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빨래순이

 


 아버지가 아침빨래나 낮빨래를 마치고 마당에 널려 하면 언제나처럼 졸졸 따라나오며 빨래널기를 거드는 사름벼리. 아버지는 널 바라보며 이 예쁜 빨래순이가 온누리 어디에 또 있담, 하고 생각한다. 아마, 아버지가 모르는 어느 나라 어느 시골마을에는 너하고 똑같이 제 어버이한테 사랑받고 제 어버이를 사랑하는 빨래순이가 있겠지. 빨래돌이도 있으리라. 너는 아직 스스로 빨래할 줄은 모르지만, 곧 네 온힘을 들이고 온마음을 쏟아 빨래를 하고는 싱그러이 햇살을 올려다보면서 이 고운 빨래들 곱게 마르도록 해 주셔요, 하고 비손하는 아리따운 빨래노래를 부르리라 믿는다. (4344.12.2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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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는 무엇을 들었을까? 그림책 보물창고 13
모디캐이 저스타인 지음, 천미나 옮김 / 보물창고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스며드는 소리와 녹아드는 가락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13] 모디캐이 저스타인, 《찰리는 무엇을 들었을까?》(보물창고,2006)

 


 시골집에서 살아갑니다. 내가 언제부터 시골집에서 살았나 싶으나, 오늘 이 시골집에서 살아가면서 어느 때까지 도시에서 살았는지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햇수로 치면 고작 이태 앞서인데, 이태 앞서는 꽤 커다란 도시 한켠 골목동네에서 세 식구 복닥거리며 살았다고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너무 먼 옛일 같고, 참으로 아스라한 옛날 같아요.

 

 혼자 잘 달리고 잘 뛰며 잘 노는 네 살 아이를 바라보며 이 아이가 갓난쟁이였던 지난날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아니, 애써 떠올릴 겨를이 없는 하루입니다. 이 아이가 네 살이면 네 살인 오늘을 바라보며 놀고, 이 아이가 다섯 살을 맞이하면 다섯 살인 앞날 그대로 마주하면서 놀겠지요. 이 아이가 열다섯 살을 맞이한다면 열다섯 그대로 바라보리라 생각합니다. 이 아이가 스물다섯 살을 맞이할 때에도 스물다섯인 아이를 마주하겠지요.

 

 아이가 어버이를 바라볼 때에도 이와 같겠지요. 아이는 서른일곱 살 아버지와 서른두 살 어머니를 바라봅니다. 이윽고 마흔두 살 아버지와 서른일곱 살 어머니를 바라볼 테고, 머잖아 쉰두 살 아버지와 마흔일곱 살 어머니를 마주하겠지요.


.. 찰리 아이브스는 귀를 활짝 연 채 태어났습니다. 태어나서 가장 처음으로 들은 소리는 아마 코네티컷 주 댄버리 마을에 찰스의 탄생을 알리는 아버지의 트럼펫 소리였을 것입니다 ..  (4쪽)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오늘 하루를 누리는 삶입니다. 어제는 돌아보고 모레는 그리지만, 오늘은 살아가는 나날입니다. 돌아보기에 애틋하고 내다보기에 그리우며, 살아가기에 즐겁습니다. 오늘 먹는 밥이 맛나고, 오늘 나누는 이야기가 기쁘며, 오늘 만나는 멧새가 반갑습니다.

 

 아침에 빨래해서 마당 한켠 후박나무 빨래줄에 기저귀며 옷가지며 잔뜩 널고 나면, 어느새 마을 멧새 한두 마리쯤 후박나무 가지나 돌울타리 너머 감나무 가지에 앉아 이쪽을 바라봅니다. 바람이 자는 날에는 하늘 올려다보면서 어쩜 구름 하나 없이 파란가 하고 생각합니다. 바람이 드센 날에는 하늘 올려다보면서 어쩜 구름이 이토록 온갖 모양으로 너울거리는가 생각합니다.

