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하고 책을 읽는 삶

 


 낯을 찡그리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찡그린 얼굴을 듬뿍 보여줍니다. 보드라이 웃음꽃 속삭이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보드라운 웃음꽃을 잔뜩 보여줍니다. 저녁이 깊어지니 이제 더는 몸을 못 버티겠구나 생각하며 자리에 드러눕습니다. 갓난쟁이 둘째를 내 배에 올려놓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함께 놀기에는 몸이 힘드니까, 드러누워서 갓난쟁이 둘째를 비행기 태웁니다. 좋다며 입을 쩍쩍 벌리는 아이는 까르르 웃습니다. 비행기 태우던 아버지는 몸이 찌뿌둥한 줄 잊습니다. 이렇게 좋아라 하며 웃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몸이며 마음이며 어떠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시계로 따지면 퍽 늦었으니 아이들이 자야 할 때라고 여깁니다. 둘째를 포대기로 업습니다. 바깥으로 나옵니다. 퍽 따스한 밤입니다. 업힌 아이한테 말을 겁니다. 이렇게 캄캄한 밤이잖니, 달빛 밝고 별빛 밝은 밤인데, 너희들 어서 자야 하지 않겠니, 중얼중얼 뇌까립니다. 그러나 업힌 아기는 아버지 머리카락을 한손으로 꾹꾹 잡아당깁니다. 보아 하니 더 놀겠다는 투입니다.

 

 첫째 아이 또한 두 눈에 졸음 가득인데 좀처럼 잠자리에 누울 생각을 안 합니다. 방에 아직 불을 켜고, 어머니는 아직 뜨개질을 하며, 동생 또한 잠들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잠들려던 동생은 첫째 아이가 깨웠어요. 잠들어서 새근새근 토닥일 즈음 첫째 아이가 떠드는 바람에 깼어요.

 

 부엌을 치우고, 첫째 아이 입과 낯과 손을 물로 씻깁니다. 첫째 아이가 늦은 저녁에 감을 먹고 싶다며 손에 쥡니다. 아버지는 그만 얼른 내려놔, 이렇게 늦었는데 무얼 먹니, 아침에 일어나면 줄게, 하고 빽 소리를 지릅니다. 아이는 눈앞에 감이 보여 집었을 뿐인데 아버지는 아이를 생각하지 않고 빽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이가 울먹입니다. 울먹이며 어머니한테 갑니다. 울먹이는 아이를 불러 쉬를 누입니다. 이대로 잠자리로 가면 틀림없이 쉬 마려워, 물 마실래, 하면서 다시 불을 켜고 일어나게 하거든요.

 

 아이들과 어머니와 아버지가 잠자리에 듭니다. 불을 끕니다. 어떻게 생각하든 아버지가 잘못했습니다. 아이한테 미안하다고 나즈막히 말합니다. 내 거친 손으로 아이 볼과 머리를 쓰다듬으며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건넵니다. 이 착하고 예쁜 아이한테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을 옳게 못하는 일을 뉘우치며 새 아침에는 씩씩하고 어여쁜 아버지 노릇을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좋은 삶을 누리는 아버지일 때에 좋은 책을 읽는 아버지이고, 좋은 책을 읽는 아버지일 때에 아이한테 굳이 책 하나 내밀지 않는 아버지이며, 아이한테 굳이 책 하나 내밀지 않는 아버지일 때에 우리 집 살림살이 알뜰살뜰 여밀 수 있어요. (4344.12.2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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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2-20 16:52   좋아요 0 | URL
감 먹고 싶다고 하건가요? 그런데 된장님께서 소리를 지르셨다구요?
아하하, 저 그 모습이 잘 떠오르질 않는걸요. 항상 잔잔하게 글을 쓰셔서.

자는 모습 참 이쁘네요, 첫째 아가씨.

