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1.10.31.
 : 새 보금자리 면내 마실



- 자전거는 있으나 자전거수레는 없다. 옆지기가 말한다. “저 자전거 앞에 벼리가 앉을 자리 만들 수는 없지요?” 만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수건을 둘둘 말까? 내일은 한번 이렇게 해 볼까? 어떻게든 아이를 자전거에 앉혀서 마실을 다녀야지, 면내에 볼일 보러 다녀오는 짧은 길이더라도 아이가 아버지랑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싶어하는데 자전거를 못 태우니 더없이 슬프다.

- 아직 모든 짐을 다 옮기지 못했으니 자전거수레도 못 옮겼다. 자전거수레가 없으니 아이를 못 태우지만, 아이만 못 태울 뿐 아니라, 마실을 다녀오며 이것저것 장만한 다음 넉넉하게 싣고 돌아오지 못한다. 아이를 수레에 태울 때에는 아이 곁에 짐을 놓는다. 아이가 짐을 붙잡아 주기도 한다. 수레 뒷주머니에 짐을 싣기도 한다.

- 지난달부터 도화면 하수도 공사를 한다며 길바닥을 파헤쳤는데, 아직 이 공사가 끝나지 않는다. 파헤친 채 울퉁불퉁. 언제쯤 이 공사를 끝마치려나. 패인 데를 지나갈 때마다 자전거가 덜컹거리면서 망가지려는 소리를 낸다.

- 도화면에 꼭 하나 있는 작은 빵집 아저씨한테 ‘쌀 바게트’는 언제 굽느냐 여쭙는다. 한 주에 한 번 굽고, 지난주에는 금요일에 구웠는데 여덟 개 구워서 넷 남았다고 한다. 내일 굽는다고 하니, 내일이나 모레에 다시 와 보아야겠다.

- 십일월을 코앞에 둔 오늘, 논은 거의 다 베었다. 아직 안 벤 논은 거의 안 보인다. 일찌감치 벼를 벤 자리 가운데에는 밀을 심은 곳이 있다. 저 논은 봄부터 가을까지는 벼를 건사하고, 가을부터 봄까지는 밀을 건사하는구나. 논이 쉴 겨를이 없구나.

- 남녘누리 따사로운 바람을 쐬면서 면내 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마을 할매와 할배가 볏짚을 깔고 앉아 쉬는 모습을 바라본다. 다른 데를 보셔서 인사를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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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아기 배꼽 - 세계 옛이야기, 일본 곧은나무 그림책 27
주디 시에라 지음, 메일로 소 그림, 윤여림 옮김 / 곧은나무(삼성출판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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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 자랄까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84] 메일로 소·주디 시에라, 《맛있는 아기 배꼽》(곧은나무,2005)



 좋은 사랑으로 내 옆지기하고 살아가면 두 사람은 생각이며 매무새이며 얼굴이며 몸짓이며 닮기 마련입니다. 다 다른 집에서 다 다른 어버이 사랑을 받으며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른 길을 걸으며 살던 두 사람이라지만, 같은 보금자리에서 같은 살림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동안 여러모로 동글동글 예쁘게 거듭납니다.

 좋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두 어버이가 아이를 낳아 셋이서 함께 살고 넷이서 함께 살며 다섯이나 여섯이서 함께 살아가면, 이때에도 다 다른 삶 다 다른 나날 다 다른 꿈인 사람들이지만, 서로서로 아끼고 도우며 믿는 아름다움이 꽃으로 피어납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자라요.

 사랑을 받아먹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저희한테 사랑을 내어준 어버이한테 새로운 사랑을 베풉니다. 새근새근 잠든 얼굴빛으로도 사랑을 베풉니다. 맑은 목소리와 춤사위와 노래결로도 사랑을 베풀어요. 말썽을 부린다든지 미운 짓을 일삼으면서도 어버이한테 사랑을 베풀어요. 모든 모습 모든 말마디 모든 이야기가 사랑입니다.


