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 소리


 외할아버지가 모는 짐차를 타고 온 식구가 발포 바닷가로 간다. 저녁해가 기울며 날은 조금씩 어두워진다. 땅거미 내려앉는 바닷가에 내리니 비로소 물결 소리가 들린다. 자동차를 달릴 때에는 바다를 눈으로 보기만 할 뿐, 바다 내음이나 바다 소리를 맞이하지 못한다. 자동차에서 내려 바다를 바라보니 비로소 바다 내음과 바다 소리가 몰려든다.

 물결은 높게 일지 않는다. 여느 물결이다. 여느 물결이지만 모래밭으로 부딪는 소리가 쏴아쏴아 제법 크다. 바닷물은 그닥 차지 않고, 소금 내음은 얼마 나지 않는다. 갓난쟁이 둘째를 안고 모래밭을 맨발로 밟으며 바닷물 무릎까지 일렁이는 데까지 걷는다. 첫째는 바닷물에 몸을 담근 적이 있으나 물결 소리를 듣기는 처음이다. 둘째는 바닷물도 바다 소리도 처음이다. 두 아이는 나중에 크면 스스로 자전거를 몰아 바닷가로 헤엄치러 나올 수 있을까. 아니면 버스를 타고 바닷가를 다녀올 수 있을까.

 선선한 바람이 살랑이는 발포 바닷가를 우리 식구들이 마음껏 누린다. 시월 끝무렵 사람들 발길이 없는 발포 바닷가 높푸른 하늘과 맑은 물결과 싱그러운 바람을 실컷 얼싸안는다. (4344.10.2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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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으로 보는 삶
 ― 사진기에 담긴 826장



 전라남도 고흥군 시골마을에서 첫밤을 지냈습니다. 살림집을 옮기느라 석 달 남짓 바깥잠을 자다가 비로소 집잠을 잡니다. 띄엄띄엄 예전 집에서 머물며 쉬기는 했는데, 새 보금자리에 깃들며 이것저것 고치고 손질하느라 짐을 제대로 풀지 못하며 벽종이를 바르고 바닥을 깔고 하면서 식구들이 고단합니다. 이동안 셈틀 자리를 잡을 수 없으니, 보름 남짓 사진기 메모리카드에 사진이 쌓입니다.

 내 사진기는 스스로 목숨을 다했습니다. 지난해에 한 번 크게 고쳤으나 다시금 목숨을 다했습니다. 어찌할 바 모르며 헤매는데 형이 형 사진기를 빌려줍니다. 형 사진기를 고맙게 얻어 쓰면서 형이 쓰던 16기가 메모리카드를 함께 받아서 씁니다. 덩치가 큰 메모리카드를 쓰기 때문에 보름 남짓 셈틀에 사진을 옮기지 못하며 지내면서도 826장에 이르는 사진을 건사합니다.

 골목마실을 하거나 헌책방마실을 하면 하루에도 삼사백 장이나 오륙백 장은 금세 찍습니다. 아무런 마실을 하지 못하면서 보름 남짓 헤매고 떠돌며 조금조금 담은 사진이 826장입니다. 조금조금 담았다지만 하루에 마흔 장은 넘게 찍었네 하고 헤아리다가 살짝 놀랍니다. 그렇구나, 사진을 거의 찍을 수 없이 지내는 하루하루라지만, 용케 이렇게 찍는구나, 아니 이렇게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서 내 마음을 쉬고 내 몸을 다스리는구나.

 새벽녘 까만하늘이 붉은하늘이 되다가 노란하늘로 빛나더니 천천히 파란하늘로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홀로 깨어 가만히 바라보다가 사진기를 들어 노란하늘을 두어 장 담습니다. 나중에 아이한테 보여주려고 사진으로 담습니다.

 처음에는 사진으로 보여줄밖에 없고, 나중에는 아이 스스로 붉은하늘 노란하늘 파란하늘 골고루 바라보며 누릴 수 있겠지요. 느긋하게 지낼 집에 따사로이 뿌리내릴 때쯤 메모리카드 사진을 아이들하고 함께 바라보며 우리 식구 힘겨이 보낸 여러 나날을 예쁘게 되새기겠지요. (4344.10.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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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0-24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골마을에서 첫밤을 지내셨나요....
항상 좋은 일 가득하고, 건강하시기 빌겠습니다.

