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안는 아이와 책읽기


 옆지기와 나는 처음 혼인을 하던 때부터 이제껏 따로 떨어져 지낸 나날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몹시 적다. 내가 혼자 살아가던 날에는 내 나름대로 혼자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내 삶을 다스리는 길을 익혔고, 둘이 살아가던 날부터는 내 어수룩한 삶틀을 하나하나 깨면서 옆지기 말을 받아들이며 배운다. 따로 어떤 회사에 몸담을 생각이 없던 나인 만큼, 앞으로 살아갈 날을 헤아릴 때에 내 아름다운 나날을 내 삶을 살찌우는 길을 걷고 싶다. 돈을 더 벌어 내 꿈이나 뜻을 이룰 만한 책을 널리 펴내는 돈을 마련할 수 있겠지만, 돈을 적게 벌면서 내 꿈이나 뜻을 내 삶에서 이루며 천천히 쓴 글로 조그맣게 여밀 수 있다. 무엇보다 굳이 책으로 여미지 않더라도 날마다 즐거이 누리는 이야기를 빚을 수 있다.

 첫째 아이를 낳고부터 집에서 보내는 겨를이 훨씬 늘어난다. 여섯 달 남짓 한글학회에서 일하며 새벽에 집을 나서서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만, 돈벌이로 삶을 바꾸었기 때문이 아니다. 옆지기 어머님이랑 옆지기 어린 동생이랑 함께 살 집을 얻어 지내려 했기에, 이렇게 하면 옆지기랑 아이랑 집에서 함께 지낼 수 있고, 이렇게 하자니 인천에서는 달삯을 제법 치르는 집을 얻어야 했다. 옆지기 어머님하고 옆지기 어린 동생이 오지 않는 바람에 우리 식구는 아침저녁으로 힘들게 만나는 여섯 달 남짓을 보내야 했는데, 이런 나날을 보낸 다음에는 두 번 다시 식구들이 떨어서 지내야 하는 일을 하면 안 되겠다고 깊이 깨달았다. 돈을 번다며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하루를 거의 다 보내고 나서, 지친 몸으로 겨우 얼굴을 본다면, 이때에 무슨 이야기와 무슨 사랑과 무슨 꿈이 피어날 만할까. 날마다 새롭게 자라는 아이 모습을 바라보지 못할 뿐 아니라, 날마다 새로이 무르익는 옆지기 삶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돈을 조금 쥔다 한들 어떤 보람이 있을까.

 아버지랑 어머니가 늘 함께 지내듯, 첫째 아이는 동생이랑 노상 함께 지낸다. 아직 여섯 달짜리 갓난쟁이인 터라 첫째 아이 놀이동무가 되기 힘들지만, 한 해만 지나도 좋은 놀이동무가 될 테고, 두 해가 지나면 살가운 놀이벗이 되겠지. 시골마을에서 서로 돕고 아끼는 좋은 삶지기가 되리라.

 네 살 아이가 한 살 아이를 껴안고 논다. 첫째 아이가 아버지 등을 타고 놀고 난 뒤에 가끔 한 살 아이를 첫째 아이 등에 업혀 본다. 너도 아버지 등에 업혔으면 동생도 업어 봐, 동생은 못 업으면서 아버지한테 업히려고만 하지 마.

 첫째 아이가 유아원이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같은 데를 다닌다면 무엇을 배울까. 이 아이는 유아원이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같은 데에서 어떤 동무를 사귀고 어떤 말을 익히며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어버이로서 내가 아이한테 따사로우며 좋은 말을 물려준다고는 느끼지 못한다. 조금 더 사랑스레 다가서지 못하고, 한결 너그러이 감싸지 못한다고 느낀다. 나부터 새로 배우며 살아갈 사람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은 아니다. 나부터 이 삶을 예쁘게 즐기면서 곱게 사랑할 때에 아이는 시나브로 따사로우며 좋은 말로 따사로우며 좋은 넋을 북돋우리라.

