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1984-1987 1 - 공산 폴란드에서 보낸 어린 시절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실뱅 사부아 그림, 마르제나 소바 글, 김지현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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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폴란드’도 ‘공산주의 나라’도 아닌 만화를
 [만화책 즐겨읽기 62] 실뱅 사부아·마르제나 소바, 《마르지 1984∼1987 (1)》



 ‘폴란드 공산주의 체제’ 마지막 무렵에 어린 나날을 보냈다고 하는 마르제나 소바 님이 쓴 글에 만화라는 옷을 입힌 《마르지 1984∼1987》(세미콜론,2011) 1권을 읽습니다. 책날개에는 “《쥐》, 《페르세폴리스》, 그리고 《마르지》! 우리에게 가려진 역사인 동유럽, 한 소녀의 눈을 통해 교과서에서 보지 못했던 역사의 진실이 밝혀진다.”고 적힙니다.

 책날개에 적는 글은 출판사에서 붙입니다. 출판사에서는 얼마든지 이처럼 적을 만합니다. 그러나, 만화책 《쥐》와 《페르세폴리스》를 읽은 사람으로서 만화책 《마르지》를 펼쳤을 때에, 이 세 가지를 함께 놓을 만한지는 아리송합니다. 아니, 이 세 가지 만화책을 함께 묶을 만한 이음고리가 있는지부터 알쏭달쏭합니다. 세 가지 만화는 어느 대목에서도 겹치지 않습니다. 다만, ‘프랑스에서 퍽 사랑받으면서 알려진 작품’이라는 이음고리를 찾는다면, 요 하나는 얽힙니다.


- 나는 아빠와 빵을 사러 간다. 사는 데는 별 문제 없을 것 같은데, 이 동네에 하나뿐인 빵집인지라 거기도 줄이 길긴 마찬가지다. (35쪽)


 프랑스에서 사는 사람이 프랑스에서 다니는 학교에서 듣지 못하거나 배우지 못하는 역사를 《쥐》와 《페르세폴리스》와 《마르지》가 알려줄 수 있다고 말할 때에는 틀리지 않습니다. 또한, 한국땅 세계사 교과서에서도 세 가지 만화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곰곰이 돌아볼 노릇입니다. 한국땅 세계사 교과서에서 ‘폴란드 이야기’를 한 줄이나마 제대로 적는다고 여길 수 없지만, 한국땅 한국사 교과서에서 ‘한국 이야기’를 얼마나 제대로 적는다고 여길 만할까요. 내 어머니와 내 할아버지가 살아온 나날 가운데 어느 대목이 한국땅 한국사 교과서에 실릴까요.

 이른바 ‘한국 문화’란, ‘한국 전통문화’란 무엇을 가리키는가요. 우리가 안다는 ‘한국 역사’는 얼마나 ‘한국다운’ ‘역사 이야기’라 할는지요.


- 아침이 되면 따스한 햇살이 날 깨운다. 할머니는 늘 먼저 일어나 있다. 난 이 방이 참 좋다. (51쪽)


 나는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폴란드 삶·사람·삶터’를 사진으로 담은 두툼한 책을 몇 권 장만했습니다. 폴란드 사진책뿐 아니라 체코슬로바키아 사진책과 덴마크 사진책과 쿠바 사진책과 아르헨티나 사진책과 뉴질랜드 사진책도 장만했습니다. 스웨덴 사진책과 일본 사진책과 버마 사진책과 네팔 사진책 또한 장만했어요.

 이 나라에서 태어나 살아오는 동안, 열두 해에 걸쳐 제도권학교를 다닐 때에, 폴란드도 체코슬로바키아도 덴마크도 쿠바도 아르헨티나도 뉴질랜드도 스웨덴도 일본도 버마도 네팔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요. 제대로 가르칠 교과서부터 없지만, 제대로 가르칠 교사조차 없어요. 오직 나 스스로 배워야 합니다. 오로지 나 스스로 찾아다니며 알아야 합니다.

