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집일 하기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 동생이랑 늘 함께 지내는 첫째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집일을 할 때에 곁에서 저도 따라하겠다 하면서 한두 가지 살짝 배우곤 한다. 배운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배운다기보다 놀이에 가까운데, 첫째 아이는 집에서 제 어버이랑 살아가며 집일을 지켜보기에 집일이 천천히 몸에 익으면서 저절로 스며들 만하다. 아버지가 밥상을 행주로 닦으려 할 때면 첫째는 언제나 “내가, 내가.” 하면서 행주를 빼앗으려 한다.

 첫째는 이제껏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고, 앞으로도 어린이집에 보낼 마음이 없다. 이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무얼 보고 무얼 배우겠는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어떤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놀이를 즐기는 어린이집이겠는가. 아니, 무엇을 배운다고 하기 앞서, 어린이집에 모이는 아이들한테는 무슨 삶이 있을까 궁금하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좋을는지 궁금하다.

 지난 2008년 8월부터 올 2011년 9월까지 이럭저럭 집에서만 일하면서 그럭저럭 버티었다. 살림살이를 춘천으로 옮기면 아버지가 춘천에서 출퇴근 비슷하게 하면서 일해야 할는지 모른다. 출퇴근 비슷하게 일해야 한다면 이곳 멧골자락 살림집에 있을 때하고 견주어 돈을 어느 만큼 더 벌겠지. 아니, 이곳에서는 돈을 거의 안 벌며, 또 돈을 거의 안 쓰며 살았으나, 집식구 하나가 돈을 벌러 밖으로 나간다면, 이제부터는 돈을 이렁저렁 벌며, 또 돈을 이렁저렁 쓰며 살 수밖에 없겠지.

 돈을 써야 하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돈을 벌기 때문에 돈을 쓸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집에서 아이들하고 복닥거리기 때문에 어설프거나 어수룩하게 구는 어버이 몸짓이라 하더라도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배우며 사랑을 나눈다. (4344.9.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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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9-06 06:40   좋아요 0 | URL
하하, 아이가 오늘은 머리를 양갈래로 묶었네, 하고 다음 사진을 봤더니 엄마를 따라했군요 ^^ 예뻐요.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묶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은 정말 부모가 하는 대로 따라 해보고 싶어하지요. 특히 첫째는 더 그런 것 같아요.

파란놀 2011-09-06 07:27   좋아요 0 | URL
어머니를 따라했다기보다...
영화 삐삐를 봤기 때문이에요 ^^;;;

첫째는 삐삐 영화를 100번도 넘게 봤어요 -_-;;;;
디브이디 사 놓은 녀석을 아주 신나게 잘 본답니다.
참 잘 빚은 영화라서 엄마 아빠도 늘 아이하고 함께 봐요 ^^;;

카스피 2011-09-07 22:14   좋아요 0 | URL
ㅎㅎ 따님이 웬 언니와 있나 했더니 엄마네요.따님이 엄말 도와주니 엄마도 좀 편하실듯^^

파란놀 2011-09-08 03:31   좋아요 0 | URL
아직은 도와주는 일이 아니라
옆에서 시늉하는 놀이예요.
그리고 집안일은 거의 다 제가 합니다 ^^;;;;

카스피 2011-09-09 20:10   좋아요 0 | URL
ㅎㅎ 된장님이 좀 힘드실것 같네요^^
 


 목 가누기


 집이 아닌 병원에서 아이를 받아야 할 때부터 둘째는 첫째와 마찬가지로 온갖 안 좋은 것들을 맞아들여야 했다. 첫째 때처럼 병원에서 함부로 예방주사를 놓지 않도록 하려고 이 얘기는 병원에 대고 해서 비형간염 예방주사는 놓지 않도록 했으나, 아이 어머니가 기운이 다 빠져 쭉 뻗으니, 아기를 마구 잡아뽑듯이 했다. 병원 일꾼이라면 마땅히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왜 새벽에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왔겠는가.

