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 3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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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정부는 모든 사람을 바보로 삼는다
 [만화책 즐겨읽기 58] 데즈카 오사무, 《불새 3》



 ‘초등 기초 교육’은 아주 좋은 뜻이었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길을 열었으니까요. 그런데 ‘초등 기초 교육’으로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칠까 궁금합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초등 기초 교육을 받으면서 무슨 기쁨을 누리거나 어떤 보람을 맛볼는지요. 누구나 초등 기초 교육을 받는 일은 고맙지만, 아이들 마음밭에 무엇을 심는가를 돌아본다면, 왜 초등 기초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내 어린 나날을 돌이킵니다. 국민학교라는 이름이 그대로 있던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이 초등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지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 학교를 꼭 다녀야 하는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국민학교를 잘 마쳤습니다. 여섯 해 개근이나 정근은 하지 못했지만 한두 차례 개근을 하면서 잘 다녔습니다. 아니, 허울이 좋아 여섯 해 개근이나 정근을 말하지, 내 어린 나날 ‘학교에 가지 않’으면 집과 학교에서 신나게 몽둥이 선물을 받아야 했습니다. 숙제를 안 해도 몽둥이질, 말을 안 들어도 몽둥이질, 말대꾸를 해도 몽둥이질, 뭐를 어겨도 몽둥이질, 심부름을 안 해도 몽둥이질, 골마루에서 뛰어도 몽둥이질, 학교에 늦어도 몽둥이질, 폐품을 적게 내거나 안 내도 몽둥이질, 일기를 안 써도 몽둥이질, 시험성적이 낮아도 몽둥이질, 떠들어도 몽둥이질, 늘 몽둥이질이었어요. 학교를 안 다닐 수도 다닐 수도 없는 삶이었습니다.


- “하와이라, 햇빛, 파도, 바닷바람, 하얀 모래사장, 아아, 난 정말 행복해. 게다가 타마미 네가 있잖아. 이곳엔 모든 것이 있어. 우주도 있지. 난 정말 행복해.” “나도, 나도 행복해.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당연하지, 난 절대로 네 손을 놓지 않을 거야.” (12쪽)
- “못해! 난 너를 죽일 수 없어! 차라리 내가 죽는 편이 낫지! 아아, 타마미! 넌 내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야. 난 오랫동안 차가운 인간이었어. 록 같은 원칙주의자였지. 그런 내게 인간다운 사고방식을 불어넣어 준 게 바로 너야.” “난 당신 손에 죽어도 괜찮아. 당신은 지금까지 날 곁에 있게 해 줬잖아. 당신이 죽으라면 기꺼이 죽겠어.” (25쪽)



 나는 온통 몽둥이질밖에 없는 학교를 다니면서 오직 한 가지 때문에 버티었습니다. 동무들하고 하루 내내 신나게 논다는 생각 하나로 버티었습니다. 이무렵,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놀 자유도 권리도 없었습니다. 학교를 다녀야 비로소 놀 수 있었어요. 더구나, 학교를 그냥 다녀서는 놀 자유와 권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참말 괴롭도록 자주 치르는 시험에서 이럭저럭 괜찮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성적이 나와야 놀 자유와 권리를 받습니다.

 다른 학교는 어떠한지 모릅니다. 나는 내가 다닌 국민학교만 압니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에서는 월말시험이 있었습니다. 월말시험에다가 중간시험과 기말시험이 있었고, 주마다 불쑥 치르는 쪽지시험이 있으며, 한 해에 두 차례씩 전국평가라는 시험이 있을 뿐 아니라, 무슨 참고서 회사에서 만든 시험이 있어요. 참고서 회사에서 만든 시험은 학교에 돈을 주어 시험을 치르도록 합니다. 참고서 회사는 저희네 문제집을 만드는 데에 쓸 자료를 모으려고 이런 시험을 치를 텐데, 이러다 보니 한 해 내내 시험이 끊이지 않아요. ‘국민학생’일 뿐인데.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가서 다른 국민학교를 나온 동무들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다닌 국민학교에서 치른 시험은 ‘썩 모질지’ 않았습니다. 인천에서 조금 더 ‘이름나다’고 하는 데에서는 훨씬 모질게 시험으로 아이들을 짓밟았더군요.

