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말 손질 330 : 버림받은 유기견

 


.. “그 개는 버림받은 유기견인데, 나쁜 녀석들이 괴롭히는 걸 보고, 사쿠라 형이 말리러 갔다가 싸움이 벌어져서.” ..  《후지모토 유키/김진수 옮김-녀왔어 노래 (1)》(대원씨아이,2011) 16쪽

 

 “괴롭히는 걸 보고”는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나 “괴롭히는 짓을 보고”로 다듬습니다.

 

 유기견 : x
 유기(遺棄) : 내다 버림
   - 시체를 유기하다 /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지성인의 사회적 책임을 유기하는 행위이다

 

 버림받은 유기견인데
→ 버림받은 개인데
→ 버려진 개인데
 …

 

 요사이 퍽 쉬 들을 수 있는 ‘유기견’이라는 낱말인데, 이 낱말은 국어사전에 안 실립니다. 국어사전 올림말 다루는 법을 살피면, 국어사전에 안 실린 ‘유기견’은 띄어서 적어야 알맞습니다. 그러나 이 낱말을 ‘유기 견’처럼 띄어서 쓰는 사람은 없어요. 어쩌면 ‘유기견’은 붙여서 적어야 알맞다 할는지 모르는데, “버려진 고양이”를 가리킬 한자말 ‘유기猫’는 어떻게 될까요. 소를 버릴 사람은 없을 테지만, ‘유기牛’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유기鳥’나 ‘유기豚’은 또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사람이 집에서 예쁘게 여기면서 기르다가 내다 버렸기에 ‘버린 짐승’이라 일컫습니다. 곰곰이 생각하자면, ‘유기견’을 한 낱말로 삼아서 쓰는 말법이라 할 때에는 ‘버린짐승’ 또한 한 낱말로 삼는 말틀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버린짐승’에서 가지를 칠 ‘버린개’와 ‘버린고양이’도 새로운 낱말로 삼을 수 있어야 올발라요.

 

 시체를 유기하다 → 주검을 버리다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지성인의 사회적 책임을 유기하는 행위이다
→ 나쁜 짓에 입다문다면 지성인으로서 질 몫을 내다 버리는 셈이다
→ 나쁜 짓에 눈감는 모습은 지성인이 짊어질 몫을 내팽개치는 꼴이다
 …

 

 개나 고양이는 처음부터 그저 개나 고양이입니다. 길개나 길고양이 아닌 개나 고양이입니다. 들개나 들고양이 또한 아닌 개나 고양이예요.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를 집개와 집고양이로 바꿉니다. 이러다가는 내다 버려 ‘버린개’와 ‘버린고양이’로 바꾸고 말아요.

 

 다시금 생각한다면, 말짓기를 돌아볼 때에는 ‘버린짐승’과 같은 꼴을 세우는 일이 걸맞다 할 터이나, 굳이 이렇게 말틀을 세우기보다는 “버림받은 개”처럼 적바림하기만 하면 넉넉하리라 느낍니다.

 

 “그 개는 버림받았는데”나 “그 개는 버려졌는데”처럼 적으면 돼요. “그 개는 기르는 임자가 없는데”라든지 “그 개는 돌보는 사람이 없는데”처럼 적을 수 있어요. (4344.12.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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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이 함께 읽는 책

 


 따지고 보면 넷이 함께 읽는 책이다. 그러나 넷째 사람은 으레 슬그머니 빠져나와 사진기를 손에 쥔다. 셋이 함께 책을 읽는 모습을 사진으로 적바림한다. 넷째 사람은 함께 책을 읽지 못하더라도, 우리 세 사람이 살가이 책을 읽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마음이 부르니까.

 

 둘째가 스스로 설 줄 알 뿐 아니라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걸을 줄 알 때에는, 넷이 함께 흙땅을 박차면서 씨앗을 심고 풀을 뜯으며 나무를 쓰다듬겠지. 이때에는 넷이 함께 흙과 풀을 쓰다듬을 텐데, 이때에도 틀림없이 넷째 사람은 살그머니 빠져나와 사진기를 손에 들리라. 셋이 함께 흙과 풀을 어루만지는 모습을 사진으로 적바림하리라. 넷째 사람은 함께 흙과 풀을 보듬지 못하더라도, 우리 세 사람이 사랑스레 흙과 풀을 돌보는 모습을 빙긋이 웃으며 쳐다보는 동안 마음이 벅찰 테니까. (4344.12.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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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2-15 16:41   좋아요 0 | URL
너무 심각하게, 너무 집중해서 세분이 책을 보는군요. 와아.
그런데 아드님의 얼굴에 머가 많이 났나봐요, 간지럽겠다, 어쩜 좋아..

