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28) 회오의 1 : 회오의 눈물

 

 

.. 어떤 이는 그를 한때의 격랑일 뿐이라 하며 / 또 어떤 이는 회오의 눈물 / 굴절과 비통의 소용돌이라고도 하겠지만 ..  《송경동-꿀잠》(삶이보이는창,2006) 126쪽

 

 ‘격랑(激浪)’은 “거센 물결”을 뜻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소용돌이”로 손볼 수 있으나, 뒤에 소용돌이라는 낱말이 나오니, 앞말과 묶어 “한때 이는 거센 물결”이나 “한때 휘몰아치는 물결”이나 “한때 이는 물결”이나 “한때 부는 바람”처럼 손질할 수 있어요. “굴절(屈折)과 비통(悲痛)의 소용돌이”는 “꺾이고 슬픈 소용돌이”로 다듬어 봅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은 싯말입니다. 여느 글이 아닌 싯말이기에 이렇게 다듬자고 해도 좋을까 궁금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싯말이든 소설말이든 똑같이 말이에요. 입으로 하는 말이든 손으로 쓰는 글이든 모두 한국말입니다. 한국말이라는 테두리에서, 어떻게 적거나 읊을 때에 한결 살가우면서 사랑스러울까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회오(悔悟) : 잘못을 뉘우치고 깨달음.
   -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회오의 눈물을 흘렸다 /
     반성문은 절절한 회오로 가득 차 있었다

 

 회오의 눈물
→ 뉘우치는 눈물
→ 뉘우치며 흘리는 눈물
→ 고개 떨군 눈물
 …

 

 꼭 싯말이기 때문은 아니나, 이 싯말을 읽으며 다른 말마디는 그럭저럭 읽고 지나가다가, ‘회오’라는 대목에서 걸립니다. 다른 말마디를 그대로 둔다 하더라도 ‘회오’라는 말마디는 참말 아니지 않느냐고, 이러한 말마디를 반드시 써야 하느냐고, 하는 생각이 자꾸자꾸 납니다.

 

 국어사전에서 한국말 ‘뉘우치다’를 찾아보면, “스스로 제 잘못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가책을 느끼다”로 풀이합니다. 국어사전에서 한자말 ‘회오’를 찾아보면 말풀이가 겹말입니다. 아마, 한자말 ‘회오’만 국어사전에서 찾아본다면, 이 한자말 풀이가 겹말인 줄 알아채지 못하리라 봅니다. 한국말 ‘뉘우치다’를 함께 찾아볼 뿐 아니라, 한자말 ‘회오’가 딱히 남다르다 싶은 낱말이 아닌 줄 생각할 때에 비로소 이 얄궂은 말풀이와 말씀씀이를 깨닫습니다.

 

 회오의 눈물을 흘렸다
→ 뉘우치며 눈물을 흘렸다
→ 뉘우치는 눈물을 흘렸다
 …
 절절한 회오로 가득 차 있었다
→ 애타는 뉘우침으로 가득 찼다
→ 애끓는 뉘우침으로 가득 찼다
→ 눈물겨운 뉘우침으로 가득 찼다
 …

 

 보기글에서 밝히는 “뉘우치는 눈물”은 여러모로 돌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말뜻 그대로 뉘우치는 눈물입니다. 다음으로, 슬프다고 여기는 눈물입니다. 다음으로, 부끄러이 여기는 눈물이며, 안타까이 여기는 눈물이거나, 안쓰러이 여기는 눈물입니다. 스스로 꾸짖는 눈물이나, 스스로 나무라는 눈물일 수 있어요. 나를 채찍질하는 눈물이 되거나, 나를 다그치는 눈물이 되기도 할 테지요.

 

 잘못을 깨닫는다 할 때에는, 뉘우칠 수 있고 슬프게 여길 수 있으며 못마땅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참 바보였구나 하고 여긴다거나, 나는 꽤 멍청했구나 하고 여길 수 있어요.