 둘째는 뒷통수가 비뚤어지고 말았다. 백날이 되도록 늘 한쪽으로 고개를 눕히려 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판판한 쪽으로 누워야 느긋하며 좋을 테니까.

 둘째는 하루하루 눈이 밝아진다. 이제는 불빛이나 햇빛이 어느 만큼 익숙하다. 조금 떨어진 데에 있는 어머니나 아버지나 누나를 알아볼 수 있다. 백날이 되기 앞서는 곁에 식구들이 있어도 오른쪽으로 바라보지 않기 일쑤였다. 이제 둘째는 식구들이 오른쪽에 있으면 가만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있는다. 어머니이든 아버지이든 누나이든, 비뚤어진 뒷통수라 눕기 나쁠 테지만, 이제 둘째는 오른쪽으로 물끄러미 바라볼 줄 안다. 그래도 이 아이는 아직 왼쪽으로 보기가 더 수월하다고 여긴다. (4344.9.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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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1-09-06 08:32   좋아요 0 | URL
이 사진은... 그저 추천할 따름입니다. 방실.

파란놀 2011-09-06 08:33   좋아요 0 | URL
날씨가 바뀌며 아이가 자꾸 얼굴이 간지럽다고 긁어서 이불로 손을 좀 여미어 놔 보았답니다 ^^;;;;

카스피 2011-09-07 22:13   좋아요 0 | URL
ㅎㅎ 아드님이 넘 귀여우시네용^^

파란놀 2011-09-08 03:31   좋아요 0 | URL
오늘도 새벽 세 시에 발버둥치다가 겨우 새근새근 잠들어 주시네요 @.@
 

 

한글날에 맞추어 태어나는 책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철수와영희) 

교정지 교정을 마쳤습니다. 

 

얼마 앞서 <사금일기>를 펴내기도 한 '호연' 님이 그림을 넣어 

사이사이에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하고 말하면 

부끄러운 말이 될까 모르겠네요 ^^;;;; 

 

아무튼, 책은 한글날에 맞추어 

한글날보다 며칠 앞서 나올 수 있으리라 믿어요. 

 

책이 태어나면 널리널리 사랑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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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9-05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저도 관심이 많이 갑니다. 10월이면 아직 한참 남은 줄 알았더니 바로 다음 달이네요 ^^

파란놀 2011-09-05 19:14   좋아요 0 | URL
네, 한가위가 끼어서, 출판사에서는 이번 주에 모든 편집을 마치고 인쇄소에 얼른 넘겨야 겨우 9월 마지막 주에 나와서 배본과 홍보를 할 수 있다고 하네요~

책이 나오면 춘천에서 책잔치(출간기념잔치)를 해요. 춘천으로 살림집을 옮기거든요. 짬 나면 춘천에도 마실을 와 보소서~~~ ^_^
 
이치고다씨 이야기 4
오자와 마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곁에 있는 예쁜 사람과 어깨동무
 [만화책 즐겨읽기 47] 오자와 마리, 《이치고다 씨 이야기 (4)》



 둘째 아이는 어느덧 백날이 지났습니다. 둘째 아이가 우리한테 온 지 한 달 즈음이던 무렵, 새벽나절 이야기를 퍽 고달피 끄적이곤 했습니다. 그무렵 공책에 끄적인 고달픈 이야기를 옮겨적어 봅니다.