파란놀 2011-12-15 18:16   좋아요 0 | URL
모두들 가만히 들여다보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요~

이제 아이 어머니가 생채식으로 몸이 바뀌니
아이도 차츰차츰 나아지리라 믿어요~
 


 얼마나 예쁜가

 


 네 살 아이가 섬돌 앞 신을 가지런히 놓는다. 제 신을 알뜰히 여기며 가지런히 놓는다. 얼마나 예쁜가. 동생이 엎드려 노는 곁에서 그림책을 펼쳐 무릎에 얹고는 한손으로 감을 콕 찍어 앙 하고 입을 벌려 넣는다. 얼마나 예쁜가.

 

 일곱 해 남짓 쓰는 필름스캐너가 언제까지 잘 굴러갈까 걱정한다. 여러 해째 걱정한다. 이 필름스캐너를 똑같은 녀석으로 다시 살 수 있을는지 모르나, 새로 산다면 16절 종이를 얹는 크기 말고 8절 종이를 얹는 크기로 장만하고 싶다. 그런데 값이 어마어마하다. 내가 일곱 해쯤 앞서 구십만 원 가까운 돈을 치르며 장만한 필름스캐너는 그무렵 아주 빼어난 녀석이었고, 이때에 8절 종이를 얹는 필름스캐너 값은 이백육십만 원 즈음 했으나, 8절 종이 얹는 필름스캐너 값을 오늘 다시 알아보니 자그마치 사백오십만 원이란다(2004년에 나온 똑같은 녀석인데 값만 껑충 뛰었다).

 

 아이들 예쁘게 크는 모습을 가끔 파노라마사진기로 담을까 생각하면서, 어쩌다 한 번 바깥마실을 하면서 헌책방이나 골목길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도 파노라마사진기로 몇 통 담아 볼까 헤아리면서, 파노라마 중형필름을 찾고 파일로 긁으려면 돈이 얼마나 들어야 하는가를 셈하니, 참 터무니없이 살림을 조여야 하는구나 싶다. 파노라마 중형필름을 긁을 만한 필름스캐너 값부터 그야말로 터무니없다. 아니, 중형필름 값 또한 무척 터무니없다. 파노라마사진기를 처음 써 본 일곱 해 앞서하고 견주면, 필름 사는 값이 네 곱 뛰었고, 필름 찾는 값은 두 곱이 되었다.

 

 저녁나절, 네 식구가 함께 탈 만한 자전거를 옆지기랑 한번 들여다보았는데, 이 녀석은 아직 우리 나라에 들어오지 않는 물건이지만, 이렁저렁 마련하려고 용을 쓴다 하더라도 ‘4인승 4륜 자전거’ 값이 한국돈으로 천만 원이란다. 내가 우리 집에서 아이를 태우는 자전거수레 무게가 이십이 킬로그램쯤 되니, 4인승 4륜 자전거는 무게가 100킬로그램이 넘을는지 모른다. 한 마디로 자전거라기보다 자전차에 들 녀석이다.

 

 내가 시골에서 살아가지 않는다면, 옆지기가 시골에서 살아가려는 꿈을 꾸지 않았다면, 내가 옆지기를 만나 살아가지 않는다면, 옆지기가 여느 도시내기처럼 도시에서 일자리 얻어 살아가려던 사람이라면, 아마 우리 식구는 거의 오백만 원 돈에 이르는 필름스캐너이든, 천만 원에 이르는 4인승 4륜 자전거이든 그리 어렵지 않게 장만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식구가 도시에서 그냥저냥 살아간다면 두 사람 모두 돈 제법 버는 회사에 다니면서 돈을 그러모을 만하고, 이렇게 하면서 자가용을 장만하지 않으면 필름스캐너이든 4인승 4륜 자전거이든 그리 대수로운 돈이 될 수는 없다.

 

 제 신발 가지런히 놓는 아이가 참으로 예쁘다. 어머니 옷을 뒤집어쓰며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가 더없이 예쁘다. 동생 기저귀를 개는 아버지 곁에서 빨래개기를 거드는 아이가 몹시 예쁘다. 큰아버지한테 제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아이가 그지없이 예쁘다. 들풀을 쓰다듬으며 노는 아이가 매우 예쁘다.