 사랑스레 껴안아야지. 싱그럽게 어루만져야지. 해맑게 보살펴야지. 내 삶이고 네 삶이며 우리 삶인걸. 내 집이고 네 집이며 우리 집인걸. 내 보금자리이고 네 보금자리이며 우리 보금자리인걸. 아침까지 새근새근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면 동생이랑 어머니 아버지랑 또 즐겁게 뛰놀자. 차갑게 바뀌는 바람 시원하게 맞으면서 파란 빛깔 하늘과 볼그스름 물드는 멧자락을 얼싸안자. (4344.1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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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에 일어나서 빨래하기


 새벽에 일어나서 빨래를 해야 한다. 새벽에 빨래를 한두 차례 하지 않으면 아침에 너무 바쁘다. 아침 일찌감치 밥차림을 헤아려야 하고 이부자리 개고 뭐를 하노라면 한두 시간 아닌 서너 시간 홀라당 지나간다. 새벽에 둘째 오줌기저귀를 갈거나 보일러를 한 시간쯤 돌리고 끌 무렵 기지개 켜고 일어나 빨래를 해 놓아야 비로소 아침에 느긋하다.

 고요히 잠든 마을 한켠에서 새벽빨래를 하며 새벽소리를 듣는다. 빨래를 비비고 헹구는 복작복작 소리를 낸다. 새까만 바깥을 바라본다. 다 마친 빨래를 한손에 걸치고 어두운 방을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다 마른 빨래는 방바닥에 미리 깐다. 빨래는 따뜻하게 올라오는 기운을 받아들인다. 옷걸이에 기저귀랑 옷가지를 하나씩 건다. 방마다 알맞게 나누어 넌다. 글조각 조금 매만지다가, 방바닥에 드러누워 허리를 펴다가, 다시금 기지개를 켠 다음 빨래를 갠다.

 밤빨래나 새벽빨래는 나 혼자 아무도 몰래 하는 집일. 옆지기도 아이도 모른다. 어쩌면 옆지기나 아이는 알아챌는지 모른다. 이부자리 한쪽에 있어야 할 아버지가 없으니까. 뒹굴며 자는 아이가 아버지 쪽으로 뒹굴며 발을 뻗거나 손을 휘두르며 아무것도 채이거나 만져지지 않으니까.

 아이가 뒹구는 소리가 나면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 깃을 여민다. 빨래를 다 개고 나면 바야흐로 홀가분하게 글조각 붙잡을 수 있다. 하루 스물네 시간 가운데 나한테 주어진 아주 고마운 두 시간. 새벽 네 시부터 새벽 여섯 시까지 바지런히 글을 빚는다. 새벽 한 시나 두 시에 빨래를 했으면 새벽 너덧 시 무렵까지 글조각을 붙잡다가 졸음에 겨워 드러눕는다. (4344.1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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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58) 네잎토끼풀


.. 이제 곧 베어질 풀이지만 그래도 조심조심 뜯어서 꽃팔찌도 만들고, 꽃잎 바람개비도 만들었다. 엮어서 안경도 만들고 꽃머리띠도 만들었다. 네잎토끼풀 찾기도 했다 ..  《강우근-동네 숲은 깊다》(철수와영희,2011) 56쪽

 어릴 적부터 토끼풀을 보았습니다. 토끼풀을 바라보며 ‘클로버(clover)’라 일컫는 동네 어른이나 학교 교사가 있었기에 중학교에 들어 영어를 배우기 앞서부터 ‘토끼풀 = 클로버’인 줄 알았습니다. 다만, 두 가지 이름이 한 가지 풀을 가리키는 줄 알면서 으레 ‘세잎클로버’와 ‘네잎클로버’라고만 말했어요. 그러니까, 동무들끼리 “와, 토끼풀이다!” 해 놓고는 “네잎클로버 찾아야지!” 하고 말한 셈이요, “토끼풀로 반지를 만들자.”고 하면서도 “넌 네잎클로버 찾았니?” 하고 말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이른바 어른이라는 자리에 선 다음, 고향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여러 해 지냈습니다. 이동안 만난 다른 어른이나 이웃이나 동무들하고 토끼풀 이야기가 나올 때에 거의 모두 ‘토끼풀 = 클로버’인 줄 알아듣지 못합니다. 국어사전이든 영어사전이든 찾아보면 금세 알 텐데, 식물도감을 들여다보면 뻔히 알 텐데, 참 많은 사람들이 토끼풀이랑 클로버는 다른 풀이라고 여깁니다. 더군다나 ‘네잎토끼풀’ 같은 말은 안 쓰고, 어쩌다 누군가 이렇게 말하면 도무지 못 알아듣습니다.