파란놀 2011-12-20 17:21   좋아요 0 | URL
자야 할 때에 먹겠다고 하니까요 @.@

에구궁.... ㅠ.ㅜ
 

ㄷ. 사진으로 걷는 길
 ― 사진문화와 사진예술에 앞서

 


 더 많이 더 자주 돌아다니는 사람이 더 남다르거나 더 돋보이는 사진을 낳는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온누리 수많은 나라를 골고루 돌아다녔기에 온누리 구석구석 잘 알거나 읽거나 생각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사진이고 삶은 삶이거든요. 사진은 문화가 아닌 사진입니다. 사진은 예술이 아닌 사진입니다. 문화는 문화이지 사진이 아닙니다. 예술 또한 예술이지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문화나 사진예술이나 사진삶이란 따로 없습니다. 사진으로 즐기는 문화일 때에 사진문화이고, 사진으로 빚는 예술일 때에 사진예술이며, 사진으로 일구는 삶일 때에 사진삶이에요. 그러나, 사진을 찍으면서 이것은 문화요 저것은 예술이요 그것은 삶이라 나누지 못합니다. 문화로 누리면서 사진을 함께할 때에 사진문화이고, 예술을 즐기면서 사진을 꽃피울 때에 사진예술이며, 삶을 사랑하면서 사진을 사랑할 때에 사진삶이에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 앞을 보는 사람보다 ‘못난 사진’이 나오지 않으나, 더 ‘잘난 사진’이 나오지 않아요. 그저 ‘사진이 태어납’니다. 이름난 사진쟁이가 사진을 찍는대서 ‘이름난 사진’이나 ‘거룩한 사진’이나 ‘훌륭한 사진’이 나오지 않아요. 그저 ‘사진을 찍을’ 뿐입니다.

 

 우리 집 네 살 아이가 아버지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도 ‘사진을 찍는’ 일입니다. 예술도 문화도 삶도 아닙니다. 그러나, 아이가 사진놀이를 신나게 즐긴다면, 아이로서는 좋은 사진삶이 돼요. 이 사진삶은 앞으로 사진문화로 달라질 수 있고, 사진예술로 가지를 뻗을 수 있어요.

 

 이렇게 찍어도 좋은 사진입니다. 저렇게 찍어도 즐거운 사진이 돼요. 이렇게 찍으란 법이 없는 사진이듯, 더 많이 더 자주 돌아다닌대서 더 나은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저렇게 써야 아름다운 문학이 되지 않듯이, 조그마한 집에서 아이들하고 복닥이는 나날을 담는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라 해서 어설프거나 어수룩하거나 어줍잖은 글·그림·사진일 수 없어요.

 

 마음을 열어야 사진눈을 엽니다. 생각을 키워야 사진빛을 키웁니다. 사랑을 나누어야 사진사랑을 나눕니다.

 

 사진으로 가는 길은 사진이 문화인가 예술인가를 따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사진으로 가는 길이 즐거울 수 있도록 애쓰는 자리입니다. 사진으로 가는 길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마음을 쏟는 자리입니다.

 

 즐거운 문화이면서 사진입니다. 아름다운 예술이면서 사진입니다. 사랑스러운 삶이면서 사진이에요.

 

 다큐멘터리 사진은 가난한 사람들 머나먼 나라에서 찾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패션사진은 예쁘장한 모델들 예쁘장한 옷을 입히는 스튜디어오에서 만들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예술사진이라면서 아직 아무도 안 찍었다 싶은 모습을 애써 꾸며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비평이라면서 수많은 대학논문처럼 딱딱한 한자말과 영어를 잔뜩 채우면서 도무지 한국말인지 한글인지 알쏭달쏭한 글을 짜깁기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좋은 삶을 아끼면서 좋은 사진을 아끼면 넉넉합니다. 고마운 사람을 사귀면서 나 스스로 고마운 이웃으로 삶을 북돋우면 됩니다. 맑은 바람과 밝은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씩씩하게 자라듯, 맑은 눈길과 밝은 손길로 내 사진기를 돌볼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4344.12.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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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패러독스 - 극단적인 남자들, 재능 있는 여자들, 그리고 진정한 성 차이
수전 핀커 지음, 하정희 옮김 / 숲속여우비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남자가 할 일, 여자가 사랑할 삶
 [책읽기 삶읽기 87] 수전 핀커, 《성의 패러독스》(숲속여우비,2011)