 그래도 나는 용케 시험성적이 아주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주 좋지도 않으나 그다지 나쁘지도 않았어요. 반에서 5등 안쪽에 든 일은 거의 없으나 10등을 벗어난 적도 없습니다. 눈에 뜨이는 성적이 난 적이란 없고, 누가 눈여겨본 일도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학교 공부를 썩 잘 하는 아이가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 놀 때에는 신나게 놀고, 공부하는 때에는 거의 딴짓을 하지 않았어요. ‘국민학생 주제’에도 ‘나조차 다 알 만한 따분한 이야기’를 하는 수업에서는 딴짓을 하다가 걸려 두 손 들고 골마루에 서는 일이 곧잘 있기는 했지만, 수업을 할 때에 교과서나 공책에 ‘선생님이 하는 말’을 남김없이 받아적었습니다. 그냥 내 느낌으로 다 받아적어야겠구나 싶어 이렇게 했습니다. 중학생 때에도 고등학생 때에도 똑같습니다. 토씨 하나까지 어기지 않으면서 고스란히 받아적는 일을 했어요.

 어쩌면, 이만큼 했으니 학교 시험성적이 그럭저럭 괜찮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나왔을 테고, 국민학생 때에 아주 마음껏 뛰놀면서 거리낌이 없었다 할 만합니다.


- “세상은 정말 멋진 곳인 것 같아요. 난 이제 이 통 속이 지겨워요.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안 돼! 그 인공양수에서 나오면 넌 바로 죽는단다.” “많은 책들을 읽고 나니 난 좀 더 많은 지식을 얻고 싶어졌어요! 날이 새고 져도 보이는 거라곤 연구실 벽뿐이에요. 난 초록빛 나무며 풀이며 파란 하늘, 작은 새들의 노래를 직접 느끼고 싶어요.” (39쪽)
- “나만이 살아남아, 대체 무슨 기쁨이 있다는 거지? 무슨 삶의 의미? 천 년, 만 년, 1억 년이나 죽지 않고 있는다면, 난 그동안 뭘 해야 하는 거야?” (164쪽)
- “오래 살아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왜 그렇게 생명에 집착하는 거냐?” “그야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니까요.” “난 너의 선조인 하등한 괄태충을 아는데 너처럼 미련이 많지도 않았고, 아무 불평 없이 죽어 가더라. 넌 부끄럽지도 않냐?” “난 그런 하등동물이 아니에요! 죽는 게 무섭다구요. 제발 살려 줘요.” (257쪽)



 국민학생 때에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한테 나머지 공부를 시켰습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때에는 ‘공부를 곧잘 하는 아이’한테 나머지 공부를 시킵니다. 이른바 무슨무슨 특별 보충수업인데, 중학교 1학년이 되고부터 대입수험생처럼 다루었어요. 시험성적이 더 잘 나와야 한다고 몰아붙였습니다.

 그러나, 이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가 잘 모르는 이야기를 나보다 공부를 훨씬 잘 하는 아이한테 물었습니다. 공부를 훨씬 잘 하는 아이는 ‘저한테 경쟁자가 되는 녀석’이 물을 때에 좀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어요. 알려주어야지요. 왜냐하면, 아무리 공부를 잘 한다는 아이라 하더라도 모든 과목을 골고루 잘 하지는 않아요. 다른 과목이나 다른 데에서는 내가 그 아이를 봐주거나 도우니까,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셈이에요.

 마땅한 노릇이잖아요. 내가 잘 못하는 일은 도움을 받고, 내가 잘 할 만한 일은 도와주면 돼요. 이를테면, 나도 잘 몰랐지만, 나는 헌책방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즐겨 다니면서 ‘내가 좋아하는 책’은 내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어떻게든 털거나 그러모아서 장만했는데, ‘내가 안 좋아하는 책’이라 하더라도 한 번씩 책시렁에서 끄집어내어 슥 훑고는 제자리에 꽂곤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안 좋아하는 책’이라 하는 책은 으레 ‘여느 사람들이 참말 좋아하는 책’이기 일쑤였어요. 이러하다 보니, 여느 사람들은 헌책방에 거의 찾아가지 않으면서 ‘판이 끊어진 책을 도무지 찾을 수 없다는 푸념’만 신나게 늘어놓을 때에, ‘어디어디 헌책방에 가서 어디어디 책시렁을 보면 그 책이 보일 테니까, 한번 가 보시라’고 이야기합니다.