 

 어떤 빛, 어떤 느낌, 어떤 이야기, 어떤 결인가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어떤 말, 어떤 글일 때에 내 넋을 환하게 밝힐 만한가 곰곰이 따집니다. (4345.1.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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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31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2-01-31 18:37   좋아요 0 | URL
버릇처럼 쓰는 말투를 손질하거나 고치기란
참 힘들어요.

생각을 깊이 기울여야
차근차근 하나씩 가다듬을 수 있어요.

에고..
 

 

묶음표 한자말 165 : 감우(甘雨)

 


.. 문자 그대로 감우(甘雨)로구나 싶었다. 들과 풀과 나무와 내와 배꽃, 복숭아꽃이 달디달게 목을 축이고 무럭무럭 자라는 게 보이는 듯했다 ..  《박완서-혼자 부르는 합창》(진문출판사,1977) 16쪽

 

 “문자(文字) 그대로”는 “말 그대로”로 다듬고, “자라는 게”는 “자라는 모습이”로 다듬어 줍니다.

 

 이 글월에서는 ‘배꽃’이라 적지, ‘이화(梨花)’라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학교 이름이라든지 적잖은 데에서는 ‘이화’라는 낱말을 곧잘 씁니다. 배나무에 핀 꽃은 배꽃이라 하면 될 텐데, 굳이 한자로 덮어씌우고야 말아요.

 

 이리하여, 한겨레가 예부터 쓰던 말마디는 ‘단비’이지만, 이 글월에서는 ‘감우(甘雨)’라는 한자말이 튀어나옵니다. 한글로만 적는다면 자칫 헷갈릴까 싶어 묶음표를 치고 ‘甘雨’를 달아 놓습니다. 그런데, 보기글 뒷자리를 보면 “달디달게 목을 축이고”라는 대목이 있어요. 이러한 말마디는 ‘달다’라고 적으나, 빗물이 달디달다고 하는 자리에는 왜 ‘단비’라 적지 못할까 궁금합니다.

 

 감우(甘雨) : 때를 잘 맞추어 알맞게 내리는 비
   - 7년 대한에 감우를 만나니 어찌 즐겁지 않겠느냐

 

 감우(甘雨)로구나 싶었다
→ 단비로구나 싶었다
→ 반가운 비로구나 싶었다
→ 달콤한 비로구나 싶었다
→ 고마운 비로구나 싶었다
 …

 

 ‘감우’나 ‘甘雨’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자말이요 중국말입니다. 한국사람이 쓸 말이 아닙니다. 한국사람이 주고받을 한국말은 ‘단비’입니다. 같거나 비슷한 뜻으로 “달디단 비”라 할 수 있고 “달콤한 비”라 할 수 있습니다. 글흐름을 살피면, “반가운 비”나 “고마운 비”나 “즐거운 비”나 “좋은 비”라 해도 잘 어울립니다.

 

 “알맞게 내리는 비”라든지 “제때에 내리는 비”라든지 “목마를 때 내리는 비”라든지 “가뭄을 씻는 비”처럼 적을 수 있어요. “목마름을 씻는 비”나 “타는 목을 씻는 비”나 “가문 땅을 적시는 비”라 해도 됩니다.

 

 알맞게 살릴 말마디를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살가이 북돋울 글줄을 톺아보면 반갑겠습니다. 기쁘게 일굴 겨레말을 꿈꾸면 고맙겠습니다. (4345.1.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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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아이가 걷는 길

 


 옆지기와 아이들이랑 마실을 다닌다.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마실을 간다. 택시를 불러 탈 수 있지만, 바닷가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해서 버스를 탄다. 그런데 버스는 포구로 갈 뿐, 모래밭 있는 바닷가로는 가지 않는다. 포구에서 내리니 바닷가까지는 몇 킬로미터를 걸어가야 한단다.

 

 옆지기는 둘째를 업고 나는 첫째 손을 잡고 걷는다. 첫째는 요리조리 장난스레 걷다가 졸린 나머지 안아 달라 말한다. 첫째를 안고 걷자니 처음에는 괜찮으나 이내 아이 무게가 꽤 묵직하다고 느낀다. 참 많이 컸구나, 참 튼튼히 자라는구나, 앞으로 네가 안길 날은 얼마 안 되겠구나 싶다.

