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책읽기


 해가 났다가 구름이 가득하고, 빗줄기가 퍼부었다가 어느새 그치는 날씨.

 가끔 이러한 날씨를 맞이한다면 그러려니 하면서 여우비라느니 범이 장가를 가느니 하고 생각합니다. 날씨가 구지레한 채 한 주 두 주 한 달 두 달이 되면, 도무지 사람이 살아갈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공장은 더 늘고 자동차는 끝없이 늘며 아파트는 자꾸 늡니다.

 엉망진창이 되는 날씨를 한 사람 힘으로 돌이킬 수 있을까요. 착하며 고운 날씨로 돌이킬 수 있을까요. 엉망진창으로 흐르는 정치나 사회나 문화나 교육을 한 사람 힘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맑으며 아리따운 모습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비가 멎고 구름이 걷혀 해가 나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후끈후끈한 기운이 서렸기에 섣불리 빨래를 내걸지 못합니다. 십 분 이십 분 지난 다음 빨래를 내겁니다. 조금 더 지난 뒤, 곰팡이가 피는 사진틀을 잘 닦아 해바라기를 시킵니다. 조금 더 지난 다음, 나무로 된 평상을 뒤집어 말립니다. 조금 더 지나고 나서, 이불을 빨랫줄에 차곡차곡 넙니다.

 다문 한 시간이라도 이 따사로운 햇살을 맞아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따사로운 햇살은 기저귀 한 장에도 내려앉고 손닦개 석 점에도 내려앉습니다. 빨래를 잔뜩 했건 조금 했건 다르지 않습니다. 햇살은 모든 빨래에 골고루 내려앉습니다. 햇살은 텃밭에건 무논에건 멧자락에건 들판에건 골고루 내려앉습니다. 어느 쪽에는 더 내려앉고 어느 쪽에는 덜 내려앉지 않습니다. 땅이 기울었어도 골고루 내려앉습니다.

 목덜미로 땀이 흐릅니다. 빨래를 너는 동안에도 목덜미로 땀이 흐릅니다. 보송보송해지면서 햇살 냄새 듬뿍 받아들인 이불을 걷어 터는 동안에는 등줄기로 땀이 흐릅니다. 햇살은 빨래와 이불뿐 아니라, 빨래랑 이불을 널고 걷는 사람 등짝과 얼굴과 손등과 허벅지에도 내려앉습니다. 누구를 미워하지 않는 햇살이면서, 누구를 딱히 더 좋아하지 않는 햇살입니다. 아니, 미움과 좋아함을 넘어, 고운 품으로 따사로이 부둥켜안는 너른 햇살입니다.

 내가 책을 왜 가까이했는가 생각합니다. 내가 책을 왜 이렇게 갈무리하면서 살아가는가 헤아립니다. 모든 책이 햇살처럼 너르면서 고운 따순 품은 아니었지만, 틀림없이 햇살처럼 너르면서 곱고 따순 책이 있습니다. 백 권 가운데 하나이든 만 권 가운데 하나이든, 내 마음밭을 너르면서 곱고 따순 헷살로 스며든 책이 있습니다. 백 권이나 만 권이 아니라 한 권을 믿으면서 책을 만났고, 사귀었으며, 함께 살아갑니다.

 모두를 바치는 사랑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모두를 누리는 사랑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햇살 한 조각으로 즐거운 사랑이라고 느낍니다. 햇살 한 조각을 누리거나 나누면서 웃거나 우는 사랑이라고 느낍니다. (4344.8.1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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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 권혁도 세밀화 그림책 시리즈 2
권혁도 글 그림 / 길벗어린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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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땅에서 나비를 만나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8] 권혁도,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길벗어린이,2010)