 

 아이야, 우리 살아가는 시골집은 아흔일곱 평 구백만 원이란다. 집값이나 달삯을 근심하지 않으며 살림집 얻은 일로도 아주 고마우면서 느긋하단다. 우리 이곳에서 예쁘게 살아가자. 더 나은 필름스캐너 없어도 필름만 찾아서 건사하면 되고, 4인승 4륜 자전거 없어도 너와 동생까지 태울 튼튼한 수레가 있어. 네 어머니는 네 조끼를 뜨려고 벌써 이레 넘게 뜨개질을 한다. 네 아버지는 너 날마다 먹을 밥을 차리고 너를 날마다 씻기며 너와 날마다 씨름을 한다. 우리는 서로 예쁘게 사랑하는 작은 사람이다. (4344.12.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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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2-15 16:44   좋아요 0 | URL
마지막 사진, 너무 좋은데요. 정말 얼마나 예쁜가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도시에 살아도 필름 스캐너나 4인승 4륜 자전거 값은 너무 비싸네요.
사진 작업이란, 원래 돈이 많이 들지요? 사진하는 제 친구 보니 그렇던데.
빨래가 너무 깨끗합니다, 여기까지 향이 날아올거 같아요, 전 빨래 직후 향이 젤 좋답니다.

파란놀 2011-12-15 18:17   좋아요 0 | URL
ㅋㅋ
도시에서 살아가며 아파트 안 사고
자가용 안 몰고
바깥밥 안 먹고...
-_-;;;;
이렇게 몇 해쯤 해야
겨우 이렁저렁 장만하겠지요 @.@

어디에서나 사람들 모두
마당에 빨래를 널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면 좋겠어요..
 
양말 들판 마음똑똑 (책콩 그림책) 9
무라나카 리에 글, 고야마 코이코 그림, 김지연 옮김 / 책과콩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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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꽃그릇에서나 싹이 틉니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10] 고야마 코이코·무라나카 리에, 《양말 들판》(책과콩나무,2011)

 


 어느 꽃그릇에서나 싹이 틉니다. 애써 무얼 심지 않더라도 어느 꽃그릇에서나 싹이 틉니다. 다만, 바람이 드는 곳에 있는 꽃그릇이어야 합니다. 바람이 들지 않는 곳에 갇힌 꽃그릇이라면, 이 흙에서는 싹이 돋기 어렵습니다.

 

 흙 속에서 곱게 잠자며 기다리던 풀씨가 몇 있다면, 바람이 들지 않을 뿐더러 깜깜한 곳에 있는 꽃그릇이라 하더라도 싹이 틀 수 있어요. 보드라운 흙은 자그마한 씨앗한테 힘을 북돋우거든요. 따사로운 흙은 조그마한 씨앗한테 새숨을 불어넣거든요.

 

 사람들이 씨앗을 심은 논밭에서 싹이 돋습니다. 사람들이 씨앗을 심지 않은 논밭에서 풀삭이 돋습니다. 풀싹이 돋으면 푸성귀나 곡식이 제대로 영글지 못할까 걱정하면서 김을 맵니다. 푸성귀랑 곡식 싹만 살리고 다른 풀싹은 뽑거나 베거나 갈아엎습니다.

 

 김을 매고 또 매어도 풀싹은 끝없이 올라옵니다. 따사롭고 너그러운 흙은 수없이 많은 씨앗을 품에 안거든요. 사람들이 아무리 풀을 뽑아도 풀은 사람한테 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시멘트나 아스팔트를 덮더라도 풀은 견디거나 기다립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자동차를 몰며 배기가스를 내뿜어도, 사람들이 아무리 공장을 돌려 더러운 바람과 물을 내뿜어도, 풀은 씩씩하게 새로 돋고 다시 돋습니다.


.. 실컷 뛰놀고 돌아가는 길, 공원에 들러 양말을 벗었어요. “으아, 새까맣다.” “지저분한 걸레 같아.” “너무 더러워.” 조심조심 잘 벗어야 해요. 비닐봉지에 넣어서 유치원까지 가지고 가야 하니까요 ..  (8쪽)


 사람이 먹지 못할 풀은 없습니다. 사람한테 도움이 안 될 풀은 없습니다. 사람한테 싱그럽지 못할 풀은 없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몇 가지 푸성귀만 가릴 뿐입니다. 그냥저냥 사람들 스스로 온갖 풀이 어떻게 내 몸을 살찌우거나 돌보는가를 잊을 뿐입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한테 풀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한테 풀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중학교에서 아이들한테 풀을 기르도록 이끌지 못합니다. 고등학교에서 아이들한테 풀을 먹도록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대학교에서 아이들한테 풀을 사랑하도록 일깨우지 못합니다.

