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칼 나의 피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92
김남주 지음 / 실천문학사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흙과 꿈과 사랑을 노래하는 삶
[시를 노래하는 시 11] 김남주, 《나의 칼 나의 피》

 


- 책이름 : 나의 칼 나의 피
- 글 : 김남주
- 펴낸곳 : 실천문학사 (1987.11.15.)
- 책값 : 5000원

 


 겨울도 한철, 추위에 오슬오슬 떨며 옷을 두껍게 껴입는다지만, 머잖아 한 겹 두 겹 훌훌 털어낼 봄을 맞이하리라 생각합니다.

 

 겨울이니 춥기 마련입니다. 겨울이니 추위가 닥치기 마련입니다. 추운 겨울 따스히 나고자 여러모로 마음을 기울이기 마련입니다.

 

 지난밤, 물을 졸졸 틀어놓습니다. 따스한 남녘땅에서 물이 어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자칫 물이 얼면 어찌 손쓸 길이 없으니 졸졸 틀어놓습니다. 방 온도가 14도 밑으로 내려가는 날에는 물을 틉니다. 지난 12월과 올 1월 2월 석 달에 걸쳐 오늘로 세 번째 14도 밑으로 온도가 내려갑니다.

 

 마당에는 흰눈이 쌓였습니다. 지난 석 달에 걸쳐 마당에 눈이 쌓이기로는 오늘이 처음입니다. 내리는 듯 마는 듯하던 눈이요, 내리면 곧 녹는 눈이었는데, 간밤에는 아이 새끼손톱보다 조금 얕게 쌓입니다. 첫째 아이와 둘이서 뒤꼍으로 나가 한참 발자국놀이를 했습니다.


.. 그들은 척척박사이기에 무엇보다도 먼저 묻겠다 / …… / 팔레비와 소모사와 이 아무개와 박아무개가 / 제 스스로 물러났던가 ..  (나 자신을 노래한다)


 모처럼 얼어붙는 남녘땅 겨울날 새벽나절, 나는 부시시 일어나 빨래를 합니다. 이런 날씨에는 해가 쨍쨍 내리쬐는 마당에 빨래를 널더라도 꽁꽁 얼어붙습니다. 기저귀 빨래는 처음에는 얼다가도 이내 녹으면서 마르지만, 여느 옷가지는 얼어붙기만 할 뿐 마르지 않아요. 꽁꽁 얼어붙는 날씨에는 빨래를 조금씩 꾸준히 하면서 앞에 한 빨래가 마를 만하다 싶으면 걷어서 방바닥에 펼쳐 바싹 말립니다. 뒤이어 새 빨래를 합니다. 한꺼번에 많이 하면 말리기 수월찮으니 알맞게 나누어 빨래를 합니다. 이럭저럭 하루이틀 보내면 밀리는 빨래 없이 옷을 건사할 수 있습니다.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무렵 빨래를 하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옆지기 옷가지는 내 옷가지처럼 커다랗습니다. 두 아이 옷가지는 참말 작습니다. 아이들 바지나 웃도리 길이는 나와 옆지기 웃도리 소매 길이만큼 되지도 않습니다. 참 작고 짧아요. 이 작고 짧은 옷을 입으며 살아가는 아이들 또한 나와 옆지기하고 똑같은 넋이 깃든 목숨이 펄떡펄떡 숨쉽니다.

 

 작은 사람은 작은 기운을 내겠지요. 작은 사람은 큰 사람처럼 큰 기운을 낼 수 없겠지요. 큰 사람은 짐을 많이 짊어지면서 작은 사람을 업거나 안을 수 있다지만, 작은 사람은 짐을 짊어지기에도 벅차고 큰 사람을 업거나 안을 수 없겠지요.


.. 피와 땀과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 …… / 제 자신을 속이고서 ..  (자유)


 돈이 넉넉한 사람이 돈이 없거나 모자란 사람한테 돈을 나누는 일은 참 마땅하다고 느낍니다. 먹을거리 푸짐하게 갖춘 사람이 배고프거나 배곯는 이하고 밥을 나누는 일은 더없이 마땅하다고 느낍니다. 똑똑하거나 슬기로운 사람이 어리숙하거나 어리석은 사람하고 앎·넋·꿈을 나누는 일은 몹시 마땅하다고 느낍니다.

 

 내가 글을 쓰는 까닭은 달리 있지 않습니다. 내가 더 갖춘 앎이 있으면 나눕니다. 내가 더 읽은 책이 있거나 내가 더 생각하는 꿈이 있거나 내가 더 깨달은 이야기가 있으면 스스럼없이 글을 써서 나눕니다.

 

 누군가는 나처럼 글을 쓸 테고, 누군가는 글솜씨 없다며 입으로 알콩달콩 말잔치를 베풀겠지요. 누군가는 그림을 그릴 테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을 테며, 누군가는 춤과 노래를 들려주겠지요.

 

 누군가는 맛난 밥을 차립니다. 누군가는 빨래를 합니다. 누군가는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합니다.

 

 누군가는 호미질을 하고, 누군가는 괭이질을 하며, 누군가는 삽질을 합니다. 누군가는 그물을 던지고, 누군가는 도끼를 찍으며, 누군가는 나물을 다듬습니다.


.. 셋이라면 더욱 좋고 / 둘이라도 떨어져 가지 말자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앞에 가며 너 뒤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 뒤에 남아 너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 열이면 열 사람 천이면 천 사람 어깨동무하고 가자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눈이 덮인 마을은 고요합니다. 들쥐도 들고양이도 발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멧새도 들새도 어디에선가 따사로이 잠을 잘 테고, 멀찍이 떨어진 한길을 오가는 자동차는 보이지 않습니다.

 

 바람이 자는 밤나절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큰보름이 지났으나 달빛은 아주 밝습니다. 다른 철에는 보름이 지나면 달빛이 이내 사그라들지만, 큰보름 앞뒤로는 보름달 아니어도 달빛이 몹시 밝아요. 마을 곳곳 어두운 데 없이 환하게 비춥니다.


