책 《키아바의 미소》는 “웃는 키아바”요 “키아바 웃음”이며 “키아바가 지은 웃음”입니다. 키아바 마음속에는 웃음씨만 있었습니다. 물고기를 낚다가 이 웃음씨를 비로소 깨닫습니다. 웃음씨를 한 번 깨달은 뒤로는 웃음씨를 곱게 돌봅니다. 시나브로 웃음씨를 ‘짓’습니다. 웃음을 ‘지어’ 키아바 살붙이부터 동무랑 이웃 모두한테 웃음열매를 나누어 줍니다.

 비아냥거리는 말이든 화살 같은 말이든, 사람들은 참으로 쉽게 슬픈 말씨를 뿌립니다. 슬픈 말씨는 슬픈 말열매를 맺습니다. 포근한 말이든 너그러운 말이든, 사람들은 언제나 기쁜 말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기쁜 말씨는 기쁜 말열매를 맺어요.

 성나거나 골부리는 얼굴로 살아갈 때에는 슬픈 몸짓을 뿌리고 슬픈 몸부림을 낳습니다. 웃거나 따사로이 감싸는 품으로 살아갈 적에는 기쁜 이야기를 뿌리고 기쁜 꿈빛을 낳습니다.

 키아바는 남다르거나 대단한 아이가 아닙니다. 여느 아이입니다. 수수한 아이입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키아바와 같달 수 있고, 내 옆지기와 나 또한 키아바와 같달 수 있어요. 착하며 고운 마음으로 참다이 길을 걸어간다면, 누구나 키아바와 같이 여느 사랑과 수수한 웃음으로 좋은 삶을 누립니다. (4344.11.18.쇠.ㅎㄲㅅㄱ)


― 키아바의 미소 (루이 조스 그림,칼 느락 글,곽노경 옮김,미래M&B 펴냄,2001.2.20./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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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내다 버릴 테야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66
마사 알렉산더 지음, 서남희 옮김 / 보림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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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쁘며 빛나는 말을 아이한테 들려주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07] 마사 알렉산더, 《엄마를 내다 버릴 테야》(보림,2007)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머니 가운데 힘이 들지 않는 분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날은 집일을 퍽 적게 한다 하지만, 으레 어머니들이 온갖 집일을 도맡거나 많이 맡기 마련이면서, 바깥일까지 한다면, 사랑스러운 아이를 따사로이 보듬는 넋이라 하더라도 힘이 들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하나일 때보다 둘이 벅차고, 둘일 때보다 셋이 버겁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하나일 때에 누리는 기쁨이랑 둘일 때에 누리는 기쁨하고 셋일 때에 누리는 기쁨은 사뭇 달라요.

 힘이 들기 때문에 더 기쁨을 누릴는지, 힘이 덜 들 때에 더 기쁘다 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이가 하나이든 둘이든 셋이든, 또는 아이가 없이 살아간다 하든, 나와 한솥밥을 먹는 살붙이를 따사로이 바라보며 보듬는 넋이요 손길이라 한다면 늘 기쁜 나날이라고 느낍니다. 따사로이 바라보지 못하거나 따뜻하게 보듬지 못한다면, 아이들이 힘들게 안 한다든지 살림돈이 넉넉하다든지 하더라도 그닥 기쁠 수 없는 나날이라고 느껴요.


.. “엄마, 내가 쓰던 의자를 왜 새로 칠해?” “아기가 태어나면 주려고 그러지.” ..  (5쪽)


 갓난쟁이 둘째가 웁니다. 품에 안아 토닥토닥 타이릅니다. 노래를 불러 주다가는 젖을 물립니다. 어린 동생과 사랑을 나누며 자라는 첫째가 웁니다. 요모조모 말썽을 부리지만, 가만히 헤아리면 어리광일는지 모릅니다. 더 바라보며 따스히 어루만지기를 바라는 몸부림일는지 모릅니다.

 젖을 물리는 어머니이기에 아버지보다 한결 보드랍거나 따사로울 수 있을까요. 열 달에 걸쳐 몸속에서 아끼며 뼈와 피와 살을 나누었기에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르게 살가우면서 너그러울 수 있는가요.

 집일을 하거나 살림을 돌본대서 아이들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삶이 되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집일을 도맡거나 살림을 아기자기 일군대서 아이들을 더 챙기거나 보살피는 삶이 되지는 않는구나 싶어요.