 꼼꼼그림으로 호랑나비를 어여삐 담은 그림책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길벗어린이,2010)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은 이토록 어여쁜데, 이 그림책을 장만하여 읽을 어른이나 어린이 가운데 ‘나비가 알을 낳아 살아갈 만한 터전’에서 ‘나비가 사랑하는 흙과 풀을 아끼며’ 일거리를 찾거나 보금자리를 돌보는 이는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살며 첫째를 낳았을 때이든, 시골로 옮겨 둘째를 낳았을 때이든, 나비는 늘 우리 식구 둘레에서 날갯짓을 했습니다. 도시에서는 아파트숲이 아닌 골목숲에서 살았습니다. 골목숲 골목이웃은 흙 한 줌 없는 도시에서도 흙을 알뜰히 건사하면서 텃밭을 일구었고, 이 텃밭에서 피고 지는 숱한 꽃이나 푸성귀 내음을 좇아 온갖 나비가 찾아들었고, 알을 깠으며, 목숨을 이었습니다. 이제 시골에도 자동차 많고 공장 많으며 시끄럽습니다. 그래도, 이 시끄럽고 어수선한 시골은 도시와 견주어 숱한 나비와 잠자리와 풀벌레가 깃들기에 훨씬 나은 터전입니다.

 아이가 마당에서 뛰놀든 멧자락을 오르내리든, 또 아버지가 자전거수레에 태워 읍내로 마실을 다녀올 때이든, 언제 어디에서나 쉽게 나비를 만납니다. 풀이 자라면 꽃이 피고, 꽃이 피면 나비가 깃들 쉼터가 생깁니다. 풀꽃이든 멧꽃이든 사람들이 뿌린 씨앗 때문에 피지 않습니다. 풀밭에서건 멧자락에서든 들풀이나 멧풀은 저희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며 씨앗을 냅니다. 나비 또한 사람이 들여다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나비는 나비대로 저희 삶을 알뜰히 꾸립니다.

 식구들이 두 다리로 움직이는 자리에서는 팔랑거리는 나비를 만납니다. 아이를 태운 자전거를 몰며 읍내를 다녀올 때에는 자동차에 치이거나 밟혀서 죽은 나비를 길바닥에서 끝없이 만납니다.

 자동차에 치여 죽는 사람은 하루에 몇일까요. 자동차에 치여 죽는 나비는 하루에 몇일까요.

 어느 누구도 자동차에 치여 죽는 나비나 잠자리나 참새나 비둘기나 삵이나 고라니나 뱀이나 개구리나 사마귀나 메뚜기나 너구리나 고양이나 다람쥐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자동차에 밟혀 죽은 개미가 얼마나 된다든지, 자동차에 밟혀 그예 떡이 되어 사라진 지렁이가 얼마나 되는가를 살피는 통계는 없습니다. 아니, 어느 누구도 슬퍼 하거나 아파 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느끼지 않고,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랑 자전거를 타고 읍내 장마당에 다녀올 때마다 숱한 죽음을 마주합니다. 너무도 많은 목숨이 새까만 아스팔트길에서 너무도 쉽게 너무도 가벼이 너무도 끔찍하게 사그라듭니다. 너무도 빨리 달리는 자동차 때문에, 너무도 무시무시하게 달리는 자동차 때문에, 너무도 앞만 바라볼 뿐인 자동차 때문에, 사람 아닌 목숨은 이 땅 이 나라 이 터에 섣불리 깃들이지 못합니다.

 자동차에 치여 죽은 나비가 길바닥에서 자동차 바람에 휩쓸려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굽니다. 몸뚱이는 벌써 사라졌고, 날개만 가까스로 남아 파닥거리는 나비가 곳곳에 널립니다. 장마가 지났어도 그치지 않는 빗줄기에 까만 아스팔트길이 날마다 씻긴다지만, 이렇게 씻기고 나서도 수많은 목숨들이 또 새롭게 이곳 까만 길바닥을 저승길로 삼습니다. 자동차에 탄 사람들만 못 느끼는 무덤길인 찻길입니다.


.. 호랑나비는 진달래꽃을 좋아해요. 작은 낱눈이 모인 겹눈으로 쉽게 진달래꽃을 찾아내지요 ..  (4쪽)


 그림책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는 어여쁩니다. 호랑나비 한살이를 살피는 권혁도 님 눈길부터 어여쁩니다. 호랑나비 한 마리를 애틋하게 사랑하는 손길이기에 이토록 어여쁜 그림책을 일구어 이 나라 아이들하고 나눌 수 있다고 느낍니다. 꼼꼼하게 그린 그림으로 이루어진 그림책은 으레 일본 그림책으로만 만나야 하는 판인데,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는 한국땅 한국 목숨붙이를 한국사람 눈길대로 살가이 보여줍니다. 이 그림책 하나를 펼치면서, ‘일본땅 일본 목숨붙이를 일본사람 눈길대로 사랑스레 담은 그림책’이 아닌 한국 그림책으로도 아이하고 나비 한살이를 예쁘게 나눌 수 있으니 더없이 고맙습니다.


