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달빛 담요 너른세상 그림책
에일런 스피넬리 글 그림, 김홍숙 옮김 / 파란자전거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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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넋들이 주고받는 아름다운 사랑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97] 제인 다이어·에일린 스피넬리, 《소피의 달빛 담요》(파란자전거,2001)



 그림책 《소피의 달빛 담요》(파란자전거,2001)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 글을 쓴 분은 젊었을 적 하숙집에서 지낼 때에 3층에 살던 아주머니가 가난한 살림을 일구면서 구멍이 송송 난 담요를 아기한테 덮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집임자한테서 받은 ‘낡은’ 담요를 ‘새로’ 태어난 아기한테 덮이는 모습을 딱하게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글쓴이는 젊었을 적에는 돈이 딱히 없었을 테니, 어찌저찌 도와주지 못했겠지요. 나중에 글 한 자락 써서, 당신은 이렇게 ‘달빛 담요’ 하나를 드리고 싶었다면서, 넌지시 마음선물을 베풀었겠지요.

 3층집 가난한 아주머니는 새 담요 하나 살 만한 돈이 마땅히 없습니다. 돈이 없는 만큼 헌 담요 한 장 얻습니다. 아기한테 헌 담요를 덮는 일이 슬플 수 있으나, 헌 담요는 그냥 헌 담요가 아니라, 퍽 예전에 ‘새로 태어났’던 아기가 덮던 담요입니다. 이제는 더께가 앉아 좀 낡았다 할 테지만, 지난날 새로 태어난 아기한테 기쁨과 고마움과 웃음을 베풀려고 장만했던 담요입니다. 이러한 기운이 오늘 이곳에서 새로 태어난 아기한테 이어집니다.

 나와 옆지기는 우리 집 두 아이한테 새 옷을 거의 못 사 줍니다. 아니, 새 옷을 사 줄 돈이 없다고 해야 옳습니다. 두 아이는 헌 옷을 얻어 입습니다. 둘레에서 먼저 아이를 낳아 키우던 분들이 당신 아이들한테 입히던 옷을 보내 주기에, 우리로서는 참 고맙게 받아서 아이한테 입힙니다.

 아이들도 ‘새로 사는 옷’을 아예 모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들한테는 예쁘게 보여 예쁘게 입으면 예쁜 옷입니다. 고맙게 얻어 고맙게 입으면 고마운 옷입니다. 사랑스레 선물받아 사랑스레 입으면 사랑스러운 옷이에요.


.. 소피는 보통 집거미가 아니었어요. 소피는 예술가였지요 ..  (6∼7쪽)


 그림책 《소피의 달빛 담요》에 나오는 집거미 소피는 여느 집거미가 아니라 합니다. 그렇겠지요. 지구별에 오직 하나뿐인 목숨을 제 어버이한테서 선물받은 아름다운 거미입니다. 집거미 소피가 제 목숨을 바쳐 뜬 달빛 담요를 선물받은 아기도 온누리에 하나뿐인 목숨이요, 아기 어머니도, 아기 어머니한테 방을 내준 집임자도 온누리에 하나뿐인 목숨입니다.

 마음을 열지 못하는 다른 아주머니 아저씨 요리사 들도 모두 온누리에 하나뿐인 목숨입니다. 다만, 마음을 열지 못하며 거미를 괴롭히거나 내쫓으려는 이들은 당신부터 온누리에 하나뿐인 목숨인 줄 깨닫지 못합니다. 스스로 제 목숨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놀라운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마음을 열지 못하고, 거리낌없이 사랑을 나누지 못해요.


.. 마침내 도착한 선장 아저씨의 다락방은 온통 회색 빛깔뿐이었어요. 회색 셔츠에 회색 바지, 회색 스웨터……. ‘선장 아저씨에겐 새 옷이 필요해.’ 소피는 생각했어요. ‘그것도 밝은 색깔로, 파란색. 그래! 하늘처럼 파란색이 좋겠다.’ ..  (16쪽)


  그림책 《소피의 달빛 담요》는 그다지 대단하다 싶은 작품이 아닙니다. 이 그림책을 대단하다고 여기면 안 됩니다. 이 그림책은 수수한 삶과 사랑을 살포시 담습니다. 서로 아끼는 삶을 보여주고, 나란히 어깨동무하는 사랑을 들려줍니다.

 사랑은 대단하지 않아요. 사랑은 자연스럽습니다. 사랑은 거룩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누구한테나 있어요.

