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무화과

 


 집 뒤꼍 무화과나무 마지막 두 알을 따다. 이 겨울에 남은 무화과라니, 미처 몰랐다. 그러나 이 무화과는 두 알 조용히 남아 아이랑 어머니랑 아버지한테 달달한 맛을 베푼다. 새해에도 곳곳에 무화과를 맺을 수 있겠지? 마지막 두 알을 따며 가만히 들여다보니 다가올 봄에 씩씩하게 피울 잎사귀가 살짝 보인다. 조그마한 새눈이 가지 끝마다 맺혔다. (4344.12.1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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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 오징어 소녀 1
안베 마사히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 서로 재미나게 어울려요
 [만화책 즐겨읽기 98] 안베 마사히로, 《침략 오징어소녀 (1)》

 


 얼굴이 가려운 갓난쟁이 둘째는 깊은 밤마다 어김없이 칭얼거려 어머니가 잠을 못 자게 합니다. 밤에 어머니 잠 못 자게 하기로는 첫째나 둘째나 서로 매한가지입니다. 첫째가 세 살을 지나 네 살이 될 무렵 이제 어머니나 아버지가 밤에 한숨 돌리며 잠을 자려나 싶더니, 둘째가 새삼스레 밤잠을 깨웁니다. 앞으로 이태쯤 밤잠은 없다 셈치고 살아야 할는지 모릅니다. 갓난쟁이가 밤에 잠을 못 이룬다면, 어머니가 좀 쉬도록 아버지가 아이를 토닥이거나 달래면서 한 시간 남짓 놀아야지 싶습니다.

 

 낮에도 놀지만 밤에도 노는 아이를 무릎에 누이고 앉히고 세우면서 생각합니다. 내가 한 살 적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떠했을까. 형이 네 살이고 내가 한 살이던 내 어린 나날,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떠셨을까.

 

 아이 하나와 함께 살면서 어버이 넋을 돌이킵니다. 아이 둘과 같이 지내면서 어머니 삶을 돌아봅니다.

 

 내 어버이는 나와 형을 낳고 함께 살아오면서 사랑을 물려주었습니다. 우리 두 아이는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면서 앞으로 저희 삶을 일굴 테고, 저희끼리 좋은 짝을 만나 저희 아이를 낳으면, 나와 옆지기한테서 받을 사랑을 물려주겠지요. 어버이한테서 받은 사랑에 저희 깜냥껏 새로운 사랑을 실어 먼먼 앞날 새 아이들한테 꿈과 빛을 베풀겠지요.


- “여기도 쓰레기, 저기도 쓰레기. 바다 밑바닥이 온통 쓰레기장. 이 모든 것은 지상에서 흘러들어 온 것. 인류의 산물. 그리고, 버린 것 또한 인류. 괘씸한 인류! 내가 그 썩은 지상을 침략해 주겠다징어!” (1쪽)
- “근데 우리 집엔 왜?” “여길 거점으로 인류 침략 계획을 추진할 거다징어.” “인류 침략을 왜 하려는 건데?” “인간들은 여태껏 바다가 베풀어 준 은혜도 모르고 사리사욕을 위해 공공연하게 바다를 더럽혀 왔다. 우리 바다의 생물들에게 인류 따윈 백해무익! 그래서 내가 인류를 응징할 것이다. 바다를 지키기 위해.” (8∼9쪽)


 사랑으로 살아갈 적에는 사랑을 일구고 사랑을 빚으며 사랑을 나눕니다. 미움으로 살아갈 때에는 미움을 일구고 미움을 빚으며 미움을 퍼뜨립니다.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사랑스럽습니다. 미움을 퍼뜨리는 사람은 밉살맞습니다. 사랑스럽기에 포근합니다. 밉살맞기에 쌀쌀맞습니다.

 

 나는 언제라도 사랑스러운 손길로 포근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언제라도 밉살맞은 눈길로 쌀쌀맞을 수 있어요.

 

 꿈꾸는 길에 걸맞게 사랑스럽습니다. 꿈을 잃거나 버리거나 잊는 결대로 밉살맞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어린이로 놀며 푸름이로 꿈꾸다가는 젊은이로 일을 하고 늙은이로 슬기를 남기는 흐름이란, 온통 사랑이로구나 싶습니다. 사람마다 품에 안는 맑은 목숨이란 고운 빛줄기입니다. 목숨줄기는 빛입니다. 빛이 솟는 샘터입니다.


