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터와 글쓰기


 네 식구가 살아갈 새 삶터를 찾는다. 네 식구가 오붓하게 지내면서 느긋하게 숨을 쉴 만한 터전을 찾는다. 옆지기한테뿐 아니라 두 아이와 나한테 포근할 시골자락을 찾는다. 오늘 살아가는 이곳 또한 시골자락이면서 다른 시골자락을 찾는다. 시골사람이래서 자가용을 타지 말아야 한다거나 기계를 안 써야 하지는 않다만, 자가용을 지나치게 자주 타지 않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마을에서 차소리보다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듣고, 기계를 돌리는 소리보다 손으로 연장을 놀리는 소리가 울리는 시골자락을 찾는다.

 새 삶터를 찾기로 하면서 두 달 즈음 책짐을 꾸렸다. 이제 며칠 더 책짐을 꾸리면 도서관 살림은 다 꾸리는 셈이고, 집살림을 꾸리면 된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 집일이 부쩍 늘었는데, 부쩍 늘어난 집일을 옳게 건사하기 벅차 하면서 책짐을 꾸리자니 아주 죽을맛이다. 도무지 몸을 쉴 겨를이 없다.

 그런데,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책짐을 두 달 즈음에 걸쳐 죽을맛을 실컷 치르면서 꾸리는 나 스스로를 탓해야 한다. 삶터를 얼마나 옳게 못 찾았으면 이렇게 애먹어야 하겠나. 나부터 애먹고, 내 살붙이들 모두 애먹는다. 쉽게 얻어 쉽게 옮기는 삶터일 수 없다. 한두 해를 살거나 열 해나 스무 해를 살면 될 터전일 수 없다. 나로서는 뼈를 묻을 만한 보금자리를 찾아야 하고, 내가 뼈를 묻고 나서 내 아이들이 ‘이제 어머니 아버지 다 없으니 우리가 구태여 여기에 있어서 뭐 하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 만한 둥지를 찾아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여기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깃들던 곳일 뿐 아니라, 내가 예쁘게 깃들며 즐거울 곳이야.’ 하고 생각할 만한 삶자리를 찾아야 한다.

 우리 집 살림으로 치자면 몇 만 권에 이르는 책과 일흔 개가 넘는 책꽂이에다가, 새터에서 더 들일 책과 책꽂이를 품을 만큼 넉넉한 터를 찾아야 한다. 도시를 떠나 시골자락을 찾을 때에 이만 한 데를 좀처럼 찾지 못해 너무 쉽게 너무 쉬운 삶터를 얻었으니까, 이렇게 꼭 한 해를 살다가 다른 삶터를 찾아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쉽게 얻기에 쉽게 잃는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다만, 우리 식구가 넷이기 앞서 셋일 때부터 셋이 앞으로 쉰 해이고 백 해이고 이백 해이고, 두고두고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갈 만한가까지는 살피지 못한 채 이곳으로 왔다. 도시에서는 코앞에 닥치는 달삯이 눈덩이와 같아 너무 무섭고 힘들었기 때문에, 허둥지둥 시골로 몸을 옮겼다.

 곰곰이 생각한다. 허둥지둥 시골로 몸을 옮겼으니까, 이제는 좀 숨을 쉴 만하고, 숨을 쉴 만한 이때에, 더욱이 아직 어깨와 등허리에 힘이 남아 두 달에 걸쳐 책짐을 꾸릴 수 있는 이때에, 바야흐로 우리 살붙이가 서로를 제대로 아끼면서 옳게 사랑할 아름다운 삶터를 찾아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삶터가 내 삶터다울 때라야 비로소 나부터 책을 따사롭게 사랑한다. 내 삶터를 내 삶터답게 따사로이 사랑할 때라야 비로소 내 따순 사랑을 담아 글 한 꼭지 길어올린다. 책짐 싸느라 바쁘고 힘겨워 책을 펼치지 못하는 삶은 너무 슬프다. (4344.7.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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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27 15:58   좋아요 0 | URL
몇만권의 책... 여기에만 딱 눈이 꽂히는군요.
부러워라, 저 책들과 저 책을 놓을 수 있는 장소와, 가장 부러운 것은
저는 아직도 내려놓지 못 하는 자유에 대하여........ 그 책들을 놓을 수 있는 장소와 자연과 함께 가족이 살 수 있는 장소를 찾아서 살고 계시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유에 대하여.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아마 저는 부러워만 할거 같습니다.
꼬옥 좋은 집 찾으셔야 할텐데, 비가 이리 오니 걱정입니다.