 뭐라고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은 내가 좋아하는 책대로 아낍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책’은 내가 좋아하지 않으니 굳이 살피거나 대수로이 여기지 않습니다만,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은 얼마든지 좋아할 만하니까 마음으로는 가만히 헤아려요.

 나는 자전거를 좋아하고 두 다리로 걷기를 좋아합니다. 여느 사람들은 자전거는 거의 안 탈 뿐더러 두 다리로 걷지 않아요. 여느 사람들은 그냥 자가용을 장만해서 탑니다. 여느 사람들 자가용을 얻어 탈 때에, 나는 자전거나 두 다리로 온누리를 쏘다닌 지난날을 돌이키면서 이곳저곳 길 이야기를 해요. 어떻든 ‘자가용으로 다니든 자전거나 두 다리로 다니든’ 길을 다녀야 할 테니까요.


- “지구는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 존재랍니다. 그런 지구가 지금 죽어 가고 있어요. 인간이 병으로 쓰러지듯 지구도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어요.” “새여, 지구가 살아 있는 존재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구는 당신들이 보기엔 너무 커서 잘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가령 세균도 자신이 기생하는 생물의 몸이 살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51쪽)
- “지구는 죽어서는 안 돼요. 살아야만 해요. 그런데 뭔가가 잘못되어 지구를 죽이려 했어요.” “뭔가가 잘못되다니?” “인간이라는 아주 작은 생물이에요. 인간을 낳고 진화시켰는데 그 진화의 방법이 잘못됐던 것 같아요. 인간을 일단 무로 돌린 뒤 다시 시작해야 돼요. 한 번 더 인간은 태어나서 새로운 문명을 개척할 거예요.” (156쪽)


 만화책 《불새》(학산문화사,2002) 3권을 읽는 동안 곰곰이 생각합니다. 한국에 사천만 사람이 살아간다면 사천만 가지 다 다른 아름다움이 있고, 날마다 죽는 옛 아름다움 못지않게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새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나는 1975년부터 2011년까지 서른일곱 해를 살아가니까, 이동안 마주하는 아름다움이란, 또 내가 부대끼지 못한 아름다움이란, 이 조그마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만 하더라도 1억뿐 아니라 10억이나 100억이 될 만해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새로 죽고 새로 태어났’는데요.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새로 죽고 새로 태어나’겠습니까.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른 아름다움입니다. 누가 더 좋거나 누가 더 나쁘다고 함부로 따질 수 없습니다. 이이는 이이대로 아름답고 저이는 저이대로 아름답습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누구를 사귀지 못했어요. 아니, 이성친구라는 사람을 사귈 수 없었습니다. 이성친구이든 짝꿍이든 옆지기이든, 이 나라 법이나 제도로는 한 사람하고만 살도록 하는데, 나는 도무지 누구를 ‘고를’ 수 없었습니다.

 왜 골라야 할까요. 왜 따져야 할까요. 왜 나눠야 할까요.

 두 아이를 함께 낳고 시골집에서 지내는 옆지기를 돌아보면, 이녁은 이녁대로 아름답습니다. 때때로 내가 짊어질 수 없구나 싶은 일이 있습니다만, 이녁은 이녁대로 내 삶자락을 짊어질 수 없다고 여기는 일이 있어요. 서로 빈틈이 없을 짝꿍이란 없습니다. 서로 빈틈이 많은 짝꿍입니다. 다만, 서로한테 있는 빈틈을 기꺼이 사랑스레 녹이면서 받아들이느냐, 서로한테 있는 빈틈을 나 몰라라 하거나 너무 힘드니 손사래를 치느냐 하는 대목에서 갈립니다.

 만화책 《불새》 3권에서 잘 들려주는데, 사람마다 다 다른 아름다움을 ‘온누리 다 다른 정부’가 ‘정부라는 틀이 설 때에는 모두 똑같이’ 흐르면서,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아름다움’을 억눌러 모두 판에 박힌 모습으로 짜맞추려고 합니다.

 곧, ‘초등 기초 교육’이라는 허울이지만, 하나도 초등이 아니고 하나도 기초가 아닌 오직 ‘제도권 주입식 교육’이 되고 맙니다.