.. “아빠, 칼을 만들어 주세요.” “엄마, 수수경단을 한 보따리 만들어 주세요. 오니 섬에 가서 아기들을 구해 올래요.” 우리코의 엄마 아빠는 어린 딸이 걱정되었지만, 개를 데려간다면 가도 좋다고 하는 수 없이 허락했어요. 다음날 아침, 우리코는 반짝반짝 빛나는 새 칼을 옆구리에 차고, 수수경단이 한가득 든 무거운 보따리를 등에 지고 길을 떠났어요 ..  (12∼13쪽)


 늘 돌이키면서 노상 잊지만, 나는 옆지기하고 처음 살아가는 나날부터 ‘둘이 함께 꾸리는 삶’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다음부터 ‘셋이 함께 일구는 삶’을 옳게 그리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이 어떠한 보금자리를 돌보아야 하는지 헤아리지 못했어요. 세 사람이 어떠한 삶터를 보살펴야 하는가 곱씹지 못했어요.

 둘째 아이를 낳고 살아갈 무렵 비로소 우리 네 식구 살아갈 터전을 그려 봅니다. 네 식구는 어떠한 터전에서 살아야 하는가를 그립니다. 여러 만 권에 이르는 책짐을 꾸려 새로운 터전으로 옮기는 일이 생기더라도, 두 아이와 옆지기와 내 삶을 톺아본다면, 우리 넷은 가장 아름다이 어우러질 가장 사랑스러운 터를 찾아야 한다고 느껴요.

 비싼 집이 아니라 좋은 집에서 살아야지요. 그냥 시골집이 아니라 나 스스로 고운 목숨이요 자연인 줄 느끼면서 살아숨쉴 곳에서 살아야지요. 내 손으로 보듬을 살림이고, 내 몸뚱이로 건사할 집안일이에요. 내 꿈을 이루는 일이면서 내 넋을 살찌우는 놀이예요.


.. 네 친구는 가파른 길을 따라 절벽 꼭대기까지 올라갔어요. 그러고는 씩씩하게 성문을 두드렸지요. 문이 끼익 열려서 위를 쳐다보니까, 털이 부숭부숭 난 무릎이 보이더니, 그 다음에는 커다란 배꼽, 대장 오니의 초록빛 얼굴, 그리고 뾰족한 뿔이 차례로 보였어요. 하지만 대장 오니는 자기보다 아주아주 작은 여자 아이와 개와 꿩과 원숭이를 보지 못했어요 … 대장 오니가 소리쳤어요. “누가 감히 우리에게 저렇게 버르장머리없이 말하는 거지? 우리 성에 보이지 않는 귀신이라도 있는 거냐?” 그러고는 마당을 뛰어다니며 구석구석을 살폈어요. 마침내 우리코와 우리코의 작은 친구들을 발견하고는 배가 아프도록 웃어댔지요. 눈물까지 흘리면서 말이에요 ..  (20, 25쪽)


 아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랍니다. 아이들은 공무원으로 일할 사람으로 자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돈을 잘 버는 회사원이 될 사람으로 자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교사나 간호사나 의사나 변호사로 자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일자리나 돈벌이자리를 찾더라도, 아이들은 저마다 곱게 다스릴 사랑을 품에 안는 사람으로 자랍니다.

 아이들은 전쟁무기 만드는 일꾼으로 자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전쟁무기를 새로 빚는 과학자로 자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유전자 건드린 곡식으로 떼돈을 버는 화학식품회사 연구원으로 자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군수나 도지사나 시장이 될 사람으로 자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너르며 깊은 가슴을 아끼는 사랑이로 자랍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저희 어버이한테서 가장 예쁘게 사랑을 받는 가장 예쁜 넋을 어루만지면서 자랍니다.

 그림책 《맛있는 아기 배꼽》(곧은나무,2005)에 나오는 ‘수박 공주’ 또한 가장 예쁘게 사랑을 받는 가장 예쁜 아기로 태어납니다. 가장 예쁘게 사랑받으며 자란 수박 공주는 제가 어버이한테서 받은 사랑을 제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한테 예쁘게 베풉니다. 미운 짓을 일삼는 벗한테도 사랑을 베풉니다. 수박 공주 스스로한테도 사랑을 베풉니다. 언제나 가장 빛나는 맑은 눈빛을 펼칩니다.


.. “너희들, 이 섬에서만 살아야 돼! 다시는 우리 쪽에 한 발짝도 들어와서는 안 돼!” “절대로 안 갈게요. 약속해요, 아앙 아앙.” 오니들이 울면서 말했어요. “제발 우리끼리 살게 떠나 주세요, 아앙 아앙.” 오니들이 어찌나 울어대는지, 우리코는 이들에게도 수수경단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답니다 ..  (28쪽)


 씩씩하고 튼튼한 아이를 바라는 아버지는 씩씩하고 튼튼한 넋을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믿음직하고 어여쁜 아이를 바라는 어머니는 믿음직하고 어여쁜 얼을 아이한테 이어줍니다.