.. 풀숲에는 많은 애벌레들이 자라고 있어요. 생김새도 다르고 먹는 것도 달라요. 나비 애벌레는 대개 정해진 먹이 식물을 먹어요 ..  (14쪽)


 그렇지만, 그림책을 덮고 나면 온통 슬픈 빛깔인 삶터입니다. 도시에서는 도시대로 나비하고 사귀기 어렵습니다. 시골에서는 시골대로 나비가 죽어납니다. 곡식과 푸성귀를 거두려고 풀약을 뿌리기에 풀약을 함께 맞아 죽을 뿐 아니라, 자동차에 치여 죽는 나비입니다. 아이들이 어여쁜 그림을 바라보며 어여쁜 호랑나비 모습을 머리에 아로새길 수 있습니다만, 정작 호랑나비 한 마리 어여삐 한살이를 보낼 만한 터전을 좀처럼 지킬 수 없는 이 나라입니다. 물길을 파헤치고 멧자락을 무너뜨립니다. 새로운 겨울올림픽을 한국땅에서 치른다고 하니까, 조용하고 정갈하던 멧자락을 또 얼마나 넓게 파헤치거나 무너뜨려야 할까요. 경기장을 새로 짓느라, 아파트와 숙소를 새로 세우느라, 찻길을 새로 닦느라, 무얼 또 새로 만드느라 …… 나비 한 마리 깃들 조용하고 정갈한 보금자리는 얼마나 슬프게 사라져야 할까요.

 그런데, 나비가 깃들 터전은 운동장 하나만 하지 않습니다. 나비는 자동차 한 대 세울 만한 자리만 곱게 지키면 얼마든지 알을 깰 수 있습니다. 지렁이는 한 사람 누울 땅뙈기면 얼마든지 예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린 나날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를 보고 자라는 어린이가 앞으로 어른이 되어 정치를 맡거나 행정을 맡거나 교육을 맡는다 할 때에, 이 어린이는 호랑나비를 어여삐 사랑할 만한 정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라는 그림책을 보고 자란 어린이만큼은 호랑나비를 비롯한 작디작고 여리디여린 이웃 목숨붙이를 아끼거나 사랑하거나 믿거나 보듬는 착한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어여쁜 그림책을 보는 사람이라면, 어린이가 되든 어른이 되든, 어여쁜 한 사람으로서 씩씩한 몸짓과 맑은 눈빛으로 착한 삶을 일굴 때에 어여쁜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4.8.12.쇠.ㅎㄲㅅㄱ)


―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 (권혁도 글·그림,길벗어린이 펴냄,2010.1.25./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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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Frank: Peru (Hardcover)
Frank, Robert / Steidl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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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를 살아숨쉬도록 하기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34]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PERU》(STEIDL,2008)


 페루에는 페루사람이 살아갑니다. 페루사람은 페루사람답게 살아갑니다.

 한국에는 한국사람이 살아갑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사람답게 살아갑니다.

 페루사람보다 한국사람이 낫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한국사람보다 페루사람이 나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널따란 아파트에서 자주 씻을 수 있으면 더 낫다 싶은 삶이 될까 궁금합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면서 두 다리로 오래도록 힘겹게 걸어야 하지 않다면, 까맣고 커다란 자가용 짐칸에 짐을 싣고 다닐 수 있으면, 아니 까맣고 커다란 자가용조차 심부름을 해 주는 누군가 몰아 준다면, 이때에 한결 낫다 싶은 삶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책 《PERU》(STEIDL,2008)를 읽습니다.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님이 1948년에 빚은 사진책입니다. 사진책은 참 얇습니다. 페루땅에서 살아가는 페루사람 사진을 고작 서른아홉 장 담습니다.