 ‘오늘도 새벽 두 시 이십오 분에 번쩍 눈을 떠서 첫째 밤오줌을 누입니다. 이레째 이어지는 장마이기에 방에 불을 넣고는, 지난밤 빨아서 넌 기저귀를 방바닥에 곱게 펼칩니다. 빨래를 새로 더 할까 생각하다가, 아직 방바닥이며 빨랫대이며 다 마르지 않았는데 더 하자면 말리기 힘들다고 느낍니다. 둘째 오줌기저귀를 갈고 셈틀을 켜며 글조각을 붙잡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옆지기는 젖이 불어 짠다며 일어나고, 아이는 어머니 일어나서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깹니다. 새벽 세 시 삼십 분에 잠에서 깬 아이는 다시 눈을 붙일 줄 모릅니다. 잠자리에 드러누워 눈이 말똥말똥해서는 노래를 부르다가 어머니한테서 꾸지람을 듣습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 가운데 호젓하게 글조각을 붙잡는 두어 시간이지만, 오늘은 이 두어 시간을 즐길 수 없겠다고 느낍니다. 둘째는 속이 꾸물꾸물한지 방귀를 북북 뀝니다. 똥을 한 바가지 쏟고서야 잠들는지 모릅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며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니 첫째는 이 소리 때문에라도 다시 잠들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끄적인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이 머나먼 옛날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고작 두 달쯤 앞서 일이지만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안 떠오르는가 싶기도 하지만, 애써 떠올릴 만하지 않으니 안 떠오르는가 싶기도 합니다.

 한편, 아이들이 잠투정을 좀 한다고 아버지 된 사람이 이렇게 꽁꽁거리는 모습이 딱합니다. 잠투정을 하니까 더 달래고, 새벽 세 시에 잠에서 깨어 노래를 부르면 보드라이 달래서 다시 재우면 될 텐데요.

 가만히 돌이키면, 하루하루 살아낸 어제나 그제 모습은 참 부끄럽습니다. 그렇다고 오늘을 더 알뜰히 일구는지는 잘 모릅니다. 부끄럽던 모습이라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달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에 더 마음을 기울이느라, 아니 오늘 하루도 다시금 지치거나 고단하다고 여기며 꽁꽁거리느라, 언제나 새로운 날을 언제나 고맙게 맞아들이지만, 정작 사랑스레 되새길 만큼 내 마음밭에 아로새기지 못한달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오늘 일을 나중에 얼마나 떠올릴까요. 아이들은 저희 어린 나날 어떠한 모습으로 지냈는가를 어느 만큼 또렷하게 되새길까요. 오늘 하루 보내는 삶이란 나중에 어느 만큼 되짚을 만한 값이나 뜻이나 빛이 있을까요.

 
- “하지만 이온에겐 하나뿐인 소중한 거니까요.” (42쪽)
- “정말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 “응.” “왜?” “왜냐니? 그야 친구의 일이니까.” (47쪽)
- ‘예를 들어 할아버지에게 유미가 얼마나 예쁘고 소중한 손녀인가 하는 것도 말이야.’ (100쪽)



 졸리면서 낮잠을 안 자려고 버티는 첫째 아이를 뒤로 한 채 먼저 자리에 눕습니다. 아버지는 으레 새벽 두어 시에 일어나고 첫째는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납니다. 둘째는 새벽 여섯 시 반에서 일곱 시 사이에 깹니다. 어린 아이들이 참 일찍 깨는구나 싶지만, 이 아이들은 자연이 부르는 소리를 맞아들이기에 일찌감치 잠에서 깨어 놀고 싶을 수 있습니다. 자연을 이루는 풀이든 나무이든 풀벌레이든 멧새이든 멧짐승이든 무엇이든 천천히 알맞게 따스해지는 기운을 받으면서 기지개를 켭니다. 기지개를 켠 자연스러운 목숨은 한결같이 새로운 목숨을 빛내면서 새날을 즐거이 살아갑니다. 우리 아이들 또한 새 하루를 새로운 기쁨으로 맞아들이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길을 걷겠지요.

 갓난쟁이는 틈틈이 잠을 잡니다. 어머니 젖을 물고 조금 놀다가는 이내 새근새근 잡니다. 첫째 또한 틈틈이 잠을 잘 만합니다. 신나게 놀고 맛나게 먹다가는 달게 잠들 만합니다. 먹고 놀며 잠들어야 튼튼하게 자라요. 다시 먹고 놀며 잠들어야 아름다이 커요. 거듭 먹고 놀며 잠드는 동안 시나브로 우뚝 섭니다.