 

 그나저나, 아이들과 걸을 만한 흙길이 너무 적다. 모든 길은 자동차가 다니기 좋도록 시멘트나 아스팔트를 깐다. 사람들은 밑창 두툼한 신을 신는다. 멧자락을 오르든 논둑이나 밭둑을 걷든, 온통 시멘트나 아스팔트가 곱고 넓게 깔린다. 흙과 풀을 밟으며 바닷가를 거닐거나 멧자락을 오르내릴 수 없을까. 꼭 이렇게 자동차 다니기 좋도록 온누리에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뿌려야 할까.

 

 모든 목숨이 살아갈 수 있는 밥을 얻자면 흙땅이 있어야 한다. 풀은 흙땅에서 돋는다. 풀 먹는 짐승을 잡아먹는 큰 짐승은 ‘흙에서 나는 풀을 먹는 짐승’이 있어야 살아가니까, 큰 짐승도 흙을 밟고 누려야 목숨을 잇는다. 우리에 가두어 기르는 소나 돼지나 닭 또한 풀이 있어야, 풀이 돋는 흙이 있어야 목숨을 잇는다. 풀을 즐겨먹을 사람이든 고기를 즐겨먹으려는 사람이든, 풀이 돋는 흙을 누려야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이 누빌 풀 돋는 흙땅이 자꾸 줄어든다. 사람들은 자동차가 씽씽 재빨리 달릴 길만 신나게 새로 닦는다. 새 다리를 놓고, 새 굴을 뚫는다. 새 기찻길을 놓고 새 찻길이 뻗는다. 자전거 달릴 길이라서 아스콘을 깔 까닭이 없다. 흙길을 반반하게 다지면 된다. 걸을 만한 길이면 자전거로 달릴 만한 길이다. 빨리 달리는 내기를 해야 하지 않으니, 아늑하거나 푸근하게 돌보면 좋은 길이다. (4345.1.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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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하는 아버지 곁으로 기어오기

 


 둘째를 씻긴다. 씻긴 아이를 방으로 안고 간다. 씻긴 아이한테 옷을 새로 입힌다. 둘째는 방에 두고 아이 씻긴 물이 가득한 씻는방으로 간다. 아이들 옷가지와 기저귀를 빨래한다. 한참 비빔질과 헹굼질을 하는데, 뒤에서 방바닥 척척 때리는 소리가 난다. 뭔가 하고 뒤돌아보니 둘째가 기어서 씻는방으로 다가온다. 곧, 씻는방 문턱에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보다가는 바닥 물 흐르는 자리에 손을 대려 한다. 물을 만지고 싶구나. 그러나 빨래하는 아버지는 아이가 바닥에 손을 대지 않게 허벅지를 내밀며 막는다. 이런 모습으로 빨래를 잇는다. 아이가 아버지 허벅지에 두 손을 척 대고 발을 버티어 선다. 허벅지에 닿은 아이 손이 차갑다. 아이구, 이렇게 차가운 손으로 물놀이를 하겠다고? 여름이면 몰라, 겨울이잖니. 아버지는 허벅지로 버티며 빨래를 더 한다. 네가 씻은 이 물이 아직 따스할 때에 빨래를 해야 하거든. 둘째는 아버지 허벅지에 기대어 선 채 빨래 구경을 한다. 옳거니, 네 아버지가 네 옷가지랑 기저귀를 어떻게 빨래하는지 보고 싶니. 그러면 잘 보고, 무럭무럭 자라서 네 누나랑 함께 너희 옷가지를 신나게 빨렴. 너희 이불도 너희가 기쁘게 빨렴. 어느덧 빨래를 다 마칠 무렵까지 아버지 허벅지에 기대어 서며 구경하던 둘째는, 이제 다 되었다 싶을 때에 허벅지에서 손을 내리더니 뒤돌아선다. 두꺼운 겉옷은 씻는방에 걸어 물이 떨어지도록 하고, 나머지는 바가지에 담는다. 이제 방에 널려고 하니, 아이도 아버지를 따라 척척 긴다. 방으로 들어가 옷걸이에 빨래를 꿰어 널 때에, 첫째가 일을 거든다. 아버지가 열 몇 점을 꿰고, 첫째가 석 점을 꿴다. (4345.1.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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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잠 삶의 시선 17
송경동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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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도 힘들고 시읽기도 힘겹고
[시를 노래하는 시 12] 송경동, 《꿀잠》

