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밤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신호리 동백마을 자그마한 집에서 첫날밤을 보냈고 이틀째 밤을 보낸다. 해야 할 일이 그득그득하기에 첫밤을 지새우면서도 첫밤인 줄을 느끼지 못하고 말았다. 툇마루에 낸 샤시문이 있어 방문을 열고 자도 괜찮다. 남녘 바닷가에 자리한 시골집은 시골이면서도 십일월이 코앞인데 그닥 춥지 않다. 밤하늘 별을 느끼고 이른새벽 동을 느낀다.

 풀밭에는 메뚜기와 여치가 아직 눈에 뜨인다. 길가에는 개구리가 펄떡펄떡 뛴다. 겨울이 추운 데에서는 풀벌레가 한해살이를 마치고 개구리는 땅속으로 파고든다지만, 겨울이 따스한 데에서는 풀벌레가 얼마나 오래 살아갈까. 돌이켜보니, 국민학교 자연 수업에서 ‘겨울 따스한 데에서 벌레와 개구리가 어떻게 지내는가’를 가르친 적이 없구나 싶다. 그저 겨울이면 다 죽거나 겨울잠을 잔다고만 가르쳤구나.

 시골 아이들은 교과서로 배울 때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남녘 바닷가 아이들은 자연 교과서를 배우면서 무슨 마음을 품었을까. 늘 곁에서 보는 자연하고는 동떨어질 뿐 아니라 언제나 둘레에 펼쳐진 자연을 제대로 담지 못한 교과서를 달달 외워야 더 커다란 학교로 들어갈 수 있는데, 시골마을 아이들은 학교교육을 어떻게 느꼈을까.

 고칠 곳과 손볼 것이 가득한 시골집에서 참 달콤하게 잠을 잔다. 이 빈집에서 할머니 한 분이 홀로 살다가 숨을 거두셨다는데, 할머니는 날마다 밤에 어떤 마음으로 잠이 들고 새벽에는 어떤 마음으로 잠을 깨셨을까. 할머니에 앞서 이 터에서 살던 숱한 사람들은 날마다 어떤 삶을 일구었을까. 날이 갈수록 쓰레기가 늘어 땅에 파묻거나 불을 놓아 태워야 하는 일이 잦은데,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자라고 이 아이들이 저희 아이를 낳아 이 터에서 살아간다 할 때에는 쓰레기를 어떡해야 할까. 아스라이 먼 예전 사람들은 쓰레기 걱정 교육 걱정 돈벌이 걱정 경제발전 걱정 대통령선거 걱정 교통 걱정 따위는 안 하고 살았을 텐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식구는 무슨 걱정을 해야 하나. 무슨 생각을 품으며 어떤 사랑을 꽃피워야 하나.

 옆지기 아버님과 어머님이 여러 날 함께 지내시는 커다란 사랑을 받아 이 조그마한 집에 온갖 사랑이 흐드러지게 넘친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서 저희끼리 제금을 난다 할 때에 아버지로서 이 아이들과 이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가를 곰곰이 돌아본다. (4344.10.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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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0-23 12:40   좋아요 0 | URL
전라남도 고흥. 멀리 가셨군요. 새로운 장소에서 고운 꿈 펼치시길 바래요.
새 보금자리도 그렇고, 두 아이도 그렇고, 한참 손길이 많이 필요한 시기일텐데, 잘 해나가시리라 믿습니다. 그 시기가 영원히 계속되진 않으니까요.

파란놀 2011-10-24 07:16   좋아요 0 | URL
얼른 집 손질을 마치고
아이들하고 따순 손길을 나눌 수 있어야 할 텐데
오래 빈 집이고
비기 앞서 할머니 혼자 지내시느라
이래저래 다치거나 헌 자리가 많아서
품이 많이 들어요.