 두툼한 사진책 몇 가지를 장만해서 읽는들 ‘옳게 잘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저 겉으로 훑을 뿐입니다. 터키 사진책을 장만해서 넘기는 동안 ‘이야, 터키사람은 이렇게 눈부신 빛깔로 무늬를 아로새긴 아름다운 옷을 좋아하며 즐겨입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폴란드 사진책을 넘길 때에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와, 폴란드는 이렇게 갖은 빛깔이 무지개처럼 어우러지면서 붉은 물결이 넘실거리는 대단한 나라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네덜란드땅 사람들이 귤빛으로 드러나는 눈부신 빛깔을 사랑하듯, 폴란드땅 사람들은 ‘공산주의’고 아니고를 떠나 붉은 빛깔 옷을 사랑합니다(2002년 한·일월드컵 때 폴란드 관중이 입은 옷을 떠올리면 조금은 짚힐 테지요). 무엇보다 어느 한두 가지 빛깔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맑고 밝은 빛깔을 좋아해요.


- 그래서 아빠는 원래 있는 사진을 빼고, 결말을 바꾸어 말해 준다. 물론 우린 그게 사실과 다르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 끝나는 게 좋다. 이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이 되어야 할 것만 같다. (86쪽)


 만화책 《마르지 1984∼1987》를 곰곰이 생각합니다. 책날개 아닌 책겉에 적힌 “공산 폴란드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라는 글줄이 못마땅합니다. 마르지라는 어린이한테는 ‘공산 폴란드’가 아닌 ‘그냥 폴란드’입니다. 전쟁도 혁명도 공산주의도 경제도 모르는 ‘놀기 좋아하는 어린이’ 마르지는 당신 어린 나날을 보낸 이야기를 수수하게 들려줍니다. 이 이야기에 ‘어른들’이, 이를테면 ‘프랑스 어른들’이 ‘공산 폴란드 옛이야기’라는 이름표를 붙일는지 모르지만, 마르지한테는 ‘내 고향나라 고향마을 살아온 이야기’일 뿐입니다.

 만화책 《페르세폴리스》는 삶과 사회와 사랑에 눈을 뜬 푸름이가 바라본 고향나라 이란 이야기입니다. 만화책 《쥐》는 길디긴 나날이 흘러도 가슴에 아로새겨져서 잊을 수 없는 크디큰 생채기인 ‘전쟁과 평화’를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페르세폴리스》를 그린 사람이든 《쥐》를 그린 사람이든, 이 만화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퍽 넉넉하게 살림을 일굽니다. 《마르지》도 이런 틀과 다르지 않아요.

 그렇다고 모든 만화나 문학이 ‘가난한 사람들 살림살이’를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더 많은 숫자인 가난한 사람들 살림살이’ 이야기는 예나 이제나 ‘가난한 사람들 입과 눈과 코와 귀와 가슴’을 거쳐 만화나 문학으로 태어난 적이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 과수원은 정말 넓고, 채소와 과일로 가득하다. 난 과일 따는 걸 좋아한다. 나무에 올라가는 것도 좋아한다. 내가 여기 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기도 하다. (130쪽)


 《마르지》를 그린 실뱅 사부아 님은 이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기 앞서까지 폴란드를 간 적이 없다고 밝힙니다. 만화를 그리고 나서부터 폴란드땅을 처음으로 밟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을 두 눈으로 마주보면서 그림결을 어떻게 해야 좋을는지를 느끼기도 했을 테지만, 폴란드땅을 밟은 적이 없을 뿐 아니라, 폴란드라는 나라를 생각조차 한 적이 없지 않느냐 싶어요. 왜냐하면, 폴란드라는 나라는, 땅도 사람도 터전도 자연도 푸성귀도 무엇도 ‘칙칙한 잿빛’이 아니거든요. 폴란드사람이 참 오랫동안 머물며 비손을 드리는 성당 건물 또한 조금도 ‘칙칙한 잿빛’이 아닙니다. 눈부신 무지개빛입니다.