 

 아침햇살 드는 대청마루에서 아이가 춤을 춥니다. 네 살 아이는 춤을 추고 한 살 동생은 누나가 추는 춤을 마냥 바라봅니다. 둘째가 홀로 우뚝 서서 두 다리로 달음박질 뜀박질 할 수 있을 때에는 저희 누나하고 아침햇살 누리면서 춤사위를 펼칠는지 모릅니다. 어제 하루 아이가 춤추는 양을 신나게 사진으로 담았고, 그제 하루 아이가 춤추는 몸짓을 재미나게 사진으로 찍었는데, 오늘은 또 오늘대로 오늘 춤사위를 새롭게 사진으로 옮깁니다.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즐거우니까요. 날마다 재미나고, 날마다 좋으니까요.


.. 헛간에서는 건초 냄새와 말 냄새가 났습니다. 찰리는 아버지가 바이올린 켜는 소리와 함께 청개구리 울음소리도 들었습니다. 교회 종소리, 소방차가 지나가는 소리, 아이스크림 장수의 방울 소리, 그리고 기차의 기적 소리도 들었습니다 ..  (9쪽)


 나는 두 아이하고 살아가는 아버지입니다. 나는 오늘 하루 옆지기랑 두 아이와 살림을 꾸리는 집식구입니다. 아마 1996년에는 다른 자리 다른 사람으로 살았을 테고, 2002년에는 또다른 자리 또다른 사람으로 살았을 테지요. 1985년에는 어느 자리 어느 사람으로 살았을까요. 1977년에는 또 어떠한 자리 어떠한 사람으로 내 둘레 사람들하고 삶을 일구었을까요. 내가 되새기지 못하는 갓난쟁이였을 무렵, 나를 날마다 들여다보고 바라보며 마주하던 어버이와 이웃과 살붙이는 날마다 어떤 이야기 어떤 생각 어떤 꿈이었을까요.

 

 우리 집 두 아이는 무럭무럭 커서 저희끼리 살겠다고 떠날 수 있습니다. 나보다 옆지기가 먼저 흙으로 갈 수 있고, 내가 옆지기보다 먼저 흙 품에 안길 수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이와 같은 날에는 나는 어느 자리 어떤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요.

 

 지난일은 좀처럼 생각나지 않으나, 가볍게 살랑이는 바람을 맞는 들판에 서거나 걸을 때에는 하나둘 그림처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앞날은 좀처럼 그릴 수 없지만, 맑은 물을 마시고 맑은 밥을 먹는 좋은 보금자리에서 웃을 때에는 하나하나 꿈처럼 지을 수 있습니다.

 

 내 어제가 모여 오늘을 이루고, 내 오늘을 살면서 내 앞날을 빚지만, 내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내 앞날은 오늘에서 거듭납니다. 좋은 소리와 좋은 이야기와 좋은 노래로 보낸 하루는 내 가슴속 한켠에서 좋은 씨앗으로 곱게 잠듭니다. 좋은 햇살과 좋은 밥과 좋은 꿈으로 보낼 오늘은 내 마음속 한자리에서 좋은 싹을 틔워 힘껏 줄기를 뻗습니다. 스스로 살면서 스스로 짓는 나날입니다.


.. 어느 무더운 여름, 찰리는 자신이 던진 야구공이 야구 방망이에 ‘딱’ 하고 맞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허겁지겁 야구공을 쫓아 달려갈 때,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  (20쪽)


 모디캐이 저스타인 님이 빚은 그림책 《찰리는 무엇을 들었을까?》(보물창고,2006)를 읽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찰리는 무엇을 들었을까?”를 생각해 보는데, 찰리가 태어날 적부터 숨을 거두는 날까지 들은 소리는 ‘온몸과 온마음을 어지러이 채우지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림책 그림은 너무 어지럽거든요. 찰리라고 하는 사람 가슴속에서 곱게 피어나며 예쁘게 어우러지던 가락이란 이렇게 어지러운 그림 아니면 빚을 수 없을까 궁금합니다. 찰리라고 하는 사람 마음밭에서 즐거이 뿌리내리며 기운차게 뻗은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는 이토록 어수선한 그림 아니면 그릴 수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떠한 소리가 어떠한 삶으로 스며들어 어떠한 가락으로 어우러졌을까요. 어떠한 꿈이 어떠한 결로 녹아들며 어떠한 노래로 빛났을까요.

