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 황헌만의 사진기행
황헌만 지음 / 역사만들기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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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쟁이가 없어도 삶은 늘 아로새겨집니다
 [찾아 읽는 사진책 61] 황헌만, 《임진강, 황헌만의 사진기행》(역사만들기,2011)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는 한강·낙동강·금강·섬진강을 다스리겠다고 하면서 아주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들입니다. 이른바 ‘4대강 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여 토목공사를 벌입니다.

 사람은 사람다울 때에 아름답고 자연은 자연다울 때에 빛납니다. 멧자락은 멧자락대로 살리고 물줄기는 물줄기대로 살려야 어여뻐요. 삽차·밀차·시멘트·쇠붙이 들을 쓰면서 물줄기를 곧게 펴는 일은 물줄기를 살리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돈을 들여 돈을 쓰는 일이 될 뿐이에요. 아마 관광지 만드는 일은 될 수 있을 테지만, 사랑스럽거나 따사로운 물줄기를 누리는 일은 되지 못해요.

 하나하나 돌이키면, 물줄기가 물줄기다울 수 없는 이 나라는 아이들이 아이답게 태어나서 자라지 못합니다. 이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병원에서 사랑 아닌 의료처방을 받으며 태어납니다. 따사롭고 포근한 보금자리에서 태어나기 너무 힘듭니다. 아니, 아이들을 따사롭고 포근한 보금자리에서 낳아 어루만져야 하는 줄을 모두 잊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한테 무턱대고 예방주사와 항생제를 놓을 뿐 아니라, 갓난쟁이한테 쓰는 종이기저귀라든지 가루젖은 아기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데, 널리 만들고 널리 팔며 널리 써서 널리 쓰레기를 낳습니다. 종이기저귀와 가루젖을 만들기까지 공장을 얼마나 돌리며 쓰레기가 태어나고, 종이기저귀를 쓰고 가루젖을 먹인 다음 쓰레기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돌아보는 어버이는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자라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내지만, 막상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아이들 삶에 어떤 빛줄기가 되는 슬기를 보여주거나 가르치는가를 헤아리는 어버이는 드물어요. 이에 앞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부터 아이들하고 무엇을 하면서 나누어야 하는가를 찬찬히 짚지 않습니다. ‘유아발달’이나 ‘지능발달’이나 ‘정서순화’ 따위가 아닌 ‘어린이 삶’과 ‘사람 삶’을 돌아보면서 사랑을 받아들이도록 이끌지 않아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하나같이 바쁩니다. 모두들 너무 바빠 아이들을 집에서 어여삐 사랑하거나 아끼지 않습니다. 아이들하고 살아가며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익히며 자라야 아름다운가를 깨달으려 하지 않습니다. 돈은 벌지만 삶은 나누지 못하고, 돈은 쓰지만 사랑을 꽃피우지 못합니다.

 삶이 없는 자리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먼 뒷날 대학교에 가서 사진학과를 다니거나 나라밖으로 사진배움길을 떠난다 해서 훌륭한 사진쟁이 하나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사랑을 꽃피우지 못한 아이들이 사진기를 손에 쥔들 붓을 손에 쥔들 자판을 손에 쥔들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사진이나 그림이나 글을 빚을 수 없습니다.

 토목공사가 없어도 금강은 금강입니다. 토목공사가 없을 때에 금강은 금강입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없어도 아이들은 아이들입니다. 따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을 때에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뛰놀 밑터를 얻습니다.

 사진쟁이가 없어도 사진은 사진입니다. 사진은 사진기를 손에 쥔 사진쟁이가 찍어야 이루어진다 할 테지만, 사진·사진기·사진쟁이 하나 없어도 삶은 삶이요 사랑은 사랑이에요. 그림쟁이 있어 그림을 거룩하게 빚어야 어떤 문화나 예술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글쟁이 있어 글을 놀랍게 일구어야 어떤 역사나 사회가 거듭나지 않아요.