 만화책 《마르지》에 감도는 빛깔은 처음부터 끝까지 ‘칙칙한 잿빛’ 바탕입니다. 일부러 이렇게 그렸을 텐데, 누군가, 그러니까 한국에서 태어나 살다가 프랑스로 옮겨 살아가는 누군가, 당신 고향나라인 대한민국과 서울을 그리면서 프랑스에서 만화로 그린다고 할 때에, 이처럼 ‘칙칙한 잿빛’ 바탕으로 한국과 서울을 그린다 한다면, 한국에서 살거나 서울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무슨 느낌을 받을까 궁금합니다. 한국땅을 칙칙한 잿빛으로 그려도 될까요. 서울이 자동차 끔찍하게 많고 아파트로 꽉 찬 칙칙한 땅이라고는 하나, 이렇다 하더라도 칙칙한 잿빛으로 서울을 그리는 일을 올바르다 할 만할까요.

 ‘마르지가 좋아하는 햇살’과 능금빛을 떠올리고 싶습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 바라보는 푸르디푸른 들판과 밭뙈기와 멧자락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차라리 빛깔을 입히려 하지 말고 흑백 만화로 그렸다면, 《마르지》 느낌과 이야기가 퍽 많이 달라졌으리라 생각합니다. 폴란드 빛깔을 옳게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이렇게 칙칙한 잿빛으로 물들인다면, 폴란드 삶과 사람과 터전을 하나도 모를 뿐 아니라 스스로 찾아보려고 하지 않으면서 《마르지》를 손에 쥐어 펼칠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우며 무엇을 안다고 할까 근심스럽습니다.

 《쥐》와 《페르세폴리스》는 이 만화책을 읽는 사람들한테 ‘어떤 빛깔과 느낌’을 밀어넣지 않습니다. ‘강요’하거나 ‘주입’하지 않아요. 그러나, 만화책 《마르지》는 칙칙한 빛깔 때문에 그만 ‘수수하면서 사랑스러운 내 고향나라 고향마을 이야기’를 샛길로 빠지게끔 밀어넣고야 맙니다.

 1권을 덮었으니 2권을 읽으며 마무리를 지어야 할 텐데, 2권까지 살 생각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4344.9.10.흙.ㅎㄲㅅㄱ)


― 마르지 1984∼1987 (1) (실뱅 사부아 그림,마르제나 소바 글,세미콜론 펴냄,2011.7.29./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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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 삼천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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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을 만져야 내 몸이 살아난다
 [책읽기 삶읽기 77] 데이비드 몽고메리, 《흙,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삼천리,2010)



 혼자 책을 짊어지며 살아가던 지난날에는 언제나 ‘책을 둘 곳’을 헤아리면서 내 살림집을 찾았습니다. 책을 둘 만한 넉넉하고 볕 잘 드는 곳인가를 생각했고, 여러 책방을 가까이 찾아가기에 괜찮은 목인가를 돌아보았습니다. 내 몸이 느긋하게 쉴 곳인가는 거의 살피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살 만한 집인가보다 책이 깃들기에 좋은 데인가를 보았습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요즈음은 달리 생각합니다. 책은 어떻게든 곰팡이가 피지 않는 데에 둘 수 있기를 바라면서, 네 식구 깃들 사랑스러운 터전을 헤아립니다. 네 식구가 먼저 사랑스레 살아갈 만한 터전이어야 좋은 보금자리로 여겨 옮기지, 네 식구가 살가이 지내기 힘든 데라면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없는 살림으로는 꿈처럼 바라는 곳으로 가기 힘듭니다. 짐차를 불러 옮기는 값부터 만만하지 않으나, 좋은 시골자락 터란, 땅과 집을 장만해서 옮겨야지, 빌려서 들어가면 애써 잘 꾸며 살 만하게 고치면, 금세 집임자나 땅임자한테 쫓겨납니다. 이러다 보니 선뜻 꿈을 꾸지 못하고, 마음을 열지 못해요.

 어찌해야 좋을까를 놓고 여러 달 망설이고 알아봅니다. 이곳으로 우리 깜냥껏 옮길 만한지 가늠하고, 저곳에서 우리를 불러 주는데, 우리가 옮겨도 될 만한가 어림합니다. 어느 쪽이 되든 마땅한 집터와 책터를 찾기까지는 퍽 품을 들여야겠지요. 오래오래 눌러살 생각이라면, 네 식구가 모조리 가볍게 짐을 싼 뒤 ‘우리가 좋아할 만한’ 마을로 찾아가서 방을 하나 얻은 다음, 좋은 살림집을 찾기까지 눌러지내야겠지요.