 


 집식구 옷가지를 빨래하면서 언제나 좋다고 여겼습니다. 빨래를 하면서 온갖 꿈나라를 마음껏 누빌 수 있거든요. 그런데 내 마음 갉아먹는 생각이 하나둘 스며들던 어느 때부터인가 빨래를 하면서 꿈나라 누비기하고 동떨어집니다. 빨래를 복복박박 하면서 꿈나라를 누비지 못한다면, 이 일은 무척 고됩니다. 손가락과 손바닥이 따갑고 물을 만지면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춥습니다.

 

 어린 나날 어머니 도마질 소리가 아주 듣기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어느 노래보다 부드러운 소리요 결이며 무늬라고 여겼습니다. 늘 듣고 으레 듣는 도마질 소리이고, 냄비 보글보글 끓는 소리이며, 밥이 익는 냄새였기에, 이 소리와 냄새와 결이 내 몸으로 스며들면서 ‘집에서 일하며 나누는 즐거움’을 헤아릴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을 아름다이 꽃피우는 생각을 어디로 뻗고 어떻게 이으면서 내 삶을 일구어야 할까 하는 데까지는 생각을 가누지 못했어요.

 

 바늘에 실을 꿰어 튿어진 데를 기우자면 한 시간은 너끈히 들여야 합니다. 올 한 해 동안 바늘을 손에 쥔 적이 있었나 곰곰이 되새깁니다. 글쎄, 없지 않았나. 바느질이든 다른 집일이든 노상 품을 들이기 마련입니다. 품을 들이지 않아도 될 집일은 없습니다. 품을 들이니 힘든 집일이 아닙니다. 기꺼이 품을 들일 만하기에 집일이요, 신나게 품을 들이면서 다 같이 아름다울 수 있기에 집살림이에요. 튿어진 데를 기우는 일을 면내 빨래집에 맡기기만 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저희 옷가지를 손수 바느질하며 기우는 일을 보지도 겪지도 느끼지도 알지도 못합니다.

 

 사랑스럽게 살아가고 싶으니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삶이니 마음을 찬찬히 기울입니다. 마음을 찬찬히 기울이니 날마다 조금씩 힘을 들입니다. 꼭 이것을 하고 반드시 저것을 해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저것을 신나게 누리는 일입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면, 나로서는 이것도 저것도 기쁘거나 신나게 맞아들이지 못했구나 싶습니다. 나는 왜 기쁜 실마리를 살피지 못했을까요. 나는 왜 신나는 실타래를 붙잡지 않았을까요.


.. 어렸을 때 학습, 언어, 대인관계 능력과 자제심의 면에서 앞서던 여자아이들이 반드시 최고 지위나 최고의 수입을 보장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자들은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 여자들에게 ‘남성적’ 선택을 하도록 권하는 것은 그녀들에게 단순히 돈을 더 많이 벌라고 부추기는 것보다 더 치명적이다 ..  (14, 362쪽)


 내가 하고픈 대로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내가 꿈꾸고픈 대로 꿈꾸는 사람일까요. 내가 살고픈 대로 삶을 짓는 사람일까요. 내가 아끼고픈 대로 아끼는 사람일까요.

 

 하루 스물네 시간에 걸쳐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많지 않으나 아주 적지 않습니다. 날마다 알맞게 누리면 되고, 날마다 즐거이 받아들이면 됩니다. 오늘 몫을 오늘 하루만큼 짊어지면서 예쁘게 건사하면 됩니다. 살붙이 먹을 밥을 어떻게 차려야 좋을까 헤아리고, 밥을 다 먹고 홀가분하게 치워 갈무리하면 되며, 이불을 털고 방바닥을 훔치면 됩니다. 다 마른 옷가지를 개고, 새로 나온 빨래를 하면 됩니다.