- “뭐, 우리도 못마땅하긴 해. 가끔 캔이나 병을 밟고 크게 다치는 어린애도 있고 하니. 구석구석 쓰레기통도 설치해 뒀는데.” “인간들은 동족의 위험도 아랑곳않고 바다를 더럽히는 비열한 생물이구나징어.” … “도와주는거냐징어?” “어?” ‘모, 모르겠다징어. 치울 마음이 있으면서 왜 다들 바다를 더럽히는 거냐징어?’ (35, 37쪽)
- “이건 뭐냐징어?” “보면 몰라? 이 뜰채가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금붕어를 건지는 놀이야.” “즉, 금붕어의 갱명을 갖고 노는 거구나징어.” (156쪽)


 품에 안아 놀고, 드러누워 배에 엎드리게 하고는 놉니다. 한참 어르다가는 바닥에 살며시 놓습니다. 올 오월에 태어났으니까 십이월이면 이제 바깥누리에서 일곱 달째 살아가는 셈인가요. 갓난쟁이 둘째는 깊은 밤 방바닥 이곳저곳을 마음껏 기며 스스로 놉니다. 한손으로 방바닥을 탕탕 두들깁니다. 일하면서 한쪽 벽에 세운 그림책을 쓰러뜨리고는 또 손으로 통통 칩니다. 내 왼무릎에서 기던 아이가 어느새 한 바퀴 돌아 내 오른무릎으로 옵니다. 첫째는 얼마 안 기고 바로 서려 하며 걸었고, 둘째는 눕히기를 그닥 안 좋아하면서 좀처럼 잘 앉거나 서지 못하지만, 기기는 제법 잘 깁니다. 이 아이도 머잖아 제 두 다리에 힘을 발끈 주고는 뽈딱 하고 서겠지요. 제 누나를 따라 이리 달리고 저리 넘어지면서 마당과 들판과 멧길을 누비겠지요.

 

 비록 깊은 밤에 잠들지 못하지만, 앞으로 깊은 밤에 얼마쯤 잠을 못 이루겠느냐고 생각을 다스립니다. 하루하루 치자면 짧지 않지만, 아이가 자라날 기나긴 나날을 돌아보면 나한테는 더없이 애틋할 한 해요 두 해이며 세 해입니다.

 

 이제 아이를 안고 방바닥에 벌렁 드러눕습니다. 무릎을 세워 아이를 올립니다. 아이는 입을 쩍 벌리며 좋아합니다. 그렇구나, 어제는 이 놀이를 못 해 주었네. 미안해, 그런데 꼭 이 밤에 이 놀이를 해야겠니.

 

 아무쪼록 잘 놀아 주렴. 아무쪼록 어머니가 다문 한 시간이라도 새근새근 잠들게 도와주렴. 아무쪼록 밤에 깨어나 이렇게 논 만큼 아침과 낮에 달게 잠들어 주렴. 그때에 아버지도 낮잠을 자게 말야.


- “그럼 나도 오늘 생일이다징어!” “뭐?” “나도 축하해 줘라징어!” “넌 지금 정한 거잖아. 까불고 있어.” “그럼 뭐 어떠냐징어! 나도 저거 하고 싶다징어!” (130쪽)


 안베 마사히로 님 만화책 《침략 오징어소녀》(대원씨아이,2010) 1권을 봅니다. 아이들이랑 하루 내내 복닥이면서 지친 몸을 살짝 누이며 눈을 감다가는 잠이 들락 말락 할 때에 슬그머니 펼칩니다. 고단해서 졸리고, 막상 드러누우니 잠은 안 오고 하기에 펼칩니다. 바다에서 살다가 뭍으로 나온 오징어소녀는 여느 사람하고 엇비슷하게 굽니다. 말투며 하는 짓이며 오징어답다 할는지 모르나, 오징어소녀는 사람들 사이에 섞이면서 지구별 이루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무슨 꿈을 꾸고 무슨 일놀이를 누리는가를 찬찬히 바라봅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홀가분하게 즐길 만한 만화라 할 수 있는 《침략 오징어소녀》라 할 테지만, 곰곰이 ‘생각에 잠기며’ 남달리 즐기면서 재미있는 만화라 할 수 있는 《침략 오징어소녀》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재미나고, 이러한 줄거리를 선보이는 사람이 재미납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재미나며, 이러한 꿈을 나누는 사람이 재미납니다.

