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
백남호 글.그림 / 철수와영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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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버는 어른과 일하는 어린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03] 백남호,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철수와영희,2012)

 


 아침은 언제나 지난밤 옷가지들 빨래를 하면서 엽니다. 밤새 나온 둘째 오줌기저귀랑 아침에 눈 똥 묻은 기저귀랑 바지랑, 첫째가 엊저녁 쉬를 누다 버린 속옷이랑 치마를 빨래합니다. 뜨거운 국에 손을 척 집어넣으며 크게 덴 둘째는 왼손을 붕대로 친친 감습니다. 붕대를 하루에 두 차례 갈며 이 붕대를 함께 빨래합니다. 붕대를 세 벌 갖고 감으니까 새 붕대로 갈 적마다 바지런히 빨래해야 합니다.

 

 집식구 옷가지를 날마다 여러 차례 빨래하면서 막상 내 옷은 여러 날에 한 번 겨우 빨래합니다. 두 아이를 날마다 씻기면서 날마다 새 빨랫거리 쌓이지만, 정작 나는 며칠에 한 번 머리 감고 씻으며 내 빨랫감을 내놓습니다.

 

 나는 내 옷도 내가 빨고 집식구 옷도 내가 빱니다. 나는 내 밥도 내가 차리고 집식구 밥도 내가 차립니다. 나는 내가 지내는 살림집을 내가 스스로 쓸고닦으며, 내가 손수 걸레를 빨아 방바닥이며 책걸상이며 개수대며 훔칩니다.

 

 아, 집안일이란 날마다 쉼없이 하고 또 해도 끝나지 않는 법. 그러나 이만큼 하더라도 어설프고 어수선한 티가 물씬 나는 법.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면서 아버지 집일을 어느 만큼 덜어 주려나 꿈꿉니다. 아이들이 네 살 다섯 살 여섯 살이 되면, 빨래하기랑 밥하기랑 쓸고닦기를 웬만큼 거들어 주려나 바랍니다. 아니, 아이들은 저희가 빨래하기랑 밥하기랑 쓸고닦기를 몸소 하지 않고는 못 배기리라 믿어 봅니다. 저희 몸을 움직이고 저희 마음을 기울이며 저희 삶을 저희 손으로 일구는 기쁨을 누리리라 믿어 봅니다.


.. 우리 아빠는 버스 정류장에서 떡볶이를 팔아. 순대랑 어묵이랑 김밥도 팔지. 출출한 저녁 시간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해. 아빠가 바쁠 때는 눈코 뜰 새도 없어. 음식 담아 주랴 먹은 거 치우랴 양념 더 넣으랴,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하대 ..  (20∼21쪽)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집식구 빨래를 한 가득 합니다. 빨래는 마당에 이은 빨래줄에 넙니다. 그제는 바람이 꽤 모질더니, 어제까지만 해도 한낮에도 바람이 퍽 드세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바람이 잔잔합니다. 새벽에 쉬하러 마당으로 나와 대문을 열고 논둑에 서며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에도 바람은 안 불었습니다.

 

 후박나무랑 처마에 이은 빨래줄에 잘 빨고 잘 턴 기저귀를 살그머니 넙니다. 바람이 살랑 스칩니다. 빨래집게로 집습니다. 빨래를 널 때면 으레 첫째 아이가 쪼르르 달려나와 거들었는데, 오늘 아침은 아직 꿈나라입니다. 뭐, 어때. 언제나 나 혼자 하던 일인걸. 기저귀를 빨래줄에 너니 바람은 불지 않습니다. 햇볕이 따뜻합니다. 오늘은 빨래가 잘 마르겠는걸, 하고 생각하며 기지개를 켭니다. 빨래를 다 널고 방으로 들어오니 둘째는 새 오줌기저귀 하나 내놓습니다. 음, 빨래를 다 하고 난 말끔한 기운을 금세 지우시는군.

 

 새 오줌기저귀는 빨지 않습니다. 앞서 빨래하며 나온 헹굼물을 한 바가지 대야에 받았기에, 대야에 새 오줌기저귀를 담습니다.

 

 방바닥에 깔던 담요를 걷습니다. 방바닥을 한 차례 비질합니다. 담요를 들고 마당 끝에 서서 탕탕 텁니다. 손바닥으로 펑펑 두들깁니다. 먼지가 뽀얗게 일어납니다. 이럭저럭 다 털고 들어와서 바닥에 곱게 깝니다. 둘째는 어머니 품에서 새근새근 잠드는데, 어느새 첫째가 깨어납니다. 이윽고 둘째 또한 얼마 잠들지 못하고 깨어나며 웁니다. 아침 아홉 시 십이 분.

 

 새벽 즈음 일어나 아침 일찍 회사로 ‘일하러’ 나가는 여느 아버지들은 집에서 여느 아이 어머니가 몇 시쯤 일어나서 어떤 집일을 건사하고 어떻게 아이들을 보살피며 어떻게 밥을 차리는가를 어느 만큼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깨닫거나 느끼거나 생각할 수 있을까요. 겪지 않으면서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깨닫거나 느끼거나 생각할 수 있으려나요.