파란놀 2011-07-27 18:01   좋아요 0 | URL
다음주에 청주와 전주와 남원을 거쳐 고흥으로 찾아가요.
아마 즐겁게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어요~~ ^^
 

 

[누리말(인터넷말) 82] 새로고침, 날짜, 크기

 ‘인터넷 홈페이지’는 ‘누리집’으로 고쳐쓰도록 하고, ‘블로그’는 ‘누리사랑방’으로 고쳐쓰도록 하자고들 이야기하지만, 정작 이처럼 고쳐쓰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그저 쉽게 영어를 쓰기만 합니다. 이제는 아주 뿌리를 내린 ‘블로그’이지만, 이러한 자리가 처음 생기던 무렵에는 이 영어를 그대로 써야 하는가, 마땅하다 싶은 한국말을 찾아야 하는가를 놓고 적잖이 말이 오갔습니다. 이제 와 돌이키자면 ‘누리사랑방’이라는 이름은 그다지 걸맞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마디를 아끼면서 이대로 쓸 수 있고, 새 말마디를 슬기롭게 빚어 사랑스레 쓸 수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하는 무언가를 가리킬 때에 ‘누리-’를 잘 살린다면, ‘인터넷 까페’는 ‘누리모임’이나 ‘누리동아리’로 손질할 만합니다. ‘인터넷 메일’은 ‘누리편지’가 되고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도 사람들이 슬기를 모은다면 알맞게 붙일 이름을 찾을 테지만, 사람들은 한국말을 빛내려는 슬기를 그닥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포털 사이트 누리편지’ 자리를 살피면, ‘새로고침’이나 ‘날짜’나 ‘크기’ 같은 말마디가 눈에 뜨입니다. ‘찾기’라 하지 않고 ‘검색’이라 한 대목은 아쉽지만, ‘다음’이라는 말마디는 반갑습니다. 조금 더 마음을 쏟는다면 ‘이전’을 ‘앞으로’나 ‘앞쪽’으로 적바림할 수 있었겠지요. (4344.7.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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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7.25.
 : 배달음식은 어디까지?



- 둘째를 낳은 옆지기는 몸이 예전보다 훨씬 나쁘다. 예전에는 가끔 기저귀 빨래를 하거나 밥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홀로 이 일 저 일 도맡자니 몸을 많이 써야 하고, 저절로 살이 많이 빠진다. 둘째와 함께 산 지 두 달이 지나면서 생각한다. 옆지기와 두 아이도 옆지기와 두 아이대로 씩씩하고 튼튼하게 잘 살아야 할 테지만, 나는 나대로 내 몸을 잘 추슬러서 더 힘을 내야 하지 않겠는가.

- 인천에서라면 생협에 찾아가 돼지고기라도 조금 사서 먹는다지만, 이곳에서는 생협 가게를 찾을 수 없다. 여느 고기집에 가서 돼지고기를 살까 하다가, 옆지기가 기름진 무언가를 먹고 싶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닭튀김을 사자고 생각한다. 며칠 앞서 읍내 장마당 마실을 할 때에, 새로 문을 열었다면서 하나로마트 앞에서 전단종이를 나누어 준 닭집이 있다. 어디까지 날라다 주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이 있는 광벌까지는 아니더라도 용산4리 숯고개 언덕받이라든지 용산6리 느티나무 있는 정류장까지라도 가져다준다면 한결 수월하리라 생각하며 전화를 건다. 닭집 아저씨는 아직 길을 잘 알지 못한다면서, 용산4리 숯고개까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서 용산6리 느티나무 있는 시골버스 서는 데까지 와 달라 이야기한다. 읍내 가게에서 푸성귀랑 배추 한 포기와 통밀가루 두 봉지와 재활용 빨래비누 여섯 장을 사서 가방에 챙기며 달린다. 느티나무 있는 시골버스 서는 데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아이를 내린다. 아이는 시냇물 흐르는 마을 어귀 정자에 맨발로 올라서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좋아한다. 아버지보고도 위로 올라와서 함께 뛰잔다. 아버지는 무더위에 땀을 많이 흘리며 자전거를 몰았기에 그냥 그늘에서 쉬겠다고 말한다. 16시 25분까지 오겠다고 하던 오토바이는 16시 29분에 닿는다. 늦었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만큼 조금 더 다리쉼을 한 셈이니까. 예까지 가져다주는 아저씨는 저수지 너머 마을에도 닭튀김을 나른 적 있다면서, 아직 길을 잘 몰라서 미안하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예까지 날라다 준 일만으로도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아저씨는 다음에는 저주시 위쪽 오르막을 조금 더 올라가는 데까지 날라다 주겠다고 이야기한다.