 오늘은 첫째 아이가 모처럼 두 시 조금 넘어서 곯아떨어집니다. 첫째 아이가 곯아떨어지고 둘째도 어머니 품에서 고요히 잡니다. 이 틈에 부시시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나서 미룬 기저귀 빨래를 합니다. 똥기저귀 한 장에 오줌기저귀 여덟 장. 이동안 이렇게 많이 나왔다 싶어 놀라지만, 한 시간에 두 장쯤 가볍게 나오니까 세 시간에 아홉 장쯤 나올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슥슥 비누를 문지르고 북북 거품을 냅니다. 똥 기운과 오줌 기운이 깨끗이 빠져나가 다오 하고 빌면서 기저귀를 빱니다. 마지막 기저귀를 헹구고 턴 다음 통에 담으며 ‘다 끝났구나!’ 하고 노래를 부릅니다. 이제 마당으로 나가 하나씩 넙니다. 밝고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잘 마른 빨래를 걷습니다. 날마다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하면서 이 고운 햇살을 아이들 옷가지마다 받아들일 수 있으니 고맙습니다. 빨래를 널고 걷으면서 이 예쁜 햇살을 내 몸뚱이에 맞아들일 수 있으니 좋습니다.

 손으로 기저귀를 빨면서 갓난쟁이가 눈 오줌 기운을 손가락과 손바닥과 손톱으로 느낍니다. 아이가 눈 똥 또한 손가락과 손바닥과 손톱으로 헤아립니다. 코로는 냄새를 맡고 살갗으로는 똥물과 오줌물과 비눗물과 헹굼물을 느낍니다.


- “넌 진짜 착하구나.” “어? 뭐가?” “그 애한테 옷 만들어 줬잖아.” “그야 옷 만드는 걸 좋아하니까. 내가 보기엔 오히려 요스케가 착한 거 같은데.” “어떤 점이?” “방금도 상관없는 일인데 같이 와 줬잖아.” (60쪽)
- “저 아저씨는 나가노라면서?” “미안, 농담이야. 적당히 말해 본 거였어.” “뭐?” “믿는지 어쩐지 확인해 본 거야.” “당연히 믿지. 넌 거짓말 안 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짓 좀 하지 마. 실례야.” (64쪽)


 만화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학산문화사,2011) 4권을 생각합니다. 딸기밭 아가씨는 ‘죽음을 앞두고 넋이 빠져나가는 몸뚱이’에 깃들며 제 목숨을 잇습니다. 굳이 몸뚱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옷이 없어도 되는 외계별 사람 ‘이치고다(딸기밭)’ 아가씨이지만, 아니 아가씨인지 아저씨인지 모르는 노릇입니다만, 이치고다 씨는 작은 인형 몸에 깃들면서 입이 아닌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사람들 이야기를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습니다. 이치고다 씨가 품은 뜻을 마음이라는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착한 사람일 때에만 이 목소리를 착하게 받아들이고, 착한 사람일 때에만 이치고다 씨한테 착한 삶을 들려주며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착하지 않은 사람하고는 왜 마음과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데?’ 하고 궁금해 할 테지만, 착하지 않은 마음으로는 굳이 궁금해 하지 않을 뿐더러, 이치고다 씨처럼 자연스러운 목숨붙이하고는 이야기꽃을 피우려 하지 않겠지요. 곧, 착하지 않은 사람은 살구나무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없습니다. 착하지 않은 사람은 도라지꽃하고 이야기를 섞을 수 없습니다. 착하지 않은 사람은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깃든 눈물과 웃음을 주고받을 수 없습니다.