.. 우리 엄마 아빠는 다른 사람 옷을 깨끗하게 빨아 주지. 뜯어진 옷도 깁고, 얼룩도 지우고, 구겨진 옷도 다려서 빳빳하게 펴지. 아빠는 손이 빨라. 세탁기 돌리고, 다리미질하고, 재봉틀로 옷도 고쳐. 엄마는 발이 빨라. 빨랫감을 모아 오고 다시 가져다주지. 아빠는 세탁 담당, 엄마는 배달 담당, 나는 잔심부름꾼이야. 엄마 아빠는 다른 사람 옷을 자기 옷보다 더 소중하게 다뤄 ..  (32∼33쪽)


 아홉 시 이십 분. 첫째한테 아침에 일어났으면 이 그림책이라도 보렴, 하고 말합니다. 첫째는 재미없는데, 하면서 그림책을 받고는 그림책에 나오는 그림을 아이가 아는 말로 구시렁구시렁거립니다. 둘째는 누나가 구시렁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목을 죽 늘어뺍니다. 둘째야, 그러면 누나한테 가 보렴, 하고 바닥에 내려놓습니다. 둘째는 앙 하고 웁니다. 머리를 그만 살짝 콩 찧었거든요. 그러나 누나가 노래부르며 이불을 새로 여며 주니 잘 놉니다. 그런데 누나가 또 다른 데 가니 앙 하고 웁니다. 아이를 품에 안아 엎드리게 합니다. 누나가 노래를 부르면서 놉니다. 둘째가 좋다고 소리지르면서 방바닥을 팡팡 두들깁니다. 자, 그러면 이제 아버지 무릎에서 벗어나 네가 가고픈 대로 기어 보렴.

 

 첫째는 여느 사람들이 몸을 씻으며 앉는 작은 걸상을 들고 와서 올라섭니다. 아이는 춤노래를 보여줄 때에 으레 요 씻는걸상에 올라서서 발을 구르면서 노래를 부르고 종을 울리며 하모니카를 불러요.

 

 아이한테 선물로 준 작은 디지털사진기를 들고는 아이가 춤노래를 보여주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습니다. 네 살 아이는 아버지가 날마다 수없이 사진을 찍으면서 노니까 저 혼자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면서 잘 놉니다. 네 살 아이는 이 디지털사진기로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을 줄 알아요. 한창 찍는데 몇 초 안 남습니다. 아이가 이 사진기를 갖고 놀며 금세 메모리카드 4기가가 그득 찹니다.


.. 우리 엄마는 음식 만드는 일을 가장 좋아해. 보글보글 국 끓이고, 달강달강 반찬 만들고, 칙칙폭폭 밥 짓는 일이 마냥 신난대. 식구들에게 몸에 좋고 맛있는 요리를 해 주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래. 엄마가 집에 있다고 가만히 쉬고만 있을까? 우리가 어질러 놓은 방 청소해야지, 더러워진 옷도 빨아야지, 시장에 가서 장도 봐야지, 하루 종일 우리 엄마는 바쁘고 바빠 ..  (52∼53쪽)


 아침에 빨래를 하는 동안, 아이들을 어르면서, 오늘은 또 어떤 밥을 차릴까 머리를 기울이다가 문득문득 생각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흔히 “일을 한다”고 말하지만, 참말 오늘날 사람들이 “일을 한다”고 할 만한지 생각해 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참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이렇게 느낍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동안 내 살림을 꾸리고 내 삶을 사랑한다’고 느낍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동안 돈을 얼마쯤 벌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때에 버는 돈은 ‘큰 돈이나 작은 돈’이 아니에요. 좋아하는 일을 하며 버는 돈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삶을 꾸리거나 누리거나 일굴 만한 돈’이에요.

 

 스스로 좋다고 여길 만한 일을 찾는 사람은 ‘이 일이 내가 좋아할 만하며 내 삶을 가꿀 만한가’를 찬찬히 헤아립니다. ‘돈벌이가 얼마나 되느냐’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예 안 따지지는 않겠으나 첫째나 둘째 까닭으로 삼지 않아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내 삶을 사랑하면서 아낄 만한 내 좋은 일’이 되느냐를 살핍니다.


.. 우리 엄마는 멀리 베트남에서 왔어. 아빠랑 결혼해서 우리 나라에 처음 왔을 때는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대. 말도 안 통하고, 사는 모습이 엄마 나라와는 모두 달랐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우리 말도 잘하고 시장에서 물건값도 잘 깎아. 엄마랑 시장에 가면 내가 가끔 엄마 통역을 해. 엄마에게 아직 어려운 우리 말이 있거든. 나는 우리 말도 잘 하고 베트남말도 잘 해 ..  (61쪽)


 백남호 님이 빚은 그림책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철수와영희,2012)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일하는 엄마 아빠” 모습이 모두 열여섯 가지로 나옵니다. “일하는 엄마 아빠” 모습이 열여섯 가지뿐이겠습니까만, 십육만 가지이든 천육백 가지이든, 온갖 일 가운데 열여섯 가지를 추려서 보여줍니다.