파란놀 2011-10-26 05:03   좋아요 0 | URL
반 해 넘게 집 옮기는 일에 시달리면서 몸이며 마음이며
몹시 힘들지만,
이제부터 즐거이 자리잡으며 살아가고 싶어요~
 


 붉은노을 책읽기


 새벽녘 붉은노을은 짧다. 저녁나절 붉은노을도 짧다. 살짝 다른 데에 눈길을 둘라치면 금세 지나간다. 새벽녘 먼 멧자락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바라보면서 지난밤 사이에 다 마른 기저귀를 걷어 개고는 다시 먼 멧자락을 바라보니 붉은노을이 거의 걷힌다.

 새벽에 우짖는 새들 소리를 듣는다. 새들도 겨울나기를 해야겠지. 따뜻한 고장에서는 따뜻한 대로 겨울나기를 하고 추운 마을에서는 추운 대로 겨울맞이를 하겠지.

 인천 바닷가에서 살아가던 어린 날에는 붉은노을을 언제나 보았다.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신문배달을 하며 살던 때에도 붉은노을을 늘 보았다. 군대에서는 높디높은 멧자락 한켠에 갇혀 붉은노을은 모르며 지냈다. 충청북도 멧골자락에서도 멧등성이에 가려 붉은노을은 느끼지 못하며 살았다. 문득 돌아보니 퍽 오랜만에 새벽녘 붉은노을을 바라보며 아침을 맞는다고 깨닫는다. 이제 이 살림집에 뿌리를 내리고 책짐을 실어 날라 갈무리를 마칠 수 있으면, 아이들하고 한결 넉넉하게 새벽노을맞이를 하겠지. 아버지가 안 깨워도 늘 일찍 일어나는 첫째 아이라 하지만, 일부러 첫째 아이를 일찍 깨워 새벽나절 붉은노을을 함께 바라보자고 할 수 있겠지.

 까맣디까만 하늘이 차츰 파란 빛깔을 띌까 싶더니 온통 붉게 물들고는 시나브로 노오랗게 바뀐다. 노오라면서 귤빛으로 바뀐다. 꼭 단단하게 익은 감알 빛깔과 같다. 어쩌면, 단감빛이 노을빛이라 할 수 있으리라. 단감을 먹으며 몸을 살찌우고, 노을빛 어린 새벽바람을 마시면서 마음을 북돋운다. (4344.10.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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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날밤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신호리 동백마을 자그마한 집에서 첫날밤을 보냈고 이틀째 밤을 보낸다. 해야 할 일이 그득그득하기에 첫밤을 지새우면서도 첫밤인 줄을 느끼지 못하고 말았다. 툇마루에 낸 샤시문이 있어 방문을 열고 자도 괜찮다. 남녘 바닷가에 자리한 시골집은 시골이면서도 십일월이 코앞인데 그닥 춥지 않다. 밤하늘 별을 느끼고 이른새벽 동을 느낀다.

 풀밭에는 메뚜기와 여치가 아직 눈에 뜨인다. 길가에는 개구리가 펄떡펄떡 뛴다. 겨울이 추운 데에서는 풀벌레가 한해살이를 마치고 개구리는 땅속으로 파고든다지만, 겨울이 따스한 데에서는 풀벌레가 얼마나 오래 살아갈까. 돌이켜보니, 국민학교 자연 수업에서 ‘겨울 따스한 데에서 벌레와 개구리가 어떻게 지내는가’를 가르친 적이 없구나 싶다. 그저 겨울이면 다 죽거나 겨울잠을 잔다고만 가르쳤구나.

 시골 아이들은 교과서로 배울 때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남녘 바닷가 아이들은 자연 교과서를 배우면서 무슨 마음을 품었을까. 늘 곁에서 보는 자연하고는 동떨어질 뿐 아니라 언제나 둘레에 펼쳐진 자연을 제대로 담지 못한 교과서를 달달 외워야 더 커다란 학교로 들어갈 수 있는데, 시골마을 아이들은 학교교육을 어떻게 느꼈을까.

