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선생님 1 세미콜론 코믹스
다케토미 겐지 지음, 홍성필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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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은 학교에서 뭘 할 수 있나요
 [만화책 즐겨읽기 65] 다케오미 겐지, 《스즈키 선생님 (1)》


 ‘선생님’ 아닌 ‘교사’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몫을 맡는 사람은 스스로 ‘선생님’이라고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은 말이야” 하고 말문을 열면 안 됩니다. ‘선생’도 아닌 ‘선생님’은 남이 나를 높이면서 부르는 말이지, 내가 나를 높이면서 가리킬 수 없는 말입니다. 아이들 앞에 선 사람은 “나는 말이야” 하고 말문을 열어야 올바릅니다.

 곧 ‘선생님’은 학교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학교 밖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학교 안팎에서 어느 하나 할 수 없는 이가 선생님입니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 해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태어나서 밥그릇을 좀 많이 비웠으니까, 나어린 이들이 높임말로 우러르거나 섬겨야 하겠습니까. 나이가 많으면 그저 어른 대접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사람은 서로를 사람으로 바라봅니다. 사람은 서로를 돈이나 이름값이나 힘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돈이나 이름값이나 힘으로 바라볼 까닭이 없어요.

 사람은 서로를 사랑으로 바라봅니다. 사람은 서로를 학벌이나 학연이나 지연 따위로 바라보지 않으며, 학벌이나 학연이나 지연 따위로 바라볼 까닭이 없어요.

 서로서로 좋은 넋을 헤아리면서 서로서로 따스한 얼을 북돋웁니다. 내 고운 사랑을 스스럼없이 나눕니다. 네 기쁜 사랑을 즐거이 맞아들입니다. 내 빛나는 넋을 예쁘게 뿌립니다. 네 빛나는 눈길을 고마이 받아들입니다.

 이리하여, 선생님 자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리요, 교사 자리는 그저 ‘가르치기’만 하는 자리입니다. 이른바 학교라는 데에서는 교사 몫을 하는 이가 ‘가르치기’만 하면서 ‘달삯’을 챙길 뿐입니다.


- “나도 모르게 내가 알고 있는 게 최고라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어요.” “그랬군요. 그럼 예전에 전화로 얘기한 반 회의는?” “네, 안 하려고요. 종례시간에 모두에게 담담하게 이즈미의 얘기를 전하고 돌려보냈어요. 나머지는 혼자서 차분하게 깊이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면서 말이죠. 솔직히 걱정했지만, 나카무라도 신중하게 들어 줬어요. 그렇게 보였어요. 너무 낙관적인 걸까요?” “이것저것 모두 교사가 손 안에 쥐고 있을 필요는 없어요.” (47쪽)


 교사는 학생 자리에 선 사람한테 ‘교과서 지식을 가르치는’ 몫을 맡겠다면서 교육대학을 네 해 다니고 시험을 치러 자격증을 땁니다. 학원에서도 이와 똑같아요. 운전학원이건 발레학원이건 피아노학원이건 태권도학원이건, ‘지식을 가르치는’ 몫을 맡는 이는 먼저 여러 해에 걸쳐 자격증을 따려고 애씁니다. 자격증을 딴 다음에는 달삯이라는 돈을 벌 일자리를 알아봅니다. 작은 사람을 맡아 작은 사람이 살아갈 아름다운 나날에 빛나는 마음밥이 될 넋이나 얼을 보살피는 이야기는 ‘자격증을 따는 동안 따로 배우지 않’아요.

 교사는 공무원입니다. 나라에서 달삯과 수당과 연금을 줍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건 나라에서는 공무원 노릇을 하는 교사한테 달삯과 수당과 연금을 줍니다.

 교사는 노동자입니다. 노동자인 교사한테는 노동3권이 있을 테니, 노동3권을 외칩니다.

 그러니까, 공무원이자 노동자인 교사입니다. 이밖에 달리 아무것도 아닌 교사입니다. 아이들 앞에 설 때에 스스로 무엇인가를 느끼지 못합니다. ‘먼저 태어났으니까 우러름을 받으려는(선생님)’ 사람이면서 ‘넉넉히 돈을 받는(공무원)’ 사람인 한편 ‘권리를 누리는(노동자)’ 사람입니다. 이 세 가지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쓰면서 아이들한테 ‘교과서 지식’이나 ‘시사상식’만 들려줍니다.