- “가령 시민들의 복장을 보면, 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들은 유난히 오래된 문명이나 역사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법률로 엄중히 규제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 인류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개인적인 감정에 휩쓸리기 쉬운 인간 정치가보다 전자두뇌의 계산에 의지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시장님?” (82∼83쪽)
- “록, 1시간 뒤면 전쟁이라고?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했군!” “(컴퓨터) 할렐루야가 결정한 거예요.” “어째서 기계의 말 따위를 듣는 거지? 왜 인간들은 자기 머리로 판단하지 않는 거냐, 응?” (121쪽)


 데즈카 오사무 님은 1950년대 첫무렵부터 《불새》를 그렸습니다. 1950년대 일본은 ‘한국전쟁을 등에 업은 경제성장’으로 한쪽에서는 돈치레가 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런 경제성장이 있든 없든’ 언제나 똑같이 괴로운 가난한 삶이 이어져 죽어났습니다. 이른바 양극이라 할 텐데요,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아도 이와 비슷합니다.

 2010년대 한국에서 잘사는 사람은 그냥 잘살아요. 못사는 사람은 그냥 못살아요. 그런데, 잘사는 사람이 꽤 많을 뿐 아니라, 밥 걱정 안 하는 사람 또한 퍽 많습니다. 전세돈 5000만 원조차 없는 사람은 기껏 20%가 안 된다지요. 우리 식구는 내가 글 팔고 사진 팔아 다달이 겨우 70만 원쯤 벌이를 맞추기는 하지만, 세무서에 신고할 만한 근로소득은 20만 원쯤밖에 안 됩니다. 우리 식구는 이 사회에서 아주 극빈층입니다. 그나마 ‘영유아 보육시설 미이용 자녀 수당’이라는 제도가 생겨서 살짝 숨통을 트는데, 우리 집안 같은 식구는 한국땅에 아주 드뭅니다. 다들 이래저래 살림이 버겁다고 하지만, 누릴 물질문명은 다 누리면서 살아가요. 우리 식구는 ‘살아가는 즐거움’이 돈이나 물질문명에는 없다고 여겨 극빈층으로 지내면서도 날마다 다른 걱정이 없이 아이들하고 잘 지낼 뿐입니다. 전기를 거의 안 쓰고, 텔레비전이나 빨래기계 없이도 잘만 살아갑니다. 아니, 퍽 재미나게 살아가요. 아름다운 삶은 도시 한복판 커다란 빌딩숲이 아닌, 시골자락 조그마한 나무숲에 있거든요.

 만화책 《불새》 3권은 이 대목을 다룹니다. 한쪽에서는 물질문명으로 흥청망청 노래를 부르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아름답느냐’ 하고 묻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갈 길이 어디인가 하고 묻습니다. 일본이 온누리 한복판이기 때문이 아니라, 일본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일본부터 달라지면서 거듭나야 비로소 지구별이 아름답게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바로 이 대목을 걱정하면서 마음쓰고 살핍니다. 삶을 아끼고 사랑해야지, 돈·이름·힘을 아끼거나 사랑하면 안 돼요. 사람을 아끼며 사랑해야지, 물질문명이나 역사나 제도권 정치를 아끼거나 사랑하면 안 돼요.

 모든 정부는 모든 사람을 바보로 만듭니다. 모든 정치는 모든 살림집을 바보스레 내몹니다. 서울시장이 누가 되건 대단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으로 누가 뽑히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곳에서 내 삶을 내 손으로 아름다이 일구지 않으면, 지구별은 조금도 아름다운 터전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즐거이 붙잡을 내 일거리를 내 온 사랑과 믿음으로 돌보지 않는다면, 내 나라나 내 겨레는 하나도 따스하지 않습니다. (4344.9.15.나무.ㅎㄲㅅㄱ)


― 불새 3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2.2.2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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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코의 술 애장판 1
오제 아키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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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을 사랑하는 더 큰 꿈
 [만화책 즐겨읽기 63] 오제 아키라, 《나츠코의 술 (1)》


 밤하늘 구름이 걷혔습니다. 한가위를 앞두고 구름이 잔뜩 끼다가는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더니,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 해맑은 밤하늘입니다. 밤 한 시 반에 쉬를 누러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마당과 앞 들판을 환하게 비추는 달이 보입니다. 달은 차츰 이울어 곧 반달이 될 텐데, 보름이 아닌 달이건만 몹시 환합니다. 깜깜한 온누리에 고루 불을 비추듯, 하얗게 맑은 달빛이 멧자락과 논밭을 살포시 덮습니다.