.. 누가 허리 꺾인 네 상처에 / 꽃잎 대신 철가시바늘을 꽂아놓았느냐 ..  (학살 2)


 구름이 지나갑니다. 구름이 달을 가립니다. 구름이 걷힙니다. 달이 다시 환합니다. 구름은 또 흐릅니다. 달빛은 살짝 가리고, 달빛이 살짝 가린다지만 보름달 빛살은 온누리 골고루 퍼집니다.

 

 달빛이 맑고 밝은 밤에는 그림자가 매우 짙습니다. 달빛을 머금은 그림자는 등불이 만드는 그림자와 견줄 수 없이 매우 짙습니다. 전깃불 그림자는 달그림자하고 나란히 서지 못합니다. 전깃불 그림자는 조금만 떨어져도 아스라히 사라지고, 달그림자는 내가 어디에 서든, 내가 무엇을 하든, 내가 어떻게 몸짓을 하든, 내 모든 결과 무늬에 따라 그림자를 빚습니다.

 

 아이를 안고 고샅을 걸으면 아이를 안은 내 모습이 논자락에 펼쳐집니다. 아이와 손을 잡고 마당을 노닐면 아이 손을 잡은 내 모습이 후박나무 그림자와 함께 마당을 가득 채웁니다.


..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자가 / 외적의 앞잡이이고 / 수천 동포의 학살자일 때 / 살아 남은 사람들이 있어야 할 곳 / 그곳은 어디인가 ..  (살아 남은 자들이 있어야 할 곳)


 달이 있고 별이 있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흙이 있고 풀이 있는 땅을 내려다봅니다. 하늘은 까만 빛깔에서 노랗게 보랗게 발갛게 물들다가는 파아랗게 물들며 아침이 찾아옵니다. 겨우내 땅은 누렇다가 하얗다가 다시 누렇게 바뀌다가는 금세 푸르게 물들며 따스한 기운 가득합니다.

 

 내 마음속에 봄을 그리는 꿈이 있기에 봄이 찾아옵니다. 한여름 무더위, 내 마음속에 겨울을 그리는 꿈이 있어서 겨울이 찾아옵니다.

 

 사람들 따스한 사랑이 하나둘 모여 따순 날씨가 됩니다. 사람들 차디찬 미움과 시샘과 꾐수가 얼크러져 차디찬 날씨가 됩니다.

 

 그냥 더운 날이나 그냥 추운 날은 없다고 느껴요. 마음이 차가울 때에 차가운 날씨요, 마음이 따사로울 때에 따사로운 날씨예요.

 

 내 삶에 따라 달라지는 날씨입니다. 내 넋을 돌보는 삶에 따라 바뀌는 날씨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매무새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날씨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널뛰는 날씨입니다.

 


..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 뜨는 해와 함께 일어나고 / 지는 달과 함께 자며 /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농부의 팍팍한 가슴에도 있고 ..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스러운 날씨라서 사랑을 한결 짙게 느낀다고도 하지만, 내 가슴에 사랑꽃이 흐드러질 때에 비로소 사랑스러운 날씨입니다. 내 가슴이 사랑이라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구름이 끼든 사랑스러운 날씨입니다. 내 가슴이 사랑 메말라붙어 차디차거나 메마르거나 쓸쓸한 빈터라면, 해가 나든 해가 기울든 비가 오든 비가 멎든 메말라붙거나 차디차거나 메마르거나 쓸쓸한 날씨입니다.

 

 내 마음으로 읽으면서 느끼는 날씨입니다. 내 가슴으로 다스리는 날씨입니다. 내 마음으로 읽으면서 느끼는 삶입니다. 내 가슴으로 다스리는 삶입니다. 내 마음으로 읽으면서 느끼는 사람이고 마을이며 보금자리예요.


.. 더는 잃을 것이 없는 우리 농민들에게 소중했던 것 / 그것은 / 돌이었다 낫이었다 창이었다 ..  (돌과 낫과 창과)


 씨앗을 심는 흙일꾼들 마음은 혼자 배부르려는 마음일 수 없습니다. 같이 먹고 같이 나누며 같이 흐뭇한 삶을 꿈꾸는 마음입니다.

 

 씨앗을 심는 흙일꾼들한테까지 돈을 심으려 하는 등쌀 때문에, 흙일꾼들은 그만 풀약을 쓰고 비료를 쓰며 항생제를 씁니다. 누구보다 잘 알고 느끼는 흙일꾼들부터 ‘유전자 건드린 씨앗’을 돈을 치러 사서 쓰고 맙니다. 곡식과 열매를 거둔 다음, 이 곡식과 열매 가운데 씨앗을 갈무리해서 이듬해에 새로 심지 못하고 말아요. 볍씨를 갈무리하더라도 모판에 비료를 쳐서 빽빽하게 자라도록 한 다음 기계에 앉혀 논바닥에 기계로 밀 뿐입니다. 사람이 먹는 곡식을 어떻게 간수하며 보살펴야 하는가를 그만 흙일꾼 스스로 잊고 맙니다.

 

 흙일꾼한테 돈마음을 심은 도시사람은 스스로 흙을 밟지 않습니다. 스스로 흙을 밟지 않으니, 볍씨가 무엇이고 볏모를 어떻게 나도록 하며 볏모를 어떻게 논에 심어야 하는가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볍씨와 볏모와 볏가리를 살피지 못해요. 오직 돈으로 쌀을 돌아봅니다. 값이 싼가 비싼가, 유기농인가 아닌가, 저농약인가 아닌가, 친환경인가 아닌가, 이런저런 대목은 살피지만, 막상 볍씨일 때부터 얼마나 어떻게 사랑받은 씨앗이요, 이 씨앗에 어떤 땀과 삶과 꿈을 담아 논바닥에 심는가를 깨닫지 않습니다.