.. 흉작일 때 아무런 구제책이 없는 소작농들은 기근 동안 음식을 구경할 수 없었지만, 시중에는 먹을거리가 많았다. 생계 수단을 잃은 농민들은 시장에서 먹을거리를 살 수 없었다 … 기근이 이어지는 동안 정부들은 곡물을 수출했고, 그렇게 20세기로 접어들었다. 소비에트 농부들은 1930년대에 굶주림에 시달렸다. 중앙정부가 농부들이 수확한 것으로 도시를 먹이고 해외시장에 내다 팔아서 번 돈으로 산업화의 비용을 댔기 때문이다 … 기근이 이어지는 동안 19세기 말 무렵에 유럽 나라들은 대개 수입 식품으로 국민들을 먹였다 ..  (154∼155쪽)


 옆지기와 함께 읽는 ‘아나스타시아’를 떠올립니다. 러시아 타이가 잣나무숲에서 살아가는 아나스타시아는 식구들이 살아갈 보금자리는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삼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둘째로 좋거나 셋째로 좋은 데가 아닌 가장 좋다고 여기는 곳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해요.

 첫째로 좋다고 여길 만한 데라기보다 둘째나 셋째로 괜찮다고 여길 만한 데로 옮기려고 생각하던 매무새를 가다듬습니다. 넷째나 다섯째 자리라 하더라도 마음을 느긋하게 내려놓을 데라면 되리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첫째가 아니고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한 번 받은 고마운 목숨을 살아가는 나날인데, 돈 걱정이나 집 걱정에 앞서, 아름다운 삶이 되는가 아닌가를 따져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하루하루 자라면서 보고 들으며 부대낄 좋은 보금자리인가 아닌가를 아로새겨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서 늘 즐거운 터전이어야 합니다. 낮에 신나게 뛰놀고 밤에 새까만 별하늘을 올려다볼 터전이어야 합니다. 흐르는 물을 마실 수 있고, 너른 멧자락과 파란 바다를 이웃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길이 잘 뚫린 데라든지, 이름나거나 훌륭하다는 학교가 가까이 있다 한들 부질없습니다. 아이 삶을 보건대, 이런 물질과 문명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한테는 지식이 덧없습니다. 아이 삶이 가장 대수롭습니다. 날마다 숨쉬고 마시며 먹는 자연이 가장 대수롭습니다.


.. 흙의 침식이 고대사회들을 무너뜨렸고 오늘날의 사회도 심각하게 뒤흔들 수 있다는 무시 못 할 증거 앞에서도 지구적인 흙의 위기와 식량 부족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경고는 허공으로 흩어진다. 이미 1980년대 초반에 농업경제학자 레스터 브라운은 현대 문명이 석유보다 먼저 흙을 다 써 버릴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이어진 그런 불안한 예측들을 한귀로 흘려 버리면서 전통적인 자원경제학자들은 흙의 침식이 식량 안보를 위협할 가능성을 지나쳤다. 그러나 침식 탓에 농경지에서 흙이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흙이 사라지는 현실에서 그런 관점은 먼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다. 흙의 유실이 중대한 문제로 떠오르는 때가 2010년이냐 2100년이냐 하는 논쟁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다 ..  (246쪽)


 이야기책 《흙,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삼천리,2010)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서양사람들은 흙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오늘날에도 아직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동양사람들은 흙을 거룩하게 여겼습니다. 오늘날에는 동양사람들 가운데 퍽 많은 이들이 서양사람들처럼 흙을 하찮게 여깁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흙을 하찮게 여깁니다. 도시에서 보금자리를 얻어 지낸다고 할 때부터 흙을 하찮게 여기고 맙니다.

 흙은 문명도 물질도 과학도 아닙니다. 흙은 오로지 자연이고 삶이며 목숨입니다.

 사람은 문명이나 물질이나 과학이라는 옷을 입으면, 몸을 덜 쓰거나 땀을 안 흘리면서 돈은 넉넉히 벌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사람이라 하더라도 밥을 먹어야 하고 숨을 쉬어야 하며 물을 들이켜야 합니다. 밥·숨·물이 없이 어떤 사람이 몇 초나 살아숨쉴 수 있겠습니까. 밥·숨·물이 없는데 돈·힘·이름으로 무얼 할 수 있는가요.