 설날이나 한가위 언저리에는 꼭 보름달이 아니어도 아주 밝고 맑습니다. 도시에서는 이 밝고 맑은 달빛을 느끼기 어려울 텐데, 느끼기 어렵더라도 달은 언제나 밝고 맑은 빛줄기를 내뿜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지구별 모든 목숨붙이한테 밝고 맑은 빛줄기를 나누어 줍니다.

 문득 느낍니다. 짙게 낀 구름이 달빛을 가로막을 때에도 달은 한결같이 밝고 맑은 빛줄기를 비추었습니다. 사람들은 구름 때문에 달빛을 보지 못하더라도, 달빛은 언제나 곱습니다. 곧, 구름이 짙게 낀 낮에는 햇볕과 햇빛을 못 느끼겠지요. 그러나, 구름이 짙게 낀 낮에도 햇볕과 햇빛은 밝고 맑게 내리쬡니다.


- “흥, 도쿄에는 알코올이 첨벙첨벙 들어간 가짜 술밖에 없지.” (24쪽)
- “여기는 모든 공정을 컴퓨터로 제어하는 관리실입니다. 공장 전체 온도, 습도도 유지돼, 사계절 양조가 가능해졌습니다.” “사계절 양조? 1년 내내 술을 빚나요?” “예.” ‘5월이 되면 할아범들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여름에는 술을 빚지 않는다 … 옛날에 들은 할아범의 말을 떠올렸다. ‘나츠코, 누룩은 생물이야.술 빚기는 첫째가 누룩, 둘째가 술밑, 셋째가 빚기라는 말이 있는데, 아주 소중히 보살펴 주면 건강하게 자라 준단다.’’ (45∼46쪽)



 어버이가 아이한테 베푸는 사랑을 아이가 송두리째 느끼라고 바랄 수 없습니다. 아이가 어버이한테 보내는 사랑을 어버이가 남김없이 느끼라고 꿈꿀 수 없습니다. 어버이와 아이는 서로서로 깊으며 너른 사랑을 늘 주고받습니다. 받는 쪽에서 느끼지 못하더라도 사랑은 고이 흐릅니다. 주는 쪽에서 잘 가는가 알지 못하더라도 고이 퍼집니다. 구름이 끼어 달빛이나 햇빛을 제대로 못 느낀다고 하지만, 구름이 있건 없건 달빛이나 햇빛은 언제나 그대로예요. 사람들 마음에 짙은 구름 같은 무언가 슬며시 끼어서 사랑을 옳게 느끼지 못한달지라도 사랑은 노상 그대로입니다.

 겉이 모두가 아닙니다. 겉만 보며 섣불리 헤아릴 수 없습니다. 겉으로 삶을 나누지 않습니다.

 돈이 모두가 아닙니다. 돈만 보며 섣불리 헤아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삶을 나누지 않습니다.

 사랑을 눈으로 보도록 할 수 없습니다.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사랑은 슬픕니다. 사랑이기에, 내 사랑을 맞아들일 사람이 사랑인 줄 깨닫지 못하더라도 그예 맑고 밝게 내 사랑이 고이 흐르도록 다스립니다.

 깊은 저녁, 네 살 첫째 아이 손을 잡고 밤길을 걸으며 달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냥 호젓한 시골자락 밤길을 살며시 마실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먼저 달을 알아보았습니다. “아버지, 저기 달이에요.” 하면서 내 손을 잡아당기며 손을 들어 가리킵니다.

 아이하고 밤길 걷기를 하러 나올 때, 짙게 우거진 나무숲 사이로 언뜻선뜻 비치는 달빛을 보았습니다. 더 깊어야 달이 훤히 보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무숲이 끝나는 마을길에서는 달이 잘 보이더군요. 아이는 이때에 달을 알아차립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나무숲 사이로 살짝 비치는 달빛을 알아봅니다.

 네 눈이 천천이 뜨이는구나. 네 가슴이 조금씩 열리는구나. 네 마음이 차츰차츰 무르익는구나.

 나는 두 아이 아버지이지만, 두 아이를 낳을 때까지도 이 두 아이가 맞아들일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를 어떻게 건사해야 하는가를 옳게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갓 태어나 처음 마주할 살가운 둥지가 어떠한 빛깔과 어떠한 내음과 어떠한 모습이 되도록 다스려야 하는가를 알뜰히 살피지 못했습니다.