 사랑하는 넋이 아니라면 아이한테 뼈와 피와 살을 나눌 수 없을 뿐 아니라, 젖을 물리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손길이 아니라면 아이와 노래를 부르며 포근한 넋이 되도록 이끌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꿈결이 아니라면 아이 손을 맞잡거나 아이를 등에 업으며 마실을 다니지 못합니다.


.. “내가 내 맘대로 엄마 침대나 흔들의자를 남한테 주면 좋겠어?” “올리버야, 미안해. 아기 때 쓰던 물건이라서 이젠 안 쓰는 줄 알았지.” ..  (10∼11쪽)


 어머니가 힘들 때에 아이들도 힘듭니다. 어머니가 즐거울 때에 아이들도 즐겁습니다. 어머니가 포근한 품으로 두 팔을 벌릴 때에 아이들은 춤을 춥니다. 어머니가 맑고 밝은 목소리로 노래할 때에 아이들은 병아리처럼 입을 벌리며 신나게 노래합니다.

 마사 알렉산더 님 그림책 《엄마를 내다 버릴 테야》(보림,2007)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곧 동생을 볼 아이는 어머니한테 ‘왜 나한테 안 물어 보고 일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어머니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아이한테 미안하다 이야기합니다.

 어머니라서 아이보다 더 잘 알지 못해요. 어머니도 이제 막 어머니이지 예전부터 어머니이지 않아요. 어머니도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가 있고,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도 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가 있어요. 아이는 앞으로 어머니나 아버지가 될 테고, 어머니나 아버지가 된 다음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되겠지요.

 빛나는 사랑이 어머니 손길을 타며 아이한테 이어집니다. 빛나는 믿음이 아이 손길에서 자라나면서 아이가 어버이가 된 다음 새 아이한테 이어집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이란 서로서로 북돋우면서 타이르는 길입니다. 함께 어우러지는 길이란 서로서로 쓰다듬고 토닥이면서 아끼는 길입니다. 어머니는 첫째 아이랑 둘째 아이를 모두 아끼고 싶습니다. 첫째 아이는 어머니와 동생을 나란히 좋아하고 싶습니다. 서로서로 다른 자리에 서면서 서로서로 깊고 너르게 사랑하고 싶습니다.


.. “엄마는 네가 나가지 않으면 좋겠어. 네가 없으면 엄마는 너무너무 슬프고 외로울 거야.” “정말? 정말로 날 보고 싶어 할 거야?” “그럼 그럼, 게다가 네가 없으면 엄마는 너무너무 불쌍해질 거야.” ..  (24∼25쪽)


 아이가 외치거나 들려주는 말을 곰곰이 듣는 어머니이기에, 아이는 어머니가 읊거나 속삭이는 말을 차분히 듣습니다. 아이가 토라지거나 활짝 웃거나 주눅들거나 졸음에 겨울 때에 넉넉히 안고 달래는 어머니이기에, 아이는 어머니가 즐겁거나 슬픈 빛을 금세 알아차립니다.

 좋아하는 사이인 터라, 마음으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좋아하는 사이인 까닭에, 마음을 빛내는 말마디로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을 먹는 아이는 사랑을 새롭게 키웁니다. 사랑을 받은 아이는 사랑을 고스란히 베풉니다. 사랑을 먹는 아이로 살면서 어머니 자리에 서기에, 내 아이하고 사랑잔치를 엽니다. 사랑을 받은 아이로 지내며 어머니 노릇을 하니까, 내 아이하고 사랑씨앗 하나 예쁘게 건사합니다.

 말 안 들으며 골을 부리는 아이를 바라보며 “너 말야, 자꾸 말 안 들으면 내쫓을 테야.” 하고 꾸짖기에, 아이는 어머니랑 아버지한테 “어머니를(아버지를) 내쫓을 테야.” 하는 말을 돌려줍니다. 《엄마를 내다 버릴 테야》에 나오는 어머니는 아이 앞에서 이제부터 예쁘며 빛나는 말을 예쁘며 빛나는 사랑을 담아서 들려주겠지요. (4344.11.17.나무.ㅎㄲㅅㄱ)


― 엄마를 내다 버릴 테야 (마사 알렉산더 글·그림,서남희 옮김,보림 펴냄,2007.1.10./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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