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말하는 뜻


 둘째 아이가 물똥을 눈다. 기저귀 옆으로 똥이 주르륵 샌다. 아이가 누운 평상으로 똥이 흘러넘친다. 똥이 가득 담긴 기저귀를 살살 풀어 엉덩이를 닦고 평상을 닦는다. 어머니는 물을 받아 아이 엉덩이를 닦고, 아버지는 걸레를 쥐어 평상을 닦는다. 평상을 들어낸다. 평상 밑에 쌓인 먼지를 훔친다. 아이를 눕히느라 아이가 누운 평상 밑은 좀처럼 쓸거나 닦지 못했다. 아이가 물똥을 많이 누어 흘러넘친 나머지 이렇게 밑바닥까지 훔치면서 치운다. 아이가 찡얼거리며 잠을 못 이룰 때에는 시원하게 씻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혀 달라는 뜻이요, 살포시 품에 안고 바깥바람을 쐬며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듣게 해 달라는 뜻이다. (4344.7.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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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타기


 아버지가 두 달째 책짐을 꾸리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서관에서 복닥거리니, 멧골집에서 살아가지만 아이는 좀처럼 멧길 마실을 하지 못한다. 그래도, 책을 싸는 아버지 곁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며 이리저리 누비고 돌아다닌다. 아버지가 가위를 들어 끈을 잘라야 할 때면 제가 자르겠다며 손을 내민다. 아버지는 가위를 아이한테 건네어, 아이가 자르도록 한다.

 한창 떠들며 놀던 아이가 조용하다. 집으로 돌아갔나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아이는 아버지가 싸서 차곡차곡 쌓은 책짐을 차근차근 밟고 높이 올라선다. 창가로 엉금엉금 기어가더니 꽤 큰 창문을 혼자서 연다. 창문을 열고는 “아, 시원해.” 하고 말하더니, “아버지, 저기 구름이 산에 앉았어.” 하고 덧붙인다. 며칠 앞서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읍내 마실을 다녀오며 “저기 봐. 구름이 산에 앉았어요.” 하고 들려준 말을 고스란히 따라한다. 창문으로 내다 보이는 멧자락에 구름이 걸쳤는가 보다.

 멧등성이를 타며 멧풀을 뜯지 못하는 나날이기에, 도서관에서 책짐을 타면서 논다. 어서 책짐 싸기를 마치고 새로 옮길 자리를 찾아서, 아이하고 마음껏 멧길 마실을 하고 바닷길 나들이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4344.7.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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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등록금 책읽기


 대학 등록금이 워낙 비싼 나머지, 집에서 대는 돈으로는 아무래도 벅차니까 따로 일자리를 찾아서 푼돈이라도 버는 대학생이 많다고들 한다. 생각해 보면, 오늘날뿐 아니라 지난날에도 대학 등록금을 벌려고 애쓴 대학생은 많았다. 예나 이제나 비싸다는 대학 등록금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는 대학생도 많다. 누군가한테는 벅찬 짐일 테지만, 누군가한테는 아무것 아닌 돈이다. 그런데 대학 등록금만 비쌀까. 도시에서 살아가며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넣거나 학원에 보내거나 과외나 학습지를 받는 돈은 안 비쌀까. 아이들은 대학교 문턱에 들어서기 앞서인 예닐곱 살이든 초등학생 때이든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때이든, 벌써부터 해마다 천만 원씩 배움값을 내지 않느냐 싶다. 학원과 학습지에 들이는 돈은 진작부터 대단히 크다고 느낀다.

 아이가 태어나서 널리 사랑받거나 두루 믿음받는다고는 느끼지 못한다. 이 나라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보육시설에 맡겨지면서 영어를 배우고 뭐를 배우며 또 뭔가를 배운다. 고운 목숨을 선물받았다고 느낄 겨를이 없다. 초등학교에서는 초등학생 나이에 걸맞게 삶을 배우며 죽음을 깨달아 목숨을 아끼는 매무새를 착하고 참다이 건사해야 할 테지만, 초등학교에서는 초등학교 앎조각에 목을 매단다. 초등학교부터 성적과 등수와 영어와 교과목과 학습지와 독후감과 글짓기로 옭아매는데, 요사이에는 여기에 한자까지 끼워넣을 판이다.