 하느님만 사랑을 베풀지 않습니다. 대통령만 사랑을 선물하지 않아요. 네 살 어린이도 사랑을 베풉니다. 한 살 갓난쟁이도 사랑을 선물합니다. 가난한 집 아주머니도 사랑을 베풉니다. 넉넉히 잘사는 아저씨도 사랑을 선물해요.

 사랑은 누구나 베풀며 누구나 받습니다. 사랑은 모든 사람이 알게 모르게 선물하면서, 모든 사람이 다시금 알게 모르게 선물받아요.


.. 담요를 짜기 시작하자 자꾸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어요. 소피는 그 모든 것을 넣어 담요를 짜기 시작했어요. 향기로운 솔잎 이슬 조각, 밤의 도깨비불, 옛날에 듣던 자장가, 장난스런 눈송이 … 막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을 때, 소피는 담요의 마지막 귀퉁이를 짜고 있었어요. 그 마지막 귀퉁이에 바로 자신의 가슴을 넣고 있었지요 ..  (27, 29쪽)


 삶이 예술입니다. 집거미가 거미줄을 뜨는 삶이 예술입니다. 여느 살림집 여느 어머니랑 아버지가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며 빨래를 하는 일이 모두 예술입니다. 아이 손을 잡고 숲길을 걷는 일이 예술입니다. 아이하고 노래를 부르는 나날이 예술입니다. 호미를 쥐고 텃밭을 돌보는 일이 예술입니다. 쉬를 눈 아기를 토닥이며 기저귀를 갈아 말끔히 빨고는 해바라기하는 마당에 눈부시게 내다 너는 일이 예술이에요.

 밥 한 그릇이 예술이자 삶입니다. 식구들이 오순도순 나누는 이야기 한 자락이 예술이자 삶입니다. 집거미 소피도 예술이자 삶이며, 소피를 낳은 어머니도 예술이자 삶입니다. 소피한테서 담요를 선물받은 새로 태어난 아기도 예술이자 삶이에요. 모두 아름다운 넋이기에 서로서로 아름다운 사랑을 주고받습니다. (4344.9.18.해.ㅎㄲㅅㄱ)


― 소피의 달빛 담요 (제인 다이어 그림,에일린 스피넬리 글,김흥숙 옮김,파란자전거 펴냄,2001.12.1./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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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
이일우 지음 / 팝콘북스(다산북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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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아가는 대로 느끼며 바라보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59] 이일우, 《내 인생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팝콘북스,2006)



 살아가는 대로 느끼면서 바라보는 사진입니다. 살아가는 대로 깨달으며 찍는 사진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결을 스스로 어떻게 일구거나 여미거나 다스리거나 돌보는가에 따라, 내 눈길로 읽는 사진과 내 손길로 찍는 사진이 거듭납니다.

 내 눈길이나 손길은 맨 처음에는 아주 서툴거나 엉성하거나 투박할 수 있습니다. 서툴다 해서 나쁘지 않습니다. 서툴 때에는 서툴 뿐입니다. 엉성하대서 모자라지 않습니다. 엉성할 때에는 엉성할 뿐이에요. 투박한 눈길이나 손길도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투박하게 읽으면 투박하게 읽는 대로 나한테 기쁘며 좋은 사진입니다. 투박하게 찍으면 투박하게 찍는 대로 내게 보람차며 반가운 사진이에요.

 사진길을 뚜벅뚜벅 걷다 보면, 처음에는 서툴던 눈길이나 손길이 차츰 단단해지기도 하고 야물차기도 합니다. 엉성하던 매무새가 짜임새를 갖출 수 있고, 투박하던 사진이 매끄럽거나 멋스러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다 좋습니다. 사진은 반드시 야물차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서툴어도 됩니다. 사진은 꼭 짜임새가 빼어나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엉성해도 됩니다. 사진은 어김없이 멋스럽거나 예뻐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투박해도 됩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느낌은 그닥 대단하지 않습니다. 초점이나 셔터빠르기는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흔들려도 좋고 어긋나도 괜찮아요. 사진이라는 이름이 붙을 때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야기는 깃들지 않으면서 멋스러이 보이기만 한다면 사진이 아니에요. 빈 껍데기입니다. 이야기를 담지 못하면서 예쁘장하기만 한다면 사진이 되지 않아요. 덧없는 겉치레입니다. 이야기를 즐거이 살아내지 않으면 사진하고 동떨어져요.