 

 빨래집을 꾸리고 떡볶이를 팔며, 짜장면을 나르고 공사장에서 일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모습을 그림책에 나온 모습으로 읽으며 곰곰이 돌이킵니다. 참말 이 나라에는 수많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당신 딸아이와 아들아이와 사랑스레 살아가고 싶어서 “일을 찾고 일을 합”니다. 그렇지만 막상 이러한 이야기들을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나 소설책에서 다룬 일은 드뭅니다. 사진책이나 그림책이나 만화책에서도 ‘공장에서 부품을 맞추는 어머니나 아버지’ 삶을 좀처럼 다루지 못해요.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바느질을 하거나 뜨개질을 하는 어머니나 아버지’ 삶자락을 살뜰히 담아내지 못해요. 소설책이든 시집이든 ‘호미와 괭이와 낫을 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온삶을 조곤조곤 들려주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건드리는 사람은 있어요. 보여주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온몸으로 살아내며 함께 웃거나 우는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사람이 적어요. 그림책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라고 해서 빈틈없이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그림책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 또한 아쉬운 대목이 있고 모자란 구석이 있습니다. 그림을 조금 더 잘 그릴 수 있었고, 더 자잘하고 하찮다 할 자그마한 이야기를 더 따스하게 돌아보며 담을 수 있었어요. 낱말 하나 더 다스리거나 돌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많은 옷을 빨아야(34쪽)”가 아니라 “옷을 많이 빨아야”처럼 적어야 올바르고, “계란찜과 달걀말이(54쪽)”를 섞어서 쓴 말투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림책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는 참말 ‘대학교와 신문·방송에서 자잘하고 하찮다고 여기며 거의 안 다루거나 아예 안 다루는 일터’ 사람들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자잘하다고 푸대접하는 대목을 더 살피고, 하찮다며 거들떠보지 않는 구석을 더 사랑하면서 그림과 글을 엮을 수 있었습니다.


.. 어느 날 엄마가 텔레비전에 나왔어. 엄마가 다니는 회사가 사정이 안 좋다며 엄마를 쫓아냈대. 함께 일하던 엄마 친구들도 같이 쫓겨났어. 엄마랑 엄마 친구들이 계속 일하게 해 달라고 말해도 회사에서는 엄마 말을 안 들어 줘. 그래서 엄마는 친구들이랑 함께 회사에서 일하게 해 달라고 싸우고 있어. 텔레비전에서는 엄마가 아주 나쁘고 무서운 사람처럼 자꾸 싸우는 모습만 보여줘. 우리 엄마는 집에서 방구 뿡뿡 뀌는 착한 엄마란 말이야 ..  (74쪽)


 나는 집에서 방귀 뿡뿡 뀝니다. 옆지기이자 아이 어머니도 집에서 방뀌 뽕뽕 뀝니다. 두 아이도 방뀌 봉봉 뀝니다. 다들 착한 사람이고, 모두 고운 사람입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꿈대로 집에서 살림을 도맡으면서 갖은 일거리를 붙잡습니다.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스스로 좋아하는 꿈으로 나아가는 길을 걷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희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을 사랑에 걸맞게 저희 꿈을 참다이 일구는 길을 즐거이 걷겠지요.

 

 우리 아이들을 비롯해 온누리 아이들 모두 “돈을 버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보다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돈을 버는 사람보다 삶을 사랑하면서 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니까, 어버이인 나부터 아이들하고 돈을 더 버는 나날이 아닌 아이들이랑 알콩달콩 일놀이를 함께 즐기는 나날을 보내고 싶습니다. (4344.12.18.해.ㅎㄲㅅㄱ)


―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 (백남호 글·그림,철수와영희 펴냄,2012.1.7./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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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풀먹기

 


 두 아이 어머니요 내 옆지기가 밥먹기를 바꾼다. 이제부터 날푸성귀만 먹기로 밥먹기를 바꾼다. 쌀밥을 먹더라도 날푸성귀를 많이 먹던 옆지기는 당근을 짠 물이랑 날무와 날배추와 날곡식가루를 먹기로 한다. 날푸성귀를 먹는 옆지기는 예전부터 둘째 갓난쟁이 산들보라한테 무 한 조각이나 배추 한 잎을 쥐어 주곤 했다. 이제 일곱 달쯤 함께 살아가는 갓난쟁이 산들보라는 제 어머니가 건네는 무조각이나 배춧잎을 한손으로 꼭 움켜쥐며 놀다가는 입으로 스윽 넣는다. 아주 조그맣고 앙증맞은 앞니가 둘 났다고, 요 앙증맞은 앞니로 무를 갉아먹곤 한다. 요 앙증맞은 앞니로 배추를 잘라 입에 넣었다고 캑캑거려서 손가락으로 빼내 주곤 한다. 네 좋은 어머니가 날푸성귀를 즐겨먹으니 너도 날푸성귀를 좋아할 수 있겠니. 우리가 이 시골집에서 뒤꼍 빈터를 알뜰살뜰 돌보면서 풀누리를 이룬다면, 너와 어머니는 흙땅을 마음껏 밟으며 몸을 살찌우는 풀을 뜯어서 먹을 수 있겠니. 날푸성귀를 먹고 배춧잎과 무조각을 건네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네가 요즈음 누는 똥에는 온통 풀기운이 배는구나. 네 아버지는 네 똥기저귀를 아침저녁으로 신나게 빨아 후박나무 빨래줄에 널어 해바라기를 시킨단다. (4344.12.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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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개옷 선물받기

 


 옆지기 앞으로 소포꾸러미 하나 온다. 두꺼운 비닐로 싸인 말랑말랑한 소포꾸러미이다. 무엇일까. 옆지기는 뜨개질하느라 바쁘기에 내가 가위로 살살 뜯는다. 두꺼운 비닐이니까 나중에 어디엔가 되쓰면 좋겠다 싶어 살살 뜯는다.