 고칠 곳과 손볼 것이 가득한 시골집에서 참 달콤하게 잠을 잔다. 이 빈집에서 할머니 한 분이 홀로 살다가 숨을 거두셨다는데, 할머니는 날마다 밤에 어떤 마음으로 잠이 들고 새벽에는 어떤 마음으로 잠을 깨셨을까. 할머니에 앞서 이 터에서 살던 숱한 사람들은 날마다 어떤 삶을 일구었을까. 날이 갈수록 쓰레기가 늘어 땅에 파묻거나 불을 놓아 태워야 하는 일이 잦은데,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자라고 이 아이들이 저희 아이를 낳아 이 터에서 살아간다 할 때에는 쓰레기를 어떡해야 할까. 아스라이 먼 예전 사람들은 쓰레기 걱정 교육 걱정 돈벌이 걱정 경제발전 걱정 대통령선거 걱정 교통 걱정 따위는 안 하고 살았을 텐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식구는 무슨 걱정을 해야 하나. 무슨 생각을 품으며 어떤 사랑을 꽃피워야 하나.

 옆지기 아버님과 어머님이 여러 날 함께 지내시는 커다란 사랑을 받아 이 조그마한 집에 온갖 사랑이 흐드러지게 넘친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서 저희끼리 제금을 난다 할 때에 아버지로서 이 아이들과 이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가를 곰곰이 돌아본다. (4344.10.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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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0-23 12:40   좋아요 0 | URL
전라남도 고흥. 멀리 가셨군요. 새로운 장소에서 고운 꿈 펼치시길 바래요.
새 보금자리도 그렇고, 두 아이도 그렇고, 한참 손길이 많이 필요한 시기일텐데, 잘 해나가시리라 믿습니다. 그 시기가 영원히 계속되진 않으니까요.

파란놀 2011-10-24 07:16   좋아요 0 | URL
얼른 집 손질을 마치고
아이들하고 따순 손길을 나눌 수 있어야 할 텐데
오래 빈 집이고
비기 앞서 할머니 혼자 지내시느라
이래저래 다치거나 헌 자리가 많아서
품이 많이 들어요.

그렇지만 이 좋은 터를
예쁘게 잘 사랑하고 싶어요~ ^^
 


 오줌싸개


 새근새근 고이 자는 아이는 깊디깊은 새벽나절 한 차례쯤 잠에서 깨어 스스로 오줌을 눕니다. 낮잠을 건너뛰고 밤잠마저 일찍 들려 하지 않으며 온갖 어리광이며 떼를 쓰는 아이는 까무러치듯 곯아떨어져서는 그만 이부자리에 쉬를 누고 맙니다.

 둘째가 오줌을 눈 새벽 네 시 오십 분 무렵, 첫째도 오줌을 눕니다. 바지에 오줌을 흥건하게 눕니다. 바지와 속곳을 벗기는데 그저 누워서 엉덩이를 살짝 듭니다. 저도 잠결에 쉬를 눈 줄을 느끼는군요. 그러나 하도 잠이 찾아와서 칭얼댄다거나 일어나지 않고 엉덩이만 살짝 듭니다. 새 속곳을 입히고 새 바지를 입힙니다. 두 아이는 다시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잠듭니다. 집안이 조용합니다. 이제 한 시간쯤 지나면 동이 틀 테고, 동이 트고 아침이 찾아오면 두 아이는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지 못하며 또 신나게 놀자며 웃고 떠들리라 봅니다.

 아이가 잘못해서 오줌싸개가 되지는 않으리라 느낍니다. 어버이로서 조금 더 따사롭고 한결 더 넉넉하게 보듬어야 아이는 오줌싸개 아닌 귀염둥이로 자라리라 느낍니다. 아이를 다그치는 어버이는 제 허물을 숨기는 셈이요, 아이를 나무라는 어버이는 제 모자람을 드러내는 꼴이라고 느낍니다. 이 아이들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살아간다면, 나는 어버이도 어른도 사람도 될 수 없다고 느낍니다. (4344.10.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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