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빨래와 기계빨래


 나는 기계빨래를 하지 않는다. 빨래하는 기계를 다룰 줄 모르기도 하지만, 빨래기계를 장만할 살림돈이 없다. 그러나 빨래기계를 장만하려고 돈을 모은다든지, 빨래기계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빨래기계를 얻어서 써야겠다고 생각한 적조차 없다.

 나는 두꺼운 옷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얇고 가벼운 옷을 좋아한다. 두꺼운 옷은 빨래하기 힘들다. 물을 짜거나 털기 어려울 뿐 아니라 말리기 참 고단하다. 두꺼운 옷 못지않게 두꺼운 이불을 안 좋아한다. 두껍고 무거운 이불이 한결 따뜻할는지 모르지만, 두껍고 무거운 이불을 어떻게 빨래하는가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얇고 가벼운 이불을 여러 채 덮으며 지내고플 뿐이다.

 아이를 씻긴다. 내 몸을 씻을 때에는 찬물만 쓰지만, 아이를 씻길 때에는 보일러를 돌려 따순 물을 받는다. 첫째는 네 살로 자랐다. 첫째를 씻길 때에는 온몸을 구석구석 문질러 때를 벗긴다. 빼를 벗긴 물은 버리지 않는다. 첫째를 씻기며 벗긴 옷을 옆에 담가 놓는다. 첫째를 다 씻기고 물기를 닦아 새 옷을 입혀 방으로 들이고 나서 빨래하며 헹굴 때에 헹굼물로 쓴다.

 둘째는 갓난쟁이인 만큼 첫째하고는 사뭇 달리 천천히 보드라운 손길로 씻겨야 한다. 둘째를 씻기고 나서 나오는 빨래감은 둘째를 씻길 때에 쓴 물로 헹군다. 따순 물이기 때문에 똥기저귀나 오줌기저귀를 빨기에 좋다. 옆지기 핏기저귀를 이때에 함께 빨면 핏물이 잘 빠진다.

 오늘 새삼스레 기계빨래를 헤아려 본다. 둘째가 태어난 뒤 빨래거리가 다시금 곱배기로 늘었다. 첫째가 태어난 뒤에도 빨래거리는 곱배기로 늘었다. 옆지기와 함께 살기로 한 뒤부터도 빨래거리는 곱배기로 늘었다. 그러니까, 요즈음 내 빨래는 내가 혼자 살던 때하고 견주면 두 곱이 두 곱이 되었다가 다시 두 곱이 된 셈이다. 모두 해서 세 곱이 아니다. 두 곱이 되었다가, 이 부피에서 두 곱이 되었고, 다시 이 부피에서 두 곱이 되었다. 차츰차츰 곱배기로 늘어나는 빨래일이기 때문에, 내 손목이 남아나지 못한다. 첫째가 세이레를 날 무렵에도 손목이 남아나지 않았지만, 둘째 때에는 더욱 고단하다. 아무래도 그동안 나이를 네 살 더 먹었기 때문일 테지.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지난날에는 아이를 참 많이 낳았다. 지난날에는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집안 빨래거리를 나누어 주었다. 다른 집안일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아이들은 조금씩 자라면서 집안에서 훌륭한 일꾼 몫을 한다. 옆지기가 몸이 튼튼해서 셋째도 낳고 넷째도 낳는다면, 첫째가 크면서 빨래일을 나누어 줄 테며, 둘째도 나누어 줄 테지. 앞으로 우리 집 둘째가 대여섯 살이 되고 예닐곱 살이 될 때까지는 이 아이들 옷가지는 아버지가 다 빨아야 한다고 느낀다. 둘째가 예닐곱 살이 되자면 아버지는 마흔서넛이 된다. 아마 마흔서넛 나이가 되도록 아버지는 둘째 오줌기저귀를 빨아야 할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열 살을 지나고 열두어 살쯤 되면 저희 옷가지는 저희가 맡아서 빨겠지. 저희 이불도 저희가 빨겠지. 이쯤 되면 아버지도 나이값을 하느라 손아귀 힘이 많이 줄어 빨래하는 힘도 꽤 빠질 테지만, 아이들이 나누어 맡을 일손을 살핀다면, 마흔이건 쉰이건 예순이건 즐거이 집빨래를 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손빨래를 하면서 늘 생각한다. 어버이 된 나부터 손빨래를 즐기고, 아이 된 우리 집 두 어린이가 손빨래를 즐길 수 있기를 꿈꾼다. 저마다 제 옷을 아끼고, 제 삶을 사랑하며, 제 몸뚱이를 믿을 수 있기를 바란다. 튼튼한 몸뚱이와 물과 비누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손빨래를 할 수 있다. 돈이나 전기나 뭐가 없더라도 내 몸을 믿고 살아가면 아름답다. (4344.5.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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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이뻐?