 

 언제나처럼 따스한 기운 흩뿌리며 뜨는 햇살을 느낍니다. 언제나처럼 서늘한 밤바람 흐르며 지는 어스름을 느낍니다. 밤이 되기에 달과 별을 올려다봅니다. 한낮이 되기에 가장 따뜻한 볕을 온몸으로 받습니다.

 

 할 일을 생각합니다. 할 만한 일을 생각합니다. 가만히 방바닥에 드러누워 발베개를 한 채 생각해도 좋습니다. 아침에 깨어난 아이를 배에 눕히고 함께 생각에 젖어도 좋습니다. 아이와 함께 이불을 걷어 마당에서 함께 터는 동안 생각에 잠겨도 좋습니다. 아이를 곁에 두고 빨래를 하며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생각을 기울여도 좋습니다.


.. 남성은 공격적인 수단을 이용해서 경쟁자를 제치려 하고, 계급서열에서 자신의 위치를 주장하며, 그 위치를 지키려는 성향이 여자에 비해 더 강하다. 분노, 질투, 공격적인 언어 사용에는 남녀 차이가 없는 반면에, 도둑질과 폭력과 전쟁을 통해 주도권을 잡는 일은 대대로 남자들의 영역이었다 … 어린 남자아이들은 일찌감치 태생적으로 여자아이들보다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렇듯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보다 교실 안에서 더 많이 돌아다니고, 부주의하며, 충동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크게 외치고, 다른 아이들을 끊임없이 앞서려고 다투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이다 … 경쟁과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표준 독신남성의 접근방식에 맞춰서 설계된 직장과 근무일정은 타고난 지성과 높은 교육수준과 훌륭한 업적을 이루어낸 많은 여자들의 의욕을 꺾는다 ..  (52, 53, 356쪽)


 살아온 날을 되짚으면서 살아갈 날을 톺아봅니다. 오늘까지 보낸 삶을 헤아리면서 앞으로 이룰 삶을 생각합니다. 오늘까지 예쁘게 살았으면 앞으로는 얼마나 어떻게 예쁜 삶이 되도록 꾸릴까를 생각합니다. 오늘까지 그닥 예쁘지 않게 살았으면 이제부터 예쁜 삶이 되도록 어떻게 건사해야 즐거울까를 생각합니다.

 

 내가 내 삶을 좋게 누릴 때에 좋은 손길로 좋은 밥을 짓습니다. 내가 내 일을 좋게 붙잡을 때에 좋은 눈길로 좋은 꿈을 짓습니다. 내가 내 말을 좋게 다스릴 때에 좋은 마음길로 좋은 이야기를 짓습니다.

 

 수전 핀커 님이 지은 책 《성의 패러독스》(숲속여우비,2011)를 읽습니다. 남성은 어떤 사람이고 여성은 어떤 사람인가를 찬찬히 밝히는 이야기책을 읽습니다. 남성이 사랑하는 삶과 여성이 사랑하는 삶은 서로 어떠한가를 곰곰이 돌아보는 이야기책을 읽습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똑같이 사람입니다. 다만, 사람이라는 테두리에서는 같으나, 여성과 남성이라는 테두리에서는 달라요. 여성과 남성 또한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라는 삶자리에서 달라요. 한식구라 하지만, 태어난 자리와 마주하는 이웃에 따라 다른 삶길을 걸어요.


.. 그녀들은 엄청난 업무시간에 진저리를 쳤고, 구성원 변호사가 되거나 또는 샌드러처럼 일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기 위해 기업의 법률고문으로 옮긴 다음에도 여전히 무자비할 정도로 과중한 업무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결국은 일을 그만두었다 … 높은 수준의 일부 직업들이 요구하는 일에 대한 집중은 고용인들에게 마치 진공 상태에서 일하는 것처럼 행동하기를 요구한다. 최정상의 단계에서는 일이 다른 모든 관심사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 만일 직업의 성공이 제1 목표라면 이것은 아무런 불협화음도 만들어 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목표가 여러 개라면 협상이 필요하다. 만일 여자들이 덜 극단적인 직업이나 사회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한다면, 그녀들은 자신이 가진 우선권을 적용하면서 삶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녀들의 소득을 줄일지 모르지만 만족감은 높일 수 있다 ..  (219, 250쪽)