 사진은 없어도 됩니다. 삶이 있으면 되고, 사랑이 있으면 됩니다. 삶이 있을 때에는 사진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딱히 보람이나 뜻이 없습니다. 삶이 있으면서 사진과 그림과 글이 있어야 사진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보람이나 뜻이 있어요. 다시금, 사진은 없어도 그만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되고, 삶이 있으면 넉넉합니다. 사랑이 따숩게 숨쉴 때에는 춤이든 노래이든 영화이든 따로 값이나 빛이 없어요. 사랑이 펄떡펄떡 숨쉬면서 춤과 노래와 영화가 있어야 춤과 노래와 영화가 값이며 빛이 있어요.

 황헌만 님이 빚은 사진책 《임진강, 황헌만의 사진기행》(역사만들기,2011)을 넘기면서 생각합니다. 이만 한 사진책 하나 태어나서 임진강 물줄기를 적바림할 만한 뜻이 있을 수 있겠구나 싶으면서, 애써 이만 한 사진책까지 하나 빚어야 할까 싶어 고개를 갸웃갸웃합니다.

 황헌만 님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1년. 나는 허공을 나는 새와 대화를 하고, 허공을 가득 메운 역사와 호흡했으며, 임진강만이 알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사진에 담았다(머리말).” 하고 말합니다. 틀림없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황헌만 님은 꼭 한 해 네 철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새를 담고 하늘을 담습니다. 임진강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그러나, 사진책 《임진강》에 ‘이야기’가 담겼다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사진책 《임진강》에 어떤 ‘삶이 깃든 이야기’와 무슨 ‘사랑이 어린 이야기’를 담았을는지요.

 황헌만 님은  “황헌만이 할 수 있는 임진강 사진. 황헌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임진강 이야기. 그것은 우리 땅의 숨소리라고. 임진강은 우리 땅의 숨소리다. 그 숨과 함께 살아 흐르는 이 땅의 역사를, 이 땅의 자연을 전하고 싶다(머리말).” 하고 말합니다. 틀림없이 황헌만 님은 황헌만 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제 깜냥껏 사진을 찍을 뿐이에요.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에요.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사진을 찍을 뿐이에요. 황헌만 님이 배병우 님처럼 사진을 찍을 수 없고, 배병우 님이 강운구 님처럼 사진을 찍을 수 없으며, 강운구 님이 김지연 님처럼 사진을 찍을 수 없는데다가, 김지연 님이 임응식 님처럼 사진을 찍을 수 없어요. 모두들 당신 삶결에 걸맞게 사진을 찍어요. 누구나 스스로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좋아하는 길을 걷는 나날을 삶자락 하나로 갈무리하면서 사진으로 빚어요.

 황헌만 님은 “사진가로서 갖춰야 할 사명감. 내 나이 60을 넘어서면서 갖는 나의 화두. 이 땅을 본 감동을 황헌만 식으로 기록하여 전하고 싶다(머리말).” 하고 말합니다. 틀림없이 《임진강》은 ‘황헌만 님이 느낀 감동’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다만, 사진책 《임진강》은 이 대목에서 비롯해서 이 대목에서 제자리걸음을 걷다가 이 대목에서 그치고 맙니다.

 왜 임진강을 사진으로 적바림해야 하나요. 황헌만 님 삶에서 임진강은 무엇인가요. 역사이니 숨소리이니 우리 땅이니 사진 사명이니 하는 말마디에 앞서 ‘사진삶’과 ‘사진사랑’으로서 무슨 뜻과 꿈과 넋으로 임진강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했는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두툼하고 무거우며 커다란 사진책 《임진강》을 읽는 내내 어느 대목 어느 글 어느 사진에서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들어야’ 하는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나이 예순은 대수롭지 않고, 사진쟁이 한길 또한 대단하지 않아요. 이제 막 사진기를 손에 쥐고 임진강을 고작 며칠 둘러본 다음 사진을 찍는다 해서 임진강 ‘참모습 참사랑 참삶’을 못 본다 할 수 없어요. 임진강을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바라보며 임진강 어귀나 둘레에서 뿌리내려 살아야 비로소 임진강을 온몸으로 느낀다 할 수는 없어요.

