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1.7.17.
 : 앞에서 이끄는 사람



- 장날, 혼자 길을 나서기로 했다. 장마가 끝난 뒤 햇볕이 그야말로 불볕이다. 이런 날 아이가 수레에 앉아 마실을 하면 틀림없이 땡볕에 시달리겠지. 장마당 장사하는 분들이 이 무더위에 아이를 데려올 수 없겠다며 걱정해 준다.

- 집으로 돌아가는 숯고개 언덕길에서 생각에 젖는다. 내리막에서는 오르막을 오르느라 흘린 땀을 바람에 씻느라 생각에 젖거나 둘레를 살펴볼 겨를이 없다. 오르막에서 낑낑거리며 오를 때에 비로소 온갖 생각에 젖어들면서 둘레를 두리번두리번 살핀다.

- 길바닥에 널브러진 나비 주검과 잠자리 주검을 바라본다. 내리막에서는 이들 주검을 볼 수 없다. 자전거도 자동차 못지않게 몹시 빨리 내리꽂으니까. 판판한 길이나 오르막일 때에 비로소 길바닥 주검을 바라볼 수 있다. 수레에 앉은 아이도 길바닥 주검을 볼 수 없겠지. 그러고 보면, 자동차 뒷자리에 앉는 사람도 길바닥을 볼 수 없다. 자동차를 달리는 사람이 멈추어서 차에서 내려야 비로소 길바닥 주검을 본다. 자전거 또한 달리기를 멈추고 수레에서 아이를 내려야 아이 또한 길바닥 주검을 본다. 앞에서 이끄는 사람, 곧 어른이나 어버이가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인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나 스스로 얼마나 걸을 만한 길을 즐겁고 씩씩하게 걷는가를 헤아리는 삶이어야 한다. 장마가 끝난 무더위에 뱀 주검과 개구리 주검은 그저 길바닥에 찰싹 달라붙으며 바싹 마른다. 얼마나 많은 목숨이 아스팔트길에서 죽을까. 얼마나 많은 목숨이 아스팔트길을 까는 동안 끽소리 못 내며 죽을까. 사람들은 덩치가 큰 짐승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죽음을 알아보기 힘들단다. 

- 무덥지만, 파란 빛깔 하늘과 하얀 빛깔 구름이 어여쁜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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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22 12:59   좋아요 0 | URL
어제 말이죠,
아파트 단지 내에서 아이들이 열심히 잠자리 채를 휘두르더라구요.
벌레 통을 보니, 벌써 잠자리 십여마리를 잡아서 그 안에....
나중에 그녀석들을 날려보내줄지 다른 행동을 할지 궁금했고
잠자리에 대해 측은한 맘이 들었지만, 결국 그냥 지나쳤답니다. ㅠ

파란놀 2011-07-22 17:09   좋아요 0 | URL
아이들한테는 잠자리를 아파트에서 볼 수 있는 일로도 고마운 노릇이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자주 으레 보지 못하니 많이 잡기만 할 뿐일 텐데, 나중에라도 깨달아 주면 좋겠어요. 그래도, 아이들이 잠자리를 '만지기'까지는 하면서 이 느낌을 잊지 않을 수 있을까요...
 

 

[누리말(인터넷말) 80] 처음으로, Home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이 있습니다. 이곳 누리집에 들어갔다가 ‘처음으로’라는 이름을 봅니다. 거의 모든 공공기관이 ‘home’이나 ‘HOME’이나 ‘Home’이나 ‘홈’을 쓰는데, 이곳에서는 ‘처음으로’를 쓰니 무척 놀랍습니다. 그러나, 같은 누리집 다른 자리에는 ‘Home’이라는 이름이 함께 나와요. 참으로 잘 쓴 이름 하나를 더 잘 살피면 좋을 텐데, 퍽 아쉽습니다. 그러나, 한 군데라도 알맞고 바르게 쓸 줄 알았으니, 이러한 말씀씀이를 고이 돌아보면서 사랑할 수 있으면 고맙겠어요. (4344.7.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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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얻어 쓰는 필름사진기 첫 사진