 


- 책이름 : 꿀잠
- 글 : 송경동
-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2006.3.30.)
- 책값 : 8000원

 


 열흘 남짓 입었는지 보름쯤 입었는지 헷갈리는 두툼한 웃옷을 벗은 엊저녁, 새 웃옷을 꺼내 입지 않고 잠들었는데, 반소매 웃통으로 이불 세 겹 덮어쓰고 자다가 내 옆에서 꼬물거리며 이불을 걷어차는 아이한테 내 이불 씌우다 보니 어느새 내 몸을 가리는 이불이 없더니, 그만 밤새 찬바람 많이 마시며 고단한가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둘째 똥기저귀를 두 벌 빨래하고 나서는 도무지 몸이 버티지 못하겠구나 싶어 자리에 드러눕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당근을 씻어서 알맞게 썬 다음 물을 짭니다. 이럴 때에 곁에서 두 아이를 건사하거나 함께 놀아야 일이 수월한데, 꿈결인지 잠결인지 아스라한 소리만 듣고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눈을 감고 허리를 폅니다.

 

 두 시간을 들뜬 몸으로 뒤척이다가 일어납니다. 두툼한 겉옷을 입습니다. 아이 둘은 어머니 곁에서 알짱알짱 붙어서 칭얼거립니다. 아이 어머니는 두 아이 칭얼거림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아침과 낮 먹을거리를 마련합니다. 거꾸로, 아이 어머니가 드러누운 때, 내가 두 아이 먹을거리를 마련하면서 집안을 쓸고닦는 한편, 아이들 옷가지와 기저귀 빨래하는 몫을 기쁘며 홀가분하게 짊어질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짊어지기야 하지요. 날마다 이렇게 살아왔으니까요, 다섯 해째. 그렇지만, 활짝 웃는 얼굴로, 싱그러이 노래하는 목소리로, 이 집일을 거느리면서 아이들하고 사랑꽃을 나누었을까 생각하면, 낯이 화끈거립니다.


.. 손톱 밑에 검은 때가 끼어 있던 손 / 괭이가 박혀 있던 손 ..  (손)


 아버지가 깬 뒤 둘째 아이가 셋째 똥기저귀를 내놓습니다. 둘째를 살짝 안고 한동안 어르다가는 똥기저귀를 빨래합니다. 똥기저귀랑 낮에 눈 오줌기저귀를 빨래하는 사이, 둘째 아이는 넷째 똥기저귀를 내놓습니다. 아이 밑을 씻기고 똥기저귀를 새로 빨래하는 김에 오줌기저귀 두 장을 더 빨래하고, 옆지기 두툼한 겉옷 한 벌 나란히 빨래합니다. 후줄근하게 빨래를 마치고 마당가 후박나무 빨래줄에 넙니다. 새벽에 빨래해서 널어 다 마른 옷가지와 기저귀를 걷습니다. 걷은 옷가지는 갤 틈이 없습니다. 똥을 두 차례 더 눈 둘째는 틀림없이 졸릴 테니까요. 옆지기가 둘째를 어르고 나서 먹을거리 마련하기를 더 하는 동안, 아버지는 둘째를 품에 안습니다. 둘째 가슴을 톡톡 다독이고 노래를 부릅니다. 둘째는 눈을 뜨고 감다 되풀이하다가 스르르 감습니다. 옳지 옳지 이제 나이 제법 먹었으니 꼭 어머니 등짝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곱게 잘 수 있겠지.