.. 나는 자유의 편에 서 있다고 / 나는 불의에는 반대한다고 / 입을 열어 한번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 쥐꼬리만한 봉투 때문에 / 보잘것없는 지위 때문에 ..  (지위)


 돈 때문에 풀약을 칩니다. 돈 때문에 비료를 뿌립니다. 돈 때문에 항생제를 씁니다. 돈 때문에 씨앗 유전자를 과학자들이 건드리고 농협에서 이 씨앗을 사고팝니다.

 

 돈 때문에 모내기와 모심기와 벼베기를 도시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하려고 나서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회사나 공공기관 일을 쉬지 못합니다. 돈 때문에 전철이나 버스를 멈추지 못합니다. 돈 때문에 4대강 삽질을 그치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수출과 수입이 끊이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자동차를 만들고, 돈 때문에 손전화기 만들며, 돈 때문에 공장을 세우고 고속도로를 닦습니다.

 

 오직 돈 때문입니다. 오직 돈 때문에 관광산업을 말합니다. 오직 돈 때문에 친환경 농산물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오직 돈 때문에 대학교로 보내려 합니다. 오직 돈 때문에 영어를 가르치고 배웁니다. 오직 돈 때문에 정치가 갈리고, 신문사와 방송사가 들썩입니다.

 

 그런데, 참말 돈 때문이라면, 참다운 돈을 찾거나 밝히거나 나누는 길을 가야 할 텐데요. 참말 돈 때문이라면, 옳게 벌고 옳게 쓸 돈을 제대로 깨달아 착한 일자리 바른 일거리를 찾아야 할 텐데요.


.. 감옥들은 부자들이 그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 그리고 이들은 감옥을 채우기 위해 경찰과 검사를 만들었으며 ..  (사실)


 지난날에는 대학생들이 농촌봉사활동이라는 이름을 걸고 철 따라 시골마을로 흙일을 하러 갔습니다. 오늘날에는 대학생들이 농촌봉사활동을 할까요.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수행평가나 자원봉사 같은 점수따기를 하고자 시골마을 흙일 봉사활동을 하기는 하나요.

 

 지난주 면내 우체국에 편지를 부치러 찾아가니, 면내 고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겨울방학 봉사활동 점수를 따려고 찾아와서는 우체국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끔찍하구나 싶어 차마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청소가 무슨 봉사활동이라고요. 청소는 집에서 늘 제 어버이와 함께 즐기는 삶이어야지요. 시골마을 아이들이라면 시골마을 아이들다이 제대로 봉사활동을 해야지요. 아니, 시골마을 아이들이니 시골마을 어버이와 이웃들이 날마다 늘 하는 일을 곁에서 거들며 배워야지요. 바닷가에서 아이들 어버이나 이웃과 함께 매생이를 거두고 굴을 까야지요. 물고기를 다듬고 그물을 꿰어야지요. 곡식을 갈무리하고 된장을 뜨고 새끼를 꼬아 매달아야지요. 참말 일다운 일을 거들거나 함께하면서 삶을 배워야지요. 점수를 따지 말고 사랑을 나누어야지요. 학교에서 시키는 봉사활동이 아니라 스스로 우러나오는 꿈을 키워야지요.

 

 문득 생각합니다. 도시 아이들 모두 시골마을로 철 따라 이레씩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철 따라 이레씩 시골에서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모를 심으러, 김을 매러, 벼를 베러, 곡식을 갈무리하러, 철마다 이레쯤 스스로 땀흘리는 일과 삶과 사랑을 몸으로 느끼도록 해야 이 나라가 아름다이 거듭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 형제여 내 바라나니 서재에서 자유를 노래하지 말라 / 형제여 내 바라나니 학교에서 진리를 구하지 말라 / 형제여 내 바라나니 교회에서 예수를 찾지 말라 / 형제여 내 바라나니 법정에서 정의를 구하지 말라 ..  (희망에 대하여 2)


 아이가 태어나면 시골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제대로 살피지 못했으나, 이제는 이렇게 느끼고 생각합니다. 새로 태어난 아이를 사랑스레 기리거나 아끼거나 보살피자면, 이 아이들 모두 시골로 보내고, 아이들 어버이 또한 시골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육아휴직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육아휴직이 아닌 시골살이를 해야 합니다. 시골에서 아이들이 흙을 밟도록 하고, 어버이 또한 흙을 밟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흙이 베푸는 선물을 물려받고, 햇살과 바람과 눈비와 푸나무가 베푸는 선물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들짐승과 날짐승이 베푸는 선물을 함께 받아먹으면서 아이들 마음밭 사랑씨앗이 무럭무럭 크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러는 동안 아이들 어버이는 이제껏 생각하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하던 참사랑과 참삶을 시나브로 알 수 있겠지요.


.. 올라가고 / 내려오지 않는다 / 올라가고 올라가고 올라가고 / 내려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여기서 저기까지 / 밭둑에서 논둑까지는 / 성한 다리 성한 팔은 하나도 없다 ..  (고향 3)


 아이들 이끌고 읍내마실을 하다 보면, 옆지기랑 아이들 다 함께 면내마실을 하거나 마을돌기를 하다 보면, 네 식구 즐거이 흙을 밟고 거닐 만한 데가 없다고 곧 깨닫습니다. 흙 있는 자리는 논이나 밭인데, 다른 사람 땅인 논밭을 함부로 밟기 어렵습니다.

 

 싱그러이 숨쉬는 흙을 밟고 살가이 풀이 자라는 흙을 느끼지 못하고서야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겠느냐 싶습니다. 공장에서 밥을 만들어 주지 않으니까요. 공장에서 옷을 만들어 주거나 집을 만들어 주지 않으니까요. 공산품 먹을거리가 넘친다지만, 어떠한 공산품이라 하더라도 ‘흙에서 태어’납니다. 흙이 없고서야 어떠한 공산품도 태어날 수 없어요.