- “선생님이 잘 해결해 주실 거야.” “정말? 왜 그럴까. 탕수육, 왜 다들 먹지 못할 정도로 싫어하는 걸까.” (75쪽)


 곰곰이 생각합니다. 나는 선생님도 내키지 않고 교사도 못마땅합니다. 그저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그예 어른이면 반갑겠습니다. 아이들 앞에 서는 사람이요, 아이들하고 함께 살아가는 어른입니다. 어린이 마음이나 푸름이 마음이 되겠다고 섣불리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 앞에 서는 사람입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살아가는 어른입니다. 사람이자 어른인 줄 거듭 되뇌며 다시금 아로새겨야 합니다.

 아이들 앞에 서는 사람이라고 깨닫고 살아낼 때에 비로소 교과서이든 교과서 아닌 책이든 신문이든 인터넷이든 무엇이든, 아이들하고 함께 가르치고 배웁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살아가는 어른이라고 느끼며 어깨동무할 때에 바야흐로 어른으로서 내 삶을 어떻게 일구면서 아이들 스스로 어떤 삶을 아이들 스스로 일굴 때에 서로 아름다울까 하고 알아차립니다.

 사랑을 해야지 사랑 지식을 가르칠 까닭이 없습니다. 짝꿍을 사랑하고 살붙이를 사랑하며 동무를 사랑할 노릇입니다. 이웃을 사랑해야지 이웃을 불쌍히 여길 까닭이 없습니다. 동무를 좋아해야지 동무를 부러워하거나 창피하게 여길 까닭이 없습니다. 짝꿍을 사랑해야지 짝꿍 살결을 주물럭거릴 까닭이 없어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무엇이 있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누리고, 무엇을 나누며, 무엇을 남기거나 돌보아야 하는가를 먼저 살피고 깨달아 아이들한테 물려주거나 보여주거나 이어주는 몫을 맡을 때에 ‘교사’라는 이름을 붙일 만합니다.

 어른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넋을 가다듬어 어떤 말을 펼치며 어떤 삶을 가꾸는가를 올바르며 착하고 참다이 삭여야 ‘교사’답게 아이들과 배울 만합니다.


- “선생님은 제가 한 일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세요?” “글쎄, 지금 들은 것만 보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 같진 않구나.” “그렇군요. 그건 제가 중2라서요? 아님 상대방이 초등학생이라서? 말씀드렸지만, 이건 예민한 문제니까요. 만약 이것저것 다 캐물은 다음 납득이 안 가는 이유로 대충 마무리하고 처벌하면 저는 반성은커녕 절대로 용서 못할 거예요.” (116쪽)


 다케오미 겐지 님이 빚은 만화책 《스즈키 선생님》(세미콜론,2011) 1권을 읽습니다. 교사 자리에 섰으나 아직 교사라 할 만하지 않은 ‘어른 스즈키’가 어떤 모습으로 아이들하고 마주하는가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책이름부터 선생님이라고 적습니다만, 교사와 선생님이라는 이름이나 허울이 어떠한가를 아직 옳게 짚지 못하는 ‘사람 스즈키’가,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하고 어울리는가를 조용히 보여줍니다.

 아이들과 지내며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놓고 뾰족한 길을 찾아내지는 못합니다. 여러 날 골머리를 앓고, 오래도록 마음앓이를 합니다. 어른도 아이도 갈팡질팡입니다. 어른도 아이도 언제나 ‘수업 진도’가 맨 먼저입니다. 어른도 아이도 오락가락입니다. 어른도 아이도 늘 ‘시험 성적’이 가장 큽니다.

 수업 진도와 시험 성적이라는 쇠사슬을 스스로 동여맨다면, 학교는 그야말로 학교입니다. 배우는 터전인 배움터가 되지 못합니다. 배움터는 지식쌓기를 하는 데가 아니니까요. 삶터가 돈벌이만 잘해서 갖가지 전자제품이나 물질문명을 누리는 데가 아니듯, 배움터는 교과서 수업 진도를 잘 나가서 손꼽히는 대학교에 철썩 붙도록 등을 떠미는 데가 아닙니다. 포근하며 넉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고운 보금자리가 될 삶터입니다. 사랑과 믿음과 꿈이 예쁘게 어우러지는 사람들 좋은 이야기마당이 될 배움터입니다.