 

 내 한삶을 즐기고, 내 살붙이들 한삶을 함께 즐기며, 내 이웃들 한삶을 따숩게 즐깁니다. 내 오늘을 사랑하고, 내 살붙이들 오늘을 사랑하며, 내 이웃들 오늘을 사랑해요.


- ‘남은 매수 1장? 게다가 배터리까지 위험하다징어! 지, 진정하자징어. 지금까지 찍은 사진을 지우면 된다징어! 내가 사랑을 담아 찍은 바다 사진, 단 1장도 지울 수가 없다징어!’ (150∼151쪽)


 우리 서로 재미나게 어울려요. 우리 다 함께 기쁘게 손잡아요. 우리 모두 예쁘게 꿈을 꾸어요.

 

 나는 내 어버이 품에서 예쁘게 꿈을 꾸었어요. 내 옆지기는 내 옆지기 어버이 품에서 기쁘게 꿈을 꾸었어요. 우리 아이들은 나와 옆지기 품에서 착하게 꿈을 꾸겠지요.

 

 좋은 삶을 맞이하면서 좋은 사랑을 꽃피운다면 좋은 넋을 시나브로 북돋우리라 믿습니다. (4344.12.16.쇠.ㅎㄲㅅㄱ)


― 침략 오징어소녀 1 (안베 마사히로 글·그림,김혜성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0.12.10./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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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으로 보는 삶
 ― 사진을 찍어랏


 

 춤추고 노래하며 하모니카를 부는 네 살 딸아이가 작은 사진기를 들고 아버지한테 달려옵니다. 아버지가 쓰는 ‘큰’ 사진기로 찍지 말고, 아이가 쓰는 ‘작은’ 사진기로 찍어 달라 합니다. 아버지가 쓰는 큰 사진기에는 동영상찍기가 없고 아이가 쓰는 작은 사진기에는 동영상찍기가 있습니다. 아이는 작은 사진기로 동영상을 담아 달라고 바랍니다.

 

 “벼리야, 사진을 안 찍어도 되잖아. 그냥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면 돼.” 그러나 아이는 애써 제 모습을 찍어 달라 바랍니다.

 

 새벽 한 시 오십오 분. 잘 자던 아이가 낑낑댑니다. 쉬 마려워 낑낑댑니다. 옆에서 어머니가 아이보고 일어나라 합니다. 아이는 아버지를 부릅니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 스스로 일어나서 쉬를 누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버릇처럼 잠을 깨고 일어나고 맙니다. 아이가 되든 옆지기가 되든, 깊은 밤이건 한낮이건 곁에서 무얼 거들라며 부르면 달려가 버릇합니다.

 

 아이는 쉬를 누고 자리에 눕습니다. 이불을 여밉니다. 아버지는 다시 눕지 않습니다. 기지개를 켜고, 셈틀을 켭니다. 오늘 하루 찍은 사진을 갈무리합니다. 어제 찍은 사진은 어제 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이틀치 사진이 이백팔십 장이 넘습니다. 어디 멀리 나다니지 않고 집에서 네 식구 복닥이는 삶을 담은 사진입니다. 세 식구일 때에도 세 사람 삶을 사진으로 날마다 백 장 즈음 담았고, 네 식구일 때에도 네 사람 삶을 사진으로 나날이 백 장 남짓 담습니다. 엊저녁에는 딸아이가 춤과 노래와 하모니카를 실컷 보여주는 바람에 사진을 더 많이 찍었습니다.