 옳게 따진다면, 대학 등록금은 예나 이제나 똑같이 천만 원이다. 지난날에 백만 원 돈이었다 한다면, 지난날 백만 원은 오늘날 천만 원하고 같은 값어치이다. 조금도 값싸지 않던 지난날 등록금이고, 조금도 더 비싸지 않은 오늘날 등록금이다. 지난날에는 이 비싼 배움값을 대면서까지 구태여 대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내 삶길을 열거나 내 일자리를 찾으려 했지만, 이제는 보육시설에 첫발을 내디딘 때부터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아이들은 스스로 삶을 찾거나 죽음을 깨닫는 일이 없다. 아이들은 예닐곱 살이 아닌 대여섯 살이나 서너 살부터 머리에 앎조각만 자꾸자꾸 집어넣는다. 스스로 삶을 일구지 못한다. 착한 삶도 참다운 말도 고운 몸가짐도 익히지 못한다. 그저 대학교에 가야 뭔가를 이루거나 거머쥐거나 누릴 수 있는 듯 여긴다.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고 느끼니 ‘반값 등록금’을 이루자고 하지만, 반값 등록금이래서 값싸지 않다. 오백만 원이면 괜찮은가? 아니다. 천만 원이 힘든 사람은 오백만 원도 힘들 뿐 아니라 백만 원도 빠듯하다. 대학교에서 배울 만한 이야기가 많다면 천만 원이 아닌 이천만 원이나 삼천만 원을 내고도 다녀야 맞다. 대학교를 다니며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꿈과 삶과 빛과 슬기를 느끼며 받아들일 수 있다면 배움값을 놓고 따질 일이 없다.

 대학생이 되고자 여러 일을 해서 배움값을 버는 일은 나쁘지 않다. 다만, 대학생이 되지 않고 씩씩한 여느 일꾼이 되어 일을 해서 일삯을 벌어들인 다음, 이 일삯으로 젊은 넋을 북돋우는 곳에 기쁘며 예쁘게 쓸 수 있으면 훨씬 빛나면서 보람차리라 생각한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와 수험서는 입시교재일 뿐 책이 아니요, 대학교재 또한 그저 교재이지 책이 아니다. 책은 내 삶이다. 책은 내 땀이다. 책은 내 눈물과 웃음이다. (4344.7.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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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의 봄 눈높이 어린이 문고 10
이상교 지음 / 대교출판 / 1990년 11월
평점 :
품절




 ‘성교육’이란 ‘삶교육’
 [어린이책 읽는 삶 3] 이상교, 《열두 살의 봄》(대교출판,1989)



 아이들한테 언제 성교육을 해야 하는지를 살피지는 않아도 된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성교육이란 삶교육이니까요. 성별이나 성교나 성기를 가르치는 성교육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살아내는 나날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면서 깨닫도록 이끄는 삶교육입니다.


.. 이모는 아기 기저귀를 갈아채우고 젖지 않은 옷으로 갈아입혔습니다. “아들이거나 딸이거나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건 여자니까.” “피잇! 아긴, 뭐, 여자들이 혼자 낳는 건가?” ..  (12쪽)


 무슨무슨 성교육 강좌를 굳이 들어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언제나 듣고 날마다 생각할 수 있게끔 ‘아이와 함께 옳고 바르며 착하고 참다이’ 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버지가 하는 일과 어머니가 하는 일을 말로가 아닌 몸으로 느끼도록 하고, 남자가 맡은 몫과 여자가 맡은 몫을 앎조각이 아닌 삶으로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자나 남자이기 앞서 오롯이 목숨 하나 선물받은 사람인 줄을 느끼도록 하고, 사람이기 앞서 옹글게 숨을 쉬고 바람을 마시며 밥을 먹는 목숨붙이인 줄을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하고 개구리하고 다를 구석이 없습니다. 다만, 사람은 사람이고 개구리는 개구리입니다. 사람하고 개구리는 똑같은 목숨붙이입니다. 누가 더 값있고 누가 더 값없지 않아요. 여자하고 남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부자와 가난뱅이 사이에서 어느 쪽이 더 훌륭하거나 거룩하거나 낫지 않습니다. 얼굴이 잘생긴 사람이 얼굴이 못생긴 사람보다 멋지거나 좋거나 사랑스러울 수 없습니다. 키가 크든 작든 똑같이 사람이고, 여자이거나 남자입니다.