 

 옛 시인 김수영 님이 읊은 〈풀〉을 학교에서 문학으로 배우곤 합니다. 그렇지만, 정작 풀이 어떻게 눕는가를 아이들이 몸소 바라보기 어렵습니다. 이 나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에서는 풀이 눕는 모습을 볼 만한 빈터가 아주 적거나 없습니다. 서울 여의도에, 서울 종로에, 서울 압구정동에, 서울 명동에, 서울 신촌에, 서울 혜화동에, 서울 대방동에, 서울 어디에 풀이 숨쉴 만한 터가 있을까요.

 

 부산에는, 대구에는, 대전에는, 청주에는, 익산에는, 원주에는, 순천에는, 거제에는, 풀이 얼마나 홀가분하게 제 결과 무늬와 빛깔과 내음을 건사할 터가 있는가요.


.. 다음날, 화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화분은 그대로였어요. “선생님, 양말에 물 줘도 돼요?” “선생님, 그럼 나중에 양말꽃이 피는 거예요?” “글쎄요, 뭐가 나올지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해요.” ..  (12쪽)


 아이를 낳는 어버이들이 으레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 살아가다가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를 낳는 어버이들이 어버이가 되기까지 풀하고 멀찍이 떨어져 지내다가, 아이를 낳고 나서도 풀하고 좀처럼 가까이 지내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는 어버이들이 풀을 어디에서 얻어 어떻게 손질하면서 어떻게 밥거리로 삼는가를 도무지 헤아리지 않습니다.

 

 자가용이 풀을 짓밟습니다. 농약과 풀약이 풀뿐 아니라 풀이 깃든 흙을 망가뜨리거나 죽입니다. 수많은 전기전자제품과 공산품이 풀밭을 밀어냅니다. 수많은 전기전자제품과 공산품이 이윽고 쓰레기가 되어 풀밭을 쓰레기터로 바꿉니다.

 

 그림책 《양말 들판》을 두 아이를 옆에 앉히고 읽으며 생각합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두 아이 어버이인 나부터 풀을 잘 모릅니다. 두 아이 어버이인 나부터 풀을 더 잘 알거나 살피거나 맞아들이도록 애쓰기보다는 책을 더 자주 읽고 글을 더 자주 씁니다. 풀이 자랄 터에 쓰레기가 널렸어도 제대로 치우지 않습니다. 풀씨가 자라는 모습을 아이들하고 살그머니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나무씨 심을 마땅한 보드라운 흙을 살뜰히 돌보지 않습니다.

 

 풀과 나무가 자랄 흙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감이며 능금이며 배이며 살구이며 복숭아이며 즐길 수 없습니다. 풀과 나무가 자라며 씨를 맺는 흙을 보살피지 않으면서 쌀이며 보리이며 수수이며 서숙이며 맛나게 먹을 수 없습니다.


.. 민호는 손가락으로 흙을 파냈어요. “앗!” 민호는 엄마 양말에서 힘없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싹을 톡톡 건드려 보았어요 ..  (27쪽)


 고야마 코이코 님이 그림을 그리고, 무라나카 리에 님이 글을 넣은 그림책 《양말 들판》은 꽤 볼 만합니다. 들판을 잊고 찻길과 건물만 지을 줄 아는 오늘날 어른들한테 이야기 한 자락 예쁘게 들려줍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가 무엇을 생각하고 사랑해야 하는가를 찬찬히 알려줍니다. 흙 없이 목숨을 잇는 사람은 없습니다. 흙 없이 숨을 쉬거나 밥을 먹거나 옷을 입거나 집을 지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흙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그림책 《양말 들판》입니다. 들판은 양말을 신고 거닐며 ‘한 번 겪어(체험)’ 볼 수 있을는지 모르나, 한 번 겪으며 그칠 들판이 아니에요. 언제나 곁에 둘 들판이요, 늘 맨발로 디딜 들판이에요.

 

 꽃그릇에는 양말을 심지 않아도 싹이 돋습니다. 꽃그릇에는 씨앗을 심지 않더라도 싹이 납니다. 배를 먹고 남은 씨앗을 심으면 돼요. 능금을 먹고 남은 씨앗을 심으면 돼요. 아마, 배씨와 능금씨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어른이 될 무렵에야 비로소 다시 열매를 맺을는지 몰라요. 씨앗을 심은 아이들은 잊을 테지만,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저희 아이를 낳을 무렵에는 비로소 우람한 나무를 마주하면서 씨앗이 어떤 꿈이요 사랑이며 목숨인가를 뒤늦게 깨닫도록 도울는지 몰라요.