 서른아홉 장이라 한다면 필름 한 통보다 석 장 많습니다. 설마 필름 두 통만 찍었겠느냐만, 또 1948년이면 요즈음 같은 필름이 아닌 다른 필름이라 할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웬만한 여느 사진책을 돌아본다면, 서른아홉 장 사진으로 빚은 《페루》는 참 얄팍한 녀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책을 가만히 되넘깁니다. 사진 서른아홉 장이면 참말 적은 숫자인가 되뇝니다. 서른아홉 장이 아닌 삼백여든 장을 담아야 비로소 잘 엮은 사진책이라 할 만할는지 곱씹습니다. 서른아홉 장조차 아닌 서너 장으로 페루사람들 삶을 보여주려 했다면 바보짓이라 할 만한가 되뇝니다.

 사진을 보고, 다시 생각하며, 사진을 보다가, 또 생각합니다. 사진잔치를 하는 이들은 으레 ‘사진 한 장만 알림쪽지에 넣’곤 합니다. 사진책을 내놓을 때에 ‘사진책 앞쪽에 사진 한 장만 넣’기 일쑤입니다. 알림쪽지로든 사진책으로든, ‘사진 한 장’으로 사람들한테 느낌과 이야기를 건네지 못한다면, 사진잔치에 내건 다른 사진들이든 사진책에 담긴 다른 사진들이든 부질없다 할 만합니다. 사진 한 장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사진 백 장이나 천 장으로 보여줄 수 없습니다. 사진 백 장이나 사진 천 장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사진 한 장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다시금 사진책을 들춥니다. 사진책 《페루》에 실린 어느 사진이건 책겉에 넣을 만합니다. 애써 어느 사진 하나를 가려서 겉에 넣을 만하지 않습니다. 페루땅 페루사람 이야기라면 이 사진이든 저 사진이든 잘 어울리는구나, 잘 드러나는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잘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한국땅에서 한국사람을 사진으로 찍는다 할 때에는 어느 사진 하나로 ‘한국땅 한국사람’을 보여준다고 내놓을 만할까요.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떠한 땅인가부터 갈피를 못 잡겠습니다.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한국사람 또한 어떠한 몸과 마음으로 어떠한 꿈을 키우면서 어떠한 살림을 일구는 겨레인지 가늠하지 못하겠습니다. 4대강사업을 한다며 연장이나 기계를 다루느라 땀흘리는 사람들 모습이랑 자동차나 배를 만드는 공장에서 연장이나 기계를 다루느라 땀흘리는 사람들 모습이랑 얼마나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와 나라밖 노동자가 얼크러진 모습에서 무엇을 한국땅 한국사람 모습이라고 그려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한겨레 어머니와 조선족 어머니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어떤 한국사람 얼굴을 찾아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까만 양복을 입고 까만 자가용을 모는 사람이랑 까맣게 탄 얼굴과 까맣게 얼룩진 손으로 흙을 일구는 사람 사이에서 어떤 한겨레 빛깔을 느껴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피리를 불고, 양을 몰며, 먼지바람이 이는 흙길 뒤로 높디높은 멧자락이 드넓게 펼쳐진 페루땅 한켠 페루사람들 눈빛과 낯빛을 들여다봅니다. 햇살을 듬뿍 받고, 바람을 가득 마시며, 흙하고 한동아리로 뒹구는 페루사람들 몸뚱아리를 바라봅니다.

 사진에 앞서 사람이란 무엇일까 알아야겠습니다. 사진에 앞서 삶이란 무엇일까 찾아야겠습니다. 사진에 앞서 사랑이란 무엇일까 느껴야겠습니다.

 한국 사진쟁이 가운데 ‘한국사람’을 사진으로 담는다든지, ‘고향사람’을 사진으로 담는 이가 얼마나 될까 알쏭달쏭합니다. 한국사람과 고향사람을 지나 ‘지구별 이웃’이랑 ‘지구별 목숨’을 곰곰이 살피면서 사진으로 싣는 이가 몇이나 될까 아리송합니다.

 왜 사진을 찍는가요. 왜 사진에 담는가요. 사진기를 쥐고 무엇을 바라보는가요. 사진기를 든 채 어디에 서나요.

 사진을 찍어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요. 사진에 담아 무엇을 보여주려 하나요.

 사진기를 든 나하고 사진기를 바라보는 너 사이에는 어떠한 징검돌이나 걸림돌이 있는가요.