 만화책 《스즈키 선생님》은 참다운 교육이 걸어갈 길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교사다운 교사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저 제도권 교육 울타리에서 아이들이 아이다움을 잃지 않고 어른들이 어른다움을 내팽개치지 않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대목을 살짝 보여줍니다. 그나마, 아직까지 한국땅에서는 이만 한 이야기조차 만화로든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글로든 춤으로든 노래로든 보여주지 못합니다. (4344.9.27.불.ㅎㄲㅅㄱ)


― 스즈키 선생님 1 (다코오미 겐지 글·그림,홍성필 옮김,세미콜론 펴냄,2011.2.17.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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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관에서 빨래하기


 여관은 방 하나 빌려 잠을 자는 집입니다. 잠을 자도록 하는 곳이기에 이곳 임자는 손님이 빨래를 즐거이 하도록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이나 비데나 씻는통이나 에어컨이나 침대에는 마음을 기울일 테지만, 손빨래를 하도록 크고작은 대야 하나 마련해 두지 않습니다. 물꼭지를 낮은 자리에 하나 빼서 빨래하기 좋도록 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살든 여관에서 머물든 갓난쟁이는 똥오줌기저귀를 내놓습니다. 버스를 타든 길을 걷든 갓난쟁이는 쉬가 마려울 때에 오줌기저귀를 내놓습니다. 물을 쓸 수 있는 곳에서 바지런히 오줌기저귀를 빨고 헹구어야 합니다. 잠을 자는 곳에서 신나게 빨래를 해서 방 곳곳에 옷걸이에 걸쳐 널어야 합니다. 옷걸이를 스무 개쯤 챙겼으나 하루 내내 나오는 갓난쟁이 기저귀에 첫째 아이와 옆지기 옷가지에, 옷걸이 스무 개로는 모자랍니다. 세 사람 빨래를 하면서 내 몫 빨래는 뒤로 미룹니다. 옷걸이에 넌 빨래가 줄어들 깊은 밤에 비로소 내 몫 빨래를 합니다.

 여관 시설이 어떠하든, 여관 씻는방이 어떻게 생겼든, 날마다 주어진 몫만큼 빨래를 합니다. 벽이나 창가가 얼마나 옷걸이를 널기 괜찮은가를 아랑곳할 수 없습니다. 어찌 되든 빨래는 다 해야 하고, 다 한 빨래는 널어야 합니다.

 시골집에서는 새벽 두어 시에 일어나 빨래를 하고 글을 쓰다가는, 새벽 여섯 시 무렵에 또 빨래를 했지만, 여관에서는 밤 열한 시 무렵 빨래를 마치고는 곯아떨어져 새벽 여섯 시에 끙끙거리며 등허리 토닥여 일어나서 빨래를 더 합니다. 부디 두 아이가 아침 아홉 시 반까지는 새근새근 자면서 고단함을 털면 좋겠습니다. 고단함을 말끔히 털고 나서, 새 보금자리 찾는 힘겨운 새 하루이지만, 다시금 기운을 내어 바지런히 돌아다닐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4344.9.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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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수레와 어버이 가슴


 첫째 아이와 살아가는 동안 아기수레를 안 썼습니다. 둘째 아이와 살아가면서 아기수레를 안 씁니다. 첫째와 둘째는 언제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갈마들면서 가슴으로 안고 다닙니다. 첫째는 여느 아이보다 컸기에 하루에 몇 시간씩 안고 돌아다니면 팔이 없는 듯했습니다. 첫째가 두 다리로 서고 걸으며 달릴 수 있을 때에 얼마나 홀가분하면서 기뻤는지 모릅니다. 둘째는 첫째보다 큽니다. 첫째보다 큰 둘째를 안고 다닐라치면 첫째 때보다 훨씬 팔이 없는 듯합니다. 등허리 또한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둘째도 언젠가 스스로 제 다리로 서고 걸으며 달릴 날을 맞이하겠지요. 서고 걸으며 달리기까지 한 해는 더 기다려야 할 테지만,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나날을 헤아린다면 한 해쯤 아이를 가슴으로 폭 안으면서 다니는 일이란 어버이로서 아이를 사랑하는 고마운 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4344.9.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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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살다