- 아이를 수레에 앉힌다. 아이한테 닭튀김 상자를 잘 들어 달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는 한손으로 닭튀김 상자를 꼭 잡고, 다른 한손으로 수레를 잡는다. 아이는 수레에 앉을 때부터 꾸벅꾸벅 졸더니, 조금 달리고부터는 아예 고개가 푹 꺾인다. 이제까지 졸음을 참으며 놀았기에 금세 쓰러지는가 보다. 그렇지만, 고개가 이리 쏠리고 저리 쓰러지고 하면서도 닭튀김 상자를 쥔 손을 놓지 않는다. 집에 거의 다 닿을 무렵에는 아슬아슬했지만, 떨어뜨리지 않고 잘 왔다. 집에 닿아 닭튀김 상자를 내리고, 아이를 번쩍 안는다. 아이는 아버지 품에 안기면서 잠에서 깨지 않는다. 잠자리 평상에 고이 누인다. 그대로 새근새근 잘 잔다. 아이 몫을 남긴 다음, 아버지는 물로 씻고 어머니하고 나머지를 먹는다. 아이는 한 시간쯤 달게 잔 뒤에 제 몫으로 남긴 닭튀김을 먹는다. 곰곰이 생각한다. 올해 들어 닭고기이든 닭튀김이든 처음으로 먹었다.
 

 

(최종규 . 사름벼리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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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7-26 10:59   좋아요 0 | URL
해수욕장까지 배달되는 음식들을 보면 정말 대단한 생각이 듭니다^^ 전 봄여여름가을겨울 역시 닭튀김이 젤 좋아요~

파란놀 2011-07-27 04:05   좋아요 0 | URL
해수욕장에서 닭튀김을 시켜 보셨나요?
오오... @.@

마녀고양이 2011-07-27 16:03   좋아요 0 | URL
옆지기 님께서 회복이 늦으시나보네요.
큰일입니다. ㅠㅠ. 공기 좋은 곳에서 빨리 추스리면 좋을텐데.

된장님께서도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파란놀 2011-07-27 18:02   좋아요 0 | URL
늦게 살아난다기보다...
워낙 아프고 늘 아픈 몸이다 보니...

그저 더 조용하면서 착한 곳에서 살고 싶어요~
 
사진가의 가방 1 - 사진으로 가는 비밀 통로 사진가의 가방 1
강영호 외 지음, 포토넷 편집부 / 포토넷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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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사진가방에는 천기저귀와 아이 옷가지
 [찾아 읽는 사진책 41] 포토넷, 《사진가의 가방 1》(포토넷,2011)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에 잠이 깹니다. 오늘은 두 시 사십 분에 일어납니다. 여느 사람들은 모두 곱게 잠들어 느긋하게 쉴 때일 테지만, 두 아이하고 옆지기랑 살아가는 어버이로서는 이때가 느긋하게 생각을 가다듬으면서 글을 쓸 수 있는 때입니다.

