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때문에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동무 7
이원수 지음, 이태수 그림 / 우리교육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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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면서 살아갈 아이와 어버이
 [어린이책 읽는 삶 6] 이원수, 《나비 때문에》(우리교육,2003)



- 책이름 : 나비 때문에
- 글 : 이원수
- 그림 : 이태수
- 펴낸곳 : 우리교육 (2003.8.20.)
- 책값 : 7000원



 (1) 사랑하며 살아갈 고운 목숨


 둘째 아이 백날째를 맞이해서 음성 할머니랑 할아버지하고 일산 할머니랑 할아버지를 함께 만납니다. 음성 할아버지가 호젓한 물가 밥집에 자리를 맡았다고 해서 밥집 일꾼이 커다란 자동차를 이끌고 모두를 태우러 옵니다. 어른 여섯과 아이 둘이 탑니다. 네 살 첫째 아이는 아버지 무릎에 안기며 앞자리에 앉습니다. 커다란 자동차는 에어컨 바람으로 가득합니다. 바깥은 후덥지근한 날씨이지만, 자동차 안쪽은 썰렁한 찬바람입니다.

 커다란 자동차에 타고 문을 탕 닫자마자 아버지 무릎에 앉은 아이가 말합니다. “아, 냄새!” 아이는 코를 싸쥡니다. 자동차가 달립니다. 아이는 자꾸자꾸 “아, 냄새!” 하고 되풀이합니다. 아버지도 ‘에어컨 바람 냄새’가 싫습니다. 싫고 괴롭지만 ‘어른인 탓’에 차마 입밖으로 내뱉지 못합니다. 아이가 너덧 차례 되풀이 말할 무렵, “에어컨 바람 냄새가 힘들구나.” 하고 가늘게 말하면서 슬쩍 창문을 엽니다. 창문을 타고 바깥 논밭을 흐르는 바람이 들어옵니다. 아, 이 바람이 얼마나 좋은가. 시골자락 논밭을 흐르던 바람을 쐬면서 자동차를 타면 얼마나 시원한가.

 아이는 비로소 손을 내립니다. 냄새가 난다는 말은 이제 더는 하지 않습니다. 바람맞이 놀이를 하지만 눈을 뜨기 어렵습니다. 자전거로 내리막을 달릴 때에도 이만 한 빠르기에서도 눈을 뜨기 어려운데, 훨씬 빠른 자동차에서는 창문을 열어 바깥바람을 쐬면 눈을 뜨기 더 어렵지요.

 그런데, 이렇게 창문을 연대서 ‘자동차 냄새’가 가시지는 않습니다. 아스팔트길을 달리는걸요. 이 아스팔트길에는 자동차가 달리며 닳는 고무바퀴 까만 먼지가 곱게(?) 내려앉다가는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휭휭 날립니다. 자동차 뒤꽁지에서 내뿜는 배기가스 먼지가 둥둥 떠다니며 창문을 타고 들어옵니다. 창문을 닫을 때에는 자동차 엔진이 있는 맨앞에서 기름이 타는 냄새와 엔진이 도는 냄새가 조용히 스며듭니다.

 자동차를 몰기에 더 빨리 더 아늑하게 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품과 말미를 아낍니다. 그러나, 나는 궁금하게 여깁니다. 이렇게까지 더 빨리 가야만 하나요. 이렇게 가는 길이 더 아늑할까요. 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더 빨리 어디론가 움직이는 일이 우리 삶에서 가장 대수로운가요.


.. 우리(개와 고양이)는 이렇게 매일 장난을 했습니다. 나는 말할 것도 없고, 고양이도 나를 정말 아프게 물거나 차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장난이지요. 장난인 줄 잘 알면서도, 내가 화가 나서 그놈을 잡으려 뜀박질을 하는 건 쬐꼬만 게 버릇없이 굴기 때문일 뿐입니다. 그런데 내가 늘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건 내 걸음이 고양이를 따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작은 놈에게 내가 지는 게 싫어서 약이 오르는 것입니다 … “이 자식아! 왜 꽃밭은 마구 짓밟고 지랄이야?” “오빠, 나비는 암만 뛰어다녀도 꽃나무 하나 부러뜨리지 않지? 참 용해.” 꽃나무를 다치는 건 나(개)고, 나비는 하나도 다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참 속상합니다 ..  (22, 25쪽)


 달리는 자동차를 탄 사람들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달리는 자동차를 탄 사람들은 ‘앞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지,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지 않습니다. 말 한 마디를 읊으면서 서로 어떤 느낌이거나 생각인지를 가만히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내가 눈이 먼 사람이라 하더라도 서로 마주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하고 등을 진 채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사뭇 다릅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소리를 주고받는다는 느낌은 대단히 큽니다.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결이 나와 마주한 사랑스러운 님 얼굴로 가 닿는 느낌은 아주 애틋합니다. 나와 마주한 사랑스러운 님 입에서 나오는 소리무늬가 내 얼굴을 타고 흐르면서 내 귀로 스며드는 느낌은 몹시 고맙습니다.