 

 찰리는 틀림없이 아버지 트럼펫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트럼펫 소리는 어머니 핏방울 흐르는 소리보다 펄떡이거나 따스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트럼펫 소리는 바로 어머니 핏방울 흐르는 소리를 듣는 마음귀로 울릴 수 있어요.

 

 아버지가 숨을 거둔 이야기를 건네는 전화기 가느다란 줄에서 울리는 소리는 거룩한 고요함이라 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 죽음 이야기는 전화기 가느다란 줄에서 슬픈 목소리로 울리기 앞서, 아버지가 고요히 눈을 감는 그때 그곳에서 찰리한테 살그마니 울렸습니다. 찰리는 전화를 받기 앞서 소리를 들었고, 찰리 둘레에는 전화기 가느다란 줄에 이런저런 목소리가 울리기 앞서 온 방을 채우는 소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 찰리는 출퇴근하는 기차 안에서도 곡을 썼습니다. 기차 바퀴에서는 아버지의 바이올린 연주 소리가 들렸습니다. 찰리는 두 관악대가 동시에 서로 다른 곡을 연주했던 그날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날을 가득 채운 소리들과 흥겨움을 작품 속에 표현했습니다 ..  (31쪽)


 그림책 하나가 모든 삶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림책 하나로 모든 꿈을 빚지 않습니다. 그림책 하나에 모든 사랑을 담지 않아요.

 

 다만, 그림책 하나로 웃음과 눈물이 얼크러진 이야기꽃 피웁니다.

 

 이야기꽃 노래꽃 꿈꽃 사랑꽃 눈물꽃 똥꽃 밥꽃 바람꽃 하늘꽃 구름꽃 냇물꽃이란 어떤 내음과 소리와 무늬와 빛깔과 결로 우리한테 스며들까 헤아립니다. 아이가 대청마루 쿵쿵 찧으며 춤사위 펼치는 아침나절, 아버지와 어머니와 어린 동생은 어떤 내음과 소리와 무늬와 빛깔과 결을 차근차근 받아들이려나 곱씹습니다.

 

 어느새 둘째가 똥을 누었군요. 어머니는 똥내음을 맡고, 아버지는 똥을 치우며 아기를 씻깁니다. 기저귀를 갈아 채우고, 낑낑 우는 아기를 어머니한테 맡깁니다. 이제 아기는 어머니젖을 물면서 고요히 눈을 감겠지요. (4344.12.20.불.ㅎㄲㅅㄱ)


― 찰리는 무엇을 들었을까? (모디캐이 저스타인 글·그림,천미나 옮김,보물창고 펴냄,2006.3.25./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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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2-20 16:49   좋아요 0 | URL
아기의 똥은 치울만하죠, 상상해도 즐겁구요. ^^
둘째가 똥을 누었다고 쓰신 부분에서 절로 웃음을 지었습니다. 이쁘네요.

파란놀 2011-12-20 17:21   좋아요 0 | URL
날마다 수없이 먹고 누고 하면서
무럭무럭 크는데
이 아이들은 나중에 떠올리지 못하겠지요.

저도 아기일 적에
똥을 얼마나 누었는지 못 떠올리고요 @.@

2011-12-21 0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1-12-21 03:46   좋아요 0 | URL
저는 2007년부터 `사진책 도서관`을 개인도서관으로 열었어요. 헌책방 마실은 즐기지만, 헌책방을 차린 적은 없어요.

사진책 도서관으로 하지만, 그림책과 만화책과 어린이책과 환경책을 비롯해서 온갖 책을 골고루 갖춘답니다.

kimji 님이 쓰신 책이 있군요! 보내 주시면 고맙게 받지요~~ ^^
깊고 늦은 밤나절 고마운 이야기 즐겁게 읽으며 댓글을 남겨요.
언제나 좋은 하루와 고마운 나날 누리시리라 믿어요~~~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신호리 973번지 (동백마을)
- 우 548-892, 011-341-7125 (최종규)
 

 

ㄱ. 흥이 다 깨져

 

.. 내 말에 남아 있던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흥이 이미 다 깨져 버렸던 것이다 ..  《벤 마이켈슨/홍한별 옮김-나무소녀》(양철북,2006) 39쪽

 

 “남아 있던”은 “남았던”이나 “남은”으로 손봅니다. “깨져 버렸던 것이다”는 “깨져 버려 있었다”나 “깨져 버렸으니까”로 다듬습니다.