 먼저, 밤새 나온 오줌기저귀가 얼마쯤 되는가를 살핍니다. 잠자리에 들기 앞서 빨아서 넌 기저귀는 어느 만큼 말랐는가를 헤아립니다. 빨래감이 좀 많이 쌓였으면 빨래부터 합니다. 그닥 안 많으면 한두 시간 즈음 글을 쓰고 나서 기저귀를 빱니다. 시골집은 여름날 밤에도 온도가 퍽 떨어지니까 방에 불을 넣습니다. 방에 불을 넣는 김에 아직 덜 마른 기저귀 빨래를 방바닥에 죽 펼칩니다. 십 분이나 이십 분에 한 번씩 뒤집습니다. 이러고 한두 시간쯤 지나면 덜 마른 기저귀 빨래는 모두 보송보송해집니다.

 “어디든 다녀 보면 작업이 될 만한 것들이 있어요(31쪽/강홍구).”라 이야기합니다만, 따로 어디를 다니지 않더라도 사진으로 찍어 이야기를 담을 삶은 가득합니다. 아니, 나 스스로 내 삶을 곰곰이 돌아보면서 내 삶을 내 손길로 담을 때에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사진이야기가 태어납니다. 굳이 ‘다른 먼 사람’을 찾아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어떻게 보면, ‘나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찾아나서’고, ‘다른 사람은 내 이야기를 찾아나선’다 할 만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 이야기를 찾아나서도록 하기보다, 나 스스로 내 이야기를 제대로 느끼며 깨달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면 넉넉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도 마땅하지만 너무도 마땅히 깨닫지 않고 마는 삶자락이라 할 텐데, 구태여 ‘낯선 다른 아이들을 어여쁘게 사진으로 담으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가 낳아 나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을 날마다 가만히 바라보면서 그때그때 눈부시게 달라지는 온갖 모습을 꾸밈없이 받아들이면서 담으려고 할 수 있으’면 됩니다. 더 많은 나라를 누비거나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야 하지 않아요. 더 깊은 두메로 찾아가거나 더 멀디먼 나라까지 돌아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주로 시골에 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그들에게 거부감 없이 친근하게 다가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의 살림살이와 내가 들고 다니는 고급 가방 사이에는 이질감이 생기기 마련이죠. 부담 없어 보이는 이 가방은 벌써 10년째 사용하고 있어요. 평범하고 낡은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면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웃어요(176쪽/노익상).”라 이야기합니다만, 내 조그마한 살림집에서 내 살가운 살붙이하고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느낄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내 살붙이부터 따사롭게 다가설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내 좋은 동무부터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즐겁습니다. 내 고마운 이웃부터 포근하게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기뻐요. 꼭 ‘가난한 시골사람’한테만 살가이 다가서야 하지 않아요. 부자한테든 가난뱅이한테든, 도시사람한테든 시골사람한테든, 자연한테든 사람한테든, 푸나무한테든 잠자리한테든, 모두모두 사랑스러운 목숨이자 넋이라고 느끼면서 예쁘게 바라볼 수 있으면 됩니다.

 둘째를 맞이하고 두 달을 지내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둘째를 맞이하기 앞서부터 옆지기하고 시골집에서만 지내면서 가만히 돌아봅니다.

 내가 사랑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나는 누구한테 사랑받아야 할 목숨인가요.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나는 누구를 사랑하며 누구를 사진으로 찍을 때에 즐거울까요. 나는 누구하고 내 사진을 가장 예쁘며 기쁘게 나눌 때에 아름다운가요.

 “새 촬영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새들이 경계하면 더는 가까이 가지 않아야 한다는 거예요. 새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거든요. 새들도 익숙해지면 조금 더 가까이 오는 것을 허용해요. 그리고 둥지 촬영 시 시야 확보를 하겠다고 주위 나뭇가지를 꺾거나 치면 안 돼요. 천적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게 되거든요(208쪽/박웅).”라 이야기합니다만, 새한테뿐 아니라 내 보금자리에서 내 아이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도 ‘사진으로 찍히는 내 아이가 사진찍기 때문에 짜증스럽거나 번거롭거나 귀찮거나 성가셔서’는 안 됩니다. 이 모습 저 모습 갖은 모습 온갖 모습 들을 사진으로 차곡차곡 담기 앞서, 내 아이를 사랑하며 아끼는 매무새여야 합니다.

 더 멋져 보이는 사진 한 장 얻는 일은 대단하지 않아요. 더 좋아 보이는 사진 한 장 얻는대서 대수롭지 않아요.