 

 아이가 춤추고 노래하며 하모니카 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하나하나 들여다봅니다. 참 밝고 귀엽습니다. 참 웃기고 재미납니다. 이 아이가 아버지보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달려오는 일을 번거롭게 여긴 적은 없습니다. 너무 많이 찍을 수는 없고, 애써 모두 찍을 수 없으니, 때때로 손사래를 칩니다. 그런데, 아이를 찍은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좀 달리 생각합니다. 아니, 이렇게 즐거이 노는 아이라 한다면 더 찍을 수 있지 않나. 아이가 무대를 스스로 만들어 놀 때에는 따사로이 바라보면서 찍고, 아이를 업거나 아이 손을 잡으며 놀 때에는 사진기를 들 수 없으니 서로 따사롭게 바라보며 마음으로 아이 삶을 담으면 돼요.

 

 아버지가 “이제 그만 찍자, 그만 찍어.” 하고 손사래를 치니, 아이는 한손으로 하모니카를 불면서 한손으로 사진기를 들이밉니다. 그래, 내가 어떻게 너한테 이기겠니. 왼손으로는 작은 사진기를 들고 동영상을 켭니다. 오른손으로는 큰 사진기를 들고 단추를 누릅니다. 작은 사진기 동영상에는 오른손으로 단추를 누르며 내는 소리 ‘찰칵’이 함께 담깁니다. (4344.12.1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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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으로 보는 삶
 ― 사진에 찍히다


 늘 세 식구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아버지입니다. 모처럼, 아주 모처럼 아이 어머니가 아버지 사진을 찍습니다. 둘째를 품에 안고 첫째랑 노닥거리자면 아버지는 사진기를 손에 쥘 수 없습니다. 뜨개질을 하던 어머니가 뜨갯감을 살짝 내려놓고는 ‘어머니를 뺀’ 세 식구 노닥거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진으로 찍히면서 ‘아, 나도 이렇게 사진으로 찍히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 어머니가 바라보는 아이 아버지는 어떤 모습 어떤 이야기가 될까? 아니, 내가 저 사진기 빛을 잘 맞춰 놓았나?

 

 나는 디지털사진기도 수동으로 맞춰서 찍습니다. 언제나 빛과 그늘을 살펴 조리개값과 셔터빠르기뿐 아니라 화이트밸런스나 색감까지 그때그때 바꾸면서 찍습니다. 마침, ‘아버지를 뺀’ 세 식구 복닥이는 모습을 찍은 지 얼마 안 된 때에 ‘어머니를 뺀’ 세 식구 노닥거리는 모습을 찍는 터라, 아이 어머니가 사진기를 그냥 들어 그냥 찍어도 빛이 잘 맞습니다.

 

 사진으로 찍히면서 고맙습니다. 사진으로 찍히면서 즐겁습니다. 몇 천 장 넘는 아이들 사진이 나올 때에 아주 드물게, 용케 한두 장 섞이는 아버지 사진을 아이들도 나중에 들여다보겠지요. 우리 아이들은 어머니 옛날 모습은 차근차근 사진으로 바라보겠지만 아버지 예전 모습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을 텐데, 이렇게 가까스로 한두 장 섞인 사진을 ‘알뜰히’ 느껴 줄까요. 내가 찍힌 우리 식구 사진을 바라보고 또 바라봅니다. (4344.12.1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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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마당은 초록풀 바다
짐 호우즈 지음, 사과나무 옮김, 롤렌드 하베이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0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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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를 떠나 너른 마당 누려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05] 롤란드 하베이·짐 호우즈, 《우리 집 마당은 초록풀 바다》(크레용하우스,2000)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픈 꿈을 서른일곱 해 만에 이루며 살아갑니다. 올가을까지 살던 멧골집에도 마당은 있었지만 온갖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드나드는 조금 어수선한 데였습니다. 마당이 있다지만 자동차가 드나들며 배기가스를 내뿜거나 시끄러운 소리를 내뱉으면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만하지 않아요. 빨래를 널기에도 그닥 좋지 않습니다.

 

 나는 아마 일곱 살 무렵부터 아파트에서 살았지 싶습니다. 일곱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 한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이곳은 열석 평짜리 작은 집이고, 다섯 층짜리 보금자리였습니다. 한 동에 모두 쉰 살림집이 길게 들어선 층층집이었고, 예전에는 자가용 있는 사람이 적어 동과 동 사이는 널따란 놀이터였습니다. 마당이 없기로는 어느 아파트라고 다르지 않으나, 열여섯 살에 다른 아파트로 옮길 때까지 퍽 신나게 뛰놀 수 있었습니다.