 때로는 두 눈으로 앞을 보고, 때로는 한 눈으로 앞을 보며, 때로는 두 눈이 있으나 앞을 못 봅니다. 때로는 두 귀로 소리를 듣고, 때로는 한 귀로 소리를 들으며, 때로는 두 귀가 있으나 소리를 못 듣습니다. 태어날 적부터 한손을 못 쓰든, 자동차에 치여 한손을 못 쓰든, 그저 두 손을 두 손 그대로 잘 쓰든, 누구나 똑같은 사람이요 목숨입니다.

 사람이 사람인 줄을 가르치면서 배우도록 하는 삶교육일 성교육입니다. 몇 살에 달거리를 하고, 몇 살에 아기씨가 나오며, 씨가 맺혀 아기가 태어나기까지 몇 달이 걸리는가 하는 앎조각도 익혀야 한달 수 있는데, 이에 앞서 내 삶이 얼마나 고마운 목숨이고, 내가 한 사람으로 우뚝 서서 보내는 나날은 어떻게 즐거우면서 값진가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숨을 쉬는 고마움을 느낄 노릇입니다. 햇볕을 쬐는 기쁨을 누릴 노릇입니다. 밥을 먹는 즐거움을 맛볼 노릇입니다. 저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교육’이 달라질 테고, 삶교육이 달라지는 만큼 ‘성교육’ 또한 저절로 달라져요. 따로 어떤 강의나 강좌를 듣거나 책을 읽어야 제대로 익히는 성교육이 아니라, 내 삶을 어떻게 추스르거나 돌보느냐에 따라 아름다워지느냐 아름답지 못하느냐로 갈리는 성교육입니다.


.. 홍이는 그 뒤, 그 짓을 그만두었습니다. 여자 아이들의 치마를 들추는 짓 말입니다. 여자 아이들이 놀잇감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스갯감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엄마와 여동생 지은이처럼 다른 여자들도 모두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  (36쪽)


 《열두 살의 봄》(대교출판,1989)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글쓴이 이상교 님은 ‘성 지식’을 한복판에 놓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둘레 동무나 어른하고 복닥이는 삶을 돌아보도록 하면서 천천히 받아들이는 ‘삶 이야기’로 ‘성 지식과 성별과 성교와 성기 이야기’를 알아차리도록 돕습니다. 섣불리 ‘하라 마라’ 하는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더 낫거나 나쁘다 하는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날마다 마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아름다울까 하는 이야기를 살포시 들려줍니다.


.. 엄마는, 엄마는 나를 낳을 때도 그렇게 많이 고생했다고 합니다. 이제 동생을 얻는 기쁨은 둘째입니다. 엄마만 전처럼 다시 건강하실 수 있다면 ..  (74쪽)


 어머니는 내 나이 다섯 살에도 어머니이고, 내 나이 열다섯 살에도 어머니입니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나 쉰다섯에도 어머니는 어머니입니다. 내 나이 스물다섯이나 서른다섯쯤 되면, 나도 누군가한테 어머니가 될 수 있겠지요. 나를 알고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알며, 나 스스로 어머니나 아버지 자리에 서는 삶을 알도록 하자는 ‘삶교육’인 ‘성교육’입니다. 그러니까, 삶교육이란 사람교육입니다. 사람교육이란 사랑교육이에요.

 삶을 어떻게 일구느냐를 돌아보도록 하기에 사람교육입니다. 사람과 사람으로 서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살피도록 하기에 사랑교육입니다. 사랑이 꽃피고 열매맺는 흐름을 일깨우도록 하기에 삶교육입니다.

 삶과 사람과 사랑이 맞물리는 자리를 슬기롭게 깨달아,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자라는 어린이가 되도록 하자는 뜻에서 펼치는 성교육이에요.


.. “어린아이가 무얼 안다고 때려요? 야단을 치거나 때린다고 버릇이 없어지진 않아요. 그렇게 되면 점점 어른 눈을 피해 버릇이 굳어지기 쉬울 뿐이지.” “그럼, 어떡해요? 남부끄러워서 이젠 친척 집에 데리고 가기도 꺼려지는 걸요.” ..  (122쪽)


 《열두 살의 봄》은 퍽 고마운 책입니다. 《열두 살의 봄》처럼 조곤조곤 삶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야 비로소 성교육을 밝히는 책이라 할 만합니다.