 즐겁게 살아가자는 나날입니다. 기쁘게 누리자는 삶입니다. 예쁘게 어우러지자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은, 나라도 겨레도 학교도 돈도 이름도 뛰어넘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제도는 우두머리와 세금과 군대가 있습니다. 한 핏줄끼리만 사랑할 까닭이 없습니다. 학교나 돈이나 이름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채 사랑이 꽃피울 수 없습니다.

 즐거이 어깨동무하는 손길이 사랑입니다. 예쁘게 소꿉을 만지작거리는 손가락이 사랑입니다. 신나게 고무줄을 튕기고 깨끔발을 하는 몸짓이 사랑입니다.


.. “왜들 싸우는 거냐? 너 때렸구나.” 선생님은 은준이를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녀요. 먼저 날 할퀴었어요.” 은준이는 손목을 내밀어 보였습니다. “학교서 싸움하면 못쓴다고 하지 않았니? 동무끼리 싸우는 것 아니야. 알겠니? 또 싸우면 벌선다.” 은준이는 선생님이 저를 나무라는 것이 싫었습니다. 동무 아이가 구슬을 뺏아 가려고 한 건 모르고 저만 나무랍니다. 손목을 할퀸 걸 보여 드렸는데도 우는 아이보다 저를 더 나무랍니다 ..  (58쪽)


 자동차를 얻어 탈 때면 늘 생각합니다. 이 자동차에 짐을 싣거나 사람을 실으며 일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자동차를 몰밖에 없습니다. 자동차가 있을 때랑 없을 때는 참 크게 다릅니다. 그런데 자동차를 몰자면 자동차를 장만해야 하고 기름값을 치러야 하며 보험삯을 물어야 합니다. 이런저런 돈을 들이자면 돈을 더 벌어야 하고, 돈을 더 버는 만큼 돈벌이를 더 지키자니 자동차를 더 빨리 몰아 돈벌이를 더 후딱후딱 해치워야 합니다.

 자동차가 없으면 돈벌이는 더 줄겠지요. 돈벌이가 더 주는 만큼 자동차로 빨리빨리 느긋하게 다니며 더 누리던 삶은 이제 더 없겠지요. 그러나, 돈벌이가 더 주는 만큼 무언가 더 생기기 마련입니다. 돈벌이가 더 느는 만큼 내 마음대로 내 삶을 아낄 겨를은 더 줄어듭니다.

 무엇을 누릴 삶인가를 헤아려야 합니다. 어떤 사랑을 아끼려는 나날인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누구하고 이웃이나 동무를 맺고 내 살붙이하고 어떻게 어깨동무를 하고픈 꿈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찬찬히 깨닫고 나서 자동차를 장만하든 장만하지 않든 할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이 세 가지를 하나도 깨닫지 않은 채 서둘러 자동차를 장만한다면, 애써 자동차를 장만했더라도 즐겁게 쓰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자동차가 있어야 하느냐 없어야 하느냐 하는 갈림길이 아닙니다. 내 삶을 내 손으로 얼마나 사랑하고, 나와 함께 살아갈 살붙이나 이웃이나 동무하고 어떤 사랑을 꽃피우려 하는가 하는 대목입니다.

 사랑하면서 살아갈 내 고운 목숨이니까요. 툭탁거리며 싸우거나 눈알을 부라리며 다툴 슬픈 목숨은 아니니까요. 서로 아끼면서 어우러질 예쁜 보금자리이니까요. 미움과 시샘이 가득한 고달프며 아픈 보금자리는 아니니까요.


 (2) 나비 때문에 살아간다


 ‘나비 때문에’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담은 짤막한 동화를 그러모은 어린이책 《나비 때문에》(우리교육,2003)를 읽습니다.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 동화에 찬찬한 이태수 님 그림이 깃든 고운 이야기책입니다. 찬찬한 글에 걸맞게 찬찬한 그림이 붙습니다. 고운 글에 알맞게 고운 그림이 어우러집니다.