 

 봉투를 다 뜯고 알맹이를 꺼낸다. 알맹이는 뜨개옷. 뜨개옷을 뜨는 옆지기한테 뜨개옷 선물이라니. 마치 ‘책 만드는 일’을 하는 나한테 책을 선물하는 일하고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소포꾸러미에서 옷이 나오니 첫째 아이가 달려든다. 어쨌든 아이가 집어 보고는 예쁘다 싶으면 “이거 내 거야? 이거 벼리 거야?” 하고 말하기 무섭게 누가 입어 보라 하지 않았어도 신나게 재빨리 입는다. 다른 때에는 추운 날씨에 옷 좀 입어라 입어라 백 번 이백 번 노래를 해도 들은 척을 않더니.

 

 아침부터 뜨개질을 해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무렵 “이런, 잘못했어. 다 풀어야 해.” 하고 말하기 일쑤인 옆지기는 첫째 아이 조끼를 뜨느라 이레 넘게 품을 들이지만 이제 겨우 앞판을 끝냈단다. 옆지기 앞으로 소포꾸러미를 보내신 분은 이 옷을 뜨는 데에 얼마쯤 품을 들이셨을까. 이 옷을 뜨면서 이 옷을 입을 아이들 생각에 얼마나 설레고 기뻤을까.

 

 나는 내가 만들거나 쓴 책을 선물하면서 언제나 내 마음으로 생각하고 사랑한다. 이 책 하나가 태어나기까지 수많은 집일을 치르면서 밤과 새벽마다 틈을 쪼개어 글 하나 바지런히 쓰고 또 써서 열매를 맺는다. 나는 내 사랑열매 땀열매 꿈열매를 책으로 여미어 선물한다. 나한테 책값을 미리 주는 분이 있고, 때로는 나한테 살림돈이 될 만한 목돈을 건네는 분이 있다. 나는 거저로 책을 보내기도 하고, 값을 받고 팔기도 한다. 선물로 준 책에 내 이름 석 자 적어 달라는 분이 있으면, “이름을 적으려면 책값을 주셔야 해요.” 하고 덧말을 붙인다.

 

 뜨개옷을 꼼꼼이 살피지는 못했는데, 뜨개옷을 짓는 분들 가운데 어느 한켠에 당신 이름 석 자를 새겨넣는 분이 있을까. 누구한테 선물하는 뜨개옷이라 하더라도 뜨개질한 사람 이름 석 자를, 또는 닿소리를 따 ‘ㅈㅇㄱ’처럼 떠 넣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ㅈㅇㄱ 4344’라든지 ‘ㅈㅇㄱ 2011’ 같은 글을 넣을 수 있겠지.

 

 네 살 아이는 단추를 아주 잘 꿴다. 돌이 되기 앞서부터 제 옷 단추를 제가 꿰고 끌르려 했으니, 네 살이라면 얼마나 잘 꿰겠나. 이 예쁜 아이한테 예쁜 뜨개옷을 보낸 분은 오늘 하루 어떤 예쁜 아이들하고 예쁜 삶을 일구셨을까. 우리 집 예쁜 아이가 밤에 뒤척이면서 아버지를 깨우고, 또 혼자서 중얼중얼 잠꼬대를 한다. 아버지는 이불을 아이 목덜미까지 여며 주고 일어나서 새벽 글쓰기를 한다. (4344.12.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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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화 바로 읽기 - 어머니가 알아야 할 어린이문학 소년한길 어린이문학 3
이재복 지음 / 한길사 / 199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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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문학 평론이 싹트지 못하는 한국
 [어린이책 읽는 삶 13] 이재복, 《우리 동화 바로 읽기》(소년한길,1995)

 


- 책이름 : 우리 동화 바로 읽기
- 글 : 이재복
- 펴낸곳 : 소년한길 (1995.7.15.)
- 책값 : 11000원

 


 (1) 어린이책과 이야기


 어린이책이 참 많이 나옵니다. 이제 청소년책도 제법 많이 나옵니다. 어린이책을 펴내는 출판사는 무척 많으며, 해마다 나오는 좋다 싶은 어린이책을 추천한다면 두툼한 책 한 권이 될 만합니다.

 어린이책 많고 청소년책 또한 많은데, 막상 어린이책과 청소년책을 말하는 자리는 그닥 넓지 않습니다. 칭찬과 책소개와 홍보와 추천은 넘치지만, 책과 어린이 삶결을 견주는 이야기나 책과 청소년 삶자락을 맞대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른문학을 다루는 비평이든 평론이든 꽤 많이 나옵니다. 어른문학 비평은 적잖이 책으로 묶입니다. 또 어른문학을 다루는 비평책이나 평론책은 여러모로 소개되거나 이야기됩니다. 이와 달리, 어린이문학과 청소년책 비평·평론은 너무 푸대접이나 따돌림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린이문학 비평과 평론은 아직 너무 적고, 제대로 이야기되지 못하며, 몇몇 전문가만 다룰 수 있는 글인 듯 여기곤 합니다.


.. 이주홍은 〈비오는 들창〉을 통해 어린이의 삶은 어른의 삶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동심천사주의 문학과 계급주의 문학, 양쪽의 한계를 모두 극복하는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 … 이주홍은 고통받는 사람에게 그 고통에서 해방되는 전망을 제시한다는 방식이 너무나 안이하게 우연성에 의존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목마 아저씨〉의 감동을 떨어뜨렸다 ..  (168, 176쪽)


 잘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스스로 책을 찾아서 읽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책방마실을 하면서 책을 사들이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늘 어른들이 사 주는 책을 읽고,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이 내미는 책을 읽습니다. 아이들이 ‘출판사에서 펴낸 책을 저희 깜냥껏 골라서 갖춘’ 어린이책방부터 없고, 어린이책방에서 아이들이 ‘저희 마음결대로 읽고픈 책을 골라서 살’ 돈이 아이들한테 없으며,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마음밥 살찌울 책을 느긋하게 읽을 겨를’이 없습니다.

