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지식여행자 5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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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수컷’은 키울 값어치가 없을까
 [책읽기 삶읽기 43] 요네하라 마리,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일본에서 나온 책이름은 “사람 수컷은 안 키우나?”였다는데, 한국에서 나오는 책이름은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가 되고 만, 요네하라 마리 님 산문책을 읽으며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책이름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사람 수컷은 안 키우나?”하고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는 아주 다르다. 뜻과 느낌과 마음과 생각과 매무새가 모두 다르다. 살아가는 결과 어우러지는 무늬가 다르다.

 요네하라 마리 님 책에 이런 이름을 붙여야 어울린다고 생각했을까. 요네하라 마리 님 같은 사람한테 이런 책이름을 달아야 알맞다고 여겼을까. ‘수컷인 사람’을 키울 겨를이 없이 통역 일과 글쓰기로 바쁜 요네하라 마리 님이니, 집에서 ‘수컷인 사람을 키울’ 수 없을 텐데, 이러한 대목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붙인 이름이라고 느낀다.

 ‘사람 수컷’은 손이 좀 많이 가는가. ‘어른인 사람 수컷’은 ‘아이인 사람 수컷’과 견주어 손에 얼마나 많이 가는가. 아이는 어버이가 차린 밥을 고맙게 받아먹고, 아기는 어머니가 물리는 젖을 즐거이 빨아먹는다. 어른인 사람 수컷은 요 투정 저 투덜로 골을 부리기 일쑤이다. 어른인 사람 수컷 가운데 스스로 밥과 옷을 챙기거나 집안을 쓸고 닦거나 치우는 이는 얼마나 될까. 스스로 제 삶을 건사하는 ‘사람다운 사람 수컷’을 찾자면 얼마나 힘을 들이고 품을 들여야 할까. 애써 애먼 품을 들였다가 나중에 빈 껍데기인 줄 알아채면 얼마나 기운이 빠질까.

 글쓴이 요네하라 마리 님한테 ‘사람 수컷이 쓸모없을’ 까닭이 없다. 굳이 ‘사람 수컷은 안 키우며 즐거이 누리는’ 삶이다.


.. “그 어떤 보석도 이보다 아름답지는 못해.” 너무 흔해빠진 비유에 나 스스로도 부끄러웠다. 이런 눈동자가 바라보는데 거역할 자가 그 어디에 있을 것인가 ..  (47쪽)


 고양이나 개 아닌 사람한테서 ‘맑은 눈빛과 밝은 눈망울’을 느낀다면, 요네하라 마리 님은 틀림없이 ‘사람 수컷도 참 좋구나’ 하고 받아들이리라 본다. 다만, 이렇게 느낄 일이 거의 없었으니 사람 수컷은 안 키웠겠지.

 생각해 볼 노릇이다. 사람 수컷은 집일이나 집살림에 눈길을 안 둔다. 집안에 사람 수컷을 들이면, 이때부터 사람 암컷은 집일과 집살림에다가 사람 수컷을 건사하는 몫을 맡고, 나중에 아이를 낳을 때면 집일과 집살림에다가 사람 수컷이랑 아이 돌보기까지 도맡아야 한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사람 수컷이 회사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도맡아 돌본다든지 집일과 집살림을 힘껏 보살피려고 하는 일이 얼마나 될까. 1억 연봉을 집어치우고 집에서 아이를 사랑하는 길을 걸으려는 사람 수컷이 있기나 있을까.


.. “그래서 중성화수술, 즉 에리는 4개월쯤에 피임수술, 우리는 6개월쯤에 거세수술을 하는 편이 좋겠네요.” “뭐라고요?” “마리 씨, 피임과 거세를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아세요?” “아아, 네.” “피임은 임신을 피하다, 거세는 생식력을 없애는 거죠.” “하지만 선생님, 좀 가여운데요. 조금은 경험하게 해 주고 싶다고 할까…….” “흠, 경험하게 해 주고 싶다라.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죠. 저 역시 이 녀석들 몸에 칼을 대고 싶지 않거든요.” “바로 그거예요. 자연스러운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태어나면 키울 각오는 하고 있어요.” “자연스러운 거요. 네, 좋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시죠. 단, 녀석들은 암수니까 1년에 2∼3차례, 4∼6마리씩 낳겠죠. 태어난 새끼 고양이들이 각각 또 낳고 그 새끼들이 다시 낳으니까, 뭐, 1년 후에는 대략 64마리 정도 될까요. 다음해에도 계속 늘어나겠죠. 그 정도 키울 각오가 있으시면 저는 전혀 말리지 않습니다.” ..  (68쪽)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마음산책,2008)라는 책은 책이름을 옳게 바로잡아야 한다고 느낀다. 책이름부터 옳게 바로잡으면서 이 책이 우리들한테 들려주려는 이야기를 곱게 아로새기도록 도와야 한다고 느낀다.