그렇지만 이 좋은 터를
예쁘게 잘 사랑하고 싶어요~ ^^
 


 오줌싸개


 새근새근 고이 자는 아이는 깊디깊은 새벽나절 한 차례쯤 잠에서 깨어 스스로 오줌을 눕니다. 낮잠을 건너뛰고 밤잠마저 일찍 들려 하지 않으며 온갖 어리광이며 떼를 쓰는 아이는 까무러치듯 곯아떨어져서는 그만 이부자리에 쉬를 누고 맙니다.

 둘째가 오줌을 눈 새벽 네 시 오십 분 무렵, 첫째도 오줌을 눕니다. 바지에 오줌을 흥건하게 눕니다. 바지와 속곳을 벗기는데 그저 누워서 엉덩이를 살짝 듭니다. 저도 잠결에 쉬를 눈 줄을 느끼는군요. 그러나 하도 잠이 찾아와서 칭얼댄다거나 일어나지 않고 엉덩이만 살짝 듭니다. 새 속곳을 입히고 새 바지를 입힙니다. 두 아이는 다시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잠듭니다. 집안이 조용합니다. 이제 한 시간쯤 지나면 동이 틀 테고, 동이 트고 아침이 찾아오면 두 아이는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지 못하며 또 신나게 놀자며 웃고 떠들리라 봅니다.

 아이가 잘못해서 오줌싸개가 되지는 않으리라 느낍니다. 어버이로서 조금 더 따사롭고 한결 더 넉넉하게 보듬어야 아이는 오줌싸개 아닌 귀염둥이로 자라리라 느낍니다. 아이를 다그치는 어버이는 제 허물을 숨기는 셈이요, 아이를 나무라는 어버이는 제 모자람을 드러내는 꼴이라고 느낍니다. 이 아이들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살아간다면, 나는 어버이도 어른도 사람도 될 수 없다고 느낍니다. (4344.10.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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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 황헌만의 사진기행
황헌만 지음 / 역사만들기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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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쟁이가 없어도 삶은 늘 아로새겨집니다
 [찾아 읽는 사진책 61] 황헌만, 《임진강, 황헌만의 사진기행》(역사만들기,2011)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는 한강·낙동강·금강·섬진강을 다스리겠다고 하면서 아주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들입니다. 이른바 ‘4대강 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여 토목공사를 벌입니다.

 사람은 사람다울 때에 아름답고 자연은 자연다울 때에 빛납니다. 멧자락은 멧자락대로 살리고 물줄기는 물줄기대로 살려야 어여뻐요. 삽차·밀차·시멘트·쇠붙이 들을 쓰면서 물줄기를 곧게 펴는 일은 물줄기를 살리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돈을 들여 돈을 쓰는 일이 될 뿐이에요. 아마 관광지 만드는 일은 될 수 있을 테지만, 사랑스럽거나 따사로운 물줄기를 누리는 일은 되지 못해요.

 하나하나 돌이키면, 물줄기가 물줄기다울 수 없는 이 나라는 아이들이 아이답게 태어나서 자라지 못합니다. 이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병원에서 사랑 아닌 의료처방을 받으며 태어납니다. 따사롭고 포근한 보금자리에서 태어나기 너무 힘듭니다. 아니, 아이들을 따사롭고 포근한 보금자리에서 낳아 어루만져야 하는 줄을 모두 잊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한테 무턱대고 예방주사와 항생제를 놓을 뿐 아니라, 갓난쟁이한테 쓰는 종이기저귀라든지 가루젖은 아기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데, 널리 만들고 널리 팔며 널리 써서 널리 쓰레기를 낳습니다. 종이기저귀와 가루젖을 만들기까지 공장을 얼마나 돌리며 쓰레기가 태어나고, 종이기저귀를 쓰고 가루젖을 먹인 다음 쓰레기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돌아보는 어버이는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자라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내지만, 막상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아이들 삶에 어떤 빛줄기가 되는 슬기를 보여주거나 가르치는가를 헤아리는 어버이는 드물어요. 이에 앞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부터 아이들하고 무엇을 하면서 나누어야 하는가를 찬찬히 짚지 않습니다. ‘유아발달’이나 ‘지능발달’이나 ‘정서순화’ 따위가 아닌 ‘어린이 삶’과 ‘사람 삶’을 돌아보면서 사랑을 받아들이도록 이끌지 않아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하나같이 바쁩니다. 모두들 너무 바빠 아이들을 집에서 어여삐 사랑하거나 아끼지 않습니다. 아이들하고 살아가며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익히며 자라야 아름다운가를 깨달으려 하지 않습니다. 돈은 벌지만 삶은 나누지 못하고, 돈은 쓰지만 사랑을 꽃피우지 못합니다.