 

 더구나, 이런 한국땅 흐름에서 어른들이 쓰는 어린이문학 비평은 ‘아이들하고 함께 읽을 비평’이 아닙니다. 어른들은 어린이문학을 만들고 팔고 읽힐 뿐 아니라 비평과 평론까지 몽땅 도맡아요.

 

 비평이나 평론이라는 이름이 붙기 때문에 어린이문학 비평을 아이들이 읽을 만한 높낮이로 맞추어야 할 까닭은 없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린이문학을 말하는 글이라 한다면, 어린이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생각하고 돌아보면서 써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어른문학 비평을 하듯 어린이문학을 비평한다면, 어른문학 비평하는 글처럼 딱딱하고 메마르며 따분한 글투로 어린이문학을 이야기한다면, 이러한 어린이문학 비평으로는 참다이 어린이문학을 밝힐 수 없을 뿐더러, 즐거이 어린이문학을 살찌울 수 없다고 느껴요.

 

 예배당에서 신부님이나 목사님이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습니다. 절집에서 스님이 어려운 한문 그대로 이야기를 욀 수 없습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전문 의학용어라면서 당신 혼자 아는 낱말로 이야기를 하려 한다면, 아이 밴 어머니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신부님이나 목사님은 예배당을 찾는 ‘글 모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말만 들어도’ 깨우치면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도록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절집 스님도 산부인과 의사도 이와 매한가지예요. 누구나 넋·말·삶을 가장 쉬우면서 착하고 아름다운 결에 맞추어야 해요.


.. 이렇게 한 인간에 대한 일방적인 증오의 감정이 드러나는 노래 속에서 어떤 감동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 요즘 남쪽의 아동문학은 점점 삶을 멀리하고, 공상·귀신·공허한 말장난의 세계로만 빠져드는 듯하다. 감동적인 창작동화를 보기가 하늘에 별을 따기 만큼이나 어렵게 되어 버렸다. 참으로 큰일이다. 모두가 삶에서 이야기를 만들려 하지 않고, 삶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 남한에서 나오는 그림동화를 보면 대개가 서양의 그림동화를 옮겨 놓은 다음에 화려하게 치장하여 아이들의 눈을 끌고 있다. 북한의 작가들은 아이들에게 생활에 필요한 도덕적인 관념을 심어 주려다가 다양하고 새로운 주제를 담아내지 못한 한계가 있었지만, 남한의 작가들은 자본주의 유통구조 아래서 아예 아이들을 상품의 대상으로만 보고 그들을 철저하게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겠다 ..  (204, 224, 241쪽)


 어린이문학을 다루는 잡지가 여럿 있습니다. 다달이 나오거나 철마다 나오는 어린이문학 잡지에 어린이문학을 이야기하는 글이 여럿 담깁니다. 이 글들은 어느 주제에 맞게 어린이책 묶음읽기를 하거나 역사에 따라 비평을 하거나 작가 한 사람 발자국을 톺아봅니다. 작품 하나를 찬찬히 짚는 글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이야기는 아직 좀처럼 찾아 읽기 힘듭니다. 드문드문 찾아 읽기는 하지만, ‘아이와 함께 꾸리는 삶’으로 바라보는 어린이문학 비평이 얼마 없습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나 어른’으로서 헤아리는 어린이문학 비평이 너무 적습니다. ‘글을 쓰는 내가 어른이 아닌 어린이’라 할 때에 어느 작품 하나를 어떻게 느끼며 읽을까 하는 글도 적지만, 한국에서 태어나는 어린이문학 비평은 하나같이 논문 같습니다. 학위를 따려는 논문 같고, 대학교수가 되고픈 마음에 쓰는 논문 같습니다. 어린이 삶을 북돋우는 비평이 되지 못합니다. 어른 삶을 살찌우는 평론이 되지 못합니다.

 

 문학이란 삶을 사랑하면서 아름다이 일구는 길을 찾는 마음밥이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문학을 다루는 글이라 한다면, 문학작품 하나가 내 삶을 어떻게 사랑하도록 이끌고 얼마나 사랑하도록 도우며 아름다이 일구는 길을 어찌저찌 찾게끔 어깨동무하는가를 밝힐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참삶을 밝히고 참길을 여는 글이 바야흐로 비평이나 평론이라고 생각해요.


.. 현덕은 좀더 참을성 있게 아이들에게 자기의 목소리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보여주는 데 만족했던 것이다 … 싸움은 또 다시 싸움을 부를 뿐이라는 사실을 권정생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또 다른 악에 의존하는 현대인의 모순적인 삶의 구조에 몸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  (214, 296∼297쪽)


 표현법을 따진다거나 문장분석을 한다거나 주제읽기를 한대서 비평이나 평론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줄거리를 살피거나 재미를 알아보는 일 또한 비평이나 평론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글 저런 글이란 ‘감상평’쯤 되겠지요.

 

 비평, 곧 이야기라면, 어린이문학 비평, 그러니까 ‘어린이문학 이야기’라면, 어린이문학 하나를 둘러싸고 ‘어린이와 어른(어버이)이 어떤 삶을 함께 일구고 서로 사랑하며 같이 돌보는가’ 하는 꿈누리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길을 보여주고 삶을 톺아보며 사랑을 찾을 때에 참다이 ‘어린이문학 이야기’ 자리에 선다고 느낍니다.