 사람 수컷이 없으면 사람 암컷도 새로 태어나지 않는다. 사람 수컷이 쓸모없거나 도움이 안 된다는 이야기책이 아니라, 맑지 않고 밝지 않을 뿐더러 사랑스럽지 않은 길을 자꾸자꾸 걷는 숱한 사람 수컷이 바보스러운 굴레를 벗어던지기를 바라는 이야기책이라고 여긴다면, 출판사에서는 책이름부터 얼른 바로잡아야 한다고 느낀다.

 사람 수컷만 돌보지 않을 뿐, 맑은 목숨과 밝은 목숨과 사랑스러운 목숨을 사랑하던 삶을 찬찬히 적바림하는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이기에, 이 책이름은 이 책을 가까이하려는 사람한테 너무도 높은 울타리를 세우고 만다(‘발칙한 도발’ 같은 책이름이 될 수 없다. 요네하라 마리 님은 ‘발칙한 도발’ 같은 이름을 붙이며 글을 쓰지 않았다). 집짐승 돌보기를 즐기는 사람한테뿐 아니라, 고운 목숨을 아낄 줄 아는 사람한테 예쁘게 다가설 이야기책이 되도록 하자면, 더 보드라이 마주하고 더 살가이 어깨동무할 수 있게끔, 책이름부터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도록 해야지 싶다.


.. “잘 몰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일부러 오셔서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오셨으니 좀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하타나카 씨가 지나칠 정도로 저자세로 나가자 남자는 그다지 싫지는 않은 얼굴이었다. “뭐든 물어 보시오.” “‘먹이’라는 통역이 적절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푸드’라고 하시오, 푸드.” “네, 알겠습니다.” 하타나카 씨를 따라서 통역사 여섯 명이 넙죽 인사를 하자 남자는 만족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  (132쪽)


 “만족한 모습으로 돌아갔다”는 이는 ‘사람 수컷’이다. 통역 일을 하면서 만나야 하는 숱한 ‘사람 수컷’ 가운데 아름다운 이도 어김없이 있을 테지만, 아름답지 못할 뿐 아니라 바보스러워 슬픈 이가 훨씬 많으리라 본다. 짐승한테 ‘먹이’를 주지 ‘푸드’를 주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렇지만 사람 수컷은 짐승한테 먹이 아닌 푸드를 주라고 이야기한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사람 수컷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나 ‘뉴라이트’를 이야기한다. 몇몇 정치꾼 사람 수컷뿐 아니라, 문화나 예술을 한다는 사람 수컷 또한 ‘라이팅’을 이야기하고 ‘북마케팅’이나 ‘북쇼’를 이야기한다. ‘버라이어티 쇼’란 무엇일까. 이런 말을 하는 사람 수컷은 무엇을 생각할까. 아니, 생각하는 머리가 있기는 있을까. ‘뉴타운’이 엉터리라고 여긴다면 ‘에코페미니즘’이건 ‘그린마켓’이건 집어치울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한국땅 사람 수컷은 그리 사랑스럽지 못하다. 그닥 맑지 못하다.