.. 우린 흙 묻은 안전화를 끌며 계단을 서성이다 / 후문을 나서 다시 새벽 작업장으로 간다 ..  (저 하늘 위에 눈물샘자리)


 한창 뛰놀며 이른아침부터 늦은저녁까지 같이 놀자고 부르는 첫째 아이를 한동안 무릎에 누여, 얘, 얘, 아버지는 좀 쉬자, 좀 쉬다가 놀자, 너도 책 좀 읽어 주렴, 아버지도 책 읽으며 살짝 쉬자꾸나, 다리도 쉬고 허리도 쉬며 등도 팔도 쉬자꾸나, 이야기하며 시집을 들춥니다. 만화책도 읽고 사진책도 읽고 그림책도 읽습니다. 아이한테 그림책 글을 읽히며 함께 들추기도 하지만, 이제 아이는 그림책 그림을 혼자 말끄러미 바라보기를 조금 더 좋아합니다. 굳이 어떤 말을 살붙이며 들려주지 않더라도 아이 스스로 생각힘을 북돋웁니다.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히며 때때로 생각합니다. 내 어버이는 나한테 그림책을 읽힌 적이 있나? 내 어버이는 나한테 만화책을 읽힌 적이 있나? 내 어버이는 나한테 동화책을 읽힌 적이 있나? 내 어버이는 나한테 동시책을 읽힌 적이 있나?

 

 나 어릴 적 살던 집에 책이 아예 없지 않았습니다. 빨간빛 딱따구리 100권 넘는 손바닥책이 있기도 했습니다. 돌이키면, 내 어버이 두 분부터 어린 나날 책을 읽으며 자라지 않았겠구나 싶습니다. 내 어버이 두 분은 도시와 시골에서 어린 나날을 바쁘게 부대겼으리라 생각합니다. 종이로 된 책이 없이 삶을 이었고, 종이로 된 책에 아로새기는 이야기가 없이 둘레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 사이에서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 그 술집이 있던 닭장 골목 / 그 골목 밀고 이제는 멋진 아파트가 들어선다는데 / 나는 왜 이리 슬픈가. 집을 잃은 아이처럼 ..  (마지막 술집)


 나는 일곱 살 적 무얼 하며 한 해를 보냈는지 거의 떠올리지 못합니다. 하루나 이틀쯤 가까스로 한두 대목 떠올립니다. 나는 여섯 살 적이나 다섯 살 적이나 네 살 적이나 세 살 적을 거의 하루조차, 한 시간조차 떠올리지 못합니다. 이런 내 넋으로 두 아이와 살아가면서 곰곰이 헤아립니다. 우리 아이들이 한 살일 적에 나는 한 살 나이에 내 어버이하고 어떤 나날을 보냈을까 하고. 우리 아이들이 두 살이고 세 살일 때에 나는 두 살 세 살 나이에 내 어버이하고 어느 곳에서 어떠한 보금자리를 누리며 살았을까 하고.

 

 우리 집 아이들은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나서 저희 한 살 두 살 세 살 네 살 적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우리 집 아이들은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 저희 아이들을 낳아 돌보며 무럭무럭 자라는 예쁜 모습 바라보면서 저희 다섯 살이나 여섯 살 모습을 되새길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먼 뒷날 되새길 저희 어버이 모습, 곧 오늘 내 모습은 어떠한 이야기 나누는 사람일까요.


.. 하고많은 길 중에 내가 걸은 노동자의 길 ..  (길)


 아이와 살아가는 숱한 어버이들이 ‘아이들 새근새근 자는 모습’이 더없이 예쁘며 사랑스럽다 이야기합니다. 나도 내 아이들 새근새근 잠드는 모습이 그지없이 예쁘며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이 아이들 자는 얼굴 바라보며 웃음을 흘리고 눈물을 짓습니다. 아이들 살몃 감은 두 눈을 바라보며 시가 절로 튀어나옵니다. 아이들 보드라운 볼을 살살 어루만지면서 시를 절로 노래합니다.

