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숲의 아카리 7
이소야 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원고지 석 장 느낌글 012] 서점 숲의 아카리 7


 《서점 숲의 아카리》 7권은 서점에서 일하는 여러 사람이 살며시 얼키고 설키는 풋사랑을 보여줍니다. 이동안 서점 일꾼으로 한삶을 보내는 사람 매무새는 어떠해야 좋을까 하는 생각을 들려줍니다. “테마는 하나지만 ‘그것을 읽고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그 사람에게 달렸다’는 느낌으로 가면 되잖아(33쪽).” 같은 말마디처럼, 서점 일꾼은 서점으로 찾아오는 손님한테 이 책을 읽으라거나 저 책을 사라거나 하고 말하거나 등을 밀 수 없습니다. 책손 스스로 어느 책을 읽거나 사려 하는지를 골라야 합니다. 더 생각한다면, 책을 읽는 사람 스스로 책마다 무슨 줄거리가 담겼고 어떤 넋이 깃들었는가를 헤아려야 합니다. 비평하는 사람이 얘기했으니 이대로 따를 수 없습니다. 교사나 어버이가 말했으니까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습니다. 책읽기는 책을 읽은 사람대로 받아들이는 삶입니다. 밥먹기는 밥을 먹은 사람대로 몸으로 삭이는 삶이에요. 스스로 살고 스스로 읽으며 스스로 먹습니다. 스스로 사랑하고 스스로 좋아하며 스스로 아낍니다. 짝사랑이든 풋사랑이든 참사랑이든 외사랑이든 실타래사랑이든 괜찮습니다. 내 삶이 사랑이면 흐뭇합니다. (4344.6.15.물.ㅎㄲㅅㄱ)


― 이소야 유키 그림,학산문화사 펴냄,20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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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가용과 책읽기


 자가용을 모는 사람은 책을 읽지 못한다. 버스를 모는 이 가운데 무척 드물게 운전대 옆에 책 하나 놓고 틈틈이 읽는 사람이 있다지만, 자가용 모는 사람 가운데 운전대 옆에 책 하나 놓으며 틈틈이 읽는다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짐차를 몰거나 택시를 모는 사람은 어떠할까. 온누리 온갖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모는 겨를하고 책을 읽는 겨를이 어떻게 될까.

 자동차를 모는 사람은 누구나 앞을 보며 달린다. 옆을 보거나 뒤를 볼 수 없다. 다른 자동차하고 받거나 스치지 않자면 옆거울이나 뒷거울을 본다. 그렇지만 옆이나 뒤를 보지는 않는다. 앞을 바라본다 하더라도 앞산이나 앞들이나 앞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 오직 앞길과 앞차만 바라볼 수 있다.

 집에서 식구들을 태우는 자가용일 때에는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다. 모든 삶터는 휙휙 스친다. 달리기를 멈추고 오래도록 한 곳에서 느끼거나 누리거나 생각하지 못한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숲 사이 찻길을 달린다 하더라도 스치면서 살짝 맛보는 숲길이 될 뿐, 오래도록 멈추어서 숲과 바람과 하늘과 멧새와 풀벌레가 어찌 어우러지는가를 받아들일 수 없다.

 모든 자동차는 소리가 시끄럽다. 모든 자동차는 라디오를 틀든 노래를 듣든 소리를 키워야 들린다. 모든 자동차는 바깥에서 어떠한 소리가 나는지 들을 수 없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귀뚜라미가 울든 꾀꼬리가 울든 아이들이 조잘조잘 놀이노래를 부르든 자동차는 이 모든 소리를 듣지 않는다. 이뿐 아니라 둘레 모든 소리를 잠재우고야 만다.

 모든 자동차는 아주 바쁘다. 가까운 길이든 머나먼 길이든 더 빨리 달리도록 하는 자동차일 뿐이다. 가까운 길을 가깝게 즐기거나 머나먼 길을 머나멀게 누리도록 하는 자동차는 없다.