 세잎토끼풀
 네잎토끼풀
 닷잎토끼풀


 좋은 일을 불러들인다면서 네 잎 달린 토끼풀을 찾아 책 사이에 곱게 끼워서 말립니다. 어느 날에는 다섯 잎 달린 토끼풀을 만납니다. 흔히 마주하는 토끼풀은 세 잎인데, 세잎토끼풀도 네잎토끼풀 못지않게 예쁩니다. 잎사귀를 만지작거리는 느낌이 좋고, 꽃송이 쓰다듬는 결이 좋아요. 아침에 손가락에 반지를 걸고는 저녁에는 풀숲에 곱다시 내려놓습니다. 내 손가락과 함께 있어 주어 고맙다고 절을 합니다.

 꽃으로 만들어 꽃반지입니다. 꽃으로 엮어 꽃머리띠입니다. 꽃으로 짜기에 꽃팔찌예요. 토끼풀꽃반지입니다. 토끼풀꽃머리띠예요. 토끼풀꽃팔찌입니다.

 남녘땅 고흥 들판을 아이하고 거닐며 때때로 토끼풀을 만납니다. 네 살 아이는 토끼풀을 바라보며 “어, 이거 반지 하는 풀이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4344.1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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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숲은 깊다 - 도시에서 찾은 자연과 생태
강우근 지음 / 철수와영희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아이들과 흙 만지며 숲에서 놀아요
 [환경책 읽기 32] 강우근, 《동네 숲은 깊다》


- 책이름 : 도시에서 찾은 자연과 생태, 동네 숲은 깊다
- 글·그림 : 강우근
- 펴낸곳 : 철수와영희 (2011.11.25.)
- 책값 : 13000원


 어버이한테서 땅을 물려받지 않고서야 흙을 일구며 살아가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흙일꾼으로 푸른 날과 젊은 날을 누리기는 어렵습니다.

 시골자락 논이랑 밭이랑 멧자락 사들이는 값은 그닥 비싸지 않습니다. 서울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도시에서 땅 한두 평 사들이는 값이면 시골자락 너른 논밭과 살림집을 장만할 수 있어요.

 그러나 오늘날 삶흐름을 돌아본다면, 오늘날 아이들은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어린이집부터 대학원까지 ‘흙 일구는 땀’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흙을 일구는 보람을 가르치지 않아요. 아이들한테 교과서를 가르치는 어른들은 흙을 일구는 뜻을 헤아리지 못해요. 교사나 교수 가운데 흙삶을 스스로 누리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나머지, 아이들하고 흙을 만지며 일하는 즐거움을 나눌 수 없습니다.

 농업고등학교가 몇 군데를 빼고 몽땅 사라집니다. 학교이름에 농업이라는 낱말이 남더라도 농사일을 힘껏 가르치지 못합니다. 흙을 일구는 일보다는 교과서를 훨씬 오래 많이 자주 깊이 가르쳐요. 흙을 일구는 나날을 늘 느끼도록 이끌지 못해요.

 농업고등학교에 앞서 농업중학교가 없습니다. 농업중학교에 앞서 농업초등학교가 없어요. 농업초등학교에 앞서 농업유치원이나 농업어린이집이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시골마을에서 태어나더라도 어린이일 적부터 흙을 가까이 사귀지 못합니다. 시골 어린이집조차 영어를 가르치지, 호미질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뜻있다는 어린이집이더라도 낫질을 가르치지 않아요. 한글과 영화와 그림책 지식에 얽매입니다.
 