 살아가는 사람들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살아숨쉬도록 하는 몫을 맡은 사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니, 글이든 그림이든 노래이든 춤이든 만화이든 영화이든 연극이든 한결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살아숨쉬도록 할 때에 빛이 나면서 맛이 납니다. 살아숨쉬도록 하는 기운을 불어넣는 손길로 빚는 사진이요, 살아숨쉬도록 하는 기운을 샘솟게 돕는 눈길로 일구는 사진입니다. (4344.8.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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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來ちゃん (單行本)
川島小鳥 지음 / ナナロク社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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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한테 물려주는 선물일까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33] 카와시마 코토리(川島小鳥), 《未來ちゃん》(ナナロク社,2011)



 어버이가 아이를 찍은 사진을 아이도 함께 즐깁니다. 아이도 사진을 얼마든지 잘 들여다볼 줄 알며, 아이는 아이대로 잘 찍힌 사진을 헤아리며, 더 좋아하는 사진이 따로 있습니다.

 사진찍기를 늘 하면서 살아가는 아버지와 살아가는 우리 집 네 살배기 아이는 첫 돌이 아직 안 될 무렵부터 사진을 보았습니다. 첫 돌이 아직 안 되었을 때부터 사진기를 만지작거렸고, 디지털사진기 단추를 요모조모 누르며 사진 보기를 즐겼습니다. 이제 네 살이 되면서 사진과 그림과 만화를 찬찬히 가릴 뿐 아니라, 사진에 어떤 이야기가 깃들었는가를 환하게 읽습니다.

 아이는 사진을 이론으로나 실천으로나 배우지 않습니다. 딱히 배운 적이 없으며, 굳이 가르칠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한테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고, 아이한테 책읽기나 영어나 한자를 가르친 적 또한 없습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하루하루 반가이 맞이하며 즐거이 뛰놀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사진찍기를 늘 하는 아버지는 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아이 모습을 수없이 찍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날마다 사진으로 담습니다. 어느 날은 백 장 가까이 담고, 어느 날은 아이가 하도 미운 짓을 일삼는다고 여겨 고작 서너 장만 담습니다. 둘째가 태어난 다음부터는 집일이 멧더미처럼 쌓이는데다가 몸이 지치는 바람에 사진을 제대로 못 찍습니다. 그래도 어찌저찌 날마다 사진 몇 장씩 꼬박꼬박 찍습니다.

 하루를 보내고 이틀을 보내다가는 한 주가 흐르며 한 달이 갑니다. 이렇게 흐르거나 가는 날과 달이 모여 해를 이루겠지요. 때때로 몇 달 앞서 사진이나 한두 해 앞서 사진을 들춥니다. 날마다 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서도 몇 달 앞서 모습을 들여다보며 깜짝 놀랍니다. 날마다 아이가 달라지는 모습을 새삼스레 느끼지만, 한꺼번에 여러 달이나 여러 해를 훑으니 이 아이가 이렇게 날마다 클 뿐 아니라 다른 얼굴 다른 모습 다른 이야기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아이를 사진으로 찍는 어버이는, 나중에 아이가 자라서 제 어린 나날 모습을 기쁘게 돌아보거나 돌이키도록 돕는다기보다, 아이가 자라면서 아이가 어린 나날 어떤 모습이었고 어떤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살았는가를 ‘잊거나 놓칠 어버이’를 꾸준히 일깨우면서 ‘아이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즐거움과 고단함’을 찬찬히 느끼도록 돕는지 모릅니다. 그렇겠지요. 아무렴.

 카와시마 코토리(川島小鳥) 님이 일군 사진책 《未來ちゃん》(ナナロク社,2011)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일본 사진쟁이 카와시마 코토리 님은 당신 딸아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사진으로 담았고, 이 사진을 그러모아 사진책 하나로 내놓습니다. 카와시마 코토리 님이 사내인지 가시내인지, 또 도시내기인지 시골내기인지 모릅니다. 그저 이 사진책을 들여다보는 동안, 퍽 외지다 싶은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딸아이가 참 재미나게 놀면서 꽤 예쁘고 씩씩하게 크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일본땅에서 태어나 일본사람으로 살아가는 넋을 고이 느낍니다.

 생각해 보면, 카와시마 코토리 님 사진책 《未來ちゃん》은 당신 딸아이를 기리면서 내놓았을 뿐 아니라, 당신 딸아이한테 바치는 선물이랄 수 있겠지요. 그리고, 이 사진책 《未來ちゃん》은 누구보다 딸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로서 느낀 보람과 기쁨과 고됨과 눈물을 알알이 담아 당신한테 스스로 바치는 선물이랄 수 있어요.