 오토바이를 타면 바람을 짜릿하게 맛본다지. 그래, 바람을 짜릿하게 맛보기는 한다. 그렇지만 오토바이는 자동차보다 소리가 크게 난다. 둘레 소리를 죄 잠재울 뿐 아니라, 바람을 짜릿하게 맞는 동안 둘레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산들바람에 숲나무마다 나뭇잎이 반짝반짝 나부끼며 예쁜 소리를 내든, 어미새가 먹이를 찾아 새끼새한테 먹이며 고운 소리를 내든, 오토바이는 자동차보다 더 소리를 죽이고 더 삶을 죽인다.

 자동차를 몰면 운전대 옆에 책을 얹는다든지 놓으면서 건널목 신호에 걸릴 때에 들출 수 있는지 모르나, 오토바이를 몰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로지 오토바이를 몰기만 할 뿐이다.

 나는 나부터 자가용이 되든 오토바이가 되든 몰거나 가지고 싶지 않다. 책읽기를 등질 뿐 아니라 책읽기를 짓밟는 자가용이나 오토바이는 밉다. 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나중에 자가용이나 오토바이를 몰겠다 할 수 있겠지. 다 큰 아이들한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지 말라 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 다 큰 아이들은 저희 하고픈 대로 해야 한다. 다만, 아이들한테 한 가지를 느끼도록 한 다음 저희 하고픈 대로 하라고 해야 어버이가 아닌가 생각한다. 소리와 냄새와 바람과 숲과 새와 흙과 햇살과 나무와 하늘과 별과 달과 냇물과 골목을 조용히 맞아들이고 나서 저희 하고픈 대로 하도록 하고 싶다. 이원수·이오덕·권정생·임길택·송건호·리영희·김남주·신동엽·김수영·고정희·윤정모·박경리 같은 사람들 글을 좋아하거나 아끼는 아이로 자란다면, 아이들은 맑으면서 밝은 길을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걸어갈 테지. (4344.6.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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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숲이 아니어도


 깊은 숲이 아니어도 나무 백 그루쯤 우거지면 새들이 아늑하게 둥지를 틀 수 있고, 푸른바람이 산들산들 시원합니다. 나무는 어느 나무라 하든 좋습니다. 굴참나무이든 떡갈나무이든 멧벚나무이든 물푸레나무이든 살구나무이든 오얏나무이든 뽕나무이든 다 좋습니다. 온갖 나무가 백 그루쯤 뒤섞여 우거져도 좋습니다.

 사람이 빚은 책이 될 때에는, 좋은 책이 아니어도 백 권쯤 모이면 사람들이 즐겁게 펼칠 수 있거나 고맙게 쥘 수 있거나 아름다이 누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이 빚은 책은 이 책이든 저 책이든 가리지 않으면서 백 권쯤 갖춘다면, 또 천 권이나 만 권쯤 갖춘다면, 십만 권이나 백만 권쯤 갖춘다면 어떠할는지 궁금합니다.

 이 책 저 책이 있는 까닭은 이 책을 보고픈 사람과 저 책을 읽고픈 사람이 있기 때문일 테지요. 다 다른 사람들이 얼크러진 삶터이니 다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이 될 온갖 책이 있을 만합니다. 그렇지만, 참으로 다 다른 사람들한테 다 달리 아름다울 책이 이렇거나 저렇게 있는 셈인지, 제법 팔리며 돈이 될 만한 책이 이렇거나 저렇게 있는 셈인지 아리송합니다.

 좋다고 할 만한 책이라면, 참으로 좋다고 할 만해서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책이라면, 천 권 만 권 십만 권 백만 권이 될 수도 있을 테지만, 꼭 백 권쯤만 알뜰히 추려, 책꽂이 하나 좋은 나무를 골라서 짠 다음, 얌전히 꽂고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길 때가 더없이 어여쁘리라 생각합니다. (4344.6.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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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계와 책읽기


 기계를 안 쓰면 넓은 논밭을 언제 갈아엎으며 논을 언제 삶고 밭에 언제 이랑고랑 내느냐 할 오늘날입니다. 그런데, 흙을 일구는 사람은 목숨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목숨을 다루는 사람이기에 품과 겨를을 들여서 일을 합니다.