.. 냉이 하나 캐려고 구덩이까지 파지만 뿌리는 절반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나물 캐는 걸 흙 파는 놀이마냥 재미있어 한다 … 텃밭 둘레에서는 심지도 않았는데 자라나는 들나물을 언제나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텃밭은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터다. 텃밭 가꾸기를 시작한 것도 흙장난을 좋아하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 목련 풋열매는 낙서하기에 딱 좋다. 풋열매를 산딸기 열매 담았던 통에 가득 채워 아파트 옆 옹벽으로 가서 신나게 낙서를 했다 ..  (17, 39, 92쪽)


 오늘날 한국땅 시골마을에는 어르신들이 흙을 일굽니다. 한국땅 시골마을 어르신들은 당신 딸아들을 알뜰히 가르쳐 박사를 만들고 학자를 만들며 교수를 만듭니다. 의사랑 판사랑 검사를 만듭니다. 대통령을 만들고 국회의원을 만들며 군수를 만들어요.

 박사랑 국회의원을 만든 시골마을 어르신들은 일흔 여든 나이에도 흙을 일굽니다. 구부정한 허리를 다시 펴지 못해 그예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마지막날까지 손에서 호미를 놓지 않습니다. 손으로 흙을 만집니다. 손톱 밑에는 흙때가 박힌 채 빠지지 않습니다.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운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으려 합니다.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운 박사와 석사와 기술자와 교수들은 한강·낙동강·금강·섬진강뿐 아니라 온 나라 모든 물줄기에 삽질을 해서 물길을 똑바로 편 다음 물가에 시멘트를 들이부어 ‘걷는 길이랑 자전거 타는 길이랑 운동기구 갖다 놓는 일’을 합니다.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운 기자들은 서울로 몰려들어 신문을 만들고 방송을 만듭니다.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운 교사랑 교사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몸담으며 아이들한테 교과서를 가르칩니다.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운 공무원은 공공기관이라는 곳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키면서 돈을 법니다.

 언제나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흙을 만지는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인데,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우며 함께 살아가는 흙일꾼 딸아들은 더더욱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사람은 용케 굶어죽지 않습니다.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가 곡식을 거두고 짐승을 치며 물고기를 낚으며 김을 말리지만, 모두들 도시로 몰려들어 아파트를 빼곡하게 올리고 자동차를 뛰뛰빵빵 몰면서, 용케 굶어죽지 않고 돈만큼은 알뜰살뜰 벌어들입니다.
 



.. 냉이 잎은 크기도 모양도 참 여러 가지다. 어떤 것은 지칭개 같고 어떤 것은 망초 같고 또 어떤 것은 개갓냉이 같기도 하다. 스스로 적응하면서 살아가야 하기에 냉이는 이렇듯 다양한 모습을 갖게 되었을 게다. 나물을 한 봉지쯤 캐다 보면 꽃다지와 망초와 냉이쯤은 어느덧 자연스레 가릴 수 있게 된다 … 도룡뇽은 어항 바닥에 깔아 줄 모래를 쓸어 담으면서 휩쓸려 들어왔나 보다. 모래에 쓸려서 깔따구 애벌레도 잔뜩 딸려 왔다. 하루살이 애벌레, 날도래 애벌레도 쓸려 왔다. 물달팽이, 물벼룩도 보이고, 히드라도 보이고, 모래에 쓸려 온 게 참 많다. 개울 속 모래는 물속 생물이 살아가는 터전이구나. 그러니 강바닥 모래를 마구 파내는 것은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인가 ..  (18, 60∼61쪽)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는 당신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흙일을 배웠겠지요.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는 당신 딸아들한테 흙일을 안 가르쳤겠지요. 당신 딸아들한테 흙일을 가르치지 않으며 허리가 구부정해질 무렵, 군사쿠테타와 함께 찾아온 새마을운동 바람에 휩쓸리면서 풀약과 비료를 듬뿍 치고 비닐을 덮어씌운 다음 기계로 휘휘 밀고 닦는 농사짓기를 새로 배웠겠지요.

 풀약과 비료를 치고 비닐을 덮으며 기계로 밀고 닦는 농사짓기는 굳이 딸아들한테 가르치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이런 농사짓기는 농협 공무원이 훨씬 잘 가르치겠지요. 이만 한 재주라면 대학교 농업과학과 같은 데에서도 얼마든지 가르치겠지요.

 즈믄 해인지 만 해인지 알 길 없는 기나긴 나날에 걸쳐 흙일꾼 아버지 어머니가 흙일꾼 딸과 아들을 낳았습니다. 쉰 해가 채 안 되는 짧은 오늘날 참말 흙을 일구는 길이 꽉 막히면서 송두리째 사라집니다.