 사진쟁이가 없어도 삶은 늘 아로새겨집니다. 글쟁이가 없어도 삶은 언제나 적바림됩니다. 그림쟁이가 없어도 삶은 노상 그려집니다.

 흙을 일구는 일꾼 손마디에 아로새겨지는 삶입니다. 그물을 붙잡는 일꾼 팔뚝에 적바림되는 삶입니다. 쌀을 씻어 솥에 안치고 밥상을 차리는 살림꾼 볼우물에 그려지는 삶입니다.

 삶을 헤아려 주셔요. 삶을 사랑해 주셔요. 내 삶을 따사로이 보듬어 주셔요. 내 사랑을 넉넉히 나누어 주셔요. 사진쟁이가 사진으로 빛을 모두어 빛을 뿌리는 처음과 끝은 ‘삶사랑’ 하나입니다. (4344.10.23.해.ㅎㄲㅅㄱ)


― 임진강, 황헌만의 사진기행 (황헌만 사진,역사만들기 펴냄,2011.3.14./6만 원)
 

 

(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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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겪은 대로 글쓰기


 어릴 적 어머니 곁에서 손빨래를 배운 버릇 그대로 내가 아버지 되어 살아가는 오늘 손빨래를 합니다. 내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어린 나날 옆지기 어머님하고 함께 살아오면서 보고 배운 결에 따라 오늘 손빨래를 합니다.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난 아이들은 저희가 받은 사랑을 따사로운 손길과 마음길로 나눕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라난 아이들은 이웃이나 동무가 나누는 사랑을 받을 때에도 어수룩하지만, 이 아이들 스스로 둘레 이웃이나 동무한테 따사로이 사랑을 나누는 길을 잘 모릅니다.

 내 어버이가 나한테 베푼 밥차림 입맛이 오래도록 혀에 맴돕니다. 나는 내 혀에 맴도는 입맛을 떠올리면서 내 아이한테 밥상을 차려서 베풉니다. 나는 내 몸에 좋다고 느끼는 밥을 즐거이 먹습니다. 남들이 좋다고 추켜세운달지라도 나는 내 몸에 좋다고 느끼지 못하면 하나도 반갑지 않은 밥입니다.

 내 보금자리 샘가에서 뛰노는 푸른개구리를 바라보면서 ‘푸른개구리는 이렇게 생기고 이만 한 크기로구나’ 하고 헤아립니다. 충청북도 멧자락에서 푸른개구리는 날이 추워 벌써 자취를 감추었기에 충청북도에서 살아가던 때에는 시월이 막바지로 달릴 때에 푸른개구리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라남도 아랫녘에서는 샘가에서 함께 물놀이를 하는 푸른개구리를 바라봅니다. 십일월에도 푸른개구리를 본다면 나는 이곳에서 십일월까지 푸른개구리 이야기를 할 테지요.

 인천 골목동네 마실을 하면서 곧잘 석류나무를 보았습니다. 탱자나무도 보고 호두나무도 보며 대추나무도 보았습니다. 나는 내가 본 대로 생각하고 본 대로 이야기하며 본 대로 느낍니다. 보지 못하고서는 생각하지 못하며, 겪지 못하고서는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한 번 읽고 나서 참 좋았다고 떠올리는 사람들 책을 다시금 찾아서 읽습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책은 일찌감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쓴 책하고 견주어 손이 덜 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겪지 못한 이야기는 눈으로 읽든 머리로 읽든 알아차릴 수 없으며, 느낄 수 없는데다가, 깨달을 수 없습니다.