- “인간 안에 들어가는 게 오래 사는 길이라면, 내 안에 들어와도 돼. 내 몸을 줄게. 난 이제 필요없는 애니까.” “안 돼! 나 그런 말 하나도 안 기뻐. 절대 안 돼! 유미는 계속 유미로 있어야 돼. 안 그러면 내 단 하나뿐인 여자 친구가 없어지잖아!” (전철 안은 놀다 지친 사람들로 가득해서 우리에게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굳이 우주까지 갈 필요도 없이 이 전철 안에서도 우리들은 정말 보잘것없는 너무나 작고 가벼운 존재였다.) (92∼95쪽)
- “아, 그렇구나.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 뭐 받았어?” “우리 아파트에는 산타 안 와. 굴뚝도 없고. 그리고 난 그런 거 안 믿어.” “어? 왜. 왜?” “나도 이제 곧 5학년인데, 얀이야말로 외계인이 그런 걸 믿어?” “어? 아니, 그냥. 재미있어 보이니까 동참해 볼까 뭐 그런 거지.” (140쪽)



 곁에 있는 예쁜 사람과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란 어려운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돈벌이보다 착한 꿈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곁에 있는 예쁜 사람하고 어깨동무를 하자면 내 이름값을 높여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나를 높일 까닭이 없으나 나를 낮출 까닭이 없습니다. 나를 자랑할 까닭이 없으면서 나를 깎아내리거나 숨길 까닭이 없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며 맑게 꿈을 꾸면 됩니다. 착하게 생각하면서 맑게 땀을 흘리면 됩니다. 돈버는 일자리에서도 얼마든지 착하게 손길을 내밀면서 맑게 구슬땀을 흘릴 수 있습니다. 큰 회사라든지 공공기관이라든지 저잣거리 한켠 좌판이라든지, 어디에서건 우리들은 착하게 웃으며 맑게 일할 수 있어요.


- “아카리라면 유미가 뭘 갖고 싶어 하는지 알까 싶어서 전화했어.” “왜 그렇게까지 유미를.” “아마 나도 유미처럼 외로운 아이였으니까, 그런 거 아닐까.” (149쪽)
- 할아버지가 그러셨어. ‘설령 지금 엄마나 아빠가 옆에 없다 해도, 유미가 앞으로 어른이 되어서 누군가와 만나 결혼하면, 그때, 아이를 많이 낳아 대가족을 만들렴. 할아버지는 그때까지 유미 옆에 있을 테니까. 안심하고 어른이 되려무나.’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과 만나 결혼이라니. 그런 먼 미래의 일보다 난 지금, 엄마와 아빠가 그리워. 할아버지가 계시는데. 할아버지를 사랑하는데.



 곁에 있는 예쁜 사람한테 사랑씨를 내밉니다. 곁에 있는 예쁜 사람한테서 사랑씨를 받습니다. 나는 내 사랑씨를 건네고, 짝꿍은 짝꿍 사랑씨를 줍니다. 나한테 깃든 사랑씨는 내 마음밭에 있을 때에도 뿌리를 내려 무럭무럭 자랄 수 있으나, 내 마음밭에서 살살 날아서 내 짝꿍과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 마음밭에 살포시 내려앉아 퍼질 수 있습니다.

 내 사랑씨만으로는 내 마음밭에는 한 가지 풀만 자랍니다. 내 짝꿍 사랑씨를 받아들이면서 내 마음밭에 두 가지 풀이 자랍니다. 내 사랑씨를 나누면서 내 짝꿍 마음밭에 두 가지 풀이 자라도록 돕습니다. 차근차근 사랑씨를 널리 퍼뜨리고, 나 또한 내 마음밭을 착한 넋이 감도는 수많은 사랑씨로 알뜰히 일굽니다. (4344.9.5.달.ㅎㄲㅅㄱ)


― 이치고다 씨 이야기 5 (오자와 마리 글·그림,황경태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3.2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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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비룡소의 그림동화 34
마이클 베다드 글, 바바라 쿠니 그림, 김명수 옮김 / 비룡소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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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으로 살아내는 하루가 시로 태어나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82] 바바라 쿠니·마이클 베다드, 《에밀리》(비룡소,1998)



 이제 내 얼굴은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는 아버지 얼굴입니다. 내가 얼마나 어버이 노릇을 하는지 알 길이 없을 뿐 아니라, 내가 어버이라고 여길 겨를이 없이 지냅니다만, 나를 아버지로 바라보는 두 아이가 시골집에서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며 함께 복닥거립니다.