 

 우리가 다 함께 하면 좋겠어요. 나한테 돈이 많건 적건, 흙을 밟을 만한 땅뙈기를 조금씩 장만하면 좋겠어요. 한 평이든 열 평이든 백 평이든, 천천히 흙땅을 장만해서 이곳에 풀싹이 마음껏 자라도록 하든, 내 꿈을 담은 자그마한 씨앗을 심든 하면서, 내가 늙은 뒤에 머물 고운 쉼터가 되도록, 내 아이들이 자라서 즐거이 집을 지을 만한 예쁜 자리가 되도록, 먼먼 뒷날 이 지구별에서 아름다이 살아갈 사람들 꿈이 돋을 기쁜 보금자리가 되도록 마음을 기울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느 꽃그릇에서나 싹이 틉니다. 어느 마음밭에서나 사랑이 자랍니다. 어느 마을에서나 풀과 나무가 따순 눈길·넉넉한 손길·싱그러운 마음길인 사람을 기다립니다. (4344.12.15.나무.ㅎㄲㅅㄱ)


― 양말 들판 (고야마 코이코 그림,무라나카 리에 글,김지연 옮김,책과콩나무 펴냄,2011.3.25./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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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선 나무
유경환 지음, 이혜주 그림 / 창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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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으로 쓰는 시 한 줄
 [어린이책 읽는 삶 14] 유경환, 《마주 선 나무》(창작과비평사,2002)

 


- 책이름 : 마주 선 나무
- 글 : 유경환
- 그림 : 이혜주
-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2002.11.30.)
- 책값 : 6500원

 


 (1) 삶이 드러나는 시


 모든 글에는 글을 쓴 사람 삶이 깃듭니다. 글쓴이 삶이 깃들지 않는 글이란 없습니다. 어떤 일을 해 보았다든지, 어디를 가 보았다든지 하는 삶부터, 아이들이나 동무들하고 어울리는 삶까지 두루 담는 글입니다. 먹어 본 밥이 어떤 느낌이었나 하는 삶을 담고, 해 본 일이 어떠했다는 삶을 담으며, 만난 사람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하는 삶을 담습니다.

 

 아무개 삶이 가장 거룩하지 않습니다. 저무개 삶은 부질없지 않습니다. 저마다 아름다운 삶이요, 누구한테나 다 달리 고마운 삶입니다.


.. 나무들 / 손짓으로 말하고 있다 ..  (강변 나무들)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우리 시골마을인 전라남도 고흥에는 푸른잎을 떨구지 않은 나무가 많습니다. 보름쯤 앞서 서울마실을 하면서 바라보니, 서울 쪽으로 갈수록 나뭇가지가 앙상합니다. 늘푸른나무를 빼고는 아마 거의 모든 나무가 잎을 떨구었겠지요.

 

 인천에서 살던 때에는 동백나무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마 인천에도 동백나무를 돌보는 골목집이 있었을 텐데, 나는 골목동네 동백나무를 옳게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시골에서 얻은 작은 집 대문 옆에서 자라는 동백나무를 날마다 바라보면서, 비로소 아하 동백나무는 이렇구나, 동백나무는 추운 날 꽃을 피우는구나, 동백나무는 추운 날 잎을 떨구지 않고 이렇게 짙푸른 잎사귀를 뽐내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동백나무는 꽃을 피우고, 곁에서 자라는 후박나무는 아직 꽃을 안 피웁니다. 후박나무도 머잖아 꽃을 피우려고 꽃망울이 부풀었는데, 좀처럼 꽃잎을 벌리지 않습니다. 날이 더 추워야 꽃망울을 터뜨릴까요.


.. 울타리 / 나무들이 / 베를 짠다 / 할머니처럼 ..  (나무 울타리)


 이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들면 집 둘레에 자라는 나무들이 새 잎과 새 눈을 틔우겠지요. 온누리 숱한 나무가 새로운 풀빛 옷을 입겠지요.

 

 감 한 알 맛나게 먹고 나서 생각합니다. 이 감알을 작은 꽃그릇에 심어 볼까. 능금과 배도 한 알씩 사서 먹은 다음 능금씨와 배씨도 꽃그릇을 마련해서 심어 볼까. 이 씨앗에서 싹이 돋고 줄기를 올리면, 마당 한켠에 옮겨심어 볼까.

 

 왜 진작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싶지만, 아직 어리석은 내 삶이니까, 천천히 하나씩 깨달으리라 믿습니다. 어리석은 먼지를 시나브로 털면서 내 삶을 곱게 다스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천천히 자라듯, 어버이로서 천천히 무르익으리라 믿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날마다 말을 하나둘 익히듯, 어버이답게 나날이 넋과 얼과 뜻과 꿈을 조금씩 살찌우리라 믿습니다.