 어쩌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사람 수컷이 쓸모없는지 모를 노릇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이는 사람 수컷이요,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는 이 또한 사람 수컷이며, 전쟁무기를 만들고 전쟁무기를 좋아하는 이마저 사람 수컷이다. 전쟁을 기리는데다가 전쟁기념관이나 전쟁박물관까지 만드는 이는 바로 사람 수컷이다. 기리거나 섬겨야 할 것이 그렇게 없어서 전쟁을 기리거나 섬겨야 할까. 기리거나 섬겨야 한다면, 이토록 바보스러운 터전에서도 맑고 밝게 새로 태어나는 목숨들이다. ‘들꽃 기념관’이나 ‘아기 박물관’이나 ‘나무 기념관’이나 ‘흙 박물관’을 세울 줄 모르는 사람 수컷은 그야말로 부질없고 덧없으며 값없는지 모른다. (4344.6.26.해.ㅎㄲㅅㄱ)


―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요네하라 마리 글,김윤수 옮김,마음산책 펴냄,2008.8.5./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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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분 책읽기


 새벽 두 시 반에 번쩍 깬다. 저녁 열 시쯤 쓰러질 듯 가까스로 잠들었다. 첫째는 더 놀고 싶다며 앙앙 울고, 둘째는 토닥토닥 안아도 어머니가 젖을 물려도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았다. 잠자리에 네 식구가 드러눕고 불을 끄니 첫째는 금세 곯아떨어지고, 둘째도 어머니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었다. 새끼돼지 둘이 잠든 모습을 보고는 아버지도 곯아떨어진다.

 이래저래 뭔가를 알 수 없는 참으로 뒤죽박죽인 꿈누리에서 헤매다가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서 시계를 찾는다. 몇 시이지? 두 시 반이라는 숫자를 보고는 허둥지둥 첫째 엉덩이에 손을 댄다. 안 젖었다. 아직 쉬를 안 누었군. 여느 날보다 늦어서 걱정스러웠으나 잘 참았구나. 첫째를 덮은 이불을 걷고 두 손을 살며시 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쉬, 쉬.” 하고 말한다. 아이는 발목이 꺾이고 무릎이 접히지만 용케 걸어 준다. 오줌그릇에 앉힌다. 아이 스스로 속옷을 내리고 쉬를 보아야 할 테지만, 몇 달쯤 아버지가 내려 주어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쉬를 다 눈 다음에도 아버지가 올린다. 이러고 나서 다시 아이 손을 잡고 잠자리로 오고, 잠자리에서는 아버지가 번쩍 안아서 눕히고 이불을 여민다. 굳이 번쩍 안지 않아도 되지만, 둘째가 있기도 하고, 아이가 싫다고 할 때까지는 이렇게 해 줄까 하고 생각한다. 길어야 열 살까지 이렇게 해 주겠나.

 아이가 다시 잠든 모습을 보고 나서 기지개 켤 틈 없이 보일러 단추를 누른다. 잠자기 앞서 해 놓은 기저귀 빨래가 얼마나 말랐는가 만진다. 방바닥에 펼쳐 말린 기저귀는 꽤 말랐기에 차곡차곡 접는다. 보일러 도는 김에 더 마르라 해 놓고는 그동안 쌓인 새 빨래를 한다. 바닥에는 열석 장이 깔리고, 새로 할 빨래는 열 장.

 잠자리에 들기 앞서 빨래할 때에도 손바닥이 제법 아렸고, 새벽에 빨래할 때에도 손바닥이 꽤 아리다. 그렇다고 이 빨래를 누가 해 줄 수 없다. 빨래기계를 들인다고 될 일이 아닐 뿐더러, 빨래기계 값은 꽤 비싸다. 더욱이, 우리 집에는 빨래기계 놓을 마땅한 자리가 없다. 빨래기계 값이라면 어머니 자전거랑 아이 자전거수레를 새로 장만하고 남는다.

 똥오줌기저귀 열 장을 다 빨고 빨랫대에 여섯 장 걸고 넉 장은 집안 이곳저곳에 옷걸이로 걸친다. 남은 기저귀는 일곱 장이고, 열석 장은 삼십 분쯤 뒤에 개어 둘째 머리맡에 놓아야지. 이제 아침까지는 걱정없다. 다시 시계를 본다. 세 시 이 분. 빗줄기는 쉬거나 끊이지 않는다. 다른 날이라면 달빛이 저물며 새벽 햇빛이 천천히 어우러질 무렵인데, 엿새째 이어지는 빗줄기 새벽은 더없이 조용하면서 어둡다. 좋은 새벽이다. (4344.6.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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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칡잎에 감싼 버찌


 빗줄기가 거세게 퍼부으면서 전기가 똑 꺼진다. 두꺼비집을 열어 단추를 올려야 하겠기에 아이를 데리고 우산을 받으며 밖으로 나온다. 집 옆 밭을 빙 돌아서 간다. 두꺼비집이 이웃 밭 가장자리에 선 전봇대에 붙었기 때문이다.