 

 흙에서 거두고서야 비로소 공장이 움직입니다. 흙에서 일구어 얻은 다음에야 비로소 도시가 섭니다. 흙에서 가꾼 사랑이 있기에 사람이 숨을 쉴 수 있어요.


.. 그리하여 우리네 들판으로 하여금 / 더 이상 도시의 곡물지대가 되도록 하지 말자 / 그리하여 우리네 마을로 하여금 더 / 더 이상 도시의 상품시장이 되도록 하지 말자 / 그리하여 우리네 아들딸로 하여금 / 이 세상 잘난 놈들의 값진 고용살이 되도록 하지 말자 ..  (농부의 일)


 김남주 님 시집 《나의 칼 나의 피》(실천문학사,1987)를 읽습니다. 사람들은 김남주 시인을 일컬어 으레 ‘혁명전사’라 말하지만, 나는 김남주 시인은 혁명전사라 말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아니, 혁명전사이기는 혁명전사입니다. ‘낫을 들고 쟁기를 들어 흙을 일구는 혁명전사’입니다. 김남주 시인부터 스스로 낫을 들고 쟁기를 들어 살림을 꾸리는 흙일꾼이 되는 혁명전사예요.


.. 흔해빠져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으면서도 / 내가 없으면, 일분 일초도 없으면 / 세상은 순식간에 죽음의 바다, 나는 농민이다 ..  (농민)


 김남주 시인한테 ‘농민시인’이라는 이름도 걸맞지 않습니다. 애써 이름을 붙이려면 ‘혁명전사’가 맞습니다만, 어디에서 누구랑 무엇을 하는 혁명전사인가 하고 따지면, 바로 시골마을 조그마한 집에서 살붙이들과 땅을 일구는 흙빛 눈물이랑 흙내음 웃음 꽃피우는 혁명전사 시인이에요.

 

 흙을 노래하기에 낫을 듭니다. 흙을 꿈꾸기에 쟁기를 듭니다. 흙을 부여잡고 디디기에 혁명을 외칩니다. 흙하고 한몸뚱이가 되어 얼크러지기에 전사로 거듭나요. 흙에 입맞추고 흙에 몸을 누이기에 어여쁜 사람입니다.


.. 암흑의 / 시대의 / 시인의 일 그것은 무엇일까 / 침묵일까 / 관망일까 / 도피일까 / 밑 모를 한(恨)의 바다 넋두리일까 ..  (시인이여)


 해마다 한 차례쯤 김남주 시인 시집을 새로 읽으며 생각합니다. 아직 도시에서 살아가던 지난날에는 그야말로 머리로만 김남주 님 시를 읽으려고만 했다고 느낍니다. 이제 시골마을로 살림을 옮겨 살아가는 오늘날에는 조금씩 머리 아닌 몸으로, 생각 아닌 손발로 김남주 님 시를 만날 수 있다고 느낍니다.

 

 다만, 내 삶터는 시골마을이나, 내 몸뚱이는 아직 시골사람이 아닙니다. 날마다 기쁘게 밟을 흙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어요. 아이들과 마음껏 뛰놀며 부여잡을 흙땅을 넉넉히 건사하지 못했어요.

 

 이제 나는 어떻게든 오천 평을 마련하자고, 오백 평이나 쉰 평이라도 먼저 마련하자고, 우리들부터 예쁘게 살아갈 좋은 흙집과 흙땅과 흙터로 흙누리를 이루자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흙꿈을 꾸는 흙사랑을 시나브로 이룬다면,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은 언젠가 흙사람이 되어 흙빛 고이 감도는 흙이야기인 《나의 칼 나의 피》를 참다이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사랑만이 / 겨울을 이기고 / 봄을 기다릴 줄 안다 ..  (사랑 1)


 그러니까, 김남주 님한테 당신 칼은 당신 낫이며 쟁기요 호미입니다. 김남주 님한테 당신 피는 당신 흙이며 햇살이고 눈비입니다.

 

 썩썩 베는 낫질이 시로 태어납니다. 쿡쿡 엎는 쟁기질이 시로 거듭납니다. 콕콕 쪼는 호미질이 시라는 숨결을 얻습니다.

 

 칼춤이란 호미춤입니다. 칼노래란 낫노래입니다. 칼바람이란 쟁기바람입니다.

 

 고운 햇살 받아먹은 곡식과 푸성귀를 거두어 먹는 사람은 새로 태어납니다. 싱그러운 목숨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빛나는 몸뚱이로 다시 태어납니다. 빛나는 몸뚱이는 빛나는 넋입니다. 빛나는 넋은 빛나는 말입니다.

 

 그예 김남주 님은 차갑고 어두우며 풀포기 하나 없는 감방에 갇혀야 했으나, 스스로 흙사람이라는 꿈을 잊지 않았기에 시를 썼어요. 메말라붙은 시멘트바닥이 동서남북 꽁꽁 둘러싸고 쇠사슬과 쇠몽둥이와 쇠창살로 얽혀야 했으나, 스스로 흙사람이라는 사랑을 언제나 되새겼기에 시를 남겼어요.


.. 내가 손을 내밀면 / 내 손에 와서 고와지는 햇살 / 내가 볼을 내밀면 / 내 볼에 와서 다스워지는 햇살 /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 자꾸자꾸 자라나 / 다람쥐 꼬리만큼은 자라나 / 내 목에 와서 감기면 / 누이가 짜준 목도리가 되고 / 내 입술에 와서 닿으면 / 그녀와 주고받고는 했던 / 옛추억의 사랑이 되기도 한다 ..  (창살에 햇살이)


 사랑하고 싶습니다. 살아가고 싶습니다. 생각하고 싶습니다. 나는 내 칼을 쥐고 싶습니다. 나는 내 피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4345.2.9.나무.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주 2012-02-09 10:13   좋아요 0 | URL
언젠가 김남주 시인 육성으로 녹음된 시를 들었어요. 시는 제목도 잊어버렸는데 그 목소리는 기억나요. 카랑카랑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였죠.