 풀약을 치면 풀이 죽습니다. 풀약을 쳐도 벼나 옥수수나 콩이나 보리나 밀이나 서숙은 죽지 않는다지만, 이들 곡식에는 풀약이 배어듭니다.

 풀약을 치면 사람들 즐겨먹는 곡식 둘레에서 스스로 씨를 퍼뜨려 돋는 숱한 나물이 죽습니다. 포도나 능금이나 배 같은 열매는 아주 풀약에 찌들며 알이 굵고 달콤해진다지만, 칡이나 쑥이나 냉이나 씀바귀는 풀약을 한 번 맞으면 그대로 말라죽습니다.

 그러고 보면 배추나 무나 당근이나 토마토나 오이는 풀약을 듬뿍 쐽니다. 그래도 용케 안 죽습니다. 풀약을 듬뿍 먹은 곡식이랑 푸성귀를 먹는 사람들 또한 용케 안 죽습니다.

 다만, 용케 안 죽을 뿐, 오늘날 여느 사람치고 병원 문턱 뻔질나게 드나들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나이들어 보험 걱정 않는 사람 꼽기 힘듭니다. 요즈음 아이들치고 아토피 없는 아이나 젊은이는 아예 없다 할 만합니다. 새로운 병은 자꾸 늘고, 새로운 예방주사 자꾸 생기지만, 아픈 사람은 끊이지 않아요. 아프며 고단한 사람은 그치지 않아요.
 



..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찬 동네에서 걷기 좋은 길은 드물다. 풍경도 삭막하다. 걷다가 쉴 만한 곳도 찾기 힘들다 … 아파트 둘레 풀들은 대개 다 귀화식물이네. 이런 잡초들은 쓸모없고 성가신 풀 같지만 벌레들한테는 밥이 되고, 집이 된다 … 낙엽 속에서 겨울잠 자는 벌레처럼 낙엽 이불을 덮고 조용히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누워서 본 숲의 모습은 색다른 느낌이다 ..  (52, 73, 122쪽)


 그림쟁이 강우근 님이 빚은 이야기책 《도시에서 찾은 자연과 생태, 동네 숲은 깊다》(철수와영희,2011)를 읽습니다. 북한산 밑자락에서 살아가며 그림을 그린다는 강우근 님인데, 강우근 님은 서울에 깃든 아파트에서 두 아이랑 옆지기랑 살아가며 그림을 그립니다. 으레 자연을 그리고 으레 아이들 삶을 그림으로 옮기는데, 강우근 님 집자리랑 살림자리는 도시요 아파트입니다.

 아파트에서, 게다가 서울자락 아파트에서 살아가며 어떻게 자연 그림이랑 어린이 그림을 그리나 아리송합니다. 그렇지만, 서울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아파트에서 살든 숲속에서 살든,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며 생각을 어찌 가누느냐에 따라 그림결이 달라지리라 믿습니다. 자연을 품에 안는 사랑을 곱게 건사할 수 있으면, 아파트로 빼곡한 곳에서도 냇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풀벌레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바람이 이파리 흔드는 소리를 들어요. 구름이 흐르는 소리와 빗물이 아파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햇살이 슬퍼하는 소리와 무지개가 끙끙 앓는 소리를 듣겠지요.

 《동네 숲은 깊다》는 책이름처럼 도시자락 동네에 사람이 애써 만든 숲 또한 사랑스러운 자연이요 깊은 자연이며 아름다운 자연이라는 이야기를 담아요. 꼭 시골땅을 장만하고 시골집을 일구어야 자연사랑이 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보여줘요. 메마르고 팍팍한 도시에서 한결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꿈을 들려줘요. 텔레비전에 휘둘리고 부질없는 쇠삽날 막공사 정책에 길드는 사람들이 애틋하게 어루만지고 싶은 사랑을 나눕니다.
 