.. 아가 앞니 쪼끔 돋았다 / 새봄 연둣빛 / 속잎처럼 ..  (아가 앞니)


 글을 쓰는 사람은 글에 이녁 삶을 담습니다. 흙을 일구는 사람은 흙 묻은 손으로 논이랑 밭에 이녁 삶을 담습니다. 자가용을 모는 사람은 싱싱 붕붕 내달리는 찻길에서 이녁 삶을 드러냅니다. 손전화를 쥔 사람은 누군가하고 전화기로 이야기를 나눌 때에 이녁 삶을 보여줍니다.

 

 언제나 담는 내 삶입니다. 어디에서나 보여주는 내 삶입니다. 늘 드러나는 내 삶입니다. 노상 함께할밖에 없는 내 삶이에요.

 

 사랑하는 만큼 사랑스레 가꾸는 내 삶입니다. 아끼는 만큼 돌보는 내 삶입니다. 못마땅해 한다면 못마땅한 길을 걷는 내 삶입니다. 내팽개친다면 그야말로 아무 데서나 나뒹구는 내 삶이에요.


.. 이파리 퍼진 만큼 / 햇살 머물고 // 이파리 넓이만큼 / 햇살 담긴다 ..  (담쟁이 넝쿨)


 따뜻한 기운 올라오는 방바닥에 둘째 갓난쟁이 기저귀를 펼칩니다. 밤새 잘 마른 기저귀는 방바닥 따순 기운을 받으며 보송보송해집니다. 네 살 첫째 아이가 깨어나 쉬를 눈 다음, 이 기저귀를 함께 갤 생각입니다. 나는 이 빨래를 언제나 혼자 후다닥 개곤 했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집일을 혼자 하려고 들면 안 돼요. 함께 해야지요. 함께 누리고 함께 즐기며 함께 나누어야지요.

 

 밥할 때에 아이한테 자그마한 심부름을 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옆지기 말을 되뇝니다. 그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차려 주어서는 안 되는 줄 생각하지 않으며 살았습니다. 참말 그래요. 나는 집일을 도맡는다 하지만, 막상 집일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하나하나 알뜰히 짚지 못하는 삶입니다. 이러다 보니, 애써 집일을 도맡는다 하지만 더 알차며 푸근하게 돌보지 못해요.

 

 그러면 아이한테 무슨 일을 시킬까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합니다. 푸성귀를 헹구라고 해 볼까. 종지에 간장을 부어 보라고 할까. 주걱으로 밥을 푸라고 할까. 국자로 국을 뜨라고 할까. 국 간을 맞출 때에 숟가락에 소금을 얹으라고 할까. 찬찬히 돌아본다면 아이한테 맡길 만한 일이 많습니다. 콩나물을 헹구라고 시킬 수 있습니다. 작은 칼로 두부를 썰라 맡길 수 있습니다. 시켜 버릇하지 않으니까, 아이가 맡을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혼자 후딱 해치우자는 생각에 사로잡히니까, 막상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면서 나 스스로 더 홀가분하거나 기쁘지 못했구나 싶어요.


.. 도토리 한 개 / 씨로 심었더니 / 떡갈나무 잎 두 쪽 / 나왔다 ..  (오늘)


 시골집 뒤꼍 낡은 집 허문 자리에서 슬레이트 조각을 주울 때에, 첫째 아이도 곁에서 아버지가 줍듯 따라서 줍습니다. 아이는 아버지가 안 시켜도 스스로 심부름거리를 찾습니다. 마당에서 빨래를 널 때에도 아이는 어느새 좇아나와 빨래를 집어 건네고, 빨래집게를 잡아서 내밉니다. 아이 키에 맞는 빨래대에 아이가 손수 빨래를 집어 널곤 합니다.

 


 (2) 못난 삶도 잘난 삶도 없어요


 겉치레라 해서 나쁜 삶은 아닙니다. 겉꾸밈에 치우친다 해서 못난 삶이 아니에요. 겉발림이 가득하기에 모자란 삶일 수 없습니다.

 

 유경환 님 동시집 《마주 선 나무》(창작과비평사,2002)를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책 뒤쪽에는 “참 맑은 마음, 참 깨끗한 시”라는 추천글이 적힙니다. 나는 이 추천글이 참말 옳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합니다. 글이 어떠할 때에 맑거나 깨끗하다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삶이 드러나는 글인데, 이러한 추천글이라 한다면, 동시를 쓰는 유경환 님 삶이 맑거나 깨끗하다는 소리인지 궁금합니다.

 

 나는 어린이시이고 어른시이고 늘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맑게 살아갈 때에 맑다고 느낄 시를 씁니다. 맑지 않게 살아갈 때에 맑지 않다고 느낄 시를 씁니다.