 

 흥(興) : 재미나 즐거움을 일어나게 하는 감정
   - 흥이 나다 / 흥을 깨뜨리다 / 춤과 노래로 흥을 돋우었다

 

 흥이 깨져 버렸던
→ 재미가 깨져 버렸던
→ 즐거움이 깨져 버렸던
→ 기쁨이 깨져 버렸던
→ 신바람이 깨져 버렸던
 …

 

 저는 ‘흥’이라는 말을 들으면, 콧방귀를 뀌는 “흥!”이 먼저 떠오릅니다. 어릴 때부터 이랬습니다. 그저 “흥! 흥! 흥!” 하듯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흥을 돋운다”고 말하면 “흥흥거리며 무얼 돋운다구?” 하면서 썰렁한 말장난을 하곤 했습니다.

 

 흥이 나다 → 재미가 나다 / 신이 나다
 흥을 깨뜨리다 → 재미를 깨뜨리다 / 신바람을 깨뜨리다
 흥을 돋우었다 → 재미를 돋우었다 / 즐거움을 돋우었다

 

 외마디 한자말 ‘興’을 헤아려 봅니다. 국어사전을 뒤적이고 나서야 이 낱말이 한자말이었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아마 ‘흥’을 한자말로 깨닫는 분은 썩 많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한자말인 줄 안다 하여도 그저 이 낱말을 쓸 뿐, 달리 어찌어찌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흥은 그저 ‘흥’이라고 여길 테니까요.

 

 조금이나마 생각이 깊은 분들은 한자말 ‘興’이 “재미 흥”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토박이말로는 ‘재미’요, 한자말로는 ‘興’이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리라 봅니다. 사람들이 한자말 ‘興’을 널리 쓴다면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일 테지만, 나 스스로 굳이 ‘興’을 쓰지 않아도 우리 말 ‘재미’가 있으니, 우리 말로 넉넉하게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고 생각하리라 봅니다.

 

 여기에 ‘신’과 ‘신바람’이라는 다른 낱말이 있습니다. 자리에 따라 ‘기쁨’이나 ‘즐거움’을 넣을 수 있습니다.

 

 보기글에서는 ‘잔치판’이라고 적어도 어울립니다. “즐거운 잔치판”이나 “신나는 잔치”나 “기쁜 놀이마당”이라고 적어 볼 수 있습니다.

 

 잔치판은 벌써 다 깨져 버렸던
 즐거운 잔치는 벌써 다 깨져 버렸던
 신나는 잔치는 벌써 다 깨져 버렸던
 기쁜 놀이마당은 벌써 다 깨져 버렸던
 …

 

 한자말을 쓴다 해서 생각과 넋을 좁은 틀에 가두어 버린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한자말이 굴레가 되어 생각과 넋이 갇힌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누구나 익숙해지거나 길들고 맙니다. 한 번 두 번 쓰는 말이 더 익숙하고, 저도 모르게 어떤 말씨와 말투에 길들어요. 살갑고 싱그러운 말투에도 익숙하게 젖어들지만, 얄궂고 뒤틀린 말투에도 익숙하게 물듭니다.

 

 스스로 마음밭을 튼튼하게 일구려 하지 않는다면, 거친 물결에 아무렇게나 휩쓸리지 않도록 담금질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들 생각이며 넋이며 엉망이 되기 일쑤입니다. 얕고 추레한 말에 나도 모르게 젖어들고 맙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합니다만, 곰곰이 말삶을 돌아볼라치면, ‘興’이 쓰이는 만큼 ‘재미’와 ‘신’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재미나다’는 한 낱말로 국어사전에 실리지만, ‘신나다’는 아직까지 국어사전에 못 실립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스스로 즐겨쓰지 않으니까요. 나 스스로 우리 말을 북돋우거나 가꾸지 못하니까요.