 삶이 없는 자리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먼 뒷날 대학교에 가서 사진학과를 다니거나 나라밖으로 사진배움길을 떠난다 해서 훌륭한 사진쟁이 하나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사랑을 꽃피우지 못한 아이들이 사진기를 손에 쥔들 붓을 손에 쥔들 자판을 손에 쥔들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사진이나 그림이나 글을 빚을 수 없습니다.

 토목공사가 없어도 금강은 금강입니다. 토목공사가 없을 때에 금강은 금강입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없어도 아이들은 아이들입니다. 따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을 때에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뛰놀 밑터를 얻습니다.

 사진쟁이가 없어도 사진은 사진입니다. 사진은 사진기를 손에 쥔 사진쟁이가 찍어야 이루어진다 할 테지만, 사진·사진기·사진쟁이 하나 없어도 삶은 삶이요 사랑은 사랑이에요. 그림쟁이 있어 그림을 거룩하게 빚어야 어떤 문화나 예술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글쟁이 있어 글을 놀랍게 일구어야 어떤 역사나 사회가 거듭나지 않아요.

 사진은 없어도 됩니다. 삶이 있으면 되고, 사랑이 있으면 됩니다. 삶이 있을 때에는 사진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딱히 보람이나 뜻이 없습니다. 삶이 있으면서 사진과 그림과 글이 있어야 사진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보람이나 뜻이 있어요. 다시금, 사진은 없어도 그만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되고, 삶이 있으면 넉넉합니다. 사랑이 따숩게 숨쉴 때에는 춤이든 노래이든 영화이든 따로 값이나 빛이 없어요. 사랑이 펄떡펄떡 숨쉬면서 춤과 노래와 영화가 있어야 춤과 노래와 영화가 값이며 빛이 있어요.

 황헌만 님이 빚은 사진책 《임진강, 황헌만의 사진기행》(역사만들기,2011)을 넘기면서 생각합니다. 이만 한 사진책 하나 태어나서 임진강 물줄기를 적바림할 만한 뜻이 있을 수 있겠구나 싶으면서, 애써 이만 한 사진책까지 하나 빚어야 할까 싶어 고개를 갸웃갸웃합니다.

 황헌만 님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1년. 나는 허공을 나는 새와 대화를 하고, 허공을 가득 메운 역사와 호흡했으며, 임진강만이 알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사진에 담았다(머리말).” 하고 말합니다. 틀림없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황헌만 님은 꼭 한 해 네 철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새를 담고 하늘을 담습니다. 임진강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그러나, 사진책 《임진강》에 ‘이야기’가 담겼다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사진책 《임진강》에 어떤 ‘삶이 깃든 이야기’와 무슨 ‘사랑이 어린 이야기’를 담았을는지요.

 황헌만 님은  “황헌만이 할 수 있는 임진강 사진. 황헌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임진강 이야기. 그것은 우리 땅의 숨소리라고. 임진강은 우리 땅의 숨소리다. 그 숨과 함께 살아 흐르는 이 땅의 역사를, 이 땅의 자연을 전하고 싶다(머리말).” 하고 말합니다. 틀림없이 황헌만 님은 황헌만 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제 깜냥껏 사진을 찍을 뿐이에요.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에요.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사진을 찍을 뿐이에요. 황헌만 님이 배병우 님처럼 사진을 찍을 수 없고, 배병우 님이 강운구 님처럼 사진을 찍을 수 없으며, 강운구 님이 김지연 님처럼 사진을 찍을 수 없는데다가, 김지연 님이 임응식 님처럼 사진을 찍을 수 없어요. 모두들 당신 삶결에 걸맞게 사진을 찍어요. 누구나 스스로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좋아하는 길을 걷는 나날을 삶자락 하나로 갈무리하면서 사진으로 빚어요.