 두꺼비집 단추를 올리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길가에 공무원들이 심은 벚나무마다 맺힌 버찌를 올려다본다. 알이 꽤 굵다. 까맣게 잘 익었다. 풀섶에서 칡잎을 몇 닢 딴다. 아이한테 칡잎을 들리고 버찌를 한 알 두 알 따서 올려놓는다. 어느새 아이가 두 손으로 감싸 쥘 만큼 모인다. 우리는 이만큼 먹고 나머지는 멧새가 먹으라 하자. 아이 손과 아버지 손은 버찌물로 짙파란 물이 들었다. (4344.6.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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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 내 친구는 그림책
토미야스 요우고 지음 / 한림출판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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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치는’ 그림책과 ‘교훈 어린’ 어린이책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0] 후리야 나나·토미야스 요우코,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한림출판사,2000)


 모든 책은 가르치는 책입니다. 모든 책은 배우는 책입니다. 어떠한 책을 읽더라도 가르침을 느낍니다. 어떠한 책을 읽히더라도 배울 수 있다고 깨닫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알쏭달쏭하지만, 학교나 집안이나 사회에서는 어린이가 읽는 책이나 옛이야기를 다루면서 ‘교훈-교훈적-교훈성’ 들을 읊곤 합니다. 어린이책에 ‘교훈이 있어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말이 많습니다. 어린이책에는 ‘교훈보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책이든 ‘가르침’이 없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어느 책이든 ‘재미’ 또한 없을 수 없습니다. 모든 책에는 다 다른 가르침이 담기고 다 다른 재미가 깃듭니다. 그저, 모든 사람이 ‘모든 다른 책이 깃든 가르침과 재미’가 어떠한가를 ‘모두 다르게 살피거나 받아들여 삭일’ 줄 모를 뿐입니다.

 더 나은 가르침이란 없습니다. 더 나은 재미 또한 없습니다. 덜 떨어진 가르침이란 없습니다. 모자라거나 아쉬운 재미 또한 없습니다.

 심심하거나 밋밋한 맛이 좋은 맛일 때가 있습니다. 달콤하거나 달달해야 좋은 맛이지 않습니다. 멧자락에서 자라는 벚나무한테서 얻은 굵거나 작은 버찌를 아이랑 따서 오물오물 씹어 먹습니다. 버찌 맛은 달면서 시다가 떫습니다. 멧버찌는 이런 맛이네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보리둑을 따서 먹을 때에도 보리둑은 또 보리둑대로 달근하다가 똘또름하다가 텁텁하면서 시원합니다. 앵두는 앵두대로 앵두 맛이고, 살구는 살구대로 살구 맛이며, 오이는 오이대로 오이 맛입니다.

 오이를 달근하게 한다면 오이가 아닙니다. 수박을 달다가 시게 한다면 수박이 아닙니다. 멧딸기는 멧딸기 맛이 있습니다. 두릅은 두릅 맛이 있어요. 며느리밑씻개나 씀바귀는 며느리밑씻개나 씀바귀 맛입니다. 쑥은 쑥다운 맛이요, 보리와 밀과 수수와 벼는 보리와 밀과 수수와 벼다운 맛이에요.

 다 다른 목숨은 다 다른 맛을 혀한테 베풀며 내 몸으로 들어와서 씩씩하고 맑은 기운이 나도록 돕습니다. 똑같은 푸성귀는 없고, 똑같은 고기 또한 없으며, 똑같은 밥이란 없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없기에 똑같은 책이 없습니다. 똑같은 책이 없기 때문에 똑같은 가르침이나 재미가 있을 수 없어요. 다 다른 책에는 다 다른 가르침이 다 다른 재미라는 옷(맛)을 걸치면서 녹아듭니다. 책읽기란,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삶결과 삶맛과 삶멋을 곱게 받아들이는 일이에요. 어린이문학이든 어른문학이든, 그림책이든 사진책이든, 동화책이든 소설책이든, 다를 구석이 없습니다. 가르침이 없다면 거짓이거나 엉터리이고, 재미가 없다면 나 스스로 잘못 읽었거나 엉뚱하게 읽은 셈입니다.