오옷! 이것이 1000번째 느낌글인가요!

오신지 얼마 안 되었는데 언제 이렇게 많이 쓰셨을까요! 처음에 산들보라 똥기저귀며 식구들 빨래거리를 일일이 손빨래 하시는 보고 모니터 이 편에서 얼마나 놀랐게요. 하긴 그땐 님 서재에 와선 그런 인사치레도 남길 수 없었죠. 왠지 맞춤법이나 낱말을 한 톨도 틀리지 않고 맞게 써야 할 것 같아서..ㅎㅎ 서재 마실 다니시는 된장 님을 보면 이제 이 동네 주민 다 되셨구나 싶어요^^ 주민이 뭐예요? 터줏대감이신걸요.<--악..터줏대감도 '임자'로 벼루어야 하나요?(터줏대감이 일본식 말이라고 하던데 정말인가요?)

파란놀 2012-02-09 10:17   좋아요 0 | URL
저한테도 김남주 육성 시낭송 테이프 있었는데,
어느 날 누가 훔쳐갔어요 ㅠ.ㅜ

목소리를 듣고 나서는
시읽기가 한결 달라졌어요.
그 목소리를 떠올리며
이 대목은 또 어떻게 읽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었거든요~~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31) 전가의 1 : 전가의 보도

 

.. 개원을 하면서 나는 산과의들에게 전가의 보도와도 같은 제왕절개를 포기했다 ..  《오오노 아키코/이명주 옮김-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브렌즈,2010) 22쪽

 

 “개원(開院)을 하면서”는 “병원을 열면서”로 다듬고, ‘포기(抛棄)했다’는 ‘그만두었다’나 ‘안 하기로 했다’나 ‘하지 않기로 했다’로 다듬어 줍니다. 조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헤아리면서 말마디를 추스릅니다.

 

 전가(傳家)
  (1) 아버지가 아들에게 집안 살림을 물려줌
  (2) 집안 대대로 전하여 내려옴
   - 전가의 보물
 보도(寶刀) : 보배로운 칼. 또는 잘 만든 귀한 칼

 

 전가의 보도와도 같은
→ 오래된 전통 같은
→ 예부터 집안에서 물려받은 선물 같은
→ 예부터 내려온 일 같은
 …

 

 나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라는 말마디를 쓰지 않습니다. 이 말마디가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이러한 말을 왜 써야 하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말이 아니라면 내 넋을 담아낼 수 없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이러한 말 때문에 내 넋을 옳게 담아내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전가’나 ‘보도’는 한국말 아닌 중국말입니다. 두 낱말은 한글로 적으면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한자로 어떻게 적는가 밝혀야 하는데, 한자를 밝힌들 뜻을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 한자로 적은 다음, 이 한자를 엮은 한문이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다시 새겨야 합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말마디로 이녁 뜻이나 넋을 살뜰히 담아낸다 하리라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말마디가 참 좋다고 여기리라 봅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러한 말마디로 이야기를 할 때에, 이 말마디를 옳게 헤아리거나 새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이 말마디를 알아듣지 못하거나 아리송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아니 이 말마디를 어렵게 느끼거나 뜻을 자꾸 잊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마디를 써서 얻는 값어치는 무엇일까요.

 

 말뜻을 새기면 “집안에서 내려온 보배로운 칼”입니다. 집안에서 보배로이 여기는 칼을 건사한다니, 아마 이러한 칼이 있는 곳이란 옛날 옛적 양반 집이라 하겠지요. 흙을 일구던 여느 살림집에는 보배로이 여기는 칼이란 없겠지요. 여느 흙일꾼 집에는 쟁기나 낫이나 호미나 가래를 보배로이 여기며 물려줄 테니까요. 그러면, “집안에서 내려온 보배로운 칼”은 언제 왜 누구한테 어떻게 쓸까요. 산부인과에서 산과의사가 ‘제왕절개’를 하는 일이 어떠하기에 “집안에서 내려온 보배로운 칼”이라는 말마디를 넣어야 할까요.

 

 산과의들이 걸핏하면 하는 제왕절개
 산과의들이 툭하면 하는 제왕절개
 산과의들이 으레 하는 제왕절개
 …

 

 아기와 어머니 목숨을 걱정하면서 제왕절개를 하기 때문일까요. 툭하면 제왕절개를 하기 때문일까요. 병원에서는 일손을 덜려고 손쉽게 하는 제왕절개일까요. ‘무슨 병이든 고친다’는 ‘만병통치약’과 같은 제왕절개라 여기나요. ‘숨겨둔 치료법’인 제왕절개일는지요.

 

 스스로 양반 문화를 이어받았다고 여긴다면 “집안에서 내려온 보배로운 칼”이든 “집안에서 내려온 부엌칼”이든 마음껏 이야기할 노릇입니다. 스스로 하고픈 말에 따라 참말 하고픈 말을 할 노릇입니다.

 

 내 삶에 비추어 나누는 말입니다. 내 삶을 바탕으로 주고받는 말입니다.

 

 사랑스러운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이 드리우기를 꾀한다면, 나와 이야기를 나눌 사람하고 사랑스레 꽃피울 말마디를 생각하면 됩니다. 즐거이 살아가는 하루를 헤아린다면, 나와 이야기를 나눌 사람하고 즐거이 북돋울 삶을 돌아보며 말마디를 북돋우면 됩니다.