 맑은 누리를 겪지 못하고서는 맑은 넋을 알 수 없어요. 밝은 보금자리를 겪지 못하고서는 밝은 보금자리를 헤아릴 수 없어요. 머루와 다래를 손수 따서 맛보아야 머루맛과 다래맛을 압니다. 쑥을 뜯고 달래를 캐서 먹어야 쑥맛과 달래맛을 알아요. 낫을 쥐어 나락을 베어야 낫질을 알겠지요. 짐을 짊어지고 멧등성이를 오르내려야 땀흘리는 고단함을 알 테지요.

 겪을 수 있어야 쓸 수 있어요. 겪는 삶이어야 글을 쓰는 삶이에요. 겪을 수 있어야 그림을 그리고, 겪을 수 있을 때에 사진을 찍으며, 겪는 자리에 선 뒤에야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가을을 느끼며 가을 이야기를 씁니다. 시골자락 할매와 할배랑 어울리며 시골자락 할매와 할배 이야기를 씁니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을 맞으며 산들바람 이야기를 씁니다. 나뭇잎 나부끼는 푸른바람을 쐬면서 푸른바람과 가을잎 이야기를 써요. 밤새 풀벌레소리를 듣기에 풀벌레소리 이야기를 쓸 수 있습니다. 맨발로 흙땅을 달리고 나서 맨발에 밟히는 흙내음과 흙살 이야기를 써요. (4344.10.2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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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잡이


 따스한 남녘땅 마을에는 파리가 퍽 많다. 이웃에 소를 치는 집이 있기 때문일까. 소똥 둘레에는 파리가 많다. 소한테 달라붙는 파리도 많다. 소는 저 많은 파리들이 달라붙을 때에 얼마나 간지러울까. 어쩌면 파리는 소가 눈 똥을 야금야금 빨아먹으면서 소가 튼튼해지도록 돕는지 모른다.

 고단하게 잠든 두 아이 얼굴에 파리가 자꾸 내려앉는다. 이 파리들은 왜 아이들 얼굴에 내려앉을까. 아이들 얼굴에서 무언가 핥아먹으며 아이들 몸에서 빠져나오는 나쁜 기운을 씻어 주려는 마음일까. 아니면, 그저 성가시거나 번거로운 파리일까.

 아이들이 조용히 잠들 수 있도록 하려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파리채를 들고 파리를 잡는다. 얼추 마흔 마리 남짓 잡고서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든다. (4344.10.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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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시스터즈 4
쿠마쿠라 다카토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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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하루가 기쁘게 찾아오는 까닭
 [만화책 즐겨읽기 72] 쿠마쿠라 다카토시, 《샤먼 시스터즈 (4)》



 돈이 넉넉하게 있으면 내 삶을 한결 넉넉하게 일굴 수 있는지 잘 모릅니다. 돈이 빠듯하거나 벅차면 내 삶은 한결 어둡거나 메마른지 잘 모릅니다. 돈이 넉넉하지 않거나 모자라다면, 아무래도 몸을 쓰는 일이 많거나 늘 몸을 쓰면서 살아가겠지요. 돈이 넉넉하거나 많다면, 아무래도 스스로 몸을 쓰기보다는 남한테 일을 맡긴다든지 몸이 수월할 만한 길을 찾겠지요.

 서른일곱 해를 살면서 몸을 덜 써도 된다거나 몸이 수월할 만한 일을 해 본 적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으레 몸을 쓰는 일을 하고, 노상 몸을 쓰며 자전거를 몰거나 두 다리로 걷습니다. 책방마실을 하면서 가방 가득 책을 채울 뿐 아니라 끈으로 두어 덩이 책짐을 만들 때에도 한두 시간 남짓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거나 버스·전철을 타고 집으로 왔어요.

 빗소리 듣는 새 보금자리에 드러누워 꿈을 꿉니다. 네 식구가 이제부터 느긋하게 두 다리 뻗고 집 옮길 걱정 없이 지낼 새 보금자리에서 첫잠을 자면서 꿈을 꿉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그치지 않는 숱한 일을 치르느라 몸이 무거우니 마음 또한 지치는데, 이렇게 지치더라도 부디 내 마음을 잃거나 놓치지 말자고 꿈을 꿉니다.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에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 만큼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 모두 사랑으로 따뜻한 나날을 누리자고 꿈을 꿉니다.