 황헌만 님은 “사진가로서 갖춰야 할 사명감. 내 나이 60을 넘어서면서 갖는 나의 화두. 이 땅을 본 감동을 황헌만 식으로 기록하여 전하고 싶다(머리말).” 하고 말합니다. 틀림없이 《임진강》은 ‘황헌만 님이 느낀 감동’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다만, 사진책 《임진강》은 이 대목에서 비롯해서 이 대목에서 제자리걸음을 걷다가 이 대목에서 그치고 맙니다.

 왜 임진강을 사진으로 적바림해야 하나요. 황헌만 님 삶에서 임진강은 무엇인가요. 역사이니 숨소리이니 우리 땅이니 사진 사명이니 하는 말마디에 앞서 ‘사진삶’과 ‘사진사랑’으로서 무슨 뜻과 꿈과 넋으로 임진강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했는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두툼하고 무거우며 커다란 사진책 《임진강》을 읽는 내내 어느 대목 어느 글 어느 사진에서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들어야’ 하는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나이 예순은 대수롭지 않고, 사진쟁이 한길 또한 대단하지 않아요. 이제 막 사진기를 손에 쥐고 임진강을 고작 며칠 둘러본 다음 사진을 찍는다 해서 임진강 ‘참모습 참사랑 참삶’을 못 본다 할 수 없어요. 임진강을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바라보며 임진강 어귀나 둘레에서 뿌리내려 살아야 비로소 임진강을 온몸으로 느낀다 할 수는 없어요.

 사진쟁이가 없어도 삶은 늘 아로새겨집니다. 글쟁이가 없어도 삶은 언제나 적바림됩니다. 그림쟁이가 없어도 삶은 노상 그려집니다.

 흙을 일구는 일꾼 손마디에 아로새겨지는 삶입니다. 그물을 붙잡는 일꾼 팔뚝에 적바림되는 삶입니다. 쌀을 씻어 솥에 안치고 밥상을 차리는 살림꾼 볼우물에 그려지는 삶입니다.

 삶을 헤아려 주셔요. 삶을 사랑해 주셔요. 내 삶을 따사로이 보듬어 주셔요. 내 사랑을 넉넉히 나누어 주셔요. 사진쟁이가 사진으로 빛을 모두어 빛을 뿌리는 처음과 끝은 ‘삶사랑’ 하나입니다. (4344.10.23.해.ㅎㄲㅅㄱ)


― 임진강, 황헌만의 사진기행 (황헌만 사진,역사만들기 펴냄,2011.3.14./6만 원)
 

 

(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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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겪은 대로 글쓰기


 어릴 적 어머니 곁에서 손빨래를 배운 버릇 그대로 내가 아버지 되어 살아가는 오늘 손빨래를 합니다. 내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어린 나날 옆지기 어머님하고 함께 살아오면서 보고 배운 결에 따라 오늘 손빨래를 합니다.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난 아이들은 저희가 받은 사랑을 따사로운 손길과 마음길로 나눕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라난 아이들은 이웃이나 동무가 나누는 사랑을 받을 때에도 어수룩하지만, 이 아이들 스스로 둘레 이웃이나 동무한테 따사로이 사랑을 나누는 길을 잘 모릅니다.

 내 어버이가 나한테 베푼 밥차림 입맛이 오래도록 혀에 맴돕니다. 나는 내 혀에 맴도는 입맛을 떠올리면서 내 아이한테 밥상을 차려서 베풉니다. 나는 내 몸에 좋다고 느끼는 밥을 즐거이 먹습니다. 남들이 좋다고 추켜세운달지라도 나는 내 몸에 좋다고 느끼지 못하면 하나도 반갑지 않은 밥입니다.