 다만, 이 책 《열두 살의 봄》에서도 어쩔 수 없이 ‘성별과 성교와 성기에 얽힌 앎조각’을 덧달 수밖에 없다고 하겠으나, 이러한 앎조각을 더 덜어낸다면 훨씬 넉넉하면서 따사롭게 삶과 사람과 사랑을 들여다보면서 보듬도록 이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저희 나이에 걸맞게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청소를 하는 삶을 보여주고, 집안일을 온통 여자한테 떠넘기는 삶이 아니라 서로서로 힘을 모아 즐거이 일구는 삶이 될 때에 아름다운 줄을 느끼도록 이야기꽃을 북돋아야지 싶습니다.

 성범죄뿐 아니라 모든 범죄는 삶과 사람과 사랑을 배우거나 느끼거나 누릴 수 없던 슬픈 넋일 때에 저지릅니다. (4344.7.24.해.ㅎㄲㅅㄱ)


― 열두 살의 봄 (이상교 글,대교출판 펴냄,1989.1.4./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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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짱! 1
와타나베 다에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다섯 쌍둥이 동생을 돌보며 집일을 도맡는다면
 [만화책 즐겨읽기 51] 와타나베 타에코, 《누나는 짱! (1)》


 사랑받는 사람은 사랑받는 줄을 살갗으로 잘 느낄는지, 아니면 조금도 못 느낄는지 궁금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을 받는 사람이 내 사랑을 받아들이는가 안 받아들이는가를 어떻게 느낄는가 궁금합니다.

 미움받는 사람은 미움받는 줄을 온몸으로 잘 느낄는지, 아니면 하나도 못 느낄는지 궁금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은 미움을 받는 사람이 내 미움을 받아들이는가 안 받아들이는가를 어떻게 느낄는가 궁금합니다.

 ‘사랑’하고 맞서는 낱말은 ‘미움’이 아니라 ‘등돌림’이라 했습니다. 본 척을 않거나 보려 하지 않는 등돌림이 사랑하고 맞서는 낱말이라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참으로 맞다고 생각합니다만, 어쩐지 ‘사랑’하고는 ‘미움’이 잘 짝지을 만하지 않겠느냐고 느낍니다. 사랑하고 미움 사이에 눈길을 안 두는 등돌림이 있지 않겠느냐고 느낍니다.

 좋아하는 마음하고 맞서는 마음이라면 싫어하는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다면 무덤덤하다 싶은 마음이라 하겠지요.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삶을 일구는 내 나날을 돌아본다면, 힘껏 사랑하고 애써 좋아하는 하루가 되어야 즐겁습니다. 조금도 사랑하지 못하거나 하나도 좋아하지 못한다면, 내 하루란, 내 나날이란, 내 삶이란, 얼마나 덧없거나 부질없거나 값없을까요.

 좋아하는 사람하고 한집에서 살아가며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자리에 누우며 조금씩 힘을 모아 집일과 집살림을 찬찬히 돌본다고 느낍니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하고 한집에서 살아갈 수 없으며, 사랑하지 못할 사람하고 찬찬히 힘을 모아 집일과 집살림을 돌볼 수 없다고 느낍니다.

 기쁜 사랑이든 슬픈 사랑이든 사랑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참다운 사랑이든 빛바랜 사랑이든 사랑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고운 사랑이든 아픈 사랑이든 사랑이어야 한다고 느껴요. 맑은 사랑이든 어두운 사랑이든 사랑이어야 한다고 느껴요.

 내 삶을 들여 밥을 차립니다. 내 삶을 바쳐 빨래를 합니다. 내 삶을 쏟아 이야기를 나누고, 내 삶을 기울여 빗자루를 듭니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하나뿐인 거룩한 내 삶은 오직 사랑으로 헤아립니다.


- ‘누구라도 좋아.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주는 사람을 갖고 싶어.’ (6쪽)
- ‘마왕의 성에서 그 단단한 팔로 나를 안아들고, 도망쳐 나와 줄 늠름하고 씩씩한 왕자님. 덧붙여서 연 수입이 300만 엔 이상이라면 얼굴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쪽지에 소원을 적어 매달았던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칠석날. 그 뒤로 이 라인만큼은 죽어도 지키겠다고 생각해 온 나이지만,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이제야 비로소 알았다.’ (107쪽)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얼굴이 예쁘장하대서 사랑할 만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으레 부러워 하듯 집안이 넉넉해서 돈이 많기에 사랑할 수는 없다고 느낍니다. 자가용이 있거나 아파트가 있대서 사랑할 만하지 않습니다. 가방끈이 길거나 어딘가 똑똑해 보여서 사랑할 만하지 않아요.