 

 작품분석은 말 그대로 분석입니다. 작품해설은 말 그대로 해설입니다. 작품평은 말 그대로 평가예요.

 

 이야기는 분석도 해설도 평가도 아닙니다. 이야기는 파헤치거나 풀이하거나 값매기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사랑하는 삶을 들려주는 보따리입니다. 이야기는 따사로운 넋을 나누는 꾸러미입니다. 이야기는 아름다운 꿈을 여는 실마리입니다.

 

 나라밖에서 돋보이는 숱한 ‘어린이문학 비평·평론’은 어린이문학 작품 하나를 잘 뜯어살피(분석)거나 잘 풀이하(해설)거나 잘 값매기(평가)기 때문에 돋보이지 않아요. 폴 아자르 님, 페리 노들먼 님, 우에노 료 님, 마츠이 다다시 님, 이런 분 저런 분 글은 뜯어살피기·풀이하기·값매기기하고 멀찍이 떨어집니다. 아니, 처음부터 이 세 가지는 헤아리지 않아요. 생각하기·사랑하기·살아가기, 이 세 가지만 찬찬히 짚습니다.

 

 문학도 문학비평도 뜯어살피기·풀이하기·값매기기가 될 수 없습니다. 문학이든 문학비평이든 생각하기·사랑하기·살아가기로 이루어집니다. 문학을 빚는 사람과 문학을 이야기하는 사람, 여기에 문학을 즐기며 누리는 사람 모두 생각하기·사랑하기·살아가기로 어우러져요.


.. 대부분의 일반문학 작가들이 그들의 소설이나 시에서는 우리 민족의 문제·삶의 문제를 깊이있게 다루면서, 동화에서는 그러한 치열한 정신을 버리고 단지 아이들에게 피상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수준에서 스쳐 지나간다 … 아동문학이라고 해서 겉으로 슬쩍 사회 문제를 구경시키는 차원에서 보여주고 넘어가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태도야말로 무책임하게 천사주의적인 환상의 세계로 도피하는 문학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  (313쪽)


 이제 이 나라에서도 뜯어살피기·풀이하기·값매기기로만 짜인 논문보다는 생각하기·사랑하기·살아가기로 이루는 이야기가 태어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재거나 따지거나 줄세우지 말고, 즐기고 좋아하며 아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문학작품만 ‘고전’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문학평론도 ‘고전’이 되어야 해요. 문학작품만 쉰 해 백 해 오백 해를 읽혀야 하지 않아요. 문학평론 또한 쉰 해 백 해 오백 해를 읽히면서 사람들 가슴을 촉촉히 적시거나 울리거나 흔들거나 사로잡거나 어루만지는 글이 되어야 해요.

 

 지식씨앗이나 지식조각을 다루는 어린이문학 비평·평론은 이제 그만 나오면 좋겠어요. 사랑씨앗과 사랑꿈을 돌보는 어린이문학 이야기를 새록새록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2) 아직 사랑을 담지 못하는 평론


 어린이문학과 어린이책을 찬찬히 다루는 평론책인, 이재복 님이 쓴 《우리 동화 바로 읽기》(소년한길,1995)를 읽습니다. 어린이문학과 어린이책을 찬찬히 다루는 평론책으로는 이오덕 님이 내놓은 《시정신과 유희정신》만 한 책이 아직 없구나 하고 다시금 느끼며 읽습니다. 어린이문학이나 어린이책을 놓고 깊이 돌아보는 비평책으로도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만 한 책을 써낼 만한 분이 아직 없다 할 만하구나 하고 거듭 느끼며 읽습니다.

 

 그러나, 이만큼 애쓰는 분이 있으니 고맙습니다. 이렇게 힘쓰는 분이 있어 반갑습니다. 다만, 짚어야 할 대목을 좀처럼 못 짚고, 느껴야 할 대목을 살가이 못 느끼는구나 싶어 아쉬워요.


.. 그분 말이 내 이야기는 내가 겪은 거니까 쓰겠는데 동화는 도대체 못 쓰겠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동화라는 게 별 게 아니고 그저 자기가 보고 겪은 이야기를 그대로 아이들의 입맛에 맞게 써 내면 되는 건데 왜 자기 삶의 이야기는 잘 쓰는 분이 동화 쓰기는 그렇게 어려워하는 걸까 ..  (85쪽)


 동화는 “별 게 아닐” 수 없습니다. 어린이문학이든 어른문학이든 “대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린이문학이나 어른문학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어린이문학이든 어른문학이든 “읽는 이 입맛에 맞게 써 내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삶의 이야기는 잘 쓰는 분이 동화 쓰기는 그렇게 어려워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내 삶을 이야기 한 자락으로 살뜰히 풀어낼 줄 안다면, 이 이야기가 고스란히 어린이문학이나 어른문학이에요. 따로 ‘문학’이라는 틀로 글을 다시 쓸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동무가 어린이라면 어린이문학으로 태어나고, 내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벗이 어른이라면 어른문학이 태어나요.

 

 곧, 내 삶을 이야기 한 자락으로 살뜰히 풀어낼 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문학인가 문학이 아닌가라는 대목이 갈립니다.