 

 외마디 한자말 ‘興’을 쓰겠다면 쓸 노릇입니다. 다만, 우리가 ‘興’이라는 낱말을 쓰는 동안 ‘재미’와 ‘재미나다’라는 말마디는 자취를 감춥니다. 우리가 ‘興’이라는 낱말로 우리 모습을 가리키는 만큼 ‘신’과 ‘신나다’라는 글줄은 가뭇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4340.2.26.달./4342.5.4.달.4344.12.20.불.ㅎㄲㅅㄱ)

 

 

 

ㄴ. 흥이 절로 났다

 

.. 이어도라는 상상 속의 유토피아라는 희망이 있는 한, 헐벗고 굶주려도 섬의 토박이들은 흥이 절로 났다 … 공부 열심히 해 부모보다 사람답게 살아가길 기원하노라면 힘든 노동에도 그저 신바람이 난다. 이어도라는 상상 속의 섬이 존재하는 한 신바람이 절로 난다 ..  《김영갑-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하날오름,1996) 196쪽

 

 “상상(想像) 속의 유토피아(Utopia)라는 희망(希望)이 있는 한(限)”은 “꿈나라라는 희망이 있는 동안”이나 “꿈 같은 나라를 생각하는 동안”이나 “꿈나라를 그리워하는 동안”으로 다듬어 봅니다. “섬의 토박이”는 “섬 토박이”나 “섬사람”으로 손보고, ‘열심(熱心)히’는 ‘힘껏’이나 ‘바지런히’로 손봅니다. ‘기원(祈願)하노라면’은 ‘바라노라면’으로 손질하고, ‘노동(勞動)’은 ‘일’로 손질하며, “상상 속의 섬이 존재(存在)하는 한”은 “꿈나라가 있는 동안”으로 손질합니다.

 

 흥이 절로 났다 (x)
 그저 신바람이 난다 (o)
 신바람이 절로 난다 (o)

 

 보기글을 살피면 처음에는 “흥이 절로 났다”라고 적고, 다음에는 “신바람이 난다”고 거듭 적습니다. ‘흥’이나 ‘신바람’이나 같은 낱말이니 이렇게도 적고 저렇게도 적을 수 있습니다. 적는 사람 마음이요, 적는 사람 나름입니다.

 

 그러나, 앞이나 뒤나 한결같이 ‘신바람’으로 적었다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꼭 ‘興’이라는 낱말을 한 번쯤이라도 적어야 했을까 궁금합니다.

 

 신이 절로 났다
 그저 재미가 난다
 신바람이 절로 난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면, 세 자리 모두 다른 낱말을 넣어 줍니다.

 

 신이 절로 난다
 그저 즐겁기만 하다
 덩실덩실 춤이 절로 나온다

 

 또는, 첫마디는 “신이 절로 난다”로 적은 다음, 뒷자리에서는 아예 다른 말로 풀어내면서 느낌과 뜻을 살려냅니다. “마냥 기쁘기만 하다”라 적어도 괜찮고,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라 적어도 괜찮습니다. “그예 들뜨기만 하다”라 적어도 되며, “춤과 노래가 절로 나온다”라 적어도 됩니다.

 

 우리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니, 우리 땅과 삶과 사람을 한 번 더 살피면서 들려준다면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우리 모습을 가리키는 글이니, 우리 터전과 이웃과 겨레를 곰곰이 헤아리면서 적어 준다면 훨씬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4342.5.4.달./4344.12.20.불.ㅎㄲㅅㄱ)

 

 

ㄷ. 흥興 3 : 흥겨움

 

.. 찰리는 두 관악대가 동시에 서로 다른 곡을 연주했던 그날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날을 가득 채운 소리들과 흥겨움을 작품 속에 표현했습니다 ..  《모디캐이 저스타인/천미나 옮김-찰리는 무엇을 들었을까?》(보물창고,2006) 31쪽

 

 ‘동시(同時)에’는 ‘함께’나 ‘같은 자리에서’로 다듬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동시에’를 덜어도 이 다음에 나오는 ‘서로’라는 낱말이 있어 글흐름이 보드라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연주(演奏)했던’은 그대로 둘 수 있고, ‘들려주던’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작품 속에 표현(表現)했습니다”는 “작품으로 담았습니다”나 “작품으로 그렸습니다”나 “작품으로 빚었습니다”나 “작품으로 보여주었습니다”로 손질합니다.