 

 보배로운 칼이라 한다면 한 마디로 ‘보배칼’입니다. 보배칼을 한문으로 옮기니 ‘寶刀’가 되겠지요. 문득 생각합니다. 한겨레 사람들은 ‘보배’라는 낱말조차 제대로 모르거나 잘 안 쓰거나 아예 모르기까지 합니다. 보배로운 칼은 ‘보배칼’이라 할 수 있고, 보배로운 말은 ‘보배말’이라 할 수 있어요. 보배로운 사랑은 ‘보배사랑’이라 하면 되고, 보배로운 꿈은 ‘보배꿈’이 될 테지요.

 

 산과의들이 보배처럼 여기는 제왕절개
 산과의들이 보배처럼 처방하는 제왕절개
 …

 

 삶을 살리는 말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삶을 살찌우는 말을 보듬고 싶습니다. 삶을 가꾸는 말을 아끼고 싶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말을 어깨동무하고 싶습니다. 삶을 즐기는 말을 나누고 싶습니다. (4345.2.9.나무.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2-02-09 04:32   좋아요 0 | URL
저도 예문을 읽고 무슨 뜻인가 했네요, '전가의 보도'.
오늘 새벽, '뿌리깊은 글쓰기' 몇 쪽 읽고 하루 일을 시작하려는 참입니다.

파란놀 2012-02-09 04:39   좋아요 0 | URL
오... 이 새벽에 일어나시는군요 @.@

'양반 문화'로 일컫는 숱한 중국말이
한국말을 너무 어지럽히니
참 고단해요..
 

묶음표 한자말 166 : 다독(多讀), 정독(精讀)

 


.. 어쩌다 보니 독서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나는 독서에서 다독(多讀)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 정독(精讀)은 그 다음 문제야. 무조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  《고성국·남경태-덤벼라, 인생》(철수와영희,2012) 125쪽

 

 한자말 ‘독서(讀書)’가 한자로 어떻게 적었던가 하고 되뇌며 국어사전을 뒤적일 때마다 놀랍니다. 왜냐하면, 한자말 ‘독서’에 달린 풀이말은 “‘책 읽기’로 고쳐쓸 낱말”로 적기 때문입니다.

 

 국어사전을 뒤적일 때마다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아하, ‘독서’는 한국말이 아니구나. 한국말은 ‘책읽기’로구나. 그런데 한국말 ‘책읽기’를 옳게 안 쓰는 한국사람이 너무 많고, 한국말 아닌 중국말 ‘독서’를 두루 쓰는 사람이 아직까지 너무 많지 않나?’ 하고.

 

 국어사전 말풀이처럼 ‘독서’는 ‘책읽기’로 바로잡아야 올바르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국어사전에는 “책 읽기”라고만 밝히고, ‘책읽기’를 한 낱말로 다루지 않아요. 이러한 국어사전 맞춤법 때문에, 사람들이 ‘책읽기’처럼 붙여서 적으면 맞춤법에 어긋난 꼴이 됩니다.

 

 다시금 곰곰이 생각합니다. 맞춤법을 따르자면 “책 읽기”처럼 띄어서 적어야 하는데, 이렇게 띄어서 글을 쓰는 사람은 대단히 적어요. 아무래도 사람들은 ‘책읽기’라는 낱말을 알아보려고 국어사전을 뒤적이지 않을 테니, 이 낱말이 한 낱말이 되어 올림말로 국어사전에 실렸는지 안 실렸는지 찾지는 않겠지요. 더욱이, 붙여야 하나 띄어야 하나도 살피지 않을 테고, 이보다 ‘책읽기’를 이제껏 한 낱말로 삼지 않은 국립국어원과 국어학자를 나무라지 못해요.

 

 “굉장(宏壯)히 중요(重要)하다고 봐”는 “무척 좋다고 봐”나 “아주 좋다고 봐”로 다듬어 봅니다. “그 다음 문제(問題)야”는 “그 다음이야”나 “그 다음 일이야”로 손보고, ‘무조건(無條件)’은 ‘어쨌든’이나 ‘아무튼’으로 손봅니다.

 

 다독(多讀) : 많이 읽음
   - 다독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밑거름이 된다 /
     작가 지망생인 형은 소설책을 다독한다
 정독(精讀) : 뜻을 새겨 가며 자세히 읽음
   - 책 속에 있는 선현의 말씀을 곱씹으면서 정독을 하였다 /
     철학책을 정독하다

 

 독서에서 다독(多讀)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 정독(精讀)은 그 다음 문제야
→ 책을 읽을 때에는 많이 읽어야 좋다고 봐. 그 다음에 찬찬히 새겨 읽어야지
→ 책은 되도록 많이 읽어야 좋다고 봐. 그 다음에 깊이 새겨 읽어야지
 …

 

 국어사전에 ‘책읽기’가 실리지 못하기 때문에 ‘책-’을 앞가지로 삼아 새 낱말을 짓는 틀거리가 아직 마련되지 못했다 할 만합니다. 이와 함께 ‘-읽기’를 뒷가지로 삼아 새 낱말을 빚는 얼거리 또한 제대로 서지 못했다 할 만해요.

 

 ‘책-’을 앞가지로 삼는 틀거리가 있다면, ‘책삶’이나 ‘책문화’나 ‘책마을’이나 ‘책이야기’나 ‘책꾼’이나 ‘책나라’나 ‘책누리’나 ‘책날개’ 같은 낱말을 마움껏 지으면서 생각을 북돋울 수 있어요. ‘-읽기’를 뒷가지로 삼는 얼거리가 선다면, ‘많이읽기’나 ‘빨리읽기’나 ‘즐겨읽기’나 ‘새겨읽기’나 ‘겹쳐읽기’나 ‘다시읽기’나 ‘거듭읽기’나 ‘새로읽기’나 ‘고쳐읽기’처럼 온갖 낱말을 신나게 빚으면서 마음을 갈고닦을 수 있어요.

 

 좋은 넋으로 좋은 말을 빚어요. 좋은 얼로 좋은 꿈을 꾸어요. 좋은 말이 바탕이 되어 좋은 생각이 태어나요. 좋은 글을 밑돌로 두며 좋은 마음을 가다듬어요.