 나는 우리 아이한테 무엇을 물려줄 만할까요. 내 옆지기는 어머니로서 아이한테 무엇을 이어줄 만한가요.

 우리 아이는 착한 아이로 자랄 수 있겠지요. 우리 아이는 고운 넋을 북돋울 수 있겠지요. 우리 아이는 참다운 길을 당차게 걸을 수 있겠지요. 우리 아이는 밝은 꿈을 빛낼 수 있겠지요.


.. 우리 도깨비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문건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일제강점기에 ‘오니’의 모습이 교과서에 실려 알려지자 무서운 속도로 ‘도깨비’가 ‘오니’의 모습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  (35쪽/덧붙임말)


 그림책 《맛있는 아기 배꼽》 끝자락에 덧붙임말 하나 붙습니다. 《맛있는 아기 배꼽》에 나오는 이들은 ‘일본 오니’요 ‘한국 도깨비’가 아니라는 덧붙임말을 들려줍니다. 꽤 많은 한국 그림책은 ‘일본 오니’ 모습이 마치 ‘한국 도깨비’라도 되는 듯이 잘못 그립니다. 오늘날까지 거의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아이들보다 어른들부터 일본 오니랑 한국 도깨비를 제대로 가누지 못해요.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아요.

 곰곰이 살피면, 이 나라 어른이 제대로 살피지 않는 일은 오니랑 도깨비 한 가지만이 아닙니다. 옳은 삶과 그른 삶 또한 제대로 살피지 않아요. 착한 사랑과 나쁜 짓을 알맞게 가리지 않아요. 고운 꿈과 돈벌이 꿍꿍이를 슬기롭게 다독이지 않아요.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기 앞서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이 그림책을 읽으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를 살피기보다, 이 그림책을 장만한 나부터 이 그림책을 읽는 동안 어버이로서 착하고 맑은 빛살을 따숩게 끌어안자고 다짐합니다.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랑 그림책 하나 읽는 겨를을 즐기면서 예쁜 빛줄기를 가슴으로 품을 수 있도록 머리를 쓰다듬자고 생각합니다. (4344.11.1.불.ㅎㄲㅅㄱ)


― 맛있는 아기 배꼽 (메일로 소 그림,주디 시에라 글,윤여림 옮김,곧은나무 펴냄,2005.9.1./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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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 마려


 첫째 아이가 밤새 두 차례 “쉬 마려!” 하고 외친다. 짧게 외치기도 하고, “아빠 쉬 마려!”나 “엄마 쉬 마려!” 또는 “아버지 쉬 마려!” 하고 외친다. 처음 외칠 때에 곧바로 알아채고는 벌떡 일어나 아이 손을 잡으면서 “자, 쉬 마려우면 일어나. 쉬하러 가자.” 하고 이야기하면 아이는 씩씩하게 잘 일어나서 아버지 손을 잡고 아이 오줌걸상에 앉는다. 조금 늦게 일어나거나 두세 번 외칠 무렵에 잠에서 깨면 아이는 징징대며 우는 소리를 낸다.

 쉬를 눈 아이는 금세 잠든다. 예쁘다고 머리를 쓸어넘기거나 가슴을 토닥인다. 쉬를 눌 때에 밤하늘 별을 보면 좋으련만, 아이는 꾸벅꾸벅 졸면서 쉬를 눈다. 쉬를 누며 잠들기도 하니까 좀 오래 앉는다 싶으면 “다 누었니?” 하고 두어 차례 물은 다음 일으켜세워 바지를 입힌다. 네가 앞으로 몇 살까지 이렇게 어리광을 피우겠니 생각하며 아이를 번쩍 안아 자리에 눕히기도 한다.