- “하지만 환상이 아니야. 타츠니시키라고. 전쟁 전에 분명히 재배되던 종이야.” (17쪽)
- “손 내라.” “뭐야?” “열어 봐, 나츠코. 그 안에 네 오빠의 목숨이 들어 있어!” “이, 이건?” “이삭 12포기! 볍씨 1350알이야! 나트치시키다! 나츠코!” (105쪽)
- “이거 마음에 드는군. 맛있어서 우는 손님은 처음입니다! 언제든 오세요. 아주 싸게 해 줄 테니까!” “아뇨, 다시는 안 올 거예요. 아마.” “왜?” “고향으로 돌아갈 거예요.” (185쪽)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르다지요. 가시내와 사내가 다르다지요. 틀림없습니다. 서로 다른 삶이고 사람이며 사랑입니다. 어머니 삶과 아버지 삶이 같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같은 사람일 수 없습니다. 어머니 사랑과 아버지 사랑이 같을 수 없어요. 서로 다른 결이고 서로 다른 무늬이며 서로 다른 꿈입니다.

 어떠한 아버지라 하더라도 내 아이 목숨이 살가이 자리를 잡기까지 첫 열 달을 몸속에 고이 품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반편쟁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이든 어머니이든, 내 아이 목숨이 될 씨앗을 몸속에 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고운 목숨씨를 몸속에 품으면서 살아요.

 학교에서는 그냥 성교육을 하지만, 성교육은 아주 부질없습니다. 성교육이란 사랑교육도 삶교육도 사람교육도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부질없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우면서 거룩하고 사랑스러운 목숨을 저마다 몸속에 품으며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 되고 어버이가 되는가를 깨닫게끔 이끌지 않으니, 성교육은 아주 부질없으면서 뜻없고 값없어요. 곧, 성교육을 학교에서 제대로 하자면, 남녀 생식기 모습을 그림으로 보여준다든지 피임(아기 안 배기)하는 법을 가르친다든지 하면 안 됩니다. 내가 사랑하면서 함께 살아갈 고운 옆지기를 만나서 앞으로 함께 돌보며 살아갈 고운 아기를 생각할 때에 비로소 짝짓기를 해야 올바르다는 삶을 가르쳐야 해요.

 그러나, 이러한 삶은 지식으로 가르칠 수 없어요. 삶은 지식이 아닌 삶이기에,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제 나이에 걸맞게 제 삶을 바로보면서 아름다이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제 목숨씨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받아들일 때에 비로소 ‘내 목숨씨가 또다른 목숨씨로 이어지는 흐름’을 알려줄 수 있어요.


- “나츠코! 기다려라.” “여보, 나츠코를 독차지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도, 독차지? 내가 언제!” (13쪽)
- “타오! 이제 넌 아버지를 볼 수 없단다. 이제 아버지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어. 널 끌어안을 수도, 손을 잡을 수도 없어. 아버지는 죽었다. 하지만 그 뼈는 언젠가 흙이 되고 이 대지의 일부로 바뀌어 나무와 물과 벼와 인간을 기르겠지. 짧은 시간에 아버지가 네게 무엇을 남겼는지, 네게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는지, 타카오, 이 대지에게서 들어라. 이 대지에게서 배워라.” (120∼121쪽)


 내 삶을 사랑하는 더 큰 꿈을 이야기하는 만화책 《나츠코의 술》(학산문화사,2011) 1권을 읽습니다. 일본 도쿄에 깃든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나츠코’는 광고회사에서 ‘술 광고’에 넣을 글을 씁니다. 나츠코는 일본 시골마을에서 대물림으로 잇는 ‘일본 옛술 빚는 일’을 하는 집에서 태어난 둘째 아이입니다. ‘일본 옛술 빚는 일’을 하는 집안 첫째 아이는 몸이 아파 서른 나이에 일찍 숨을 거둡니다. 책이름에 잘 나오듯, 일본 옛술을 옛모습 그대로 빚는 삶을 보여주는 이 만화책에서 나츠코는 커다란 도시 도쿄를 떠납니다. 처음에는 시골을 떠나 커다란 도시에서 뜻을 이루며 살아가려 했지만, 커다란 도시에서 살다가 새삼스레 ‘훨씬 커다랗다’ 할 만한, 따지고 보면 크니 작니 하고 가를 까닭이 없이 아름답다 할 만한 참다운 꿈을 가슴으로 품습니다. 예전에는 ‘여느 회사원한테 커다랗다 여길 만한 꿈’을 좇느라 허둥지둥했다면, 이제는 ‘내 삶을 사랑하는 커다랗다 여길 만한 꿈’을 깨달아 조바심이 사라졌다고 할 만해요.