 이제 나는 내가 홀로 살림을 꾸리며 살아가던 지난날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헤아리지 못할 뿐 아니라, 나를 낳아 함께 살아온 내 어버이하고 고향집에서 지내던 때가 언제쯤이었나 또한 돌아보지 못합니다. 하루하루 나이를 먹기 때문일 수 있고, 집일을 도맡으며 눈이든 코이든 뜰 겨를이 없어 이러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오늘을 삽니다. 어제나 모레나 글피를 사는 사람은 없어요. 오직 오늘을 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 아니면 좀처럼 떠올리지 못한달 수 있어요.

 옆지기와 아이들이 깊이 잠든 새벽녘 일어나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엊그제는 내 아버지 태어난 날이었습니다. 아이들 할아버지 태어난 날이었어요. 나는 우리 살붙이들 새로 깃들 보금자리를 찾느라 바깥마실을 하느라, 그만 할아버지한테 찾아뵙지 못합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할아버지를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내 아버지가 퍽 서운히 여겼을 텐데, 예전에는 어떠했는지 몰라도 바로 오늘 아이들과 함께 찾아뵈어 인사하지 못했으니 서운할밖에 없습니다.

 곰곰이 지난날을 되짚습니다. 내 어버이와 형이랑 고향집에서 지내던 때에 아버지한테 무엇을 선물했던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 고향집을 떠난 뒤로는 아버지가 태어난 날이든 어머니가 태어난 날이든, 전화 한 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며 지냈다고 느낍니다. 마음으로는 ‘오늘이 아버지 태어난 날이구나.’, ‘그래, 오늘은 어머니 태어난 날이야.’ 하고 헤아립니다. 그닥 멀지 않은 데에서 일하며 살아가던 나는 살짝 말미를 얻어 찾아가지 못합니다. 마음속으로 빌고 마음속으로 사랑인사를 보냅니다. 이 사랑인사를 받으셨는지, 이 사랑인사를 안 받으셨는지 잘 모릅니다. 전화나 편지로 소식을 띄우지 못하고 마음만 보낼 때에 즐거이 받으시는지 잘 모릅니다. 거꾸로, 내 아버지나 어머니도 당신 두 아들한테 마음으로 사랑인사를 보내는데, 나 또한 이 사랑인사를 못 느낄 수 있어요. 못 알아챌 만큼 무언가에 빠지거나 바쁘다든지, 못 깨달을 만큼 허둥지둥 휩쓸리는 삶일는지 모릅니다.


.. 우리가 이사온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우편 구멍으로 편지가 들어왔습니다. 나는 편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는 달려가서 그걸 주워 들었습니다. 그리고 문에 난 좁다란 창으로 밖을 살짝 내다보았어요. 거기엔 아무도 없고 겨울만, 온통 새하얀 겨울만 있었습니다 ..  (9쪽)


 아이들 할아버지 태어난 날에 찾아가지 못하는 쓰디쓴 마음에, 시외버스에서 공책을 꺼내어 시를 하나 씁니다. 한가위를 앞두고 먼저 한 번 찾아가고, 다시 한가위에 찾아가자고 생각하면서 공책에 시를 한 줄 두 줄 적습니다. 나한테는 돈이 없으니 맞돈을 봉투에 넣어서 건네지 못합니다. 나로서는 이것저것 무슨 물건을 사서 드릴 마음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떡이나 빵이나 케익을 빚어서 선물할 만큼 이러한 먹을거리를 마련할 솜씨가 없습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란, 공책에 적바림한 시 하나를 깨끗한 종이에 얌전한 글씨로 옮겨적어 슬며시 내미는 한 가지라고 느낍니다.