 2010년 3월에 필름사진기 FM3A라는 좋은 녀석을 얻었다. 오래오래 쓰라면서 빌려주신 분은 로모사진기를 즐겨쓴다. 필름사진기로 캐논 이오에스 5번을 썼으나 이 녀석은 기계가 목숨을 다했고, 니콘 에프엠 2번은 여러 차례 도둑을 맞거나 잃어서 다시 사들일 돈이 없었다. 갓 얻어서 오랜만에 필름을 끼우고 찍은 첫 사진은 딸아이 잠든 모습. 2010년 3월에 얻어 그무렵에 찍은 필름을 2011년 7월에 이르러 비로소 스캐너로 긁는다. 열여섯 달 동안 필름 한 통 긁기 힘들 만큼 무슨 일이 많거나 바빴을까. 힘들거나 바쁘게 살았다면서 참말 집일이나 집살림을 옳게 건사했을까. 필름에 잔뜩 낀 먼지가 함께 긁힌다. 아이는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서 서른다섯 달 어린이가 되었고, 사진에 깃든 열아홉 달 아기는 그야말로 먼 옛날 옛적 모습 같다. 둘째를 낳고 나서 헌책방마실을 할 수 없으니, 필름사진기는 다시금 잠을 잔다. 이 필름사진기에 깃든 필름에 담긴 사진은 앞으로 언제쯤 빛을 볼 수 있을까. (4344.7.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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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벌레가 들려주는 텃밭 이야기 - 가을에 거두는 열 가지 텃밭 작물의 한살이와 생태 철수와영희 그림책 3
노정임 글, 안경자 그림, 노환철 감수, 바람하늘지기 기획 / 철수와영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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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숨을 쉬고 흙땀을 흘리며 흙밥을 먹는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6] 안경자·노정임, 《무당벌레가 들려주는 텃밭 이야기》(철수와영희,2011)



 시골에서 흙을 일구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몸은 시골에 있으나 흙이 아닌 다른 일거리를 찾는 사람이 있으며, 아프거나 힘든 몸을 쉬려고 시골에서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흙을 일구어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흙하고 하나되어 언제나 흙을 만지면서 살아갑니다. 다른 일거리를 붙잡거나 몸을 쉬는 사람이라면, 살짝살짝 품을 들여 텃밭을 일굽니다. 도시에서는 조그마한 꽃그릇이나 스티로폼상자에 흙을 담아 조촐히 텃밭을 돌본다면, 시골에서는 어디에나 있는 흙땅을 삽과 쟁기와 호미로 조물조물 매만지면 됩니다.

 도시에서 텃밭을 일군다 할 때에는 똥오줌 거름을 내기 어렵습니다. 도시에서는 똥오줌을 정화조로 받아 쓰레기처럼 뽑아내도록 합니다. 사람이 먹은 밥이 몸속에서 똥오줌이 되어 바깥으로 나올 때에, 이 똥오줌을 잘 그러모아 거름으로 삭이지 못하는 얼거리입니다. 도시라서 어쩔 수 없다지만, 도시는 도시이기 때문에 정화조가 아니라 거름통으로 바꾸어 ‘사람들이 눈 똥오줌을 거름으로 되살리는 얼거리’로 한다면 참으로 좋을 텐데요. 새로운 손전화 기계를 만들거나 새로운 무슨무슨 시설과 건물을 세우기 앞서, 사람들이 날마다 누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똥오줌을 ‘살아숨쉬는 거름’으로 만드는 연구와 개발을 먼저 할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들을 걱정하면서 유기농 곡식을 찾으려 하는 어른이라면, 아이들한테 먹일 유기농 곡식이 이루어질 수 있게끔 도시에서 넘치는 똥오줌이 좋은 거름으로 되도록 마음과 몸과 슬기와 품을 들여야 옳은 노릇이리라 생각합니다.

 마땅한 노릇인데, 시골에서 살아가는 시골사람이 누는 똥오줌으로는 거름이 턱없이 모자랍니다. 이 나라 사람 거의 모두 도시에 몰려 도시 일자리만 붙잡으니,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도 적지만, 흙일꾼 몇 사람 똥오줌이라 해 봤자 얼마나 되겠습니까.

 돌이켜보면, 온 나라 물줄기를 바꾼다며 벌써 몇 조에 이르는 돈을 썼다 하는데, 이런 데에 돈을 쓸 노릇이 아니라, 똥오줌을 좋은 거름으로 삼는 데에 돈을 쓰려 했다면 아주 적은 돈으로도 벌써 훌륭한 열매를 맺었을 테며, 도시사람이 걱정하듯이 냄새도 그리 나지 않으면서 훌륭히 잘 쓰는 거름통을 만들었을 테고, 이 거름통을 나라밖으로도 널리 내다 팔 만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지구별 어디를 가나 도시투성이라 할 테니까, 지구별 어디에서나 잘 팔릴 시설이나 장치가 되겠지요.


.. 오늘 텃밭에서 화가 아줌마를 만났어요. 농사를 처음 지어 보는 초보 농사꾼이래요. 내가 아는 농사짓기를 알려주려고 해요. 가까이 와 봐요. 텃밭을 들여다보면 아주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요 ..  (9쪽)


 그림책 《무당벌레가 들려주는 텃밭 이야기》(철수와영희,2011)를 읽습니다. 둘째를 낳아 함께 살아가고부터는 텃밭을 들여다볼 겨를조차 없이 지냅니다. 옛날 어머니들은 아이를 여럿 낳아 돌보고, 집안일 하며, 논일도 거들다가는, 바지런히 밭일까지 하셨는데, 어떻게 이토록 몸을 움직일 수 있나 참 놀랍다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기계 하나 쓰지 않으며 방아를 찧고 절구를 빻으며 바느질을 하는데다가 물레까지 자아야 할 뿐더러 베틀에도 앉아야 했을 텐데, 더구나 빨래한 옷을 다듬이질을 해야 하고, 이불은 누벼야 합니다. 끝이 없는 집안일에 살림살이에 아이돌보기에, 어떻게 밭일까지 다 해냈을까요.