 

 예쁜 낱말을 골라서 시를 쓰기에 예쁜 시가 되지 않습니다. 맑구나 싶은 낱말을 골라서 시를 엮는다고 맑다고 할 만한 시가 되지 않아요.


.. 졸음에 잠긴 / 간이역 // 기차가 들어오자 / 하품한다 // 할머니와 아이가 내리고 / 기차는 조용히 떠나고 // 매암 매암 // 남기고 간 기적 소리 / 매미가 / 따라 운다 ..  (매미)


 간이역은 졸음에 잠기지 않습니다. 서울역이나 용산역이나 부산역이나 대전역은 어떠할까요. 내가 느끼기로는 외려 서울역이나 부산역이 졸음에 잠겼습니다. 너무 힘겹고 너무 고단해서 졸음에 잠긴 서울역이로구나 싶어요. 하루 스물네 시간 잠잘 겨를이나 쉴 틈이 없어요. 늘 꾸벅꾸벅 조는 서울역이에요. 시골 간이역은 일할 때에 신나게 일하고 쉴 때에 느긋하게 쉽니다.

 

 왜 시골 간이역을 졸음에 잠긴다고 생각하거나 바라보거나 느낄까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른들 섣부른 생각이나 치우친 마음이 아닌가요.

 

 나는 이러한 시를 맑은 시라고 느낄 수 없습니다. 나는 이러한 글을 맑은 삶에서 우러나오는 맑은 시라고 여길 수 없습니다.


.. 들판 / 가득히 / 풀꽃 자리하였지만 // 뿌리 내린 / 넓이만큼밖엔 // 욕심이 / 없다 // 들판 가득히 / 풀꽃 덮인 까닭이 보인다 ..  (들꽃)


 풀꽃한테 욕심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잴 수 없습니다. 풀꽃은 꼭 풀이 뿌리를 내려 줄기를 올릴 만한 자리에 풀포기 삶만큼 자랍니다. 봄에 먼저 돋는 풀이 있고, 여름에 잇따라 돋는 풀이 있으며, 가을에 천천히 돋는 풀이 있어요. 참 조그마한 자리에 수많은 풀이 끝없이 자랍니다. 흙은 이 풀 저 풀 골고루 밥을 내어주고, 햇살은 모든 풀에 따사로이 볕을 나누어 줍니다.

 

 아이들이 욕심 없이 자라기를 바라며 이렇게 풀꽃 시를 쓴다 하겠지요. 그러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어른들은 욕심이 없나요. 어른 스스로 욕심이 없기에 아이들한테 욕심 없이 내 자리를 찾으라는 동시를 써서 내밀 수 있나요.

 

 시험과 성적과 숙제와 체벌과 규칙으로 얽매인 학교에서 아이들은 참말 따스하거나 너른 꿈을 꾸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아이들한테 착한 꿈과 맑은 삶을 어른들이 얼마나 보여주면서 이끄는지 아리송합니다.


.. 가뭄 끝에 내린 / 벼 포기 잘 자란다 // 목말라 마신 빗물 / 짙푸르게 퍼진다 // 똑바로 줄 선 벼 포기 / 줄줄이 앞으로 나란히 // 우리도 일학년 때엔 / 저렇게 줄을 섰었지 ..  (줄줄이 앞으로 나란히)


 오늘날 여름에 가뭄은 없습니다. 오늘날 여름은 끔찍한 막비입니다. 하루이틀 사흘나흘 아닌 열흘 스무 날 서른 날 지치지 않고 퍼붓는 막비예요. 이 동시집 나온 2002년이라 해서 그닥 다르다고 느끼지 않아요.

 

 우리 어른들이 동시를 머리로 함부로 짓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벼를 노래하려면 참말 벼하고 함께 살아가는 매무새와 넋으로 벼를 그리기를 바랍니다.

 

 더구나, 오늘날 논자락 벼포기는 기계로 심어요. 기계로 줄을 맞춰요. 몹시 억지스러운 줄이요, 기계다운 줄입니다. 이러한 줄이랑 일학년 운동장 줄서기를 견주는 일이란 얼마나 끔찍한가요.

 

 왜 아이들을 줄세워야 하나요. 줄세우던 일이 얼마나 애틋하게 그릴 만한 일이 될는지요.

 

 논자락을 찬찬히 들여다보기를 바랍니다. 제아무리 기계로 심은 볏모라 하더라도 똑같이 생긴 볏모란 없습니다. 풀포기는 하늘을 바라보며 뾰족뾰족 서지 않습니다. 모든 풀은 하늘을 바라며 줄기를 올리지만 살짝살짝 옆으로 퍼집니다. 조금조금 옆으로 퍼지다가는 키가 커지면서 가만히 눕습니다. 다 다른 씨에서 다 다른 싹이 돋아 다 다른 벼가 돼요. 다 다른 사랑씨로 다 다른 아이가 태어나서 다 다른 삶으로 자라요.