 나비 때문이든 동무 때문이든 뭐 누구 때문이든 그닥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가만히 살피면, 누구 때문에 엉망이 되지 않습니다. 누구 때문에 더 나빠진다거나 더 좋아진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직 내 마음에 달린 일입니다. 내 마음이 어느 자리에 서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일입니다.


.. “임마 알아. 난 다 알아.” “어떻게 알아?” “나도 잘못했고 너도 잘못한 거야. 인제 싸우지 말잔 말이야.” “응, 그래.” 은준이는 인제 푸른 등나무 그늘에 가서 혼자 놀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여러 아이들과 같이 노는 것이 정말 재미있다는 걸 똑똑히 알게 된 것입니다 ..  (74쪽)


 내 마음이 사랑이라면 내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 마음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내 넋이 믿음이라면 내 이웃이 되든 동무가 되든 살붙이가 되든 서로서로 늘 믿음입니다.

 더 밉거나 더 좋지 않습니다. 한결같은 길벗입니다. 더 반갑거나 더 못마땅하지 않아요. 하나같이 벗바리예요.

 나부터 마음을 살며시 기울일 때에 착한 삶입니다. 나 스스로 마음을 차분히 들일 때에 참다운 삶입니다. 내 손길과 내 눈길로 가만히 얼싸안을 때에 아름다운 삶입니다.


.. “아가, 아가들아, 인제 때가 되었구나. 은빛으로 부푼 너희들이 내게서 떠나갈 때가…….” “엄마,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이제 바람이 불어 오면 너희들은 바람을 따라 춤을 추며 멀리 사라져 가게 될 게다. 어느 들판일까? 산발치일까 그건 모르지만…….” “여기서 살고 싶은데요?” “아가, 엄마 말을 들어 봐라. 나는 일생을 사람들 발에 짓밟히면서도 꿋꿋이 살아왔다. 그러면서 너희들을 기른 것은 지금의 이 경사스런 이별을 하기 위해서였단다. 이별은 슬프지만 그 슬픔을 씹어 삼키고 나면, 작디작은 너희들도 나처럼 어엿한 민들레가 된단다.” ..  (104∼105쪽)


 귀뚜라미 소리가 우렁찹니다. 귀뚜라미 소리에 섞이는 다른 풀벌레 소리가 어여쁩니다. 이들 풀벌레는 하루 스물네 시간을 쉬지 않고 갖은 노래로 채웁니다. 나는 빨래를 할 때이든 밥을 할 때이든 비질을 할 때이든 우는 아이를 안을 때이든 첫째 아이 피아노 소리를 들을 때이든, 언제나 이 풀벌레 소리를 듣습니다. 귀를 기울이면 한결 또렷이 들리고, 귀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내 귀와 온몸으로 젖어듭니다. 때때로 지나다니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이들 모든 풀벌레 소리가 한꺼번에 잦아듭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아름답던 노래 실타래가 그만 톡 끊어집니다. 그러나,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다 지나가고 나면 풀벌레는 다시금 기운차게 노래하면서 맑은 소리를 곱게 나누어 줍니다.

 시골자락뿐 아니라 도시자락에도 풀벌레는 있습니다. 풀섶이 거의 없다시피 한 도시라 할 테니 풀벌레 깃들 보금자리는 거의 없겠지요. 아파트 꽃밭에 풀벌레가 깃들 만하지만 꽃밭을 볼 만하게 꾸미자며 풀약을 자꾸 치면 이곳에서조차 풀벌레는 삶을 일구지 못할 테지요.

 온통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기계 소리밖에 들릴 길이 없는 도시자락이라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메마르지 않게끔 풀벌레는 한 마리 두 마리 목숨줄을 잇습니다. 그나마 참새와 비둘기가 이곳저곳 날아다니며 날갯짓 소리를 들려주고 힘겨이 살아내는 새들 울음소리를 나누어 줍니다.

 이 소리 저 소리가 내 마음으로 스며들며 내 몸을 움직입니다. 소리에 묻은 결과 무늬가 내 삶을 한결 고운 결과 무늬로 거듭나도록 돕습니다. 누구나 하루 스물네 시간을 풀벌레 소리에 폭 싸인 채 보낸다면, 온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믿음과 사랑이 감도는 따사롭고 넉넉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리라 생각합니다.