 

 이재복 님은 “그저 자기가 보고 겪은 이야기”를 쓰면 동화가 된다고 밝히지만, 스스로 보거나 겪은 이야기를 쓴다 해서 동화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동화 시늉을 낸다고는 하겠지요. 이른바 생활동화라는 시늉을 낸다고 할 만합니다.

 

 참말 요즈음은 생활동화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오는 작품이 적잖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한국 생활동화 가운데 그야말로 ‘삶’과 ‘동화(어린이문학)’라는 이름이 걸맞는 작품이 얼마나 될는지 궁금해요. 너무나 “아이들 입맛에 맞게” 쓰기만 할 뿐 아닌가 싶어요. 할 말을 모르고 나눌 넋을 모르며 물려줄 사랑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이재복 님 평론책 《우리 동화 바로 읽기》를 비롯해서, 한국땅 수많은 어린이문학 평론가들 글과 책이 아직까지 《시정신과 유희정신》하고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랑 어깨를 견줄 수 없다고 느낍니다. 안타깝지만, 이재복 님이든 다른 평론가 분들이든, 아이들과 함께 할 말·아이들과 나눌 넋·아이들한테 물려줄 사랑을 좀처럼 건드리지 않아요. 아이들과 함께 할 말을 따사로이 돌보지 못해요. 아이들과 나눌 넋을 포근하게 보살피지 못해요. 아이들한테 물려줄 사랑을 어떻게 담아야 좋을까를 깨닫지 못해요.


.. 동화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문학이 아니라, 단지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 아이들에게 겸손하게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보여주는 문학일 뿐이다. 판단은 아이들이 한다. 아이들을 지도한다고 욕심을 내서 뭔가를 자꾸만 알게 하고, 느끼게 하고, 억지로 감동하게 하려고 훈계하는 문학은 그 의도가 지나치다 보면 아이들을 올바른 데로 이끈다는 허울좋은 명분 아래 결국은 더 큰 노예의 나라로 끌고 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  (111쪽)


 이재복 님 말처럼, “판단은 아이들이 한다”고 여길 수 없어요. 아이들은 ‘생각’하기 앞서 ‘느끼’면서 ‘받아들’여요. 아이들하고 어린이문학을 나누는 어른들은 아이들이 무엇을 느끼면서 받아들일까를 깊이 생각하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이재복 님 또한 이 대목을 모르지는 않구나 싶은데, 이를테면 “북한의 동화는 어떤 것을 읽어 봐도 이런 엉터리 문장은 보기 힘들다. 문장에 멋을 낸다고 비비틀어서 이상하고 의미도 없는 문장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문장 하나를 이해하려면 이게 무슨 말인지 마치 어려운 외국어 문장을 해독하듯이 한 뒤에야, 아하 그런 말이었구나 하는 문장을 요즘 남한의 동화작가들은 즐겨쓰고 있다. 그래서 그런 문장을 본 아이들은 또 동화를 읽어 보니까 작가들이 이런 문장을 쓰던데 이게 좋은 문장인가 보다 하고 흉내를 내어 아이들까지 그걸 따라가게 되니, 참으로 엉터리 동화 한 편이 아이들을 이렇게까지 병들게 하는 것이다(24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참말, 아이들은 ‘생각’하면서 ‘흉내’내지 않아요. 아이들은 재미있거나 좋다고 ‘느껴’서 ‘흉내’를 냅니다. 그래서 어린이문학을 섣불리 “판단은 아이들이 한다”고 여기면서 내어주지 않습니다. 어느 어버이도 아이가 아무 책이나 골라서 읽도록 하지 않아요. 어느 도서관도 아이한테 아무 책이나 빌려주지 않습니다. 어느 어버이라도 아이들한테 아무것이나 먹으라고 내밀지 않아요. 어느 어버이라 하더라도 아이들한테 아무 데서나 자라 하지 않고, 아무 옷이나 입히지 않아요.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생각’해서 저마다 읽을 책을 고르기는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천천히 ‘느끼고 살아가’며 이루어지기 때문에, 퍽 자주, 아니 늘 ‘느끼며 받아들이’며 살아간달 수 있으니까, “아이들에게 겸손하게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보여주는 문학”만 쓸 수 없어요. 아이들이 지식밥 아닌 사랑밥을 먹도록 참다이 일군 ‘마음밥인 이야기책’을 건넬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 앞에서 고개숙이는(겸손) 어른이어서는 안 돼요. 아이들하고 어깨동무하는 어른이어야지요. 아이들을 참다이 사랑하고 착하게 아낄 줄 아는 어른이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터에서 살아가야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어른들부터 사랑스러운 터에서 살아가야 아름다운 줄 느껴야 합니다.

 

 어른문학도 이와 다르지 않아요. 어른문학이라고 “생각은 어른들이 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욕심을 낼” 일이 아니에요. 어른문학이든 어린이문학이든 문학이 될 때에는 이 문학을 읽을 사람(어린이와 어른 모두)이 어떻게 느끼며 받아들일까를 생각합니다. 도덕이나 교훈이나 훈계나 지식이나 정보가 아닌 ‘느끼고 받아들일 문학’을 생각해요.