 사진을 찍는 사람이랑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랑 오붓하게 살아가는 삶이어야 하고, 서로서로 살포시 껴안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사진책 《사진가의 가방 1》(포토넷,2011)를 찬찬히 펼치면서 곱씹습니다. 첫째 권이 먼저 나왔고 곧 둘째 권이 나옵니다. 사진쟁이들이 저마다 당신 사진가방이 어떠한가를 찬찬히 보여주는 책을 펼치면서 이모저모 곱새깁니다. 몇몇 분을 빼고는 하나같이 큼지막한 사진기와 사진가방을 쓰고, 이 사진 장비를 알뜰히 갖추어 돌아다니자면 자가용을 몰아야 하는구나.

 “의뢰받은 일이 아닌 제 작업으로 촬영하는 경우에는 작은 가방을 들고 다녀요(226쪽/백지순).”라 이야기하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한테는 ‘네 일’과 ‘내 일’이란 따로 없습니다. ‘찍어 달라 하는 사진’이든 ‘나 스스로 찍으려 하는 사진’이든 ‘모두 내 손으로 내가 빚는 사진’입니다. 만들어 달라는 사진이든 찍어 달라는 사진이든, 내가 만들려는 사진이든 내가 찍으려는 사진이든, 그예 내가 이루는 사진이에요.

 내가 이루는 사진은 대형사진기를 손수 만들어 쓰든, 중형사진기를 만만하지 않은 값을 치러 장만해서 쓰든, 작은 필름사진기를 쓰든, 디지털사진기를 쓰든, 로모사진기를 쓰든, 똑딱이를 쓰든, 언제나 내가 이루는 사진일 뿐입니다. 다만, 《사진가의 가방 1》에 나오는 사진쟁이 가운데 ‘똑딱이 디지털사진기’로 사진삶을 이루는 분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전문 사진쟁이’가 되자면 똑딱이로는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겠지요.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똑딱이로도 넉넉히 사진삶을 이루거나 사진책을 내놓거나 사진잔치를 베풀 만큼 ‘그림’에 앞서 ‘이야기’에 눈길을 두거나 마음을 쏟는 사진쟁이가 모자란 탓이라 하겠지요.

 책을 덮고 마지막으로 되돌아봅니다. 내 사진가방은 어떠할까. 내 사진가방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아니, 나는 내 사진가방이라 할 가방이 있을까.

 아이를 낳기 앞서까지는 사진가방이라는 가방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은 뒤로는 사진가방을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아이를 낳고부터 내 사진기는 목걸이가 되었습니다. 아이를 안거나 업어야 하니 사진가방은 몹시 거추장스럽습니다. 아니, 아이를 데리고 돌아다니는데 사진가방을 들 수 없습니다. 어떠한 사진가방도 ‘아이를 안거나 업거나 데리고 다니면서 쓰기에 좋도록’ 만들지 않습니다.

 나는 60리터들이 커다란 멧사람배낭을 멥니다. 이 커다란 멧사람배낭에는 아이 옷가지와 천기저귀를 맨 먼저 담습니다. 아이가 마실 물을 담는 병을 담고, 아이 손닦개와 아이 먹을거리를 담습니다. 아이가 볼 그림책을 담고, 아이 놀잇감이나 인형도 하나쯤 담습니다. 코가 막힐 때에 코를 뚫을 소금물이랑 면봉을 담습니다. 손톱깎이와 귀후비개 들을 천주머니에 담아 배낭주머니에 넣습니다. 몇 가지 응급약품을 천주머니에 담아 배낭주머니에 넣습니다. 60리터들이 내 커다란 가방에 들어가는 내 사진 장비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작은 가방을 하나 따로 마련해서 이 작은 가방에 필름사진기 한 대랑 필름 몇 통을 넣습니다. 디지털사진기 하나는 목걸이로 걸칩니다. 메모리카드 몇 장을 또다른 작은 가방 주머니에 넣습니다. 작은 가방에는 아이가 쓸 머리핀과 머리끈이 깃듭니다. 아이 머리를 빗을 빗도 깃들고, 곧바로 꺼내어 쓸 손닦개도 깃듭니다. 자가용을 몰지 않을 뿐더러, 자가용 굴릴 돈이 없는 우리 식구는 늘 걸어서 움직입니다. 걸어서 움직이다가 버스가 있으면 고맙게 버스를 얻어 탑니다. 읍내를 다녀올 때에는 자전거에 수레를 붙여 아이는 수레에 앉히고 아버지가 자전거를 몹니다. 등에 멘 가방과 수레 뒤쪽에 장날 저잣거리에서 장만한 먹을거리를 담습니다. 이때에도 디지털사진기는 목걸이입니다. 자전거를 몰면서 뒷거울로 아이 모습을 살핍니다. 한손으로는 자전거 손잡이를 붙잡고 다른 한손으로 사진기를 들어 뒷거울에 비치는 아이 모습을 찍습니다. 이러고 보면, 조금 먼 마실이 아닌 가까운 읍내 마실일 때에는 내 사진가방이 ‘집식구 먹을거리’로 가득 찹니다. 둘째가 열 몇 살을 넘을 때까지 내 사진가방에는 한결같이 아이들 옷가지와 아이들이 쓸 물건으로 꽉 차리라 봅니다. (4344.7.26.불.ㅎㄲㅅㄱ)