 

 흥겨움
→ 즐거움
→ 신남
→ 신바람
→ 재미
 …

 

 즐거운 일을 떠올리고 기쁜 꿈을 생각합니다. 잃은 기운을 북돋우고 스러지는 힘을 끌어올립니다. 신바람이 나도록 손길을 내밀고, 신이 날 만한 일거리를 찾습니다. 재미난 놀이를 함께하고 서로서로 웃을 만한 놀이감을 헤아립니다.

 

 즐거이 말하면서 즐거이 꿈꿉니다. 신나게 노래하면서 신나게 춤을 춥니다. 재미나게 이야기하면서 재미나게 삶을 일굽니다.

 

 말과 넋과 삶은 늘 한동아리가 됩니다. 말과 넋과 삶은 저마다 아름다이 가꾸고픈 꿈을 바라보면서 씩씩하게 걷는 이 길에서 환하게 빛납니다. (4344.12.2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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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12-21 15:44   좋아요 0 | URL
국어선생님의 유익한 말씀을 잘 듣고 갑니다.

파란놀 2011-12-21 20:52   좋아요 0 | URL
아이고... 뭘요 (__)
 


 알리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싶어

 


 내가 오늘 쓰는 글이 가장 빛나는 글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나는 하루하루 더 즐거이 누리면서 새로 맞이하는 모레나 글피에 더 빛나는 꿈과 사랑을 실어 글 하나 여밀 수 있으니까. 그러나 어제 쓴 글이 오늘보다 못하거나 아쉽다고 느끼지 않는다. 나로서는 모든 넋과 얼을 기울여 쓴 글이니까, 모자라거나 어수룩하다 느낄 글이란 없다. 하루하루 조금씩 가다듬는다. 날마다 차근차근 북돋운다. 언제나 곰곰이 되새긴다. 늘 기쁘게 받아들인다.

 

 노래하는 알리 님이 어제 부른 노래가 가장 빛나는 노래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앞으로 부를 노래가 한결 빛날 노래라고는 느끼지 않는다. 그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든, 연습실에서 목청을 돋우든, 또는 집에서만 노래를 흥얼거리든, 깊은 멧골이나 사람 발길 없는 바닷가에서 노래를 외치든, 노래 하나로 일구는 삶이라 한다면 어디에서나 언제나 노래사랑과 노래꿈을 펼치리라 믿는다. 더 가다듬어야 할 노래가 아닌 더 사랑하고 아낄 노래를 부르리라 생각한다.

 

 아름답다 여길 만한 좋은 책을 벗삼아 살아가는 사람은 시나브로 깨닫는다. 이 좋은 책을 곁에 골고루 둘 수 있어 아름다운 삶이지 않다. 책을 곁에 두면서 내 목숨을 잇거나 내 생각을 북돋운다고 여길 수 없다. 책이라는 징검돌을 밟고 삶을 사랑하는 길을 헤아리거나 느꼈을 뿐이다.

 

 아름답다 여길 만한 좋은 노래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은 시나브로 깨닫겠지. 이 좋은 노래로 마음을 달래거나 보듬기에 아름다운 삶이지 않다. 노래를 늘 부르면서 내 목숨을 잇거나 내 생각을 북돋운다고 여길 수 없다. 노래라는 섬돌을 밟고 삶을 사랑하는 길을 헤아리거나 느낄 뿐이다.

 

 책이란 없어도 된다. 노래란 없어도 된다. 사랑이 꽃피우는 삶이 있으면 된다. 사랑을 씨앗으로 심는 꿈이 있으면 된다.