 아이한테 물려주는 선물인 사진이기 앞서, 어버이 스스로한테 바치는 선물인 사진입니다. 아이가 먼 뒷날 즐겁게 돌아볼 선물인 사진이기 앞서, 어버이 스스로 먼 뒷날 기쁘게 곱씹을 선물인 사진입니다.

 아이 사진에는 아이가 나날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만 담기지 않습니다. 아이가 나날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곁에서 아끼고 사랑하며 믿는 고운 어버이 모습이 살포시 담기고 나란히 스밉니다.

 다만, 어버이 되는 사람은 사진기를 들었으니 사진에는 안 나와요. 사진에는 오직 아이만 나옵니다. 내가 찍는 내 아이 사진도 똑같습니다. 내가 찍는 내 아이 사진에도 내 모습은 한 번도 비치지 않습니다. 오로지 내 아이만 나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 사진에는 어김없이 ‘아이하고 살아가는 어버이 눈물과 웃음’이 곳곳에 깃듭니다. 살며시 스밉니다. 아리따이 뱁니다.

 아이가 웃을 때에 어버이도 웃습니다. 아이가 울 때에 어버이도 웁니다. 아이가 넘어질 때에 어버이도 넘어집니다. 아이가 콩콩 뛰며 달리기를 할 때에 어버이도 콩콩 뛰며 달리기를 합니다.

 내 어버이는 나한테 고운 목숨을 선물했고, 나는 내 아이한테 고운 목숨을 선물합니다. 내가 먹는 밥은 숱한 알곡이 몸을 바친 목숨이요, 숱한 알곡은 흙과 물과 바람과 햇살을 머금으며 자랍니다. 돌고 도는 삶이면서, 돌고 도는 사랑이요, 돌고 도는 아름다운 꿈과 이야기입니다. (4344.8.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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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1-08-11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분이 알려주기를,
사진쟁이 딸이 아니라
친구 딸이라고 하네요 @.@

친구 딸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사진으로 담았다고 한다면
글이 아주 달라야 하는데...

에구구.... ㅠ.ㅜ
이분 다른 사진책도 곧 한 권 사서 읽고 나서
느낌글을 쓸 생각이라,
글에서 고치기가 엄두가 안 나네요....
 

[함께 살아가는 말 67] 풀사마귀

 자전거를 타고 읍내를 다녀오는 길에 새까만 아스팔트길에 버티고 선 사마귀를 봅니다. 자전거 바퀴는 사마귀를 밟지 않고 살살 비키지만, 자동차 바퀴는 이 까만 길에 풀빛 사마귀가 선 줄을 알아챌까요, 알아채지 않고 밟을까요. 읍내로 가다가 차에 밟힌 풀빛 벌레를 한 마리 보았습니다. 머리부터 몸통까지 아주 바스라져서 메뚜기인지 방아깨비인지 사마귀인지 알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까만 길바닥에 풀빛 주검은 또렷하게 아로새겨집니다. 두 다리로 천천히 걷거나 자전거로 살살 달렸다면 까만 길바닥에 선 풀빛 벌레를 쉬 알아보겠지요. 자전거를 타더라도 싱싱 내달리면 알아보지 못할 텐데, 자동차를 타면 천천히 몬다 할지라도 풀빛 사마귀를 못 알아봅니다. 자동차를 타면 사마귀이고 나비이고 잠자리이고 개구리이고 그자 밟아댑니다. 이제 도시이고 시골이고 자동차가 한가득이라, 풀빛 몸뚱이를 수풀에 숨기며 먹이를 찾는 벌레들은 들새나 커다란 벌레보다 사람이 무섭습니다. 수풀에서는 풀사마귀나 풀메뚜기이면 되지만, 까만 아스팔트길에서는 먹사마귀나 먹메뚜기가 되더라도 제 몸을 지키지 못합니다. 아니, 까만 길에서 먹사마귀가 된다면 자전거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밟을는지 몰라요. 풀이 드문 흙땅에서는 흙사마귀가 될 텐데, 가만히 보니 누런 흙땅이나 흙길을 이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4344.8.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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