 꿈을 잊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나는 꿈을 먹는 사람이지 돈을 먹는 사람이 아닌 줄 알자고 생각합니다. 나는 싱그러이 웃으면서 예쁜 손길을 나눌 사람이지 얼굴 찌푸리면서 거친 말을 쏟을 사람이 아닌 줄 깨닫자고 헤아립니다. 나는 씩씩하게 살아갈 사람이지 힘알이 없이 축 처질 사람이 아닌 줄 알아차리자고 되뇝니다.


- “알고는 있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요?” “시즈루?” “사호 언니의 자세는 바람직하긴 해도, 실제로 그런 입장이 되면, 그땐 그렇게 행동하기 힘들 거예요.” “…….” (23쪽)
- “사호 언니는 그쪽을 보려고 노력한 나머지, 그물 같은 것에 걸려들어서 주위를 못 보게 된 건 아닐까요. 하지만 이쪽을 보지 못해서는 그쪽도 보지 못해요.” (30쪽)


 고양이 한 마리 죽습니다. 이른아침에 고양이 한 마리 돌울타리 한켠에 조용히 쓰러져 죽은 모습을 봅니다. 고양이는 제 목숨이 다한 줄 깨닫고는 사람들 눈에 잘 뜨이지 않거나 다른 짐승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자리로 찾아들었는지 모릅니다. 아마 여느 길짐승이나 멧짐승이나 들짐승도 이처럼 조용히 제 무덤자리를 찾아갈 테고, 마지막 힘이 빠지고 나면 흙에 몸뚱이를 누인 채 흙벌레가 하나하나 살점을 뜯어 온몸이 흙과 하나되도록 하겠지요.

 빗방울 하나둘 듣는 저녁 무렵에 연장을 챙깁니다. 아침과 낮에는 우리 보금자리를 손질하느라 고양이 주검을 어찌할 겨를이 없습니다. 아니, 깜빡 잊었다가 다른 사람이 고양이 주검을 알아보았을 때에 비로소 다시 생각했습니다.

 어디에 묻어야 좋을까 어림합니다. 마땅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집 뒤꼍 감나무 자리는 그늘이 질 테고, 모과나무 옆은 볕이 잘 들지만 도서관 터가 될는지 모르니 안 되고. 마침 밀차로 빈터를 넓게 다진 뒤라서 팔 만한 흙이 마땅하지 않지만, 볕이 제법 드는 돌울타리 한쪽 조금 굵은 나무 옆자리가 좋겠구나 싶습니다. 삽도 호미도 없어 쇠스랑으로 어렵게 흙을 파고 돌을 고릅니다. 차갑게 식은 고양이 주검을 내려놓습니다. 앞발을 펴고 싶으나 벌써 딱딱하게 굳었기에 오른발은 앞으로 뻗친 모습 그대로 내립니다. 흙을 덮고 돌로 누릅니다. 돌이 무겁지 않을까 싶으나, 이 돌을 치우며 고양이 주검을 파낼 다른 짐승은 없겠지요. 밤새 조금조금 내리는 빗방울은 흙으로 돌아간 고양이한테도 천천히 스며들겠지요.


-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생물이란 다들 특이한 거예요. 단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고 그것이 각각의 재산이죠. 그리고 그 까닭에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도 생기는 거고요. 우리들을 싫어하는 것도 당신의 소중한 감정. 당신의 체질을 이용해 장난을 친 것도 동료들의 순수한 감정.” (56쪽)
- ‘시골이라 영은 많지만, 할아버지는 공존하는 법을 알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셨다. 하지만 마을 중심 쪽의 것들은 위험해 보여서 방심할 수가 없었다. 너무 들떠 있으면 당하기 쉬운 건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110쪽)



 잠든 아이들 이불을 여미면서 팔을 살며시 들 때에는 보드라이 움직입니다. 숨이 붙은 목숨이요 예쁜 핏덩이일 테니까요. 숨이 빠지고 피돌이가 멈춘 몸뚱이는 팔이며 몸이며 뻣뻣합니다. 이제 더는 움직이지 못하니까요.