 

 이러한 생각 알맹이가 없이는 아무런 문학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이오덕 님이 어린이문학에서 “교훈을 빼면 안 된다”고 거듭 되풀이하며 이야기하는 까닭은 ‘교훈’이라는 낱말을 빌어 ‘생각 알맹이’를 말씀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억지스러운 도덕 가르침이 아닌, 사람이 사랑하며 살아갈 아름다운 길을 아이들이 배우며 느끼고 받아들이도록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을 이오덕 님은 그냥 교훈이라는 낱말로 이야기했을 뿐이에요. 지난날에는 사람들이 ‘교훈’이라는 낱말을 써야만 알아들었으니까요. 그러나, 이오덕 어린이문학 비평을 옳게 읽는 어른이 퍽 드뭅니다. 또한, 어린이문학이란 무엇이고 문학이란 또 무엇인가를 찬찬히 생각하며 살아가는 어른부터 드물어요.

 

 이재복 님은 “참으로 엉터리 동화 한 편이 아이들을 이렇게까지 병들게 하는 것이다” 하는 말만 해서는 안 됩니다. 엉터리 동화가 왜 태어나고, 이 엉터리 동화가 아이들한테 어떻게 스며들 뿐 아니라, 어른들은 왜 자꾸 엉터리 동화를 쓰고 팔아치우는데다가 돈을 많이 벌려 하는가를 밝혀야 합니다. 밝히면서 따져야 하고, 꾸짖어야 하고, 바른 길을 들려주어야 해요. 이러한 엉터리 동화를 교사들이 걸러내지 못하는 흐름을 짚으면서, 아이들이 엉터리 동화 아닌 사랑스러운 동화를 받아들이는 길을 들려줄 수 있어야 해요.


.. 어린이들이 이원수 동화를 체계적으로 읽으면 해방 전후의 역사를 그대로 알 수 있다. 이원수 동화를 읽는다는 것은 곧 우리 역사를 읽는거나 마찬가지이다 ..  (255쪽)


 아이들은 동화를 읽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동화라는 밥을 마음으로 먹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차려 주는 밥을 ‘생각(의심)’하면서 먹지 않습니다. 신나게 받아들입니다. 맛나다고 느끼면서 받아들여요.

 

 아이들 앞에 놓이는 어린이책은 아이들 누구나 ‘생각’이 아닌 ‘느낌’으로 저절로 손을 뻗어서 쥐거나 들거나 펼칩니다. 만화책을 읽든 그림책을 읽든 늘 같습니다. 이러한 어린이 삶과 사랑과 몸짓을 더 찬찬히 돌아보면서 어린이문학을 짚을 수 있다면, 이재복 님은 “우리 동화 바로 읽기”라기보다 “우리 동화 ‘즐겁게’ 읽기”나 “우리 동화 ‘따숩게’ 읽기” 같은 이야기밥을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재복 님은 ‘바로’ 읽기보다는 ‘즐겁게’ 읽기와 ‘따숩게’ 읽기라는 틀을 살피는 어린이문학 비평으로 나아가야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아니, 이 나라에서 어린이문학을 ‘바로’ 읽자고 말할 만한지 궁금해요. 어쩌면, 이재복 님으로서도 아직 헤어나지 못하는 울타리나 굴레가 있고, 이재복 님 스스로 넘어서거나 거듭나야 할 사랑길을 찾는 걸음마가 《우리 동화 바로 읽기》일는지 모르지요.

 

 ‘바로 읽기’란 ‘바로 살기’입니다. ‘바로 살기’가 있은 다음에 ‘바로 읽기’와 ‘바로 쓰기’, 이러면서 ‘바로 하기’와 ‘바로 사랑하기’와 ‘바로 말하기’와 ‘바로 생각하기’와 ‘바로 먹기’들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4344.12.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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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을 깨우는 책읽기

 


 둘째가 우는 소리에 다른 세 식구 모두 잠에서 깬다. 새벽 다섯 시. 오줌 눈 기저귀를 가는데 참 모질게 운다. 기저귀갈이가 이토록 서럽니. 잘 자는데 왜 건드려 깨우냐고 우니. 간지러운 얼굴 긁고 싶은데 두 손을 꼭 붙잡아서 우니.

 

 동생 우는 소리에 네 살 누나는 새벽 다섯 시부터 두 시간째 다시 잠들지 못한다. 네 살 누나는 자꾸 뒤척인다. 그렇다고 이 어둡고 추운 새벽에 딱히 일어나 무언가 놀이를 할 수 없다. 어머니랑 노래 몇 가락 부르다가 어머니는 조용해진다. 네 살 아이는 함께 조용해지지 못한다. 혼자 나즈막하게 흥얼거리다가는 발로 방바닥을 탁탁 치면서 엉기적밍기적한다.

 

 나는 어제 하루 읽은 책을 돌아본다. 곧 어스름이 걷히면서 동이 트면 맞이할 새날, 아침에 빨래를 몇 점 하고 아침으로 무엇을 차리며 아이들하고 어떤 놀이를 즐기며 집 안팎 치우거나 갈무리하는 일은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얼마나 기운을 내어 움직일 수 있을는지 가늠한다. 오늘은 어떤 삶 어떤 사랑 어떤 마음으로 누릴 수 있을까 곱씹는다.

 

 고단한 몸이기에 자리에 드러눕거나 모로 누워 그림책을 펼친다. 빈책을 꺼내어 조용히 볼펜으로 깨작대면 네 살 아이도 어느새 제 빈책을 챙겨서 아버지 곁에 앉아 제 볼펜으로 깨작댄다. 나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마음책을 읽고, 아이는 어버이를 마주하면서 몸책을 읽는다. 잠들지 못하는 아이 곁에 살그머니 누워 이마를 쓸어넘겨 주어야겠다. (4344.12.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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