 

 열여섯 살에 내 어버이가 옮긴 새 아파트는 마흔여덟 평이었습니다. 형과 나는 방을 따로 얻습니다. 이곳은 열다섯 층으로 이루어졌고, 마당이나 놀이터 없이 자동차 대는 곳만 널따랗습니다. 자동차는 바깥에 대기로도 모자라 땅밑까지 파고듭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는 내 어버이 집을 떠나 여러 곳을 떠돌며 ‘마당이나 놀이터 누리는 집’에서 지내지 못합니다. 서울에서든 군대에서든 인천에서든 어디에서나 똑같습니다. 도시에서 마당 누리는 집이란 돈 없이 얻을 수 없는 꿈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헤아리지 못해서 누리지 못한 ‘마당 있는 집’이로구나 하고 요즈막 되뇝니다. 내 살가운 살붙이랑 오붓하게 하루 스물네 시간 복닥일 조그마한 시골집을 꿈꾸며 삶길을 열려고 애쓴다면, 퍽 수월하게 ‘마당 있는 집’을 누릴 수 있어요. 그리 크지 않은 도시에서든, 퍽 작다 싶은 도시에서든, 조그마한 방 한두 칸 얻을 살림집이나 살림방 전세돈이면, 시골마을에서 마당 널따란 보금자리를 내 집으로 마련할 수 있더군요.


.. 우리 집 마당은 초록풀 바다예요. 종이상자로 만든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지요. 초록풀 바다에는 작은 섬들이 떠 있어요. 섬에는 내 친구들이 살고요 ..  (3쪽)


 시골로 옮기면 돈벌이를 어떡하느냐고 걱정해 주는 분이 많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에요. 시골살이를 하며 도시처럼 돈벌이를 하려고 꿈꾸는 일은 참 바보스러워요. 몇몇 사람은 시골살이를 하면서도 도시에서와 엇비슷하게 돈벌이를 이루기도 하겠지요.

 

 그런데, 도시에서 이루는 돈벌이는 무엇을 하는 돈벌이가 되나요. 도시에서 돈을 벌면 이 돈을 어디에서 무얼 하며 쓰나요.

 

 내가 김치를 못 담그기도 하지만, 이웃 할머니들이 김치를 선물해 주십니다. 마당 가장자리 텃밭이나 집 뒤꼍 땅뙈기에 푸성귀를 심어 기를 수 있습니다. 마당 한켠에 열매 얻을 나무를 심을 수 있습니다. 씨앗부터 심으면 열매를 얻기까지 꽤 여러 해를 기다려야 하고, 어쩌면 내 나이 쉰을 넘어야 비로소 열매를 맛볼는지 몰라요.

 

 그러나 나는 즐거워요. 내가 내 마당 나무열매를 누리지 못하더라도 우리 집 아이들이 푸른 나이를 뽐낼 무렵 신나게 나무열매 누릴 수 있어요. 우리 집 아이들이 푸른 나이를 뽐낼 무렵 영차 하고 올라탈 만큼 나무가 자랄 수 있고, 우리 집 아이들이 나중에 저희 아이를 낳는다면, 이 아이들이 고개를 꺾어 높이 우러러볼 만한 나무가 우리 집 마당에 우뚝 설 수 있습니다.

 

 아직 씨앗 하나 알뜰히 심지 못한 우리 마당이지만, 마당을 바라보며 흐뭇합니다. 처음 이 시골집을 얻어 쓰레기를 치우고 집 안팎을 손질할 때에, 옆지기 어버이가 찾아와 주어 크게 힘쓰며 일을 거드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을 거드셨다기보다 일을 맡아 주셨다고 하겠어요. 널브러진 짐과 쓰레기를 치웁니다. 어지러운한 꽃밭과 텃밭을 갈무리합니다. 이제 뒤꼍 땅뙈기를 잘 건사하면 됩니다. 아흔일곱 평짜리 터에 스무 평쯤 될 집자리를 빼면 일흔일곱 평이 온통 마당이자 뒷밭이며 꽃밭입니다. 처마와 후박나무 가지 사이에 빨래줄을 잇습니다. 자전거와 손수레를 마당에 놓습니다. 시멘트로 바른 마당이지만, 아이는 이 마당에서 걱정없이 뛰고 달리며 구를 수 있습니다. 대문을 열지 않아도 집 앞 논밭이 넓게 보입니다.