 아이를 자리에 눕혀 이불을 여미다가 생각한다. 밤에 잠에서 깨어 쉬가 마렵다고 할 때에는 이렇게 ‘네가 앞으로 몇 살까지 어리광을 부리겠느냐?’ 하고 생각하면서, 막상 아이가 한창 신나게 뛰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 어리광을 옳게 받아들여 주지 못하는 내 모습을 겹쳐 놓고 생각한다. 참 덜된 아버지요 어른이다. 그러고 보면, 아이한테 읽히려고 그림책을 잔뜩 장만하고도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찬찬히 그림책을 읽을 틈을 좀처럼 못 낸다. 이 시골집 손질을 말끔히까지는 아니더라도 웬만큼 끝마칠 때까지는 몸에 기운이 얼마 안 남기에 그림책 읽히기를 못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힘들다는 핑계로 날마다 얼렁뚤땅 넘어가지는 않나. 참말 힘들기는 힘든가. 아니, 많이 힘들기는 많이 힘든데, 많이 힘들더라도 하루에 몇 분쯤 그림책 함께 읽으며 보낼 틈조차 못 낼 만한가. (4344.10.3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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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1-01 00:21   좋아요 0 | URL
"엄마!" 부르는 소리가 어떤 때는 귀찮아서 "왜 또~" 이렇게 밉게 대꾸할 때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에도 눈물이 핑 돌면서 가슴이 뜨거워질 때도 있고...저만 그런가요? ^^
충분치 못한 잠을 자고 있는 중에 아이가 쉬마렵다고 깨우면, 몸이 금방 일으켜지기 힘드실텐데요.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다가도 저 아이가 이럴 때 나 아니면 누굴 찾으랴 스스로 타일러가며 몸을 일으키던 생각이 납니다.
오늘따라 글이 마음에 더 와닿습니다.

파란놀 2011-11-01 07:52   좋아요 0 | URL
밤에는 아무리 고단해도 거의 늘 먼저 일어나요. 밤에 옆지기가 조금이라도 일어나지 않고 쉴 수 있기를 바라거든요.

두 아이한테 더 잘 할 수 있기를 꿈꾸지만, 낮에는 잘 놀아 주지 못하기도 하기에 밤에라도 잘 한다고 할까요 ^^;;;;;
 



 그림책을 산다


 아이와 함께 읽을 그림책을 산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 읽을 그림책을 넘어, 아이가 혼자서 수없이 되읽고 싶다며 집어들 만한 그림책일까 아닐까 혼자 곰곰이 생각하면서 그림책을 산다.

 시골마을에 책방이 알뜰히 있어, 너른 그림책을 두루 살피면서 장만할 터전이 있다면, 아이는 오래오래 되읽을 그림책을 얻을 수 있을까. 면내에 책방이 없고, 읍내에는 나가기 힘드니까 두 다리로 책방마실을 할 꿈을 꾸기조차 힘들다. 집에서 셈틀을 켜고 누리책방에서 이럭저럭 괜찮겠거니 생각하며 그림책을 고른다. 소포꾸러미를 받아서 풀 때에 참 좋다고 느끼는 그림책이 있지만, 아이도 어버이도 좀처럼 손이 안 가고 마는 그림책이 있다.

 그래도, 아이들 그림책은 이야기가 참 많다. 어른들 인문책은 이야기가 너무 좁다. 아이들 그림책은 이야기가 참 쉽다. 어른들 인문책은 이야기가 너무 어렵다. 아이들 그림책은 이야기가 무척 깊으며 넓다. 어른들 인문책은 이야기가 너무 틀에 박힌다.

 왜 어른들 읽는 책은 아이들 읽는 책처럼 더 넓은 갈래를 다루지 못할까. 왜 어른들 읽는 책은 지식조각과 정보조각 그러모으는 데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까. 아이들 그림책이 지식조각이나 정보조각으로 넘치면, 어느 아이라도 따분해 한다. 아이한테 그림책 읽히는 어른도 이런 그림책은 재미없다. 지식이든 정보이든 이야기에 스며들어야 한다. 지식이나 정보는 이야기에 녹아들어야 한다. 삶이 있어야 하고,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살아숨쉬어야 하고, 사람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아이가 읽을 그림책을 산다. 아이하고 즐길 그림책이기도 할 테지만, 어른인 내 마음을 살찌울 그림책을 산다. 아이가 오늘 읽어도 좋은 그림책이면서, 아이가 나중에 어른이 된 다음에 읽어도 좋을 그림책을 산다. 오늘 장만해 놓지 않으면 아이가 앞으로 스무 살이 되거나 서른 살이 된 다음에는 구경할 수조차 없을 그림책을 아버지한테 돈이 조금 있을 때에 한 권이라도 더 장만한다. (4344.10.3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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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 - 결혼을 배운 적이 없는 모든 당신들을 위하여
강수돌 외 지음 / 샨티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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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옆지기하고 즐겁게 살아갑니다
 [책읽기 삶읽기 85] 강수돌과 열여섯 사람,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샨티,2011)



 옆지기는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샨티,2011)라는 책에 글을 쓴 열일곱 사람 가운데 딱 한 사람을 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로는 ‘네 살 딸아이까지 세 식구가 중동에서 넉 달째 나들이를 한다’는 편해문 님을 안다.