 

 사랑을 일깨우는 말입니다. 믿음을 다지는 글입니다. 사랑을 살찌우는 말입니다. 믿음을 가꾸는 글입니다. (4345.2.8.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 - 어떻게 낳을까 고민하는 예비 엄마를 위한 임신 출산 포토 에세이
오오노 아키코 지음, 이명주 옮김, 미야자키 마사코 사진 / 브렌즈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누구를 바라보며 찍는 사진입니까
 [찾아 읽는 사진책 57] 미야자키 마사코,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브렌즈,2010)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브렌즈,2010)은 사진책이라 할 수 있으나, 사진책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일본 산과의사 오오노 아키코 님이 쓴 글이 바탕이 되니, 여느 글책이라 할 수 있는데, 오오노 아키코 님 글은 이녁이 꾸리는 조산소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기와 아기를 낳는 어버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미야자키 마사코 님 사진이 어우러지면서 빛을 냅니다.

 

 옆지기랑 두 아이와 살아가는 아버지로서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을 찬찬히 읽습니다. 아이를 낳기 앞서 이 책을 만났거나 옆지기하고 살기 앞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내 삶이 달라졌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첫째는 2008년 8월에 태어났고 둘째는 2011년 5월에 태어났습니다. 이 책은 2010년에 나왔어도 나는 201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옆지기랑 한참 살아간 뒤, 두 아이를 낳고 나서야 비로소 이 책을 읽습니다.

 

 산과의사 오오노 아키코 님은 ‘아기와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한테 아픔이나 생채기가 되지 않을 아기낳기’를 꿈꿉니다. 아니, 아픔이나 생채기가 되지 않을 아기낳기가 아닌 ‘기쁨이나 사랑이 될 아기낳기’를 꿈꾸어요.

 

 

 

 

 

 

 

 

 “평평한 분만대에 누워 진통촉진제를 맞았고 간호사가 내 배에 올라타 아이를 밀어냈다. 지금도 생생한 그때의 감정을 말로는 잘 표현할 수가 없다. 경악과 공포, 그리고 이제껏 맛본 적 없는 비애라고나 할까. 아이를 낳았다는 감동 따위는 없었고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뿐이었다(15∼16쪽).” 하는 아픔과 생채기를 받았기에 스스로 조산소를 연 산과의사 오오노 아키코 님입니다. 이와 같은 삶인 오오노 아키코 님 곁에서 아기랑 아기 어버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미야자키 마사코 님이라면 ‘바라보는 눈길’이 사뭇 다르겠지요. 바라보는 사람을 헤아리는 넋 또한 다르겠지요.

 

 이야기책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을 읽는 내내 한 가지만 생각합니다. 아니, 한 가지를 아주 깊이 생각합니다. 미야자키 마사코 님은 누구를 바라보며 찍는 사진입니까, 하고 생각합니다. 오오노 아키코 님은 누구를 바라보며 아기를 받는 사람입니까, 하고 생각합니다. 곧, 나는 어떤 사람들하고 살붙이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사람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옆지기는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 때에 사랑스러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은 대체 어떤 출산 과정을 거쳐 태어났을까. 그 부모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녀를 키웠을까 … 엄마가 되기로 한 여성이 모성을 키워 가는 데 방해받지 않는 출산이 필요하다(38∼39쪽).” 하는 말마디를 곱씹습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아기를 돌보아 씩씩하고 튼튼한 사람으로 보살필 수 없습니다. 곧, 사랑이 아니고서는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글을 쓰지 못합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노래를 부를 수 없고, 그림을 그릴 수 없으며, 영화를 찍을 수 없습니다.

 

 

 

 

 

 

 

 

 사진을 찍는 바탕이랑 오로지 사랑이에요. 사진을 가르치는 사람은 사진쟁이 스스로 사랑을 깨닫도록 이끄는 사람인 셈입니다. 사진을 읽으며 말하는 사람은 사진쟁이가 사진에 담은 사랑이 어떠한 결과 무늬인가 하고 느끼면서 널리 나누려는 사람인 셈이에요.

 

 “출산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귀하게 대접받음으로써 얻는 안도감이 어린 생명을 소중히 보살필 수 있는 힘을 키워 준다 … 이번에 출산한 산과의사가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결국 제왕절개를 선택했다면 나중에 임상에서 직면하게 될 출산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기다림을 선택할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131, 170쪽).” 하는 말마디를 찬찬히 헤아립니다. 겪지 않는대서 모를 수 없다지만, 겪을 때와 겪지 않을 때는 달라요. 머리로만 알 때하고 몸으로 맞아들일 때는 다릅니다. 마음 깊이 사랑을 담아 생각할 때와 머리로 얼핏 생각할 때와는 달라요.

 

 어버이가 아이를 쓰다듬는 손길과 아이가 어버이를 어루만지는 손길을 몸으로 느껴 볼 때하고 머리로 생각할 때에는 사뭇 다를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담아 지은 밥을 내 손으로 떠서 먹을 때, 사랑을 담아 지은 밥을 어버이나 아이 손으로 받아 먹을 때, 사랑을 담아 지은 밥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할 때, 사랑을 담아 지은 밥을 먹은 기운으로 하루를 씩씩하게 살아갈 때, 이러한 삶을 스스로 겪지 않고 머리로 생각해서만 느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꿈속 이야기 아닌 살아가는 이야기인 사랑입니다. 머나먼 데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닌 바로 내 곁에서 이루어지는 일인 사랑입니다. 이리하여, 사진찍기는 내가 어디에 서서 누구를 바라보며 어떠한 넋으로 무슨 이야기를 이루고 싶은가 하는 마음을 담는 일이 됩니다.