 나와 너와 우리는 다 함께 사랑하면서 살아갈 사람입니다. (4344.9.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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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8.26.
 : 새 사진기 들고 첫 마실



- 그동안 목걸이처럼 쓰던 무겁고 큰 사진기를 내려놓는다. 새 보금자리로 옮길 때부터 옆지기하고 아이가 쓰도록 마련한 자그맣고 가벼운 사진기를 목에 건다. 새로 장만한 사진기는 목에 걸든 손에 쥐든 무게를 느끼기 어렵다. 참 가볍고 작다. 참 가볍고 작은데, 화소수는 내가 여러 해째 쓰는 무겁고 큰 사진기하고 엇비슷하다. 어느 모로 본다면, 자그맣고 가벼운 디지털사진기는 커다랗고 무거운 디지털사진기보다 화소수가 높다.

- 자그맣고 가벼운 사진기는 완전수동으로 놓고 빛느낌이나 빛깔이나 그림자를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웬만한 자리에서는 자동으로 찍어야 한다. 웬만한 자리에서는 자동으로 불을 터뜨리거나 감도를 높이기에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 잘 안 나온다. 그러나, 이 사진기를 목에 걸고 언덕을 넘을 때에는 목이 안 아프고 몸이 덜 고단하다.

- 읍내 찐빵집에 들러 만두랑 찐빵을 산다. 아이가 찐빵집 할매와 할배 앞에서 까르르 웃으면서 논다. 둘째는 갓난쟁이라 하지만 워낙 얌전한데, 첫째는 갓난쟁이 때부터 다른 사람한테 덥석 잘 안기고 잘 웃으며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크면 클수록 귀여움을 더 많이 받는다.

- 옆지기가 먹고 싶다 해서 피자를 산다. 몇 번 들르지 않았으나 그동안 가던 피자집은 ‘맛은 있으나 마음씨가 차가웁’기에 내키지 않는다. 오늘 새로 간 피자집은 ‘맛은 떨어지지만 마음씨가 차가웁지 않’다. 나는 맛이 더 나은 데로 가지 못한다. 애쓰고 힘써도 맛을 더 낫게 하지 못할는지 모르지만, 착하거나 따스히 일하는 사람들 가게에서 물건이나 먹을거리를 사고 싶다. 나는 돈을 더 벌 수 있는 일자리보다 집식구하고 더 사랑스레 어울릴 겨를을 낼 수 있는 일자리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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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8.13.
 : 내장 터진 개구리와 빗길


- 장날은 어제 읍내로 나오려 했지만, 비가 너무 쏟아지는 바람에 길을 나서지 못했다. 13일인 오늘도 낮부터 비가 내린다고 했지만 아침에는 비가 멎었기에 아이와 함께 읍내로 마실하기로 한다. 오늘 어떤 먹을거리를 장만해야 하는가를 수첩에 적는다. 당근, 양배추, 마늘, 무, 양파, 오이.

- 아이는 오랜만에 자전거를 탄다며 좋아한다. 아이를 수레에 앉히고 띠를 채우는데, 띠에 핀 곰팡이가 보인다. 비가 끝없이 내리니 이 띠에까지 곰팡이가 앉는가.

- 바람을 가르며 달린다. 읍내로 가는 오르막에서 신나게 땀흘리며 오르다가 개구리 한 마리를 본다. 개구리는 내장이 다 튀어나왔고 머리가 어디론가 날아갔다. 자동차에 치이고 밟혀 죽은 개구리 주검을 지나친다. 조금 가다가 자전거를 돌려 개구리 주검 자리로 돌아온다. 딱하게 죽은 개구리한테 고개를 숙인 다음 사진을 찍는다. 수레에 앉은 아이가 고개를 내밀며 죽은 개구리를 바라본다.

- 읍내에 닿을 무렵 빗방울이 듣는다. 우리 집에도 빗방울이 들을까. 집에 전화해서 마당에 내놓은 빨래를 걷으라고 이야기한다.

- 가게에 들러 오늘 장만할 먹을거리를 장만해서 가방에 담는다. 자전거집에 들러 내 자전거 뒷바퀴 옆자리에 깃대꽂이를 단다. 깆대꽂이에 구멍을 내어 뒷바퀴 버팀쇠 한쪽에 붙인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빗줄기가 굵어진다. 수레 안쪽에 물이 튀지 않도록 종이상자 하나를 펼쳐서 깐다. 아이한테 비옷을 입으라 한다. 덮개를 닫는다. 나도 비옷을 입는다. 빗줄기가 아주 거세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들이붓는다. 들이붓는 빗줄기를 가르며 달리자니 죽을맛이다. 아이는 수레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할까. 덮개를 후려치는 무시무시한 빗줄기를 아이는 어떻게 느낄까.