 ‘사름벼리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 읍내마실을 다녀오는 시골길 오르막, / 여기만 넘으면 집에 다 옵니다. / 벼리는 이무렵 늘 아버지한테 말을 겁니다. / “나 내리고 싶은데. / 나 달리고 싶은데.” / 가방에 따뜻한 만두가 있을 때처럼 / 벼리 어머니 함께 먹을 무언가가 있지 않으면 / 오르막 한켠에 자전거를 세우고 / 수레 띠를 풀어 아이를 번쩍 안아 내립니다. / 오르막에서 벼리는 헉헉대면서도 / 아버지 손을 잡고 씩씩하게 걷습니다. / 아버지는 자전거 끌랴 아이 손 잡으랴 / 아주 뻑적지근합니다. / 이내 오르막이 끝나고 판판한 길, / 벼리는 마음껏 뛰고 달리며 노래합니다. / 멧새와 함께 멧골아이가 됩니다.’

 이렇게 쓴 시 하나를 드리려 생각하는데, 문득 이 시 하나만으로는 모자라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우리 집 아이는 둘이니까, 첫째 아이 이야기만 시를 써서는 안 되지요. 둘째 아이 이야기도 시를 써야지요. 여기에 옆지기 이야기와 내 이야기까지 시를 따로따로 하나씩 써야겠다고 느낍니다. 모두 네 꼭지를 마무리지어 정갈히 적바림해서 드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 아래에는, 눈 속에서 정원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나는 우리 집 보도를 따라, 길을 건너, 노란 집의 울타리 안까지 이어진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 어쩌면 노란 집에 사는 아주머니도 두려워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숨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이 낯선 사람들이 찾아가면 달아나는 거예요 ..  (10, 18쪽)


 나를 좋게 바라보며 밥이나 술을 사 주는 분이 있습니다. 나한테는 돈이 얼마 없고, 바깥밥이나 바깥술을 즐길 만큼 살림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아주 고맙게 밥이며 술을 얻습니다. 밥집이나 술집에서 뒤쪽을 쓸 수 있는 빈 종이 하나를 마련합니다. 숟가락을 싸던 얇은 종이가 되든, 술병에 붙은 딱지가 되든, 살살 펴거나 벗깁니다. 이런 다음 이 작은 종이에 짤막하게 시 한 꼭지 적바림합니다. 내가 오늘 하루 고맙게 살아내면서 받아들인 좋은 넋을 시 한 꼭지로 모두어 적바림합니다. 나는 누구한테 밥을 사 주거나 술을 사 주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작은 종이쪽에 시를 적어 건넬 수 있습니다.

 내가 쓴 시가 잘 쓴 시인지 못 쓴 시인지 따지지 않습니다. 나는 내 마음을 담아서 시를 쓸 뿐입니다. 나는 내 모든 기운과 땀을 들여 살아내는 이 하루를 고마이 여기면서 이러한 삶을 시로 여밀 뿐입니다.

 내가 쓴 시를 알뜰히 엮어 책을 내야 하지 않습니다. 내가 쓴 시를 더 많은 사람이 즐겁게 읽어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나는 풀벌레가 하루 내내 한결같이 노래하듯 내 삶을 한결같이 일구면서 시를 씁니다. 나는 바람이 하루 내내 이리로 흐르고 저리로 흐르듯 내 삶을 꾸준히 다스리면서 시를 씁니다.

 애틋한 옆지기하고 어울리는 시골집 삶자락이 시가 됩니다. 살가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길과 쓰다듬는 손길이 고스란히 시 한 조각입니다. 기저귀 한 장을 빨며 시 한 줄을 읊습니다. 기저귀 열 장을 빨며 시 열 줄을 적어내립니다. 햇볕에 보송보송 마른 빨래를 걷으며 시 한 줄을 적습니다. 잘 마른 빨래를 첫째 아이랑 함께 개면서 시 두어 줄을 끄적입니다.