 

 “그런 특별한 명칭이나 이치를 공부했다고 해서 엄마가 아기를 안는 것은 아니다. 태어난 아기를 엄마가 가슴에 안는 것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 사랑 없이 자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사랑을 받았습니다(181, 275쪽).” 하는 말을 되새깁니다. 글을 쓴 오오노 아키코 님 말로 그치지는 않겠지요. 이 책에 사진을 담은 미야자키 마사코 님 ‘사진 찍는 손길’로 고스란히 이어지겠지요.

 

 “분유 성분이 꾸준히 개량되어 모유에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분유를 개량하는 목표가 모유와 같아지기 위해서인 이상, 모유보다 좋을 수는 없다(241쪽).” 하는 이야기는 아기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길에서만 나누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진을 왜 찍을까요. 사진은 나한테 어떻게 스며들까요. ‘더 나은’ 사진이란 있을까요. ‘좋은’ 사진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나요.

 

 

 

 

 산과의사 오오노 아키코 님은 아기를 함께 낳는 시인입니다. 산과의사이면서 시인이기 때문에 “임신 기간이 8개월 정도 되니 자연히 계절이 바뀝니다. 그렇게 매일 걷다 보면 어제는 피지 않았던 꽃이 피고, 바람 냄새가 달라지고, 하늘 색도 변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자동차로 다니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 자전거를 타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260쪽).” 하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아기 낳는 사람들 곁에서 사진을 찍어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을 함께 빚은 미야자키 마사코 님 또한 사진쟁이이면서 시인입니다. 시인이기 때문에 이렇게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문득 오늘 이 나라 삶을 돌아보면, 이야기책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에 실린 사진은 너무 슬프면서 부럽고 아픕니다. 한국에서는 아기를 낳는 곁에 아버지가 있도록 하는 병원을 찾아보기 몹시 힘들거든요. 한국에서는 아기를 낳는 곁에 있는 아버지나 살붙이가 사진기를 들고 ‘놀랍고 아름다우며 고맙고 사랑스러운 빛줄기’를 사진으로 갈무리하는 꿈을 이끌도록 따순 손길을 펼치는 산과의사를 만나기 아주 힘들거든요. 아니, 사진찍기에 앞서 아버지가 어머니 손을 따사로이 쥐며 아기를 만나도록 돕는 산과의사는 어디에 몇이나 있을까요. 어머니 둘레에 어머니를 보살필 사람들이 지켜보면서 힘을 북돋운다면, 한국땅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는 어떤 몸짓 매무새 눈길 손길 마음자락이 되어 새 아기를 받으려 할까요.

 

 한국에서도 ‘아기를 맞이합니다’ 하는 이야기로 사진 실타래를 솔솔 풀 사진쟁이 한 사람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예 없지 않겠지요. 어디에선가 구슬땀을 흘리겠지요. 어느 곳에선가 눈물과 웃음을 함께 지으면서 빛나는 사진삶 이루겠지요. (4345.2.8.물.ㅎㄲㅅㄱ)


― 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 (미야자키 마사코 사진,오오노 아키코 글,이명주 옮김,브렌즈 펴냄,2010.12.25./15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주란 목소리

 


 노래 하나로 살아온 사람 목소리를 가만히 새겨듣는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 한 줄에 이녁 온삶을 바친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 한 장에 당신 온꿈을 싣는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 한 칸에 스스로 누린 온사랑 빚는다.

 

 노랫말에, 노랫가락에, 노래를 읊조리는 몸짓에, 삶도 꿈도 사랑도 담지 못한다면, 이이를 노래꾼이라 일컬을 수 없다. 글줄에, 글자락에, 글을 쓰는 손길에, 삶도 꿈도 사랑도 싣지 못한다면, 이이를 글꾼이라 말할 수 없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길까. 범은 죽어 가죽을 남길까.

 

 나는 어릴 적부터 이 말이 몹시 못마땅했다. 어떻게 보아도 올바르지 않다고 느꼈다. 사람이 어찌 이름을 남기나. 사람은 삶을 좋아하며 즐기고 누린 사랑을 남긴다. 사람은 삶을 좋아하며 즐기고 누린 사랑을 함께한 사람하고 어깨동무한 넋을 남긴다.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 그러나, 사람이 이름을 남긴들 무엇 하나. 이름이 얼마나 값지다고 이름을 남기나. 사람한테는 이름 아닌 사랑과 넋이 아름답고 대수롭다.

 

 범한테는 무엇이 아름답거나 대수로울까. 범한테 가죽이 아름답거나 대수로울까.

 

 나는 이 옛말 아닌 옛말이 더없이 거슬렸다. 범한테는 제 새끼가 아름답거나 대수롭지 않은가. 범은 죽어 새끼를 남기지 않을까.

 

 나무는 죽어 씨앗을 남긴다. 풀도 죽으며 씨앗을 남긴다. 모든 목숨은 제 온 삶이랑 사랑이랑 꿈을 담은 목숨씨를 남긴다. 목숨씨를 건사하는 넋을 함께 남긴다.

 

 노래꾼 문주란 님 목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한다. 문주란 님은 구비구비 걸어온 나날을 당신 목소리에 애틋하게 담았구나. 문주란 님은 웃고 울며 부대낀 하루를 이녁 목소리에 고이 실었구나. 문주란 님은 참말 사랑하고 아끼는 노래넋을 문주란 님 노래결에 찬찬히 아로새기는구나. (4345.2.8.물.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slmo 2012-02-08 13:49   좋아요 0 | URL
ㅎ,ㅎ...문주란이요?
저 문주란 '동숙의 노래' 알아요.
좀 좋아하죠.
따라는 부르는데, 혼자는 저얼때 못 부르는 노래요~^^

파란놀 2012-02-08 16:30   좋아요 0 | URL
문주란 님이 "나야 나"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나는 트로트가수다에서)
아주 훌륭하게 부르셨어요.

인터넷에서 찾아서 들어 보셔요.
저는 '적우'라는 분한테
이와 같은 노래와 힘과 소리를 바랐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