.. 숲 속은 노래 연습실 / 새들 음정 같지 않다 // 숲 속은 노래 연습실 / 제각기 음정 고른다 // 숲 속은 노래 연습실 / 화음 안 맞아도 곱다 ..  (숲 속 노래방)


 새들은 지저귑니다. 새들은 노래한다고 합니다. 새들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주 마땅하지요. 다 다른 새이니까 다 달리 지저귀지요. 참새라 하더라도 같은 참새는 없어요. 까치라 하더라도 같은 까치란 없어요.

 

 아이들이 같은 아이들이겠어요. 어른들도 같은 어른들인가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에 걸맞게 다 다른 이야기를 길어올리면서 다 다른 목소리로 다 다른 말을 빚습니다.

 

 그야말로 “맑은 시”나 “깨끗한 시”라 할 때에는 예쁘장하게 보이는 말솜씨로 빚는 시가 아닙니다. 맑은 시는 맑은 넋으로 맑은 삶을 일구는 맑은 꿈에서 시나브로 피어납니다.

 

 동시집 《마주 선 나무》에 붙은 추천글을 더 읽으면 “자연 앞에 한없이 겸손하고 순수해지는 짧은 동시”라는 글줄이 있습니다. 아마 유경환 님은 자연 앞에 그지없이 고개숙이는 매무새로 짤막하게 동시를 썼달 수 있어요. 오래오래 자연 앞에 몸을 숙이면서 아이들하고 동시를 나누려 했달 수 있어요.

 

 자연 앞에 고개숙일 줄 알기에, “어느새 우리 마음도 아기처럼 해맑고 깨끗해진답니다” 하는 추천글처럼 유경환 님 동시를 읽을 만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달리 느낍니다. 아기들은 풀이나 나무하고 겨루기를 하지 않습니다. 아기를 낳는 어버이 또한 새나 벌레하고 다툼질을 하지 않습니다. 누가 높고 누가 낮지 않아요. 서로 돌보고 서로 아낍니다.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면서 살아갑니다. 잣나무가 거룩하고 참나무는 덜 떨어지지 않아요. 소나무는 우쭐하고 대나무는 쭈뼛쭈뼛할 수 없어요.

 

 사람은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은 사람을 사랑하면 즐겁습니다. 서로 착하게 아끼면서 참다이 얼싸안으면 기쁩니다.

 

 해맑은 사랑씨를 빚는 삶이라면 어느 어른이라도 해맑은 나날을 누리면서 해맑은 꿈과 빛줄기를 아이들하고 나눕니다. 동시라는 글줄만 해맑게 보일 수 없어요. 동시를 쓸 때에만 곱다 싶은 낱말을 고른다 해서 해맑게 거듭나지 않아요.


.. 겨울 느티나무 / 잔가지들이 / 조금씩 나누어 입는 / 햇볕 // 느티나무 밑에서 / 우리도 나누기를 배우자 // 한 뼘씩의 / 따순 하늘 // 한 줌 씩의 / 따순 볕 // 느티나무도 / 우리도 // 이렇게 겨울을 / 함께 나자 ..  (겨울 느티나무)


 나는 우리 아이들이 말재주를 배우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가르침이나 일깨움에 어설피 휘둘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따스하고 넉넉한 품을 아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삶으로 쓰는 시 한 줄인 줄을 느끼며 자라기를 바랍니다.

 

 삶을 쓰는 시이면서 삶으로 쓰는 시입니다. 삶을 찍는 사진이며 삶으로 찍는 사진입니다. 삶을 그리는 그림이나 만화이면서 삶으로 그리는 그림이나 만화예요.

 

 글매무새 가꾸기 앞서 삶매무새 가꿀 노릇입니다. 아니, 삶을 알뜰살뜰 일굴 때에는 내 글과 말을 알뜰살뜰 일굴 수 있어요. 삶을 착하고 참다이 돌볼 때에는 내 글과 말을 착하고 참다이 돌볼 수 있어요.

 

 우리 말글을 바르게 쓰는 지식을 배운다면 덧없습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익히는 일이란 부질없습니다. 말에 담는 넋을 삶으로 느껴야 합니다. 글에 싣는 사랑을 삶으로 깨우쳐야 합니다.

 

 아이들은 동시를 읽기 앞서 착한 삶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어른들은 동시를 쓰기 앞서 착한 삶을 일굴 줄 알아야 합니다. (4344.12.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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