 나는 내 두 아이뿐 아니라 이웃이나 동무가 낳아서 키우는 아이를 어떤 ‘주어진 시간표 틀’에 맞추어 지식을 쏙쏙 집어넣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나 스스로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든, 내 아이한테 책을 읽히든, 둘레 아이가 책을 읽도록 거들든, 지식이 아닌 삶으로 책을 받아들이도록 할 뿐입니다.

 기계를 쓰면 틀림없이 온갖 일을 훨씬 빨리 마무리짓습니다. 기계를 쓰면 팔과 손과 허리와 다리가 하나도 안 아프면서 빨래를 다 해냅니다. 기계를 쓰면 꽤 멀리까지 수월하게 오갈 수 있습니다. 기계를 쓰면 짐을 싣든 사람을 태우든 걱정할 일이 적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기계처럼 살고 싶지 않을 뿐더러, 내 몸뚱이를 쓸 수 있는 삶일 때에는 내 몸뚱이를 쓰고 싶습니다. 내 팔다리가 힘들 때에는 택시를 부르거나 버스를 타면 됩니다. 내 팔다리를 쓸 만하다면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몰면 됩니다. 내 손으로 빨래를 하면서 내 식구들 옷가지를 만지작거리고 두 아이 똥오줌 냄새를 손에 잔뜩 풍기면서 살아갑니다.

 나는 내 아이가 똑똑한 사람이거나 잘난 사람이거나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나부터 똑똑한 사람이거나 잘난 사람이거나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꿈꾸지 않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착한 사람으로 살고, 할 수 있는 즐거움을 나누는 고운 사람으로 지내며, 하고픈 일을 사랑하는 참다운 사람으로 삶을 일구기를 비손합니다.

 책은 첫 줄부터 끝 줄까지 기계처럼 읽을 수 없습니다. 책읽기를 할 때에는 한 줄만 즈믄 번 읽을 수 있습니다. 한 줄이 좋아 두고두고 되읽을 수 있고, 때로는 휙 건너뛸 수 있습니다. 같은 책을 자꾸자꾸 읽을 수 있으며, 새로운 책만 찾아나설 수 있겠지요. 틀에 박을 수 없는 책이요 책읽기이듯, 틀에 박을 수 없는 삶이며 사랑입니다.

 기계를 써야 하느냐 안 써야 하느냐가 아닙니다. 어떤 기계를 왜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누구하고 쓰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막 세이레를 갓 지난 어린 아기가 새근새근 자는 살림집 곁으로 부릉부릉 큰소리를 내는 오토바이를 몰며 시골일을 한다면, 이와 같은 기계는 사람 삶에 무엇을 이바지하는 셈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는 바람이 거세게 분대서 잠을 깨지 않습니다. 아이는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에 잠을 깨지 않습니다. 아이는 개구리 우는 소리에 잠을 깨지 않고, 뻐꾸기 높은 목청에 잠을 깨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는 기계 소리에는 어김없이 잠을 깹니다. 자동차나 오토바이 소리에는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아이는 텔레비전 소리에도 잠들지 못하는데, 호미나 괭이로 흙을 쪼는 소리에는 근심없이 잘 잡니다. (4344.6.1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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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라는 사람


 아이들보고 무엇을 먹겠느냐고 물어서 밥을 차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를 믿고 밥을 먹습니다. 독이 든 밥이든 썩은 밥이든 어버이를 믿고 맛나게 먹습니다.

 아이들한테 무엇을 배우겠느냐고 물으며 수업을 꾸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를 가르치는 사람을 믿고 찬찬히 받아들이며 삭이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를 믿으면서 저희 보금자리에서 밥을 먹으면서 살아가듯이, 아이들은 저희 교사를 믿으면서 저희 배움터에서 마음을 먹으면서 배웁니다.

 교사라는 사람은 아이한테 독이 든 밥이나 썩은 밥을 먹이지 않도록 몹시 애쓰고 늘 새로 배우는 사람입니다. 교사라는 사람은 스스로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입니다. 교사라는 사람은 스스로 아름다운 살림을 제 손으로 일구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4344.6.1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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