― 사진가의 가방 1 (포토넷 엮음,포토넷 펴냄,2011.7.14./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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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개책 뜨개손 뜨개머리


 아이 어머니가 뜨개를 한다. 다른 일은 도무지 할 수 없는 몸이지만, 바늘을 쥐어 실을 감으면서 뜨개는 할 수 있다. 모든 집일을 도맡는 아버지는 어깨가 무겁지만, 아이 어머니가 뜨개 한 가지를 할 수 있는 대목으로도 반가우면서 고맙다. 둘째가 태어나던 날부터 둘째랑 어머니가 모두 살아서 이렇게 곁에 있는 일이 반가움이자 고마움이요 웃음이자 눈물일 수밖에 없다.

 한글로 잘 엮은 마땅한 뜨개책은 찾아볼 수 없다. 아이 어머니는 영어로 된 뜨개책을 읽는다. 때로는 일본말로 된 뜨개책을 살펴야 한다. 영어를 아주 잘 하거나 일본말을 뛰어나게 잘 해야 뜨개책을 읽을 수 있지는 않다. 뜻풀이를 하나하나 새기면서 코를 잡고 바늘을 놀려야 한다. 한글로 적힌 뜨개법은 뜨개를 아주 빼어나게 잘 할 수 있게 된 사람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알아들을 수 없기 일쑤이다.

 집일을 도맡으며 반찬 또한 도맡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반찬은 몇 가지 안 되어 요리책을 몇 권 사서 읽어 보았다. 요즈음 나온 어느 요리책을 들추니 ‘브런치’를 다루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보인다. 뜻도 쓰임도 생김도 알쏭달쏭한 ‘브런치’는 어느 나라 어느 겨레 어떤 사람이 어떤 자리에서 즐기는 밥이 될까. 브런치를 말하는 요리책에 적힌 말은 어느 나라 어느 겨레 어떤 사람이 어떤 눈길로 읽으면서 헤아려야 할까.

 찬찬히 뜨개를 하며 양말에서 첫째 옷을 거쳐 작은 신과 덧신과 가방에 이어 머리띠를 빚는다. 가게에서 사서 쓰던 머리띠나 머리핀은 무겁거나 따끔거리거나 땀에 찌드는데, 뜨개로 빚은 머리띠는 가볍게 머리에 감기면서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는다. 오직 한 사람을 바라보며 쓸모와 쓰임새와 쓸곳을 살폈으니까, 가게에서 파는 여느 머리띠나 머리핀으로는 아쉽던 대목을 잘 풀 수 있겠지.

 첫째 아이도 어머니가 뜬 머리띠 노릇 모자를 쓰며 웃는다. (4344.7.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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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7-26 12:25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대량생산 기성품 보다야 맞춤이 편안하잖아요^^ 솜씨가 좋으시네요~

파란놀 2011-07-27 04:05   좋아요 0 | URL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저도 할 수 있어요.
마음을 쏟아 천천히 한 땀 두 땀 하면
누구나 예쁘게 빚을 수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