 사랑이란 겉모습이나 겉치레가 아니거든요. 사랑이란 돈이나 집이나 보배가 아니에요. 사랑이란 이름값이나 몸값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오직 하나, 착하면서 따스한 마음입니다.

 내 둘레를 돌이켜봅니다. 내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가슴 깊이 사랑을 느끼면서 사랑을 나누는 삶을 아끼는 분이 얼마나 될까 하고 돌이켜봅니다. 흙을 일굴 때에,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돌볼 때에, 밥을 하거나 빨래를 할 때에, 자가용을 몰거나 자전거를 탈 때에, 일을 하거나 놀이를 즐길 때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곱게 부둥켜안는 분으로 누가 있을까 하고 곱씹습니다.

 나부터 생각할 노릇이겠지요. 나는 내 삶을 얼마나 짙거나 깊거나 너르거나 밝게 보듬는 사랑으로 아끼는 하루일까요.


- ‘다섯 쌍둥이라니,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 자기 일이 아니라 ‘어머, 귀엽기도 하지.’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 녀석들이 태어났을 때, 나는 아직 겨우 2살의 어린아이였다. 그런데, 부모님은 5명의 육아에 정신이 없어, 나는 부모님의 품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덕분에 가계는 악화일로, 결국 3살 때 가난뱅이 신세가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직업 전선에 나선 엄마 대신,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집안일을 도맡았다. 식사당번, 빨래, 청소에 바느질, 한밤중까지 가계부 쓰기. 쌕쌕 잠들어 있는 동생들을 보며 몇 번이나 생각했던가, 이 녀석들만 없다면!! (12∼13쪽)
- ‘중학교 때, 나는 수예부에 들어가고 싶었다. 뜨개질도 하고, 소품도 만들고, 디자인도 궁리하고,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재료비를 생각하니, 도저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어떨까 했지만, 그러면 집안일을 할 사람이 없어진다. 할 수 없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부모님을 탓할 수는 없어. 내가 도와드려야 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그런 때도, 저 다섯 쌍둥이는 태평하게 서클 활동이나 해대고, 매일같이 체육복을 더럽혀 와서 세제를 물 쓰듯 쓰게 만들었어!!’ (39∼40쪽)
- ‘처참하다, 살림에 찌들어 운동화 끈마저 느슨해지다니. 가난은 정말 싫어.’ (43쪽)



 새근새근 자는 첫째 아이는 배에 이불을 덮어도 이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면서 이불을 걷어냅니다. 옆에서 끙끙 소리를 내는 둘째 아이도 손과 발을 이리저리 휘젓다가 이불을 걷어냅니다. 저희 어머니나 아버지는 자면서 이리 구르거나 저리 뒹굴지 않는데, 아이 둘은 참말 마음껏 구르거나 뒹굽니다. 아마, 어머니나 아버지 되는 사람도 이렇게 어릴 적에는 이리 구르거나 저리 뒹굴었을 텐데, 어버이로 살아가면서 더는 안 구르고 더는 안 뒹굴는지 모릅니다.

 첫째 아이는 밥을 먹습니다. 첫째 아이는 수저를 써서 밥을 먹습니다. 많이 어린 아이인 탓에 질질 흘리면서 밥을 먹습니다. 이것을 먹고 저것을 먹으라며 수없이 다시 말하고 거듭 말해야 합니다. 즈믄 번 만 번을 되풀이해서 이야기했으니까 이제 아이 스스로 잘 알아서 하라 여길 수 없습니다. 즈믄 번 되풀이했으면 만 번을 되풀이할 일이고, 만 번을 되풀이했으면 십만 번을 되풀이할 일입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개구리가 올챙이 적을 모르듯, 다 큰 어른으로서 갓난쟁이 마음이나 삶을 모르거나 잊으면서 아이랑 마주했어요. 하루이틀 한 해 두 해 하루 스물네 시간을 붙어서 살아가며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이듬달에 석 돌을 꽉 채우는 첫째를 엊그제부터 고개 숙이도록 해서 머리를 감깁니다만, 아이가 퍽 컸고 집일을 하며 손목이 몹시 저려서 더는 아이를 품에 안고 머리를 감기지 못합니다. 첫째 아이가 이제 이러한 아버지를 받아들입니다. 품에 안고 머리를 감기다가 손이 너무 아파서 아이야 이제 안 되겠다 네가 좀 아버지를 봐줘야겠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는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곱게 머리를 푹 숙여 줍니다.