 나는 편해문 님을 1999년이었나 2000년부터 알았다. 어린이책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하던 이무렵, 막 어린이책 두 가지를 내놓아 ‘새내기 작가 이름’을 걸친 편해문 님은 어린이놀이 이야기에 여러모로 마음을 쓰는 분이었다.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하며 이름을 알기로는 이때부터이지만, 막상 느긋하게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로는 2010년 이른겨울이 처음이었다고 느낀다.

 어찌 되든, 옆지기는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라는 책에서 편해문 님 글만 골라 먼저 읽는다. 편해문 님 글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 글은 읽지 않았단다. 나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는다. 모두들 ‘혼인을 해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글을 한 꼭지씩 쓰는데, 옆지기 말마따나 누구라도 ‘혼인이란 무엇인가?’ 하는 밑앎 이야기를 다루려 애썼다고 느낀다. 다만, 편해문 님을 빼놓고는 ‘혼인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 구성진 이야기’에 눈길을 두려는 분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나같이 ‘오늘날 한국땅에서 얼마나 벅차고 힘들며 고단한 혼인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 결혼을 하는 순간, 우린 종종 상대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송두리째 점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믿는다. 심지어는 그의 과어와 미래까지도 모두 아내 혹은 남편이란 이름으로 온전히 컨트롤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  (28쪽/목수정)


 책을 덮고 나서 옆지기 말을 거듭 곱씹는다. 열일곱 사람 어느 누구라도 ‘한국땅에서 혼인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밝히겠다며 힘썼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내 가슴으로 촉촉히 젖어드는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보지 못한다. 어느 이야기라도 답답하다. 어느 분 글이라도 갑갑하다.


.. 결혼 후 몇 번 이사를 다니다 보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서재, 아내의 서재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이렇게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그것은 아예 존재하지조차 않는 방이었다. 여성은 남편과 함께 공동의 서재를 쓰기 때문에 집 안에 서재는 하나로 충분하며, 만일 두 개의 서재가 마련되어 있다면 그것은 둘 다 남편의 서재이거나 혹은 태어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에 미리 만들어 놓은 아이의 방이었다 ..  (68∼69쪽/서윤영)


 열일곱 사람 가운데 ‘혼인을 하며 즐거이 살아간다’고 글을 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나마 편해문 님은 세 식구가 오붓하게 중동 여러 나라를 돌아보는 마실을 여러 달째 한다고 글을 쓴다.

 참 꿈 같다. 세 식구가 여러 달 나들이라니. 돈은 얼마나 있을까. 아이가 하나이니 단출하게 마실을 할 수 있겠지? 아이가 둘만 되어도 넋을 온통 사로잡아 도무지 어쩌지 못하겠는데. 아이가 셋이라면 그야말로 허둥지둥 더 복닥거리겠지. 넷이라면? 넷이라면 참 빠듯할는지 모르지만, 두 아이와 살아가건데, 넷부터는 첫째가 막내나 동생을 찬찬히 보살피도록 함께 살아가야 할 테니, 이럭저럭 짐은 좀 덜지 않으랴 생각한다. 그러나, 집에서 빨래기계 안 쓰고 아버지가 집일을 도맡는 우리 모습을 돌아본다면, 서른일곱에 둘째가 태어난 이 집에서 넷째까지 보려 한다면, 아이들 사이에 세 해는 틈을 주어야 하니까, 나는 마흔다섯 살까지도 기저귀를 빨며 보내야 한다.

 아, 기저귀 빨래란! 첫째 아이 밤오줌 가리기를 겨우 떼고 첫째 아이 기저귀 빨래에서 풀려났다고 생각할 무렵, 하루도 쉴 틈이 없이 새삼스레 둘째 아이 기저귀 빨래로 접어들어야 하던 일이란! 이레 남짓 첫째랑 둘째 기저귀를 빨래하느라 아주 손목 팔목 빠지던 일이란! 제발 밤에 잠 한 번 제대로 자자고 꿈꾸던 나날이란!