.. “아빠, 자장가 불러 주세요.” 내가 말했습니다. 아빠는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말이 꽃잎처럼 이불 위로 내려앉았습니다. 나는 그 꽃잎들이 내려앉는 소릴 들으며 잠이 들었어요 ..  (14쪽)


 바바라 쿠니 님이 그림을 넣고 마이클 베다드 님이 글을 쓴 《에밀리》(비룡소,1998)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에밀리’라는 사람이 ‘에밀리 디킨슨’인지 아닌지 잘 모릅니다. 이분이 맞으면 맞는 대로 고개를 끄덕이면 되고, 이분이 아니라 하면 아닌 대로 가슴을 쓰다듬으면 됩니다. 조용히 살아가며 조용히 시를 길어올린 에밀리 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으로 조용히 맞아들이면 넉넉합니다.

 노래나 춤이 아닌 시이기 때문에 이처럼 조용히 즐기지는 않습니다. 노래도 얼마든지 조용히 즐기고, 춤도 얼마든지 조용히 즐깁니다. 백만 사람한테 사랑받으며 백만 음반이 팔려야 아름다운 노래이지 않습니다. 무슨무슨 가수뽑기나 노래잔치에서 1등이 되어야 훌륭한 노래이지 않습니다. 내 마음에 사무치는 이야기를 내 마음을 건드리는 가락에 담아 내 마음을 쓰다듬듯 부르면 좋은 노래입니다.

 흐르는 달빛을 바라보고, 노래하는 별빛을 느끼며, 사랑하는 바람소리를 맞이하면 시가 됩니다. 구수하게 익는 밥내음을 느끼고, 아이하고 함께 먹을 일을 생각하며 도마질을 하면서, 차츰차츰 수저질을 야무지게 하는 아이 매무새를 받아들이면 시가 태어납니다.


.. 나는 그분 옆에 섰습니다. 우리 옷은 둘 다 눈처럼 하얀색이었어요. 나는 그분의 무릎에 놓인 종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게 시예요?” 내가 물었습니다. “아니, 시는 바로 너란다. 이건 시가 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일 뿐이야.” 창턱 위에 놓아 둔 초롱꽃처럼 그분의 목소리는 가볍고도 예민했습니다. “아주머니께 봄을 좀 가져왔어요.” 내가 말했습니다. 나는 호주머니에게 백합 알뿌리 두 개를 꺼내 그분의 무릎에 내려놓았습니다 ..  (29쪽)


 에밀리라는 분을 바라보는 아이는 에밀리라는 분한테 시입니다. 에밀리라는 분을 바라보는 아이로서는 바로 이 아이가 바라보는 에밀라라는 분이 시일 테지요. 서로서로 고운 삶이기에 서로서로 고운 시를 온몸으로 씁니다. 서로서로 마음을 열어 만나기에 서로서로 사랑스레 시를 읊습니다. “시가 되려고 애쓰”고 “봄을 가져옵”니다.

 날마다 차리는 밥상이 지겹지 않고, 날마다 먹는 밥이 물리지 않는 까닭은 오직 하나, 이 밥상과 밥이 모두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옆지기가 사랑이고, 새로 태어나 또 나란히 살아가는 아이들이 사랑입니다.

 한 집에서 같이 살아도 사랑이지만, 먼 데에서 따로 살아도 사랑입니다. 착한 목숨을 얻어 태어난 어느 날 하루부터 사랑할 날이요, 다른 여느 날 모두 사랑할 날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시를 씁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시를 받아먹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온몸과 온마음이 시가 되어 오늘 하루를 살아냅니다. (4344.9.5.달.ㅎㄲㅅㄱ)


― 에밀리 (바바라 쿠니 그림,마이클 베다드 글,김명수 옮김,비룡소 펴냄,1998.3.15./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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