 살아숨쉬니까 이렇게 보드라우면서 말랑말랑하군요. 싱그러운 숨이 펄떡펄떡 뛰니까 이토록 따스하면서 포근한 몸뚱이로군요. 밥을 먹으며 기운을 얻는 목숨이고, 사랑을 먹으며 꿈을 얻는 몸뚱이라 하겠지요.

 이 아이들은 아이들 나이를 기쁘게 누리면서 푸름이로 자라고, 푸름이에서 젊은이로 자라다가는, 저마다 저희 깜냥과 꿈과 뜻에 맞는 새로운 길을 찾아 새로운 삶터를 일구리라 생각합니다. 어버이라 하는 사람은 어버이 스스로 제 깜냥과 꿈과 뜻이 무엇인가를 옳게 느끼며 받아들여서 참다우면서 착하게 살아야 하고, 이러한 삶을 온몸과 온마음으로 아이들한테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로 가르치지 못하고, 책으로 가르치지 못하며, 학교로 가르치지 못해요.

 가만히 보면 누구나 이와 같은 얼거리를 잘 알거나 느낄 만한데, 정작 참다이 살거나 착하게 지내는 어른은 퍽 드물어요. 고단한 나날이라 잊을 수 있어요, 바쁜 일에 휘둘리느라 참답거나 착하게 살려 하지 않을 수 있어요. 돈에 메말라 그만 예쁜 삶하고는 동떨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은 밥을 먹어 몸을 살찌우기만 해서는 살아간다 할 수 없는 목숨이에요. 사람은 사랑을 먹으며 마음을 살찌워야 비로소 두 다리로 내 땅에 선 목숨이라 할 만해요.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사랑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면서 사랑을 받아먹습니다. 꿈을 살찌우면서 사랑을 얻고, 사랑을 보살피면서 꿈이 새로 피어납니다.


- “할머니의 감기가 좀더 오래가면 엄마가 더 오래 있어 줄까? 헤헤헤.” 퍼억! “아. 아프잖아. 왜.” “네가 지금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을 했는지 알아? 미즈키! 아냐고!” (117∼118쪽)
- “할머니, 벌써 일어나셔도 괜찮아요?” “그래, 너희가 걱정해 준 덕에 다 나았단다.” “무리하지 마세요.” “알았다.” (138쪽)


 쿠마쿠라 다카토시 님 만화책 《샤먼 시스터즈》(대원씨아이,2005) 넷째 권을 읽습니다. 온누리를 감도는 두 갈래 넋을 느끼거나 볼 줄 아는 아이들한테는 어떤 일이 가장 마음 쓰일 만한 일이라 할는지 곰곰이 돌아보면서 읽습니다. 아이들은 ‘죽고 나서 온누리를 떠도는 넋’을 보거나 느낄 줄 아니, 이들 넋을 보거나 느끼는 일에 가장 마음을 쓰면서 살아갈까요. 이들 넋을 보거나 느끼는 일이 아이들한테 가장 대수로우면서 가장 커다란 일이 될까요.

 나한테는 내 삶에서 무엇이 가장 마음을 쓸 만한 일인가 곱씹습니다. 책, 새 보금자리, 글, 살림돈, 이런저런 것들에 이모저모 마음을 쓸 수 있을 텐데, 책한테 마음을 쓸 수 있다 하더라도 가장 마음을 쓸 만한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새 보금자리이든 글이든 살림돈이든 이와 매한가지예요. 내가 가장 마음을 쓸 만한 대목이라면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옆지기와 아이들입니다. 옆지기와 아이들한테 가장 깊고 넓게 마음을 쓰면서 내 책들과 새 보금자리한테 마음을 기울일 수 있어야 아름답고 좋아요.