.. 북쪽의 깊은 산꼭대기에 삼나무 세 그루가 있고, 그 아랫쪽에 작은 집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꼬마 요정 비비와 엄마 요정이 살고 있었습니다 … 마침, 도깨비는 무척 배가 고팠습니다. 바로 눈앞에 나타난 아이가 너무 맛있게 보여서, 커다란 냄비에 넣고 끓여서 잡아먹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도깨비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꼬마 아가씨, 잠깐 우리 집에 놀러가지 않을래?” “예, 좋아요.” ..  (1, 4쪽)


 그러나 때때로 얄궂은 책이 있어요. 가르침도 재미도 없이 만들어 내놓는 책이 있어요. 이와 같은 책은 돈바라기 책입니다. 책을 팔아 돈만 벌어들이면 된다는 매무새로 만든 책이기에 가르침이건 재미이건 없기 일쑤입니다. 또는, 가르침만 너무 도드라지도록 하거나 재미만 크게 돋보이도록 하고 맙니다.

 제대로 된 책이라면 가르침이나 재미가 눈에 뜨이도록 하지 않습니다. 맛으로 먹는 밥이 아니라, 맛을 느끼면서 먹는 밥입니다. 가르침이나 재미로 읽는 책이 아니라, 가르침이나 재미를 느끼면서 읽는 책입니다.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앞세운다면, 이러한 책은 처음부터 책다움이 없는 셈이요, 책다움 아닌 돈바라기에 휩쓸렸다는 뜻입니다.

 이리하여, 아이한테 책을 읽히려는 어버이는, 어버이로서 ‘어른이 즐기는 책’부터 옳고 바르며 아름다이 ‘가르침과 재미’를 누리거나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어른끼리 먼저 헤아려야 해요. 가르침이나 재미 한 가지만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책이 얼마나 도움이 되거나 재미가 있는가 느껴야 해요.

 책은 왜 읽을까요. 책은 왜 읽힐까요. 책은 왜 쓸까요. 책은 왜 만들까요.

 아이한테든 어른한테든 굳이 책이 없어도 됩니다. 책을 곁에 두지 않더라도 내 삶을 어여삐 여겨 사랑하는 나날이면 즐겁습니다. 내 삶을 알뜰히 아끼면서 내 이웃 삶 또한 살뜰히 보듬을 수 있으면 기쁩니다. 숲을 사랑하고 흙을 돌보며 바람과 햇살과 구름과 별을 너른 가슴으로 껴안을 수 있으면 예쁩니다. 책이란 곧 햇살이요, 바람이거나, 물이고, 흙인 한편, 목숨입니다.


.. ‘억, 힘이 센 아이로구나!’ 비비는 씩씩하게 소나무를 메고, 놀란 도깨비 앞으로 와서 금방 땔감을 산더미처럼 만들어 놓았습니다. 도깨비는 나무에 불을 지피면서 비비를 힐끗 보았어요 … 마침내 냄비 안의 물이 펄펄 끓었습니다. “자, 이제 물이 끓었으니 목욕을 하시죠, 꼬마 아가씨.” 도깨비가 말하자, 비비는 엄마가 하신 말씀을 생각해 냈습니다. “친절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그래서 비비는 공손하게 말했습니다. “먼저 하세요.” 그리고 비비는, 도깨비를 번쩍 들어 올려 냄비 안으로 ‘풍덩’ 집어던졌습니다 ..  (10, 21∼22쪽)


 그림책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한림출판사,2000)을 읽습니다. 아버지가 먼저 읽고 아이랑 함께 읽습니다.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은 그림결이 몹시 귀여우면서 줄거리와 생각밭과 마음씨가 한결같이 아리땁습니다. 그림결만 앙증맞다든지, 줄거리만 가르침에 젖었다든지, 얼거리만 재미나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골고루 사랑스레 어우러집니다. 즐거이 읽으면서 예쁘게 바라볼 수 있고, 신나게 넘기면서 활짝 웃을 수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삶과 꿈과 땀을 돌아봅니다. 멧골짜기에서 어머니하고 흙을 일구면서 보듬는 나날을 누리는 꼬마요정 비비는 하루하루 얼마나 새삼스러우면서 맑고 밝을까 되새깁니다. 내 몸에 고맙게 들어와 고맙게 기운을 북돋우는 밥 한 그릇처럼 착하고 참다이 살아가기에, 꼬마요정도 엄마요정도 착하고 참다이 이웃을 사귀면서 숲을 아낄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 도깨비를 메고 온 비비를 보고 엄마 요정이 말했습니다. “비비야, 누구시니?” “예, 손님이에요. 목욕물이 너무 뜨거워서 엉덩이를 데었어요.” 엄마 요정은 도깨비 엉덩이에 약을 골고루 발라 주었습니다. 그리고 엄마 요정은 비비와 도깨비를 위해 참깨, 버섯, 산나물을 섞어 특별한 주먹밥을 많이 만들어 주었습니다 ..  (28∼31쪽)