 학교에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앞으로 찾을 일거리를 다르게 가르칩니다. 학교에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학교에서 다르게 배우고 다르게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학교에서 남학생한테 밥하기와 집일과 아이돌보기를 알뜰살뜰 가르치지 않습니다. 대학교에서 남·녀학생 모두한테 집일과 집살림을 요모조모 일러 주지 않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남·녀 아이들 누구한테나 바느질과 뜨개질과 호미질과 낫질을 제대로 보여주거나 느끼도록 거들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학교에 앞서 집부터 사내랑 가시내를 따로 가릅니다. 사내와 가시내한테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기 앞서 계급과 울타리를 높이 쌓고 말아요.

 

 아무래도, 새로 아이들을 낳은 어른들부터 어릴 적 사랑스럽고 따사로우며 너그러운 삶을 누리지 못한 탓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부터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삶으로 이끄는 어른이 없이 ‘남자이니까’와 ‘여자이니까’라는 굴레에 젖어들어야 했을 수 있어요. 사랑해야 할 삶과 사랑할 만한 사람을 어여삐 만나지 못한 탓일 수 있어요.


.. 그때 나는 도시 근교에서 중산층으로 사는 데 필요한 생활비를 벌려면 어떤 노동을 해야 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수 년을 길에서 보낸 덕분에 세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아내를 대학원에 보냈으며, 자신도 성공적으로 법조계로 전업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직업은 외롭고 육체적으로 지치는 일이었으며, 그 당시의 많은 직장 풍경이 그랬듯이 99퍼센트가 남자들이었다 … 하지만 나는 여자들이 우리 아버지가 수 년 동안 몸담았던 그런 종류의 일은 절대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버지의 수입은 다섯 식구를 부양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옷가방을 나르고 혼자 떠돌아다니면서 가족과 친구를 거의 만나지 못하는 일을 여자들이 하려고 할까? … 더 적은 시간을 일하기로 선택한다거나 더 만족스럽지만 임금은 더 적은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비록 그 때문에 임금 격차가 벌어진다고 해도, 여자들이 성적 편견의 희생자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달리 한번 생각해 보자. 여자들의 직업과 근무시간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사회는 평등한 기회의 귀감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  (8, 11∼12, 354쪽)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사랑스러운 하루를 날마다 새롭게 맞아들이고 싶습니다.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이 따스한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로 저희 삶을 일굴 수 있기를 꿈꿉니다. 이리하여 나는 아이들과 나란히 좋은 꿈과 생각으로 나날이 기쁘게 맞이하고 싶습니다.

 

 내가 보는 좋은 햇살은 아이들이 보는 좋은 햇살입니다. 내가 마시는 싱그러운 물은 아이들이 마시는 싱그러운 물입니다. 내가 쓰다듬는 보드라운 억새풀은 아이들이 쓰다듬는 보드라운 억새풀입니다. 내가 지내는 따사로운 보금자리는 아이들이 지낼 따사로운 보금자리예요.

 

 어버이로서 집숲을 가꾸면서 집마당을 살뜰히 돌보면, 어버이부터 즐겁고, 이 즐거운 터전에서 아이들이 즐거이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어버이로서 맑고 밝게 노래를 부르면, 어버이부터 신나며, 이 맑고 밝은 노래를 듣는 아이들은 예쁘게 노래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성의 패러독스》는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는 힘이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하는 빛줄기를 곰곰이 파헤치는 이야기책입니다. (4344.12.19.달.ㅎㄲㅅㄱ)


― 성의 패러독스 (수전 핀커 씀,하정희 옮김,숲속여우비 펴냄,2011.4.21./1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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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잠들기

 


 이틀째, 산들보라가 아버지 무릎에서 잠든다. 일곱 달 함께 살아오며 드디어 이렇게 잠이 든다. 아이는 졸음이 쏟아져 이래저래 눈가가 벌개지거나 악을 쓸 무렵, 누구라도 업어서 포대기로 싸고 천천히 거닐거나 노래를 부르면 사르르 잠든다. 어머니가 업든 아버지가 업든 할아버지가 업든 할머니가 업든, 누구라도 업어 주면 널쩍한 등판에서 포근히 잠든다. 이렇게 업힌 채 새근새근 잠들던 아이가 스스로 졸음에 겨워 업히지 않은 채 무릎에서 잠든다.