.. 우리는 우리 두 발과 집, 도시, 논밭을 떠받치고 있는 땅에 대해서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  (8쪽)


 이야기책 《흙》은  수많은 보기를 오랜 발자국을 더듬으면서 하나하나 알뜰히 짚습니다. 바보스레 살아온 서양 문명 사회를 낱낱이 꼬집거나 나무랍니다. 384쪽에 이르는 줄거리는 한결같습니다. 머리말에 한 줄로 적은 말마디처럼, 《흙》은 예나 이제나 “우리 두 발과 집, 도시, 논밭을 떠받치고 있는 땅에 대해서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 슬프며 안타까운 사람들 근심스럽고 안쓰러운 삶자락을 이야기합니다.

 사람은 흙을 먹고 흙을 입으며 흙에 몸을 누여 살아가는 목숨입니다. 흙을 잊는다면 사람은 사람 구실을 못 합니다. 흙하고 멀어지면 몸은 자질구레한 못난 것들이 스며들어 무너지기 때문에 자주 아프고 오래 앓습니다. 흙을 만져야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습니다. 적어도 텃밭을 돌보거나 조그마한 꽃그릇을 건사해야 사람다움을 살포시 잇습니다. (4344.9.10.흙.ㅎㄲㅅㄱ)


― 흙,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씀,이수영 옮김,삼천리 펴냄,2010.11.26./1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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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둑길 사진찍기


 첫째 아이하고 읍내 마실을 가려면 시골버스 타는 데로 가거나 자전거수레에 태워야 한다. 오늘은 모처럼 첫째 아이 손을 잡고 시골버스 타는 데로 걸어가기로 한다. 빗방울이 듣기에 큰 사진기는 내려놓고 비오는 날에도 쓸 수 있는 작은 사진기를 목에 건다. 아이는 아버지 흉내를 내면서 ‘망가진 필름사진기’를 손목에 걸고 걷는다. 아이는 함께 걷는 내내 틈틈이 사진 찍는 모습을 보여준다. 망가진 필름사진기에는 필름이 없기도 하지만, 망가졌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그러나 첫째 아이는 신나게 사진기를 들여다보면서 즐거이 단추를 누른다. 나는 아이 곁에서 아이가 사진을 찍으며 노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사진기가 두 대라면 참 재미있다. (4344.9.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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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0원


 둘째 아이 백날을 맞이해서 흰떡을 뽑은 다음, 이 떡을 음성 읍내에서 자주 마주하면서 고맙다고 여기는 분들한테 찾아가서 하나씩 드렸다. 이 가운데 음성 시외버스 타는 곳에서 표를 파는 아주머니한테도 하나 드렸는데, 오늘 첫째 아이하고 읍내마실을 나오면서 표를 한 장 끊으려고(우리 마을을 오가는 광벌 버스표) 하는데, “어, 백일떡 잘 먹었어요. 잠깐만요. 이거(돈) 받는 거 아니에요. (표) 하나 줄게요.”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때에 끊을 표를 그냥 내주신다. 내가 내민 돈을 고스란히 돌려주신다. (4344.9.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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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동엽
김응교 지음, 인병선 유물 보존.공개.고증 / 현암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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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사람과 삶터를 읽는 책이라면
 [책읽기 삶읽기 66] 김응교, 《시인 신동엽》(현암사,2005)


 이야기책 《시인 신동엽》(현암사,2005)은 지난 2005년 12월 30일에 나왔습니다. 나는 이 책을 2006년 앞겨울에 서울 명륜동에 자리한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에서 장만했습니다. 시인 신동엽을 좋아하며 아끼기 때문에, 누군가 당신을 이야기하는 책을 내놓을 때에 곧바로 눈길이 갔고, 이 책에는 당신이 손수 적바림한 글이며 편지가 알알이 깃들어 더 애틋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선뜻 다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처음 장만해서 읽던 2006년부터 마지막 쪽을 덮은 여러 달 앞서인 2011년 봄까지 내내 더부룩합니다.