 먼 옛날, 이 나라 사람들 거의 모두 흙일꾼으로 살아가던 무렵, 이 나라 어머니들처럼 대단하며 놀랍고 훌륭하다 싶은 살림꾼이자 일꾼은 없었으리라 봅니다. 어떤 학자나 군인이나 임금보다 거룩한 어머니요, 어떤 학자나 군인이나 임금이라 하더라도 여느 시골자락 여느 살림집을 일구는 어머니가 없으면 ‘태어나지’도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잠을 자지’도 ‘하루하루 살아가지’도 ‘학문이나 전쟁이나 정치이니 꾸리지’도 못했겠지요.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어머니들 살림살이와 일거리를 높이 사거나 예쁘게 섬기거나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는 흐름은 없습니다. 어머니들 살림살이와 일거리를 다루는 역사책이나 문화책이나 인문책이나 그림책조차 없습니다. 스스로 겪고 몸소 해 본 텃밭일이기 때문에 《무당벌레가 들려주는 텃밭 이야기》라는 그림책 하나 태어난다 할 텐데, 곰곰이 생각하면, 여느 시골자락 살림집 할머니한테 이야기 한 보따리 듣거나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더라도 ‘텃밭 이야기 그림책’은 수십 수백 권이 태어날 만하리라 느낍니다. 열 가지 텃밭 푸성귀 이야기를 갈무리한 《무당벌레가 들려주는 텃밭 이야기》인데, 열 가지 텃밭 푸성귀마다 따로따로 그림책 하나로 태어날 만해요. 가지는 가지대로, 감자는 감자대로, 고구마는 고구마대로, 당근은 당근대로, 무는 무대로, 배추는 배추대로, 아욱은 아욱대로, 옥수수는 옥수수대로, 콩은 콩대로, 고추는 고추대로, 오이는 오이대로, 그리거나 선보이거나 함께 나눌 이야기가 한가득입니다.

 씨앗을 받고, 씨앗을 갈무리해서, 이 씨앗을 고이 여기며 한 알 두 알 심습니다. 씨앗을 심기 앞서 밭을 어여삐 갈고 엎습니다. 이랑과 고랑을 곱게 만들고 난 자리에 씨앗을 심습니다. 새싹이 트는 모습을 즐거이 지켜봅니다. 새싹이 틀 무렵 함께 싹이 트려면 다른 풀을 바지런히 뽑아야겠지요. 웃자라지 않도록 잎을 칠 때에, 이렇게 미리 치는 새잎을 나물로 삼든 날푸성귀처럼 여기든, 밥상에 올립니다. 당근은 당근줄기까지 맛나게 먹습니다. 무는 무잎을 잘 말려 무청으로 삼으면 됩니다. 그냥 무잎으로 먹어도 되고요. 남김없이 뽑거나 캘 수 있지만, 한두 뿌리쯤 그대로 두어 꽃이 피고 질 때까지 즐겁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배추꽃을 보고 무꽃을 보면서, 텃밭에 심어 일구는 푸성귀 또한 여느 풀처럼 꽃이 피고 씨가 맺는 목숨인 줄을 느낄 수 있어요.


.. 농사는 혼자 지을 수 없어요. 흙, 해, 물, 바람이 도와주어야 해요. 또 벌레가 도와주기도 한답니다 … 싹이 올라왔어요. 흙을 뚫고 싹이 올라왔어요! 씨앗 혼자서는 싹을 내지 못해요. 흙도 있고, 해도 있고, 물도 있고, 거름도 있어야 해요 ..  (11, 18쪽)


 텃밭이든 너른 밭이든 사람이 일굽니다. 그러나 밭이 되든 논이 되든, 사람 손길만으로는 일구지 못합니다. 비닐집을 만들거나 흙을 비닐로 덮어 ‘오직 사람 손길로만 더 굵고 더 달며 더 예뻐 보이는’ 푸성귀를 ‘만들’기도 합니다만, 흙이든 거름이든 가게에서 사오고 물은 수도물로 틀며 비닐이나 유리로 꽉 막은 데에서 푸성귀를 기를 수 있다지만, 이러니까 겨울이든 이른봄이든 온갖 푸성귀를 가게에서 사다 먹을 수 있다지만, 흙과 해와 물과 바람과 벌레와 멧짐승이 있어 서로서로 살아가고 다 함께 아름답습니다.