 

 처음 무릎에서 잠들던 때에는 아버지 혼자 아이를 보았기에 한참 가만히 앉히고 토닥이다가 살며시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눕힌 다음 다른 이불을 덮었다. 두 번째로 맞이한 ‘무릎 잠들기’는 뜨개질하는 옆지기를 불러 사진 하나 남겨 달라 이야기한다. 무릎에서 잠든 어린 동생을 어머니가 사진으로 담으려 하니, 옆에서 신나게 춤추며 놀던 첫째 아이가 아버지 다른 무릎에 척 하니 올라선다. 녀석아, 너는 십오 킬로그램이고 네 동생은 십일 킬로그램이야. 게다가 너는 아버지 무릎에서 방방 뛰잖아.

 

 무릎에서 잠드는 둘째 아이를 받치는 오른손이 좀 저린다. 엊그제처럼 살며시 바닥에 누인다. 한동안 잘 잔다. 둘째도 앞으로는 무릎 잠들기를 자주 보여줄 테고, 무릎 잠들기를 지나면 저희 누나처럼 졸음이 가득 쌓여도 잠을 미루며 더 놀겠다고 투정을 부리는 때를 맞이할까. 대견스레 자라는 아이를 바라보며 없는 기운을 차린다. (4344.12.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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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루빛 글쓰기

 


 누런쌀을 가루로 빻고, 누런쌀을 볶아 가루로 빻는다. 이 가루를 국그릇에 알맞게 담아 작은 상에 올린다. 옆지기가 이 가루를 먹고, 옆지기가 이 가루를 물에 알맞게 섞어 아기한테 먹인다. 첫째 아이는 제 어머니 곁에 앉아 이 가루를 먹는다.

 

 빛깔만 고운 가루일까. 따스한 손길 듬뿍 담긴 가루일까. 햇살과 바람과 맑은 물과 흙내음 고루 밴 가루일까.

 

 곡식가루는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다. 곡식가루가 새로 불어넣은 숨은 사람을 살린다. 새로운 숨으로 살아나는 사람은 씩씩하게 두 발을 디디며 하루를 연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잠들던 꿈누리에서 깨어나며 빛나는 새날을 맞이하겠지. 나이 마흔이 된 어른이든 나이 여든이 된 어른이든, 이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언제나 빛나는 새날을 나란히 맞아들이겠지.

 

 오늘은 읍내 장날. 네 식구 함께 마실을 다녀올 수 있을까. 마실을 다닌다면 어떤 먹을거리를 장만하면 좋을까. 톳이나 물미역을 장만할까. 다른 싱그러운 먹을거리로 무엇을 헤아리면 좋을까.

 

 달게 잠을 자고 일어날 새 아침에, 어제 하루 쌓인 찌뿌둥한 기운이 말끔히 씻기면 좋겠다고 꿈을 꾸었다. 내 몸과 마음에 고운 가루빛처럼 고운 생각빛이 천천히 움을 트며 자라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꿈을 꾸었다. 나 스스로 따스한 생각빛을 키우면서 따스한 나날을 누릴 때라야, 내 손으로 짓는 밥이 따스할 수 있다. 고운 가루빛마냥 고운 생각빛을 북돋울 때에 비로소, 내 손을 거쳐 태어나는 글이 사랑스러울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하고, 따사로이 생각하며, 넉넉하게 생각하며 살아가자. 살아가는 결 무늬 내음 빛깔이 찬찬히 어우러지면서 꽃이 된다. 어떤 꽃이 되고픈지는 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4344.12.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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