 

 문득, 거꾸로, 내가 이 아이들만 하던 어린 나날, 내 어버이가 나를 재우면서 내 어버이도 나를 예쁘며 사랑스럽다 여겼을까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그무렵 나는 내 어버이를 보며 나를 재우는 어버이 손길이 언제나 포근하면서 따사롭구나 하고 느꼈는지 궁금해요. 왜냐하면, 예쁘며 사랑스레 잠드는 아이들을 무릎에 누여 토닥토닥 하면서 내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과 말길 모두 보드라우면서 따사롭게 바뀌니까요. 잠든 아이처럼, 재우는 어버이가 예쁘리라 생각해요. 잠든 아이처럼, 재우는 어버이가 사랑스럽구나 생각해요.


.. 김씨가 H빔에서 떨어져 죽고 나서야 / 나는 깜짝 놀랐다 / 고작 시급 3천 원에 목메던 그의 몸값이 / 1억이 넘는다니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  (뒷빽)


 송경동 님 시집 《꿀잠》(삶이보이는창,2006)을 읽으며 곰곰이 헤아립니다. 송경동 님이 틈틈이 적바림한 글줄을 그러모은 《꿀잠》이라는 시집이 태어나기까지, 참말 시쓰기가 힘들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팍팍한 울타리와 맞서면서, 힘들게 살림을 꾸리는 사람들을 고단하게 내모는 걸림돌과 부딪히면서, 참으로 힘들게 시를 썼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 힘들게 쓴 시를 읽는 사람 또한 힘겹습니다. 아이들과 하루 내내 복닥이며 집안일을 하고 집살림을 꾸리는 어버이도 참으로 버겁습니다.

 

 시를 쓰기 힘든 이 나라이기 때문에, 시를 읽는 사람 또한 힘겨울밖에 없는 이 나라일까요. 시를 쓰면서 힘들게 이맛살 찡그리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 슬픈 이 나라인 탓에, 시를 읽는 사람까지 뻑적지근해지는 등허리를 토닥이면서 겨우겨우 한 쪽 두 쪽 읽다가 이내 덮고는 똥기저귀를 빨고 오줌기저귀를 갈며 밥을 차리고 비질을 해야 할까요.


.. 세계는 학살을 하며 / 그게 평화라 하고 / 기생을 자유라 하고 / 굴종을 안녕이라 가르치기에 / 오늘부터는 없는 말 / 태어나지 않은 말들만 / 믿기로 했다 ..  (102쪽)


 어머니들은 하루하루 어떤 삶을 누리면서 아이들을 사랑했을까요.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어머니들은 하루하루 어떤 꿈을 심으면서 어떤 사랑을 누릴까요.

 

 어머니를 옆지기로 둔 아버지들은 날마다 어떤 일과 놀이를 즐기면서 아이들을 마주할까요.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아버지들은, 어머니를 옆지기로 둔 아버지들은 날마다 어떤 빛을 가슴에 묻으면서 어떤 사랑을 서로서로 빛낼까요.

 

 남녀평등이고 여남평등이고 성평등이고를 떠나, 2010년대를 넘어서는 이즈음에도 집안일을 여자가 할 때에는 아뭇소리 없습니다. 2020년대를 곧 맞이할 텐데, 2030년대나 2040년대가 되더라도 집안일을 남자가 할 때에는 참 얄궂다는 눈길로 바라봅니다. 혼인을 해서 며느리가 되면 시댁 집안일과 제사까지 맡아야 합니다. 혼인을 해서 사위가 되면 친정마실을 하더라도 그저 손을 놓고 책상다리로 밥과 술과 고기를 받아먹기만 합니다.

 

 삶이란 무엇이고 사랑이란 무엇이며 꿈이란 무엇일까요.