 요정이 되든 도깨비가 되든 뭐가 되든, 숲에서 살아가는 까닭이 있습니다. 나무하고 벗삼고 풀이랑 꽃이랑 동무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흙을 맨발로 밟고 흙을 맨손으로 비비면서 지내는 까닭이 있습니다.

 꼬마요정한테든 엄마요정한테든 자가용이나 빨래기계나 냉장고나 텔레비전이나 아파트나 주식이나 높은 연봉 일자리 따위란 부질없습니다. 은행계좌에 숫자들이 빼곡하기 때문에 꼬마요정과 엄마요정이 착하게 살아가지 않습니다. 이름난 대학교를 빼어난 성적으로 마쳤대서 꼬마요정과 엄마요정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도깨비’를 아무렇지 않게 ‘좋은 손님으로 여겨 맞아들이’지 않습니다.

 더 멋진 나무가 없습니다. 더 예쁜 꽃이 없습니다. 더 쓸모있는 풀이 없습니다. 나무이면 다 나무이고, 꽃이면 다 꽃이며, 풀이면 다 풀이에요. 질경이라서 숲길을 걸으며 안 밟고 망초라서 숲길을 거닐 때에 질근질근 밟아도 되지 않습니다. 강아지풀이라서 줄기를 똑 끊어서 놀고, 은방울꽃이라 그저 눈으로 바라보기만 해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풀꽃은 하나같이 예쁜 목숨입니다. 모든 목숨은 저마다 빛나는 삶입니다. 꼬마요정도 도깨비도 어머니가 너른 사랑과 깊은 믿음으로 오래오래 뱃속에서 돌보며 기쁘게 낳은 목숨이에요.

 사랑을 받으며 사랑을 먹을 꼬마요정이자 도깨비입니다. 꾸지람을 들어야 할 때에는 꾸지람을 들어야 할 테지만, 살가이 손 맞잡으며 즐거이 어깨동무할 도깨비이고 꼬마요정입니다.

 꼬마요정은 도깨비를 꾸짖지 않았습니다. 도깨비는 처음부터 꿍꿍이가 있었으나, 꼬마요정이나 엄마요정은 아무런 꿍꿍이도 눈속임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바보나 멍청이가 아닙니다. 도깨비이든 윷깨비이든 이웃이나 동무나 손님으로 여길 뿐입니다.

 힘이 세대서 누구를 괴롭혀도 되지 않습니다. 돈이 많대서 누구를 부려먹어도 되지 않습니다. 이름이 높대서 누구를 깎아내려도 되지 않습니다. 얼굴이 예쁘대서 자랑하고 다녀도 되지 않습니다. 책을 많이 읽었대서 콧대를 높여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교사라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새로 배우면서 바지런히 땀흘리는 교사가 아니라면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어버이 자리에 있기에 아이들을 보살피거나 키울 수 없습니다. 나이나 호적에 따라 어버이가 아닌, 삶과 사랑에 따라 사람다운 어버이여야 비로소 아이들을 보살피거나 키웁니다.