 살아가는 터전에서 글을 쓴다. 살아가는 사람하고 글을 쓴다. 살아가는 보금자리에서 내가 하는 일과 내가 꾸리는 살림을 글로 쓴다. 살아가는 사람하고 어울리는 나날을 글로 쓴다.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나는 시골집 시골다움을 글로 담는다. 시골집에서 네 식구 짐을 꾸려 먼 마실을 나와 새 보금자리를 찾는 동안, 시골집 아닌 여관에서 묵는다. 여관에서 묵는 내내 내 귀로 들리는 소리는 자동차랑 텔레비전 울리는 소리와 에어컨이나 냉장고나 정수기가 전기를 먹으며 끄르릉 끓는 소리. 우리 식구 지난 한 해 살아온 시골집은 텅 비었을 테지만, 시골집 둘레로 갖은 풀벌레가 새벽부터 밤까지 고즈넉히 울겠지.

 귀를 기울이자. 내 마음을 열며 귀를 기울이자. 읍내 여관에서 묵을지라도 냉장고 꼬르륵 소리에 묻히는 저 먼 멧골자락 풀벌레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마음을 열면 이 소리를 고즈넉히 들을 수 있으리라. 마음을 열지 못하면 길가 풀섶 작은 풀벌레 소리조차 못 들으리라.

 나는 내가 먹는 밥과 내가 입는 옷과 내가 자는 보금자리 기운을 하나하나 받아들이면서 글을 쓴다. 나는 내가 딛는 땅과 내가 마주하는 살붙이와 내가 사랑하는 하늘땅을 고스란히 맞아들이면서 글을 쓴다. 내 글은 내 사랑이어야 한다. 내 글은 내 삶이어야 한다. 내 글은 내 눈물과 웃음이어야 한다. (4344.9.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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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일이 본 제주의 속살
고영일 사진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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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길을 열 때에 천천히 드러나는 사진길
 [찾아 읽는 사진책 62] 고영일, 《고영일이 본 제주의 속살》(한울,2011)


 서울에서 사진찍기를 하는 사람과 대전에서 사진찍기를 하는 사람은 둘레 터전이 다릅니다. 찍은 사진을 받아들이는 둘레 사람들 느낌이나 마음이 다르고, 찍은 사진을 곱게 가다듬어 어느 한 자리에 그러모아 조그맣게 잔치를 마련할 자리가 다릅니다. 서울과 인천은 또 다르고, 서울과 목포는 또 다릅니다. 서울과 전주는 또 다르며, 서울과 구례는 또 다릅니다. 서울과 거창은 얼마나 크게 다를까요. 서울과 해남은, 서울과 고성은, 서울과 양양은, 서울과 문경은, 서울과 제천은 또 얼마나 다를까요.

 문화밭이나 예술밭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서울에서 사진을 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랑 ‘전라남도 고흥에서 사진을 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에 무엇을 생각하거나 헤아릴까 궁금합니다. ‘울산에서 사진을 합니다’라든지 ‘음성에서 사진을 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에는 무엇을 살피거나 돌아볼까 궁금합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사진을 한다는 사람과 시골에서 지내며 사진을 한다는 사람은 서로 얼마나 어떻게 다르다고 느낄는지요. 바닷마을에서 살아가며 사진을 한다는 사람과 멧골자락에서 지내며 사진을 한다는 사람은 저마다 어떻게 다르다고 어림할는지요.

 ‘사진을 한다’고 할 때에는 이이한테서 무엇을 느껴야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어느 대학교 사진학과를 나왔는가를 먼저 살펴야 할까요. 사진학과 아닌 다른 학과를 다녔다면, 왜 사진으로 발을 옮겼는가를 알아야 할까요. 나라밖 어느 곳에서 사진을 배웠는지 알아야 하나요.

 ‘사진을 한다’는 사람이 고등학교만 마쳤다면, 중학교만 마쳤다면, 초등학교만 마쳤다면, 초등학교조차 다니지 않았다면, 이녁이 하는 사진을 여느 사람이나 예술쟁이나 문화쟁이는 어떤 눈길과 눈높이로 바라볼는지요.