 내 보금자리 샘가에서 뛰노는 푸른개구리를 바라보면서 ‘푸른개구리는 이렇게 생기고 이만 한 크기로구나’ 하고 헤아립니다. 충청북도 멧자락에서 푸른개구리는 날이 추워 벌써 자취를 감추었기에 충청북도에서 살아가던 때에는 시월이 막바지로 달릴 때에 푸른개구리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라남도 아랫녘에서는 샘가에서 함께 물놀이를 하는 푸른개구리를 바라봅니다. 십일월에도 푸른개구리를 본다면 나는 이곳에서 십일월까지 푸른개구리 이야기를 할 테지요.

 인천 골목동네 마실을 하면서 곧잘 석류나무를 보았습니다. 탱자나무도 보고 호두나무도 보며 대추나무도 보았습니다. 나는 내가 본 대로 생각하고 본 대로 이야기하며 본 대로 느낍니다. 보지 못하고서는 생각하지 못하며, 겪지 못하고서는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한 번 읽고 나서 참 좋았다고 떠올리는 사람들 책을 다시금 찾아서 읽습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책은 일찌감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쓴 책하고 견주어 손이 덜 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겪지 못한 이야기는 눈으로 읽든 머리로 읽든 알아차릴 수 없으며, 느낄 수 없는데다가, 깨달을 수 없습니다.

 맑은 누리를 겪지 못하고서는 맑은 넋을 알 수 없어요. 밝은 보금자리를 겪지 못하고서는 밝은 보금자리를 헤아릴 수 없어요. 머루와 다래를 손수 따서 맛보아야 머루맛과 다래맛을 압니다. 쑥을 뜯고 달래를 캐서 먹어야 쑥맛과 달래맛을 알아요. 낫을 쥐어 나락을 베어야 낫질을 알겠지요. 짐을 짊어지고 멧등성이를 오르내려야 땀흘리는 고단함을 알 테지요.

 겪을 수 있어야 쓸 수 있어요. 겪는 삶이어야 글을 쓰는 삶이에요. 겪을 수 있어야 그림을 그리고, 겪을 수 있을 때에 사진을 찍으며, 겪는 자리에 선 뒤에야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가을을 느끼며 가을 이야기를 씁니다. 시골자락 할매와 할배랑 어울리며 시골자락 할매와 할배 이야기를 씁니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을 맞으며 산들바람 이야기를 씁니다. 나뭇잎 나부끼는 푸른바람을 쐬면서 푸른바람과 가을잎 이야기를 써요. 밤새 풀벌레소리를 듣기에 풀벌레소리 이야기를 쓸 수 있습니다. 맨발로 흙땅을 달리고 나서 맨발에 밟히는 흙내음과 흙살 이야기를 써요. (4344.10.2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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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잡이


 따스한 남녘땅 마을에는 파리가 퍽 많다. 이웃에 소를 치는 집이 있기 때문일까. 소똥 둘레에는 파리가 많다. 소한테 달라붙는 파리도 많다. 소는 저 많은 파리들이 달라붙을 때에 얼마나 간지러울까. 어쩌면 파리는 소가 눈 똥을 야금야금 빨아먹으면서 소가 튼튼해지도록 돕는지 모른다.

 고단하게 잠든 두 아이 얼굴에 파리가 자꾸 내려앉는다. 이 파리들은 왜 아이들 얼굴에 내려앉을까. 아이들 얼굴에서 무언가 핥아먹으며 아이들 몸에서 빠져나오는 나쁜 기운을 씻어 주려는 마음일까. 아니면, 그저 성가시거나 번거로운 파리일까.

 아이들이 조용히 잠들 수 있도록 하려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파리채를 들고 파리를 잡는다. 얼추 마흔 마리 남짓 잡고서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든다. (4344.10.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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