- “이런 얘기가 있어. 어느 마을에서 아이들이 뱀을 잘라 죽인 뒤 꼬치에 꿰어서 놀고 있었지. 그걸 지나가던 촌장님이 본 거야. 촌장님은 그걸 보고 굉장히 무서워했어. 그때 뱀에 홀린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해? 촌장님이야. 우리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친다면 보는 일도 씌는 일도 없을지 몰라.” (171∼172쪽)
- “그렇지만 꼭 그런 견해만 있는 건 아니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는 게 어떨까요? 저는 이렇게 당신과 얘기할 수 있어서 기쁘니까요.” (62쪽)



 참 맞는 노릇이지 하고 느끼면서 다시금 생각합니다. 새벽녘 홀로 조용히 일어나 곰곰이 돌아볼 때에는 이렇게 맞는 생각을 한다 할 텐데, 머잖아 동이 트고 또 새 하루를 맞이하면서 새 보금자리를 이래저래 손질하거나 고치는 일을 붙잡아야 할 때에는 옆지기랑 아이들 삶을 또 잊거나 옆으로 밀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다짐을 되풀이하고 뉘우치기도 되풀이합니다. 꿈도 되풀이하고 사랑도 되풀이합니다. 삶은 언제나 되풀이하며, 목숨 또한 한결같이 되풀이해요.

 고이 살아가려는 내 넋이 고이 살아가는 내 아이가 됩니다. 예쁘게 꿈꾸려는 내 얼이 예쁘게 꿈꾸려는 내 아이가 돼요. 따사로이 사랑하려는 내 살림살이가 따사로이 사랑하려는 내 아이 살림살이가 되겠지요. 기쁘게 찾아온 새 하루를 기쁘게 누리고 싶습니다. (4344.10.22.흙.ㅎㄲㅅㄱ)


― 샤먼 시스터즈 4 (쿠마쿠라 다카토시 글·그림,문준식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5.7.15./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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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집 벽종이 붙이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10.21.


 네 식구 새로 살아갈 시골집 작은방 한 곳에 벽종이를 붙입니다. 얼마 안 되는 자그마한 방인데, 이 방 하나에 벽종이를 붙이느라 하루해가 넘어갑니다. 벽종이를 붙이는 품보다 낡은 벽종이를 긁어서 떼느라 훨씬 오래도록 더 많이 품을 들여야 합니다.

 하룻밤 묵히고 이듬날 새벽에 들여다봅니다. 저녁에는 좀 들뜬다 싶던 자리가 하룻밤 자면서 제법 가라앉습니다. 썩 볼 만하지 않으나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어제 작은방 하나를 벽종이 붙여 보았으니 오늘은 곁달린 작은방에도 벽종이를 잘 붙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곁달린 작은방은 보꾹까지 해야 할 텐데요. 곁달린 작은 방에는 나무로 얹은 시렁까지 있습니다.

 오늘은 아침 여덟 시에 삽차가 와서 헌 웃집을 헐기로 했습니다. 헌 웃집을 헐고 바닥을 판판하게 골라 도서관 자리로 삼을 생각입니다. 이 일을 얼른 마무리지어야 책짐과 남은 살림을 고흥 시골자락에 풀어놓을 수 있습니다. 옆지기 어머님과 아버님이 함께 오셔서 일손을 많이 거들기 때문에, 혼자 했으면 한 달은 넉넉히 걸릴 만한 일을 며칠 만에 해냅니다. 오래 빈 집을 손질하느라 아이들한테 살가이 말마디 건넬 겨를을 내지 못합니다.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 얼굴을 들여다볼 때에만 예쁘다 여기지 말고, 말똥말똥 눈을 뜬 낮 동안 예쁘게 얼싸안을 수 있자면, 내 몸을 어떻게 건사해야 좋을까요. 제 어버이가 다른 일로 바빠 저희를 들여다보지 못하는구나 하는 아이들 자리에서 나를 바라본다면 내가 얼마나 심심하고 따분한 어버이인지 느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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