- 빗줄기는 숯고개 오르막까지 가늘어지지 않는다. 숯고개 오르막에 닿을 무렵 빗줄기가 잦아든다. 참 사람을 애먹이는 비로군요, 하고 생각하다가는, 그래도 이렇게 고갯마루부터는 비가 그쳤으니 고맙군요, 하고 인사를 한다.

- 아이는 고갯마루에 닿을 무렵 잠든다. 덮개를 덮은 채 내리막을 달린다. 비탈논에서 넘치는 물이 내리막길을 적신다. 흐르는 물이 자전거로 쏟아진다. 집에 닿으니 온몸은 비와 땀으로 범벅이고, 아이는 새근새근 잘 잔다. 자는 아이 비옷을 살며시 벗기고 살살 안고 자리에 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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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8.10.
 : 사진기는 살짝 내려놓고



- 읍내로 후다닥 볼일을 보러 나가는 길. 아이는 집에서 어머니하고 영화를 보기로 하고 아버지 혼자 나선다. 아버지 혼자 길을 나설 때에도 으레 사진기를 챙기지만, 비가 하도 끊이지 않기에 오늘은 사진기를 내려놓고 나선다. 아이를 수레에 태우지 않는데다가 사진기까지 집에 내려놓고 나서는 마실길은 참 따분하다.

- 오가는 자동차가 거의 없는 시골길을 달리는데, 이런 길을 달리면서도 아주 가끔 보는 얄궂은 자동차가 꼭 있다. 오가는 자동차가 거의 없다지만, 길가에 함부로 대는 자동차들. 이들은 왜 아무 데나 자동차를 댈까. 읍내에서든 시내에서든 똑같은데,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저희 볼일을 보자며 아무 데나 차를 세운다. 자동차가 한 줄로 죽 섰어도 옆에다가 새로 차를 멈춘다. 뒤에서 지나갈 차가 지나가지 못하게 길을 막으면서 저희 볼일을 버젓이 본다. 무슨 마음일까. 무슨 생각일까. 어떻게 이런 못된 버릇이 들었을까. 왜 이런 못난 매무새로 살아갈까.

- 길바닥을 기어가는 개미를 본다. 언제나 개미를 본다. 자그마한 벌레가 내 앞을 볼볼볼 기어갈 때면 얼른 뒷거울을 보며 뒤따르는 자동차가 있는가를 살핀다. 내 자전거 바퀴가 벌레를 밟지 않게끔 요리조리 비껴 달린다.

- 읍내를 다녀오는 그닥 길지 않은 시골길에서 수많은 주검을 늘 보아야 한다. 어떠한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죽음이요, 어떠한 사람도, 환경운동 일꾼도, 진보 지식인도, 우익인사도 헤아리지 않는 죽음이다. 길바닥 개미와 길바닥 나비를 바라보는 내 자전거는 바보스럽거나 어리석은 자전거일까.

- 길은 자꾸 넓어진다. 길은 끝없이 늘어난다. 사람이 사람다이 오갈 길은 좀처럼 늘지 않는데다가, 사람이 사람다이 오가던 길은 이 옆을 싱싱 달리는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 때문에 숨이 막힌다.

- 읍내에서 몇 가지 먹을거리를 장만하고 우체국을 들르고 한 다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끔찍한 사람들을 겪다. 이들은 아무런 자동차가 오가지 않는 호젓하며 고즈넉한 시골길에서 시끄러이 빵빵대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가더니, 이렇게 스쳐 지나가면서 담뱃재를 탁탁 턴다. 너무 어처구니없지만, 막말이나 거친 짓을 하고 싶지 않지만, 오른손을 들어 가운뎃손가락을 쭉 뻗으며 앞으로 휘젓는다. 이들이 내 몸짓을 볼 일은 없겠지. 이들은 어디에서나 이렇게 살겠지. 부디, 사람 치지 말고 멧짐승 다치지 말면서 자동차를 몰기를 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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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7.30.
 : 자전거쪽지 2011.7.30.


- 내 자전거는 아이를 태우고 수박을 싣고는 멧부리를 넘는다. 아이는 수레에 앉아 노래를 부르며, 아버지는 오르막에서 땀을 비처럼 쏟으면서 멧길을 달린다.

- 아이야, 즐겁지? 그래, 네가 즐거웁도록 이렇게 자전거를 몰아야지. 아버지는 너랑 길을 나서기 앞서 둘째 기저귀 빨래를 남김없이 해 놓는다. 너와 읍내를 다녀온 다음에는 너를 씻기거나 너를 재운 다음 네 옷가지하고 아버지 옷가지에다가 이동안 쌓인 동생 기저귀를 함께 빨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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