 

 서울에서는 한강을 바라보는 아파트가 비싸다 하는데, 두 손으로 떠서 마실 수 없는 냇물을 바라보기보다는 언제라도 시원하고 푸른 바람을 베푸는 들판을 바라보거나 너른 바다를 마주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기쁘며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푸른나무 우거진 멧자락을 바라봅니다. 땅거미가 지고 난 다음, 캄캄한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동이 트는 어스름을 맛봅니다. 자동차 오가는 소리 아닌 바람이 나뭇가지 흔드는 소리 듣습니다. 사람들 손전화나 가겟집 유행노래 소리 아닌 멧새와 들새 지저귀는 소리 듣습니다.


.. 고물섬에는 누가누가 있을까요? 벌레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요, 거미가 예쁘게 짜 놓은 거미줄이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요 ..  (13쪽)


 롤란드 하베이 님이 그리고, 짐 호우즈 님이 글을 쓴 그림책 《우리 집 마당은 초록풀 바다》(크레용하우스,2000)를 읽습니다. 책이름 “초록풀 바다”는 엉터리이지만, 어린이책 번역에서 엉터리 아닌 말마디란 퍽 드무니 어쩔 수 없겠거니 하고 생각합니다. ‘초록’이란 ‘풀빛’을 일컫습니다. 그러니까 ‘초록풀’이면 “풀빛 풀”인 셈입니다. 풀은 모두 풀빛이지 풀빛이 다른 빛깔일 수 없습니다. 이 그림책 이름은 “초록풀 바다”가 아닌 “푸른 바다”로 붙여야 걸맞았으리라 봅니다.

 

 어쨌든, 도시 한복판에 있는 집인데 마당이 있고, 마당에는 풀이 마음대로 자라며, 풀이 마음대로 자라는 귀퉁이마다 온갖 놀잇감이 널립니다. 이 마당을 누리는 아이들은 저희 멋대로 푸른 바다를 누빕니다. 풀을 만지고 흙을 밟습니다. 풀내음을 맡고 흙내음을 맡습니다. 푸른 바다에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푸른 바다에 둥둥 떠서 흰구름을 먹습니다. 푸른 바다에서 함께 살아가는 온갖 벌레하고 인사합니다.


.. 나는 우리 집 마당이 정말정말 좋아요! ..  (25쪽)


 아파트에서 전세나 월세로 살든, 빌라나 다세대주택에서 전세나 월세로 살든, 아이를 낳아 살아가는 어버이라면 조그맣게 꿈을 꿀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아이들하고 더 오래 복닥이고 더 오래 살을 맞대며 더 오래 이야기꽃을 피우며 지낼 만한 예쁜 시골마을을 찾아 도시를 떠날 수 있으면 반갑겠습니다.

 

 대단한 이름을 붙이는 귀농·귀촌이 아니에요. 즐겁게 복닥이면서 ‘아이 삶’ 못지않게 ‘어른 삶’을 곱게 돌보는 시골살이입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부터 스스로 재미나게 누리면서 일구는 시골살이예요.

 

 너른 마당은 아이한테뿐 아니라 어른 누구한테나 고마운 쉼터입니다. 너른 마당은 즐거운 놀이터이자 일터입니다. 너른 마당은 오붓한 만남터이자 어울림터입니다.

 

 너른 마당을 누려야 내 사람다운 빛이 살아납니다. 너른 마당을 누리지 못하면 내 사람다운 꿈이 억눌립니다. 너른 마당을 누리면서 북돋울 내 착한 사랑이라면 내 이웃과 동무를 착하게 아낄 수 있습니다. 너른 마당을 누리지 못하며 억눌리는 넋이라면 너무 고단하며 괴롭습니다. (4344.12.16.쇠.ㅎㄲㅅㄱ)


― 우리 집 마당은 초록풀 바다 (롤란드 하베이 그림,짐 호우즈 글,사과나무 옮김,크레용하우스 펴냄,2000.8.10./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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