 그런데, 만화책을 읽으면서, 너무 남우세스럽게도 피식 하고 웃었습니다. 이 만화책에서뿐 아니라 일본 사회나 역사나 문화를 살피면 거의 비슷한데요, 나츠코네 집안은 ‘전통 있는 술도가’라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전통이란 기껏 150년입니다.

 1980년대에 그린 만화이니까, 이때부터 150년이라면 1830년대입니다. 1830년대부터 하던 집안일인데 전통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요. 고작 150년밖에 안 되는 나이에 전통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이 얼마나 어줍잖은가 잘 알겠지요.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150년이라는 나날을 ‘대단한’ 전통으로 삼습니다. 한국에서는 150년이라는 나날은 전통에 낄 수 없다고 여기지만, 막상 한국에서 ‘한국 옛술을 옛모습 그대로 빚는’ 집을 찾아볼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있기나 있을까요. 아예 없지는 않을 테지만, 참말 있기는 있을까요.

 흙을 일구며 살아온 ‘전통’을 거룩하게 여기는 한국사람이 있나 궁금합니다. 즈믄 해를 흙을 일구며 살았다는 ‘전통’을 아름답거나 훌륭하게 여기면서 ‘2010년대 오늘날 당차게 농사꾼으로 살아가려는 꿈’을 키우는 어린이나 푸름이나 젊은이가 있는지 아주 궁금합니다.


-  “오빠가 늘 말했어요. 난 삼류인 특급보다 일류인 2급을 만든다고. 해님 같은 술을 만든다고.” “해님?” “오빠가 좋아하는 말이에요.” ‘나츠코, 술이란 참 이상하지. 이 투명한 액체 안에 많은 맛을 촘촘히 감췄어. 아무 색도 없는 태양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일곱 빛깔 무지개가 되어 빛나는 거랑 똑같아. 나츠코, 술은 해님의 빛이란다. 신이 주신 최고의 은혜야.’ (57∼58쪽)
- “일곱 빛깔 맛이 나지 않는 걸 일곱 빛깔의 빛이라고 쓰고, 혼조조인데 알코올에 대한 걸 숨기고 쓰는 거요? 광고가 그런 건가요?” (72쪽)
- “일시적인 감성이야. 그런 건. 넌 그런 감상 때문에 카피라이터가 되는 꿈을 버리겠다는 거군!” “버리려고요. 감상이 아니에요. 더 큰 꿈이 생겼어요.” (193족)



 만화책 《나츠코의 술》을 읽다가 ‘피식 웃었’지만, 이내 ‘슬프게 웃’고 맙니다. 한국땅에서는 고작 150년이라는 나날조차 제대로 잇는 일이 한 가지조차 없다고 할 만하기 때문입니다. 판소리를 150년 이어서 하는 집안이 있을까요. 도자기를 150년 이어서 굽는 집안이 있을까요. 종이를 150년 이어서 뜨는 집안이 있을까요. 갖바치나 대장장이나 신기료를 150년 이어서 하는 집안이 있을까요.

 어쩌면, 오늘날 한국땅에서는 ‘회사원살이를 대물림으로 시킨다’든지 ‘공무원살이를 대물림으로 시킨다’든지 하려는 설익은 전통(?)만 있는지 모릅니다. ‘대학교 졸업장을 대물림으로 따도록 시킨다’는 엉터리 전통은 있겠지요. 아파트에서 살고, 자가용을 몰며, 도시에서 갖가지 물질문명을 누리도록 하는 바보스러운 전통은 많겠지요.

 일본에서는 고작 150년 술빚기를 하면서도 ‘술 한 방울에 해님이 깃드는 무지개 빛깔’을 말할 만큼 아름다운 꿈을 건사합니다. (4344.9.15.나무.ㅎㄲㅅㄱ)


― 나츠코의 술 1 (오제 아키라 글·그림,박시우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7.2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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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과 빨래와 책과


 작은 들꽃을 꺾어서 내민다. “아버지, 꽃 예뻐요?” “네, 꽃 예뻐요.” 첫째 아이 작은 손에 쥔 작은 들꽃은 꺾였으니까 얼마 못 살고 시들겠지. 들판에 널린 들꽃이니 한 송이쯤 꺾는다고 달라질 일이 없다고 여길 수 있고, 작은 들꽃 한 송이라도 눈으로만 바라보자 할 수 있으며, 이 들꽃은 풀씨를 많이 퍼뜨려 이듬해에 또다시 흐드러지게 핀다 할 수 있다. 어느 쪽으로든 고마운 목숨이 우리 살림집 둘레에서 피고 지며 살아간다.