 흙이 있어 일구는 푸성귀일 테지만, 흙이 있어 태어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해가 있어야 자라는 푸성귀일 텐데, 해가 있어야 활짝 웃으며 싱그러이 기운을 내는 사람입니다. 물이 있어야 잎과 줄기가 튼튼할 푸성귀이겠으나, 물이 있어야 맑은 넋으로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바람이 있어 숨을 쉰다는 푸성귀요, 바람을 맞으며 숨을 쉬는 사람입니다.

 푸성귀한테든 사람한테든 자가용이나 아파트나 은행계좌나 가방끈이나 일자리나 영어나 텔레비전은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흙과 해와 물과 바람입니다. 흙이 있고 난 다음 자가용이고, 해가 있은 뒤에 아파트이며, 물이 있는 자리에 은행계좌이든 무어든 쓸모있습니다. 바람이 없이 가방끈만 길다 해서 하루라도 살아내지 못합니다.

 곰곰이 헤아리자면, 그림책 《무당벌레가 들려주는 텃밭 이야기》에서는 텃밭에서 어떤 푸성귀를 기를 수 있는가를 보여줄 만하다 할 테지만, 텃밭에서 이런저런 푸성귀를 기르는 삶을 보여주는 까닭이란, 우리가 늘 먹는 푸성귀를 어떻게 길러 어떻게 먹는가 하는 앎조각을 머리에 담아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풀과 나무와 사람과 뭇목숨 모두 흙을 먹고 해를 받으며 물을 마시고 바람을 들이키는 지구별 아름다움을 알뜰히 깨우칠 때에 사랑스레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책 뒷자리에 ‘유전자 변형 농산물’을 걱정하는 글이 적힙니다만, 시골자락에서 스스로 흙을 일구는 사람이 밭에서 손수 씨앗을 받아 이듬해에 심지 못한다면, 모든 씨앗부터 ‘유전자를 건드려 바꾼 씨앗’이기 때문에, 손수 텃밭을 일군다 하더라도 ‘유전자를 건드려 바꾼 푸성귀를 기르는’ 셈이 됩니다. 가게에서 파는 씨앗치고 ‘씨앗으로 씨앗을 받을 수 있는 씨앗’은 이제 없습니다.

 그러나 ‘새내기 흙일꾼 첫걸음’으로 생각한다면, 제대로 된 씨앗을 찾아나서는 일은 좀 나중에 하더라도, 이렇게 흙을 밟고 흙을 만지며 흙투성이가 되는 몸뚱이로 흙숨을 쉬려고 땀을 흘리는 모습이야말로 아리땁다 할 만합니다. 차근차근 흙을 사귀는 삶으로 바꾸고, 천천히 흙을 어루만지는 삶으로 거듭날 때에 내 살결과 마음결 모두 환하게 빛납니다. (4344.7.21.나무.ㅎㄲㅅㄱ)


― 무당벌레가 들려주는 텃밭 이야기 (안경자 그림,노정임 글,하늘바람지기 기획,철수와영희 펴냄,2011.7.21./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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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65] 노을빛

 길디긴 장마가 끝났습니다. 아이 하나랑 살아가던 지난 몇 해 동안 장마철이 퍽 고단하구나 하고 생각했으나, 둘째를 낳아 이 둘째 갓난쟁이가 내놓는 오줌기저귀를 들여다보니, 참말 장마철이란 이렇구나 하고 다시금 깊이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 장마철이 끝나 무더위가 찾아올 때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끔찍한 더위라 하면서 걱정하지만, 기저귀 빨래로 죽어나던 어버이로서, 이제 눅눅한 기저귀 말리느라 한 달 가까이 고달프던 일에서 벗어나 한 시간이 채 안 되어 보송보송 바싹 마르는 기저귀를 걷을 수 있는 무더위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그래, 이 고마운 무더위 첫날을 지나면서 밤하늘 달과 별을 아주 오랜만에 올려다본다고 느끼며, 첫째 아이랑 함께, 야 달이 참 곱구나 여름별은 이렇게 반짝이는구나, 하고 얘기합니다. 무더위 둘쨋날에는 이야 노을빛이 저리도 예뻤구나, 구름이 붉게 물들었네, 하고 이야기합니다. 무더위 셋쨋날에는 파랗디파란 하늘을 함께 올려다보면서, 자전거를 타고 읍내를 다녀오느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이리도 파랗고 어여쁜 하늘을 언제 보았니, 하고 말을 섞습니다. 흉내낼 수 없는 별빛이고, 시늉할 수 없는 햇빛이며, 따라할 수 없는 노을빛입니다. 꼭 하나 있을 착하며 따스한 사랑을 아이랑 살포시 나누자고 새삼스레 다짐합니다. (4344.7.2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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