.. 개울을 뚝딱뚝딱 도로 만들 듯이 만들려고 한다. 개울에 사는 벌레 한 마리 삶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니 포클레인으로 파내고 물만 흘리면 개울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숲도 만들고 개울도 만들고 강도 만들고 … 집에 돌아오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 (우리 아이) 나무하고 단이가 텃밭에 가지 않으려고 버틴 것은 그 시간에 텔레비전에서 하는 스포츠 중계를 보고 싶어서였다. 아이들은 커서 이제 마음대로 할 수 없다 ..  (87, 142쪽)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가더라도 숲을 사랑하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숲을 사랑하는 넋을 심습니다. 이 아이 어버이는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도시에서 일거리를 찾더라도, 이 아이는 홀로서기를 할 나이가 꽉 찰 무렵 제 어버이보다 한결 씩씩하게 흙땅을 찾아 흙집을 짓고 흙일꾼이 되는 흙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가더라도 푸나무를 아끼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푸나무 아끼는 얼을 물려줍니다. 이 아이 어버이는 도시에서 얽매이며 도시에서 떠돌더라도, 이 아이는 제금날 나이가 될 무렵 제 어버이는 생각으로만 품던 꿈을 아이 삶으로 이루면서 어려운 가시밭길이든 힘겨운 자갈밭이든 다부지게 걸어가며 싱그러운 흙내음 살가이 들이마실 수 있어요.
 



.. 요즘 아이들은 놀 줄을 모른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런데 아이들은 놀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놀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놀지 못하는 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놀게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이다 ..  (머리말)


 《동네 숲은 깊다》처럼 도시에서 동네를 사랑하는 길을 슬기로이 다스릴 줄 알면 좋겠습니다. 도시에서 동네를 사랑하는 길을 아름다이 닦으면 반갑겠습니다. 서른 해나 마흔 해 뒤 다시 허물어 짓는 아파트는 부디 끝장낼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아파트에서 사느냐 마느냐는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떤 사랑을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삶터에서 어여삐 꽃피우는 보금자리를 이루며 즐기어 나누느냐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동네 숲은 깊다》에서 한 가지 아쉽다면, “낙엽이 많이 졌다(121쪽)”, “낙엽은 이쪽으로 떨어질 듯하다가(122쪽)”, “낙엽이 떨어져 쌓이는(122쪽)”처럼 ‘낙엽(落葉)’이라는 낱말을 자꾸 쓰는데, ‘낙엽’ 씀씀이가 올바르지 않습니다. “나뭇잎이 떨어져 땅에 앉으면” 이때에 ‘낙엽’이라 일컫습니다. “길에 낙엽이 많다”처럼 쓸 수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한국말은 ‘낙엽’ 아닌 ‘가랑잎’이에요. 나무에 달릴 때에는 나뭇잎이요, 나무에서 똑 하고 떨어질 때에는 가랑잎이 됩니다. ‘네잎클로버’ 아닌 ‘네잎토끼풀(56쪽)’을 이야기할 줄 아는 강우근 님인 만큼, 아무쪼록 ‘가랑잎’과 ‘나뭇잎’을 알맞게 가려쓸 줄 알면 더 기쁘겠습니다. (4344.11.21.달.ㅎㄲㅅㄱ)
 

 

(마지막 사진은 여섯 달짜리 둘째가 잡아 주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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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놀이 어린이


 빨래널대에 빨래집게를 가지런히 꽂는 아이는 이듬날 아침 아버지가 빨래널대에 빨래를 널고 난 다음 혼자서 빨래널대를 끌어서 세우고는 빨래를 옮겨 넌다. 빨래마다 빨래집게를 꽂는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바깥에 세우지 않고 집안에 두니까 빨래집게는 안 집어도 되지만, 아이는 이렇게 집으면서 빨래놀이를 한다. 이제 여느 날 빨래를 널러 마당으로 나가면 아이는 금세 따라 나오면서 아버지 일을 거든다. 젖은 빨래를 흙땅에 떨어뜨리는 일이 때때로 있지만, 아이 스스로 집어 아버지한테 건네거나 아이 스스로 옷걸이에 꿰어 빨래널대에 널기를 더 좋아한다. 아이 키에 맞는 조그마한 빨래널대가 있으면 하나 더 장만해서 아이 옷가지만 따로 널도록 하고 싶다. (4344.1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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