 아버지는 새벽부터 신나게 빨래를 한다. 한가위를 마무리지은 다음 집안을 치우고 빨래를 하자며 겨우겨우 자리를 잡는다. 그렇지만 아직 새 보금자리로 옮기지 못하기 때문에 한쪽에 묶어서 쌓은 짐이 눈에 치인다. 얼른 이 짐을 나르고 풀어서 깔끔하게 집살림을 일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침 빨래를 마치고 나서 아이를 부른다. “벼리야, 잘 있어.” 아이는 이 말에 부리나케 달려나온다. 저도 마당으로 나오겠단다. 아버지는 모르는 척 밖으로 나와서 기저귀를 넌다. 첫째 아이는 “나도, 나도.” 하고 말하면서 빨래집게를 한손에 하나씩 쥔다. 아버지한테 내민다. 이윽고 기저귀도 한 장을 집어서 내민다. 아버지는 말없이 받는다. 이러다가 그만 아이 치마 한 벌이랑 기저귀 한 장을 놓쳐 마당 흙바닥에 떨어진다. 저런. “벼리야, 떨어뜨리면 안 되지. 하나씩 집어야지 왜 욕심을 부리니.” 아이는 떨어진 빨래를 줍는다. 주워서 아버지가 하듯 탕탕 턴다. 아직 네 살이라 힘이 실리지 못하나 제법 모양이 난다. 마지막 빨래를 다 널고서 “고맙습니다.” 하고 아이한테 인사한다.

 한낮이 지나고 바깥바람이 시원한 때에 돗자리를 들고 마당으로 나온다. 바깥이 시원하기에 나왔지만, 시원한 바깥에는 모기가 달라붙는다. 하는 수 없이 얼마 못 있고 다시 집으로 들어온다. 마당에서 숲을 느끼고 풀벌레와 함께하면서 파란하늘을 등에 지고 책을 읽으면 더없이 싱그러이 이야기 한 자락 스며든다고 느낀다. 책이란, 이렇게 숲과 바람과 햇살을 먹으면서 쓴 글로 엮어, 숲과 바람과 햇살을 먹으면서 읽을 때에 참다이 마음밥이 될 수 있을까. 오늘 하루도 새롭게 흐르다가 새롭게 끝을 맺는다. (4344.9.1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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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당에 앉기


 여름 동안 마당에 앉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시멘트로 닦인 마당에 여름날 앉다가는 뜨거워 애먹는다. 가을로 접어들었기에 시멘트 마당이라 하더라도 자리를 깔고 앉을 만하다.

 아이 어머니는 뜨개를 하고, 둘째 갓난쟁이는 하늘과 나무숲을 올려다보는 채로 누우며, 첫째는 마당에서 뛰놀기도 하고 자전거도 타며 이래저래 논다. 둘째가 누나랑 함께 뛰놀자면 앞으로 한두 해쯤 기다리면 될까.

 낮이고 저녁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아침이고, 집 앞길로 지나다니는 자동차만 없으면 언제나 조용하게 풀벌레와 멧새 우짖는 소리로 온몸이 젖어든다. 우리한테 논이 없어 이 가을에 누렇게 무르익는 나락 소리를 마음껏 듣지는 못하지만, 이웃집 나락이 저 멀리에서 익는 소리와 내음을 바람결에 함께 느껴 본다. (4344.9.1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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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놀이 어린이


 누워서 지내는 동생한테 거울을 들고 옆에 앉아 들여다보라고 한다. 우리 집은 거울을 따로 걸지 않아서, 어머니나 아버지나 아이나 거울을 볼 일이 없다. 작은방 한쪽 구석 옷장에 올려놓기는 했지만 딱히 거들떠보지 않는다. 첫째 아이가 이 거울을 용케 꺼내어 제 동생한테 보여준다. 갓 백날을 지난 둘째는 누나가 보여주는 거울에 비치는 제 모습을 어떻게 느낄까. 그저 곁에서 종알종알 말을 걸며 함께 노는 누나가 좋을 뿐일까. (4344.9.1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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