.. 이 사진을 보고 신동엽이 친일을 했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몰역사적이고 무분별한 태도다. 오히려 우리는 이 사진에서 군국주의가 한 아이에게 강요한 ‘국가의 폭력’을 볼 수 있다 . “우리도 자라서 어서 자라서 / 소원의 군인이 되겠습니다 / 굳센 일본 병정이 되겠습니다(이원수-지원병을 보내며,1942.8.)”라는 동시처럼, 당시 제국주의 일본은 군대식 놀이를 통해 아이들을 병정으로 의식화시켰다 ..  (24쪽)


 글쓴이 김응교 님은 시인 신동엽 님이 ‘친일을 한 사람이 아님’을 잘 헤아려야 한다면서, 역사와 사회와 삶과 사람을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먹이면서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이 일제강점기에 쓴 시를 ‘보기’로 듭니다.

 왜 이렇게 할까요. 왜 이렇게 해야 했을까요.

 시인 신동엽 님이 태어나서 어린 나날을 보낸 일제강점기에 시인 신동엽 님을 둘러싼 여러 삶과 사회와 터전을 읽어야 한다면,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을 둘러싼 온갖 삶과 사회와 터전 또한 읽어야 할 텐데요.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은 왜 〈지원병을 보내며〉처럼 슬픈 시를 써야 했을까요. 슬픈 시를 쓴 이원수 님 삶은 해방 앞뒤로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 신동엽이 민족적 주체성을 탐구하고, 나아가 동학을 연구하며, 민족서사시 〈금강〉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상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어떤 이들은 이 시를 퇴행적 복고주의니 배타적 민족주의라는 말로 비판한다. 김수영도 신동엽이 “쇼비니즘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고 염려했다. 하지만 그의 시를 논할 때는 지금의 잣대로 비판하기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 시인이 왜 이러한 정언적 호명을 남겼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시를 이방인에 대한 배타주의로만 읽는 것은 지나친 오해이다 ..  (25, 154쪽)


 《시인 신동엽》을 내놓은 김응교 님은 “이러한 (일제강점기)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민족적 주체성”을 살찌우면서 “민족서사시”를 쓸 수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요. 맞습니다. 마땅한 말입니다.

 그러면,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은 어떠한가요. 독재자 이원수와 박정희를 나무라면서 전태일을 노래하고 참다운 민주와 평화와 통일과 평등과 해방을 바라는 넋을 어린이문학에 담은 이원수 님은 어떠한가요.

 그지없이 아름다운 글꽃을 앞에 두고도 정작 신동엽 문학에 얽힌 빛과 그림자를 살가이 풀어내지 못하는 모습은 너무 안타깝습니다. 아니, 안쓰럽습니다. 빛이 있기에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림자가 지기에, 이 그림자를 돌아보면서 따사로운 빛을 품에 안습니다. 그림자라 하지만, 나무 그림자는 좋은 그늘이 됩니다. 그늘이 있어 더위를 식히고 땀을 훔칩니다. 꽃잎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있어 무당벌레와 지렁이와 여치가 한여름을 이겨냅니다.

 편가르기를 하는 사람들이 무섭습니다. 편가르기를 하면서 뭇칼질을 하는 사람들이 무시무시합니다.

 삶을 읽어야 시요, 사람을 읽어야 문학이며, 사랑을 읽어야 넋입니다. 시인 신동엽 님은 어떠한 삶을 일구면서 어떠한 사람을 사귀면서 어떠한 사랑을 나눈 분이었을까요. 《시인 신동엽》을 읽는 내내, ‘신동엽 시인 삶·사람·사랑’을 제대로 헤아리기 어려웠습니다. 부디, 앞으로 더 곰삭이거나 아로새기면서 시인 신동엽 님 꿈과 넋과 빛을 오롯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글꾼 하나 태어날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4344.9.9.쇠.ㅎㄲㅅㄱ)


― 시인 신동엽 (김응교 씀,현암사 펴냄,2005.12.30./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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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9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1-09-09 17:51   좋아요 0 | URL
달덩이 같은 사진이라면 더 좋지요 ^^;;;;;

올 여름에는 끝없는 비가 쏟아졌는데
한가위 때에는 달을 못 보더라도
구월 들어 비가 없는 일만으로도
고맙다고 느껴요.

언제나 즐거우며 좋은 한가위가 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