 《내 인생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팝콘북스,2006)라는 책을 내놓은 이일우 님은 대학교 사진학과를 나오고, 독일로 사진을 배우러 다녀왔지만, 처음부터 ‘사진을 알’거나 ‘사진을 느끼’지 못합니다. 아니, ‘사진으로 살아가지’조차 못합니다. “나는 단지 경제적인 이유 하나만으로 충무로에 있는 작은 잡지사 사진기자로 취직을 했다(10쪽).”라는 말마따나,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를 뿐더러, 사진으로 삶을 일구는 길을 영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사진을 작업하지 않고 머리로만 공부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11쪽).”고는 느낍니다.

 이리하여, ‘몸(실천과 행동)’으로 찍지 않고 ‘머리(지식과 이론)’로 찍는 사진을 털어내려 애씁니다. 꾸준히 애쓰면서 “‘무엇을 찍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우리가 매일 걸어다니는 길 위에 이미 있다(20쪽).” 하고 깨닫습니다. 적어도 ‘사진길 첫걸음’은 떼는 셈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게 아니라 사진가가 찍는다는 사실이다(25쪽).” 하고 다짐하듯, 이제 막 아장걸음을 뗍니다.

 한국에서 사진찍기를 한다는 이들 가운데 이만큼이라도 스스로 털어놓으면서 새로 태어나고자 애쓰는 분이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살아가는 대로 느끼며 바라보는 사진인데, 스스로 내 삶부터 얼마나 아름다이 여미려고 힘쓰는지 궁금합니다. 내 삶을 알차고 사랑스레 돌볼 때에 내 사진 또한 시나브로 알차며 사랑스러울 수 있는 줄 느끼는 분이 얼마나 될는지 궁금해요.

 이일우 님은 “자연은 내 노력에 비해 훨씬 큰 것들을 준다(46쪽).” 하고 이야기하지만, 이러한 말을 꺼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동안 이 황량하고 척박한 사막에서 무엇을 사진으로 옮겨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내 앞에 있는 게으름뱅이 낙타처럼 이곳에 존재하는 하나하나의 사물들에서도 사막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12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자연이 얼마나 크나큰 선물을 베푸는가를 조금 깨달았다고 하면서, 막상 사막으로 사진마실을 다녀오는 동안 ‘자연이 베푸는 선물’을 제대로 맛보지 못합니다. 아니, 자연이 선물을 베푼다고 느끼지 못해요.

 무엇을 사진으로 옮겨야 할지 걱정하지 마셔요. 내 가슴으로 느끼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으면 돼요. 낙타가 게으름뱅이라고요? 낙타를 사진으로 담아 이야기 하나 길어올리지 못하는 사진쟁이가 게으름뱅이예요. 낙타한테서, 낙타를 모는 일꾼한테서, 사막에 가득한 모래에서, 사막을 내리쬐는 햇살에서, 뜨거운 바람에서, 작은 샘과 풀포기에서, 차근차근 사막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한테는 어떠한 사진넋도 태어나지 못합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닙니다. 내 삶그릇만큼 내 사진그릇입니다. 내 삶길과 같은 내 사진길입니다. 내 삶눈에 따라 내 사진눈입니다. 내 삶넋으로 이루어지는 내 사진넋입니다. (4344.9.18.해.ㅎㄲㅅㄱ)


― 내 인생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 (이일우 글·사진,팝콘북스,2006.10.23./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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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숲 어린이


 시골마을에서 읍내로 가려면 시골버스를 타러 논둑길을 걷다가는 커다란 느티나무 앞에서 기다린다. 이 느티나무 둘레로는 온통 시멘트로 마감을 해서 자동차를 세우기 좋도록 했다. 해마다 수많은 느티씨가 떨어지지만 시멘트땅에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는다. 그래도 느티나무 굵직한 줄기 가까이에서 새로운 느티싹이 돋아 어린 느티나무로 자란다. 이들은 머잖아 풀약을 먹고 죽지만, 우람한 느티나무 둘레에서는 우람한 느티나무처럼 자라고픈 어린 느티나무들이 천천히 제 목숨을 돌본다.

 시골버스역 둘레 풀숲에서 아이가 논다. 따로 어머니나 아버지를 부르지 않고 홀로 풀숲을 살며시 밟으며 꽃이나 풀줄기를 꺾는다. 우리 아이가 풀숲 어린이로 살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가 좋다. 우리 아이가 풀숲 어린이 아닌 스마트폰 어린이가 된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읍내로만 나와도 우리 아이는 갖가지 전자제품과 물질문명을 마주해야 한다. 하루 빨리 깊은 시골자락으로 들어가고 싶다. (4344.9.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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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에서 깨다


 사람들이 모두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한미자유무역협정이니 서울시장이니 무어니 하고 골머리를 앓지 말고, 조용히 내 논밭을 사랑하고 내 멧자락과 바다와 냇물을 아끼면서, 내 살붙이하고 마음과 사랑을 나누는 호젓한 시골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면 얼마나 기쁠까.