 어린이책은 누구라도 가르칩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와 어른을 가르칩니다. 어른책도 어른을 가르칩니다. 이야기책이든 문학책이든 그림책이든 시책이든 모두모두 사람들을 가르칩니다. 가르침이란 내 삶을 다시 보고 이웃 삶을 새로 본다는 뜻입니다. 배움이란 내 삶을 이웃이랑 예쁘게 나누고, 이웃 삶을 내 삶으로 곱게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재미란 착하거나 참다운 길을 씩씩하게 걷는다는 뜻이고, 가르침과 재미가 어우러질 때에 바야흐로 사랑이 꽃핍니다. (4344.6.25.흙.ㅎㄲㅅㄱ)


―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 (후리야 나나 그림,토미야스 요우코 글,이영준 옮김,한림출판사 펴냄,2000.4.3./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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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렁이 걱정


 엊저녁부터 빨래하는 방에 지렁이가 나타난다. 장마철 빗줄기가 그치지 않으니 이곳에까지 지렁이가 나오는가 보다. 지렁이가 살아가는 흙 속에 빗물이 너무 많이 고여 숨이 차기 때문일 테지. 퍼붓는 빗줄기라 하더라도 사이사이 한 시간쯤 쉰다면 밭에 물이 고이지 않을 테지만, 몇 시간 내리 퍼붓는 비일 때에는 제아무리 물빼기를 잘하는 밭이라 하더라도 물이 고이고 만다. 이렇게 되면 밭에서 살아가는 지렁이는 물에 잠겨 숨이 막혀 죽을 수밖에 없다.

 골목동네 인천 한켠에서 살던 때에도 비가 퍼붓는 날 골목마실을 하면 지렁이를 곧잘 보곤 했다. 조용한 동네 한켠에 꽃밭이나 텃밭을 일구는 분들 살림집 언저리에서는 어김없이 지렁이를 만난다. 그러나, 도시에 살던 지난날 지렁이를 참으로 걱정했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아, 지렁이가 여기에서도 사는구나, 하고 생각하거나 느낄 뿐이었다.

 멈출 길 없이 퍼붓는 빗줄기에 개똥벌레이며 파리이며 모기이며 어떻게 견딜까. 나비와 나방과 잠자리는 어떻게 먹이를 찾거나 날개를 말릴까. 도랑에 살던 도룡뇽과 개구리는 이 물결에 휩쓸리지 않을까. 아이 손을 잡고 우산을 받은 채 도랑 옆에 서서 거세게 구비치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문득, 푸른개구리 옛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람 아닌 조그마한 개구리, 이 가운데에서도 더 작은 푸른개구리 눈으로 바라볼 때에 이 도랑물이 얼마나 무시무시할까. 푸른개구리한테 냇물은 바다요, 이 도랑만 하더라도 낙동강이나 압록강처럼 길고 커다라며 깊은 물줄기라고 느끼지 않을까. 퍼붓는 거센 비에는 굵직한 물줄기 둘레 땅도 무너지는데, 멧골짝 조그마한 도랑 둘레 흙이라 하면 금세 쓸리겠지.

 여러 날 길디길게 이어지는 빗줄기라 하더라도 부디 한 시간이나 두 시간씩 비가 쉬어, 멧새와 풀벌레와 흙벌레와 멧짐승이 먹이를 찾거나 몸을 말릴 겨를을 내준다면 하늘님과 구름님이 참말 고맙겠다. (4344.6.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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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눈물 2011-06-26 21:10   좋아요 0 | URL
아...위에 도깨비 동화책도 그렇지만 내용이 왠지 옛 생각이 나는 것들이네요. 저도 오늘 아이하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비가 퍼붓다 잠시 햇볓이 보이길래 너무 답답해서 나갔죠. 그런데 주차장(아파트에 삽니다) 바닥에 달팽이 한 마리가 있던군요. 요즘 아이가 걸을때마다 바닥을 보며 나뭇잎이나 돌맹이를 주우는 버릇이 있어, 저도 덩달아 지나다닐때마다 아이랑 길바닥을 보곤하죠. 그러다 달팽이를 보았습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아이랑 와이프랑 셋이서 꿈틀거리는 달팽이를 보았죠. 그러다 그 옆을 보니 그 무엇에 밝힌 달팽이들이 있더군요. 이것들에게 목숨이 이리 하찮을까요? 그 달팽이들을 보며 시골살때 비올때면 길바닥에 널려있던 지렁이 생각이 났었습니다. 지렁이가 왜 나오나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파란놀 2011-06-27 02:46   좋아요 0 | URL
작은 목숨들은 장마나 큰비에 물에 빠져 죽거든요.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면서 이들 작은 목숨을 밟아서 죽이는데, 밟아서 죽이는 줄을 너무 쉽게 잊고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