 

 나는 글을 쓰면서 살아가겠지. 책이 없어지고 종이가 사라져도 글을 쓰며 살아가겠지. 글은 종이에만 쓰지 않으며, 글은 책으로만 묶이지 않으니까. 살붙이를 쓰다듬는 따스한 손길로 쓰는 글이고, 집식구 옷가지를 정갈히 빨래하고 바느질하는 손자락으로 엮는 책이며, 맑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활짝 펼치는 품으로 일구는 이야기이다.

 

 노래꾼 알리 님은 오래오래 노래하며 살아가리라 생각한다. 노래꾼 알리 님이 온몸과 온마음으로 아로새길 곱고 향긋하며 보드라운 노래결로 온누리를 싱그러이 어루만지리라 생각한다. 무대가 없고 텔레비전이 없으며 음반이 없더라도, 멧새들 노니는 바람결을 타며 이 땅과 이 햇살과 이 바다에 넘실거릴 사랑스러운 노래를 언제 어디에서나 예쁘게 부르리라 생각한다. (4344.12.2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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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려받는 책읽기 (김정일)

 


 재벌회사는 으레 아들이나 딸한테 회사와 돈과 주식과 이것저것 골고루 빈틈없이 물려줍니다. 구멍가게는 으레 딸이나 아들한테 가게를 물려줍니다. 시골 흙일꾼은 으레 아들이나 딸한테 논이랑 밭이랑 집이랑 몽땅 물려줍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여느 어버이는 제금 나려는 아이들한테 으레 전세 얻을 돈을 물려주거나 아파트를 한 채 사 주거나 냉장고나 빨래기계나 자가용이나 무어든 한두 가지나 몇 가지를 새로 장만해 줍니다.

 

 모든 푸나무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앗을 남깁니다. 사랑은 사랑을 낳고, 믿음은 믿음을 낳습니다. 꿈은 꿈을 낳으며,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습니다.

 

 옛 시골 초등학교 건물 여러 칸에 온갖 책을 빽빽하게 모시는 나는 우리 아이한테 책을 물려줄까요. 책을 읽는 삶을 물려줄까요. 책을 읽으며 빚는 착한 마음결을 물려줄까요. 책으로 담는 아름다운 삶을 물려줄까요. 책으로 적바림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물려줄까요.

 

 북녘땅 사회와 정치를 이끄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북녘땅 사회와 정치를 이끌던 사람은 ‘정치권력 물려받기(세습)’를 한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죽은 사람을 헤아립니다. 누구이든 죽음은 슬픕니다. 죽음 앞에서는 웃을 수 없습니다. 다만, 죽음이란 끝이 아닌 이어짐입니다. 누구 한 사람 죽었다 해서 모든 이야기가 묻히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둘레로 살그마니 이어집니다. 한 사람 죽음이 다른 사람한테 어떠한 넋으로 이어질까를 헤아릴 때에 반가울 수 있고 안쓰러울 수 있습니다.

 

 슬픔이 기쁨을 낳는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곱게 죽을 때에는 고운 목숨으로 새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어여삐 죽을 때에는 어여쁜 꿈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습니다. 우람한 빗돌을 어마어마하게 세우는 죽음일 때에 슬픕니다. 무거운 빗돌을 보드라운 흙에 단단히 박는 죽음일 때에 안쓰럽습니다. 지렁이는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고, 씀바귀는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며, 해오라기는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갑니다. 사람 또한 흙에서 태어나기에 흙으로 돌아가면서 맑은 넋을 내 아이들과 동무들한테 물려준다면, 싱그러운 빛이 되어 언제라도 다시 태어나며 웃을 수 있어요.

 

 나는 내 어버이한테서 돈이나 집이나 지식을 물려받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내 어버이한테서 사랑과 믿음과 꿈을 물려받고 싶습니다. 나는 내 아이들한테 책과 사진과 일거리를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나 또한 내 아이들한테 사랑과 믿음과 꿈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씩씩하게 살아가며 저희 아이들을 낳을 때에도, 우리 아이들이 저희 아이들한테 정갈한 사랑과 따스한 믿음과 너그러운 꿈을 물려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나라에서 좋은 보금자리를 일구며 좋은 마을살이를 누리고 싶어요. 나부터 좋은 이야기를 오순도순 나누고 싶습니다. (4344.12.2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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