 앞으로 한 해나 두 해쯤 더, 또는 세 해나 네 해쯤 더 품에 안고 머리를 감길 수 있습니다. 옆지기한테 이야기를 들으니, 옆지기 어머니는 옆지기가 더 큰 나이일 때까지 품에 안고 머리를 감겼답니다. 옆지기 어머니는 저보다 집일을 훨씬 많이 더 오래 하느라 몸이 아주 힘들었을 텐데, 당신 아이를 품에 안고 머리를 감겼다니, 이러한 삶은 사랑이라는 말이 아니면 달리 나타낼 수 없다고 느껴요. 손목이 안 아파야만 품에 안기고 감기겠어요. 몸이 안 힘들어야만 품에 안기고 감길까요.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손목이 아프고 몸이 힘들 때에는 이렇게 아프고 힘든 결대로 알뜰히 살아내면서 아이를 사랑하는 나날을 일굴 수 있습니다. 차근차근 보드라운 목소리로 아이가 잘 알아듣게끔 이야기하면서 아이가 씩씩하고 기운차게 받아들일 삶을 알려주면 되겠지요. 즈믄 번 만 번 거듭 이야기하고, 십만 번 백만 번 다시금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사랑하는 나날을 이루면 되겠지요.


- “학교 문제라면 시험만 치르면 반드시 들어갈 수 있는 사립학교를 알선해 드리죠. 학비는 전액 보조해 줄 수도 있어요.” “농담 말아요. 아이돌은 워낙 생명이 짧아서, 졸업도 하기 전에 인기가 떨어져 보조가 중단될 수도 있어요. 그럼, 남자 다섯이 고교 중퇴의 날건달이 되고 만다구요.” “아니, 결코 그런 일은…….” “설령, 일이 잘 풀려 졸업은 했다 해도, 그런 별 볼일 없는 3류 사립고 졸의 학력으로는 사회 복귀도 불안하고, 남자이니 기왕이면 대학까지 보내서 제대로 된 기업에 취직시키고 싶어요. 그치, 엄마?” (34∼35쪽)
- “그래, 너희들은 언제나 잘못한 거 없지! 설령, 너희 때문에 내가 미즈키 씨에게 이용당했다 해도! 난 미즈키 씨 기분 이해해. 똑같은걸. 나는 아빠, 엄마와 주위 사람들에게서 사랑받고 싶어서 언제나 필사적으로 노력하는데, 너희는 방긋 한 번 웃기만 하고는 모든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을 몽땅 빼앗아 버려! 5명이 있다는 특이함만으로 강아지처럼 귀여움 받고, 게다가 강아지처럼 뭐 하나 도움이 안 돼. 그러니, 하다못해 화풀이 대상이라도 되어 줘야 할 것 아니야!” (156∼157쪽)



 만화책 《누나는 짱!》을 읽었습니다. 모두 열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누나는 짱!》을 둘째를 막 낳고 나서 집일로 허덕이는 동안 잠자리에 드러누워 읽었습니다. 어느덧 첫째가 많이 커서 집일이 슬며시 줄어드나 싶은 무렵 으앙 하고 태어난 둘째를 돌보느라 눈코가 수욱 빠지다 보니, 도무지 하루에 글 한 줄 읽을 수 없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누나는 짱!》을 읽었습니다.

 만화책이라서 읽을 수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동안 다른 만화책도 읽었으나, 만화책이면서도 읽다가 스르륵 잠들도록 이끄는 책이 적잖습니다. 아이돌보기와 집일로 지쳐 나가떨어질 판인 늦은 밤, 겨우 집어든 글책을 열 쪽이나 스무 쪽까지 읽어내기도 합니다. 첫째 아이한테 팔베개를 하고 그림책을 펼쳐 읽히다가 그만 아버지가 먼저 곯아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쪽수가 적은 그림책이래서 한 권을 쉬 훌렁 읽어치울 수 없어요. 가벼이 읽을 만화란 없어요. 고단하거나 고달프대서 글책을 못 읽을 까닭이 없어요.