 고영일 님이 빚은 사진을 그러모은 《고영일이 본 제주의 속살》(한울,2011)을 들여다봅니다. 제주에서 태어나 기자로 일하며 제주 삶터와 사람을 사진으로 담았다고 하는 고영일 님입니다. 한국땅에서 바라볼 때에 고영일 님은 ‘제주에서 나고 자라 제주를 사진으로 담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바라본다면 ‘한국 사진’이지 ‘제주 사진’이 아닙니다. 프랑스나 독일이나 네덜란드나 스위스나 룩셈부르크나 오스트리아에서 바라본다면, 고영일 님 사진은 ‘한국 사진’이면서 ‘동양 사진’입니다. 미국이나 멕시코나 칠레나 아르헨티나에서 바라본다면, ‘아시아 사진’입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네팔이나 티벳이나 버마나 필리핀이나 라오스나 베트남에서 바라볼 때에는 ‘지구별 사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진을 읽는’ 사람이 살아가는 자리에 따라 《고영일이 본 제주의 속살》은 저마다 달리 느끼거나 받아들입니다. 필리핀 뭇 섬 가운데 어느 한 곳에서 나고 자라며 사진을 찍은 누군가 빚은 사진책을 읽는다 하면, 이 사진책 하나는 ‘필리핀 뭇 섬 가운데 한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보금자리를 곱게 보여준다 하면서, ‘작은 섬 하나를 바탕으로 필리핀이라는 터전’을 드러내는 사진이라고 여기겠지요. 마다가스카르 한켠을 찍은 사진을 읽을 때에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라다크 가는 길을 찍은 사진을 살필 때에도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찍은 사진을 생각할 때에도 이와 똑같아요.

 고영일 님은 “또 한 가지 나로 하여금 카메라를 놓지 못하게 한 마음은 이른바 ‘개발’ 때문에 사라져 가 버리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다. 사실 사진인치고 촬영지로서의 제주도를 한 번이나마 생각 안 해 본 적이 없으리라. 거기서 자연 풍경으로서의 제주도는 언제까지나 이어 줄 것이지만 ‘사라져 가는 제주도’는 바로 지금부터가 가장 이른 출발일 수밖에 없다(6쪽).”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고영일이 본 제주의 속살》은 고영일 님이 스스로 낸 책이 아니라, ‘예전에 적바림한 글’과 사진이 실립니다. 돌아가신 넋을 기리면서 여민 책이기에 고영일 님이 더 보여주고 싶었을 모습이나, 고영일 님이 더 들려주고 싶었을 이야기까지는 담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두툼한 사진책 하나로 ‘제주섬 속살’을 어느 만큼 돌아볼 만합니다.

 그러면, 이 사진책을 손에 쥔 사람들은 어떤 ‘제주섬 속살’을 읽을 만할는지요. 참말 이 사진책을 읽을 때에 ‘제주섬 속살’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나는 내 사진을 나 스스로 들여다보거나 내 이웃이 들여다볼 때에 가만히 생각합니다. 나는 내가 나고 자란 인천을 사진으로 찍었다 할 때에 ‘오직 인천이라는 터전만 이 사진에 담긴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인천이라는 곳을 발판으로 삼아 ‘한겨레가 저마다 제 삶터에서 어우러지거나 복닥이는 이야기’가 시나브로 깃든다고 느낍니다. 한겨레가 지내는 모습이 살며시 드러나는 ‘내 인천 사진’이면서, 한 해 두 해 무르익는 동안 ‘인천이나 한겨레 울타리를 넘어’ 지구별 사람들이 살아가는 자취가 고즈넉히 감돈다고 느낍니다.

 잘 찍었다는 사진이건 잘 못 찍었다는 사진이건 늘 같습니다. 즐겁거나 예쁘다 여길 만한 사진이건, 슬프다거나 어설프다 여길 만한 사진이건 언제나 같습니다. 사람들은 어여삐 어깨동무하기도 하지만, 안타까이 해코지하거나 바보스레 다투기도 합니다. 어느 사람 사진에는 따스한 사랑이 깃들지만, 어느 사람 사진에는 어줍잖게 겉멋내는 껍데기가 넘칩니다. 어느 사람 사진에는 포근한 꿈이 서리지만, 어느 사람 사진에는 그럴듯한 흉내내기나 그림그리기가 춤춥니다.