 네 살 아이를 씻길 때에, 아버지는 네 살 아이를 무릎에 누이고 머리를 감긴다. 네 살 아이는 이제 꽤 무겁다. 무릎에 누이고 머리를 감기면 팔과 무릎이 꽤 뻑적지근하다. 그렇지만 아이는 선 채로 머리를 숙여 머리감기를 하고픈 마음이 없다. 아이가 스스로 머리를 숙여 머리감기를 하겠다고 할 때까지는 이렇게 무릎에 누여 머리를 감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녁에 곯아떨어져 잠자리에 드러누울 때에 이불을 여미며 바라보면 키가 제법 컸다고 느낀다. 마당에서 달리기를 할 때에 가만히 바라보면 발과 다리와 손과 팔과 허리와 등과 몸을 곧게 잘 편다. 예쁘고 아름답다.

 아버지 무릎에 누운 채 머리를 맡긴 아이가 아버지를 빤히 바라보면서 묻는다. “아버지, 벼리 예뻐?” 아버지는 두 가지로 이야기한다. 첫째, “벼리 예쁘지. 벼리 착하지. 벼리 예쁘고 착하지.” 다음으로, “예쁜 벼리인데 너무 말을 안 들어서 예쁜 벼리 맞는지 모르겠네.”

 오늘 저녁 아이를 씻길 때에 아이는 어김없이 묻는다. “아버지, 벼리 예뻐?” 아버지는 둘째 이야기를 한다. 아이는 가만히 생각하다가는 “말 잘 들어야 해?” 하고 거듭 묻는다. “말 잘 들어 주셔요. 너무 힘들어요.” 하고 이야기를 한다.

 첫째 아이를 다 씻기고, 할머니와 함께 둘째를 씻긴다. 첫째 아이는 둘째를 씻길 때에 옆에서 요모조모 거들려 한다. 그러나 아직 무척 어린 네 살이기 때문에 제대로 못 거들곤 한다. 보드라운 말씨로 예쁘게 타이르지 못한다. 그렇지만 첫째 아이는 씩씩하고 다부지게 일손을 거들려고 애쓴다. 다 씻기고 씻는통을 내갈 때에, 둘째가 입던 배냇저고리로 바닥을 훔치는 몫을 첫째한테 맡긴다. 첫째는 신나게 바닥 물기를 훔쳐 아버지한테 건넨다.

 아이가 “나 예뻐?” 하고 묻기 앞서, 아이한테 “예쁘구나.” 하고 자주 이야기하면서 오래오래 꼬옥 안으며 지내지 못한다면, 시골집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뜻이 없다.

 아이는 꾹 참고 기다린다. 아이는 요사이 새벽마다 코피를 쏟으면서 야무지게 견디며 기다린다. 아이는 제 아버지를 닮아 새벽잠이 없고, 졸려도 애써 참으며 더 개구지게 놀려고 용을 쓴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그야말로 예쁘게 보듬지 못한다면, 아픈 옆지기 몫까지 도맡아서 집일과 집살림을 건사하는 어버이 구실을 하나도 못하는 셈이다. 아이도 옆지기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모두 예쁘다. (4344.5.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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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61 : 좋아서 읽는 책


 좋아서 읽는 책입니다. 좋아서 기쁘게 장만하는 책입니다. 좋아서 예쁘게 선물하는 책입니다. 좋아서 내 삶으로 담고픈 책입니다. 좋아서 날마다 다시 들추는 책입니다. 좋아서 언제나 곁에 두면서 되새기는 책입니다.

 좋아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좋아서 곱게 살림을 꾸립니다. 좋아서 나무를 아끼고 좋아서 꽃과 풀을 보듬습니다. 좋아서 길을 천천히 걷습니다. 좋아서 파란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좋아서 누런 빛깔 흙을 맨발로 밟으며 보송보송한 기운을 살며시 받아들입니다. 좋아서 나비 날갯짓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만화책 《누나는 짱!》(와타나베 타에코 그림,학산문화사 펴냄)은 일본에서 1990년대 첫머리에 나왔고, 한국에서는 1999∼2000년에 옮겨집니다. 4권 87쪽을 보면, 다섯 쌍둥이가 툭탁툭탁 얽히다가는  “타쿠미도, 나오토도, 똑같지 않으니까 둘이 있는 거잖아?” 하는 이야기가 톡 튀어나옵니다. 쌍둥이라 으레 똑같이 생겼다고 여기지만, 똑같이 생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똑같은 삶이 아니요 똑같은 넋이 아니에요. 둘은 많이 닮았다 할 만하지만 ‘많이 닮았’을 뿐, ‘서로 다른’ 예쁜 목숨이에요.