 머잖아 둘째 아이 젖떼기밥을 마련할 일을 헤아리면 집일은 도무지 끝날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집일이 조금이나마 줄 틈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옆지기하고 두 아이를 함께 낳아 살아오면서 ‘혼인은 뭐지?’ 하는 생각을 거의 못 했다. 그냥저냥 살아가는 사람이라서 생각을 안 하지 않는다. 참말 끝없는 집일을 건사하면서 하루하루 서로서로 사랑하며 살자고 다짐하기에도 눈알이 핑핑 돈다. 밤에 잠자리에 들며 오늘은 오늘대로 좋아하고, 이듬날은 새롭게 서로를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빌며 눈을 감는다. 이듬날은 아이들과 더 예쁘게 말을 섞자고 다짐하며 눈을 감는다.


..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나 고학력에 비해서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가정에서만은 봉건적인 여성의 역할을 강요한다. 고학력 여성군의 독신 비율이 늘어나는 이유도 우리 사회 결혼 제도의 모순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  (121쪽/오진희)


 나는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를 읽으면서 한 가지 궁금하다. 왜 이 책에 글을 쓴 열일곱 사람은 ‘집에서 하는 일’을 놓고는 아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아니, 집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또렷하게 밝히면서 올바로 보여주는 글은 왜 하나도 없을까. 혼인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열일곱 사람 모두 ‘바깥에서 하는 일’과 ‘내 마음에 맞는 짝꿍이 있을 때에 꼭 법률 제도에 따라 예식을 올려 한 집에서 살을 섞어야 하는가’에만 눈길을 두면 되는가. 이만 한 글이라면 혼인 제도나 혼인 문제를 다 다루었다고 여길 만한가.

 여남 불평등이건 남녀 평등이건 대수롭지 않다고 느낀다. 사회가 불평등이건 평등이건 나 스스로 아름다이 살아가는 길이 가장 즐겁다고 느낀다. 나 스스로 아름다이 살아가면서 나와 함께 아름다이 어깨동무하는 길을 일굴 짝꿍을 사귀어 서로를 지키고 기대는 옆지기로 한삶을 돌보면 가장 따사로우리라 느낀다.

 먼저 서로 아끼고 사랑할 ‘좋은 보금자리’를 찾아서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고 느낀다. 돈벌이에 사로잡히거나 돈벌이에 얽매이는 공해덩어리 도시가 아닌, 삶짓기에 걸맞거나 삶사랑에 알맞을 좋은 마을살이를 꿈꾸어야 한다고 느낀다. 어른인 두 사람부터 아름다이 살아가는 보금자리라면, 이 아름다이 살아가는 보금자리에서 태어날 아이들은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랄 수 있겠지.


.. 왕자라는 사내가 옳은 정신이 박힌 자라면 신데렐라가 부엌데기이든 무어시든 신데렐라의 현재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 참 남자들이 이렇게 어리석다. 한 세월 아무리 한 이불 덮고 자도 서로 해서는 안 될 이야기가 있고, 끝까지 지켜 줘야 할 무언가가 있다. 그런데 남자들이 이런 걸 잘 못한다 … 쉽게 말해 나무꾼은 선녀들을 염탐하던 한 짐승의 귀띔에 온통 마음이 빼앗겨 선녀의 옷을 훔치고, 그것을 빌미로 한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가둬 버리려는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 나무꾼은 아이를 셋이나 낳고 온갖 살림살이를 다 하며 사는 아내를 진정 사랑했던 것일까? 사랑했다면 아이를 하나 낳았을 때, 아니면 둘을 낳았을 때 서둘러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어야 했다 ..  (196, 200쪽/편해문)


 나는 생각한다. 혼인에 앞서 물을 한 가지라면 오직 ‘삶·사람·사랑’을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보살필 수 있느냐라고. 혼인에 앞서 물을 한 가지란, 내가 살아가며 나 스스로 묻고 이야기할 한 가지라고.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사랑할 짝꿍을 만난다.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스스로 마음에 아로새길 책을 만난다.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아이하고 마주한다.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글을 쓰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그림을 그린다.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흙을 만지고 밥을 먹는다.

 내 하루 오늘 삶을 어떻게 얼마나 아끼느냐에 따라, 내 사랑과 혼인과 일놀이 모두 새삼스레 거듭난다고 느낀다. (4344.10.31.달.ㅎㄲㅅㄱ)


―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 (강수돌과 열여섯 사람 씀,샨티 펴냄,2011.10.25./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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