 어쩔 수 없어요. 착하며 예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나, 비싸고 까만 차를 몰며 으스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흙을 일구며 햇살을 받아들이는 일꾼이 있으나, 서울 종로 높은 건물에서 양복을 빼입고는 자판을 두들기는 일꾼이 있어요.

 골목길이나 고샅길 사진만 ‘옛이야기(추억)’가 되지 않습니다. ‘관제 홍보’ 사진 또한 옛이야기가 됩니다. 투박한 사람들 수수한 삶만 옛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똑같은 교복 차림에 똑같은 머리 모양으로 빼곡하게 줄지어 서서 누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도록 찍는 경주 불국사 수학여행 모둠사진도 옛이야기가 됩니다.

 “동네에 들어서면 촬영자가 오히려 구경거리다. 몰려다니며 찍어 달랜다. 다 모아 놓고 막상 찍으려면 오히려 숨는 녀석이 있다. 장년이 되었을 이들 중에 몇이나 이 사진을 반길 형편이 되었을까(7쪽)?” 하는 고영일 님 이야기를 읽으면서 빨래터 사진을 오래도록 들여다봅니다. 제주섬에서 이렇게 수많은 아주머니들이 한 자리에 모여 빨래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두 번째로 봅니다. 맨 먼저 일본사람이 찍은 사진을 보았습니다. 일본에서 1960년대 첫무렵에 내놓은 ‘세계 문화 여행’ 이야기를 다룬 스물 몇 권짜리 ‘전집 사진책’ 가운데 한국 이야기를 다룬 권에서 ‘제주섬 사람들 여느 삶’을 보여주면서 빨래터 사진을 실었어요.

 1960년대 일본 사진책에서 ‘제주섬 빨래터 사진’을 보고는 입이 쩍 벌어지며 벙 떴습니다. 일본사람은 1960년대에도 한국에 와서 이런 사진을 찍는데, 한국사람은 1960년대나 1970년대나 1980년대나 1990년대나 2000년대나 2010년대나 무슨 사진을 찍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사람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오늘 이곳’에서 사진으로 담은 적이 있는지 그야말로 알쏭달쏭합니다. 스스로 투박하거나 수수하게 살아가면서 ‘투박하거나 수수한 내 삶’을 비롯한 ‘투박하거나 수수한 내 이웃 삶’을 꾸밈없이 사진으로 담는 길을 찾는 사진쟁이가 몇 사람쯤 있을까 아리송합니다.

 문화를 하건 예술을 하건, 사진길을 열려면 내 삶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내 삶을 먼저 깨닫는 길에 서야 바야흐로 내 사진길이 어느 문화나 예술 갈래에서 빛이 날 만한지를 알아차립니다. 무턱대고 문화길이나 예술길부터 걸을 수 없습니다. 사진뿐 아니라 그림이나 만화나 글이나 춤이나 노래나 연극이나 영화나 서로 매한가지입니다. 내 삶길부터 똑똑히 아로새기고 나서야 문화이든 예술이든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삶을 못 깨닫고 내 삶을 말할 줄 모를 때에는 아무런 문화도 예술도 말하지 못합니다. 내 삶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문화이든 예술이든 사랑할 수 업습니다. 내 삶을 꿈꾸면서 일굴 때에 비로소 문화이든 예술이든 꿈꾸면서 일굴 수 있어요.

 고영일 님은 제주에서 나고 자라 제주섬 사람과 터전과 자연을 찬찬히 사진으로 담으면서 시나브로 사진길을 엽니다. 천천히 사진길을 열며 삶길을 북돋우기에 뒷날에는 사진비평을 하는 눈길을 트면서 글 몇 자락 남길 수 있습니다. 삶이 먼저요 사랑이 먼저입니다. 삶이 첫걸음이요 사랑이 두걸음입니다. 삶에서 샘솟는 따스한 손길이요 사랑에서 비롯하는 넉넉한 사진길입니다. (4344.9.27.불.ㅎㄲㅅㄱ)


― 고영일이 본 제주의 속살 (고영일 사진,한울 펴냄,2011.3.30./4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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