 서울이 텅 비면 좋겠다. 자가용과 아파트와 높은건물 모두 서울에 남기고, 튼튼한 몸과 마음만 단단히 여민 채 시골로 가서 호미를 잡고 괭이를 잡으며 낫을 붙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서울시장 후보나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며 땀흘리는 분들 땀방울과 다리품이 너무나 아깝다.

 출판사는 서울에 몰렸고, 책은 서울에서 가장 많이 팔리지만, 막상 서울에서 살아가면 ‘책이라는 물건’은 잔뜩 거머쥘 수 있어도 ‘책이라는 마음밥’은 하나도 곰삭이지 못한다. 좋은 쇠붙이로는 골프채 아닌 호미를 만들고, 좋은 돈과 품과 땀으로는 좋은 흙을 일구면서 잠에서 깰 수 있기를. (4344.9.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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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9-17 16:07   좋아요 0 | URL
그러면 좋겠죠, 그리고
이왕이면 한국이 그럴 때 타국에서 우리를 해치지 않도록 지구 전체가 그렇다면 좋겠어요.
결국 저와 같은 두려움으로 인해 도시인은 손을 놓지 못하나봐요, 참 어리석죠... ㅠㅠ

파란놀 2011-09-17 16:54   좋아요 0 | URL
어릴 적부터 '스스로 살기'를 배우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스스로 살기를 배우지 못한 몸과 마음을 깨닫지 못해서,
어떻게 마음과 몸을 고쳐서 거듭나도록 이끌어야 하는가로
나아가지 못해요.

그래서, 가만히 따지고 보면,
사람들은 "인문책을 읽으면 안 돼"요.
인문책은 거의 한결같이 '지식을 다루는 책'이지,
'행동으로 나아가는 책'이 아니거든요.

인문책을 읽어야 나라가 살거나 바뀌지 않아요.
생각을 고치면서 삶과 사람을 사랑하는 흙을
아끼는 길로 나아가야 나라가 살거나 바뀌어요...
 



 글을 쓰다


 새벽 한 시 사십이 분에 깨다. 둘째 기저귀를 살피고 나도 쉬를 한 다음, 한가위 지난 며칠 뒤까지 밝고 맑은 달빛을 느끼고 나서, 조용히 다시 잠들 만하다. 그러나 셈틀을 켠다. 무언가 한 줄이라도 끄적이고 싶다. 아이들이 새근새근 잘 때가 아니면 글을 쓸 수 없다. 삼십 분쯤 지나는 동안, 머리가 도무지 맑아지지 않아 글쓰기를 못하겠다고 느낀다. 아무래도 잠을 자야겠다고, 오늘은 글을 못 써도 어쩔 수 없겠다고 여긴다. 이러다가 갑작스레 마음에 불이 켜지고, 이윽고 두 시간 즈음 더 불꽃을 지피면서 글을 쓴다. 더없이 엉터리이고 그지없이 바보스러운 글과 사진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진일기를 적바림하는 공책에 몇 줄 끄적인다. 참 그렇다. 참말 엉터리이구나 싶은 사진을 볼 때면, 나도 이런 엉터리이구나 싶은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 똑바로 살아가며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그러니까, 깊은 새벽녘, 더없이 엉터리인 글을 하나 읽고, 그지없이 바보스러운 사진 몇 장을 보면서,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타올랐다. 이 불길을 한동안 살리고 싶어 보리술 한 모금을 홀짝거린다. 누구는 담배 없이는 글을 못 쓴다 하는데, 나는 맨 마음으로 쓸 글은 다 쓰지만, 잠이 쏟아지는 힘겨운 새벽녘에는 보리술 한두 모금 홀짝이면서 몸에 불을 지핀다. 고마이 붙잡은 글발을 마무리지을 때까지 몸이 버티어 줍사 하고 비손을 드리듯, 사랑스레 나누고픈 글줄을 꽃피우기까지 마음이 따사롭게 이어가 줍사 하고 절을 하듯, 땅콩 몇 알과 보리술 한 모금. (4344.9.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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