- “으아아, 누나. 아이돌의 얼굴에 무슨 짓을?” “시끄러워! 나름대로 살짝 때렸어! 내가 배려심 많은 A형이라는 사실에 감사해! 그 조잡한 신경을 커버하는 예쁘장한 낯가죽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만하군. 하지만, 아이돌이 얼굴에 생명을 건다면 여자는 사랑에 목숨을 걸어! 그러다 설령 무슨 봉변을 당하게 돼도, 남이 멋대로 결론지어 주는 건 절대 사절이야. 알겠어, 이 얼간아!” “그래, 미안해.” “알면 됐어! 아, 후련해!” (143∼144쪽)
- “난 갈 생각 없는데요.” “무슨 소리야. 그 애들이 요즘 침울해 있는 게 누구 때문인데.” “별로 침울하지 않은데요. 오늘 아침도 다섯이서 밥을 여덟 그릇이나 먹고 갔는데.” “씩씩한 척하는 것뿐이야. 요즘 계속 이상했는데, 오늘 네가 안 온다는 말을 듣고 겨우 알았어. 싸웠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만은 꼭 와 줘. 그 애들이 데뷔하는 건 누구보다도 너를 위해서니까!” “나요?” (160쪽)



 《누나는 짱!》을 읽는 동안, 다섯 쌍둥이를 건사하고 집살림을 도맡는 ‘누나’ 마음을 곰곰이 되짚습니다. 두 살 적부터 사랑받는 날이 깨진 채 초등학생 때부터 집일을 도맡아야 한 ‘누나’가 사랑받고 싶어 눈물을 흘리고 사랑하고 싶어 웃음꽃을 피우는 삶을 만화책을 빌어 돌아봅니다. ‘누나’는 다섯 동생을 홀로 돌보고 집일과 집살림까지 껴안은 나머지 학교 공부도 자꾸자꾸 뒤처집니다. 아무래도 ‘누나’한테는 학교 공부보다는 ‘다섯 동생이 더 사랑스럽’고 ‘조그마한 집에서 아버지랑 어머니랑 동생이랑 함께 치고받으며 복닥이는 나날이 좋’기 때문입니다. 아직 고등학생 나이로는 스스로 느끼지 못할 수 있을 테고, 스스로 깨달을는지 모릅니다만, 더 사랑하고 더 좋아하는 길로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아니, 참으로 사랑하고 더없이 좋아하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다섯 쌍둥이 때문에 어느 하루 느긋하게 두 다리 뻗으며 잠들지 못한다지만, 막상 다섯 쌍둥이가 집에 없고 ‘누나’가 집일을 하나도 안 해도 된다면, 오직 학교 공부에만 마음을 쏟아도 된다면, 밥이고 반찬이고 하나도 할 줄 몰라도 된다면, 빨래를 어떻게 하고 청소를 어떻게 하며 동생들 앞날 걱정을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도 괜찮다면, 이러한 ‘누나’는 얼마나 누나답거나 사랑스러운 누나라 할 만하거나 좋아할 만한 누나라 할 수 있을까요.


- “누나가 소중하다면 너희들이 지켜.” (144쪽)


 두 아이를 돌보고 옆지기를 보듬으며 살아가는 내 하루를 되돌아봅니다. 만화책 《누나는 짱!》에 나오는 ‘누나’ 삶을 읽으며 나는 아직 꽤 수월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며 가볍거나 홀가분하기도 한데다가 단출하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루가 몹시 길면서 몹시 짧은데, 이러한 하루하루로 이어지는 내 삶이란 어떤 뜻 무슨 보람일까 하고 헤아립니다.

 씩씩하게 어깨를 펴고, 몸이 힘들수록 내 입은 촐싹촐싹 춤을 추어야겠으며, 예쁜 꿈 하나 살포시 붙잡으며 살아야겠습니다. 누나가 있기에 다섯 쌍둥이 동생이 있고, 다섯 쌍둥이 동생이 있어 누나가 있습니다. (4344.7.24.해.ㅎㄲㅅㄱ)


― 누나는 짱! 1 (와타나베 타에코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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