 《누나는 짱!》 12권을 펼치면 100쪽에 “설령, 그래도 못 쉬어. 나를 대신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니까.”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만화책은 연예기획사에 몸담아 손꼽히는 가수나 연예인으로 뛰는 젊거나 어린 사람들이 나오는데, 고작 스물 안팎밖에 안 된 어린 사람들이 삶과 사랑과 사람을 꿰뚫는 눈이 참으로 남다릅니다. 아니, 남다르다기보다 ‘널리 사랑받는 손꼽히는 연예인’이기에 앞서 ‘나는 이 지구별에 내 어버이한테서 오직 하나뿐인 사랑을 받아 태어난 꼭 하나뿐인 예쁜 목숨’인 줄을 뼛속 깊이 알뜰히 아로새겨요.

 모두 열다섯 권에 이르는 만화책 《누나는 짱!》을 둘째 아이 똥기저귀를 빠는 틈틈이 읽습니다. 둘째가 우리 집으로 찾아온 지 꼭 이레가 되는 오늘까지, 이 아이는 날마다 똥기저귀를 마흔 장, 오줌기저귀를 두 장 즈음 내놓습니다. 몸이 아픈 옆지기는 집일을 하나도 못하기에 첫째 때하고 똑같이 둘째 때에도 기저귀 빨래나 집일을 아버지가 도맡습니다. 둘째 똥기저귀를 빨면서 ‘그래, 첫째 때에도 똥기저귀를 세이레까지 마흔 장 남짓 늘 빨았잖아?’ 하고 떠올립니다. 그때 어떻게 이런 빨래를 했나 나도 참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하며 둘째 똥기저귀를 빱니다. 둘째 기저귀를 빨며 첫째한테 얘기합니다. ‘네가 아기였을 때에도 이렇게 했어. 네가 아기였을 때에는 둘째 때보다 훨씬 오래 안고 달래며 놀아 주었어.’ 그러나 첫째는 저한테 더 사랑을 쏟아 달라며 엉겨붙거나 달라붙습니다. 아이니까, 아직 네 살밖에 안 된 아이라 할 테니까, 오래오래 더 깊이 사랑받고 싶으니까, 아이는 더 촐싹대고 더 방정맞게 굴겠지요.

 그러니까, 아이는 좋아서 엉겨붙습니다. 좋아서 떼를 씁니다. 좋아서 조잘조잘 떠들거나 노래를 부릅니다. 어버이는 좋아서 아이를 업고 안으며 토닥입니다. 좋기에 힘겹거나 바쁜 틈을 쪼개어 책을 읽습니다. 기저귀를 갈고 아기를 품에 살며시 안은 채 책을 읽습니다. (4344.5.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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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74] dibrary 디토 유토 엔토

 이제 한국땅 공공기관 가운데에는 아예 영어로 이름을 짓는 곳까지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영어 이름’ 공공기관은 퍽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느 회사는 하나같이 영어 이름을 붙일 뿐 아니라, 거의 모든 곳이 영어사랑 영어바람이니까요. ‘디브러리’라는 이름이라면 아무래도 ‘디지털 라이브러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디지털’ 같은 영어를 쓸 수밖에 없다면, ‘디지털 도서관’이라 해야 할 테지만, 이런 이름조차 못 씁니다. 더욱이, 디저털 도서관을 널리 알릴 때에 쓴다는 상징그림에 붙이는 이름은 ‘디토’와 ‘유토’와 ‘엔토’예요. 아무래도, 영어 이름 공공기관이니까 영어 이름 상징그림입니다. 살가우면서 손쉽고 고운 이름 공공기관이라면, 이곳 상징그림에 붙이는 이름 또한 살가우면서 손쉽고 곱게 붙였을 테지요. (4344.5.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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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우리 말 90] TEL 하고요

 한국사람이 영어 아무 데나 쓰기 좋아하는 버릇은 언제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아리송하다. 다만, 요즈음 들어 생각하면, 일본 문학이나 만화를 한국말로 옮기는 자리에서 이와 같은 ‘영어 아무데나 쓰며 좋아하기’를 쉬 찾아본다. “전화 하고요” 아닌 “TEL 하고요”는 일본 만화책에 ‘TEL’이라 적혔기에 이러한 모습을 고스란히 적바림한 글월일 테지. (4344.5.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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