.. 농사는 안 허는디요, 소작 허는디요 / 소작이 농사지 뭐여 웃던 사람들도 / 소작이 무신 농사여 하던 사람들도 조용해졌다 / 아낙의 얼굴에 핀 더운 열꽃 ..  (바닷가 야유회)


 노동자 길을 걸어간 송경동 님은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제는 벌교하고 한참 멀디먼 서울바닥에서 노동자와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어갑니다. 거꾸로, 서울에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노동자 길을 걷다가, 전남 보성 벌교로 흙일꾼 길을 걷는다든지, 흙일꾼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을 사람은 있는지 궁금합니다.

 

 모두들 서울로 가고, 또 서울로 몰리며, 또 서울에서 으싸으싸 하면서 나라를 갈아엎으려 하는지 궁금해요.

 

 바깥에 볼일이 있어 전남 고흥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벌교읍을 지날 때면, 벌교시장 그득히 늘어선 꼬막장사 할매와 아지매를 바라보곤 합니다. 참말 사람 많고 저잣거리 넓구나 싶습니다. 벌교라 해 봤자 그리 넓지 않은 터에 넓지 않은 갯벌인데, 이 조그마한 벌교 갯벌에서 온 나라 꼬막구이 꼬막무침을 마련하는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곤 합니다.

 

 하기는. 한국에서 거두는 쌀이 남아돈대서, 시골마을에서 ‘논을 묵히’면 나라에서 돈을 줍니다(직불보상금). 그런데, 막상 한국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은 거의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일구는 논밭으로도 ‘쌀이 남아돈다’지만 나라밖에서 새로운 곡식을 사들이고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며 자동차와 손전화를 나라밖으로 팝니다.

 

 노동자는 자동차를 구워먹느라 힘들까요. 노동자는 2012년 1월부터 단돈 1만 원이 된 숫젖소 고기를 구워먹느라 버거울까요. 이 나라 노동자들이 설이나 한가위 때처럼, 모두들 일손을 놓고 고향마을 시골로 가서 두 번 다시 서울로든 인천이로든 대구로든 부산으로든 가지 말고 흙하고 어깨동무하고 살아간다면, 파업 아닌 파업으로 온 나라 크고작은 도시를 꼼짝달싹없이 멈추도록 한다면, 군인도 경찰도 공무원도 몽땅 시골마을 고향집으로 돌아가서 텃밭과 무논하고 소꿉놀이를 하면서 온 나라 공공기관과 청와대와 언론사 모조리 멈추도록 한다면, 깊은 밤에도 서울에서 올려다보는 까만 하늘에 뭇별이 반짝반짝 빛나겠지요.

 

 별을 보기 힘드니 시를 쓰기 힘듭니다. 별을 보기 힘겨우니 시를 읽기 힘겹습니다. (4345.1.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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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1-29 22:21   좋아요 0 | URL
충격적인 사건이 아닌 다음에는 아이 때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요. 철 들기 전의 세월들은 그저 부모님의 몫으로 고스란히 묻혀져 버리는 셈이지요. 사랑의 눈으로 찰칵 찰칵 찍힌 자식들의 어린 시절 사진들은 부모님 가슴팍에 새겨져 있겠지요.
저는...드문드문 네 살 때 기억과 여섯 살 때 기억이 나요. 네 살 땐 사랑하는 내 막내동생이 죽을 뻔했구요.그래서 거짓말처럼 그때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지요. 아무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은 날마다 무탈하고 행복하게 잘 자랐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똥 싸고 오줌 싸며 아버지가 어르고 어머니가 젖 먹이고 그 품안에서 소르르 꽃잠 들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송경동 시인요, 저랑 동갑 시인인데....읽으면 가슴이 참 아파요)

파란놀 2012-01-29 22:5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즐거이 살았기에 떠올리지 못하기도 하는군요.
그래도, 즐거이 살았기에 떠올릴 수 있으면 더 좋겠어요.

송경동 님이 하루하루 더 즐거이 살아가면서
사람들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좋은 꿈을 꿀 수 있기를,
그러니까, 이 나라가 참으로 아름다우며 빛나는
좋은 나라로 차근차근 거듭날 수 있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